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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살면서 처음으로 내 돈 주고 사 본 시집이다. 어릴 적 <입 속의 검은 잎>이라는 시집의 제목을 듣고 ‘우와 완전 멋있다’라고만 생각했을 뿐, 마음이 동해서 읽어 보고 싶어 하거나, 사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다. 게다가 ‘시’라는
문학을 얼마나 어려워하는가. 학교 교육을 어렵게 여겼던 탓이겠지. 요즘
SNS를 통해서 말장난 같은 시, 혹은 현실을 멋지게 혹은
재밌게 풍자한 시들도 많지만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도 끌려 하지도 않는 편이다. 그런 내가 우연히 본
‘시인의 말’에 홀딱 반해 덜컥 구매했다.
어떻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시인의 말을 곱씹으며 읽고 또 읽었다. 마음이 아린다. 문학의 능력이리라. 울컥 하기도 한다. 말의 힘이리라. 괜히 실실 대기도 했다. 느껴지는 마음의 영향력이리라. 그렇게 이 한페이지만 읽기 위해서
책을 산 것처럼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천천히 읽어 내려간 본문의 시들도 좋았다. 꽤나 인기 있는 시인이라고 한다. 이미 유명한 시인이라더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냥 읽었다. 한 구절 한 구절 그런가보다
하고 읽었다. 그냥 좋았다. 시를 읽고 있다는 게, 잘 모르지만 이제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즐기며 읽었다.
마지막에 문학평론가가 쓴 해설서를 읽으며 아, 시를 이렇게 읽어야 하는 구나 하고 깨달았다. 정말 꼼꼼히 읽으며
시인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보며, 한 구절이 어떤 의미가 될 수도 있는지 까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 시인이 살아온 삶을 알아야 시가 더 잘 보이는 것도 맞는 듯 하다. 해설서가
정답은 아니겠지만, 일단은 시를 읽을 때 어떤 자세로 읽으면 좋을 지도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가끔 작가가 그런 의도로 쓴 게 아닌데, 마음대로 해석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을 많이 했던 터라, 거부감이 살짝 있다.)
첫 시집으로 꽤나 마음에 든다.
내 인생 첫 시집 치고는 꽤나 통속적이고, 노골적이고 사실적인 것 같지만, 그것이 인생이니까. 시 읽는 사람도 곧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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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이별》 은 류근 시인의 시집이에요. 문학과지성 시인선 489 번째 책이에요. 시는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이에요. 왜 하필 이별이었을까요. 제 머릿속에 이별은 사람과의 헤어짐이 먼저 떠오르지만 시인에게 이별은 다른 의미였네요. <어떻게든 이별>이라는 시에서, "... 어제는 어제와 이별하였고 오늘은 또 어제와 이별하였다 아무런 상처 없이 나는 오늘과 또 오늘의 약속들과 마주쳤으나 또 아무런 상처 없이 그것들과 이별을 결심, 하였다" (24p) 라고 이야기하네요. 진짜 시인은 아무런 상처 없이 이별했을까요. 그럴 리가 없죠. 마지막 연에서 "그러니 나의 이별을 애인들에게 알리지 마라 너 / 빼놓곤 나조차 다 애인이다 부디, 이별하자" (25p) 라고 한건 어찌할 도리 없는 삶의 고통을 표현한 게 아닐까요. 어떻게든 이 별,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은 이별을 피할 수 없으므로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은 듯이 이별하라는 뜻이겠지요.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라는 시에서는 "파도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 파도의 굳은살이 조금 보이는 것 같았다" (38p)라고 한 것도 같은 의미일 거예요. 파도는 밀물이라고 기뻐하고 썰물이라고 슬퍼하지 않듯이, 이별도 파도처럼 받아들여야 할 순리이겠지요.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 가사에서도, "또 하루 멀어저져 간다 ...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 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진짜 서른 즈음에는 몰랐던 노랫말의 감성을 요즘에서야 제대로 음미하고 있어요. 이별을 좀 알만한 나이가 됐나봐요. 그럼에도 삶이 버거울 때는... <굳센 어떤 존재 방식의 기록>이라는 시를 읽어보세요. "...아아, 모든 구토하는 것들은 미리 먹어둔 게 있다" (113p) 시인은 우리에게 그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네지 않지만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듯 흔들리고 아파하는 자신을 숨김 없이 보여주고 있어요. 모두들 보아라, 불행했고 행복했노라. 우리 역시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을 뿐이에요.
시인의 말
당신 만나서 불행했습니다. 남김없이 불행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이 불행한 세상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있어서 행복했고 사랑하는 사람 당신이어서 불행하였습니다.
우린 서로 비껴가는 별이어야 했지만 저녁 물빛에 흔들린 시간이 너무 깊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서로를 붙잡을 수밖에 없는 단 한 개의 손이 우리의 것이었습니다. 꽃이 피었고 할 말을 마치기에 그 하루는 나빴습니다.
결별의 말을 남길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당신 만나서 참으로 남김없이 불행하였습니다.
- 2016년 8월 다시 감성마을 慕月堂 모월당에서 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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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기억도 추억도 아니길 바랍니다 어떤 계절에 내린 비 어떤 가을날에 떨어진 잎사귀 하나쯤의 일로 고요하게 지나간 날들이길 바랍니다 지나간 날들이 당신에게 슬픔의 기록으로 남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당신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지는 않겠습니다 살아서 다시는 서로의 빈자리를 확인하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서로의 부재가 위안이 되는 삶이길 바랍니다 너무 늦게 이 별에서 너를 만났다 시구절 하나하나가 너무 마음에 남아서 오래 기억될 것 같아요 많이 사랑했지만 헤어진 그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제 마음 같아서 너무 좋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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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그 시인의 첫 시집 <상처적 체질>을 우연히 만나서.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또 듣는 것 처럼 시들을 다시 부르고 들었다. '상처는 나의 체질..' 이라는 싯구 처럼, 삶에서 시에서 상처 받고 삶을 통해 시를 통해 치유하는 듯 보이는 류근 시인의 두번째 시집 <어떻게든 이별>이 6년만에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달려가서 구입한 책. 무심코 열어 첫번째로 내 눈에 들어온 시를 혼자 읊조려보는데. 눈물이 한방울 주루룩 흘러내린다. 아무런 뜻도 없이 꽃이 피고 비가 오는 날들이 우리에게서 기억도 남기지 않고 지나가 버린 것은 아닌지. 오늘 밤엔 명왕성에 무사히 당도하여 기억을 찾게 될거 같다..
명왕성 이후 잊혀진다는 건 내가 먼저 이 별에 가자고 했다 그러나 내가 먼저 왔고 우리 이 별에서 아무런 뜻도 없이 너무 늦게 이 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