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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동과 서의 경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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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이란 단어는 저자의 고뇌에 찬 언어찾기의 결과이다. 어느 한쪽에 속해있지 못하고 양 발을 한쪽씩 걸쳐놓은 어정쩡한 상태, 그것이 곧 '경계인'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남과 북,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은 상태의 지식인으로서 그가 느끼는 괴로움을 그는 '경계인'이라 자신을 규정함으로 털어놓고 있다. 곧 경계인은 아픔의 자기규정인 것이다. 게다가 제1세계와 제3세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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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이란 단어는 저자의 고뇌에 찬 언어찾기의 결과이다. 어느 한쪽에 속해있지 못하고 양 발을 한쪽씩 걸쳐놓은 어정쩡한 상태, 그것이 곧 '경계인'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남과 북,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은 상태의 지식인으로서 그가 느끼는 괴로움을 그는 '경계인'이라 자신을 규정함으로 털어놓고 있다. 곧 경계인은 아픔의 자기규정인 것이다. 게다가 제1세계와 제3세계 사이의 서 있기까지 한 독일과 한반도를 함께 고민하는 그는 말 그대로 끝없는 '경계인'이다. 東과 西의 통일과 긴장의 과정에서 어느 하나를 앞세우는 것이 아닌 '같음으로써 다름을 찾아내고, 다름으로써 같음을 찾아내는 것'의 중요함을 찾아내는 저자는 윤이상과 이응로의 예술에서 그 발전과 통합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를 처음 만난건 95년, <역사는 끝났는가="">를 통해서였다. <역사의 종언="">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승리, 그리고 민족이념의 붕괴 속에서 당시 학생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후 <21세기와의 대화>, <민족은 사라지지="" 않는다=""> 등에서 줄기차게 민족의 의미를 그리고 남과 북의 현격한 차이로 인한 역설적 그 가능성을 주장해왔다. 전지구적 변화를 '세계화'로 해석하는 南과 '일체화'로 해석하는 北, 개방을 앞세우는 南과 주체를 강조하는 北. 바로 이러한 현격한 차이 속에서 과정으로써의 통일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변증법이 인류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한반도 주변 긴장의 고조 속에서 다시 성찰해볼 민족의 의미와 그렇기에 우리를 떠나지 않을 과제 통일의 문제를 그 특유의 접근으로 분석해주고 있다. 내재적 접근으로써의 이북읽기는 한결같이 주장해온 그의 방법론인 것이다. 다만 학술용어의 사용으로 인한 현학적 어려움은 매번 느끼는 아쉬움이 아닐까 한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한반도 역사 속에서 성장해서 깊게 뿌리를 내리는 나무는 '올리브 나무'가 아니라 '대나무'라고 생각한다. 대나무 한 그루가 죽으면 무성한 대나무밭이 결국 사라지는 것처럼 뿌리가 사방으로 연결된 대나무는 사회성원 간의 연대성의 상징일 수 있기 때문이다. // 개인들이 모두 '정보사회'의 회오리 속에 휩쓸리고 있는 오늘 모든 개인이 일 대 일로 대응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공동체 건설을 위한 공통적 술어는 역시 '상생(相生)'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h*****8 2003.02.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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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너머 상즉相卽과 상입相入의 세계가 한반도 땅에
"경계를 너머 상즉相卽과 상입相入의 세계가 한반도 땅에" 내용보기
''경계''境界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를까. 아마도 나와 타인, 동과 서, 그리고 더 나아가 JSA(공동경비구역)와 같은 ''나름대로의 금線''을 우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런 생각들은 어떤 면에서는 나를 우위에 놓거나 나를 긍정에만 두고서 생각하는 자가 당착일 수 있다. 공간이나 장소적 규정을 통해 아무리 안과 밖을 나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어떤 부분에서 볼 때 필요
"경계를 너머 상즉相卽과 상입相入의 세계가 한반도 땅에" 내용보기
''경계''境界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를까. 아마도 나와 타인, 동과 서, 그리고 더 나아가 JSA(공동경비구역)와 같은 ''나름대로의 금線''을 우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런 생각들은 어떤 면에서는 나를 우위에 놓거나 나를 긍정에만 두고서 생각하는 자가 당착일 수 있다. 공간이나 장소적 규정을 통해 아무리 안과 밖을 나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어떤 부분에서 볼 때 필요조건은 될망정 충분조건은 결코 되지 못한다. 한 개인이 공간이나 장소의 제한 속에서 구체적인 행위를 가질 때에만 그 경계가 가져다 주는 진정한 안과 밖의 구별이 비로소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들을 깊게 생각한다면 『경계인의 사색』(송두율, 한겨례신문사)이란 책을 펴낸바 있는, 현재 한국사회의 감옥囚人속에 갇혀 있는, 송두율 씨는 결코 경계인이라고 볼 수 없을 것 같다. 더군다나 그 ''경계인''이라는 단어가 본래 잉글랜드와 스토틀랜드 국경 지방에 출몰하는 마적馬賊을 의미했으나, 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원주민과 백인 이주민 사이를 넘나들며 두 세계를 소통시키던 사람을 지칭하기 위해 ''border rider''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 의미로 정착하게 되었다고 밝히지 않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스스로를 ''경계인''이라 명명하면서, 반세기 넘게 갈라져 사는 조국의 남과 북이라는 현실의 틀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경계인의 사색』, 이 책은 옳다고만 여겨왔던 나의 보수주의적인 생각들을 바로 잡아 비판적 정론을 곧추 세워주었던 참다운 경전에 견줄 만 했다. 그것은 우선, "북은 실리만 챙기고 언젠가는 돌아설 게 뻔하므로 일방적으로 양보만 해야 되는가?"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는 그런 물음에 대해 "진정한 통일의 환희를 맛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가 가진 것을 남과 나누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통독 10년을 보내는 현장에서 확인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또한 0과 1의 실리적 숫자에 민감한 사람들을 향해 "0과 1 사이에 무수한 가치와 답변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상기시켜주었는데 그 점도 저자만의 놀라운 갈파喝破라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한반도의 유로화를 꿈꾸고 있던 점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는데, 그것은 통일 주화 1원의 한 면에는 백두산을, 다른 한 면에는 한라산을 양각하자는 주장이었다. 물론 저자는 그 일에 대해 "상상해 본다"라고 잘라 말했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하는 게 문화적인 면에서 통일한국을 한 발 앞당기는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런 점들보다 더 적극적인 남한과 북한의 경계 허물기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국가 연합''의 차이를 해소하려는 데서 엿볼 수 있었다. 저자는 그 관계에 대해 룸메이트와 연합주택에 사는 두 사람의 생활 방식에 비유해 주고 있었는데, "번지가 같은 주택에서 방만 따로 사용하는 룸메이트는 잘하면 아기자기하게 살수도 있지만, 함께 사는 데서 오는 갈등의 소지도 많다"고 하면서, 우선은 남과 북이 연합주택의 삶을 가꾸어 가는 게 급선무임을 시사해 주고 있었다. 물론 그러한 현상학적 분석과 비유에 대해 저자는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의 이론에서 끌어 온 것이라고 밝히면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공간에 대해 레비나스는 "단순하게 바로 이곳을 의미하기보다는''타자에 열린 친절함의 장소''로서 그 어떤 곳이라고 주장했다"라고 적극적인 설명까지 덧붙여 주고 있었다. 또한 "동은 동, 서는 서, 그들은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키플리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면서, 그 주장은 식민주의자의 눈으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보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이야기였다고 단정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그렇게 분단시대의 아픔을 몸소 끌어안은 비판적 지성인 송두율 씨는 마지막 장에서 그런 글로 끝을 맺고 있다. 그것은 남한 내의 동과 서, 한반도의 남한과 북한, 그리고 더 나아가 자연과 인간의 경계까지도 허물 수 있는 참다운 식견으로서, "동과 서 그리고 남과 북-제 3세계와 1세계라는 뜻으로-이 만나면 결국 둘 다 변하게 마련이다. 이 때의 문화가 동서 또는 남북이라는 이원론을 완전히 전도시키지 못해도 적어도 그와 같은 단순한 분류의 이념적 근거를 재평가하는 제 3의 장소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는 동양적이면서도 서양적인 동시에 동양적이지도 서양적이지도 않은 새로운 심미적 체험이 들어 있다. 동양은 서양이 아니고 서양은 또 동양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즉相卽의 세계이며, 이 때문에 동양은 서양 속으로 들어가고 서양은 또 동양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입相入의 세계가 성립한다. 그렇기에 둘로 자르는 경계선이 아니라, 이 경계선으로 인해 파괴된 제 3을 계속 찾고 이를 확충해 나가는 작업은 남북으로, 영호남으로 갈린 한반도, 나아가 문명충돌로, 자연과 인간의 갈등으로 부대끼는 지구촌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희망의 철학이 아닐까 생각해본다."하는 논지였다. 하여, 나는 영호남의 경계를 넘어 남한과 북한, 뿐만 아니라 제 3세계와 제 1세계를 넘는 자연과 인간의 갈등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진정한 상즉相卽과 상입相入의 세계가 이 한반도 땅에 우선 펼쳐지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s*****e 2003.12.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