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와. 드디어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었구나.
존 어빙의 Widow for One Year을 처음 읽었던건 2002년 겨울이었던것 같다. 너무 추운 나라에서 겨울을 보내면서 밤이 너무 어두워 할 일이 책 읽는 것 말고는 없었던 그 시간 동안, 존 어빙은 나의 베스트 프렌드였다. (정말 그땐 친구도 없었다;;)
존 어빙의 다른 소설들이 그러하듯, 첫 문장부터 나를 사로잡았던 이 소설은, 며칠간 다 읽을 때까지 더 읽을 부분이 줄어드는걸 아까워하며, 하지만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서 밥먹을 때를 빼고는 읽고 또 읽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다.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루스가 어린 시절과 그녀가 성인이 된 후의 이야기다. 하지만 존 어빙의 다른 이야기들에서처럼, 주인공 주위의 인물들 또한 각각의 굵직한 삶들이 있으니 그 재미가 또한 크다.
일어날 듯 일어날 듯 일어나지 않을만한 안일어날 듯 안일어날 듯 하지만 때때로 일어나는 말도 안되는 듯 하지만 또 때로는 현실이 되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와 사건들에 그대로 생명을 불어넣는 놀라운 작가의 힘을 이 소설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난 이 소설을 한 대여섯번은 읽은 것 같은데 너무 머리가 복잡해서 다른 책들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을때 이 책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하면 언제든 다른 책으로 옮겨갈 수 있는 그런 흡입력 또한 이 책은 갖고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고 있거나 머리속이 복잡해서 대신 뭔가 이야기해 줄 사람을 찾고 있거나 존 어빙의 <가프가 본 세상>을 읽고 그의 다른 소설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었거나 그냥 책 읽는게 좋은 사람 모두모두 정말 읽고 절대 후회하지 않을 소설이다.
첫번째 추천평에 <테네시언>에 나왔다는 구절처럼, 이 소설의 딱 한가지 단점은, 결국 이야기가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존 어빙의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너무 가슴이 두근거림과 동시에 더 읽을게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릴 정도니까.
|
|
‘세상은 생각하는 자에게는 희극이고 느끼는 자에게는 비극이다.’ 하지만 진짜 세상은 생각하는 자에게도 느끼는 자에게도 비극입니다. 오직 운 좋은 사람에게만 희극일 따름이지요. 서른아홉의 매리언과 열여섯의 에디. 충격적인 1권의 도입부를 보고 당연히 떠오른 것은 더스틴 호프만이 열연했던 <졸업 The Graduate, 1967>이었다. 네 살의 루스가 발견한 엄마와 어린 소년의 정사 장면이 의도하는 바에 따라, 아니 “이 불운한 소년은 36년 후에, 그가 쉰둘이고 루스가 마흔 살일 때,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대도 그는 루스의 엄마와 잔 일을 후회하지 않으리라. 애석하게도 그게 에디의 문제가 되리라.”라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착각에 빠진 것이다. 이것은 2권 중반부에 이르러 ‘하리’가 표면에 전면적으로 등장하기 전까지 계속되었고, 당연히 이 소설은 루스와 에드의 사랑으로 결말이 나리라 생각한 것이다. 작가의 필력에 고스란히 휘둘리고 만 것이다. ‘짧은 사랑, 오랜 기다림, 아름다운 해후’ 이 카피는 두 사람이 아니라 그들 각자를 말하는 것이니. 충격적 반전이라 할만 했다. <일 년 동안의 과부>에 등장하는 주요인물 루스, 에디, 매리언, 테드 이들 네 사람은 뒤틀린 사고방식 혹은 심리의 소유자이다. 루스는 태어나자마자부터 가족 혹은 가족애의 상실과 모성이 결여된 불안정한 환경에서 성장한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은 두 오빠와 그 사고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머니, 그리고 더욱 더 방탕해진 아버지. 어린 시절은 부성애로 충분했지만, 차츰 성장하면서 깨달은 아버지의 부도덕함은 남성 불신을 뿌리깊게 자리잡게 한다. 엄마에게 버려졌다는 상처와 경험해보지 못한 모성은, 자신이 낳을지도 모를 아이에게 모성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자기가 태어나고 싶은지 잘 모르는 어린 꼬마가 있었습니다. 엄마도 아이를 낳고 싶은지 잘 몰랐습니다.” 불확실성의 토대가 되고, 그것은 그녀의 작품 활동과 인간관계, 결혼 등 인생 전반에 걸쳐 영향을 준다. 에디는 열여섯 여름에 겪은 첫사랑의 열병에서 벗어나지도 성장하지도 못한 체 37년을 방황한다. 그의 모든 소설은 그 여름의 경험이 빚어낸 다양한 변주일 뿐이다. 매리언은 자의식이 강한 사람으로 이기적이라 평할 만하다. 테드는 가장 버라이어티한 성격의 소유자로 나쁜 남자의 전형이다. 이런 캐릭터성이라는 짙은 묘미를 가진 독특한 인물들이 얽히고설킨 풍성한 스토리성을 보인다. 작가적 성향의 반영으로 이야기는 3인칭 시점으로 이어진다. 등장인물들 또한 자신의 일과 인생 또한 지극히 3인칭적 관점으로 받아들인다. 약간은 비판적이며 이성적으로, 감정적 단절 하에 타인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게다가 네 명의 작가가 주요인물이니 여러 종류의 소설들이 액자형식으로 등장하며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비슷한 상황과 비슷한 대화의 등장은 독자들이 작가의 역량을 의심케 한다. 하지만 <일 년 동안의 과부>에서는 이것조차도 치밀한 계획하의 의도된 복선과 암시로서 사용되어진다. 완벽한 디테일과 빈틈없이 짜인 정교한 플롯. 독특한 성격의 등장인물과 혀를 내두르게 하는 스토리성. 그러기에 존 어빙을 탁월한 이야기꾼이라고 칭하는 가 보다. 개인적인 느낌에선 이 소설의 제목으로 <일 년 동안의 과부 A Widow For One Year>보다는 영화화 되었던 <마룻바닥의 문 The Door In The Floor, 2004>의 제목이 더 어울리지 않았나 싶다. 이 <마룻바닥의 문>이라는 제목은 소설 속에서 테드가 쓴 동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자기가 태어나고 싶은지 잘 모르는 어린 꼬마가 있었습니다. 엄마도 아이를 낳고 싶은지 잘 몰랐습니다.”로 시작하는 암울한 이야기. 호수에 떠 있는 작은 섬 속 오두막에서 사는 행복한 꼬마와 엄마, 그리고 절대로 열면 안 돼는 마룻바닥의 문은 이 <일 년 동안의 과부>라는 소설 전체의 내러티브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
|
1958년 16살 에디 오헤어는 자신의 엑시터 학교 동문이자 동화작가 및 삽화가로 성공한 테드 콜의 집에 여름 방학동안 운전기사 및 작가 조수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에디로서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자신이 좋아하기도 했던 [벽사이로 기어다니는 쥐]의 작가의 조수로 일할 수 있다니! 45살 테드는 잘생겼고 그의 성공을 힘입어 여자들과 바람피우기에 정신이 없다. 그의 아내 39살 매리언은 토머스, 티머시 두 아들을 1954년에 사고로 잃고 딴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아들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한채 평생을 가슴에 두고 살게 된다. 그 이후 태어난 딸 루스 콜은 이제 4살이다. 왜 테드는 자신의 조수로 에디를 고용했을까? 혹 그의 외모와 두 아들 그리고 매리언과 관련이 있지는 않을까? 테드의 바람기에 지쳐가고 자신의 딸에게 사랑주는 것을 두려워한 매리언은 에디와 불장난을 한다. 여름 한철 사랑으로 에드는 그의 평생과 소설의 주제가 될 연상녀에 대한 사랑을 지니게 된다. 매리언은 그 일을 빌미로 테드를 떠날 수 있게 된다. 중간에 나오는 테드의 연인 본 부인과 과부인 먼트시어 부인과 그의 딸 글로리 역시 뒤에 한 부분을 이루는 인물들이다. 1990년 32년 후 48살 에디는 루스의 소설 [아이들에게는 안돼]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그녀와 만난다. 겨우 4살의 루스가 어느새 3권이나 책을 낸 작가가 되다니! (이래서 피는 속일 수 없는건가?) 에디 역시 작가가 되었으나 그의 작품들은 사춘기 시절 그가 경험하게 된 그 경험에 갇혀 그 주위를 맴돌고 있을 뿐이다. 출판사 편집자 앨런이라는 인물은 루스를 일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많이 도와주는 성질이 있지만 루스에게 다정한 사람이다. 루스는 그러 그가 싫지는 않지만 무엇인가 확신이 없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가 진정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된다. 77살의 테드는 나이만 들었을 뿐 외모와 바람기는 여전하다. 본 부인과의 스캔들로 그녀에게 호되게 당하고 나서도 여전히 강연회에서 만난 유부녀나 대학생들에게 작업을 거는 노익장(?)을 발휘한다. 그런 그도 자신의 딸 루스 걱정은 많다. 그녀가 자신의 스쿼시 친구 변호사 스캇 선더스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고 분노한다. 차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던 테드. 자신의 바람기질 때문에 딸이 그러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걸까 그는 자신의 스쿼시 코드에서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루스는 다음 작품 구상을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여행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홍등가를 경험하려고 루이라는 창녀와 가까워지게 되고 루이가 살해당하던 날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앨런과 루스는 결혼하게 되고 둘 사이에 아들 그레이엄이 태어난다. 1995년 암스테르담에서는 하리 후크스트라라는 한 은퇴 경찰관이 있다. 그는 4년전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루이 살인사건에 대한 제보를 접하게 되고 범인을 잡는다. 루스는 4년전 살인 사건의 목격자로서 살인 현장에서 루이를 도울 수 없었던 죄책감을 마음한 켠에 지니던 도중 범인 검거 소식을 듣게 되고 다시 암스테르담을 방문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하리를 만나게 된다. 루스는 앨런을 심장마비로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내고 1년 동안 과부가 되어있는 상태였다. 하리와 루스는 사람에 빠지고 그들은 결혼한다. 에디는 연상의 사랑을 잊지 못한채 그 누구와 사랑을 하려 하지 않는다. 한편 캐나다로 떠난 매리언은 작가로서 4권의 책을 낸다. 추리소설 형식을 빌어 자식의 상실감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고 책은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둔다. 그녀는 테드의 죽음에도 딸의 첫 번째 결혼과 앨런의 장례식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모습을 나타내게 될까 이 소설은 한 부부와 그들의 딸 그리고 부부의 조수로서 인연을 맺은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자식을 잃게 된 매리언과 바람기로서 그 슬픔을 삭이려는 테드, 그런 그녀를 사랑하게 된 에디, 엄마를 어린 시절에 떠나 보내고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루스. 재미있는 소설을 찾고 있다면 이 책을 집어라.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것이 존 어빙이라는 작가의 필력을 느낄 수가 있다. 심각하지 않지만 자신의 소설에 대한 견해를 나타내려는 듯 재미있게 그렇지만 탄탄하게 짜여있는 이야기를 읽으면 소설가가 이야기꾼이라는 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소설이 삶의 문제를 성찰하고 자신을 반성하게 해야한다고 믿는 독자들에게는 아쉬울 수 있겠지만 삶이란 이렇지 않은가? 적당히 세속적이면서도 일어나지 않아야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삶 말이다. 이 소설을 읽고 존 어빙에게 반했다. [가아프가 본 세상], [사이더 하우스]를 연속해서 읽어봐야겠다. [오웬 미니를 위한 기도]는 번역본이 없던데 원서를 사서 읽던가 해야겠다. |
|
요즘같은 출판의 홍수 시대에 ( 책이 안팔린다고 하면서도 끝없이 찍어내는 것을 보면 안 팔리는 것도 아닌가 보다) 서점에 가면 어느 책을 골라야할 지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자기 계발서, 투자서적, 일본 사람도 못 들어보았을 것 같은 일본소설들 틈에서 자기 취향에 맞거나 오래오래 감동을 얻을만한 책들을 찾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다들 휘황찬란한 광고를 하고 마치 이 책이 세계 최고의 책인양 떠들어대기 때문에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그래서 자기만의 책을 고르는 기준을 정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특정 출판사의 책을 선호한다든가, 특별한 작가의 책은 다 읽는다든가 하는 기준들 말이다. 심지어 표지의 디자인이 아름다운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이 책 <일년 동안의 과부.의 표지에는 이 소설의 작가 존 어빙을 '우리 시대의 진정한 이야기꾼'이라는 수식어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우수도서'라는 문구도 이 책을 망설이지 않고 선택하게 만든다. 우리는 다들 무슨 상을 수상했다든가, 어디에 선정된 책이라든가 하면 약해지지 않는가 말이다. 가끔은 그런 수식어가 무색할만한 책들도 있지만 이 책 <일년 동안의 과부>는 그런 수식어에 딱 들어맞는 책이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정교하게 얽혀서 읽는 내내 그 두꺼운 책이 넘어가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이 소설에서는 두 세가지의 이야기가 얽혀있다. 그들은 대부분 작가이거나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먼저 매리언과 그 남편 테드의 불행한 결혼 생활, 그리고 어린(혹은 지나치게 젊은) 에디와 매리언의 관계, 루스와 에디의 기묘한 애정, 루스와 해나의 우정, 앨런과 루스의 결혼, 해나와 테드의 관계, 루스와 루이의 짧은 우정, 루이와 후크의 애정, 후크와 루스의 사랑과 결혼이 각각 혹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정교하고 치밀하게 얽혀있어서 읽는 내내 호기심과 유쾌함과 소름끼침과 감동을 얻었다. 아들들의 죽음으로 피폐해진 매리언과 테드의 불행한 결혼은 이미 그 이전부터 테드의 지나친 바람기로 일그러진 상황이었다. 테드는 매리언에게 루스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방편으로 어린 에디를 이용한다. 에디는 난생처음 미칠 듯한 사랑에 빠지지만 매리언은 모든 것을 남겨두고 죽은 아들들의 사진만 가지고 사라진다. 그리고 평생 에디는 매리언을 가슴에 품고 연상의 여인에 대한 간절한 사랑을 소설에 담아내는 대단찮은 소설가가 된다. 32년 후 유명한 소설가가 된 루스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루스에 관한 이야기들은 이 소설이 두 세대에 걸친 끈질긴 인연과 인간의 나약함,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선택들을 조명한다.
우리가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인생이라는 것이 어쩌면 다른 사람들과 이미 유기적으로 얽혀있어서 수많은 필연이 교차하는 그런 지점에 형성되는 우연의 집합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엇인가를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에 옮긴다고 생각하지만 그 많은 것들은 나의 결정과 판단과는 무관하게 진행된 별개의 일들에 영향을 받고 그리고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나의 현실에 급작스런 무력감이 찾아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구경만하면서 살 수도 없는 것이 또 인생이 아닌가. |
|
입에 착착 달라붙지 않는 제목이다. 영어 제목(A widow for one year)은 그들에게 어떤 느낌일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어 제목으로는 느낌이 영~ 어정쩡하다. 읽는 내내 알지 못했던 이 제목의 의미는 두 권째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 멋들어진 소설이 가진 조금은 이상한 제목과는 달리, 각 소제목들은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잘 지어져있다. 사실 작가 "존 어빙"은 제목을 무척 잘 짓는 작가가 아닐까? 아니면 제목을 짓는 데 무척이나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작가임에 틀림없다.(주인공 루스의 대화를 통해 나타난 것처럼..) 내가 처음 이 소설의 내용을 접한 것은 2년 전 영화를 통해서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킴 베신저의 바람난 가족>이라는 터무니없는 제목(문소리의 바람난 가족이 유행을 했다나 뭐라나..)으로 극장 개봉 없이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영화의 원제는 <The door in the Floor>이고 한국어로 옮기자면 <마룻바닥의 문>(소설 속에도 등장한다)이다. 예술적이면서 가슴 아픈 영화가 될 뻔했던 이 영화는 제목때문에 버림받은 느낌이다. 이 영화에서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다코타 패닝의 동생 엘르 패닝이 등장한다는 것과 늙었지만 아직도 아름다운 킴 베신저의 우수에 젖은 눈빛, 극 중 아버지인 테드의 그림책 <마룻바닥의 문> 애니메이션..이다. "자기가 태어나고 싶은지 잘 모르는 어린 꼬마가 있었습니다. 엄마도 아이를 낳고 싶은지 잘 몰랐습니다."로 시작하는 이 그림책은 메리언과 테드의 사랑하는 아들, 토마스와 티모시가 자동차 사고로 숨진 후에 만들어진다. 깊은 슬픔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새로운 환경을 만들 때, 테드의 계획 하에 태어난 "루스"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총 3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1958년의 여름과 1990년 가을 그리고 1995년의 가을이다. 1958년 여름은 루스가 네살 때이며, 여러가지 사건들 끝에 메리언과 테드는 헤어지게 된다. 이 때 루스에게 남는 것은 오빠들의 부재를 견디지 못한 엄마에게 자신은 버림받았다는 느낌과 검지 손가락 끝 유리에 베인 상처뿐이다. 1990년 가을이 되면 루스 뿐만 아니라 엄마 메리언 그리고 메리언의 어린 연인이었던 에디까지(등장인물의 대부분이) 소설가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쓴 소설의 제목 뿐만 아니라 소설의 상세한 내용 혹은 제 1장 전부가 소설 속에서 인용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소설 속의 소설" 플롯을 갖게 된다. 작가 존 어빙이 이렇게 그들의 소설을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그들 각자가 자신의 소설을 통해 각자의 아픔을 치유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들의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들의 삶과 정체성, 성격, 생각까지도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것은 매우 특이한 체험이다. 나는 소설을 읽고 있는데 그들 자신의 사건들을 읽으며 그들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쓴 소설을 읽으며 그들을 알아간다는 느낌. 이렇게 복잡하고 치밀한 구성을, 존 어빙은 어떻게 만들 수 있었는지 감탄스럽기만 하다. 작가가 존경스러워지는 부분은 그뿐만이 아니다. 앞에서 아무렇지고 않게 읽었던 내용이 뒷부분에서 아주 중요한 복선이 될 때,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테드는 루스의 영감을 받아 <누군가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소리>라는 그림책을 쓰게 되는데, 먼 훗날 루스는 이런 소리를 본인 스스로가 낼 수밖에 없는 처지에 직면한다. "두더지 인간은 붉은 방의 거울을 모두 훑어보며 천천히 일어섰다. 살인자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루스는 잘알았다. 그것은 누가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소리였다. 남자는 바로 그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살인자는 숨을 참았고 씨근거림을 멈추었으며 사방을 둘러보았던 것이다. 남자의 코가 씰룩였고, 루스는 두더지 인간이 자기를 찾으려고 코를 킁킁댄다고 생각했다." ...106p 등장인물 대부분이 작가이므로 작가들의 여러 생활들도 자연스레 알 수 있다. 어떤 식으로 소설을 구상하는지, 어떤 팬들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어떤 한 팬(팬이라 할 수 있을까?)의 악담대로 결혼 4년만에 과부가 된 루스는 그가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나서야 비로소 아들 둘을 잃은 엄마가 왜 자신을 멀리하려 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그녀의 시련은 그녀의 엄마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조금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 그건 작가의 목소리였다. 이 책은 1인칭도 아니고 3인칭도 아니다. 아니, 처음엔 3인칭 시점이라 생각했지만 책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아니라고 생각했다. 작가가 독자에게 책 내용을 들려주는 듯이... 마치 나는 작가이므로 내용을 다 알고 있으니 당신들에게 미리 얘기해주지..하는 느낌? 나중에 책을 다 읽고 찾아보고 나서야 그것이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이 나에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작가의 문체나 시점도 그랬고, 소설 속의 소설이나 그림책 내용들(하나같이 대충 만들어진 것이 없다)도 모두 재미있었고,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모두 애정이 갔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이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내용을 여러가지 장치들로 잘 버무려놓은 존 어빙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
|
평이한(?) 제목때문에 읽을까말까 고민하다 읽기 시작한 책이었으나 매우 재미있었고, 말그대로 손을 뗄 수 없게 술술 읽혔다. 명문교인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를 배경으로한 통찰력 있는 버전의 '가십걸'이랄까. 분명히 모두 부유하고 미국의 주도계층(?)에 속해 사적인 자리에서아시아의 마이너리티인 날 만나면 코웃음을 칠만한 등장인물들인데 왜 소설에서 속속들이 다루는 그들의 현실은 찌질하고 우울한지.
제목인 '일년 동안의 과부'에 대해서는.. 1권만으로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으나 2권에서 루스에 대해 자세히 다뤄지면서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제목이 되었는데 스토리의 감동과 메시지(?)를 다 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약간 아쉽다.
이 책은 나에게 있어서 인생의 큰 고민 혹은 의문 중 두 가지를 다루고 있는데
첫번째는 가족과 부부에 대한 것이다. 나의 신조는 부부가 행복하게 잘 지내면 아이들은 알아서 큰다 이기에 테드와 마리온(소설에서는 매리언이라 번역하고 있으나.. 웬지 프랑스계 캐나다인일 듯한 그녀를 마리온이라 부르고 싶어졌다)의 관계가 너무 안타까웠다. 본질적으로 결혼을 하면 안될 것 같은 인간 테드-테드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려는게 아니라.. 결혼으로 본인도 주변 사람도 모두 불행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타입이랄까-와 나의 불행이 (심지어 나보다 나은) 남의 불행을 보는 것으로 치유될꺼라 생각한듯한 여인들의 관계. 그리고 정말 가족에게 큰 불행이 닥쳐버리자 중심을 잃고 새로운 사랑마저 두려워하게 되는 마리온. 예전에 만약 장애가 있는 아이를 출산할 경우 대부분의 부부가 협력을 해도 부족할 마당에 서로를 비난하다가 파국으로 치닫는다는 기사를 읽고 나의 결혼생활은 어떠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해 아직도 그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두번째는 실존하는 것을 글로 쓰는 것과 허구의 세계를 만드는 것 중 무엇이 더 우월(?)한가 라는 질문인데 소설은 아니지만 글을 쓰는 직업을 선택한 이상 자주 접하는 의문이었는데 2권에서 소설의 주인공들도 이것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결국 답은 없는 의문들이겠지만.
|
|
일년동안의과부1, 2 존어빙 저
<일년동안의과부>는1,2권으로되어있었고 제목만보아도도대체어떤소설인지궁금증을불러일으키는책이었다 목차에서부터몇년도에있었던일인지로정리가되어있어서 진짜실제있었던일인가하는착각까지불러일으킬정도로소설은정말디데일했다 등장인물의대다수가글을쓰는작가였다는점도새로웠다 그래서인지이책도이야기속의이야기라는전개방식이었는데 등장인물들이쓴소설들대부분이 자신이실제겪었던일을바탕으로계속짜집기(?)해서소설을쓰는스타일이었다 그만큼그들이겪었던일들은기간이짧던길던그들의삶의큰영향을미쳤고 죽기전까지,아니죽어서까지도그들의마음속에서영원히지워지지않을사건들이었다
어린이책작가태드콜과 그의아내매리언은몇년전불의의교통사고로두어린아들을잃었다 아이들을죽음으로몰고갔던그사건의자동차안에서그들의부모들도같이있었고 그들은아들들의죽음을바라만볼수없는상황에있었다. 그이후로매리언은삶자체를거의포기하고자포자기상태로딸루스를임신해낳게된다 하지만그녀는아이를또잃지않을까하는불안감속에 루스에게정을붙이지않으려하며엄마노릇자제체를안하게된다 그렇게루스가3살4살커가고보다못한테드콜은어느날 16살의에디를작가보조로들이며매리언이그와사랑에빠지는것을지켜보게된다 매리언은에디에게모성애를밑바탕으로한연애를하게된다(에디에게처음섹스를하게하는것도그녀다) 그들의만남을짤지만강렬했다그이후매리언은홀연히그들을떠나버리지만 에디는그뒤로10년20년이상의나이차가나는여성들만만나게된다 주인공루스는엄마없이자라며그녀역시소설가가되었고 결혼을하고아이를낳게된다그이후시간이흘러그녀가20대30대,40대가되어일어나는일들의이야기가전개된다 전혀예상치못한아버지의자살이나,그로인한첫번째결혼,출산,남편의죽음,살인사건의목격자,잘나가는소설가,두번째결혼..등등 그리고마지막에매리언이돌아오면서이야기는끝이난다.
정말충격적인장면도많았고그디테일함에책을손에서땔수가없게만든부분도많았다 소설속의소설을보는재미도컸을뿐아니라 그많은사건과혼란속에주인공루스가삶을살아가는방식이과히많은교훈과즐거움을주었다 역시기대이상으로존어빙은정말탁월한이야기꾼이다
|
|
첫 장면부터 너무 자극적이고 직설적이어서 깜짝 놀랐다. 그래서 그만 성급하게도 그저 그런 야한 책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어내려갈 수록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캐릭터에 상세한 상황까지 글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꽤 긴 글일었음에도 지루하지 않게 재밌는 상황들을 연출하며 이어나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멋져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책을 읽는 중간중간 저자의 사진을 자꾸만 들여다봤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써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조금이라도 소설류의 글을 쓰려고 애써 본 사람이라면 그의 매끄러운 글솜씨는 질투날 정도의 큰 재능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 처음 부분에서 번역이 좀 매끄럽지 않아 신경쓰이기도 했지만 그것이 무슨 대수랴. 얼마쯤 읽어가다보면 뒷 내용이 궁금해서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역시 베스트셀러는 다르다. 읽는 내내 느낀 점이다. 소설을 잘 읽지 않는 내게도 정말 재밌는 소설이라는 게 어떤 건지 조금쯤 와닿는 그런 시간이었다.
매리언, 테드, 루스, 에디, 해나,하리, 앨런, 그레이엄 등등등.. 많은 주요 인물들은 굉장히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특히 소설가 루스가 풀어내는 소설 이야기들때문에 하나의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5개 이상의 소설을 만들 수 있을 내용들로 존 어빙은 단지 하나의 소설만을 써낸다. 이 사람은 상상력의 괴물인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내용 요약은 하지 않겠다. 소설류나 영화리뷰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줄거리 요약이라고 생각하므로.
목수에 자신을 비유한 이야기꾼. 정말로 그는 유능한 이야기꾼이다.
|
|
내가 읽은 존 어빙의 두번째 책이다.. 사이더 하우스를 읽고 꽤 흥미롭게 잘 써내려간 책이다라고 생각해 이번 책에 대한 기대도 컸다.. '일년 동안의 과부'는 그로 하여금 우리 시대 최고의 스토리텔러라는 찬사를 얻게 한 작품이자 그의 소설 중 가장 많이 팔린 작품이라하니 어찌 기대를 안 할 수 있겠냐고~ 게다가 '마룻바닥의 문'이란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니 기대하는건 당연하지..
그런데 너무 기대를 한 탓일까? 이 책은 나에게 약간의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사이더 하우스가 낙태라는 주제를 가지고 좀 경쾌하게 풀어낸 반면..(그렇다고 사이더 하우스가 밝은 분위기의 유쾌한 책은 아니다..하지만 뭔가 위트 넘치는 책이라고 느꼈다.) 이 책은 요즘 드라마에서 많이 본 듯한 자극적인 소재의 불쾌한 느낌을 주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만큼 재밌다. 읽을수록 뒷 이야기가 궁금하고 술술 읽어지는 그런 책이지만 그럼에도 재밌다고 다 읽어보라고 하기엔 좀 꺼려진다. 아마도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너무도 적나라해서 읽을 때마다 '사랑과 전쟁'이나 '스캔들'같은 TV프로를 보면서 '저 죽일 놈~'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존 어빙의 책은 확실히 재밌다..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그래도 이 책은 감정의 변화에 단련된 사람이 보시길..읽다가 버럭~!할 수도 있다.. |
|
"짧은 사랑, 오랜 기다림, 아름다운 해후" 라는 책표지의 문구만을 믿고, 그리고 각종 서평에서 쏟아내는 문구에 기대를 잔뜩 가지고 책을 펼쳐 들었다면 충분히 실망하리라. 난 출판사에서 내놓는 서평을 잘 챙겨서 읽고 책읽기를 끝내고 다시 서평을 쭉 훑어보곤 한다. 과연 누가 정곡을 꼭 찔러 놓았을까? 라는 궁금증과 내가 서평을 쓴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하고 잠시 생각해 보곤 한다. 오늘 일년 동안의 과부를 읽고 짧은 서평을 쓰라 한다면 이렇게 쓰지 않을까 싶다. "할리우드 영화 한편을 보고 나온 기분이다. 깊은 생각없이 재미있고 다소 특이한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추천한다" 고.
아무나 상상할 수 없는 특이한 이야기를 상상해 내고 적절한 특수효과를 동원하여 비쥬얼한 효과를 극대화 시키고 마치 퍼즐조각을 맞추듯한 사건의 연결은 섬세하고 정교하다. 상상하면서 궁금한 마음 가득 안고 다음 이야기를 읽기 위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매력은 있다. 적절히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이야기도 곳곳에 배치해 놓았으니... 그러나 그 정교함속에서도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쉽게 허물어 지는 모래성이 아닐까? 삶의 무거운 요소를 가볍게 다룬 영화가 그렇듯 영화가 끝나고 어둠은 걷히고 영화관 밖으로 나오면 그 꿈같은 이야기는 쉽게 잊혀지듯 현실의 끈을 놓고 날아가는 풍선처럼 내마음 밖으로 훌훌 털고 날아간다.
주인공들에게 닥친 상황은 너무 무겁고 어두워서 한 평범한 인간이 감당하기엔 가혹하다. 이런 현실에 반해 책속의 등장인물들은 너무나 가볍고 쉽다. 살아가는 시대와 공간이 다르고 아무리 독특하고 특이한 개성을 갖춘 사람들이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같은 사람으로서의 보편적인 공통점을 가지기 마련인데 나에겐 저 별나라의 외계인 같은 낯섬을 느꼈다면 내가 너무나도 평범해서 일까? 소설의 큰 줄기와 뿌리가 되는 이야기들과 그 설정이 나와 너무 동떨어진 정서와 삶이어서 처음부터 쉽게 몰입하는 것을 방해했다. 대개는 글을 읽으면서 또다른 나를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고 이야기속 인물들 속에서 나를 발견하곤 하는데 이번 소설에선 내가 동화되기엔 너무나 거리가 멀고 이질적이다라고 느꼈다. 단순히 그저 재미나게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고 그리고 영화같은 이야기라고 잘라 말한다면 쉬웠을것을...
나의 많은 실망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인상적인 장면은 루스가 창녀방에서 살인을 목격하는 순간을 상세하게 묘사한 부분이라고 주저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 살인자에게 들켜서는 안되는 순간을 테드의 소설 "누군가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소리"의 두더지 인간과의 긴장된 순간을 빗대어 주인공의 심리와 상황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글은 가장 숨죽이고 긴장하며 읽고 이부분 정말 멋지게 잘 썼다라고 감탄했으니까.
한편의 드라마나 영화 혹은 만화를 보는 기분으로 이 책을 시작했다면 충분히 즐겼으리라 그러나 난 화려한 찬사의 서평속에 작가의 사랑에 관한 인생에 대한 세심하고도 날카로운 관찰과 그에 따른 깊이 있는 통찰의 관점에서 접근하다보니 기대와 어긋난 것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