|
가르치는 일. 누구나 하는 일이다. 우리가 배우면서 살아가야 하는 동안 누군가는 우리를 가르칠 것이고, 배우는 우리도 누군가를 가르치게 될 것이다. 가르치는 일을 꼭 교사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가, 가르치는 일에 대해서는 누구나 할 말이 있다고 한다.
어떻게 가르치는 게 잘하는 것일까. 수업을 잘하는 선생님, 강의를 잘하는 선생님, 학생들에게 좋은 선생님...... 이들은 선생님에 따라서 하나로 연결될 수도 있고 따로일 수도 있다. 하나를 잘한다고 다 잘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하나에는 유능하지만 다른 하나에는 꼭 그렇지 않더라는 것을 더러 봐 왔기 때문이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다 잘하는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강의도 잘하고, 여러 가지 기법을 이용하여 다양한 형태의 수업도 잘하고, 학생들의 호응과 만족도도 높고, 학력 향상도 잘 시키고,......인성도 훌륭하고...... 쓴웃음이 나온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교사는 보고 배우는 과정이 다른 직업과 좀 다른 듯하다. 수업 기술이라는 게 이를테면 마이스터와 같은 긴 수련 과정을 거치는 게 아니고 거의 독학으로 얻어야 하는 것이다. 교사가 되려는 사람들은 대학에서 실습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그 기간이 상대적으로 너무 짧고, 교사로 임용된 순간부터 바로 전문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가 나의 수업을 가르치고 지도할 수 있는가. 나는 나의 수업에 대해 가르침이나 충고나 권고를 받을 마음이 있는가. 나는 내 수업에 만족하는가. 나는 내 수업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의향이 있는가. 내가 가르치는 학생 외의 사람들을 내 수업에 참여시킬 의향은 얼마나 되는가. 내 수업을 공개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가. 내 수업에 쏟아지는 평들을 받아들일 여유는 있는가. 나는 수업을 잘하는 사람인가.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수업에 만족하는가.
책을 읽는 내내 머금고 있던 물음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장학'이라는 제도에서부터 수업컨설팅, 수업평가, 수업관찰 등을 거쳐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수업비평에 이르기까지 가르치는 일에 대한 무수한 고민의 흔적을 짚으면서 교육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딱 여기에서 멈춘다. 시원한 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겠지, 이대로 계속되는 물음이겠지, 지나온 교육의 역사만큼이나 앞으로도 쉽게 풀리지 않을 문제이겠지. 이 또한 삶의 다른 모습일 테니.
책은 실제로 수업하신 선생님들의 사례를 관찰하고 비평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참여하신 선생님들의 수고로움을 충분히 짐작하겠다. 수업을 한 선생님도 수업을 관찰하고 비평문을 쓴 선생님도 어떤 마음으로 임하였는지 알 것 같으니까.(수업비평이 기존의 수업 지도들과 어떻게 다른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부분은 참고가 될 만하다.)
지금 자신이 처한 시점에서 후세를 위해 더 나은 삶의 길을 제시하려고 노력하고 계시는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께 응원의 메시지를 드리고 싶다. 가르치는 일이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한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
|
수업은 과학적인 기술과 접근으로 학생들의 행동을 철저히 분석하고 통제하는 과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관점은 학생들을 수업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시키고 타율적이고 수동적인 학습만 반복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와 학생의 소통이다. 인간적인 배려와 관점 속에서 서로 호흡하고 감동하고 깨달을 수 있어야 교사도 성장하고 학생도 성장할 수 있다.
이러한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되는 하나의 연극. 그것이 수업이어야 한다.
그래서 수업은 예술이다. 예술이기 때문에 비평할 수 있고 그 비평의 결과는 더 나은 수업을 디자인하는 데 활용되어야 한다. |
|
"수업 비평이란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구성해 가는 수업 현상을 하나의 분석 텍스트로 하여 수업활동의 과학성과 예술성, 수업 참여자의 의도와 연행(演行), 교과와 사회적 맥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수업을 기술, 분석, 해석, 평가하는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글쓰기이다."-본문중에서 |
|
수업비평이라. 새로운 개념이다. 비평이라는것은 예술에 적용되는것 아니었나. 저자는 수업을 교사가 배우, 학생이 관객인 연극과 유사하다고 가정했다. 연극을 통해 관객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생각의 변화를 가져오는것처럼, 수업도 그러하다는 점에서 연극과 유사한 것이다. 또, 공개수업이라는것이 적잖이 연극적인 요소도 없지 않잖은가. 잠깐 교직에 있으면서 공개수업을 몇번 봤는데, 그런 수업에 굉장히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자기 수업에 대해 굉장히 폐쇄적인 문화속에서 거의 강제적으로 공개되는 공개수업. 오래전부터 짜여진 각본에 따라 이루어지는 수업과 현란 기자재들은 1년에 그날 뿐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렇지만 이 책의 저자인 이혁규 교수는 (청주교대), 오랫동안 준비한 수업을 공개함으로써 얻는 장점도 분명히 있다고 옹호한다.
이제 각 수업으로 따라 들어가보자. 사회교육과 출신이라 그런지 모두 사회과 수업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때와는 많이 달라진 교육과정도 그렇고, 조금은 낯선 교실 풍경이다. 수업 장면을 따라 읽는데,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수업들이다. 현직 교사들 중에 수업에 대한 고민을 이렇게 많이 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연일 인터넷 뉴스에는 몇몇 이상한 선생님들의 가쉽거리 기사를 다루기에 바쁜것 같아 씁쓸했다. 아이들의 수준에 맞추어서 교과지식을 배열하는 능력도 그렇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처럼 가까운 과거를 다루는것, 통일교육, 천성산 도롱뇽 문제, 대운하 찬반토론,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다루는 방법, 문화재 수업의 새로운 방법 등. 이렇게 까다로운 주제들을 이렇게 중립적으로, 차분하게, 또 재미까지 있게 풀어낼 수 있다니!!! 수업 하나하나가 바로 눈 앞에 펼쳐지는것 같이 너무 재미있다. (우리교육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하고 책 뒤에있는 시리얼 넘버를 입력하면 실제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입시위주의 교육시스템에서 교사가 가진 교육철학과 다양한 수업 방식을 시도해볼 수 있는곳은 초등학교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상적인 수업을 향한 이런 고민과 시도를 하는 교사들이 많아지기를. 또, 이런 고민을 하는 교사들이 "튀는 교사"로 찍혀 그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학교 문화는 서서히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상이라는 지향점을 상실한다면 우리는 안락한 현실에 닻을 내리고 자위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되고 말 것이다." (p. 155) |
|
딴에는 아이들을 위해 매일 같이 교재연구 해가며 좀더 재미나고 알찬 수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지나가던 누군가가 내 수업을 보고 뭐라고 그러지나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교실 문과 창문을 굳게 닫고 수업을 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런 면에서 생각이 자유로와졌다. 아마도 내 수업이건 남의 수업이건 잘 한다는 수업은 일부러 찾아가서 배우려는 열성도, 달게 비평을 받으려는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수업을 잘하고자하는 열망은 교사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정작 어떤 수업이 좋은지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방법을 찾아 내것으로 만드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저자가 수업비평에 대해 언급했듯이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열린 마음을 갖고 비평을 배우고 실천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본다. 수업 비평은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구성해 가는 수업현상을 하나의 분석 텍스트로 하여 수업 활동의 과학성과 예술성, 수업 참여자의 의도와 연행, 교과와 사회적 맥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수업을 기술, 분석, 해석, 평가하는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글쓰기이다. 수업 비평에 대한 자세한 언급부터 시작해서 여러 교사들의 수업을 하나 하나 소개하면서 수업을 보고 난 후에 수업비평의 여러 가지 관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함께 한다. 마치 한 수업 한 수업의 장면에 함께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하는 수업에 대한 자세한 묘사로 저자와 같은 눈높이에서 수업을 들여다 보며 다양한 초점에서 비평의 눈을 키워갈 수 있도록 구성해둔 점이 참 맘에 들었다. 글밥이 많은 책이고 또 쉽지만은 않은 책이지만 '언제쯤이면 나도 수업에 대한 열의만 가지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신감있게 비평의 장에 내 수업을 내던져서 과감히 비평의 칼날을 받아들이고 한 단계 성숙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컸던 탓인지 책장은 술술 넘어갔고, 그 만큼 배운 것도 많았다. '수업 비평'을 통해서 그 동안 나 스스로 닫아두었던 교실 문을 열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만들어 내 수업에 대한 전문성을 높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수업을 보더라도 그냥 좋은 수업이다 부족한 수업이다가 아니라 좋은 수업은 좋은 수업대로의 배울 점을 또 부족한 수업에서도 그 만이 가진 숨겨진 좋은 점을 보는 바른 눈을 갖게 해주리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
|
'벗 삼아 읽은 책 평생의 스승' 몇해 전 학교에서 독서 관련 표어 짓기 행사를 할 때, 우리반 한 아이가 지어 왔던 표어다. 난 이 글귀(?)가 너무 마음에 들고 와 닿아서 해마다 우리 반 교실 뒤에 학급 환경을 꾸밀 때 꼭 해 놓곤 했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책을 만나지만 그냥 스쳐 지나가는 책이 대부분일테지. 평생의 스승으로 삼을 만한 책 한권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 스승이라고 말하기엔 이르지만 내 벗으로 삼아도 좋을 만한 책을 만났다.
난 수업을 잘 하고 싶다. 그건 모든 선생님이 평생을 좇아가는 꿈이 아닐까? 그런데 어떻게 해야지 수업을 잘 하는건지 난 잘 몰랐다. 좋은 수업이 무엇이라는 여러 사람의 글을 읽어 보기는 했지만 좋은 수업이 무엇인지 여전히 잘 모른채로 지내왔다. 그러다 우연히 좋은 기회가 닿아서 수업, 비평의 눈으로 읽다를 선물 받았다.
'그래, 이거야!'
난 논리성이 부족한 사람이고 숲도 나무도 잘 보지 못하는 그냥 어정쩡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책이 나를 그 어정쩡함의 구렁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줬다.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책 속의 수업에 빠져들었다. 이 다음엔 수업이 어떻게 진행될까? 궁금한 마음에 서둘러 책장을 넘기기도 했고, 이런 주제를 이렇게 풀어갈 수도 있구나 하며 하나 둘 배워갔다.
수업을 계획하고 진행해 나감에 내가 참고하고 신경써야 할 여러 관점을 알 수 있었고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고, 숲도 나무도 이렇게 보면 되겠구나 하는 길을 알려주었다.
순서가 조금 바뀌긴 했지만 먼저 나온 책 '수업, 비평을 만나다'도 읽어봐야겠다. 이 책과 함께 나도 조금 더 나아간다면,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수업 잘하는 선생님이 되지 않을까? |
|
교사이지만, 수업에 관련된 책을 읽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다른 책보다 전문적인 식견이 요구되기도 하고, 왠지 진도도 잘 나가지 않게된다. 게다가 딱딱하기까지 하지 아니한가.
그런데 이 책 [수업, 비평의 눈으로 읽다]는 수업동영상을 보는 느낌이다. 나와 동종의 교사가 자그마한 비슷한 생각과 더 많은 생소한 방법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봤다. 게다가 주석까지 달려있는 그런 수업동영상.
내용을 살펴보며, 우리고장의 옛노래에선 음악적 요소에 빠져들기 쉽다는 지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에서는 '보통 1~2달 프로젝트는 구상을 해도 1년짜리 프로젝트를? '이란 생각을 했으며, 가족수업에서 익숙한 사물에 낯선 이미지를 부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필자의 의견엔 동의를 하지만, 수업 중 가장 힘든게 동기유발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얼마나 훌륭한 도입이냐!' 하는 생각도 들었다. 5.18 수업에서는 보통 사회 수업이나 국어 문학 수업을 할 때 사용하는 정지동작의 교육연극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반가움도 느꼈다. 그러나 나와 사뭇 다른 점은 필자가 지속적으로 지적하는 학생의 사고를 굳힐 수 있는 수업을 해서는 안되는데, 나는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역사를 가르칠 때는 주관적인 해석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전달하기 바빴다. 내 잣대로 판단한 옳고 그름을 그대로 너희들도 따라 생각하라고 가르쳤다. 그래선 안되는거였는데...
그동안 다른 선생님의 수업을 들어가서 평가를 할 때마다 '저사람에게 약이 되는 말일거야. 조금 기분 나쁘더라도 이해할거야' 하는 생각으로 독설을 써댔다. 하지만, 나역시 별다를게 없는 수업을 하는 교사이리라.
비평이라 생각했던 행동이 비난이었음을 깨닫는다. 아쉽다면, 상대방이 느끼기에 비평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하는 점이다. 책 한권이지만, 수업을 좀 더 잘 준비할 수 있게 도움을 준 책이다. 옆반 선생님께도 권해주고 싶다. |
|
'문학비평'에 익숙한 사람이라 '수업 비평'은 여전히 낯설다. 하지만, 분명히 유효한 개념이다. 이 책은 수업에 대한 '비평'을 통해, 수업에 대한 평가를 단순히 손짓, 몸짓, 몸소리, 판서와 같은 세부적인 부분에 치우치지 않게 하고, 어쩌면, 수업을 예술의 영역으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술'이 뭐야, 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는데, 글쎄, 내가 예술에 대한 정의를 정확하게 내릴 수 없지만, 이 책을 통해서 본, 예술로서 수업은, 수업이 하나의 완결된 미적 세계로 존재하는 수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업이 이런 대접을 받는 여러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이 책의 제목이 말 해 주듯이 수업에 대한 상투적인 평가가 아니라 올바른 평가가 받쳐 주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지엽적인 평가가 아니라 미시적이면서 거시적인 평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수업 평가를 통해 수업은 기존에 내가 알고 있었던 수업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나도 여전히 수업을 공개하는 게 어렵고, 이런 책에 나온 수업을 볼 때마다 어디 하늘에서 똑 떨어진 특별한 사람들의 얘기로 들을 수 있는 데, 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수업과 기술 그리고 중간 중간에 이어지는 평가는 과목을 떠나서 교사의 능력을 떠나서 정말 내가 나의 수업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보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이 책에 나오는 수업은 대부분 사회과 관련 수업이지만, 다양한 수업 형태 - 일제식 수업, 협동 수업, 프로젝트 수업 등 -를 제시하면서, 동시에, 그 수업들에서 꼭 되돌아 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 검토하게 하여, 충분 각자의 과목에서 이 책의 비평들을 비판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특히,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그 평가가 짜증나게 지엽적인 평가가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평가라, 나 같은 용기없는 교사에게는 방안에서 유용한 수업 참관을 한 느낌이다.
그리고, 문득, 다시 느끼는 것은 자기 전공을 벗어나는 다양한 독서를 해야겠다는 생각과, 수업 형태에 대한 연구를 떠나서, 자기 전공 지식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가 열심히 교재 연구를 한다지만, 문제집과 인터넷만 죽어라 뒤지는 수업 연구는 분명히 한계가 있고, 자기 만족 수준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는, 그래서, 결국, 교과서가 제시하는 이데올르기에 편입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아, 하나 더, 학생들 중심의 수업 관찰도 좋았다. 사토 마나부 교수의 '배움의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 책을 읽고 있는데, 연관된다. |
|
수업 비평이란 말은 참 생소하다. 사실 이책을 받아들기 전까지 저자의 말마따다 수업분석, 수업장학 혹은 연극 비평, 문학 비평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수업 비평이란 말은 처음이었다.
낯선 개념임을 저자도 아는지 수업 비평의 정의에서 부터 수업 비평이 어떻게 가능한지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지까지 저자는 자세하게 풀어주고 있다
사실 잘 모르는 개념이고 딱딱한 문체라 글이 쑥쑥 넘어가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것은 뒤로하고라도 저자가 보이는 수업에의 열정만큼은 같은 교사인 나를 참 부끄럽게 하고 내 수업을 창피하게 하는 것이었다. 한시간 수업을 위하여 어느 만큼의 준비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 수업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 나의 준비만큼 아이들의 반응이 따라 온다는 것이다 내가 준비하지 못한 날을 알게 모르게 아이들은 어수선하고 나의 말을 잘 흡수하지 못한다.
이런 나의 수업을 돌아보고 한단계 업그레이드 할 방법이 바로 수업 비평이 아닌가 싶다
아직 수업 비평을 무엇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다 라고 확실히 이해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러한 세계에 조금 발을 담구었으니 앞으로 좀 더 노력하고 연구하며 수업 비평을 활용하여 나의 수업이 아이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참 지식의 산물이 되는 수업으로 만들고 싶다. |
|
현직 교사도 아니고 아직 학부형도 아닌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요새 학교에서는 어떤것들을 배우고 어떤식으로 수업을 하는가 하는 호기심과 함께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함이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교육에 관심이 많다면 많은 것이겠지만서도 주변에서 계속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예전에 내가 학교다닐때와는 달리 학교 수업 방식이 토론식이나 협동학습 형태로 많이 바뀌고, 수행평가 위주로 학습에 대한 평가가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런지, 그렇다면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 몇 년 뒤에 학부형이 될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이 서점에서 눈에 들어왔다.
교육 현장에 대해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수업 비평이란게 문학 비평이나 예술 비평처럼 그다지 생소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교육 현장 일선에서는 매우 생소한 모양이다. 청주교대에서 예비교사들을 가르치고 있는 현직 교수님이 이 책의 저자인데, 책의 앞머리에서 수업 비평이란것이 기존의 수업연구대회나 동료장학과는 차이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수업연구 대회는 교사의 일반적인 수업 수행능력에만 촛점을 맞추기에 장학사 등에 보여주기식 수업이 될 수 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수업 비평은 그 외에도 교수하는 교사를 중심에 둔 관찰, 학습자의 학습과 배움을 중심에 둔 관찰의 시각을 반영하는 활동이라고 한다.
이 책에는 여기저기서 우수 수업으로 선정된 수업을 위주로 그 수업의 의미를 드러내는 비평작업들이 실려있다. 실제 수업을 거의 전사해서 수업 상황을 글로 담아내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된 실제 수업 동영상을 웹사이트를 통해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교육 현장에서 실제로 어떤 수업들이 행해지고 있는지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매우 좋은 컨텐츠이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수업들은 사회, 지리, 역사 위주의 수업이다. 이 분야가 저자의 주 전공이기도 하고, 사회과목이 다른 과목에 비해 수업 방법에 있어서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그렇게 선정된 것 같다. 어쨌든 이 책을 통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사회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관찰할 수 있었다.
천성산 도룡뇽 문제를 모의 재판을 통해 토의해보는 초등 5학년 수업이라던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매우 껄그러운 주제를 다루는 초등 6학년 수업 등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이런 수업들을 비평하면서 저자가 말하는 여러가지 교육현실과 입장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공교육 체제 속 교사들은 자율성이 없다는 단점을 언급하면서, 그에 대한 연장선상인 수업과 관련하여서도 교육 내용은 표준화된 교과서에 의해 구속되었으며, 교육방법은 문화적 전통에 구속되거나 과학적으로 표준화된 교수법에 의해 제한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식정보사회의 도래와 그에 수반된 교육관의 변화는 공교육 내에서조차도 교사의 역할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한다.
이제 교사들은 주어진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교육 내용을 재구성하도록, 전달식 수업 대신 교과의 내용에 적합한 다양한 교수 방식을 창의적으로 구안하도록 요구받고 있다는 것이다. 즉,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수업을 운영하는 교사의 자율성과 재량 범위도 넓어진 것이 특징이라할 수 있겠다. 또한 저자는 몬테소리, 프뢰벨 등의 다양한 유아교육 프로그램이 아동의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활동 중심의 교육을 행하고 있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주로 책상에 앉아 문자화되고 개념화된 세상을 마주 대해야 하기에 그런 과정의 반복을 통해서 아이들의 호기심은 조기에 질식당한다고 안타까워 한다.
수업 측면에 있어서도 학교에서 배운 사회적 지식이 사회적 상황이 바뀐 다음에도 유효한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면서, 그런 면에서 사회적 쟁점을 놓고 토론하는 쟁점 수업이 문제 해결력이나 참여적 태도를 기르는 데 훨씬 좋은 수업이 아닐까 하는 의견을 내놓는다. 쟁점이야말로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고, 우리가 '사회'를 배운다고 할 때는 사회적 지식뿐 아니라 사회적 태도와 가치관, 문제 해결력도 중요한 학습 목표이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뒷편에는 2007년 1년 동안 미국 오하이오 주에 방문교수로 머물면서 저자가 관찰한 미국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의 수업을 비평한 글도 역시 인상적이다.
미국 교실은 우리보다 훨씬 개방되어 있고 학습자에게 선택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며 개개인에 대한 배려도 잘 이루어지는 편으로 여러가지 배울점이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초등학교 1학년 읽기 수업 중 하나를 보면 획일적으로 단일한 교과서나 책을 보는게 아니라 자기에게 적합한 책을 골라서 읽는 자율성이 돋보인다는 것이다. 교사는 책을 고르는 원칙이 몇 가지 적힌 차트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면서 설명을 시작하는데, 그 차트에는 "I choose the book, Why do I want to read? Does it interest me? Am I understanding? Do I know most of the words?"라고 적혀있다고 한다. 책을 고르는데 매우 적절한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읽기 수업의 경우 모두가 동일한 교과서로 진도를 나가는 우리 국어수업과 상당히 달라 자신의 흥미, 적성, 수준 등에 따라 다른 읽을거리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업은 어떤 책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며, 전체적으로 볼 때 학생 활동 위주의 수업은 미국 수업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한다.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압도적으로 학생 활동이 많았는데, 도입 부분에 교사가 5~10분 정도 그날의 학습 주제에 대해서 안내를 하고 난 후에는 대부분의 시간이 학생 활동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물론 이 책에서도 미국 현장에서도 제대로 따라 하기 어려운 이상주의적 이론을 우리 교육현장에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사실 메세지를 전달하며 "미국교육과 아메리칸 커피"라는 책을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을 얼마전에 입수해 다 읽어보았는데 기막히게 좋은 책이었다. 또한 언젠가 미국 교육을 다루는 책에서 "교육적 진보주의가 정치적 보수주의 성향을 띤 아이들을 길러낸다"는 진술을 읽은 적이 있다면서, 아이 중심의 자유로운 교육이 교실의 질서를 붕괴시키면서 권위와 질서를 갈망하는 세대를 길러내고 있다는 것이란 말은 듣기에 따라 의미심장한 언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 현장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수업 비평 활동을 통해 더 많은 교사들이 좋은 수업을 위해 고민하고 더욱 많은 노력을 해주었으면 할 따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