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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류가 탄생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았고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지금은 대항해시대도 아니고 제국주의시대도 아닌데도 세계 곳곳에서는 아직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예전엔 문명이 덜 발달해서 그렇다고 치더라도 첨단문명을 달리는 21C 에는 왜 전쟁이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탐욕 때문이다. 전쟁은 결코 하늘이 정해준 운명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순전히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미국이 벌인 이라크 전쟁은 그 대표적인 예다. 미국은 이라크의 대량살상 무기를 제거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미국이 실제로 노린 것은 석유자원이며 전쟁을 통해서 미국은 이를 정당하게(?) 획득했다. 이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며 미국인들도 인정하는 바다. 이처럼 평화를 주장하며 세계의 경찰 노릇을 자청한 미국이라는 나라조차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조금만 양보하고 덜 가지면 되는 것을 하나라도 더 갖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전쟁이라는 끔찍한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전쟁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데 있어서 아주 좋은 수단이기 때문에 절대로 이 좋은 카드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탐욕은 사람을 사악하게 만들어 사람을 죽이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전쟁은 계속해서 벌어졌다. 남의 것을 정당한 방법이 아닌 힘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다 탐욕이 원인이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이 탐욕이라는 것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전쟁은 계속 될 것이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책은 인간이 탐욕을 절제하지 못하면 얼마든지 끔찍한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말해주는 책이다. 3권은 드리타라스트라의 자식들인 카우라바 세력과 그의 형 판두의 자식들인 판다바 세력들 간의 전투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판다바들의 우두머리인 첫째 유디스티라는 어떻게든 전쟁을 피해보려 했지만 드리타라스트라의 욕심과 눈먼 자식 사랑 때문에 결국 동족상잔이라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만다. 카우라바의 우두머리인 첫째 두리요다나가 사건의 원흉이긴 하지만 실은 드리타라스타라의 죄가 더 크다. 자신의 형인 판두의 자식들에게 자신의 영토를 조금만 양보했더라면 이와 같은 혈족간의 살육은 피할 수 있었지만 드리타라스트라는 탐욕에 눈이 멀어 잘못된 판단을 자신의 능력으론 어찌할 수 없는 운명으로 돌려버리고 전쟁이 벌어지도록 방관했다. 스스로도 자신의 판단이 문제가 있고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드리타라스트라는 결국 최악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때문에 두 세력들은 결국 치고 박고 싸우며 손자가 할아버지를 죽이는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 이 책은 총 22개의 파트로 구성이 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하나씩 하나씩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적에게 적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본 것’이다. 판다바 세력의 우두머리인 유디스티라는 카우라바 세력의 총사령관인 비슈마에게 가서 비슈마를 정복할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본다. 이건 아이러니 그 자체다. 아무리 비슈마가 유디스티라의 할아버지라 해도 이건 애들 장난이 아닌 전쟁이고 동족상잔인 줄 알면서 하는 전쟁인데 그 적장에게 가서 적장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가?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자신을 죽일 방법을 알려달라고 온 손자에게 그 방법을 고스란히 알려준 것이다. 그렇게 할 것이었으면 애초에 손자들과 싸우지를 말던가 했어야 했다. 하지만 비슈마는 손자들 세력인 판다바들 군단을 무참히 살육하고 도륙했다. 처음부터 몸을 뺐으면 얼마나 보기 좋은가? 이건 시트콤도 아닌데 왜 이런 황당한 일을 벌였는지 진짜 이해가 되질 않는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는 저자에게 그 의도를 묻고 싶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비슈마가 엄청나게 많은 화살을 맞고도 바로 죽지 않은 점’이다. 보통 크샤트리아(전사)들은 화살 한방만 맞아도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그런데 카우라바 진영의 비슈마는 판다바 세력들에게 금방 죽을 만큼 많은 화살을 맞았는데도 바로 죽지 않았다. 화살 몇 발에 목숨이 날아간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 너무한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죽음의 시간을 비슈마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아니 화살 한방에 죽은 다른 크샤트리아들은 파리 목숨만도 못하다는 것인가? 아무리 주인공이라도 해도 이건 너무 편애한 것 아닌가 이 말이다. 총을 아무리 맞아도 절대로 죽지 않는 서부극의 주인공이 아닐진대 왜 비슈마만 치사량의 화살을 맞고도 바로 죽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신도 아니고 현자도 아닌 일개 크샤트리아일 뿐인데 왜 이토록 비슈마를 위대한 인물로 포장을 했는지 도통 그 저의를 모르겠다. 이것 또한 저자에게 물어보고 싶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전쟁 중에 아르주나가 주문을 외워 마구간을 만든 뒤 자신의 말을 쉬게 한 점’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주인공이 변신을 할 때 틈이 생기는데 그 동안은 천하무적이라 아무도 건들지 못한다. 그런데 전쟁이 애니메이션인가? 전쟁 중에도 이런 특수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인가? 전쟁 중에 말이 지쳤다면 남의 말을 빼앗든가 아니면 진영으로 잠시 퇴각해서 말을 바꿔 타는 것이 순리다. 헌데 주인공인 판다바의 삼남 아르주나는 주문을 외워서 마구간을 만들었고 그 장소에서 자신의 말을 잠시 쉬게 했다. 아무리 신화라 해도 이건 좀 너무한 것 아닌가? 왜 갑자기 이런 설정을 해서 이런 의문을 들게 만들었는지 저자의 의도가 궁금하다. 3권은 두리요다나를 중심으로 한 카우라바 군단과 유디스티라를 중심으로 한 판다바 군단들 간의 싸움이 다다. 크리슈나가 정해준 운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 두 세력은 동족이라는 것도 잊고 서로에게 마구 화살을 날린다. 이 모습을 보면 동족상잔의 역사를 안고 있는 민족의 후손으로서 마음이 아프다. 형제자매 혹은 부자지간에 총부를 겨누고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것이 운명이라면 이보다 더 가혹한 운명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4권에서는 이미 운명으로 정해진 전쟁이 어떻게 결론이 나고 이야기를 매듭지을지 기대해 보겠다. 인상적인 글귀 “자신을 정복한 자만이 세상을 정복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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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쟁보다는 그 후의 현자들의 가르침이 이 책의 진정한 클라이맥스입니다.
트로이 전쟁 따위는 뒷골목의 어린아이 싸움으로 여겨지는 엄청난 전쟁이 벌어집니다.
너무나 많은(그 동안 등장한 수많은 왕과 영웅들이라 기억하고 있으시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만요) 영웅들이 등장합니다. 이럴 때 사람 이름이 틀리면 더 혼란이 가중되는데요, 겁나게 많이 틀렸습니다...
죽었던 영웅이 살아나질 않나, 누가 누굴 죽였는지도 모르게 번역이 되어있지 않나... 이건 번역 문제라기 보다는 감수의 문제인 듯... 오타와 오역은 이 책의 최대 오점인 듯 싶습니다.
제1권에 써야 했지만, 이 마하바라타는 그리스 신화에서 본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아내를 찾기 위해 도끼 구멍으로 활을 쏘는 테스트를 거치는 장면은 아르주나가 드라우파디를 아내로 맞이할 때의 장면과 매우 흡사합니다.
어느 쪽이 먼저냐? 라고 한다면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만, 제 생각에는 마하바라타 쪽이 먼저일 듯...
우선 마하바라타, 힌두교의 신들의 왕인 인드라는 제우스의 판박이입니다. 여색을 탐하고 질투심많고, 계략에 뛰어난 것 등...
바람의 신 바유는 북유럽신화의 오딘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이런 면에서 그리스, 로마, 북유럽신화, 나아가 일본, 중국의 신화도 마하바라타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는 학자들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1권짜리에 비해 4권짜리의 이 책에서는 크리슈나를 제대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 합니다.
1권짜리에서는 크리슈나는 비열한 모략가의 느낌이 강했습니다만, 4권짜리에서는 모든 신들의 계획의 실행자이고 신들의 근원으로 제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크리슈나는 굳이 비교하면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와 비슷한 존재이지만, 훨씬 화려하게 인간세상에서 왕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무지한 인간들은 그를 신의 화신이라고 생각하질 않죠.
이 마하바라타에서 크리슈나는 대지의 짐을 덜기 위해 인간세상을 칼리유가로 인도하려고 세상에 내려왔습니다.
판다바형제와 카우라바형제의 다툼과 전쟁은 그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죠.
힌두교가 다신교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마하바라타를 보면 크리슈나(=비쉬누)를 유일신으로 하고 나머지 신은 성경으로 치면 천사나 대천사 수준의 존재입니다.
비쉬누, 시바, 브라흐마의 삼위일체적인 설정도 전 세계 종교에 마하바라타, 힌두교가 끼친 영향을 짐작케 합니다.
이슬람교가 인도에 막혀 쉽게 전진하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뿌리 깊은 힌두교의 사상이 인도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종교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마하바라타는 꼭 읽어보셔야할 필독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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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타 족의 이야기라는 이 마하바라타의 이야기는 거대한 전쟁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엄청난 전쟁을 보여준다. 마하바라타의 이야기는 예정된 전쟁을 향해서 나아가는 이야
기이고, 그 전쟁을 보여주는 후반부와 그 전쟁으로 나아가는 여러가지 사건들을 만날 수
있는 전반부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이 마하바라타 3권에서 마침내 그 예정되어있던 그
거대한 전쟁은 마침내 시작이 된다.
판다바들과 카우라바들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그들이 영웅으로 성장하
는 이야기를 통해서 예정된 전쟁이 얼마나 크고 험난할 것인지를 보여준 마하바라타의
이야기는 주사위 놀이로 모든 것을 잃은 판다바의 이야기에 더해서 카우라바가 벌이는
너무나 잔혹한 박해가 더해지면서 그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결국 세
상의 균형을 위해서 힌힌두교의 무사 계급이 모두 모여서 전쟁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마
하바라타의 거대한 전쟁의 시작을 마하바라타 3권에서 독자들은 만나게 된다.
어쩌면 이 마하바라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독자들이 기대한 것은 바로 그 거대한 전
쟁의 이야기이기에 길게 주어진 그 전쟁으로 향하는 과정들로 독자들은 그 전쟁에 당위
성이 주어지고 그리고 결국은 그 전쟁이 어쩔 수 없이 벌어져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
닫게 된다. 그리고 그 전쟁은 목숨을 건 전쟁이며, 독자들이 한번씩 만나고는 했던 이야
기 속의 인물들이 한명씩 사라지는 과정을 통해서 두교의 운명론을 마주하게 되는 것
이 또한 이 마하바라타 3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더불어 맹세가 현실로 벌어지는 그 모
든 이야기는 그렇게 독자들에게 도덕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하며, 마침내 한 명의 고집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전쟁의 대학살을 만나게 한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담담하게 죽
음을 맞이하는 그 이야기를 통해서 단순한 운명론과 전쟁 서사시가 아니라 힌두교의 경
전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아주 작게나마 만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