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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기도에 관한 책을 한두 권 읽었는데, 기도에 대해 크게 도전받지 못했다. 읽을 때만 기도해야지 마음먹다가 결국 기도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 책의 저자인 존 엘드리지는 나에게는 생소한 작가다. 저자 소개를 보니 프란시스 쉐퍼, 래리 크랩, 댄 알렌더의 지도를 받았단다. 신뢰가 간다. <산을 옮기는 기도>라는 책 제목 때문에 적극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막무가내로 기도하라고 도전하는 책은 아닌지 의심했었는데, 기도에 대한 신선한 가르침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에게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고 설득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는 갈등, 이 세상의 골칫거리들, 아니 당신의 꿈, 욕망 그리고 환난이 당신을 기도하게 못한다면, 내가 지금 말하는 그 어떤 것도 그다지 호소력이 없을 것이다.”(p. 21). 마음이 뜨끔했다. 인생살이에 얼마나 많은 갈등, 골칫거리, 꿈, 환난이 있었는가. 그런 것들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언제 기도한단 말인가! 기도하지 않는 나는 정말 믿음이 있는 것일까? 기도하라고 설득하지 않겠다는데 오히려 설득당하는 느낌이다. 이 책을 통해 “무기 사용법을 배우고자 하는 병사처럼”(p. 35) 기도를 배워보고 싶었다.
존 엘드리지는 시편의 저자들처럼 먼저 ‘마음의 외침’으로 기도하라고 충고한다. 마음의 외침은 꼭 슬프거나 고통스러워서 지르는 신음만이 아니다. 기쁨에 겨워 나오는 소리와 찬양도 마음의 외침인 것이다. 명심할 것은 그 외치는 감정에 함몰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은 다양한 상황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몰아넣으신다. 그 기도의 자리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권능을 사용하는 법”(p. 89)을 가르치신다. 저자는 힘 주어 말한다. “우리는 개입하고, 관계를 맺고, 변화시키도록 지어진 존재다. 우리는 산을 옮길 수 있다. 그것이 우리 안에 있는 DNA다.”(p. 108). 나는 이전에 기도에 대해 이렇게 강력하게 표현한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결국 이 책은 “지금 당장” 기도하라고 강력히 도전한다. 기도에 대해 말하고 토론하고 사색하고 염려하면서도 정작 기도하는 일을 비껴가는 것, 이것보다 더 사탄의 전술에 속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한 길 가는 순례자처럼, 내 인생에 기도가 항상 내 옆에 있는 친구가 되가 하자.
책 마지막에 두 개의 소박한 기도를 언급한다(p. 266).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와 ”당신의 영을 부어주시옵소서“(행2:17, 20~21). 저자가 ‘소박하다’고 표현한 이 기도는 위대하다. 주님이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 것을 확신하고 신뢰하면 기도할 것이다. 그 날이 올 때까지 기도할 것이다. 책을 덮으며 즉각 기도한다. ”주님,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성령을 부어 주사 기도하게 하소서. 주님 오실 때까지 기도하게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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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옮기는 기도 / 존 엘드리지 / 넥서스CROSS 일이 되려면 방법이 있는 법이다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신자들을 향해 가장 빠르고 쉽게 조롱하는 방법은 모든 일에 '그럼, 어디 기도해봐. 이뤄지는지 보게.'라고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치 기도를 했을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어야 '신의 존재를 인정'하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나는 종교인도 아니고 '학자'는 더더군다나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을 두고 '시비'를 논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종교라는 것이 기도했을 때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요술봉'이나 나의 미래를 모두 예견해주는 '점쟁이'었다면 나는 종교를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을 한마디로 내 맘대로 살겠다는 뜻이고 그것은 내가 아무리 선한 의도로 사고하고 판단하여 살아간다고 해도 결국 '독재'와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신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라는 엄청난 것을 주었다. 유혹에 빠질지 말지를 정하는 것은 다분히 인간의 의지에 달려있다. 나쁜인간에 의해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마저 '신'을 탓할 수는 없다. 사람의 죄를 미워해야지 우리는 왜 그 사람이 그 시간, 그런 일을 하게 놔두었는지 '신'을 탓해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에게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고 설득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나는 그저 당신이 기도를 더욱 효과적으로 이해하도록, 일들이 어떻게 성취되는지 감을 잡을 수 있도록, 충분한 사례를 모아 당신 앞에 보여줄 뿐이다. 일이 성취되는 데는 다 그만한 방법이 있다. 21쪽 서두에 풀어놓은 내 생각을 쫓아가면 '기도'조차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위의 내용은 순전히 '나'라는 한 개인이 바라보는 관점이며 저렇게 바라보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거듭 말하지만 나 역시 처음부터 하나하나 배워가는 중이다. 그 안에 '기도하는 방법'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존 엘드리지의 이야기 중 가장 와닿았던 점은 신은 우리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 시키는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종, 혹은 노예'라고 관계를 단정지으며 살아왔다. 그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해줄 뿐 아니라 단순히 기도를 통해 원하는 것을 구하는 '구걸'이 아니라 예수님이 다 하시지 못한 복음선포를 이 세상에 잠시 다녀가는 이 순간 우리가 해야만 하는 '동업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해 '현실'을 도구로 사용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실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만큼 했으면 됐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아마 그때가 워밍없이 끝났을 때 일지도 모른다." 100쪽 기도했는데 이뤄지지 않았다고 실망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는 정말 노력도 했는데 너무 어이없이 '스스로의 기준'에서 비춰볼 때 덜 노력한 사람이 승승장구 하는 모습을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 그는 '기도의 힘'을 믿지도 않는 사람인데도 그럴 수 있다. 기도의 힘을 믿지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신을 향해 원망하는 마음까지 생겨날 때도 있다. 과연 우리가 열심히 기도했을까? '열심히'라는 단어는 어떤면에서 보면 지극히 신의 기준에서만이 판단 할 수 있을 것 같다. 환난 중에도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함께 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은 어리석고 나약한 우리 인간에게 단 번에 느껴지는 위로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제대로'기도했는가를 생각해볼 수는 있다. 베드로를 탈출시키실 때 교회는 그를 구해달라고 신에게 기도드렸다. 그 기도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들에게는 구하기 전 '성별'이 먼저 시작된다. 여기서 성별은 봉헌, 즉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모두 신에게 내어놓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우리는 신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우리의 아버지 되신 분께 다시 다 내어놓는 '겸손'한 자세로 구하라는 의미가 된다. 이 책을 읽고 단박에 '산을 옮길 수 있는 기도'를 배우게 되었고, 진짜 '산을 옮기는 정도'의 소원이 이뤄질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부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카운셀링 한 번으로 관계가 회복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처럼 서로가 열심히 노력하고 진심으로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우선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은 관계가 틀어진 진짜 '원인과 이유'를 깨닫게 되면 그것을 모를 때 보다 훨씬 희망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을 옮기는 기도]를 통해 나는 이제 겨우 한 번의 카운셀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고 해서 무조건 '내가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자책'에 빠질 생각은 없다. 왜냐면 지금 당장은 극단적으로 보이는 방법이 나를 구하는 진짜 방법일 수 있다. 내가 지금 구하고 있는 그 기도가 진정으로 나를 위한 것인지, 나의 욕심이나 착각은 아닌지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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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하려고 할때마다 항상 부담감이 내게 있다, 소그룹에서 하는 기도든지 아니면 본예배에 대표로 하는 기도든지 그 부담의 강도는 한결같다. 기도의 능력을 의심하거나 하찮게 여긴적은 없다, 하지만 기도는 항상 힘든 일과이다. <산을 옮기는 기도>는 제목부터 뭔가 강렬하게 다가오는 마음에 환희가 느껴지는 제목이다. 내 기도로 산을 옮긴다는 말인가 존 엘드리지 작가의 이야기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러번 여기저기에서 들었던 내가 익히 알고 있던 그리고 여러번 들었던 설교처럼 내 몸속깊숙히 박혀있던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이렇든 나이가 먹어서도 또는 이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죽어서까지 깨닭지 못하고 끝나벼렸을 내 기도 생활을 되돌아 보게한다
하나님 없이 우리가 할수 있는 일기 없고 우리없이 하나님은 일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기도가 결정적인 역할 아니 때로는 결정하는 열쇠가 되는 그런세계에 살도 이쓸을 알아야 한다p18
기도가 이렇든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해주는 중요한고 중요한 것이지만 나의 기도생활은 그저 형식적이였던 적이 많음에 마음이 무너짐을 느낀다, 작가는 응답하지 않는기도에 대해서도 명쾌한 답을 주었다, 우리가 혹은 내가 주님을 대하는 방법이 주님을 진정 주로 아빠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음을 꼬집고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주님의 하찮은 종으로 격하시키고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또는 친구로 또는 동지로 생각하여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또 이책에서 감명을 받은 것은 우리의 모든 상황을 성별하라는 말이였다, 우리는 생활 가운데서 세상속에서 살때는 그저 세상속에서 뭍혀서 그렇게 뒹굴다가 주일이 되어 교회 갈때만 교인처럼 보이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이책에서는 항성 언제나 세상과 구별된 몸과 환경을 이야기 하고 있다, 집에 있을때나 휴가를 가서도 그 장소에서 항상 성별되게 함을 구하는 기도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들이라는 성구를 이렇게 생활에 적용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책을 통해서 기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좀더 열심히 읽고 실천하는 기도생활을 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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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옮기는 기도
그런 저런 이유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에 우리에게 성령이 임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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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기도 23년,,,병을 고쳐 달라는 기도 8년이 넘어가고 직업이나 진로를 결정지어 달라는 기도 23년,,,기도를 하는게 유일한 낙이고 희망이지만 하나님의 침묵의 시기가 오면 너무 절망적이고 힘들고 하나님이 원망스럽다. 하나님밖에 없고 하나님이 해결을 안 해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도움이 전혀 없을 때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버텨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나님바로 밑에 살고 있고 하나님의 연인이고 하나님의 사람이고 우주에서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깊은 체험과 음성을 들었지만 언제나 그런 상태는 아니다. 그럴 때 나는 무슨 희망으로 무얼 붙들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성경말씀말고는 답이 없다. 그래도 우울하다. 성경을 매일 읽고 묵상을 하고 필사를 하고 외우고 매일 가정예배를 드려도 힘든 건 힘든 것이다. 나의 고난은 언제 끝나는 건지 답답하기만 하다. 술도 안마시고 혼전순결도 지키고 성경에 나오는대로 지키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나의 앞길은 탄탄대로이고 하나님이 전부 알아서 잘 해결해 주실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병자이고 백수이고 모솔이다. 나처럼 하나님밖에 모르고 집중하고 전부를 드리고 싶은 사람이 고난의 고난의 연속이면 나를 보고 하나님을 누가 믿고 싶을까,,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데 왜 그러냐고 하는 얘기를 잘한다. 하나님은 나한테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건지 모르겠다. 신앙이 좋은데도 왜 그러냐 너가 고치거나 다듬어야 할 인격적이거나 행동패턴이 있을 거다라고 비난을 받는데 그렇게 윤리도덕적으로 높은 기준이 아니라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은 천지이다. 지금 너무 힘들어서 매일매일 울고 싶지만 그래도 난 하나님을 배반할 수없고 하나님과 멀어 질 수 없고 하나님께 매일 기도할 수 밖에 없다. 안 그러면 더 힘들어 지고 죽을 것 같다. 아쉬운건 나이기 때문이다. 나의 기도가 정말 산을 옮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읽었다. 이 책으로 큐티를 하면 될만큼 하나님에 대해서 깊은 내용들이 많다. 요즘 듣는 성경으로 잘 때마다 듣고 있는데 하나님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서 유심히 듣고 있다. 하나님은 기분이 좋아하시기도 하고 분노를 내시기도 하고 거짓말을 싫어하시기도 하고 슬퍼하시기도 하고 후회를 하시기도 하고,,,, 하나님은 오만가지의 모습을 가지고 계시고 양파같은 분이시기도 하다. 평생 그 분에 대해서 알아 가야 할 것 같다. 광야가 너무 불행하고 하나님이 침묵하셨다고 왜 그러시냐고 원망을 했지만 기도를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한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 2가지의 전제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장하기를 바라시고 우리는 전쟁중에 있는 상태이다. 이 전제에서부터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 매일 기도를 하고 가정예배를 드리고 큐티를 하고 묵상을 해도 왜 난 응답을 받지 못하는지 하나님밖에 모르고 성경이나 하나님말씀대로 하나님뜻대로 살려고 그렇게 애쓰는데도 왜 난 응답을 받지 못하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성경을 읽고 있지만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해서 불행하고 답답하고 우울증까지 오려고 하고 믿음이 흔들릴려고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계속 물었지만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하나님이 나한테 왜 그러는지 날 미워하시는 건가 나의 자아가 너무 강해서 쓰지 않으시는 건가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시는 건가 다른 사람을 쓰시려고 작정하시는 건가. 인류역사상 가장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법조인이 되고 싶어서 끝까지 투병중에도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아무 답도 안 하시고 나의 삶에 역사를 안하시려고 하시는 건가 하나님은 날 이렇게 비참하게 그냥 내버려 두시려는 건가. 하나님은 왜 날 하나님께 많은 질문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답답함과 억울함들이 아주 조금 해소되는 것 같기는 했다. 저자는 하나님께 기도를 할 때 경건하게 했지만 요즘에는 큰 소리로 감정을 담아서 기도를 한다고 한다. 나도 기도를 할 때 부탁도 하고 자질구레한 것, 사소한 것 , 짜증, 답답함, 슬픔, 화남, 모든 것들을 다 기도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하나님의 사랑을 엄청나게 받고 하나님과 딱 붙어서 살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그런 것들이 흔들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광야시절에 하나님이 더 역사를 하실 수 있고 나를 더 다듬을 수 있고 나를 더 멋진 여성으로 만드실 수 있고 세상이나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라게 나의 상황이 해결거라고 믿게 되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응답은 성경, 설교 이런 신앙서적, 꿈 ,주변 환경 ,직접 음성등 하나님의 응답은 무한하시다. 하나님은 한계가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기도를 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어떤 대상에게 왜 기도를 하는지 잘 알아야 한다. 성격책은 너무 옛날에 지어져서 시대와 맞지 않는 표현이나 지침이 많아서 요즘 만들어진 신앙서적을 참고하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 수다, 사랑의 표현이라고 하지만 최고로 많이 하는 이유가 간구에 있는 것 같다. 요즘 세상에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 계신데 왜 다리는 무너지고 왜 성범죄자는 이렇게 많아지고 왜 기근이나 지진은 있는 건지 하나님이 손을 놓으신건지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거냐는 얘기를 많이들 한다. 로스쿨학원강사도 하나님이 없으니까 자기가 하나님욕을 하는데도 벼락을 안 맞는다고 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은 관심이 없으시고 유기를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벌을 내려도 관심이나 신경을 쓸만한 사람에게 역사를 하시는 것 같다. 만약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이 지구와 우주는 아예 폭발하거나 분열해서 존재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우주가 돌아가는 것은 너무 세밀하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끝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살아 계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목숨을 걸고 구원하셨고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믿고 기도를 해도 되는 것이다. 그런 점은 안심해도 된다는게 위로가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부모, 자식 ,연인, 친구,동반자, 동역자같은 관계이기 때문에 뭐든지 기도해도 되는데 그런 걸 모르는 사람은 정중하고 거룩하게 기도를 한다. 그럴 필요가 없다. 종의 마인드를 버려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바로 옆에 계시고 뭐든지 항상 듣고 계시기 때문이다. 난 하나님께 기도를 해서 많은 것을 얻고 싶고 나의 상황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정말 많다. 사실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하나님과 멀고 지고 싶지는 않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산을 옮기거나 응답을 받는 기도는 감정뿐만 아니라 모든 울분을 다 쏟아서 기도를 하는 것이다. 문제를 바라 보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 봐야 하는 것이다. 다니엘서를 보면 다니엘이 금식기도를 하는데 천사가 오는 시간이 늦춰줬다고 하는데 이 세상이 영의 전쟁터가 되었기 때문이다. 기도나 신앙서적을 읽을 때 저자가 신뢰가 가야 하는데 존 엘드리지는 아직은 신뢰가 간다. 이 책을 가지고 매일 큐티를 하고 기도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 가고 싶다. 항상 어떤 책 한 권을 읽고 나의 삶이 완전히 바꼈으면 하고 기대를 할 때가 많았지만 내가 변화되어 가는 것은 차츰차츰, 서서히였다. 어쩌면 극적인 변화나 기적처럼 나의 삶이 바뀌기를 원하고 책을 읽지만 항상 여러 권이 쌓여야지 마음의 변화나 행동이 아주 조금씩, 천천히 변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겪고 기도가 산을 옮기기도 하지만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라는 것이 더 소중한 것이다. 기도에 대한 것은 나의 삶이 끝나는 날까지 평생의 과제이다. 이 책도 나의 과제를 도와 줄 귀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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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옮기는 기도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저자 : 존 엘드리지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내 기도에는 어떤 권세가 있는지 기도에 대해 아직은 자유롭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 풀지 못한 숙제처럼 나에겐 믿음의 강력한 무기인 이 기도가 나에겐 뗄 수 없으며 나와 함께 해야만 하는 그런 기도에 좀 더 알고 싶었다. 지금 내 기도는 부끄러울 정도로 미성숙하다. 그리고 기도에 대해 몇가지 오해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을 보면서 잘 다듬어지지 않은 내 기도를 다시 수면 위로 꺼집어 보고 스스로 진단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런 기도의 역사가 내 삶에 간증이 되길 원하고 기도의 뜨거움이 나의 삶이 되길 원하기에 이 책을 읽는 시간이 나에겐 숙제라기보다는 반드시 풀어야 할 암호처럼 그렇게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우선 나는 지금 어디로 시선이 향해 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사실 우리 앞에 있는 문제, 기도하도록 만드는 위기를 바라보는 것이 맞지만, 우리가 보지 말아야 할 것들에 더 많은 마음을 쏟는다. 그래서 기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문제임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기도의 역사가 일어날까. 우리가 기도하려는 것은 이 세상이라는 어지럽고 숨 막히는 광란의 매트릭스에서 나오는 것이다. 평온을 찾고 예수님을 응시하며, 그분에게 시선을 고정하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그분에게 정렬하고 조율해야 한다. 이 일에도 시간이 걸린다. 기도의 초반부 상당 부분이 중보라기보다는 우리를 하나님 그리고 그분의 나라에 조율하는 데 쓰인다. 이렇게 하고 난 뒤에는 성령님께서 기도하도록 이끄시는 일들이 무엇인지 알아가기 시작한다. 사실 내가 발을 딛고 사는 이곳이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 전쟁터이다. 그 안에서 나는 세상의 많은 유혹들과 늘 함께 공존하고 있으며 이를 뿌리치지 못하고 나태해질 때가 많아 기도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서는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나 내 삶에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는지 이 세상을 살면서 이를 온전히 깨닫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이유로 기도하지 못한 것도 회개하게 되었다. 어떤 이유가 있든지 반드시 기도해야 함을..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음성을 분별하는 법을 배워나갈 때, 하나님은 이 깊은 깨짐을 수면으로 올라오게 하실 수 있다. 온전함은 생애 전체를 통해서 예수님과 더불어 동행할 때 우리 안에서 커져가는 그 무엇이다. 그 치유의 과정들을 나또한 함께 하고 싶다. 기적과도 같은 산을 옮기는 기도가 과연 내 삶에도 가능할까 의심이 되었다. 내 기도의 응답은 겨우 이정도일뿐인데 엄청난 역사가 있는 기도라니.. 사실 마음의 불신이 더 컸고 나와는 상관없는 기도의 권세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그 사람이 되고 싶다! 믿음과 기도로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고 싶다! 지금 내 죄를 하나님께 고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매일 매일 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으며 산을 옮기는 기도가 내 기도가 되길 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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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어려운 부분 중에 하나가 기도이다. 성경을 읽고 찬양을 드리는 것도 물론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기도와 비교한다면 상대적으로 쉽게 이루어진다. 기도가 찬양이나 말씀 묵상보다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나처럼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에게 기도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나의 삶 가운데서 꼭 필요한 부분들을 위해 기도하기는 하지만 때로는 그 기도조차 올바르게 하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어떤 때는 기도가 완전히 형식에 치우쳐 기본적인 부분만 기도하면 더 이상 기도할 거리가 없어지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기도하는 시간이 어떤 때는 채 5분이 넘지 않기도 한다. 어떤 때는 기도하려고 눈을 감고 있지만 아무런 기도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존 엘드리지의 <산을 옮기는 기도>는 그런 점에서 분명하게 우리에게 선포한다.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하나님께 여쭈라고. 성경에서도 말한 이 부분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내 가슴 깊이 다가왔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는 듣고 응답하신다는 것을.
저자는 기도를 아빠와의 대화처럼, 친구와의 대화처럼, 파트너와의 대화처럼 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노력하라고 한다. 저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내 앞의 문제에 대하여 항복하는 것, 즉 전적인 포기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열쇠라고 한다.
쉬운 듯 어렵다. 아직까지 내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해서 그런가보다. 매일의 삶에서 기도를 드리기보단 그저 필요할 때만 드리는 기도 생활을 해서인가 보다. 기도하면서도 마음 한편엔 여전히 나 자신의 해결책을 내세우는 교만함이 있기에 그런가보다.
기도는 말 그대로 가장 확실한 믿음의 무기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은 무기라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모른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내게 주신 주님의 가장 큰 무기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 그 사용법이 바로 이 책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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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면서 뗄래야 뗄수 없는 영적호흡인 "기도" 그런데 기도의 중요성은 모두 힘주어 말하지만 그 "기도"를 제대로 가르쳐주는 이는 거의 없다. 물론 성경에 그 답이 나와있음을 안다. 하지만 그게 기도를 처음 시작하는 이들에게 과연 얼마나 실제적으로 와닿을까? 제 자신의 경험으로도 너무 막연하고 모호하여 그 경계를 구분짓기가 어려웠다.
어떤 분들은 응답 받지 못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고 한다. 그렇지만 내게는 하박국서의 고통의 문제나 시편의 악인의 형통만큼 어렵게 들렸다.
"기도"에 관한 책들은 정말 많~다. 그러나 중요한 건 자신의 심령을 울리며 기도의 무릎을 꿇게하는 책이 아닐까?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믿음이 없어서인가 하며 수없이 자괴감에 싸워나가는 시간들속을 지나오면서 그렇게 정답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는 경주를 하는 것같은 느낌이였다.
지금도 정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정답이 아닌 하나의 해답을 찾아가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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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우리교회 집사님의 전화였는데 울면서(분노에 의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믿는다는 게 뭐냐고, 신앙생활이란 게 뭐냐고, 왜 교회에 분란을 일으키고 없는 말 지어내는 사람들에겐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고 열심히 헌신하는 사람과 기도하는 사람들만 늘 이렇게 힘이드냐고, 하나님은 진짜 계시냐고...
사람들은 기도한다.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 남편의 승진을 위해, 자녀의 안전과 시험 혹은 취업을 위해, 병을 고치기 위해, 어려운 살림살이 때문에 등등. 그리고 자신이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며 섬기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거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자주 실망한다. 헌금도 하고 봉사도 했는데 게다가 기도도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병에도 걸리고 위험이 나를 피해가는 것도 아니고 믿지 않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걸린 맹장염 역시 기도가 아닌 병원에서의 수술로 고칠 수 있는 것을 보며 믿음을 갖고 있음으로써의 이익 같은 게 없는 거 아니냐며 낙심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이해되지 않는 그 상황을 합리화하기 위해 나름의 이해를 한다.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우리 삶에 개입하시지 않는다거나, 우리가 바르게 구하지 않았다거나, 아직 때가 아니라거나... 그리고 이 책에서 이야기 하듯이 예수라는 복권에 숫자를 써 넣은 듯이 기도를 한다. 들어주시면 좋고 아니면 할 수 없고... 성경에 나오는 엘리야 같은 사람은 우리와 다른 사람일거라 생각한다. 다니엘이나 엘리야 같은 사람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고 그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직접적인 개입을 많이 하셔서 기도를 더 잘 들어주신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그렇다면 왜 어떤 기도는 성취되고 어떤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는것일까. 이것에 대해 이 책의 저자는 17장에 걸쳐 이야기하고 있다.
기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기도하는 우리는 누구인지, 무엇을 기도할 것인지 등등.
그런데 솔직히, 다 읽고 난 지금도 기도가 어렵다. 책에서는 뭐랄까 나로서는 좀 생소하다 싶을 만큼 권세있는 기도를 들려주는 느낌이 들었다. 기도라기 보다는 선언이나 선포처럼 들려서 그랬던 것 같다. 또한 저자는 종종 책과 영화를 인용하여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데 음.. 나 역시 C.S. 루이스를 좋아하긴 하나 모든 기독교단에서 다 논란없이 수용하기에 적절하고 합당한가에 대해 약간의 우려가 있었달까.
그러나 우리의 모든 것을 성별하고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과 연합하여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 하나님 앞에 여쭙는 것, 끝까지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마음에 다시 되새겨보았다.
어느 날 밤, 내게 울면서 전화하셨던 그 집사님의 이야기를 듣던 순간 나는 필사적으로 짧게 기도했었다. 지혜를 구하는 기도. 한 마디도 허투루 하지 않고 실족하게 하지도 않을 대답이 당장 내게 필요해서였다. 그러나 내겐 믿음도 지혜도 없을 뿐이고. ㅠㅠ 간신히 이야기 한 것은 이것이었다. 기도하고 믿기만 하는 것으로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이 탄탄대로에 안전하고 좋은 일만 생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예수님의 제자들도 바울도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참수당하거나 십자가를 지셔야 했다고.
이 책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P. 256 바울은 초기 기독교라는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싸울 때, 몹시 곤혹스러운 기도 응답이 주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사람들을 고쳐주었다. 귀신들을 내쫓았다. 수많으 사람에게 구원을 소개했다. 죽은 사람이 그로 인해 살아났다. 하지만 그는 돌에 맞아 시체처럼 버려졌다. 세 번이나 배가 파선했다. 다섯 번은 39대의 태형에 처해졌다. 수없이 많이 불면의 밤을 보냈다. 더위, 배고픔, 추위로 고생했다. 하늘이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도 이렇게 살았다. 그는 숭고하고, 능력 있고, 승리를 국하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바울은 은퇴한 후 하와이 같은 낙원에서 살아보겠다는 꿈을 꾸지도, 그렇게 살지도 않았다. 그가 아는 낙원은 단 한 군데뿐이었다. 우리는 아직 그곳에 이르지 못했다. 이 세상이 부분적이라는 사실이 섭섭하지 않은가? 기도 중 일부만이 응답된다는 사실 앞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살 수 있는가? 진정한 성숙이 필요한 대목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 나라의 길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키우시는데 이 성장의 목표는 고통 없는 삶이 아니다. 오히려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품을 조성하신다.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도 그분을 택하고, 우리 안에 예수님의 성품을 새기고, 예수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삶을 사는 것. 그리고 기도하는 한 생명은 지속되는 것이며 기도하는 한 하나님께서는 온전하고 완전하게 다 이루실 것임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 뜻 가운데 이루실 것임을 믿으며 기도할 뿐.
다 읽고 나니 기도가 아닌 믿음에 관한 이야기 같았다. 산을 옮기는 믿음에 관한 것 말이다. 그 믿음의 가장 확실한 무기인 기도에 대해 들려주고 있는 책이다. 산을 옮기는 기도. Moving mountai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