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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몇권의 책들이 생각난다. 먼저 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작품이다. 70세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 벤자민 버튼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젊어지는 운명을 타고났다. 요즘 안티 에이징(anti-aging) 열풍에 빠져있는 현대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엄청 부러운 설정임에 틀림없다. 주인공이 신사로 행동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타락한 삶을 사는 부분은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연상시킨다. 마지막으로 젊음을 위해 영혼을 파는 부문은 괴테의 <파우스트>를 닮았다.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도 또 다른 형식의 안티에이징 설정을 활용하고 있다. 더없이 아름다운 자신의 초상화에 매료된 도리언 그레이는 초상화에 담긴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자신의 영혼과 맞바꾼다. 도리언 그레이는 상류사회에서 점잖은 신사행세를 하면서도 밖에서는 은밀하게 자신의 욕망에 탐닉하는 타락한 이중적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의 타락과 몰락의 자취는 오직 그의 초상화에만 나타나는 반면, 자신은 한결같이 순수한 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도리언의 초상화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매개체이다. 실제의 도리언과 너무나도 닮은 초상화는 도리언의 행동을 반영하는 거울의 역할을 수행한다. 자신의 도덕적 삶을 반영해 초상화의 모습이 변한다는 설정을 통해 예술과 인생, 윤리와 미학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도리언 그레이가 초라한 삼류극장에서 연기를 하는 아름다운 여배우와 사랑에 빠진 장면에서도 이런 측면이 나타난다. 처음에 그는 시빌이라는 여성보다 그녀의 연기에 반한다. 시빌이 여주인공의 역할을 맡으며 예술의 영역에 머무는 동안 그녀는 연기를 통해 도리언을 매혹시키지만, 현실적 삶에서 도리언에 열정을 느끼고 예술을 등한히 하는 순간 도리언에게서 버림받는다. 이날 밤 시빌은 자살을 하고, 도리언은 자신의 초상화에 생긴 최초의 변화를 발견하게 된다. 예술과 현실, 윤리와 미학간의 갈등문제가 도리언의 외적 아름다움과 초상화의 모습을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도리언은 초상화의 덕분으로 외적 아름다움을 유지해 나가지만 결국 자신의 영혼을 늙고 추하게 만들고 초상화가 변하는 모습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확인해 나간다. 사랑했던 연인 시빌은 물론 자신에게 충고하러 온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준 친구 바질마져도 자신의 욕망에 어긋난다 하여 죽여 버린다. 도리언은 아름다움과 범죄, 상류사회의 고상함과 욕망탐닉이라는 상반된 특성을 한몸에 지니고 있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이기도 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설정하고 있는 상황이 우리의 선입견과는 달리 유쾌하지 못한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예술지상주의나 외모지상주의가 오늘날까지 우리의 로망이 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아름다운 초상화의 모습도 우리가 영혼을 타락시키는 그런 행동을 하는 한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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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의 방식은 진리에 이르는 방식이죠. 현실을 시험해 보려면 그것을 팽팽한 밧줄 위에 올려놓고 보아야 해요. 진실이 곡예를 할 때에야 우린 그것을 판단할 수 있답니다.(98쪽)
내 시든 영혼의 거울은 오류의 미끄럼틀이다. 순식간에 쏟아져내려오는 쾌락의 비밀. 찰나의 환각이 쉽게 잊혀질 운명의 진실임을 인정한 채 다음 쾌락을 향해 질주하는 뇌. 바로 며칠 전에 올렸던 리뷰, 고통과 쾌락을 동일시한다는 뇌의 시스템에 대한 인식(<생각 버리기 연습>, 코이케 류노스케)의 판례인 듯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순전히 자.의.적.으.로 음험陰險한 꾐에 넘어간 캐릭터의 유형을 통해 예술과 사랑, 결혼 그리고 남자와 여자, 상류층과 하류층, 도덕과 사회규범에 대한 긍정과 부정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역설의 진실을 보여준다. 이름 하여 환절기를 닮은 간극의 역설은 변덕의 미학이요, 양면의 거짓된 축복. 오늘 나는 거울 앞에 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肖像으로 화장火葬되었다...
# 인연의 불행한 조짐, 미적 쾌락의 언어를 담은 예술, 그리고 세 사람 #
육체적으로나 지적으로 남들과 구별되는 모든 존재는 불운을 겪게 되지- 사람은 자신의 무리들과 다르지 않은 게 더 낫다네. 이 세상에서 미천한 자들과 어리석은 자들이 그런 면에서 가장 유능하지. 그들은 편안히 앉아 하품을 하며 연극을 지켜보니까.(46쪽)
예술가는 아름다운 것을 창조해야 하지. 그러나 자신의 삶 자체를 내놓아서는 안 돼.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사람들은 예술을 마치 자서전의 한 형태인 듯 취급하거든. 우린 아름다움의 추상적인 감각을 잃었어. 언젠가 난 세상에 그것이 어떤 건지 보여줄 거야.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를 세상에 내놓을 수 없는 거라네.(58쪽)
지나치게 춥거나 덥거나 하는 두 가지 열정만으로 시간을 꼴딱 먹어치우는 예술가들을 나는 사랑한다. 물론 아름다운 내적 갈팡질팡을 흠모한다는 말로도 갈음되는 이 사랑이 가끔 헷갈릴 때도 있다. 도대체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시각적 투시에서 오는 쾌락일 수도 있는 편협적 환상 혹은 시대적 미적 기준에 부응한 개성 없고 너무나도 보편적인 중독 그도 아니면 상당히 유별난 가치관으로 굳어진 이단異端 철학의 한 유형... 낭만적인 예술은 절정과 함께 시작하거든.(322쪽) 예술이 잔인한 건 바로 그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의 내려지지 않는 미친 존재감 위에 세워진 어떤 결과물을 응시하는 동안 막연한 고통과 쾌락의 이중성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점. 내게도 불안하게 들끓어대는 욕망에 이끌려 새된 흑연날림으로 완성된 초상화 몇 점이 있다. 언제였던가. 내가 나를 그렸던 날. 날 보던 나의 눈동자보다 먼저 박동했던 가슴의 동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오, 고마운 망각이여!
바질의 화실을 방문한 헨리의 시선에 들어온 도리언 그레이. 도리언은 길고양이의 음산한 포효와도 같은 헨리의 비틀린 입담에 거침없이 빠져든다. 그는 속세에 어울리지 않는 신을 닮은 치명적 외모의 소유자로 한없이 선량해 보이는 작은 왕자 혹은 나르키소스 같은 연약함과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강인함을 지녔다. 마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그르누이가 제조한 향수에 취한 군중들처럼 도리언을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순식간에 그가 내뿜는 사향死香의 노예가 돼버린다. 그의 초상화를 그린 바질은 그를 처음 본 순간을 이렇게 회상한다. ‘난 운명이 나를 위해 최상의 기쁨과 최상의 슬픔을 예비해 놓은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네.’(51쪽) 도리언을 사이에 두고 헨리에게 묘한 질투심을 느끼던 바질은 도리언이 헨리의 어둡게 꼬인 면면에 물들까봐 두렵다. (바질의 노파심과 예감은 적중한다) 한때 바질의 도리언 예찬론을 조롱했던 헨리. 그는 모든 종류의 사람과 감정, 심지어는 시대의 온갖 저속함까지 꿰뚫어본다는 교만과 착각 (무지몽매한 타인들이 얹어준 휘장이기도 한) 속에 사는 사람이며 자신을 비롯해 타인의 지적허영과 사치를 불쾌하지 않은 역설로써 지적할 줄 아는 사람이다. 더불어 건방지나 세련되게 좌중을 사로잡는 현란한 위트는 그를 더욱 비범한 반항아로 보이도록 만들면서 죄악의 음성을 타고 내려온 진실의 전령이라고 믿게 되고 마는, 어떤 마성魔性과도 같은 것이었다. 바질이 순수한 열정을 간직한 예술가였다면 헨리는 장난기 넘치는 도발적 풍자가였으며 도리언은 그들 사이에 존재한 세상에 단 한 명뿐인 가장 아름답고 매혹적인 오르페우스였다. 어쨌든 우리는 머지않아 바질이 헨리보다 (시빌 베인, 앨런 캠벨과 더불어 비극적 운명의 순교자라는 면에서) 한 수 위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둘 모두 도리언이라는 환상에 지극하게 함몰되었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한쪽은 죽임을 당하고 다른 한쪽은 끝까지 역설의 대변인으로 남았다는 엄청난 차이의 예정된 결말쯤에서 우리는 다시금 씁쓸해질 준비를 해둬야 한다.
# ♂♀의 사랑과 결혼... 경험의 희생양으로 일단은 죄악을 바칩니다. #
결혼의 진정한 약점은 사람을 이타적으로 만드는 거라네. 이타적인 사람은 색깔이 없지. 개별성을 잃어버리니까. 한편 결혼 때문에 더 복잡해지는 어떤 기질들도 있다네. 자신의 이기심을 간직하면서 타인의 자아까지 덧붙이거든. 그런 이들은 어쩔 수 없이 하나 이상의 삶을 살게 되지.(148쪽)
당신은 진정한 현실이 어떤 것인지 내게 가르쳐주었어요. 오늘 밤 난 난생 처음으로 내가 항상 연기해 온 공허한 연극이 알맹이가 없고 엉터리인 데다, 어리석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내가 말하는 대사는 비현실적이고 내 말이 아닌 데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말도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어요. 당신은 내게 더 높은 어떤 것을 갖다 주었어요. 모든 예술은 단지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은 내게 사랑이 진정 어떤 것인지 이해하게 해주었어요.(166쪽)
당신은 내 사랑을 죽였어요. 당신은 내 상상력을 자극했었지. 이제 당신은 내 호기심조차 자극하지 않아- 난 당신을 사랑했지. 당신이 놀라운 존재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천재성과 지성이 있었기 때문에, 당신이 위대한 시인의 꿈을 실현시키고 예술의 그림자에 형태와 내용을 줄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랑했다고. 그 모든 걸 당신은 내팽개치고 말았어. 당신은 천박하고 어리석어- 당신은 이제 내게 아무것도 아니오. 난 당신을 두 번 다시 보지 않겠어- 당신은 내 삶의 낭만을 망쳐버렸어. 어떻게 사랑에 대해 그렇게 모를 수가 있어. 사랑 때문에 자신의 예술을 망쳤다고 제 입으로 말하다니. 당신에게 예술이 없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제 당신은 뭐지? 예쁘장한 얼굴의 삼류 배우일 뿐이야.(167, 168쪽)
사랑마저도 자신이 만든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환상의 저주에 놀아나는 꼴이 아닌가. 얼마만큼 지치도록 놀아나야 그 저주의 막이 내릴까. 사고의 구조나 논리에 있어서 남녀의 차이는 엄청나다. 분석적 논리에 밝은 좌뇌가 발달한 남성에 비해 여자는 비논리적이고 감성적, 이미지 논리에 뛰어난 우뇌 형 인간이다. 이러한 성별 특성은 대부분의 남녀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해결을 어렵게 만들곤 한다. 당연히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염색체적 괴리감으로 인해 연애나 사랑도 쉬울 리 없다. 덧붙여, 흔히 우스갯소리로 남자를 단세포, 여자를 다세포동물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는 여자가 남자에 비해 좀 더 다차원적이고 복잡한 영장류임을 방증한다. 다음의 주 등장인물의 여성관 내지 사랑관을 들여다보면 흥미롭기 그지없다. 여성 중에는 천재가 없네. 여성은 장식적인 존재라네. 그들은 결코 중요하게 할 말이 없으면서 그래도 매력적으로 말을 하지.(109쪽) 짐작하다시피 헨리의 말이다. 다음엔 예술가와 사랑에 빠진 도리언 왈, 평범한 여성은 사람의 상상을 절대 끌어내지 못하죠. 자신의 시대에만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 해리 세상에 사랑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대상이 여배우뿐이라는 사실을 어째서 진작 말해주지 않은 거예요?(115쪽) 이어지는 헨리의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경구에 집중해보자. 여자는 남자에게 걸작을 만들어내도록 욕망을 불어넣어 주고는 항상 그 작업을 방해한다(156쪽), 일생에 단 한 번만 사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천박한 사람들이다(112쪽), 사랑은 예술보다 훨씬 훌륭하다(163쪽), 진실로 매력적인 사람은 딱 두 부류가 있거든. 절대적으로 모든 것을 아는 사람들, 그리고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164쪽)... 무엇이 진리일까. 내가 생각하는 한, 사랑을 비롯해 삶에 나타나는 모든 형태에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허울 좋은 이론과 수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만 존재할 뿐. 하물며 여성이 장식적인 존재라 한들 또 남성이 정신지상주의자라 한들 어떠하리. 물론 예외는 있다. 자유로운 발성의 방출은 때때로, 본의 아니게 타인을 공격한다는 점. 마치 그것이 진실인 양 수시로 착각하면서, 그나마 약간의 양심이 있다면 성찰의 기회로 삼기도 하지만 보통은 누군가에게 죄인이 된 리얼리티를 자각하지도 못한 채 곧바로 어리석은 자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수려한 도덕주의자라거나 유능한 연애박사라는 것은 아니다. 타인을 심판할 권리도 나에겐 없다. 다만 나는 여성의 탈을 뒤집어쓰고 망상의 줄다리기에 지친 한 영혼으로서, 사랑이야말로 모든 역사에 있어 가장 인간적이고 진지한 시행착오가 아닐까라는 데 생각을 모아볼 뿐이다.
헨리 경과 함께 귀부인들의 대저택에서 사교모임과 클럽 등을 전전하며 자신의 추종자들과 달콤한 쾌락을 즐기던 어느 날, 도리언은 호객꾼 손에 이끌려 극장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줄리엣을 비롯한 셰익스피어 작품의 모든 인물을 훌륭히 소화해내는 미모의 소녀, 시빌 베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당시의 엄격한 신분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열정적이고 뛰어난 연기를 숭배했던 도리언은 비밀리에 둘만의 약혼을 마친 후, 시빌을 소개해주기 위해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이 있는 날 바질과 헨리를 극장으로 초대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날따라 그녀의 연기는 최악이었고 관람객들은 야유를 퍼붓다 못해 아예 극장을 나가버린다.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충격에 빠진 도리언은 울며 매달리는 그녀를 매정하게 뿌리치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온갖 상처를 남기고 절교선언과 함께 극장을 뛰쳐나온다. 그날 밤, 하루아침에 가장 사랑했던 사람으로부터 가장 처참하게 짓밟힌 시빌 베인은 음독자살을 하는데... 한편 집으로 돌아온 도리언은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깃든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소름이 끼치는 공포를 느끼며 거울에 비친 자신을 들여다보지만 거울 속 자신은 여전히 젊고 아름답다. 초상화 속의 인물은 거의 한 달이나 나보다 젊어 보여서 약간 질투가 났어요.(122쪽)그때 문득 자신은 영원히 젊음을 간직하고 초상화가 대신 늙으면 좋겠다는 터무니없는 소원, 바로 그림이 완성되던 날 바질의 화실에서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우리는 열정에 대해 그 근원을 스스로 기만함으로써 자신을 폭압적으로 억눌렀다(126쪽)#
영혼은 죄악의 집 안에 머무는 환영에 불과할까?(125쪽)
경험이란 도덕적인 가치와 무관한 것이다. 그것은 단지 사람들이 자신의 실수를 일컬으며 붙인 이름이었다 - 그러나 경험에는 원동력이란 것이 없다. 경험이란 양심과 마찬가지로 행동의 적극적인 동기가 될 수 없다. 경험이 보여주는 모든 것이란 실상 우리의 미래가 우리의 과거와 같을 것이라는 점, 우리가 한때 저지른 죄악을 우리가 혐오하지만, 다시 기꺼이 반복하리라는 점이었다.(125, 126쪽)
쾌락은 내가 아니라 자연에 속한 것이라네. 그것은 자연의 시험이자 허락에 대한 표시일세. 우린 행복할 때는 늘 선하지만, 선하다고 해서 항상 행복한 건 아니라네 - 선하다는 건 자신의 자아와 조화를 이루는 거지(153, 154쪽)
음울한 촉수의 경험을 더듬는 고행의 역주행을 반복하는 우리. 깜박깜박 졸아대는 양심마저 거치적거린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쾌락의 문은 가까워지고 고통은 그 문틈으로 우리를 반긴다. 누구도 강요한 적이 없는, 오롯이 자신의 섣부른 선택에 의해서. 끝이 보이지 않는 갈등, 끝을 가리는 악습에 버티고 버티다 급기야는 KO패 당하는 우리는 결국 비극적 숙명의 자식들인 것이다. 타락한 죄악의 가시적인 상징인 초상화의 변화에 쾌감을 느끼는 도리언. 그의 모든 불행을 야기한 치명적인 초상화를 그린 친구는 목숨이 끊어졌다. 그것으로 충분했다.(267쪽) 헨리의 얼토당토않은 위로에 힘입은 도리언은 연인의 자살에 대한 어떤 자책이나 책임감도 느끼지 못한 채 타락한 자신을 교화시키려는 바질의 일장연설을 참지 못하고 그까지 살해하고 만다. 그러곤 생화학자인 오래된 친구 앨런 캠벨을 협박해 바질의 시체를 감쪽같이 처분하고 자기 인생의 관객이 됨으로써 비로소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저급한 하류인생을 사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이제 그는 자신의 이 같은 이중적인 삶에 대해 끔찍한 쾌감을 강하게 느끼기까지 했다.(288쪽) 한편, 누나 시빌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려던 제임스는 아편소굴에 갔다가 ‘매력적인 왕자님’이란 호칭을 단서로 도리언을 살해하려다 1차 실패, 사냥터에 숨어 재차 살해를 시도하려다 귀족의 총에 맞아 황망한 죽임을 당한다. 죽는 것보다 죽음에 쫓기는 것이 훨씬 두려웠던 도리언에게 제임스의 죽음은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 All Dead! Except for Life and Art. #
- 앨런 캠벨의 자살 사건이 있었지. 지금은 한 화가의 수수께끼 같은 실종 사건에 정신이 팔렸지만.(339쪽)
인간은 최악의 습관조차도 그것을 잃으면 서운해한다네.(340쪽)
노년의 비극이란 사람이 늙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젊어서 생기는 것이라네 - 인생은 의지나 의도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네. 인생은, 신경과 섬유조직, 느리게 형성되는 세포의 문제라네. 그 속에서 상념이 숨기도 하고, 열정이 꿈을 꾸기도 한다네 - 방에서 혹은 아침하늘에서 우연히 본 색조라든지, 자네가 한때 사랑했으며 미묘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특정한 향기라든지, 우연히 다시 마주친 잊었던 시의 한 구절이라든지, 자네가 연주를 하지 않게 된 음악의 한 소절이라든지 - 바로 그러한 것들에 우리의 삶이 달려있다네.
자신 이외의 무엇 하나 만들어내지 않아서 무척 기쁘다네! 인생이 바로 자네의 예술이었지. 자네는 스스로 음악이 되었던 거야. 자네가 살아온 날들이 곧 소네트였다네.(347쪽)
인생이 갑자기 그가 짊어지기에 너무나 소름끼치는 짐이 되어버렸다.(332쪽) 시빌 베인, 시빌 제임스, 바질 홀워드, 앨런 캠벨이 죽고, 도리언 마저 죽는다. 죽어 마땅한 40대 미소년 범죄자의 괴성이 귀를 찢는다. 한밤의 달은 그의 최후를 삼키느라 가로등보다 더 장렬한 빛을 내뿜고, 헨리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 그리고 당신과 나는 이렇게 살아남았다. 그렇다. 우리를 전부 이기주의자로 만든 양심, 영원한 것에 대한 공포, 그것이 바로 삶의 대가다. 공포와 양심도 결국 감각의 일종. 우리는 안개 낀 치열한 감각의 숲을 헤매다 목적지를 잃고 찾는 기나긴 여정을 여전히 진행시키는 중이다. 온갖 욕망과 선악의 출몰이란 짐을 진 채 사랑과 예술의 이륜마차에 실린 우리의 슬픈 자화상. 여러 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으며 베개를 적신 참회의 이슬을 말리느라 아주 혼이 났다. 무념무상하기로 한 계획을 작심삼일로 끝나버리게 만든 소설. 거미줄 친 나의 초상화를 찾아내도록 만든 소설. 내 나이에 걸맞지 않는 외모를 비추는 거울의 적나라함에 실소를 머금게 한 소설. 그러므로 나는 화장化粧하고 화장火葬되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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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책에 대한 단상을 끄적인다. 문학고전은 제목만 들어도 다 아는 책들이고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책에 소재로 삼기 때문에 대충의 줄거리는 잘 알려져있다. 이 책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만 해도 대충의 줄거리를 알고 있었던 책이다. 물론 말 그대로 대충이지만. 이 책을 구입한 지는 꽤 됐다. 책장에 꽂힌 채 제목만 훑기를 여러 번. 이미 내용을 아는 책은 무의식 중에 읽었던 책으로 분류가 됐었나 보다. 눈이 여러 권의 책 중 이 책을 스캔하고 지나가도 시선을 고정시킬 정도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단지 언젠가는 한 번 읽어야 할 책이었기에 구입해 둔 것이었을 뿐. 이런 이유로 고전문학 소설들이 생각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아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제대로 모르고 하는 생각이지만.
그런데 어느 순간 막연히 알고 있던 고전소설들의 이야기가 섬광처럼 스치듯 떠오르는 때가 있다. 문득 내가 접하고 있는 일상과 책 내용이 묘하게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혹은 어떤 현상에 대한 판단을 책에서 읽은 내용으로 하게 되는 경우다. 내가 겪는 일상과 소설 속 인물의 행위를 비교해보고 공통점을 찾아보는 것. 이 책을 읽게 된 경위가 그랬다. 막연히 알고 있던 책 속 스토리가 떠올라 확인하고 싶은 충동에 책을 집어 본 것이다. 그리고 그 장면부터 찾는다. 그러면 처음 접하는 책에서 익숙했던 장면을 찾아 떠나는 독서 탐험이 된다. 다행히 이 책의 초반부에서 내가 기대했던 스토리를 만났다. 다름 아닌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 시빌 베인과 도리언 그레이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다. 도리언 그레이는 왜 시빌 베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으며 나중에 매몰차게 그녀를 버리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부분이었다.
그의 본성은 꽃처럼 피어났으며, 주홍빛 불길로 만개했다. 그 비밀스런 은신처에서 영혼이 서서히 기어 나오고, 그러한 도중에 욕망과 마주친 것이었다._(P.120)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책을 읽으며 오히려 도리언 그레이의 이미지가 낯설어졌다. 그간 다른 책을 통해 알고 있던 그에 대한 이미지와 달랐기 때문이다. 물론 표현의 문제도 있겠지만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내 마음 속에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그것은 바뀔 수 있는 문제다. 막연히 가지고 있던 도리언에 대한 이미지가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그려질 때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책을 읽기 전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책을 읽는 도중에 고뇌하는 한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사람은 누구나 맑고 깨끗한 영혼을 지니고 태어난다. 백지와 같이 하얀 영혼이 물들어가는 것은 세상을 살면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이 다양한 양태를 가지고 살게 되는 건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세상을 읽고 변화해 가기 때문일 것이다. 도리언 그레이도 그렇다. 우연한 기회에 자기의 욕망을 발견하게 되면서 그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추구한다. 그때부터 내가 알던 도리언 그레이로 변신을 시작한 것이다.
평범한 여성은 사람의 상상을 절대 끌어내지 못하죠. 자신의 시대에만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 배우는 달라요! 여배우는 달라도 확실히 다르지요! 해리! 세상에 사랑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대상이 여배우뿐이라는 사실을 어째서 진작 말해주지 않은 거예요?_(P.115)
"오늘 밤에 그녀는 이모겐이 되죠. 그리고 내일은 줄리엣이 될 거예요." "그럼 그녀가 시빌 베인일 때는 언젠가?" "그런 때는 없어요." _(P.120)
혹시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다면 그 사람의 어떤 모습을 상상하며 사랑에 빠진 건지 생각해볼 일이다. 사람은 상대방에 대해 자기가 가진 기준을 가지고 재단해버린다.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자기 방식으로 완성해낸다. 내가 도리언 그레이에 대해 부족한 정보를 가지고 가진 이미지가 책을 읽을 때 바뀐 이유도 그렇다. 내가 가진 정보에 나만의 해석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유가 되면 이 소설처럼 비극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걸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도리언 그레이는 이모겐과 줄리엣을 연기하는 시빌 베인을 사랑했다. 그의 상상력을 자극해주는 여배우를 사랑한 것이다. 그래서 시빌 베인이 도리언 그레이와의 관계에서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배우를 그만두겠다고 하자 그의 사랑은 휘발유처럼 순식간에 증발해 버린 것이다. 사랑의 시작이 사람이 아닌 어떤 조건 때문이라면 그 조건에 따라 사랑은 왔다가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첫 눈에 반하기도 하고 호감이 생기기도 한다고 한다. 그럴 땐 그 사람을 처음 봤을 때 자신을 자극한 상대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만 한다. 단순히 머리 모양이라던지, 옷차림이라던지 처음 만날 당시의 이미지가 좋았다는 단순한 이유라면, 그 잔상이 머리 속에서 사라지기 시작하거나 그 사람을 다른 상황에서 만날 때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나 감정은 돌변할 수 있다. 고귀한 사랑이 일회성 감정이 돼버리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시각적인 자극에 더욱 민감해지면서 그런 감각적인 사랑이나 감정에 빠질 확률은 더욱 높다. 그래서 외모와 같은 단순한 조건 때문에 상대에 대한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을 무척 경계해야한다. 그리고 상대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면서 갖게 되는 상대의 이미지도 경계해야한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일 경우에 그렇다. 부족한 정보를 가지고 상대를 판단하면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이 책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시빌 베인의 이야기를 찾다가 읽게 된 책이지만 기대이상으로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책이다. 도리언의 절친 헨리 경과의 대화는 인간의 삶에 대한 생각을 자극해주기도 했다. 마치 자기계발서를 읽듯 줄을 그어댄 부분도 이사람의 말들이 대부분이었던 듯 하다. 이런 재미를 발견해 낸 건 행운이다. 명불허전의 고전들을 읽는 과정이 약간의 지루함을 이겨내는 인내력을 요하는 문제 때문에 쉽게 손을 뻗지 못하지만 어쨌든 판단은 읽고나서 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게 선입견일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단순히 책에 대한 선입견으로 책을 선택해선 안되겠단 생각도 더불어 하게 된다. 책을 선택할 때도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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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를 통일했던 진시황도 불로초를 구하려고 몸부림쳤지만 늙고 병들고 죽는 인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마도 젊음을 유지할 수 만 있다면 재물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의 생명까지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청춘을 돌려받을 수 있다면 나는 얼마를 지불할 수 있을까? 과연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기는 한걸까? 젊음과 아름다움이 좋기는 하지만 그 시절의 치기어린 미숙함이나 그 나름의 방황과 고민을 생각한다면 섣불리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도리언 그레이는 아름다움과 젊음, 귀족적 지위와 막대한 재산 등 모든 이가 부러워할 만한 것을 다 갖춘 청년이다. 약간은 거만한 듯하면서도 인생에 대한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그는 모든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마력을 발산한다. 화가 바질 홀워드는 그를 보자마자 자신의 예술적 이데아를 발견한 듯이 빠져든다. 예술혼을 쏟아부어 그의 초상화를 완성하여 선물하며 그가 외모만큼이나 이상적인 인생을 가꾸어가길 소망한다. 그러나 바질의 친구 헨리 워튼은 치명적 매력을 가진 청년 도리언을 도덕을 초월하는 쾌락의 길로 이끈다. 바질은 헨리로 부터 도리언을 지키고자 하지만 젊음의 광기는 바질보다는 헨리에게 끌린다. 탐미적인 사치와 육체적 쾌락에 중독되어 가는 도리언은 헨리가 그에게 그랬듯이 자신을 숭배하는 순결한 젊은이들의 영혼을 파괴한다. 어느날 초상화속의 그의 얼굴이 점점 비열하고 사악해지는 것을 보자 자신은 영원한 아름다움과 젊음에 머물고 초상화가 대신 늙어가기를 바라는 소원을 빌었던 것을 떠올린다. 젊음을 위해서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버린 파우스트나 자신안의 선과 악을 분리하려 했던 지킬박사도 죽음의 순간에는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도리언 그레이의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소설의 제목에 당당히 주인공의 이름을 넣은 데서 자신이 창조한 도리언 그레이라는 인물에 대한 작가의 자신감이 드러난다. "궤변의 왕자" 헨리 워튼이 말하는 여성들에 대한 경멸이나 혐오, 남성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는 작가의 성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 같다. 초상화가 아름답게 남는 것이 좋은가, 인생이 아름다운 것이 좋은가. 인생이야말로 자신의 최고의 예술작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섬뜩하도록 아름다운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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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서문이 아닌, 평론가나 편집자의 서문이 앞에 나오는 책(서문이니 당연히 앞에 나오겠지만), 불쾌하다. 그것도 그 서문의 내용이란게 거의 평론에 가깝고, 소설 속 줄거리까지 장황하게 담고 있으며, 그 분량이 도를 넘었을 때,(동일 출판사의 데이지 밀러는 서문 분량이 책의 3분의 1이다) 느끼는 '재수 없음'은 극에 달한다. 저명한 누가 오스카 와일드와 그의 소설을 어떻게 해석했나 따위의 평론집을 산 게 아니고, 그저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샀을 뿐이다. 서문을 누가 썼나 따위로 책을 사지는 않는다. 판단과 공감은 오로지 독자의 권리이다. 감동하든 욕을 하며 책을 덮든 미처 소설을 이해하고 작가를 알아가기도 전에 이미 평론가나 편집자에 의해 난도질당한 작가와 그의 작품을 맞닥뜨리고 싶지 않음이다. 독서의 길잡이가 되고자 하는 대단한 우려와 배려심은 감사하나, 마치 작가에 대한 심리분석, 배경, 소설의 줄거리까지 장황한 설명이 없으면 이해하지 못할 것인양 독자의 수준을 얕보는 발상까지는 그렇다 쳐도, 책읽기를 통해 독자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감동이나 이해가 있기도 전에 편집자나 제삼자의 의도나 해석이 정답인양 은근슬쩍 들이밀어진 상황이 불쾌한 것이다.
도리언 그레이의 구체적인 악행은 무엇인가. 자신의 초상화를 그린 바질 홀워드를 죽이고 엘렌 캠벨을 협박해 시체를 유기한 죄 이전에는 뚜렷이 부각되는 악행이 없다.(물론 살인 한 가지로도 충분하지만) 자살한 청년이니, 누군가를 타락시키고, 누구 아내가 죽어가며 남긴 편지 등, 모두 바질의 입을 통해 언급될 뿐이기에 암호 마냥 애매모호하다. 그렇기에 악의 화신으로서의, 타락한 인간의 전형으로서의 도리언보다 예술과 아름다움에 탐닉하며 열정과 냉소를 오가는 젊은이로서 더 두드러져 보였다. 누군가에 의해 쉬 오염되거나 더럽혀질 '순수'라면 그건 진정한 의미의 순수가 아닌 '무지'와 '무의지'의 상태에 불과하다. 헨리경이 아니었으면 바질의 도리언으로 남아 영원히 순수했을까. 이 소설에서 헨리의 역할과 의미는 무얼까. 도리언이 반하게 되고 도리언을 악행으로 이끄는 힘과 지배력을 가진 인물, 도리언 스스로는 양심에 의해 파국을 맞지만 헨리는 자신이 도리언과 바질에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리라. 이토록 절대 악과 무심의 경지에 있는 이는 도리언이 아니라 헨리이지 않을까. 오스카는 도리언었고, 그는 헨리를 비난하면서도 부러워했던 게 아닐까. 작가가 숨기려 했는지 혹, 누군가는 알아 봐 주기를 은근히 바랬는지. 동성애 코드가 곳곳에 숨어 있고, 작가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도 이를 감지할 수 있었다. 도리언 그레이를 흠모하는 바질이 그를 독점하고 싶어 헨리에게 소개하길 꺼리는 것, 애거사 고모의 저녁 식탁에서 헨리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도리언, 타락과 쾌락의 온상인양 그려지지만 정작 여성과의 성애나 애정관계에 대한 묘사가 전무한 것도 그 예가 되겠다. 헨리와 도리언의 대화에서 여성은 간혹 간교하고 무지한 어떤 존재로 폄하되어 그려지기도 하지만 그것마저도 거의 무심한 수준에 그친다. 물론 도리언이 시빌 베인을 사랑하는 시기가 있지만 그 사랑은 여성인 시빌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예술가, 극의 여주공으로서 시빌을 사랑했음이다. 책 전반에 흐르는 여성에 대한 무시와 무관심, 남성간의 우정을 넘어선 매혹과 지배, 작가가 드러나기에 충분했다. 보다 철저히 대중을 속이지 못한, 적당히 숨길 기교나 잔꾀가 부족했던, 열정과 양심을 오가며 숱하게 번민했을, 본인의 작품이 화살이 되어 처참히 부서진, 비운의 천재, 오스카 와일드, 숨김과 가식이 지나친 오늘날의 작가들이여, 추방된 그들 되새겨 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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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이야기로 생각했다가 가볍게 읽을 작품이 아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소설, 그를 외설죄로 기소한 이들이 증거로 제시한 작품. 1998년 100년이 더 지나서야 복권 되었음. 와일드가 얼마나 지성인인지 알겠음.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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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아도 만족할만한 인생-이란 게 있기는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그런 인생 따위는 없다-는 차가운 대답을 하고만다. 아니, 오스카 와일드
라면 무슨 말을 했을까.
요즘은 결핍 상태,
모든 걸 손에서 놓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건 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대신 손에서 놓고 싶은 게 있는데
사람들,
딱히 내 품안에 있지 않아도 괜찮을 사람들이라면
굳이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살아야만 하는 걸까,
거리를 걷는 동안 잠깐 해봤다.
오랜만에 딸아이를 엄마에게 맡기고 외출,
버스를 탔다.
한때 매일 다니던 길을 환한 대낮 구경하면서
예전에 있었던 일은 거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예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어디를 가고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
그런 대략적인 기억의 틀은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어떤 관계로든지간에 한때 나를 가슴 떨리게 만들던 그들,
지금은 어디에서 어떤 친구들을 만나며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어떤 그림 같은 표정을 지을까 궁금했다.
독서모임을 하러 가는 길,
하도 오랜만에 바깥출입을 홀몸으로 하는 거라서
끊임없는 낯선 이들의 낯선 얼굴들과
그들이 주고받는 무의미한 시선의 교차,
시큼하면서도 달달한 타인들의 땀내음,
지금은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 한때 절친들과 닮은 얼굴들,
그 모든 것들과 마주치면서 금방이라도 길거리에 쓰러질 것만 같은
노곤함을 느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인가?
아니면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
언젠가 또 버림을 받게 되리라는 공포?
이건 뭔가?
간만의 외출이 쓸데없는 생각들로 뒤엉키려 하고 있었다.
거미가 가느다란 거미줄,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거미줄을 내뿜어
나를 칭칭 감아 오늘밤 자신의 저녁거리로 삼으려 계획했나보다.
퉁퉁 붓기 시작한 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말년의 오스카 와일드를 떠올렸다.
이름도 바꾸고,
아내와 아이들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한때 열정을 속삭이며 영원이란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하나밖에 없는 심장이 쾅쾅거렸던 기억이 바로 엊그제 일어난 일처럼
선명하기만 한데 곁에 아무도 없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마치 죽은 사람처럼 살아가는
동안 오스카 와일드는 뭔가를 썼을까.
한 장의 메모도 한 줄의 유언도 남기지 않았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한 장의 메모, 한 줄의 마지막 문장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약속
장소에 닿을 때까지 약간 난감해하며 그가 남긴 문장들 하나하나를 입속으로 중얼거려 만져보았
다.
Stay a wanderer.
Ono Yoko가 오늘 한말.
wanderer의 정의는 4가지.
1.헤매는 사람, 방랑자
2.잘못된 길에 빠져든 사람
3.(아프리카산) 나비의 일종
4.거미의 일종
마치 오스카 와일드에게, 도리언 그레이에게,
지금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는 이들에게 건네는 선물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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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청춘은 아름답다고.
2. 여기 이 소설에서는 유난히 아름다운 한 사람의 청춘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도리언 그레이라고 한다. 그의 청춘은 청춘의 시기가 찾아옴으로해서 점점 아름다워졌고, 또 생김 자체도 아름다운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을 여태껏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마치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안경 쓴 평범한 여인의 안경이 불의의 사건으로 벗겨졌을 때, 그 여자 앞에서 방심하고 있던 사내들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충격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아마도 그는 자신의 매력을 알게 되었을 때 그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3.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가 가진 아름다움(청춘의 아름다움. 외면적인 아름다움)에 너무나 취해버린 나머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많은 아름다운 것을 볼 여력을 만들어낼 자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도리언이 아름다움과 쾌락에 탐닉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헨리 경의 탐미주의 사상이 크게 작용했다. 도리언은 무엇에 홀린 듯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을 경청했다. 헨리의 사상을 단순히 받아들인 것을 뛰어넘어서 아예 극단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므로 자신의 아름다운 청춘이 끌어들이는 유혹들을 통제하지 못한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게 된 사람은 헨리 경도 바질도 다른 누구도 아닌 도리언 그레이 자신의 몫으로 남겨져 버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도리언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끼친 데 대한 책임을 유예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바질의 욕망(동성애적인)이 투사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초상화는 도리언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대신 짊어진 채,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꼭꼭 숨겨두고 있었다. 그 덕분에 도리언은 그가 저지른 잘못을 느끼고 반성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따라서 초상화의 역할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초상화가 도리언의 책임을 유예한 방패막이가 된 것은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도리언을 이런 존재로 설정해버린 그들(바질과 헨리 경)의 책임에서 기인한다. 다시 말해서, 도리언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자기가 자신의 존재를 각성하기 전에 바질과 헨리 경에 의해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존재로 각성 당해야만 했던 부조리한 인식이 만들어낸 산물인 것이다. 게다가 늙고 싶지 않다는 욕망은 도리언 자신의 욕망이기 이전에 이토록 아름다운 초상화를 간직하고 싶어했던 타인의 욕망이기도 했던 것이다.
결국, 도리언의 아름다움은 자신이 먼저 인지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타인의 눈에 아름답게 보여야 할 무언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 대부분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늙고, 자신이 살아왔던 이력이 얼굴과 신체에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순리였지만, 도리언의 얼굴은 타인의 기대를 업고 순리를 거스르고 예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헨리 경이 궁금해했던 젊음의 비결이란 다름 아닌 타인의 눈에 아름답게 보여야 할 의무와 그렇게 보이길 원하는 욕망이 담겨진 또 다른 그의 얼굴(초상화)과 자신의 원래 모습 간의 모종의 역전현상 때문이었던 것이다. 초상화에 그려진 얼굴이 진정한 자신의 얼굴이요. 현재의 젊고 아름다운 그 얼굴은 초상화에 남아있어야 했던 자신과 타인의 욕망이 깃든 얼굴인 것이다.
이 초상화를 보면서 요즘 사람들이 꿈꾸는 성형을 통한 아름다움이 이것과 비슷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타인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욕망과 그러한 시선을 즐기며 느끼는 쾌감은 수술을 통해 주입된 성형외과 의사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 덕분에 좀 더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서 만들어지고. 이러한 만들어진 외적 아름다움과 비교할 때, 자신의 원래 가지고 있던 모습과 내면의 아름다움은 상대적으로 더 늙게 느껴지고, 추해 보이고, 난폭한 모습으로 인식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봤다.
4. 따라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라는 작품은 청춘의 시기에 깃든 아름다움의 이면에 존재하는 유혹당하기 쉬운 나약한 시기라는 어둠을 부각시켜 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여서 그러한 유혹으로 인한 무분별한 방종과 무절제한 쾌락주의에 대한 경고로도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아름답지만 깨지기 쉬운 청춘의 불완전함을 인식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성과 더불어 삶에 대하여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필요성을 주장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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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강북 펭클 독서모임의 지기 삽하나입니다. 오늘은 드디어 우리 강북 모임의 1차 독서토론이 있었던 날입니다. 이 역사적인 날에 저는 저기요님의 문자까지 씹어가며 지각을 하고 말았습죠... ㅠ- ㅠ 자기 소개없이 저 혼자 심각하게 앞서갔던 어설펐던 진행도 무척 죄송스럽습니다 ㅋㅋㅋ (다음에 또 이러면 콱! 옆구리를 꼬집어주세요 ㅋㅋㅋ)
자리를 빛내주신 참가자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저기요님 2. 지민맘님 3. mkdocu님 4. 레디언님 5. 유니님 6. 삽하나(저임ㅋㅋ)
모임의 선정 도서는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저를 포함한 몇몇 분들이 도리언 그레이가 작가 명인 줄 자꾸만 착각하게 된다는 ㅠ) 토론의 물꼬는 '지민맘'님이 터 주셨습니다. 예술지상주의의 대표적인 표상으로 알려진 오스카 와일드에게 왠지 거부감을 가졌던 적이 있었지만, 오늘의 선정도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로 인해 완전히 기존의 편견을 무너뜨리게 되었다고 하셨죠. 사실 거부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저를 포함한 몇몇 분들이 '오스카 와일드'하면 행복한 왕자 같은 동화적 상상만을 늘어놓을 법한 그런 인물로 치부했던 부분이 어느 정도 있기도 했다고 각자 의견을 비춰주셨습니다.
1. 본문만큼이나 빛나는 서문 오스카 와일드가 화려한 겉모습만큼이나 속까지도 얼마나 멋드러진 인물인지는 유려한 문장들로 채워진 서문 속에 있었습니다. (p.41-42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물에서 아름다운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은 교양이 있다. 이들에게는 희망이 있다.'_ p.41:8 지민맘님께서는 이 문장을 두고 과거에는 지독한 예술지상주의에 의한 우월감이라고 보았을지도 모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만이 가진 특권일 수도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어쩌면 당시대 그만의 고집스런 미적 추구가 오랜 시간이 흐른 현대에 이르러서도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유발하고, 또 이것이 펭귄 클래식 리스트에 올라 그의 이름과 작품, 그리고 그것이 가지는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로 만들게 됐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ㅇㅅ ㅇ
'모든 예술은 표피적이면서 상징적이다. 표피 아래를 탐구하는 사람은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_p.42:13 도리언의 무모한 삶을 지켜보면서 우리 강북 독서모임 가족들이 생각했던 것은 분명 이 소설은 자전적인 성향이 다분하다는 점입니다. 와일드 실제 삶의 비극적인 말년은 분명 도리언의 그것과 맞닿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점에서 서문에 적힌 이 문장은 와일드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간에 정말 그는 '위험을 무릅'썼던 무모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또 그것이 그의 손을 거쳐 여러 작품들로 탈바꿈되어 지금까지 두루두루 읽히는 클래식 반열에 올라 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2.초상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초상화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저기요님께서는 한 가지 의문점을 던져주시며 이야기를 진행시켜주셨습니다.
'초상화 작품을 출품하지 않는 행위는 와일드의 강한 유미주의 사상과 모순되는 점이 아닌가.'
이 때 저는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여보았습니다. 국내 한 여성 작가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글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부끄럽고 두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대학교 재학 시 시 작품을 출품하거나 이에 대해 수업 시간에 토론을 할 때도 발가벗은 느낌이 따로 없는 매우 수치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작가, 시인, 화가 등의 예술가란 개인의 작품을 통해 나 자신을 드러내야만하는, 그런 숙명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점에서 비추어 보았을 때 작품 속 주인공이 출품을 꺼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3. 오스카 와일드, 이름만큼이나 와일드한 그의 삶. mkdocu님께서는 지금은 절판된 오스카 와일드의 '옥중기'라는 책을 소개시켜주셨습니다.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도 있다고 하시니 참고하세요.) 여기에 덧붙여 mkdocu님께서 말씀하신 다음의 개인적 비평은 단연 돋보였습니다.
'영국의 브론테 자매들은 바깥활동 보단 주로 저택 내에서만 머물렀기 때문에 그 속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상상력을 키워야만 했다.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 시선이 횡적일 수 밖에 없다. 반면에 오스카 와일드는 남성이라서 그런지 더욱 자유분방하고 활동적인 일생을 살았기에 이야기 시선이 브론테 자매와는 반대로 두루두루 넓게 퍼져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정말 와일드는 와일드한 삶의 대명사라 불릴만하죠. 모범적인 아버지상으로 살아오던 그가 갑자기 안락한 삶에서 벗어나 발버둥치고 결국엔 옥살이 후 파리에서 빈궁한 나날을 겨우겨우 연명하다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 결말에 대해 심각하게 빠져들던 우리 강북 모임 멤버들. 그러나 곧 여성의 압도적인 비율의 우세함을 내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고 '게이'에 대한 찬양론(?)을 각자 펼치며 담소를 이어나간 것이죠. 개인적으론 책만큼이나 재밌고 유익(?)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만.
4. 기타 얄밉지만 신랄한 어휘감각의 소유자, 해리. 경험자만 이해할 수 있다는 책 속에 담긴 결혼관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 정말 '결혼은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인것인가'에 대해 못다한 아쉬운 말들. 끝끝내 드러나지 않은 채 아쉬움을 남긴 협박 문서 내용. 저기요님이 추천하신 조지오웰의 why i write(영문판으로만 존재합니다.)와 행복의 조건. 등등.
+ 제가 아직 독서 모임 지기로서는 많이 모자르고 집중력도 없어 이 날 거론한 모든 사항을 세세히 집어내지 못하였습니다. 저기요님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만일 위 사항에 있어서 잘못된 부분이 있거나 빼먹은 부분이 있다면 바로 지적해주세요. 수정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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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소설이지만 100여 년 전에 쓰여진 소설로 비일상적인 문체가 주는 난독의 어려움을 제외하면 매우 단순한 사건의 전개와 명백한 주제로 이루어져 있는 탐미주의적 성향의 소설이다. 주인공인 ‘도리언 그레이’와 그를 숭배하는 화가이자 금욕주의자인 ‘바질 홀워드’ 그리고 주인공인 ‘도리언 그레이’에 사상적 영향을 주며 그를 관찰하는 쾌락주의자이며 궤변론자인 ‘헨리 워튼’ 세 인물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도리언 그레이’의 외모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한 화가 ‘바질 홀워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를 그려 ‘도리언 그레이’에게 선물한다. 자신의 초상화를 선물로 받은 ‘도리언 그레이’는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난 점차 늙고 끔찍하고 흉해지겠지. 이 6월의 특별하게 젊은 날은 다시는 오지 않겠지∙∙∙∙∙∙. 만약 다른 수가 있다면! 내가 언제나 젊고 이 그림이 대신 나이를 먹을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난 뭐든지 바칠 텐데! 그럼, 그럿을 위해서라면 세상에 내가 바치지 못할 게 뭐가 있을까! 내 영혼이라도 기꺼이 내어줄 거야!”라고 낮게 중얼거린다. 그리고, 그의 이루어질지 않을 법한 소망은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 ‘도리언 그레이’가 약혼자인 연극 배우 ‘시빌 베인’에게 파혼을 통보하고 돌아오던 밤, 그는 초상화의 얼굴이 달라진 것을, 초상화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깃들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자신이 젊음을 간직사고, 초상화가 대신 늙었으면 좋겠다는, 그 자신의 아름다움은 훼손되지 않고, 캔버스에 그려진 얼굴이 그의 열정과 죄악의 무게를 짊어졌으면 좋겠다’던 그의 소망이 현실화 된 것이다. 그 다음날 약혼녀였던 ‘시빌 베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주인공인 ‘도리언 그레이’는 쾌락주의자인 ‘헨리 워튼’의 영향으로 쾌락주의에 빠져들게 된다. 그 후 18년 동안이나 주인공인 ‘도리언 그레이’는 초상화를 선물 받던 그날의 외모를 그대로 유지하며, 대신 그의 초상화가 그가 감내해야 했던 세월과 악행의 흔적을 새기게 된다. 주인공인 ‘도리언 그레이’가 쾌락에 탐닉하기 위해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술되지 않지만, 그가 아편굴을 드나들고 그와 가까이 했던 청년들이 타락의 나락에 빠져 지독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는 내용이 간략하게 기술된다. 자신 현재 모습과 자신의 실제 모습이었을 변화된 초상화의 괴리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어느날 자신의 집에 찾아온 ‘바질 홀랜드’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된다. 그의 초상화는 더욱 잔혹하고 섬뜩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고, 주인공 ‘도리언 그레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이 소설의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라는 소설 한 작품만을 남겼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통해 그의 성향을 추적할 수는 없으나 그의 다른 에세이들에서 그는 개인주의와 자아 성찰을 보다 풍부한 삶과 더 평등한 사회를 위한 방법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이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작가 자신의 이중적인 삶을 반영한 작품으로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중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다고 판단된다. 그렇다면,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통해 어떤 자신을 드러내고 싶었을까? 소설의 내용 그대로 쾌락주의자인 자신이었을까, 쾌락주의의 우울한 종말을 통해 반어적으로 도덕적인 타락을 경고하는 금욕주의자인 자신이었을까. 아마도 그에 대한 답은 독자 스스로 판단할 문제지만, 소설의 서문에 실린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면 탐미주의자였던 ‘오스카 와일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서문] 예술가는 아름다운 사물의 창조자다. 예술을 드러내고 예술가를 숨기는 것이 예술의 목표다. 비평가란 아름다운 사물에 대한 인상을 다른 방식이나 새로운 소재로 바꾸어놓는 사람이다. 비평의 최고이자 최악의 형태는 자서전이다. 아름다운 사물에서 추한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은 아무런 매력 없이 타락한 인물이다.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아름다운 사물에서 아름다운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은 교양이 있다. 이들에게는 희망이 있다. 아름다운 사물을 오직 ‘아름다움’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선택된 사람들이다.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책을 잘 썼든지, 잘못 썼든지 둘 둥 하나다. 단지 그뿐이다. 사실주의에 대한 1세기의 혐오는 캘리번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분통을 터뜨린 것과 같다. 낭만주의에 대한 19세기의 혐오는 캘리번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해 분통을 터뜨린 것과 같다. 인간의 도독적 삶은 예술가가 다루는 주제의 일부를 형성하지만, 예술의 도덕성은 불완전한 매개를 완벽하게 사용하는 것에 존재한다. 어떠한 예술가도 증명을 바라지는 않는다. 진실을 증명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조차도. 어떠한 예술가도 윤리적인 공감을 지니지는 않는다. 예술가의 윤리적인 공감이란 용납할 수 없는 매너리즘의 양식인 것이다. 어떠한 예술가도 병적인 존재는 아니다. 예술가는 모든 것으 표현할 수 있다. 사상과 언어는 예술가에게 예술의 도구다. 악덕과 미덕은 예술가에게 예술의 소재다. 모든 예술의 전형은 형식적인 면에서 음악가의 예술을 따르며, 정서적인 면에서 배우의 연기를 따른다. 모든 에술은 표피적이면서 상직적이다. 표피 아래를 탐구하는 사람은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예술이 진정으로 반영하여 보여 주는 것은 관객이지 인생이 아니다. 한 예술 작품에 대한 견해의 다양함은 작품이 새롭고 복잡하며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비평가가 예술가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예술가는 자신과 일치한다. 유익한 물건을 만들 사람이 그것을 스스로 칭찬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를 용서할 수 있다. 쓸모없는 물건을 만든 경우 남들의 열렬한 칭찬이 있어야만 유일하게 용서가 가능하다. 모든 예술은 무익하다. (BOOK : 2015-026-01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