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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 그녀는 분명 이 삶을 살아봤을 것이다. 상상만으로 저렇게 쓸 수는 없어. 이 여자는 정말 이런 시기를 겪었겠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책.
혹자는 그녀의 글이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말, 즉 속으로 되뇌일 수 밖에 없는 말을 나타낸다고 한다. 어느 정도 공감.
속절없는 감정의 무늬들을 섬세하게 반짝반짝 잘 표현해내며, 일상적인 잔잔함 속에서 일어나는 서늘한 미세한 삶의 파동들을 굉장히 위트있게, 때론 쓸쓸하게 잘 잡아내는 작가.
한 때, 육아로 지쳤던 시절, 그녀의 글들이 참 많은 위안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다른 글들이 궁금해졌고, 열심히 읽어댔다.
여튼 오정희님을 처음 접하게 해 주었던, <돼지꿈>! 지나고 나면 그 시절 모든 것이 행복인 것을. 반복되는 권태로운 삶에 조금은 지친 여성들에게 꼭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구절 받아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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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여자'로 서성였던 오정희 선생의 우화집을 읽었다. 환갑을 넘긴 노작가의 단단히 벼려진 문장과 그 속에 내밀하게 담고 있는 일상의 삶이 여전히 황홀한 책읽기로 인도한다.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이 한때의 기대와 열정을 조금씩 포기하고 생활이라는 괴물과 타협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던가. 이 책은 4가지 큰 주제로 24편의 우화가 실려있다. 주인공은 서른 중반 혹은 마흔 나이의 여성들이다. 치열한 자기 존재에 대한 반성이나 곡진한 삶의 애달픔이 아닌, 현재를 살고 있는 여성들의 일상을 가감없이 재현해내고 있다.
오정희 작가가 내세운 큰 주제는 몹쓸 사랑의 노래, 마흔에 다시 쓰는 일기, 이 웬수 같은 나의 가족, 세상이라는 놀이터에서 등이다. 제목만으로 사랑, 결혼, 양육, 나이듦의 키워드가 드러난다. 삶에 치여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조차 가져보지 못한 여성들이 가을여자로 분한다. 오작가의 소설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일단 가을이다. 풍성한 수확의 기쁨보다는 삶의 가장 찬란한 순간에 뒤를 돌아보는 시간적인 계절인 셈이다. 그래서 주인공을 통칭하여'가을 여자'라고 평하고 싶다. 그녀들은 말한다.
"행복하니?" "애 엄만 걸." 어떤 뜻일까, 행복하다는 뜻일까. 아니면 이 마당에 와서 행, 불행을 따져 무엇하느냐는 뜻일까? - P27, '은점이' 중에서
사람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며 아내의 느닷없는 울음은 그의 평온하고 무사한 일상에의 적신호이므로, 무릇 대답은 간단한 것이다. 아내는 30대 중반인 것이다. 새로이 시작하기에도, 포기하기에도 어려운. - P91, '아내의 30대'
그녀들의 일상은 비슷하다. 20대 용기백배하며 정신없이 살다가 2~3명의 아이들을 낳아 뒷치닥거리를 하고, 쥐꼬리만한 남편의 월급을 갖고 30평 남짓의 내 집을 마련한다. 그것도 대출을 잔뜩 끼고 말이다. 반찬 값 얼마에 벌벌 떨고, 아이들 교육비에, 옷하나를 사더라도 자기 것은 없다. 하나, 둘 얼굴에 주름이 늘어간다. 남편은 갈수록 무심하고, 여자로서의 삶은 사라진지 오래다. 남편은 회사에, 아이들은 학교에 보내놓고 무심히 앉아 있는 거실. 오후 한때 커피를 마시며 눈물을 떨군다. 왜? 난 왜 이렇게 살까? '어딘가에 얼마든지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다른 삶, 자신에 내재된, 자신도 미처 모를 깜짝 놀랄 힘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버린 지 오래였다'라고 자조한다.
이 소설들은 환상 속의 삶을 부정하고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을 위한 만가다. 쉼없이 앞만 보고 내달린 시간은 그녀들의 주름으로, 뱃살로, 거칠어진 손으로, 고단한 어깨로 반추된다. 짧은 글 속에 이러한 여성들의 삶이 신산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삶은 여전히 살아볼 만한, 아직 가보지 못한 남겨진 시간이 있음에 안도한다. 자신의 신세 타령에 눈물을 떨구다가도 널어놓은 빨래가 젖을 새라 뛰어나가는 그 뒷모습엔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가을 여자로 서성이다가, 결국 겨울을 맞이하겠지만 그닥 춥지 않은 따뜻한 겨울일 것 같다. 오정희 선생의 그 따뜻한 시선을 한아름 온몸으로 느끼며 위안과 위로를 느끼는 눈내리는 2월. 설 연휴 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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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박완서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과는 달리 나는 박완서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뭔가 모르게 불편하고 어색했다. 그 이유를 몰라서 한 동안 고민했었는데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됐다. 뭐랄까? 박완서, 혹은 그녀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건 ‘엄마’가 아니라 ‘시어머니’다. 어차피 같은 시대를 산, 같은 연령대의 여성일텐데 누군가는 엄마고 누군가는 시어머니다. 다른 말로 하면 누군가에게는 엄마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시어머니가 된다. 나는 박완서를 ‘딸’의 입장이 아닌 ‘며느리’의 입장으로 보게 된다. 그 이유가 뭘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박완서, 그녀가 세상을 보는 시선은 ‘엄마’의 시선이 아닌 ‘시어머니’의 시선이다. 그게 뭔데? 라고 물어보면 명쾌하게 대답할 수는 없지만, 뭐랄까... 내 또래의 여성들이 중산층의 시어머니를 겪으면서 느끼는 당혹감이나 불편함, 이율배반적이거나 모순적인 모습들이 박완서의 작품에서 종종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박완서의 작품들이 무척 부담스러웠다. 그에 비해 오정희와 그녀의 작품은 ‘엄마’같다. 일단은 세상을 보는 시선이 푸근하고 비교적 객관적이다. ‘남 탓’만 하지 않고 ‘내 탓’도 한다. 모난 데가 없이 둥글둥글하게 감싸준다. 엄마 닭이 가슴에 알을 품고 둥글 둥글 굴려주듯이. 그래서 그녀의 세계에서는 경직되거나 춥지가 않다. 온기가 느껴진다. ‘중산층 여성’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오만함, 구별지으려는 정서 등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이 속한 무리에서 멀어지지 않으면서도 객관적으로 모색하고 탐색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런 것들이 참 좋다. 더군다나 이 책은 ‘우화집’이다. 손바닥처럼 짧은 이야기들과 그 이야기를 닮은 그림들 속에서 삶을 길어올릴 수 있다. 그것은 인류 보편적인 것이기도 했다가 여성성과 관련된 것이기도 했다가, 황혼을 바라보는 ‘늙은 여성’들의 감성이기도 한데, 그것이 무엇이든 기본적으로 공감이 간다. 설사 내가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나의 기본적 입장이 다르다 하더라도 일단은 수긍하고 인정하게 한다. 그런 정서들, 그런 따스함, 그럼 감정들이 묻어난다. 지뢰밭 같은 삶에서 전쟁을 치르다가 문득 돌아보면 그곳에 엄마가 있다. 언제 가더라도 따뜻한 밥과 맛있는 반찬으로 한상 가득 밥상을 차리고 ‘힘들었지? 많이 먹어.’ 어깨를 토닥여주는 사람이 바로 엄마다. 엄마가 해주는 밥, 엄마가 해주는 말 한 마디, 그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위로다. 따스함이다. 오정희가 이 작품집을 통해서 말해주는 것도 ‘위로’인 것 같다. “많이 힘들지, 내 딸. 엄마가 다 알아.” 나보다 먼저 산, 어른으로서, 여성으로서의 삶을 먼저 겪은 누군가가 잔잔하게, 다독다독 이야기를 건넨다. 그 따스함이 참 좋다. 추운 날 곱은 손으로 호호 불며 먹는 붕어빵처럼. 보글 보글 자글 자글 이야기를 담은 채 끓고 있는 찌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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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우화소설이라는 장르를 접한 것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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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익어가는 소리는 늘그막에 느물거리며 붓두막에 걸터 앉는다. 40년 숙성된 간장맛 보다 진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간장을 그렇게 소리없이 익어갔건만, 인생은 이리치고 저리치고 단맛,쓴맛을 다 보고야 만다. 눈으로만 그 맛을 향유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몸과 마음으로 그 맛들을 봐야 한다는 것에 생의 기쁨을 알아채 왔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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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여성의 삶, 일상을 날카롭게 파헤친 그녀만의 언어의 힘.. 돼지꿈, 청소년권장도서이면서 우화소설이라고 하여 등장이야기를 청소년의 이야기인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주된 여인들은 중년이다.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일상에서 한번쯤 겪어 보았거나 이웃의 이야기로 전해 들었을법한 이야기들이 그녀만의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맛깔스럽게 요리가 되어 읽고 난 후의 쾌감을 주듯 한상 그득 잘 차려져 있다. 작가의 책은 몇 권 구매를 해 놓고 읽어보지 않았다. 왠지 선입견이라는 것도 있고 어쩌면 더 뜸을 들였다가 발효가 된 후에 읽고 싶은 생각도 들어서 이 책도 더 미룬후에 읽어보려 하다가 참지 못하고 집어 들었다. 200여 페이지의 적당한 분량은 드라마를 한 편 보는 시간에 드라마를 보듯 읽어도 좋을 단편들이 한 편 한 편 읽고 난 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퍼져나간다. <돼지꿈>, 사별한 남편이 사준 넉넉한 코트를 그녀는 버리지 못하고 아끼듯 입고 있다. 예전에는 살이 쪄서 넉넉하던것이 지금은 살이 빠져 넉넉한 코트를 입고 그녀는 간만에 돼지꿈을 꾸어 떼인 돈을 단돈 몇 푼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믿고 길을 나섰다. 기차안에서 코트를 벗어 걸어 놓고 있는데 앞자리에 넉넉한 파카를 입은 애띤 여자가 안고 그녀의 품에서는 아기가 나온다. 그녀는 자신과 아기를 버리고 떠난 남자의 부모를 만나거 가는 길이라면서 아기를 능숙하게 다른다. 아기를 길러 본 경험이 없는 순옥은 아기 엄마가 잠든 후에 칭얼거리는 아기를 이상한 감정에 빠져 얼르고 먹을 것을 주며 아기를 달랜다. 그 모습을 본 아기엄마는 화장실에 간다며 나간후에 감감무소식. 얼마의 시간이 흐른후에 아기엄마가 사라진것을 알은 순옥은 앞가슴에 아기를 안고 넉넉한 코트를 걸치고 돌아온다. 간만에 돼지가 가슴을 치받는 꿈은 이런 횡재를 나타내는 꿈이었던 것이다. 짤막한 이야기들 속에는 우리가 부딫히는 일상이 잘 들어나 있다. 청소년권장도서이기 보다는 중년여성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부분을 이렇게 날카롭게 잘 포착하여 썼다는 것이 우리 문학의 묘미인듯 하다. 네 파트로 나뉜 '몹쓸 사랑의 노래, 마흔에 다시 쓰는 일기, 이 웬수 같은 나의 가족, 세상이라는 놀이터에서' 에서도 들어나듯 마흔을 넘기거나 그부분의 나이게 걸친 사람들의 이야기이니 더 가슴에 와 닿은것 같다. 마흔, 내가 걷고 있는 나이의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 더 실감나게 읽었고 작가 오정희를 처음 만나는 책으로 감칠맛 나는 그녀의 언어에 빠진것 같아 다른 책을 얼른 집어들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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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좋을 것이라고 믿고 보는 작가의 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런 글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정말 아무 것도 하기 싫고, 딱 책만 보고 있었으면 싶다.
이 책 속의 글 하나는 현재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고,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도 언급되고 있으며 일부는 모의고사에도 출제되고 있고, 몇 년 전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언어영역의 소설 부문에서 출제된 적도 있는, 그런 작가의 작품집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교과서에 다수의 작품이 실려 있는 작가라는 뜻이다.
교과서에 오르는 작품이라는 권위, 내 개인적으로는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작품들 중의 일부는 2월에 수업을 하는 자료로 삼을 예정이다. 물론 작품들 대부분이 요즘의 중학생들에게 적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마흔 중반을 넘긴 내게 더 유익한 글들이었다. 위로로든 격려로든, 어느 정도의 삶을 지나온 중년을 넘어선 여자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요즘은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든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을 것이라는 자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전체적으로 되돌아보는 일이 잦다. 그러면서 은연 중에 비교해 보게 된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 남이 살아가는 모습, 무엇이 비슷하고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더 서글프고 무엇이 더 만족스러운가. 그다지 부러울 것도 없고 그다지 억울할 것도 없는 내 생애, 지극히 평범하고 지극히 일상적인 날들 속에서 간간이 얻는 기쁨 혹은 슬픔들.
구태여 남의 삶과 내 것을 비교해 볼 것까지는 없을 텐데도, 그렇게 되는 때가 있는 것이다. 나는 잘 살아 왔는가, 잘 살고 있는가, 앞으로는 어떨 것인가. 나 아닌 사람들은 어떠한가, 괜찮구나, 내가 괜찮구나, 잘 살아오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에 이르기까지.
문득 살아온 날들 때문에 약간의 짜증이 일거나 억울하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이 책을 읽으면 위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라는 평범한 말이 저절로 떠오르면서 견디고 일어설 힘을 주는 글이었다. 나로서는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녀가 하는 말이라면, 나같은 사람이 더 말할 무엇이 있으랴 싶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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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선물해 주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너무도 많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책을 읽고 있는 것이 맞는데...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내 주변의 인물들이 말을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며칠전 만난 선배와의 이야기도 <돼지 꿈> 속에 등장하는 단편 '아내의 가을'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혈기왕성한 사춘기의 아들은 공부보다 노는 것이 더 즐겁건만,우리의 엄마들의 머릿 속은 온통 '공부'뿐이다 공부로 성공하지 않더라도 공부가 기본이 되어있어야 사람구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건강하지 못한 아이들을 볼때면 건강한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가 를 생각하지만,그런 마음은 10분을 넘기지 못한다.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을 찾으려 하지 않는 그런 엄마들의 모습에서 벗어나길 바라며'아내의 외출'에 대한 이야기를 제안 하면 역시나 기다렸다는 듯이 시아버지의 식사와 아이의 학원스케쥴이며..등등의 푸념들이 나온다. 분명 스스로의 시간을 한시간이라도 만들 수 있으면 좋으련만,철없는 소리란 지청구만 듣게된다.나는 기필코 이 책을 그 선배에게 보내 줄 생각이다...^^
요즘 아파트 소음으로 나 역시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중이다.그런데 입장을 바꾸어 생각도 해 보고,이것이 아파트의 사는 비애라고 위로도 하고,뭐 이렇게 저렇게 신경을 두려 하지 않으면서도,가끔은 정말 올라가서 한 소리 하고 싶어질때가 있었다. 그런데 '소음공해'라는 단편을 읽으면서 순간 아찔해 오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나의 윗집도 이럴 수 있지 않을까? 말 못할 사정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금은 달라진다. 설령 내가 살고 있는 윗집은 이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윗층의 소음이 공해로만 들리지 않을 수 도 있겠다 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
<돼지 꿈>은 이렇게 아주 짧은 단편들로 구성되어있다. 마치 누군가 서로 다른 이들의 하루하루의 일기장을 들여다 본 느낌이랄까 오늘은 누구네 집에서 싸움을 하고, 사랑을 하고,허전함을 느끼고,무료함을 느끼고,탈출을 꿈꾸고..그러면서도 하루 하루 나에게 주어진 그 일상을 담담하게 받아 들여야 하지 않는가에 대한 일상의 스케치... 그래서 우리는 늘 돼지꿈을 바라지만..그건 그저 꿈으로 끝날때 더 행복한 것인지도 모르다는 생각을 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