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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란 남에게 재앙이나 불행이 일어나도록 빌고 바라는 것을 뜻한다. 대개 남을 해코지할 때 쓰이는 수단으로 악한 존재들의 전유물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마하바라타>>에선 희한하게도 남들에게 존경받고 추앙받는 현자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사람들에게 저주를 내리고 이와 같은 행위를 즐거워한다. 주로 벌을 주는 차원에서 악담을 퍼부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좀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든다. 잘못을 했다면 응당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그 전에 도리와 이치를 일깨워주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꼭 저주를 통해서만 지혜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 말이다. 사람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실수도 할 수 있고 잘못도 저지를 수 있다.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저주를 내려 깨닫게 하는 방식이 과연 현자들이 취할 태도인지는 의문이 든다. 인도의 옛 현자들에게 묻고 싶다. 저주가 최선이었냐고.
이 책은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천부적인 운명과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선천적인 계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보면 왜 인도에선 가난으로 인한 국민 봉기가 일어나지 않고 신분제도 철폐에 대해 항거하지 않는지를 알 수 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신분사상교육을 시키고 베다경전을 읽히는데 어느 누가 신의 뜻을 거스르려고 하겠는가! 문제는 이런 사상을 만들고 퍼뜨린 자들이 다 가진 자들이었고 높은 계급의 사람들이었다는데 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자들이나 천민들이 신의 뜻이라며 차별적인 계급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 때문이다. 다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부와 명예를 지키고자 만들어놓은 산물이다. 엄격한 신분제도로 인해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못하고 비참한 삶을 감수하는 인도의 하위계급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이 책은 총 18개의 파트로 구성이 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밤엔 싸우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깨진 점’이다. <<마하바라타>>의 3권까지는 낮에는 아무리 치고 박고 싸워도 밤에는 휴식을 취하고 싸우지 않는 것이 전장에서의 룰이었다. 그래서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카우라바들과 판다바들은 야간에 서로의 진영을 왕래하며 담소까지 나누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4권에선 돌연 지금까지 지켜지던 룰이 한 순간에 깨진다. 달이 떠오름과 동시에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가? 전쟁에서 항상 지켜지던 룰이 왜 아무런 이유도 없이 깨진단 말인가! 형세가 불리해지면 얼마든지 깨질 수 있던 그런 룰이었다는 말인가? 아무리 서로의 목숨을 빼앗는 전쟁터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철저히 지켜오던 전통인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깨뜨릴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따지면 신분제도도 한 순간에 부셔버릴 수 있지 않을까? 신화에서 전례를 보여줬으니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아닌가 이 말이다. 인도 사람도 아닌 외지인이 이렇게 그들의 신화를 통해 신분제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여지를 발견했는데 왜 그들은 이를 살피지 못했을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창조주 크리슈나의 편인 판다바들 측이 적지 않게 죽었다는 점’이다. 한쪽이 창조주의 보호아래 치러지는 전쟁이라면 보호받는 쪽은 피해가 없거나 압도적이어야 마땅하다. 헌데 크리슈나가 지켜주고 있는 판다바들 측의 왕들이나 병사들은 적인 카우라바 측과 별반 다르지 않게 죽고 피해를 본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창조주가 보호하고 같이 싸워주고 있는데 왜 적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상자를 내는가 이 말이다. 너무 일방적인 승리는 재미가 없어서 창조주가 일부러 그런 것인가? 아니면 동족상잔의 전쟁은 신이 보호해도 둘 다 피해를 보니 하지 말라고 선례를 남기려고 했던 것인가? 아무리 인간이 신이 만든 피조물이라고 해도 이렇게 막 목숨을 빼앗고 동족끼리 죽이게 해도 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두리요다나가 죽어서 영원한 행복의 나라로 가게 된 점’이다. 두리요다나는 카우라바들의 우두머리이자 동족상잔의 비극의 원인 제공자다. 두리요다나만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면 친척지간인 카우라바들과 서로 싸우지 않아도 되었고 수많은 왕들과 병사들이 죽음을 맞이하지 않아도 되었다. 현명한 자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간계로 혈족을 고통에 빠뜨렸으며 결국엔 동족 간에 전쟁까지 벌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 바로 두리요다나인데 왜 이런 자가 죽어서 지옥에 가지 못할망정 천국으로 가는가? 난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는다. 아무리 많은 죄를 지어도 브라만에게 시주를 잘하고 신들에게 제사를 잘 지내기만 하면 면죄부를 얻을 수 있는 것인가? 말도 안 된다. 현세에서 죄를 저질렀으면 응당 벌을 받아야 마땅하거늘 실컷 나쁜 짓을 하고도 돈으로 죄를 면할 수 있다면 그 누가 착하게 살려고 하겠는가! 권선징악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안타깝다.
우리 민족사를 통틀어 한민족이 제일 비참했던 시기는 500년간의 조선시대다. 그 이유는 권력자들만 살만 나게 하는 신분제도의 굴레 때문이었다. 그런데 인도는 21세기인 지금도 이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쓰레기장에서 살면서도 불만 하나 터뜨리지 못하게 하고 더 나은 삶을 꿈꾸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과연 좋은 사상이고 올바른 계급사회인가? 의식 있는 인도인들의 조용한 반란을 기대해본다.
인상적인 글귀 “물질세계는 순간의 환상에 불과하니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은 영적인 해탈이 되어야 하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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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보다는 해탈이 더 어울릴 것 같지만...
사실 두리요다나가 엄청난 압정을 펼쳐서 백성을 핍박한 것도 아니고... <왕의 귀환>이라고 해야하지 않을지...
인간군대에 마귀, 나가들, 총 400만 대군이 충돌한 대전쟁이 막을 내립니다.
드로나의 전차가 한 번도 땅에 닿지 않는 무적의 신비한 전차라는 것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좀 아쉽습니다.
비슈마가 쓰러진 후, 그를 계속 죽은 사람으로 치다가 갑자기 가르침을 받으러 가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비슈마는 자신이 죽고 싶을 때에만 죽는 사람인데 말이죠. 사실 죽은 것이 아니라 전투불능 상태인 것이죠. 죽었다는 것은 모두 쓰러졌다고 바꾸는 것이 옳을 듯 싶군요.
물론 비슈마는 최종적으로는 죽어서 천상으로 올라갑니다.
비슈마 이후, 드로나도 엄청난 영웅임에도 드로나는 너무 나약하게 묘사하는 것 같지만, 그건 영어 원본이 그런 것이겠죠...
400만 대군의 18일간의 전쟁은 화려하고 비참하지만 이 마하바라타의 클라이맥스입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전투와 전사자가 나와 좀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그에 비하면 전투 후의 이야기 마무리가 개인적으로는 더 마음에 듭니다.
칼리유가를 앞두고 세상을 떠나는 수많은 영웅들... 크리슈나의 죽음, 차례로 죽어가는 판다바 형제들...
그리고 유디스티라의 승천...
마하바라타는 워낙 방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이 내용을 이해하려면 2번 이상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등장인물도 정말 많으니까요.
물론 판다바형제와 두리요다나와 그 측근만 알아도 내용 이해에는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인물들도 정말 중요합니다.
제1권 책 마지막에 있는 용어설명은 그 양이 너무 빈약합니다. 책 중간중간 색인을 달아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면 마하바라타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이 책을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마하바라타를 이야기할 때 '세상의 모든 것이 마하바라타에 있고, 마하바라타에 없는 것은 세상에 없다'는 말을 하는데요, 수 천년전에 쓰여진 책에 세상의 모든 것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단지 종교, 철학적인 면만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하바라타에는 정말 세상의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거대 공중요새, 순간이동을 하는 성, 한 번 쓰면 세상이 멸망하는 무기, 쓰고 나면 그 땅에서 몇 십년간 생물이 살 수 없는 무기... 현대의 핵무기, 총, 비행기를 연상케 하는 것들도 등장합니다.
그래서 혹자는 고도로 발달한 고대문명의 이야기라고 보기도 합니다.
스타워즈처럼 '먼 옛날, 은하계의 어느 곳에서...'라는 이야기가 바로 마하바라타입니다.
정말 먼 옛날에 신과 인간들이 어우러진 세상이 있었고, 그 이야기가 마하바라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 그렇다면 수 천년 전부터 내려온다는 이야기에 공중요새가 등장하고 핵무기가 등장할 수는 없으니까요. 총탄, 엔진도 등장한다는...
힌두교에서 우주의 한 사이클을 40억년 정도로 보니 정말 까마득하게 먼 옛날에는 지금보다 발달한 문명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이 4권짜리 마하바라타에 대해 정리하면, (1)4권짜리로 나와 상세한 내용이 담겨있어 좋다. 하지만 원전판에 비하면 절반 정도의 내용이다. (2)오타, 오역이 너무 많다. 하지만 마하바라타의 매력은 그런 것을 능가한다.
대략 이 정도입니다.
모르셨던 분은 꼭 읽어보시고 동양의 종교, 철학의 진수, 아니 세계의 종교, 철학의 진수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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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바드 기타>가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 마하바라타는 고대 인도의 2대 서사시로 불리는 작품이다. 하지만 수천 년 전 낯선 나라의 장편 서사시가 현대 독자에게는 으레 그렇듯이, 읽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이 <마하바라타>는 현대 독자에게 어렵게 느껴질 만한 원전의 요소는 최대한 절제하여, 속도감 있고 날렵한 소설로 탈바꿈시킨 책이다.
마하바라타는 고대 인도의 이야기이다 보니, 현대인의 시점에서는 생소한 풍습이 별 설명 없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수천 년 전 인도에서는 굳이 설명을 붙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당연한 일일지 몰라도, 오늘날에는 왜 저렇게 대응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식의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것이다. 완역본이라면 주석을 붙여 설명하겠지만, <마하바라타>는 책 본문에 자연스럽게 각종 설명을 녹여넣는 방식을 택했다. 워낙 솜씨있게 덧붙인 덕에, 적지 않은 추가설명이 나오지만 책의 흐름이 끊어진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다. 오히려 뭔가 궁금해질 시점이 되면 때맞춰 해설이 나와서 고맙기까지 했다.
<마하바라타>를 보면서, 마하바라타 자체의 내용보다 이야기 곳곳에 깃들어 있는 인도 신화의 편린에도 흥미가 갔다. 힌두교와 카스트 사상이 대체 어떤 것인지, 등장인물들의 언행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 많았기 때문이다. 상대가 주사위 속임수를 쓰는 것을 알면서도 '주사위는 공정한 것이라 내가 주사위 게임에서 진다면 그것은 신의 뜻이리라'면서 주사위 놀이를 계속하는가 하면, 훌륭한 전사의 부모가 수드라라는 것을 알고 '저런 전사가 비천한 수드라 계급에 허락될 리가 없다. 틀림없이 부모는 따로 있을 거야'라고 단정짓기도 한다. 이런 요인 중 상당수는 복선으로 작용하거나 나중에 내용 전개에 중요한 열쇠가 된다는 점에서 황망함을 배가된다. 이런 이야기가 플롯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당대인에게는 그런 내용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이야기가 되니까.
특히 두리요다나가 죽은 후 천상으로 간 대목에서는 그만 웃고 말았다. 두리요다나는 주인공 판다바 5형제를 음해하기 위해 온갖 계략을 꾸몄으며, 그들이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게 한 장본인이었고, 전투에서 많은 판다바 병사와 장수를 죽였다. 그런데 아르주나가 전사의 불문율을 어기고 허벅지를 공격해 죽었다는 이유로 천상에 갔다. 그렇다고 두리요다나가 정정당당하게 싸웠던 것도 아니었다. 아르주나는 어디까지나 먼저 금기를 어긴 상대에게 자신도 같은 방법으로 보복한 것이다. 그런데도 상황이 어찌 되었든 간에,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건 간에 비열한 방법으로 죽었다는 이유로 낙원에 가다니. 이 이야기를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악독한 누군가를 처치하고 싶어도 암수를 쓰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죽여봤자 자신이 악인을 천상으로 보내주는 결과밖에 되지 않을 테니.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영리한' 신화가 아닌가 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카르나였다. 아기 시절 버려져 고아로 자란 인물이 뒤늦게 핏줄을 알고 혼란스러워하는 이야기는 꽤 많다. 그런데 자신이 자란 곳과 태어난 곳이 대립할 경우, 결국 자신이 태어난 곳에 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라는데, 뒤늦게 태생을 알았다고 여태껏 자란 세월을 미련없이 등돌린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영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카르나가 자신의 '출신'을 알게 된 후 선택한 길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끝없이 고뇌하고 괴로워하면서도, 목숨을 내놓을지언정 스스로 부여한 사명을 수호하는 모습은 <마하바라타>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남았다.
현재 <마하바라타>의 원전 완역본은 나와 있지 않다. 이 상황에서 축약본, 그것도 현대적 편집을 거친 편집본은 최선 없는 상황에서의 차선책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이상의 평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마하바라타>는 마하바라타의 내용을 적절히 다듬었을뿐만 아니라, 현대 감성에도 재미있게 재탄생시켰다는 점에서도 미덕을 두루 겸비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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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바라타
윤리와 경제 쾌락과 해탈의 영역에서 인간의 삶과 연혼을 구원하는 최고의 서사문학
마하바라타 세상에있는것은 마하바라타에 다있고 마하바라타에없는것은 세상에도없다.
이말이 무슨뜻일까 첫장을 넘기면서.....고민하면서 읽었던 기억이나네요.
첫장을 넘기면서.....처음에는 이름들이 너무나 생소해서 몆번이고 앞으로 넘기곤했던 기억도나고.. 마하바라타에서......어떤 내용을 소개하는글일까.
신들과 인간들에 이루어진 이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어떠한 방향으로 살아가라고 이야기하는것같아요. 우리들 현세계에서는 전혀 생각하지못하는 5섯형제의 탄생부터 유티스티라. 비마,아르주나 그리고 쌍둥이 형제들.. 서로에게 주어진 인생들 그리고 앞으로에 운명.속에 자기 형제와 그리고 자기 친구와 자기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에 전쟁을 통해서 고민하고 이를 해쳐나가는 과정들을 통해서..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조금이나마 이해가되는듯해요 작은 믿음일지라도 정직하게 서로를 질투하고 원망하는 삶이 아니라.....우리가 생각하는 모든일에 최선을 다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그리고 주위에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자기가 한 행동이나 말들을 책임질줄아는 모든이가 되길..
가끔씩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인도...갠지스강 그들이 신들을 믿고 따르는 모습들을 상상하면서. 마하바라타 마지막장을 넘기면서.....종교가 각자 틀리고 생각에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들이 선함을 통해서 부모님들을 존경하고 스승님을 존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을가지고 살아간다면..
저도 제 인생에 모든것을 이루지않나 싶어지네요.
시간날때 다시금 천천히 읽어보고 싶네요. 총 4권으로 이어지는 마하바라타를 다 소개하기는 무리가있지만.....재미나게 본듯해요.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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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띠지에 적혀있는 그 말처럼 세상에 있는 것은 마하바라타에 다 있고, 마하바라
타에 없는 것은 세상에도 없다는 그 말처럼 마하바라타에는 사람들의 질투와 욕망, 그리
고 그 질투와 욕망이 만들어내는 갈등과 그 갈등이 만들어내는 전쟁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세상의 허무함과 함께 힌두교에서 이야기하는 도덕률을 모두 담고 있다. 더불어 길
게 이어지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여러가지 설교들은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마
하바라타는 단순한 전쟁 서사시가 아니라 힌두교의 경전이며 세상에 대해 모든 것을 이
야기하는 세상에 대한 안내서이기도 할 것이다. 이 마하바라타는 크리슈나 다르마라는 산
스크리트어의 권위자가 영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번역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더불어 전문
적인 번역가라기에는 조금 부족한 번역가가 번역한 것 때문인지 이 작품 마하바라타는 조
금은 딱딱한 번역을 만나게 된다. 마하바라타의 원작이 서사시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딱딱
함은 상당히 큰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의 변화도 있었
을 것이고 역시 번역가의 능력이 마하바라타라는 작품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마하바라타를 우리나라 말로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그 단점을 잊을 수 있지만 말이다.
이 책 마하바라타는 영웅들의 탄생과 시련, 그리고 시련의 극복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
서 많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만나게 되고, 도덕에 대한 설교를 만날 수 있다. 더불어
힌두교의 여러 신화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런 모든 이야기와 함께 마하바라타는 마지막
거대한 전쟁을 통해서 힌두교의 윤회에 대한 생각을 살짝 들여다 보게 된다. 그리고 더불
어 이 작품 마하바라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초고대문명의 증거로
가끔 이야기되는 시대와 맞지 않는 너무나 현대적인 물건들과 무기들을 만나게 된다. 그
모든 것이 다시 마하바라타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역시
마하바라타의 핵심은 거대한 전쟁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인간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결국 마지막 판다바들이 세상을 버리고 떠나는 그 이야기를 통해서
선명하게 들어난다. 그리고 운명처럼 자신의 말을 지켜야 하는 그들의 운명을 통해서 다
시 한 번 마하바라타가 단순한 전쟁 서사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그 모든 것
이 번역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고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