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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한번씩이지만 이런 근사한 소설을 만날때면 글을 정말 잘 쓰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욕망에 휩싸이곤 한다. 이 위대한 소설을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해서 전달해줄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비록 그 욕망은 희망사항일 뿐이지만 그래도 이런 책을 만날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던 것처럼 처음엔 정말 책 두께에 압도당해 버린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현실을 조명해내는 글에 빠져 있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젊은 여류 작가가 썼다고 하는데 권위있는 부커상 수상에 걸맞게 정말 멋진 작품을 탄생시켰다.
은퇴한 늙은 판사 제무바이와 그의 손녀딸 사이, 몰래몰래 술을 팔아 뒷돈을 챙기는 요리사...그리고 판사이 낙이자 기쁨을 갖다 주는 유일한 존재 무트, 이렇게 네 명이 어쩌면 평화롭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 같이 시작하더니 정신없이 과거를 오가며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의 글은 아주 독특하다. 궁핍하고 혼란한 인도를 이야기하면서도 진지하거나 심각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아이러니한 유머와 풍자로 소설을 더 현실적으로 와닿게 만든다. 카오스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도는 지금 개인에게, 가정에, 나라에 닥친 위기와 혼돈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영국인을 동경하는 젊은 시절 제무바이는 아내에게 모욕과 치욕을 주며 버리면서까지 자신의 나라를 부정하고 결국 재판은 권력자의 굴욕으로 끝난다는 씁쓸함만 마음에 상처로 담고 칼링퐁의 '초오유'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다. 그런 그에게 맡겨진 버림받은 손녀딸 사이, 그 혼란 속에서도 가정교사 지안과 사랑을 키워나가는 이 16세의 소녀는 자신의 정체성과 애인 지안의 젊은 혈기 사이에서 방황하고 또 방황한다.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내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는 사이지만 지안은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든 열강에 반대하는 젊은 시위대에 몸 담고 싶어하는 정의와 분노로 끓어오르는 중이다. 서로에게 기적이 될 수 없었던 사이와 지안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모순을 반영하는 서로에게 불쾌한 거울이 되어 상처를 준다. 지안은 폭력시위대(GNLF)가 되어버린 청년들에게 지안은 제무바이의 집에 총과 식량이 있다는 것을 발설하는 실수로 제무바이의 집은 습격을 당하게 된다. 아들을 미국의 요리사로 보낸 제무바이의 요리사는 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행복하다. 꽉 막히고 단절된 전형적인 아버지이자 인도인의 모습을 보여준 요리사와 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미국의 할렘가에서 죽을 고생과 온갖 모욕을 견디며 돈을 번 비주는 작가의 말대로 강대국 속에 인도, 세계화 속의 인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의 기대와 사람들의 부러움을 품에 안고 미국땅으로 갔지만 꿈이 이루어지기는 커녕 속박되고 억압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는데 고국 역시 상처입은 비주를 끌어안아 주기에는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무트를 잃어버리게 된 판사는 미칠 지경에 이르고 아내에 대한 죄책감과 모든 것에 대한 분노로, 지안을 잃고 물려받을 것이라곤 정말 상실밖에 없는 사이는 순수한 좌절로, 그리고 고국에서 더 큰 절망감으로 점철될 미래를 예견하듯 폭도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주의 모습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요약을 하기에도 엄청난 분량인 이 소설은 정말 특별하다고 말하고 싶다. 불행하고 고독한 개인들에게 다가오는 고국의 현실과 상실감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춤추듯이 너풀거린다. 신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의 상실감은 더욱 커지고 그들의 인생과 의식은 위축되며 그로 인해 또다른 상실을 낳는다. 카스트제도, 불교, 흰두교, 온갖 종교와 신분제도가 국가의 발전을 방해하는 요소로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사회시간에 배워서 알고 있었지만 인도라는 나라를 소설로 만나보니 나는 참 행운아란 생각이 들 정도이다. 미국과 영국을 동경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현실 사이의 틈은 좁히기엔 너무나 많은 고통과 희생이 따르고, 몰아닥치는 변화의 바람은 인간을 바꾸어 버렸다. 지고 있는 세대 판사와 요리사의 쓸데없는 고집과 권위, 그리고 무능은 자라는 사이와 지안, 비주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 그 어떠한 희망도 약속도 줄 수가 없다. 각자가 지금 느끼고 있는 상실을 견뎌내는 것만도 비극이다. 인도문명의 파괴와 사회의 문제점, 그리고 이민과 인도를 휘청거리게 하는 서구적 가치의 모순 등을 날카롭게 조명한 이 책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실감했을 것 같다. 젊은 여성의 작품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뚝심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멋진 소설을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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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생소한 도시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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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첸중가가 내려다보는 조용한 산골마을 칼림퐁, 그 안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초요유'. 이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와 평생을 얼굴에 분을 바르며 권위있어보이려 노력했던 전직 판사인 늙은 할아버지의 곁에는 사람도 돈이 없어 못사먹는 고기를 넣은 끼니를 매일 먹으며 튼튼한 몸매를 자랑하는, 왠지 사람처럼 보이는 암캐 무트가 자리를 잡고 있다. 실내와 실외의 온도차가 거의 없는, 아니 실내가 더 추울지도 모르는 오래된 건물안에서 요리사는 독기오른 전갈을 조심해가며 불을 붙이고, 이런 정적인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십대 소녀 사이는 자신을 가르치러 올 그리고 사랑하는 가정교사 지안을 기다린다. 하지만 기다리는 지안은 오지 않고, 초요유에는 한떼의 젊은이들이 들이닥쳐 판사 제무바이의 오래된-녹이 슬고 작동도 잘 되지 않을- 소총들을 강탈해간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고 난 뒤에는 커다란 혼란만이 남는다. 이 이야기는 조용하고 평화로와보이는 산골 조그만 마을에서 일어난 총기강탈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고, 영국과 미국, 인도를 넘나드는 거대한 이야기로 발전해 나간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그리고 그린카드를 얻기위해 목숨을 거는 인도인들이 넘쳐나는 미국. 수십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었지만 과거의 인도나 현재의 인도나 별반 다를 것이없다. 오히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혼란만이 가중되었을 뿐이다. 거기다 인도 내부 사정도 악화될 대로 악화되어 한 곳의 땅을 놓고 종족별, 나라별, 인종별로 편이 나뉘어 서로 자기땅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상황은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작가 키란데사이는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미국에서 집필활동을 하고있다.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작품안에 잘 녹여내고 있다. 작가는 이른바 '좋은'부모를 만나 영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살면서 자신의 문학적 토양을 기름지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상실의 상속]이라는 작품을 써낼수 있었다. 인도라는 거대한 국가의 국민으로 태어났음에도,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 오래되었음에도, 그들은 아직 가난하고 영국의 식민지 잔재를 털어내기도 전에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 아래에서 다시한번 휘둘리고 있다. 키란데사이가 인도인으로서 미국과 영국, 그리고 인도를 모두 경험하면서 이러한 혼돈에 주목을 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식민지 잔재에서도 아직 자유롭지 못하고,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 앞에서도 그들은 한 풀 숙이고 들어가야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인도 국내에서도 서로 단합하지 못하고 서로를 증오하고 저주하며 죽이려든다. 누구하나 잘 난 것도 없고, 더 가진 것도 없는 입장에서 말이다. 결국 키란데사이는 [상실의 상속]을 통해서 대를 이어, 시간을 타고 흐르는 그러한 혼돈 - 그 혼돈의 시작은 영국의 식민지배였을 것이다. - 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미 잃어버린 것이 시간에 따라 다시 회복되거나 충족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한 결핍만을 부르면서 유전되고 상속되어가는 인도의 현실을 그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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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학기에 들은 수업 중에, 서양문화의 유산이란 수업을 들었다. 수업 중, 내가 무척에나 재미있게 봤던 영화 300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었다. 300에 나오는 페르시아인들은 동양을 대표하고, 그리스인들은 서양을 대표하는데, 그들의 모습 속에서 서양위주의 사관을 발견 할 수 있다고. 하나 같이 괴상하다 못해 흉측한 그들을 베는 그리스인들을 보며 우리는 통쾌함을 느끼지만, 사실은 치욕을 느껴야 한다는 교수님의 열변을 듣고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보면서 오리엔탈인들의 만족감을 서양위주의 세계 속에서 찾으려 하는 것이 큰 상실을 느끼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상속이란 제목의 부분에서 보여 지듯, 이 책은 혈연과 지연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구성으로 되어있어, 읽다보면 '토지' '삼대'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음울한 분위기와 축 늘어지는 듯한 기분이 이 책의 결말에 말할 상실에 대해 암시하는 것 같다.
인도에 여행을 가기전에, 그 들의 품성에 대해 들은 바가 몇 가지있다. 뭐 외국인들에게 엄청 횡포를 부린다는 것과, 빈부가 극심하게 차이가 난다는. 그리고 그들의 관념속에 계속해서 내려온 종교 그리고 민족간의 암투로 인한 다툼이 심하다는 것. 이 책 속의 첫 부분에 판사의 몰락을 바라보는 하층계급 사람들이 그를 보고 고소해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 모습이 왜이리도 부자를 바라보는 우리나라사람들의 시선과 비슷했던지.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한국인의 모습들이 오버랩 되었던 것은 왜일까.
사이의 외할아버지인 제무바이, 사이 그리고 요리사의 자식 비주. 이 세사람의 이야기들 속에서 무엇인가 찾기 위해 애를 썻던 사람들이 결국 느끼게 된 것은 서구세계중심사관에서의 상실감과 박탈감이었다. 영국에 가서 공부를 하며 지독한 차별과 천대를 받았던 판사 제무바이, 개방이라는 문구로 들어온 서구의 문물들에 저절로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지만 지안과의 말 다툼속에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혼란, 그리고 미국에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린카드가 없어서 다시 돌아오게 된 요리사의 자식. 나만 그런 걸까? 한국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은 듯한 것이, 무척 가슴 속에 무거운 돌을 하나 던져주는 것같다.
히어로즈라는 미국 드라마를 즐겨본다. 새로운 인류 종에 대한 연구를 하는 인도인이 인도에서는 대학교수라는 초고위 엘리트 였지만, 미국으로 와 실험을 하면서, 근근히 먹고 사는 택시기사를 하는 설정으로 나온다. 직업의 높고 낮음과 귀천따위는 없다는 사람인 나지만, 딱 보는 순간 '정말 인도인이 많은 것을 버리고 왔구나~'라고 합리화를 했던 생각이 든다. 요즘들어 새로운 시즌으로 나오는 이 드라마를 보며, 나는 '결국에 서양 속에서 해야하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라는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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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인도의 유명 작가 '아니타 데사이'의 딸인 키란 데사이가 8년의 시간을 거쳐 완성한 작품으로 2006년 최연소 여성작가로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영국의 맨부커상의 영예를 안긴 작품으로 인도 사회가 안고 있는 '상실'을 그려낸 키란 데사이의 장편소설이다. 그녀의 아버지 역시 인도의 유명 작가인 아니타 데사이이다. 세계화와 이민 등의 문제를 내세운 날카로운 정치의식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은 1986년 즈음의 인도, 서벵골주의 북부에 있는 칼림퐁 주변이다. 칸첸중가의 최고봉이 바라다 보이는 이 곳에서, 17살의 소녀 사이는 판사직에서 은퇴한 외조부 제무바이와, 요리사 그리고 외조부의 애견인 무트와 함께 살고 있다 . 등장하는 그들은 동족이며 가족이면서도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사이는, 부모님이 구 소련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신 후, 기숙제인 수녀원 부설학교에 있다가 유일한 친척인 외조부가 살고 있는 이곳으로 왔다.
외조부 제무바이는 영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고 판사직까지 지낸 엘리트이다. 그는 “공부야말로 그가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영국에서 맛보아야 했던 것은 지독한 열등감이었다. 그는 이로 인해 인도인을 극단적으로 싫어하게 되었다
힌두어밖에 할 줄모르는 요리사는 아들 비주를 힘들게 미국으로 보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요리사는 순종을 가장하면서 오랫동안 판사곁에서 시중을 들어 왔다. 뒤로는 밀조등을 해서 아들 비주를 미국으로 출국시키고, 그 아들에게서 오는 편지를 가장 큰 낙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미국보다 인도에 먼저 아침이 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비록 자신은 이곳 히말라야에서 힘들게 살아가지만 미국으로 보낸 아들 비주에게는 다른 세상이 열릴 거라 기대한다. 그의 아들 비주는 세계 각지에서 온 불법체류자들이 일자리와 성공을 갈망하며 모여드는 뉴욕에서 여러가지 경험을 한다. 똑같은 처지의 파키스탄 동료와 결코 잘 지낼 수 없는 업보처럼. 상실은 그 땅을 떠나서도 여전히 대물림되고 있었다. 비주는 핫도그 가게에서 일하는 불법 이주 노동자다. 언제 붙잡혀 강제 송환될지 모른다. 비자가 없는것이 들통나면 가게에서 당장 해고 된다. 그는 저임금의 일자리를 찾아 곳곳을 전전하는 불안한 삶을 살면서도 ‘그린카드’를 꿈꾼다.
겉으로는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 소설속의 등장인물들에게는 굴욕의 경험이 있다. 거의 다 서양과의 만남으로부터 상처와 열등감을 얻었다. 상실의 유산이 대물려 상속되고 있는 나라에서 살면서 서양의 경제적,문화적 힘에 정복된 수백년의 세월을 보여준다. 인도 사회가 안고 있는 '상실'을 그려낸 키란 데사이의 작품세계는 인도 사회 내에서 서구화된 인도인, 계급 사회를 체념하거나 부정하려는 인도인, 희망이 없는 인도를 떠나려는 인도인 등 삶을 통해 대물림되는 상실의 유산을 그리고 있다. 영국이라는 대제국에의해 식민지를 겪은 기성세대는 ‘제 영혼을 파멸시키면서 배운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도인들’로, 쓸모없는 인간이 됐으며 지안 같은 젊은이들은 소수민족의 독립운동에 가담해 자신의 분노와 좌절감을 터트린다. 세계 역사에서 서구 지배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서구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서구는 앞으로도 수십 년동안 가장 강력한 문명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에 의한 세계화는 특정 계층의 인도인들로 하여금 국제 노동 시장에서 값싼 노동력의 제공자로 방황하게 하여 고향을 상실한 사람들로 전락시켰지만 세계 역사의 방향은 거대한 아시아의 근대화 행진에 서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근대화의 확산을 환영하고, 받아들이고, 보다 개방적인 세계질서를 향해 아시아와 함께 일할 수 있기를 바라고 싶다. 제국주의에서 경제적 세계화까지 넓은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이 소설은 두꺼운 부피만큼이나 다루고 있는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소설로 기억될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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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출판 되었을 때부터 극찬한 책이라 몇 달이 지난 지금 읽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서 부커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 키란의 어머니 아니타 데사이도 유명한 작가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이 책은 저자의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 <구아바>도 베티태스크상을 받았다던데, 읽어보고 싶어진다.
이 책의 부제를 “나는 이방인이다”라고 붙이고 싶다. 이 말은 주인공 제무바이가 영국 유학을 마치고 다시 인도에 돌아 왔을때 한 말이다. 제무바이와 다른 주인공들의 상실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사이 - 처음 초오유에 와서 요리사와 의사소통도 되지 않고, 할아버지와 대화도 거의 없이 생활하면서,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아니, 그녀의 홀로서기는 수녀원 기숙사에 있을 때부터 시작 되었을수도 있다. 이 생활은 어린 사이에게 가족의 상실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판사 제무바이- 영국에서의 유학 생활 중, 인도인과의 교류를 싫어하는 영국인들 사이에서 이방인임을 느끼고, 다시 인도로 돌와왔을 때 변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양쪽 모두에 자신이 속할 수 없음을 느낀다. 유학 생활 중 말을 하지 않아서 발음이 어눌한것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서 더더욱 말을 하지 않게 된다. 열심히 공부했으나 300점 만점에 최하위점수인 100점을 획득했을 때의 상실감으로 꼬박 삼일을 울었다고한다. 인도에 다시 돌아왔을때 자신 우월주위에 빠져서 가족들을 돌아보지 않는다. 아내를 죽음으로 내몰고, 딸아이도 수녀원 기숙사에 보내고, 자기 주위에 벽을 쌓기 시작하는 그의 삶. 기르는 개 무토만이 유일한 낙이지만, 책 마지막 부분에 이 개를 잃은 상실감도 잘 묘사해두었다. 비주 - 미국에 불법체류자이다. 그의 아버지 요리사는 비주가 아주 돈을 많이 벌고, 잘 살고 있다고 믿지만, 그린카드가 없어서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 없고,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처지이다. 미국에서 모은 돈으로 택시를 살 꿈을 갖고 인도로 돌아오지만, 가진것을 모두 빼앗기고 알몸으로 아버지에게 나타난다. 그 외의 사람들 - 내전으로 가진 재산을 뺏기고, 인도에서도 추방당하는 스위스 신부. 눈앞에서 자신들의 재산을 빼앗겨도 호소할 곳조차 없는 모나미 자매등이 있다.
저자는 이 힘없는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식민지 시대 이후의 인도, 계급주의, 인도인의 외국을 향한 동경심과 적개심, 소수민족의 억눌림과 분노의 표출, 문화의 차이등을 이야기한다. 인도에서 태어났지만 영국과 미국에서 생활한 저자의 문화가 이 책에도 반영되어있다.
이 책은 나와 우리 가족을 돌아보는 시간을 제공하여 주었다. 우리 가족도 내가 14살 때 이민을 갔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인종차별이 없는, 하지만 미국처럼 선진국이 아닌,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서 몇 년동안 생활했었다. 그 당시 외할머니의 말씀이 기억난다. “빌딩을 몇 채 사면 돌아올건가?” 비주의 아버지 요리사처럼 외할머니께서도 외국에 나가면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하셨나보다. 비주를 통해서 우리 가족을 본다. 합법 이민이었지만 언어의 장벽은 컸다. 4남매인 우리 중 큰오빠와 나만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이미 대학을 졸업한 오빠는 신학교에서 공부를 계속 하였지만, 대학을 다녔던 작은 오빠는 부모님을 도와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했다. 나보다 세 살 위인 언니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였으나, 언어의 장벽은 너무나 높았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한학기만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제무바이의 유학기를 읽으면서 나 자신을 돌아본다. 제일 어렸던 나는 공부에 몰입할 수 있었고, 무사히 대학도 다니고, 직장 생활도 하였다. 단어도 모르고 발음도 이상해서 처음에는 입을 닫고 지냈으나, 차츰 친구가 생기면서 자신감도 붙었다. 수학과목을 못하는 그곳 아이들을 도와주면서, 나는 역사과목에서 도움을 받았다. 제무바이가 겪은 냉대에 비해, 나는 정말 마음씨 따뜻한 친구들과 이웃들을 만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비주나 제무바이처럼 혼자가 아니었지만 힘들었다. 지금은 좋은 기억만 남아있지만, 서평을 쓰면서 기억을 더듬어보니까 힘들어서 운적도 많다. 한국의 친구들도 너무 그리웠다. 나의 다짐이 생각난다. ‘난 나중에 이민 따위는 가지 않을거야, 아이한테 너무 가혹해...’
제무바이와 비주가 다시 인도에 돌아온 것처럼, 나와 부모님도 한국에 돌아왔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후 부모님은 한국에 돌아오셨다, 비주처럼 모든 것을 잃은 채로... 빌딩을 사려고 했던 꿈을 포기한채로, 그리고 다시 시작하셨다. 언니도 한국에 와서 결혼했고... 나는 10여년을 더 아르헨티나에 살다가 2002년에 돌아왔다. 좋은 직장이 있었지만, 그래도 부모님 곁이 좋아서...
마지막으로, 이 책은 ‘상실의 상속’ 이지만, 주인공들이 얻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가족애’이다. 판사는 사이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아이’라 생각한다. 요리사와 비주는 서로를 너무나 그리워했는데 같이 지내게 되었다. 비록 찢어지게 가난할지라도 진정한 행복을 주는 것은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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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이런 폭력사태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그 모든 폭력이 평범하다는 데에도 자주 놀라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 할일도 없이 집에 앉아 있을 때 마음이 얼마나 심술궂어질 수 있는 지를 깨닫고, 상상할 수 없는 악의 악취에 직면해도 인간은 따분해져서 하품을 할 수 있고, 양말 한 짝이 사라진 문제나 짜증스럽게 구는 이웃사람에게 몰두할수 있고, 뱃속에서 작은 생쥐처럼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시장기를 느낄수 있고, 무엇을 먹을까 하는 절박한 문제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들, 거창한 문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들이 과거와 현재의 싸움, 정의와 불의의 신화적 싸움에 말려들어 있었다. 가장 평범한 서민들이 엄청난 증오에 휩쓸려 있었다. 엄청난 증오는 결국 평범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상실의 상속]523,524페이지 에서 소설을 볼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작가의 상상력이다. 소설중 인물 한사람 한사람의 심리와 주변의 모든 것들을 자신이 겪지 않았지만 겪은듯이 그려내는 그러한 솜씨가 놀랍기만 하다. 나의 상상력의 부재를 자꾸 탓하게 만든다. 나의 상상력의 게으름에 상실감을 갖게 만든다. 키란 데사이는 1980년대의 인도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는데 작가의 나이가 71년생이면 10대였다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세계정세와 맞물려서 그려낸 것이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빈부의 격차, 나라간의 서로 이익을 내기 위한 갈등들이 다르지 않게 그려진 인도와 인도인들의 모습이 씁쓸하기만 하다. 자신이 남들보다 더 우월한 존재가 되고 싶어하고 우월한 존재가 된 다음에는 그 전 단계에서의 순수함은 상실되고 마는 것이 진실인것일까? 미국이 자신의 이권을 위해서 모든나라들의 주권을 빼앗는것처럼 영국도 인도의 주권을 한없이 빼앗고 그러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은 그러한 것들에 맥없이 순종하고 연약한 자신의 종족들을 위해서 나서서 맞서 싸워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그들의 아픔은 절대 되돌아보지 않는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선진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와서 더 나은 삶을 살라고 한 아들을 위해서 돈이 없는 가운데 빚을 내고 돈이 모자라 부인까지 맞아드려 부인이 가져온 지참금을 가지고 외국에 공부하러 간 아들은 판사가 되어 돌아온다. 인도인이라고 무시당하며 인종차별을 당하며 너무나 열심히 한곳만을 바라보며 공부해서 돌아와 그야말로 원하던 권력을 얻게 되지만 이미 그의 마음 속에 순수함은 사라진지 오래다. 사랑스러워보이던 아내는 이미 너무나 자신의 삶과 거리가 멀어져 있는 보기도 싫은 존재가 되어 버리고 아내를 한없이 무시한다. 그런 아내는 남편의 이상을 따라갈수 없어 홀로 남겨지게 되고 남편으로 부터 버림받고 갈곳이 없게된 아내는 결혼한 언니네 집에 가서 갖은 수모를 견뎌내며 살아가다가 어느날 자살인지 사고인지 모를 죽음을 맞게 된다.
그리고 버림받은 아내처럼 아이도 수녀원에 보내져서 길러지게 되고 그곳에서 자란 딸은 좋아하는 남자와 어느날 사고로 죽게되고 버림 받은 처럼 홀로남겨지게 된 사이는 판사였던 할아버지에게 가게 된다. 할아버지와 요리사와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개 무트와 살게된 사이는 공부를 가르치러 온 대학생과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인도의 상황이 그 대학생을 사이를 자유롭게 살게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인도의 정치적인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그 둘의 관계도 급박하게 돌아가고 모든 인도인들이 그들이 찾아야할 서로의 권리를 위해서 싸운다. 요리사의 아들도 앞에 나온 판사처럼 미국으로 돈을 벌러 떠나지만 그곳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 아버지에게로 돌아오면서 갖은 수모를 겪게된다.
책속에 나오는 것처럼 공평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듯이 생각되는 세상이다. 누군가가 이익을 보기위해서는 정말 한쪽은 희생이 뒤따르기 마련인 것이다. 공평이란, 평등이란 세상은 사람들에게 견디기 힘든 상황인것일까? 받아들일수 없는 것일까? 하루에 세끼 먹는것도 똑같고 같은 공기를 마시는 것도 똑같은데 왜 사람들은 서로가 더 갖기 위해서 그렇게 아귀같이 싸워야만 하는것일까? 왜 자신의 작은 권리마저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힘겨운 싸움을 해야하고 다른 사람들의 목숨은 안중에도 없는듯이 하나라도 더 갖기를 원하는 것일까? 지금도 이 땅에서도 그러한 일들은 수없이 벌어지고 있다. 인도에서 그랬건 것처럼 ...그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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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이란 단어가 주는 가슴 쓰린 기억이 책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물론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걸맞는 무엇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상실? 상속? 어떤 상관관계로 이야기가 전개될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말하는 상실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상실이 상속되는 것일까? 끊임없이 질문을 하였다. 인도의 이야기다. 인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미국에서 살고 있는 작가, 그의 이력이 심상치가 않다. 물론 내게는 낯설기만 한 작가지만 말이다. 인도를 접한 것은 지난 해 읽은 '신도 버린 사람들(나렌드라 자다브)'가 가장 생생하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W를 통해서도 인도의 아동담보노동를 접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정리하면, 내 머릿속 인도내 사회문제라는 것은 계급간 문제, 그리고 가난일 것이라는 섣부른 판단을 내리고 책을 접근하였다.
이 책은 히말라야 북동부 고원 '칼림퐁(뭐~ 살짝 찾아보니, 히말라야 여행시 주요도시 중에 하나인가보다)'이라는 마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이'라는 열여섯살의 소녀와 '판사' 그리고 '요리사'가 '초오유'라는 낡아 허물어질 것 같은 저택에 살고 있다. 그리고 총기 약탈 사건이 일어난다. 첫번째, 부패한 경찰들과 GNLF-고르카 행방 운동-로 인한 칼림퐁의 혼란한 상황 속 '사이'와 사이의 수학 가정 교사이자 애인 '지안' 그리고 여러 주변인들의 이야기-롤라, 노니, 센 부인, 보티신부와 포티아저씨-가 있다. 또 하나, 판사의 이름, '제무바이'의 과거 이야기다. 인도의 식민지 시대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지식인 판사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영국유학에서 겪게되는 인종차별적 경험과 아내 '지미'에 대한 권위적인 모습으로 판사가 아닌 '제무바이'라는 구체적인 또다른 인물이 살아온 30년대 식민지 인도의 이야기가 있다. 마지막은 현재(80년대), 미국에서 불법 이주 노동자로 살아가는 요리사의 아들 '비주'의 이야기다. 불법체류자 신분이기에 그가 겪어야 하는 불안한 생활들을 여과없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총 3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사이(와 지안), 제무바이, 비주 3사람을 통해 식민지 시대와 80년대의 인도인의 모습을 통해 인도의 사회문제와 세계화, 이민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암담한 상황들의 연속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순진무구한 어처구니들의 이야기를 통해 뭔지 모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바보'라는 말이 책 속에서 상대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로 통하지만 이들의 순진함이 들려주는 바보같은 이야기는 단순하지가 않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침을 삼키는 것조차 무겁게 느껴지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숨어있다. 그리고 이야기 속 반전들, 여러인물들과 사이와 지안의 사랑, 그리고 분열 등 신분, 빈부, 계급, 민족(?)간 갈등 속 인간의 욕망, 어리석음과 인간의 또다른 추악하고 비열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도, 인도인의 이야기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우리의 일제식민지 시대, 그리고 독재와 민주화의 70, 80년대의 우리의 모습을 비교하며 책을 읽게 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오늘의 모습이다. 이책이 갖는 중요한 가치가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너무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다문화가정, 불법이주노동자,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지금도 여러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인도의 사회문제가 아닌 우리의 사회문제일 것이다.
상실의 상속! 30년대, 80년대를 통해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또다른 이름으로 지속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판사, 사이, 비주가 갖는 한계 역시 지금 우리들의 한계인가? 그럼에도 나에게 이책의 가장 기억나면서도, 가슴 훈훈한 이야기는 요리사와 비주의 통화이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부자간의 사랑의 대화, 그리고 부자가 서로 달려가는 모습을 통해 이 책의 어둡고 불안한 모습들과 골머리 썩히게 하는 여러 문제들을 말끔히 씻어 날려버렸다.
참고로 '바리데기(황석영)'와 왠지 닮은듯 다른 이야기란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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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부산에 다녀오는 길에 동행한 책이다. 수원-부산을 오가는 열 시간 동안 읽기에 그 두께가 적당해 보여서 골랐는데 (장장 583쪽에 달한다. 상, 하 두 권으로 나뉘지 않아서 '엄청 두꺼운 책'이라는 느낌이 강했던 듯), 지루함에 몸이 꼬일 열 시간의 여정에서, 나를 그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분리시켜주었다. 나는 달리는 기차 안에서, 안개 너머로 칸첸중가가 바라보이는 칼림퐁의 한 마을 속으로 시공을 초월한 여행을 떠났다.
인도 서뱅골 주 북부에 있는 도시 칼림퐁. 그곳에 있는 한 퇴직 판사의 저택. 그 저택에는 퇴직 판사 제무바이 파텔과 그의 애완견 뮤트와 '그들'의 요리사가 생활하고 있는데, 어느 날 러시아에서 판사의 외손녀 사이가 찾아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우주비행사인 사이의 부모님이 러시아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졸지에 고아가 된 사이가 외할아버지를 찾아 온 것이다. 어느날 판사의 저택에 한 무리의 소년들이 침입하여 식량과 총을 강탈해 달아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거기이지만, 이 이야기는 한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갑자기 과거-사이의 과거, 요리사의 과거, 판사의 과거 등등-로 날아가기도 하고, 불쑥불쑥 미국에 있는 요리사의 아들 비주에게도 찾아간다.(비주도 매우 중요한 등장인물이다.) 과거와 현재와 여러 장소가 이리저리 뒤섞여 진행되는 만큼, 여러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제목의 영향인지 책을 읽는 내내 어떤 '상실감'이 무겁게 마음속을 짓눌렀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상실한 사람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평안함을 상실한 사람들, 불법 체류자이기 때문에 모든 권리를 상실한 사람들, '난리통'에 개인의 자유마저 상실한 사람들... 그들의 상실감을 함께 느끼며 기차 안에서 그만 훌쩍훌쩍 눈물을 떨구기도 했다. 평소에 외국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이미지가 어떨 것인가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세상이 인도인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묘사되어 있는 부분을 보면서 왜 '내 일'인 듯 그렇게 마음이 아팠는지... (혹시, 우리나라 국민들도 외국에 나가서 그런 '대접'을 받을까 무서웠을까?) 아들의 성공을 위해, 절대 돌아올 생각말고 미국에 정착하라고 당부하며 아들에 대한 그리움은 가슴속에 묻어버리는 요리사, 불법 체류자이기 때문에 다쳐도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고, 정당한 월급도 받지 못하면서 그저 난 잘지낸다고 편지하는 비주. 가난을 되물려주고 싶지 않아 아둥바둥 발버둥을 쳐보지만 어쩔 수 없이 아들에게 물려줄 건 가난밖에 없고, 미국까지 가서 고생을 해보지만 결국에는 원점으로, 어쩌면 원점보다 더 낮은 곳으로 돌아와 버릴 수 밖에 없는 그 부자의 모습이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 마음속에 남아, 깊은 슬픔을 안겨준다.
그 두께만큼이나 정말 깊고 깊은 울림을 주는 책이다. '부커상 수상작', '최연소 부커상 수상 여성 작가', '김석희 옮김' 등에서 매력을 느끼고 읽게된 책이었는데, 정말 기대 이상이고, '두께의 압박' 쯤은 충분히 감수할 만한 책이다. 내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서평이 조금 미안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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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상실의 상속. 제목이 참 마음에 든다. 제목이 책의 내용을 잘 대변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버지의 상실은 자녀들의 세대에서도 나타난다. 이처럼 무서운 말은 없는 듯하다. 내가 못사니까 내 자식은 잘 되어야 하고, 내가 못 배웠으니까 내 자식은 잘 배워야 하고 이게 우리네 부모들의 마음이 아닐까?
책에 주인공은 참 많다. 판사, 판사의 애완견 무트, 판사의 외손녀인 사이, 사이의 가정교사이자 애인 지안, 요리사, 요리사의 아들 비주, 판사의 이웃들. 작가는 다양한 주인공들의 삶을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들려준다. 이러한 주인공들을 통해 인도와 미국, 네팔의 문화적 사회적 현 상황을 세심하고 유머러스하게 들려준다. 유머러스하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판사는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교육을 받은 엘리트이다. 판사의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는 영국에서 외롭고도 어려운 교육을 받고, 인도의 고위 공무원이 되었다. 영국에서의 생활을 통해 선진국우월주의를 가지게 되고, 자신의 고국인 인도에 대해서 불결함?을 느낀다. 사이의 부모는 러시아에서 우주항공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사이는 일찍이 수녀원에서 기숙생활을 하였다. 그랬기에 사이는 인도 보다는 외국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사이의 부모가 죽고 외할아버지인 판사와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이의 이러한 환경으로 인한 것이다. 지안은 가난한 네팔계 인도인이다. 가난으로 사이의 가정교사를 시작하고, 이를 통해 사이와 사랑에 빠진다. 이후 네팔의 시위가 발발하면서 시위대에 동참한다.
미국, 인도, 네팔. 거의 600쪽에 다다르는 두꺼운 책에서 하려는 말은 결국 미국과 인도, 그리고 인도와 네팔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그렇다. 미국에서 그린카드를 받지 못하고 비정규직으로 착취당하고,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인도인 요리사의 아들인 비주의 모습과 인도에서 변변한 직장을 찾지 못하고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는 네팔계 인도인 지안을 통해서 그러한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우리의 생각을 바꿔보려고 했던 것 같다. 선진국이라고 하면 마냥 좋을 것만을 생각하는 우리에게 그 좋은 나라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말이다. 요리사는 자신의 아들이 미국에서 취업을 했기 때문에 마냥 잘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아들은 못먹고 못자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미국에 대한 인도인들의 환상은 인도에서 살고 있는 네팔인 들과 연결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