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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착착 달라붙지 않는 제목이다. 영어 제목(A widow for one year)은 그들에게 어떤 느낌일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어 제목으로는 느낌이 영~ 어정쩡하다. 읽는 내내 알지 못했던 이 제목의 의미는 두 권째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 멋들어진 소설이 가진 조금은 이상한 제목과는 달리, 각 소제목들은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잘 지어져있다. 사실 작가 "존 어빙"은 제목을 무척 잘 짓는 작가가 아닐까? 아니면 제목을 짓는 데 무척이나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작가임에 틀림없다.(주인공 루스의 대화를 통해 나타난 것처럼..) 내가 처음 이 소설의 내용을 접한 것은 2년 전 영화를 통해서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킴 베신저의 바람난 가족>이라는 터무니없는 제목(문소리의 바람난 가족이 유행을 했다나 뭐라나..)으로 극장 개봉 없이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영화의 원제는 <The door in the Floor>이고 한국어로 옮기자면 <마룻바닥의 문>(소설 속에도 등장한다)이다. 예술적이면서 가슴 아픈 영화가 될 뻔했던 이 영화는 제목때문에 버림받은 느낌이다. 이 영화에서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다코타 패닝의 동생 엘르 패닝이 등장한다는 것과 늙었지만 아직도 아름다운 킴 베신저의 우수에 젖은 눈빛, 극 중 아버지인 테드의 그림책 <마룻바닥의 문> 애니메이션..이다. "자기가 태어나고 싶은지 잘 모르는 어린 꼬마가 있었습니다. 엄마도 아이를 낳고 싶은지 잘 몰랐습니다."로 시작하는 이 그림책은 메리언과 테드의 사랑하는 아들, 토마스와 티모시가 자동차 사고로 숨진 후에 만들어진다. 깊은 슬픔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새로운 환경을 만들 때, 테드의 계획 하에 태어난 "루스"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총 3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1958년의 여름과 1990년 가을 그리고 1995년의 가을이다. 1958년 여름은 루스가 네살 때이며, 여러가지 사건들 끝에 메리언과 테드는 헤어지게 된다. 이 때 루스에게 남는 것은 오빠들의 부재를 견디지 못한 엄마에게 자신은 버림받았다는 느낌과 검지 손가락 끝 유리에 베인 상처뿐이다. 1990년 가을이 되면 루스 뿐만 아니라 엄마 메리언 그리고 메리언의 어린 연인이었던 에디까지(등장인물의 대부분이) 소설가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쓴 소설의 제목 뿐만 아니라 소설의 상세한 내용 혹은 제 1장 전부가 소설 속에서 인용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소설 속의 소설" 플롯을 갖게 된다. 작가 존 어빙이 이렇게 그들의 소설을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그들 각자가 자신의 소설을 통해 각자의 아픔을 치유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들의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들의 삶과 정체성, 성격, 생각까지도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것은 매우 특이한 체험이다. 나는 소설을 읽고 있는데 그들 자신의 사건들을 읽으며 그들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쓴 소설을 읽으며 그들을 알아간다는 느낌. 이렇게 복잡하고 치밀한 구성을, 존 어빙은 어떻게 만들 수 있었는지 감탄스럽기만 하다. 작가가 존경스러워지는 부분은 그뿐만이 아니다. 앞에서 아무렇지고 않게 읽었던 내용이 뒷부분에서 아주 중요한 복선이 될 때,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테드는 루스의 영감을 받아 <누군가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소리>라는 그림책을 쓰게 되는데, 먼 훗날 루스는 이런 소리를 본인 스스로가 낼 수밖에 없는 처지에 직면한다. "두더지 인간은 붉은 방의 거울을 모두 훑어보며 천천히 일어섰다. 살인자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루스는 잘알았다. 그것은 누가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소리였다. 남자는 바로 그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살인자는 숨을 참았고 씨근거림을 멈추었으며 사방을 둘러보았던 것이다. 남자의 코가 씰룩였고, 루스는 두더지 인간이 자기를 찾으려고 코를 킁킁댄다고 생각했다." ...106p 등장인물 대부분이 작가이므로 작가들의 여러 생활들도 자연스레 알 수 있다. 어떤 식으로 소설을 구상하는지, 어떤 팬들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어떤 한 팬(팬이라 할 수 있을까?)의 악담대로 결혼 4년만에 과부가 된 루스는 그가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나서야 비로소 아들 둘을 잃은 엄마가 왜 자신을 멀리하려 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그녀의 시련은 그녀의 엄마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조금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 그건 작가의 목소리였다. 이 책은 1인칭도 아니고 3인칭도 아니다. 아니, 처음엔 3인칭 시점이라 생각했지만 책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아니라고 생각했다. 작가가 독자에게 책 내용을 들려주는 듯이... 마치 나는 작가이므로 내용을 다 알고 있으니 당신들에게 미리 얘기해주지..하는 느낌? 나중에 책을 다 읽고 찾아보고 나서야 그것이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이 나에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작가의 문체나 시점도 그랬고, 소설 속의 소설이나 그림책 내용들(하나같이 대충 만들어진 것이 없다)도 모두 재미있었고,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모두 애정이 갔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이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내용을 여러가지 장치들로 잘 버무려놓은 존 어빙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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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16살 에디 오헤어는 자신의 엑시터 학교 동문이자 동화작가 및 삽화가로 성공한 테드 콜의 집에 여름 방학동안 운전기사 및 작가 조수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에디로서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자신이 좋아하기도 했던 [벽사이로 기어다니는 쥐]의 작가의 조수로 일할 수 있다니! 45살 테드는 잘생겼고 그의 성공을 힘입어 여자들과 바람피우기에 정신이 없다. 그의 아내 39살 매리언은 토머스, 티머시 두 아들을 1954년에 사고로 잃고 딴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아들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한채 평생을 가슴에 두고 살게 된다. 그 이후 태어난 딸 루스 콜은 이제 4살이다. 왜 테드는 자신의 조수로 에디를 고용했을까? 혹 그의 외모와 두 아들 그리고 매리언과 관련이 있지는 않을까? 테드의 바람기에 지쳐가고 자신의 딸에게 사랑주는 것을 두려워한 매리언은 에디와 불장난을 한다. 여름 한철 사랑으로 에드는 그의 평생과 소설의 주제가 될 연상녀에 대한 사랑을 지니게 된다. 매리언은 그 일을 빌미로 테드를 떠날 수 있게 된다. 중간에 나오는 테드의 연인 본 부인과 과부인 먼트시어 부인과 그의 딸 글로리 역시 뒤에 한 부분을 이루는 인물들이다. 1990년 32년 후 48살 에디는 루스의 소설 [아이들에게는 안돼]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그녀와 만난다. 겨우 4살의 루스가 어느새 3권이나 책을 낸 작가가 되다니! (이래서 피는 속일 수 없는건가?) 에디 역시 작가가 되었으나 그의 작품들은 사춘기 시절 그가 경험하게 된 그 경험에 갇혀 그 주위를 맴돌고 있을 뿐이다. 출판사 편집자 앨런이라는 인물은 루스를 일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많이 도와주는 성질이 있지만 루스에게 다정한 사람이다. 루스는 그러 그가 싫지는 않지만 무엇인가 확신이 없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가 진정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된다. 77살의 테드는 나이만 들었을 뿐 외모와 바람기는 여전하다. 본 부인과의 스캔들로 그녀에게 호되게 당하고 나서도 여전히 강연회에서 만난 유부녀나 대학생들에게 작업을 거는 노익장(?)을 발휘한다. 그런 그도 자신의 딸 루스 걱정은 많다. 그녀가 자신의 스쿼시 친구 변호사 스캇 선더스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고 분노한다. 차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던 테드. 자신의 바람기질 때문에 딸이 그러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걸까 그는 자신의 스쿼시 코드에서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루스는 다음 작품 구상을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여행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홍등가를 경험하려고 루이라는 창녀와 가까워지게 되고 루이가 살해당하던 날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앨런과 루스는 결혼하게 되고 둘 사이에 아들 그레이엄이 태어난다. 1995년 암스테르담에서는 하리 후크스트라라는 한 은퇴 경찰관이 있다. 그는 4년전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루이 살인사건에 대한 제보를 접하게 되고 범인을 잡는다. 루스는 4년전 살인 사건의 목격자로서 살인 현장에서 루이를 도울 수 없었던 죄책감을 마음한 켠에 지니던 도중 범인 검거 소식을 듣게 되고 다시 암스테르담을 방문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하리를 만나게 된다. 루스는 앨런을 심장마비로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내고 1년 동안 과부가 되어있는 상태였다. 하리와 루스는 사람에 빠지고 그들은 결혼한다. 에디는 연상의 사랑을 잊지 못한채 그 누구와 사랑을 하려 하지 않는다. 한편 캐나다로 떠난 매리언은 작가로서 4권의 책을 낸다. 추리소설 형식을 빌어 자식의 상실감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고 책은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둔다. 그녀는 테드의 죽음에도 딸의 첫 번째 결혼과 앨런의 장례식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모습을 나타내게 될까 이 소설은 한 부부와 그들의 딸 그리고 부부의 조수로서 인연을 맺은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자식을 잃게 된 매리언과 바람기로서 그 슬픔을 삭이려는 테드, 그런 그녀를 사랑하게 된 에디, 엄마를 어린 시절에 떠나 보내고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루스. 재미있는 소설을 찾고 있다면 이 책을 집어라.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것이 존 어빙이라는 작가의 필력을 느낄 수가 있다. 심각하지 않지만 자신의 소설에 대한 견해를 나타내려는 듯 재미있게 그렇지만 탄탄하게 짜여있는 이야기를 읽으면 소설가가 이야기꾼이라는 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소설이 삶의 문제를 성찰하고 자신을 반성하게 해야한다고 믿는 독자들에게는 아쉬울 수 있겠지만 삶이란 이렇지 않은가? 적당히 세속적이면서도 일어나지 않아야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삶 말이다. 이 소설을 읽고 존 어빙에게 반했다. [가아프가 본 세상], [사이더 하우스]를 연속해서 읽어봐야겠다. [오웬 미니를 위한 기도]는 번역본이 없던데 원서를 사서 읽던가 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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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은 루스가 아버지와 해나의 스캔들 현장을 목격한 후, 나쁜 남자에게 폭행까지 당한 충격에 휩싸인 체 독일로 간 이후부터 시작한다.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신을 '남은 평생 동안의 과부'라고 지칭한 여자의 지독한 독설과 저주가 담긴 무례한 편지. 게다가 우연하게 맞닥뜨린 살인현장과 그녀를 쫓는 형사, 아버지의 죽음. 이 혼란 속에서 루스는 무사히 해피엔딩을 이룰 수 있을까? ‘세상은 생각하는 자에게는 희극이고 느끼는 자에게는 비극이다.’ 하지만 진짜 세상은 생각하는 자에게도 느끼는 자에게도 비극입니다. 오직 운 좋은 사람에게만 희극일 따름이지요.
서른아홉의 매리언과 열여섯의 에디. 충격적인 1권의 도입부를 보고 당연히 떠오른 것은 더스틴 호프만이 열연했던 <졸업 The Graduate, 1967>이었다. 네 살의 루스가 발견한 엄마와 어린 소년의 정사 장면이 의도하는 바에 따라, 아니 “이 불운한 소년은 36년 후에, 그가 쉰둘이고 루스가 마흔 살일 때,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대도 그는 루스의 엄마와 잔 일을 후회하지 않으리라. 애석하게도 그게 에디의 문제가 되리라.”라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착각에 빠진 것이다. 이것은 2권 중반부에 이르러 ‘하리’가 표면에 전면적으로 등장하기 전까지 계속되었고, 당연히 이 소설은 루스와 에드의 사랑으로 결말이 나리라 생각한 것이다. 작가의 필력에 고스란히 휘둘리고 만 것이다. ‘짧은 사랑, 오랜 기다림, 아름다운 해후’ 이 카피는 두 사람이 아니라 그들 각자를 말하는 것이니. 충격적 반전이라 할만 했다. <일 년 동안의 과부>에 등장하는 주요인물 루스, 에디, 매리언, 테드 이들 네 사람은 뒤틀린 사고방식 혹은 심리의 소유자이다. 루스는 태어나자마자부터 가족 혹은 가족애의 상실과 모성이 결여된 불안정한 환경에서 성장한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은 두 오빠와 그 사고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머니, 그리고 더욱 더 방탕해진 아버지. 어린 시절은 부성애로 충분했지만, 차츰 성장하면서 깨달은 아버지의 부도덕함은 남성 불신을 뿌리깊게 자리잡게 한다. 엄마에게 버려졌다는 상처와 경험해보지 못한 모성은, 자신이 낳을지도 모를 아이에게 모성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자기가 태어나고 싶은지 잘 모르는 어린 꼬마가 있었습니다. 엄마도 아이를 낳고 싶은지 잘 몰랐습니다.” 불확실성의 토대가 되고, 그것은 그녀의 작품 활동과 인간관계, 결혼 등 인생 전반에 걸쳐 영향을 준다. 에디는 열여섯 여름에 겪은 첫사랑의 열병에서 벗어나지도 성장하지도 못한 체 37년을 방황한다. 그의 모든 소설은 그 여름의 경험이 빚어낸 다양한 변주일 뿐이다. 매리언은 자의식이 강한 사람으로 이기적이라 평할 만하다. 테드는 가장 버라이어티한 성격의 소유자로 나쁜 남자의 전형이다. 이런 캐릭터성이라는 짙은 묘미를 가진 독특한 인물들이 얽히고설킨 풍성한 스토리성을 보인다. 작가적 성향의 반영으로 이야기는 3인칭 시점으로 이어진다. 등장인물들 또한 자신의 일과 인생 또한 지극히 3인칭적 관점으로 받아들인다. 약간은 비판적이며 이성적으로, 감정적 단절 하에 타인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게다가 네 명의 작가가 주요인물이니 여러 종류의 소설들이 액자형식으로 등장하며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비슷한 상황과 비슷한 대화의 등장은 독자들이 작가의 역량을 의심케 한다. 하지만 <일 년 동안의 과부>에서는 이것조차도 치밀한 계획하의 의도된 복선과 암시로서 사용되어진다. 완벽한 디테일과 빈틈없이 짜인 정교한 플롯. 독특한 성격의 등장인물과 혀를 내두르게 하는 스토리성. 그러기에 존 어빙을 탁월한 이야기꾼이라고 칭하는 가 보다. 개인적인 느낌에선 이 소설의 제목으로 <일 년 동안의 과부 A Widow For One Year>보다는 영화화 되었던 <마룻바닥의 문 The Door In The Floor, 2004>의 제목이 더 어울리지 않았나 싶다. 이 <마룻바닥의 문>이라는 제목은 소설 속에서 테드가 쓴 동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자기가 태어나고 싶은지 잘 모르는 어린 꼬마가 있었습니다. 엄마도 아이를 낳고 싶은지 잘 몰랐습니다.”로 시작하는 암울한 이야기. 호수에 떠 있는 작은 섬 속 오두막에서 사는 행복한 꼬마와 엄마, 그리고 절대로 열면 안 돼는 마룻바닥의 문은 이 <일 년 동안의 과부>라는 소설 전체의 내러티브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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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어빙 '일년동안의 과부' 2권!! 새로운 시작 너무너무 궁금~~하다눈~
이 뒷표지의 말이 다 읽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는;;
전권의 중심은 엄마와 소년위주였다면~~ 2권에서는 또 새로운 루스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근데,, 이 새로운 이야기도 19금;;이지 않을까;;)
그리고, 루스가 두번결혼할동안 소식없는 엄마!! 그리고 할머니가 되어있을 그 엄마를 아직도 사랑하는 소년?-_- 이젠 중년소설가지만,,
그리고 루스의 새로운~ 유럽순회(책홍보;;) 길에서 만난 새로운 사건과 사람!!
이 기나긴 이야기도 또! 끝이 있다는게 아쉬웠던;;
이 책속의 소설가들의 심리가 어쩌면 존어빙 자신이 느끼고 자신이 지향하는 어떤 법칙이 녹아있지 않나 싶당~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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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움직이고 싶지도 몸을 일으키고 싶지도 않은 그런 무능력감이 찾아올 때 내 곁에 바로잡아 있을 수 있는 친구는 바로 이야기가 가득 담긴 동화같은 책 한 권. 쓸쓸하면서도 외로운 나의 심신을 달래줄 책이 곁에 있었다. 존 어빙, 미국이 사랑하는 작가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이런저런 유머로 나를 들썩이게 만드는 이 책 속의 이야기는 그렇게 구미가 당겼다. 밤을 지새며 읽고 난 후, 커피 한잔을 마시며 한동안 빠져들게 만들었던 그 속에서 나를 빼내어 본다.
읽는 사람을 위해 줄거리는 적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주위에서 물어오곤 한다. 어때, 무슨 이야기야? 책도 예외가 아니다. 재밌어? 라는 그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좋으니 보라고, 읽어보라고만 한다. 그대로의 느낌을 간직하고, 느낌을 존중하기 위해서이다. 한때, 영화 <시네마 천국>을 보고나서 이 시대에 대해 탄식을 한 번 경험한 적이 있다. 남녀노소 야외의 스크린 앞에 앉아 무슨 내용인지 어떤 배우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저 영화 온통 그대로를 내 안의 감각이 느끼게끔 내버려둘 수 있고, 아니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그 시대의 상영을 찬미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이란, 흘러나오고 내가 알고 싶지 않은 모든 것들이 나를 괴롭히는데 그게 참 아이러니 하다. 많이 알고 싶지만 그만큼 앎의 가치는 상실되고 있으니 말이다.
매리언과 에디, 37년만의 재회. 그 속에서 느끼게 되는 느낌은 단 한 가지이다. 에디는 이렇게 말한다. "시간이 멈추는 순간들은 있게 마련이니까.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지만."
흘러가는 시간앞에 무디어져 가는 추억들을 보듬을 수 있는 것이란 많은 것을 희생하며 살아야 하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소중하게 지켜내고 싶은 것이라며 그까짓 희생따위는 감수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기억 속 그대라는 사람과의 사랑이었으니까.
책 속에서 작가를 만나고 그 작가가 늘어놓은 이야기를 읽어낸다는 것, 그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읽어내고 다시 돌이켜 보는 과정이 흥미롭다. 하지만 그 속으로 빠져들을 수록 결과적으로 나에게 남아있는 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어느샌가 이 이야기를 단숨에 읽어내리게끔 써놓은 존 어빙에 대한 감탄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결국은 그가 만들어 놓은 이 책 속에 테드 콜의 책, 루스의, 에디의, 그리고 매리언의 책들에 대한 이야기들조차 그의 것이니까. 그가 만들어 놓은 일련의 과정들을 뒤쫓아가다보면 어느샌가 다시 존 어빙의 이야기로 귀결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나는 이 추운 겨울, 하나의 이야기로 내 주위를 따뜻하게 할 수 있었다. 한동안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을 끝마친 기분이랄까. 동화책 한 권을 던져주면 그것을 읽고 또 읽어서 그 안의 삽화와 이야기들을 줄줄이 욀 수 있었던 것처럼, 이 안의 이야기들이 내 머릿속에서 한동안 맴맴 거리면서 남아있을 것임을 알 수 있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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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동안의 과부 이 책의 저자인 존어빙은 '나는 지식인이 아니다. 나는 이야기를 짓는 목수이다' 라고 한다. 그의 저서중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는 '일년 동안의 과부' 에 대한 평가로
존어빙의 책을 처음 접했기 때문에 그럴까. 그 가 보여주는 여러 플롯, 미래와 현실을 오가며 깔려있는 복선들은 처음에는 혼란 스럽기도 한것이 사실이지만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그제서야 이해가 되며, 존 어빙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때 드는 생각은 시간을 내어 한번 더 탐독을 해보고 싶은 느낌이다. 존 어빙의 책은 종종 영화화가 되었는데 마룻바닥의 문 'The door in the floor' (2004) 라는 영화로 이 책이 영화화 되었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영화를 보고, 존어빙의 집에 다시금 놀러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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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인생은 곧 소설이다.. 소설은 이미 그들의 인생이었다] ‘일년 동안의 과부’의 출간 소식을 접하고나서 처음에 이 책의 제목만으로도 도대체 어떤 내용의 소설일지 이미 너무 많은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었다. 제목만을 보고는 도대체 과부가 어떤 인생을 살것이며, 그 주위에 인물들이 어떤 사람들로 채워질지에 대한 의문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작가 존 어빙은 풍부한 상상력을 토대로 놀라운 내러티브 기교의 천부적인 이야기꾼으로 이미 그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었고 화려한 수상경력을 바탕으로 대단한 명성의 스토리텔러라는 평가를 받고 있음에 이 책에 기대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책을 읽겠다고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1권의 시작부분은 솔직히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건으로 시작하고 있다. 열 여섯살의 어린 소년 에디와 서른 아홉살의 유부녀였던 매리언의 사랑과 성적인 묘사앞에서 난 살짝 움츠려들게 되었고 적나라한 표현과 구절을 봐가며 이런 사랑은 절대 있을수 없을것이란 판단하에 책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존 어빙은 독자들이 이런 느낌으로 이 책을 대할수도 있을 것이란 판단을 먼저 했을것이고, 이런 불편한 심기를 푸는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테드 콜과 매리언 콜. 이 부부는 토마스와 티모시라는 두 아들을 비극적인 교통사고로 잃게 되었던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는데 그로 인해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또 나이 어린 딸 루스에게 충만한 사랑을 주지 못하는 불행한 삶을 살아간다. 불안정하고 아슬아슬하기만 한 이들 부부에게 어느날 작가인 테드의 조수로 여름방학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열 여섯 소년 에디의 등장으로 또다른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 사춘기 소년의 눈에 아름답고 매력적인 매리언은 처음 마주쳤을때부터 마음속 깊이 그의 로망으로 자리잡게 되고, 남편과의 불편하고 불행한 관계와 죽은 아들들의 기억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매리언은 그 소년의 사랑을 받아주면서 둘의 사랑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미 등장한 인물들 중 어느 한 사람 만족할 만한 행복을 찾지 못했고, 매리언은 결국 아들들의 죽음으로 겪게 된 불행한 삶을 이기지 못하고 루스를 버리고 떠나게 된다.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가엾고 안쓰럽게 자라는 루스와 사춘기 시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너무 깊은 사랑을 알게 된 에디의 인생을 보며 두 사람의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지 존 어빙은 내게 손에 땀을 쥐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테드와 매리언, 후에 에디와 루스 모두 작가란 인생을 살게 되는데.. 소설가에게 있어 소설은 인생 그 자체이고, 소설은 그들에게 삶 그 이상이라는 사실을 깊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소설가들을 생각할 때 독자들의 입장에선 결코 그들의 아픔과 인내, 고통들은 별 관심없는 얘기들이다. 단지 결과물로 나타나는 소설만을 가지고 우리는 이 소설은 괜찮다, 아니다.. 그런 식으로 쉽게 결정지어버리고 말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소설가들을 깊이 생각해 보았던 적이 있었나 뒤돌아보게 되었다.
존 어빙은 무려 2권에 898페이지로 일년 동안의 과부를 풀어가는 동안 그 수많은 인물들의 모습을 그리며 그들의 감정표현과 사건의 전개, 배경상황에 이르는 모든 요소들 중 어느하나 빠지는 구석없이 완벽할 정도의 치밀함을 보여준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들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진행되고, 인물들의 심리적인 묘사나 외형적인 모습들까지 모든게 완벽했다. 책을 아직 다 읽기도 전에 두터운 이 두 권의 책을 보면서 작가의 이야기가 이때쯤이면 끝이 날텐데.. 하고 짐작해보기도 했었지만 그런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존 어빙의 스토리는 그 어느 소설보다 탄탄했고, 무궁무진한 또 다른 세상으로 나를 안내해주었다.
작가가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 많은 지식들을 갖추기 위해 애쓰고 노력해야만 하는지 그들의 노고에 절로 찬사가 나온다. 소설을 그리 많이 읽었다고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여지껏 봐왔던 소설들에 비해 존 어빙의 소설은 그 자신이 스스로 얘기했듯이 이야기를 지어내는 목수다라고 자신있게 밝혔던만큼 ‘일년동안의 과부’ 이 소설은 그야말로 그 어떤 비바람이 불어도 전혀 끄덕없는 단단한 프레임에 확실한 기반을 다져서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감히 자신있게 말 할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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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시간 능숙함이 몸에 배인,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다.
루스가 집필한 <일년 동안의 과부>와 관련된 불평독자와의 에피소드와 새 작품 『나의 마지막 나쁜 남자 친구』의 집필 취재와 살인사건의 목격, 어머니가 집필한 책의 만남, 아버지의 자살, 편집장인 앨런과의 첫번째 결혼, 앨런의 죽음, 목격자를 찾는 경찰, 새로운 사랑과 엇갈린 인연, 되돌아온 해후까지 1편에서 궁금했던 내용들이 해결되고, 새로운 사건이 등장한다.
오랜 시간 능숙함이 배인 목수의 숨결과 정성이 들어간 목제품을 본 느낌이라고 할까. 정교하게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소수의 등장인물과 그들의 이야기로 900페이지가 달하는 이야기를 풀어낸 장인의 숨결이 느껴진다. 작가와 홍등가 여인의 대화, 살인사건의 현장에서 펼쳐지는 긴박감, 소설의 제목과 그들의 인생의 닮음, 에피소드 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모습에서, 잘 만들어진 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소년이 연상의 연인과 사랑에 빠졌다. 36년이란 긴 시간을 겪으면서도 사랑의 힘을 잃지 않고, 노인이 된 그녀에게 여전한 사랑을 느낀다. 이야기의 전체 메시지는 큰 감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어빙의 손을 거치게 되면, 그들의 긴장된 관계 속에서 에디의 사랑의 빛을 강하게 조명 받게 된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에디가 장식하지만, 더 관심이 갔던 부분은 사랑의 상처를 극복하는 방식이었다.
사랑에 슬픔에 빠져, 슬픔을 전염되는 것이라며, 딸에게, 에디에게 그 마음을 전하고 싶지 않았던 메리언의 떠남과 그녀와 비슷한 사랑의 상처를 겪은 후, 그녀를 이해하게 되는 루스의 모습, 그리고 묘하게 메리언의 행동과 같은 행동을 하는 루스의 행동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에 작은 풍경을 본 느낌이다. 아니란 걸 알면서도 빠져들게 되는 모습과,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실수를 반복하는 모습, 그리고 나중에 후회하는 모습까지, 10퍼센트 보통이들과 다른, 개성강한 인물들이 펼쳐가는 생활을 엿보면, 평범한 일상을 사는 인간의 내면을 볼 수 있었다.
부족하고, 모자란 점이 많지만, 결국 따뜻한 시선으로 등장인물을 묘사한 작가의 따뜻함이 전해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루사가 어렸을 때 베였던 상처와 그 흔적이 36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남아있듯이, 우리 마음 속에 담긴 상처들도, 아물 순 있어도 흔적을 지울 순 없다고 생각한다. 마음의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흔적을 지우기도 힘들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힘은 역시, 공감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공감에서 불러나온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까.
아버지의 특별한 외도, 아버지의 자살, 살인사건의 목격, 오랜 기다림의 사랑, 상실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 등 하나만으로 소설 한 편을 쓸 수 있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들이다. 현실에서의 금기의 영역을 툭툭 견드려, 상상의 폭을 넓힌 느낌이라 할까. 무엇보다 각각의 이야기등이 유기적으로 얽혀,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진짜 현실속에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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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근에 읽고 있던 책들은 주로 경제경영서였다. 쉽게 읽히고 그리고 쉽게 까먹어 버리는 자기계발류의 책들과, 어렵게 읽히고 무언가 생각하게 하는 경제서적들. 그런 책들을 읽을 때는 핵심을 파악하고 거기서 자신의 사유를 덧붙이는 시간들이 중요해 진다. 그래서 글자 한자 한자의 의미보다, 인물보다, 요점을 파악하고 그 요점들을 뒷받침하는 지은이의 사유 혹은 근거를 따라가는게 읽기의 핵심이다. 그런 독서생활을 해 오던 나에게 툭하니 던져진 <일년동안의 과부>를 읽기란-그것도 한 눈에 보기도 부담스러운 분량-어빙 식의 디테일을 덧붙이자면 1권 517p, 2권 381p-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난 어빙을 읽기 위해 하루키를 읽어야했다. 하루키는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이고 무엇보다 소설이니까. 하루키의 책들 중,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란 단편집을 꺼내들고 읽기 시작했다. 일년동안의 과부가 과부 얘기일 것이니 하루키의 공주를 읽다보면 그 무언가가 연속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론은.. 실패였다. 과부와 공주의 공통점은 여자라는 사실 뿐이었다. 하루키의 책도 만만치 않은 두께-다시 한번 어빙 식의 디테일을 붙이자면 424p-였지만, 꾸역꾸역 읽고서 시작한 어빙의 책은 더 어색해져버렸다. 하루키가 일인칭 시점의 고수라면 어빙은 전지적 작가시점의 고수였다. 난 축구를 통해 야구를 이해하려고한 우를 범해버렸다. 하루키와 어빙의 공통점은 소설이라는 사실 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읽은 <일년동안의 과부> 초반부는 힘들었다. 에디 오헤어와 매리언 콜의 로맨스가 10대때 누구나 상상하게 되는 야설 정도로만 느껴졌다. 그 때문에 두근두근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기대하지 않고 읽게 된 야설은 꽤 불쾌했다. 또한 이것저것에 대해 다 말해버리는 작가의 어투가 매우 거슬렸다. 문제를 내놓고는 아무것도 아닌듯 답을 던져주는 어빙의 태도에 질려버릴 때쯤, 그의 소설을 매력적으로 바꿔버린 중요한 순간이 왔다. 그건 바로 1958년에서 1990년으로 넘어가는 한페이지. -또 한번 어빙 식의 디테일을 덧붙이자면 검은색에 명도만 조절된 아가일 패턴의 페이지- 그 페이지가 넘어가자 곧 바로 32년의 시공간이 흘러갔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32년후, 두둥' 뭐 그런 이미지로 생각했다. 하지만-이것도 어빙식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존 어빙의 32년은 드라마의 생뚱맞은 32년이 아니었다. 에디는 페니 피어스 부인과 로맨스를 했다. 테드는 먼트시어 부인과 사랑을 나누고, 그녀의 딸 글로리(끝부분을 ie로 쓰는)와 동시에 연예를 했다. 그로인해 먼트시어 부인은 자살했다. 에디는 그 이후로 매리언과 테드, 루스를 만나지 못했다. 루스는 훌륭한 작가로 자랐고, 테드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소리'를 출판했고, 에디는 그럭저럭한 작가로 성장했다. 전지적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32년의 공백 기간은 안보다가 다시만난 학창시절의 친구보단 늘 함께지낸 옆집 아줌마같은 느낌을 줬다. 32년 내내 에디 옆에서 에디와 함깨한 듯한 착각에 빠졌다. 문을 열고 나가서 코너를 틀면 바로 그 자리에 에디가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하루키의 글에서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전환 시점인 32년의 공간을 건너뛰고 나니 어빙과의 만남은 무척이나 즐거워져 버렸다. 그제서야 소설의 이런저런 즐거움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빙은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을 등장시킨다. 테드 콜의 '벽 사이로 기어다니는 쥐'라던가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소리', 루스 콜의 '아이들에게는 안돼', '나의 마지막 나쁜 남자친구', 매리언 콜의 '맥더미드 시리즈'등은 소설 속에서 보는 새로운 소설로 글 읽기의 재미를 더한다. 특히 제인 대시와 앨리너 홀트에 빠져 '아이들에게는 안돼'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읽을 수 없으니 이를 다 읽어버린 하리 후크스트라가 부러웠다. 물론 큰 가슴의 돈 많은 과부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부러운 점도 있었지만. 여기에 한가지 더. 추가 보너스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작가들을 통해 어빙의 작가론을 풀어놓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실제 인물을 등장시켜서는 안된다-이건 제인 대시의 말이다- 작가 자신만의 오롯한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여 실제보다 실제같이 만들어야 한다" 하는 말들. 그리고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해 가는 루스 콜의 소설 구상과정을 읽다보면 존 어빙이 실제로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어느정도 플롯을 잡고 세부적인 상상의 세계를 빈틈없이 납득 시키기 위해 디테일을 채워가는 어빙의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들을 통해 나 또한 글을 적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혼돈의 시간을 지나 작가의 말소리에 하나하나 귀를 기울이다 보니, 존 어빙 특유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나도 허투루 지나간 적 없는 인물들의 등장과 재등장, 적절한 전지적 작가의 얘기에 과연 Page Turner!!!(느낌표 팍팍팍)하며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오랜만에 읽은 너무 즐거운 책 읽기였다. 다시 돌아온 소설의 세계는 최고다. 이 맛에 소설을 읽는다니까!!!(느낌표 팍팍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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