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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계에서 멀어지고 눈을 돌림으로써 내 세계가 변화도록 내버려 둔 이는 바로 나였던 것이다. 나는 다른 세상을 바라보았고, 다른 세상에 존재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이 세계는 변할 수 있었던 것이다."(P.36)
단편 달랑 2편이 실린 책이라 단숨에 읽을 태세로 책을 펼쳤으나 반나절을 넘기고, 이런! 하루를 넘기고 말았다. 책을 글자수로 읽을 순 없는 노릇. 머릿속에 그려지는 문장보다 모호한 문장이 더 많아서였을까? 여하튼 오랜 시간을 들인 만큼 오래 기억할 순 있을 것 같다.
어린 시절, 누구에게나 그리움의, 혹은 동경의 사물이 있다. 성인이 되어서도 가슴 한켠 아련함으로 남은 것. 내가 먼저 돌아섰지만 여전히 가실 줄 모르는 그것. 한 아이에겐, 아니 한 사람에겐 '집'이었다. 범접할 수 없는 집. 다른 세계가 존재할 것 같은 집, 실체를 짐작만 할 수 있어 더 아름다운 집, 내 유년의 아름다운 기억을 와성시켜 주는 집...
그 집이 사라진다면?
물질에 가려져야 하는 오로라 집의 붕괴는 현대문명의 폐해를 말하겠지만 한 사람의 혹은 같은 대상을 애달파하는 사람들의 기억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먼저 들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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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다. 단지 장면으로만 기억하는 추억이 있고, 그 순간의 대화를 모두 기억하는 추억이 있고, 단지 감각으로만 기억하는 추억이 있다. 아빠의 오래된 차에서 나는 카시트 냄새, 의자로 가린 책상 밑에 숨어있던 두근거림. 상황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유독 순간의 느낌으로만 기억하는 것들 말이다. 어째서 그런 것들이 아직까지도 생각나는지는 모르겠다.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될 정도로 강렬한 기억이 아닌데도, 추억 속의 감각은 문득 어느 순간에 휙- 하고 스쳐가듯 떠오른다. <오로라의 집>에 수록된 두 단편은 딱 그런 느낌을 준다. 시적인 문장과 흐르듯 서술되는 유년시절의 느낌과 추억... 눈을 감고도 그려지는 추억이 느껴진다.
신비롭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첫 번째 단편, <오로라의 집>의 주인공은 그윽한 향기가 나고 포근하고 아련한 공간인 '오로라의 집'을 그리워한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빌라 오로라의 풍경과 그곳을 돌았던 고양이와 개, 흰 대리석과 무성한 수풀의 아름다움은 세월이 지난 뒤에도 그를 추억 속의 공간으로 이끈다. 문득 그를 사로잡은 생각은 "모든 것을 다시 보고 싶다."라는 것. 그래서 찾아간 '오로라의 집'은 죽음의 이미지마저 풍기고, 침묵의 분위기가 흐른다. 그는 사춘기 때를 회상한다. 아마도, 그 아련한 공간이 오래도록 신선하고 밝게 남아있을 거라 생각진 않았으리라. 그러나 그는 결국, 슬픈 '빌라 오로라'의 풍경을 목격하게 되고,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일종의 회한의 감정을 느낀다.
비슷한 느낌의 두 번째 단편 <세상 밖으로 또는 오를라몽드>에는 버려진 극장을 '갈매기'처럼 자유로이 누비는 한 소녀가 있다. 그녀는 그곳에서, 오르고 싶은 절벽과 은신처의 포근함과 어머니의 환영을 본다. 오래된 철 구조물의 기이한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때론 자신을 훔쳐보는 듯한 시선을 느낀다. 황폐한 공간 속에서 그녀가 언젠가부터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할 때, 갑자기 건물이 크게 부서지는 소리를 듣는다. "왜 사람들은 전부 부수고 싶어 하는 걸까?" 건물을 부수는 노란 기계 앞에서 그녀의 자유는 망가지고, 그 공간은 잿빛 폐허로 남는다. '분노로 꺼지지 않는 빛 속에서' 소녀는 쓰디쓴 울음을 삼킨다. 누구도 듣지 못하게 조용히.
이 두 개의 짧은 소설은 버려지는 혹은 파괴되는 것들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선을 담는다. 허망하고 답답하다. 매캐한 잿빛 연기 속에서 부서지고 마는 공간들은 기계적인 것들의 세계 속에서 망가지는 자연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사람들, 지나친 도시화로 망가지는 공간들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 속에 담긴 많은 사람들의 빛바랜 추억이 가려진다. 맑게 흐르던 강물도 막혀버린다, 답답하게 꽁꽁 묶여진다.
그러나 회색빛의, 말라버린 풍경을 그리는 글은 지나치게 아름답다. 아마 첫 부분의 그려진 '오로라의 집'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일지도 모른다. 이 책의 빛나는 글들은, 언젠가 일상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어린 날의 추억처럼, 조용히 생각날 듯하다.
* 좋은 책이었는데, 또 일시 품절... ㅎㅎㅎ 번역이 문제라는 글들을 많이 보았는데, 전 그닥 거슬리지 않았던.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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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의 작품을 몇 편째 읽어 가고 있는데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상실한 인간성을 되돌리고 감성과 순수함을 자극한다.시간과 세월 속에 빛이 바래고 인간의 육신의 한 조각 한 조각 주름이 패이고 기억의 회로도 사그라지겠지만 깊은 장롱 속에 숨겨 둔 아롱지는 다이아몬드의 빛깔마냥 반짝거리는 존재가 있으니 산업화와 개발 이전의 시대에 소꿉친구들과 함께 놀았던 짚으로 엮은 초가집과 장독대 뒤 새파랗게 자라나고 있는 옥잠화,봉숭아,채송화,향나무의 향기가 그리움을 더하고 돌담 위엔 호박꽃이 활짝 피어 벌들이 윙윙거리며 수줍게 아기호박이 호박꽃 꼭지를 떨구는 시절이 내게는 '오로라'의 존재가 아닌가 싶다.
순수하고 맑고 경쟁과 긴장감이 덜했던 시절이기에 눈을 감고 회상에 젖어 들면 산과 들,바람과 물,사람과 동물들이 그저 한가롭기만 하고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여 태어나고 자라며 세상에 부러울게 없던 마음의 여유와 풍요가 내 어린 시절에는 많았던거 같다.초가집은 할아버지께서 엮으시고 짚과 용마루를 착착 만들어 지붕을 이어 나가고 다음 해가 되면 비와 눈,풍화에 의해 썪은 짚 속에서는 굼벵이가 득실거리고 그것으로 허약해진 몸을 보신용으로 사용했던 어르신들의 민간 지혜는 지금은 먼 옛날의 이야기이고 청소녀들에겐 생소하기만 할 것이다.
언덕 위에 우뚝 솓은 오로라의 집은 종려나무 밑동과 우거진 수풀에 반쯤 가려져 있고 나뭇잎이 드리우는 그림자와 함께 찰랑거리는 하얀 구림 빛 궁전,오로라와 빌라 오로라의 주인에 대한 얘기를 할머니로부터 듣고 자랐던 제라르와 두려움과 불안을 떨치고 개발로 사라져 가는 얘기를 아나느 <세상 밖으로 또는 오클라몽드>에서 들려 주고 있다.
산업화와 개발은 삶의 질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고 윤택을 안겨 주지만 개발로 인해 대지는 몸살을 앓고 생태가 사라져 가며 구획은 획일화 되어가고 공동체간의 소통은 단절되어 가고 만다.인간과의 관계는 돈과 물질로 대별되고 신분과 위상만이 존재의 값을 매기며 닫혀진 인간의 내면과 진실은 왠만해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그저 포장된 진실과 위선만이 가득차 있을 뿐이다.
엊그제와 같은 내 어린 시절은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거 같아 서글프기만 하다.명절이 되면 선산 가는 길에 잠깐 보는 옛 마을의 모습은 산과 들만이 그 형상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고 사람과 집들은 모르는 이방인과 사각으로 둔갑한 슬라브 집과 딱딱하게 범벅된 아스팔트가 그 산골 마을에도 고스란히 산업화의 징표를 안고 있기에 더욱 마음이 오므라들 뿐이다.어느 한 구석에도 내가 살았던 흔적과 다시 밟아 보고 싶은 누런 대지의 모습이 보이질 않고 그저 눈을 감고 추억의 타임머신을 타야만 아스라하게 그 시절의 오로라가 빛과 바람,구름,꼬물꼬물하는 동네 사람들이 희미하게 다가올 뿐이다.인간에게 편리함 못지 않게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통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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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의 집"과 "세상밖으로 또는 오를라몽드" 제라르 에스테브와 아나의 유년시절이 문명으로 인해 서서히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오로라의 집"의 제라르는 어린시절의 자신의 안식처이자 놀이터가 되어 준 오로라의 집을 안내한다. 큰 나무와 새, 고양이들.... 넓은 정원에서 놀며 집의 주인을 상상하는 어린 아이. 그 집은 그들의 비밀스런 장소이자 추억이었다. 신비스러움까지 내포하고 있던 그 집이 개발이라는 명목아래 쓰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던 제라르. 자기만의 비밀장소에서 모든 세상을 보았던 소녀 아나. 그 곳은 아나의 모든 것이었지만 그 곳도 개발로 인해 허물어진다.
아이들책 중에 "작은 집 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농촌의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집. 맑은 공기와 예븐 전원의 풍경. 하지만 그 곳에도 어느날 부터인가 도로가 만들어지고 건물이 세워지기 시작한다. 발전하는 곳에서 홀로 외톨이처럼 살아가는 작은 집. 노부부는 이삿집센터에 부탁해 작은 집을 한적한 전원으로 옮긴다.
우리 마음의 그 곳들도 고스란히 옮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린시절에 한번쯤은 꿈꾸었을 간직했었을 비밀장소들. 이제 사라지고 마음속에서만 살아있는 그 곳이 이 책을 읽고 나니 다시금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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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르 클레지오의 단 편 두 편을 실은 책.... 이 책 노벨 상 이후에 기획이 된건가? 출간 시기를 보아하니 그정도인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번역이 너무 엉망이다... 내용은 그렇다 치고, 기본적인 한국어가 잘 안되어 있다고 해야하나? 모호한 문장도 많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르 클레지오의 문장이 이렇게 변해버린다는 것은 정말... 번역 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회의를 느끼게 하는 작품... 좀 시간을 가지고 제대로 된 책이 다시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