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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가까이 감기로 고생을 하고 있는 중이다. 평생 감기 아니 어떤 큰 수술을 했어도 이렇게 힘든 적은 없었다 병원을 두 번이나 찾아 주사를 두 번이나 맞고 항생제가 든 처방전으로 근육은 빠져 나가고 배는 나오고 이게 나이 탓일까 아님 변종 바이러스일까 병원에선 크게 문제 아니라는데 그 또한 미덥지 못하다. 이제 기침을 하면 머리가 울린다. 이런 잔병들이 chronic stress의 원인으로 앞으로 평생 겪어보지 못한 병치레로 옮겨질까 미리 걱정하는 노파심만 늘어난다. 노파란게 老婆 늙은 할미란 뜻이다. 파는 갖은 풍상 파도를 겪은 나이먹은 여자란 뜻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 두려울게 없는게 아니라 그런 데이터베이스가 축적되 미리 걱정부터하는 노파심이 이래서 생겨난게 아닌가 싶다. 실존주의라는게 아무리 부르짖어도 그것을 이론화한 샤르트르를 능가할 수는 없다. 직접 지옥같은 유럽의 대전을 겪은 사람보다 더 실존을 체감할 수는 없는 법이니. 그래서 아무리 지금 세상이 용광로라 한들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40년대의 세계와 비할 수는 없다. 빌게이츠가 최고의 책으로 추천했던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폭력의 역사를 다루는데 지금 뉴스나 유투브를 보면 현대의 경악할 폭력이 도를 지나친다 하지만 과거 전쟁시기의 폭력에 비하면 지금의 폭력성은 디즈니무비의 싸우는 장면과 같다고 볼수 있다는 게 책의 핵심이다 . 본서 상해로 는 上海にて に라는 방향조사가 아니라 に에 て를 붙여 동작이 행해지는 때·장소·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에로 해석해야한다. に만 붙이는거 하고 본질적으로 다르다 할 수 있다. 상해에서 겪은 일이란 함의가 내포되 있다. 이게 아무리 일본어와 한국어가 유사하다 해도 심화학습의 경우는 결국 외국어는 외국어란 말이다. 작가 홋타 요시에는 고야나 몽테뉴 평전으로 일본에선 반세기 넘게 스테디 셀러지만 우리나라에선 저 두 대작은 구할 수 가 없다. 다시 복간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20대를 태평양전쟁의 한복판에서 겪은 저자는 생사의 경계에서 실존을 저절로 체험했으리라. 1945년 3월 도쿄대공습-최근 그대는 어떻게 살것인가 영화 도입부에도 나온다. 일본 본토 공습의 수작은 역시 반딧불이의 묘이지만-으로 일본의 패색이 짙어갈 무렵 상해로 건너가 국제도시 상해에서 일본의 패전을 맞이한다.그 후 1년 남짓 상해에서 국민당의 부패, 상승무드를 탄 공산당, 계속되는 내전, 그리고 혁명을 체험한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경험은 유럽의 경험을 상해에서 했다는 데 있다. 그당시 상해는 아시아의 유럽으로 불릴 정도로 국제도시로 명망이 높았다. 물론 유럽 강대국이 상해를 조차지구로 분할한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상해에서 유럽을 떠올리며 결국 이곳에서의 짧은 경험이 불후의 두 평전 고야와 몽테뉴를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는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루드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을 저술할때 일본을 한번도 방문하지 않고 그 명저가 나온걸 보면-물론 당시 2차대전이 한창이라 일본을 갈수가 없었던게 결정적 이유지만- 그 나라를 답사하지 않고도 해당국이나 그 해당국의 인물에 대한 평전이 나와 명작이 될수 있는것은 작가의 뛰어난 통찰력이라 할 수 있다. 노자에 그런말이 나온다. 不出戶, 知天下 (불출호, 지천하) 집밖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의 정세를 알 수 있다. 물론 모든 사람에 다 해당되는건 아닐께다. 그래서 이런 비범함을 가진 작가들은 멀리는 몇천년에서 가까이는 백년이 가까워도 여전히 클래식의 반열에 올라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