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학문에는 재론의 여지가 있다. 우리가 밝혀내고 확신있게 알고 있는 어떤 것도 확실하지는 않고 다만 가설에서 시작하여 수많은 경험을 통해 옳은 생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확률을 높여갈 뿐이다. 그런 면에서 기존의 고정된 관점에서 빗겨나 논리적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며 자신의 주장을 펼쳐내는 굴드는 상당히 창의적인 사람이었다. 눈여겨보지 않았던 단초 하나에도 주목하여 통찰력있게 세계를 바라보는 굴드의 글은 상당히 설득력있다. 다만 이 세상의 역사를 바라보는 여러시각 중 어떤 것일 수 있는 하나의 관점으로만 편중된 듯한 글에는 읽는 이로 하여금 현혹될 여지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굴드 당신이 주장하는 진화생물학을 이해하는 데는 더 없이 좋은 재밌는 참고서이므로 꼭 한 번 읽어볼만 하다. |
|
독자가 굴드를 본 날
굴드 하면 사실 진화론을 떠올린다. 최근 우리나라에 많이 회자되었던 리처드 도킨스와 자웅을 겨루는 학자로서, 그리고 인문학적 글쓰기에 능숙한 이야기꾼으로서. 이 책을 집어들었을 때 목차를 넘기면서 펼쳐진 다양한 주제들은 진화론을 기초로 하고 있지만 그 것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 스스로를 박물학자라고 칭하고 있는 저자는 사실 인문학자 혹은 박물학적 인문주의자라고 칭해도 손색이 없다. 게다가 이 책은 도킨스의 책처럼 아주 급진적이거나 강한 색깔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충분히 우리 스스로 생각해볼 거리들을 던져준다. 물론 그 안에는 진화학의 (그리고 지구의) 역사가 있다.
|
|
<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 라는 책의 제목이 책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의도로 붙여진 것이라면 꽤나 성공적이다. 아울러 막연한 호기심을 구체적인 형태로 바꾸어준 <고생물학자 굴드박사의 자연사 에세이> 라는 부제 역시 그 의도를 충분히 달성한 문구이다.결국 나는 이 책을 읽었고, 그리고 과학서적이 나에게 줄 수 있는 지적인 포만감을 채울 수 있었다. |
|
우린 인간은 생태계의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서 모든 생물 종, 모든 환경을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뇌를 지배하고 있는 듯 하다. 과학 역사는 인간 스스로 자연 자체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자연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그 특성을 기술해왔다.
지구적으로 볼 때 우리의 대대적인 침입이 지역 생물체나 환경에 그리 다행스러운 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과학 논문이나 생태계가 보여주는 아니 우리들이 인식하는 이면의 모습을 좀 더 진지하게 살펴볼 것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다방면에서 뛰어난 결과물을 후대에 남긴 레오나드로의 예리한 관찰은 시대를 앞서 현대적인 것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경이로움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금세기가 되서야 제대로 정리된 고생태 이론들이 그 당시에 이미 명쾌하게 설명되었다는 사실을 첫장에서 소개한다. 그는 명시적으로 진술되는 뚜렷한 목적, 그가 살던 당시에 화석을 해석하던 두 가지 주요한 방법을 논파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모든 정보를 기록했다. 레스터 사본을 쓰는 동안 레오나르도는 지구에서 물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물리적 방법을 찾기 위해 애썼고, 여러 가지 설명을 시도했으나 결국 포기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살던 시대와 그 시대의 관심사에 깊이 연결된 것이었다. 과학자, 혹은 박물학자들도 사회에 속한 하나의 일원이므로 그가 살던 시대와 관심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므로 현재에 소개되는 많은 정보들도 그 시대의 상황을 고려하여 해석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이에 2등 전함 테메레르와 수족관의 발달사를 실었다. 이명법으로 잘 알려진 린네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초기 린네는 유명한 책 대부분에서 식물에 대한 새로운 분류를 소위 말하는 ‘생식기관’에 의존하여 기술했고, 그 이명법 체계를 본질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형태인 광물에까지 적용하려했다는 대목에서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또한 다윈이 지독한 악필이어서 많은 문헌의 해석이 어려웠다는 점에서 현대의 문헌은 그런 오류가 적어짐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 다나나 오언의 역사적 패배이면의 정치적, 사회적 세계관의 투영 때문에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음은 또 다른 의문을 나타낸다. 착한 사람에게도 나쁜 일이 일어난다. 너그러운 사람들 역시 자신의 주장이 훌륭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잘못되거나 도덕적으로도 의심스러운 주장을 하기도 한다. 시간상 오래된 것일수록 정신적 성취도에서는 더욱 더 미숙하고 진화를 진보와 동일시하는 것이 큰 잘못이라고 강조한 3부에서 또 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 메갈로서로스의 동굴 벽 그림은 화석에 남아 있는 정보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을 제공한다는 관점에서 고대 동굴 벽화를 그린 이를 예술가로 지칭하고 있고 아직도 인종간의 차별에 대한 문화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다. 세리온, 도도 - 보존된 표본이 극히 적다는 한탄과 멸종의 책임이 대부분 희생자의 불완전함에서 기인한다는 주장. 두드러진 표면의 뒤쪽을 살펴보자. 잘 알려지지 않은 루터가 남긴 어두운 유산, 그것이 30년 전쟁과 프라하 투척사건을 가져다주었다. 진화론, 먼저 획득 형질의 유전에 대한 라마르크 이론을 소개한 다음에 그것을 대체하는 바람직한 이론으로서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교과서가 다윈 이론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동일한 예를 들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기린의 목이다. 기린의 목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교과서에 소개된 그런 배경이 아니라 후대에 그렇게 기술된 것, 즉 다윈이 의도한 바가 아니라는 것은 과학에 역사가 필요함을 다시 한 번 강조되었다.
진화를 진보와 일치시키는 오류에 대한 사례를 근두목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확립된 질서의 역전(개구리와 파리, 바다가재와 달팽이, 물고기와 와편모충)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짧지 않은 분량의 저자의 과학 에세이는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정치적으로 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역사 속으로 사장된 많은 지식들, 초기 진화론의 잘못된 해석으로 인해 현세의 지식으로도 풀기 어려운 고대문화나 유적들의 파괴(아마 남아 있는 것들도 불가사의라는 미명으로 포장되어 있을 듯...), 인간의 아집으로 사라져가는 많은 생물 종. 다시 한 번 우리의 문화와 역사, 과학을 돌아보게 하는 귀중한 시간을 저자는 제공한다. 과학, 특히 생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전공이 아니더라도(비록 생소하고 어려운 단어가 많지만) 읽을 만한 책이다. |
|
제목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조개화석에 대한 관심에 대한 것이다(원제로 따지자면 마르틴 루터가 참석했던 ‘보름스 회의’와 진화의 의미에서 인간의 평등까지 포함하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산꼭대기에서 발견되는 조개화석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유는 그저 단순한 자연사적인 호기심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원대한 기획이었다. 그는 지구의 생리학(거시적인 차원에서의 지구와 미시적인 차원에서의 인체의 유사성)을 풀고 싶어 했고, 그 증거로서 조개화석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조개화석의 존재가 지구 역사의 역동성을 의미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옳았지만, 당연히 레오나르도의 기획은 실패했고(지구와 인체의 비유를 그저 비유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 했으니), 그것은 흥미로운 인물의 흥미로운 역사적 상황이니만큼 제목으로서의 가치(즉, 눈길을 끄는)가 있다. 하지만 정작 이 스티븐 J. 굴드의 여덟 번째 과학 에세이 시리즈의 주된 관심은 진화와 진화의 메커니즘으로서의 자연선택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적용에 대한 비판, 혹은 바로잡기이다. 스티븐 J. 굴드는 『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의 전편을 통해 그 오해를 수차례 지적하고, 또 반복해서 언급하고 강조하고 있다. 한 편 한 편의 글이 모두 독립된 에세이였으니 통일된 기획이 없이 만들어진 책이라 그럴 수도 있을 거라 볼 수도 있다(읽어보면 세밀한 기획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기했다는 느낌은 받는다). 하지만, 이처럼 반복한다는 진정한 의미는 그만큼 진화와 자연선택에 대해 (비록 진화를 인정하는 사람들조차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으로 봐야 옳을 것 같다. 그 오해란 우선 진화와 진보를 일치시키는 것이고, 진화란 단선적인 경로를 따른다는 것이 그런 것이다. 또한 여기에서 나오는 또 다른 오해는 인간이야말로 진화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 “인간의 역사가 항상 진보한 방향으로 일직선을 그리며 개선되어 가고 있다는 가정과 아프리카인은 아직 유럽인만큼 진보하지 못했다는 가정처럼 아주 치명적인 해를 입히는 잘못된 생각들이 마치 보편적인 진리인 양 잘못 받아들여지는 일들이 우리 문화에 만연해 있음이다.” (256쪽) 진화는 진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국소적인 환경에 그저 적응해가는 메커니즘이 자연선택이다. 그런 국소적인 적응을 통해서 이처럼 경이로운 다양성이 생겼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거시적인 기획 없이, 즉 어떻게 전체적인 방향성을 미리 염두에 두지 않은 변이와 선택을 통해서 진화는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 “주사위를 던지는 식의 임의성”이 아니라 “역사적인 연쇄의 극도의 복잡함에 기인한 예견불가능성” 혹은 “우연성(contingency)” (373쪽) 또한 인간에 대해서도 그렇다. 지금 이 지구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생명체가 숱은 관문을 뚫고 자신의 환경에서 적응된 형태로 살아남은 것이다. 물론 인간의 의식 같은 것을 탐구하는 이유는 그것이 다른 생명체에는 존재하지 않는 놀라운 진화적 발명품이기 때문이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진화의 정점에 올라있는 발명품일 수 있지만,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는 아주 최근에야 종분화가 이루어진 생명체일 뿐이다. 따라서 인간 사이의 차별을 두는 인종차별주의는 과학적으로 전혀 설 자리가 없다. 이러한 굴드의 메시지는 거의 모든 장에서 반복되고 있다. 외설로 받아들여졌던 린네의 대합조개 묘사에 대한 글에서도, 다윈의 창조적 위대함와 그의 경쟁자의 평범한 위대함을 대비시킨 글에서도, 해마를 비롯한 뇌의 구조를 비교한 과거 연구를 언급한 글에서도, 말의 진화를 연구했던 블라디미르라는 진화학자에 대한 글에서도, 선사 시대의 벽화를 이야기한 글에서도, 아일랜드 엘크에 대한 글에서도, 인류의 진화의 두 이론을 평가한 글에서도, 세리온 조개를 통해 콜럼버스의 비정함과 어리석음을 비판한 글에서도, 멸종을 둘러싼 편견을 도도새를 통해 이야기한 글에서도, 진화의 증거로 가장 널리 이야기되는 기린의 목을 둘러싼 잘못된 인식을 소개한 글에서도, 벌레와 포유류의 발생에 대해 이보-디보의 연구 성과까지 나아간 글에서도, 근두목이라는 기생생물을 통해 ‘적응’의 의미를 다시 성찰한 글에서도, 나무늘보와 콘도르를 통해 생물에 대한 편견을 지적한 글에서도... - “자연선택은 오직 각각의 생물을 당장의 국소적인 조건에 적응시킬 수 있을 뿐이다. ... 동물계에 무수히 존재하는 이질적인 독특함을 좋고 나쁜 순서로 질서정연하게 줄 세우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465쪽) 사실 스티븐 J. 굴드의 수십 년에 걸친 에세이들은 진화에 대한 옹호와 진화와 자연선택에 대한 오해에 대한 견고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가장 진보적인 과학자가 자신의 분야인 ‘진화’가 ‘진보’가 아니라고 하는 상황이 가장 진보적인 것인 셈이다(사실 거기서 모든 인종주의가 부인되다! 인간중심주의가 해소된다!). 그래서 비록 그와 견해를 달리하는 진화학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노력과 공헌에 대해서는 고개를 돌릴 수가 없는 것이다. 더욱이 이처럼 박학한 예들에 둘러싸인 우아한 글들임에랴. (2013. 3) |
|
레오나르도가 조개 화석을 주운날을 읽고.. 진화론의 대학자 굴드의 통찰이 엿보이는 역작이다. 하지만 이책에서 소개하는 굴드의 명함은 인문주의적 박물학자이다. 레오나르도의 화석에 대한 생각 지각의 융기에 의한 고지대 조개화석의 발견등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라고 생각이 됨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대의 미국에서조차도 노아의 방주니 하는 것들에 대한 과학적 근거없는 믿음은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동식물에 대한 종의 분류이론으로 유명한 분리 식물학자 린네의 이론에 대한 그 당시의 시각에서도 우리는 상당한 오해에 따른 비과학적 문화로 인한 논쟁에 시달려야 했다. 인류의 조상이었던 그 였날의 화가들게서 그린 벽화들은 우리에게 많은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인류에 의해 멸종된 최초의 사례인 도도새의 멸종은 인간의 포획이라는 야만적인 수단을 포함하여 마스카렌 제도의 섬에 돼지와 원숭이를 풀어 한종의 멸종을 조장하는 잔인과 무지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에 그흔적으로 남아 있는 박제 에 대한 관리미숙으로 우리는 도도새의 기억조차도 우리인류의 무지로 날려버리는 비극 을 격는다 진화의 담론에 관한 다양한 서적들이 나와 있으나 굴드와 같은 대학자의 담론을 접할 기회는 흔치 않은 것같다. 다윈의 진화론이 이렇게 이렇게 이백년 후에도 빛을 발하는 것은 굴드와 같은 대학자의 호기심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 인문주의적 박물학자임을 자처한 고(故) 스티븐 굴드는 ‘생물종은 갑자기 폭발적으로 증가한 뒤 그 대부분이 멸종한 다음, 나머지 생존자들이 또 다시 폭발적으로 다양화한다’라는 내용의 단속평형이론을 주장, 다윈의 진화론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그의 자연과학사 에세이 21편을 수록했다. 생각할 내용이 많은 흥미로운 책이었다. |
|
드디어 스티브 굴드의 책이 번역되어져 나와서 참 반가웠다. 그는 미국에서는 매우 유명한 대중적인 과학자이지만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스티브 제이 굴드는 리처드 도킨스와 더불어 진화론을 대중화하는데 앞장선 사람이자 리처드 도킨스와는 진화가 진보가 아니냐를 가지고 대립각을 펼쳤던 학문적 천적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유명한 사람의 책이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번역이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이라는 그의 독특한 아이디어가 담긴 책이 출간되어서 참 반가웠다.
그는 이책에서 다시 진화론이 과학의 가장 중요한 핵심부분이라고 기종의 진화론을 옹호하지만 그것의 사회적, 철학적 함축까지도 함께 생각하는 여지를 남겨주는 인문학적 과학자라고 할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류의 전투적인 다윈자들의 오만적은 태도와는 달리 진화에 관한 우연적인 발생과 규칙들과 인간역사에 미치는 함축적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을 쉽게 전달해 주고 있다.
다윈주의자들의 다양성에 관해서 알고자 한다면 스티브 제이 굴드의 이 책을 꼭 읽어보라 |
|
오~~~~오~~~~ 오~~~~~~~ 재밌는데!!!!!!!!!!!!!! 알기쉽고 재밌게 구성한거 같다. 간만에 에헤라디야 재밌게 본거 같다. 강추 강추 강추합니다. 하지만 이런책은 돈주고 사기는 좀 아깝고.. 흐흐흐 알아서 봐야할듯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