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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당무의 작가! 쥘 르나르의 작품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어, 홍당무 들어보긴 했던 것같은데 무슨 내용이지? 하면서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뭐 그렇다고 또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았다. 그렇게 작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읽어내려간 책, 자연의 이야기들은 내게 따뜻한 봄날의 햇살처럼 다가왔다.
어릴 때부터 줄곧 시골에서 자라왔고, 지금도 시골에 살고 있고 유독 동물을 좋아하는 동생 덕에 키워보지 않은 동물이 없을 정도였으니, 어쩌면 이 책에 등장하는 몇몇의 동물들은 당연히 나와 친근감을 느낄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특히나 수탉이나 암탉, 오리, 거위, 고양이, 돼지, 염소, 토끼, 까치, 개구리, 지렁이 이런 동물들은 당연히 직접 봤으니 쥘나르의 글을 읽으며 슬며시 웃음이 지어 지는 것은 어쩔수 없는 것같다.
똑같이 보고, 똑같이 느꼈을 터인데, 어쩌면 이렇게 묘사하는 것이 다를 수 있을까, 문득 우리 자연이 또 다른 하나의 세계인듯한 느낌이었다. 정말 너무나도 순수한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듯한 느낌, 너무 맑아서 건들이면 뭔가 톡 터질것만 같고, 잔물결이 일어나서 흔들릴것같은 그런 느낌의 글이랄까,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할 것같다.
시골에 살고, 안 살고를 떠나서 그 동물들을 직접 만났거나 만나지 않았거나 모든 걸 떠나서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만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아닌가 싶다. 길지도 않은 짤막짤막한 글 속에서 느껴지는 자연에 대한 애정들, 동물에 대한 애정과 절묘한 묘사들, 어쩌면 저런 상상을 할수 있을까? 아, 정말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책. 아이들이 읽으면 더 좋을 것같은 느낌이다. 중간중간에 삽화 역시 정말 독특한 판화같은 느낌이면서도 뭐랄까 좀 색다른 느낌? 이 책의 글과 잘 어울린다.
왕조시대의 백작처럼 고고한 공작부인, 방울새 한마리가 노래하는 헛간, 명강사 제비, 들판의 군수나리 어치, 예언가 까마귀, 벽에 들러붙은 열쇠구명 바퀴벌레까지 탁월한 비유와 묘사를 통해 갖가지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정말 너무나도 바쁘고 마음의 여유가 없는 현대인들이 읽어보면 좋을 것같다.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 수록 슬며시 지어지는 미소, 아마 우리는 그런 미소를 이책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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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이야기들>은 <홍당무>를 쓴 쥘 르나르가 어느 농가에 살면서 주변에 있는 짐승과 풍경을 글로 담아 모은 책이다. <홍당무>는 어렸을 적에 도서관에서 한번 펼쳐봤다가 왠지 슬퍼져서 이내 덮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읽으면 그 어린 맘에 감당하기 어려웠던 한 모금 눈물쯤이야 아무렇지 않게 꿀꺽 삼킬 수 있겠지만.
짤막한 글과 글에 맞는 그림으로 각 장이 채워졌는데, 줄거리랄 건 별로 없지만 그 감수성과 표현력에 놀랐다. 첫 장 제목인 '이미지 사냥꾼'이란 말이 퍽 어울릴 정도로, 쥘 르나르는 눈에 보이는 사물, 생명 들을 마음으로 잡아내는 사냥꾼 같다. 이른 아침 그가 잠자리를 박차고 나갈 때 사냥 도구를 챙겨 갈 필요는 없다. 그저 두 눈을 크게 뜨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눈은 이미지들이 저절로 들어와 잡히는 일종의 그물" 역할을 한다.
그렇게 잡아올린 이미지들은 생생하고 아름답고 정겹다. 마치 왕조 시대를 살고 있기라도 한 양, 안뜰 한가운데를 뻐기며 돌아다니는 칠면조 공작 부인, 양산 없이 나들이에 나서는 칠면조는 없다. 신부에게 줄 갖가지 예물들을 몸에 매단 채, 거만하게 인도의 왕자 같은 걸음을 옮기는 공작새는 매일 오지 않는 신부를 기다리며 결혼 예행연습을 한다. 교미하던 두 개는 농부의 몽둥이질에 못이겨 어쩔 수없이 몸을 떼지만, 그들은 여전히 추억으로 연결된 채 어쩔 줄 몰라하며 서로를 맴돌고 있다. 양 떼는 한없이 올이 풀려나가는 물레의 씨아처럼, 언덕 너머로 끝없이 걸어간다. 거미는 달빛을 받으면서 밤새도록 자기 몸을 가둔다.
이렇게 섬세하고 독창적인 감성으로 자연과 풍경을 묘사한 글을 보노라면 마치 그 안의 각종 짐승, 꽃, 곤충이 나에게 말을 걸어 올 것만 같다. 자연과 어울려 산다는 건 어떤 일일까. 서울에서만 30년 넘게 살고 있는 나로서는 선뜻 감이 오지 않는다. 길을 걷다 보면 콘크리트칠로 숨구멍이 막힌 땅이 잠잠히 인간들에게 복수할 날을 꿈꾸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 또한 흙과 닿아야 살 수 있는 생명체임에도 문명의 훼방으로 자연과 생이별하는 처지여서 스스로 안쓰럽다. 이 책을 보며 조금이나마 대리만족을 느꼈다. 매일 아침 눈 뜨고 바라보는 풍경이 이토록 따사롭고 다채로운 생명들로 가득하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부럽기도 했고, 또 그 생명에 자신만의 글로 색깔을 입힌 작가의 상상력도 우러러 보였다. 이 책을 말하며 또 빠뜨릴 수 없는 건 그림이다. 표지에 있는 당나귀 그림은 약간 표정이 과장되어 있지만, 이 안에 든 다른 그림들은 넘치지 않을 정도로 발랄하고 글을 읽으며 모습을 상상하는 걸 방해하지 않는 좋은 장식이 된다. 그린이가 쥘 르나르의 감성을 충분히 이해한 듯 자연스럽고 재미난 그림들이 많았다.
이 책은 여러 모로 책장에 꽂아둘 가치가 있다. 한 편 한 편이 마치 시에서나 볼 수 있을 만한 상상력으로 충만하고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묘사도 가득해서, 쥘 르나르라는 사냥꾼이 잡은 이미지들로 포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헛간 지붕 꼭대기에서 방울새 한 마리가 노래하고 있다. 그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대대로 전해 내려온 곡조를 되풀이하고 있다.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느라 흐릿해진 눈에는 이제 그와 헛간이 구분되지 않는다. 헛간의 돌벽과 건초와 들보와 기와들의 삶 전부가, 한 마리 새의 부리를 통해 흘러나온다. 아니, 헛간이 노래를 읊조리고 있다.
-본문 중에서, '노래하는 헛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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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당무'의 작가 쥘 르나르가 쉬트리라는 곳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쓴 책이다. 작가가 보는 자연과 동물의 세계는 어떨까, 일반인보다는 더 독특한 감성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고, 한적하고 평화로운 시골의 정취도 함께 느껴보고 싶어 읽어보았다.
역시..쥘 뤼나르가 관찰하여 그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동물들의 얘기들은 하나같이 정겨웠다. 닭, 거위, 공작, 물파리, 풀뱀, 나비 등 각각의 동물과 곤충들에 대한 이야기가 형식없이 자유로이 펼쳐진다. 딱딱한 설명글이 아니라, 감성을 담은 글이다. 때로는 짤막한 이야기글의 형식으로, 또는 에세이로, 어쩔 땐 간단한 메모 형식의 글로 선을 보이기도 한다. 피식 웃음이 지어지는 유머와 함께 동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군데군데 엿보인다.
족제비라는 동물을 이도랑에서 저 도랑으로, 이 굴에서 저 굴로 유료교습을 하러 다니는 시간제 가정교사로 비유한 글은 매우 재미있었다. 숲 속에서 꽤나 유심히 관찰한 결과 후에 나온 생각이 아닐까 한다. 키우던 강아지였던 데데슈의 죽음이나 암소 브뤼네트에 대한 이야기는 생활 속의 실화라서 더욱 가슴이 찡한 면이 있었고, 새를 키우지도 않으면서 빈 새장에 모이와 물을 준비하는 펠리스의 얘기도 인상적이다. --"나는 이 새장을 볼 때마다 내 관대함에 긍지를 느껴. 물론 새를 한 마리 넣어둘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그냥 이렇게 비워둬. 내가 마음만 먹으면, 갈색 개똥지빠귀나 폴폴 날아다니는 멋쟁이 피리새 같은 수많은 작은 새들 중 어느 하나는 노예가 되고 말 거야. 하지만 내 덕분에, 최소한 그중 한 마리는 자유를 누리는 거지. 영원히 말이야."--(p159~160)
그러면서도 사냥을 즐기는 모습은 좀 모순적이었는데, 뒷부분의 해설에서도 그 내용에 대한 언급이 있는 걸 보면 다른 이도 그렇게 느꼈나보다. 책에는 사냥을 즐기는 자신에 대한 반성과 혐오도 담고 있다. 덕분에 사냥이란 행위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는데, 목적 없는 사냥은 생명이 있는 것을 죽이는 행위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 행동에 무의식적으로 숨어있는 쾌감이라도 있다면 깊이 반성해야 할 행위가 사냥이 아닐까 한다. 쥘 르나르가 사냥을 즐겼던 것은 책의 내용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기엔 감점의 요소가 되었지만, 그래도 솔직한 반성이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이 책의 역자도 동물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다. 역자 후기에 나온 10여년간 세상을 함께 한 강아지 쎄리의 이야기는 '자연의 이야기들'의 연장선인 것처럼 가슴에 와닿았다. 사람에게 신뢰를 보내는 동물의 눈빛을 느낀 사람이라면 이 기분을 알 거다. 프랑스에서는 이 책이 받아쓰기용 교재로도 쓰이는 모양인데, 아이들은 받아쓰기를 하면서 동시에 동물에 대한 친근감과 사랑도 배우게 될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키워줄 만한 내용을 아이들의 교재에 많이 넣었으면 좋겠다. 재미있고 감동적이라 아이들의 관심을 끌만한 내용으로, 잠자리나 메뚜기의 다리를 재미로 떼는 아이들을 더이상 보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역사 교과서 우향우 시키기 전에 모두 어린이로 돌아가 이 책을 읽어보라고!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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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르나르의 책은 뻔해서 이 책도 예전에 <뱀 너무 길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적이 있다.
그런데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고 있지 않다면, 프랑스 원서와 함께 읽지 않는다면 비추인 책이다.
시적 서정성이 번역문에 잘 나타나는 경우가 얼마나 있는가?
에세이라고는 하지만 시에 가까워서 짧고 시에 가까워서 종종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허전하다. |
| '홍당무'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 쥘 르나르가 바라본 시골의 여러가지 풍경들... '이미지의 사냥꾼'이라는 작가의 표현처럼 그가 바라보는 여러가지 동물과 자연들을 독특한 시각으로 표현해내고 있는 산문집이다. 어떻게 보면 한 편의 시같은 이미지들이 즐거운 상상을 전해주는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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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아름답게 만들어진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책의 삽화로 인해 선택하게 되었고, <홍당무>의 작가인 쥘 르나르의 글이기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책의 첫 장에 쓰여 있는 앙드레 지드의 문장을 통해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쥘 르나르는 나를 얼마나 감탄하게 하는지. 나는 마치 그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라도 한 양, 그를 찬미하고 있다...... 나는 그의 글을 고전처럼 되풀이해 읽고 있다.“ 이 책은 자연에 대해서, 특히 다양한 동물들에 대해서 적고 있다. 그들의 생각이랄까, 그들의 모습을 보고 떠오른 것들을 적고 있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쉽게 이해가가지 않았던 부분들도 있었다. 분명, 놀란 만한 문장과 표현들도 있었지만, 책을 읽을수록 오래전에 쓰여 진 책이라는 느낌 또한 지울 수가 없었다. 어쩌면, 지나치게 극적이고 빠른 문장들에 익숙해져 있어서, 때로는 서정적이고 때로는 담담하게 표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느리게 이야기하고 있는 글에 완전히 빠져들기 힘들었던 부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표현하고 있는 동물들의 움직임을 떠올리고, 삽화들을 보면서, 조금씩 책의 속도에 맞추어 글을 읽어나갈 수 있게 되었고, 조금은 그 느림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도 같다. 이 책의 경우는 눈으로 읽어 나가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도 책의 재미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될 듯 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한 가지 이상한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향기가 나는 책이 아님에도 책을 읽다보면, 자연의 향이 어디에선가 느껴지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움이, 그 편안함이 그리고 그 조용함과 때로는 시끄러움이 불연 듯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즐거웠으며, 꽤 만족스러웠다. 솔직히 너무 재미있는 책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분명 이 책만의 매력은 존재하고 있으며, 이 매력은 다시금 책을 읽도록 만들 것만 같다. "반딧불 1. 도대체 무슨 일일까? 벌써 밤이 깊었는데, 저 집엔 아직도 불이 켜져 있으니. 2. 풀숲에 내린 달빛 한 방울! " (1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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