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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은 고민했다. 자연의 비밀을 알고도 수십 년 간이나 묵혔다. 빨리 발표해야 그 공을 인정받을 수 있을 거란 친구 라이엘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발표를 미루고 또 미뤘다. 더 많은 증거를 찾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자신의 발견이 미칠 파장에 대해 두렵기도 했다. 종교적인 아내와 정반대의 사상을 공개하기도 꺼렸다.
다윈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 발표를 미루었던 이야기, 월리스의 편지와 논문을 받고서 당황하고 고민하다 조금은 의뭉스럽게 공동발표의 형식을 취하고, 바삐 ‘요약’이라는 형식으로 『종의 기원』을 쓴 이야기는 정말로 유명하다. 데이비드 쾀멘은 다시 그 이야기를 꺼냈다(약 10년 전에 출판된 책이니 지금 봐서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닌 듯도 하다).
이 낡은 것 같은 이야기가 꽤 신선하다. 쾀멘의 표현대로 ‘몹시 신중한 사람에게 그토록 급진적인 깨달음’이 나온 얘기 자체가 갖는 흥미로움도 있다. 대담하게 다윈 인생에서 가장 극적이었던 비글호 항해 얘기는 빼버리고 그 이후 얘기부터 시작한 이유도 그렇다. 비글호 항해를 통해 다윈이 새로운 사람이 된 것도 맞고, 그 항해를 통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토대로 자연선택을 생각해낸 것도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항해를 통해 얻을 것들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것은 영국으로 돌아오고 난 후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다윈 사상,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은 비글호 항해 이후인 셈이다. 비글호 이후의 다윈에 집중하는 게 그의 진면목과 진화의 형성 과정을 보는 데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잘 알려진 이야기라고 했지만, 새로 알게 된 내용도 적지 않다. 어쩌면 다윈이란 인물(“찰스 다윈은 용감하지만 수줍었고, 선구적인 기질이 있었지만 내심으로는 불안해했고, 명석한 정신과 부드러운 마음씨와 페인트를 섞는 기계처럼 쉽게 요동치는 위장을 지닌 복잡한 인물이었다”, 101쪽), 혹은 다윈과 그 이후의 진화생물학자들이 밝혀낸 것들이 그만큼 풍부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를테면 오랫동안 이 단어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키게 하는 라마르크, 혹은 라마르크주의의 본래 주장과 모습도 그렇다.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나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다윈의 자연선택에 대해 발표하고, 논란은 있었지만 적어도 과학자, 생물학자들 사이에서는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 격퇴되고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전폭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하는 생각이 잘못된 것이란 내용이다. 진화론이 부당하게 공격받는 것은 지금도 있는 일이지만, 진화를 받아들이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다윈의 입지가 우뚝 서게 된 것은 1930년대를 지나면서 이른바 현대종합설(Modern Synthesis)가 확립되면서부터다. 다윈의 놀라운 아이디어, 자연선택은 50년~60년 동안 누구도 아닌 진화생물학자들로부터 냉대를 받았다. 그 사이에는 라마르크의 이론에 대한 변형이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더 옹호를 받았다. 그러던 게 진화학이 유전학과 만나면서 라마르크주의가 산산조각나고, 정량적인 측정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 이르기까지, 또 그 즈음의 치열하고도 흥미진진한 일들에 대해서 기대하긴 했지만, 쾀멘은 글을 아낀다. 재미있으면서도 아쉬운 부분이다. 또한 『종의 기원』이 가진 결함을 다룬 부분 역시 다른 책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윈을 알려면 이 책 하나면 충분하다는 얘기는 할 수 없다. 쾀멘 역시 다윈을 해석하는 다양한 시각 중의 하나다. 또 비글호 항해를 제쳐두고 다윈을 이해하는 것도 역시나 중요한 뭔가를 빠뜨린 셈이다. 쾀멘도 자신의 이 책만으로 다윈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여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은 다윈에 대해 쓴, 대중적이면서도 전문적인 책 중에 몇 손 안에 꼽아도 충분한 책임에는 분명하다.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말: “모든 생물학이 진화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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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은 20대 중반에 자연학사로서 영국 해군 함선 비글호를 타고 약 5년 간 항해를 했다. 그 후 다윈은 그 항해와 같은 과학적 탐사를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이후의 삶은 그 항해 중에 얻은 수확물과 기록들을 정리하고 실험하고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면서 보냈다. 이 책은 그 항해를 마친 후, 즉 1837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1882년까지 다윈의 생애와 그의 학문 여정을 서술하고 있다. ‘진화론’하면 가장 먼저 찰스 다윈과 그의 저서인 ‘종의 기원’을 떠올린다. 하지만 진화라는 개념을 그가 처음 생각한 것은 아니다. 물론 ‘진화’라는 말은 없었지만 다윈이 활동하던 당시에 이미 생물의 ‘변형’에 대한 개념이 상당히 널리 퍼져 있었다. 우리가 생물 시간에 다윈과 비교하여 배웠던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즉 생물 개체의 일부분이 많이 사용해서 발달하면 그것이 후대로 유전된다는 이론, 다시 말하면 ‘획득형질’이 유전된다는 이론도 다윈 이전에 나온 이론이다.
다윈은 매우 세심하고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었다. 또 그만큼 관찰력과 인내력이 뛰어났다고 할 수 있다. 바닷가에 가면 흔하게 붙어있는 따개비를 가지고 8년 동안 관찰, 실험했다는 것만 보아도 능히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항해 후 자신의 수확물과 일지를 정리하면서 막연하게나마 진화론에 대한 착상이 떠올랐지만 그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나 완벽한 이론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발표하지 못했다. 다윈의 그와 같은 성품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진화론의 창시자를 다윈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이름은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이다.
다윈에 비해 젊은 월리스는 비록 정규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거의 독학으로 자연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이루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 꿈을 따라 아마존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서 동물들을 관찰하고 수집했다. 물론 당시 귀족 사회에서는 희귀한 동식물을 수집하는 풍조가 있었으므로 그것을 공급해서 돈을 벌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말이다. 다윈이 자신의 이론을 구축하기 위해서 방대한 저서를 집필하고 있을 때 명쾌하면서 짧지만 진화론의 핵심을 찌르고 있는 월리스의 논문이 다윈에게 배달되었다. 다윈은 그의 글을 읽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윈은 이미 과학계의 저명인사이고 그의 친구들이 과학계를 주름잡고 있었다. 또 이전부터 다윈이 진화론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친구들에게 간헐적으로 편지로 보냈기 때문에 그의 친구들은 월리스보다 먼저 다윈이 진화론에 대한 생각을 먼저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학계에 정식적으로 논문으로써 발표해야 배타적 우선권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다윈의 친구들은 결국 다윈과 월리스의 공동 명의로 진화론을 발표했다. 마이너인 월리스는 자신이 저명한 과학계 인사들에게 인정을 받고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으며, 당시 이미 인정을 받고 있는 다윈과 나란히 이름이 올랐다는 것에 만족했다. 이후에 그의 명저 ‘종의 기원’이 출간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다윈의 진화론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비견된다고 말하고 있다.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그 지구의 중심이 로마의 교황이라는 중세시대의 사상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이 지구상의 생명체는 어느 인격신이 일시에 각각 만든 것이 아니라 어떤 원시적인 생명체로부터 차츰 분화해서 다양화되었다는 것과 분화의 원동력은 어떤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지 생존 환경에 적합성 여부일 뿐이라는 것이며, 진화에는 어떤 목적이 없기 때문에 방향도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환경에 적응하고 경쟁자와 생존경쟁해서 이기는 것이 살아남아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이다. 따라서 똑같은 생명체가 각기 다른 환경에 퍼지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일부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시대에 대부분은 인간은 신이 자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했다고 믿었다. 즉 인간은 다른 모든 생명체와는 다른 존재며, 우월하고 지배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은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어떤 다른 동물로부터 진화한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게 된다. 인간이 신에 의해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면 어떻게 신의 곁에 가서 영생할 수 있겠는가? 다윈은 별다른 원인이 없이 토하고 어지럽고 기운이 빠지는 질환으로 평생 고생한다. 그의 소심한 성격과 이 질환 때문인지 그는 평생 거의 자신의 집을 떠나지 않고 편지를 통하여 다른 사람과 사귀었다. 다윈은 그의 사상이 완성되면서 자연스럽게 기독교에서 멀어지고 유물론자가 되었다. 그의 사촌이자 부인인 엠마는 다윈의 무신론 때문에 죽어서 다윈과 같은 곳에 있지 못할 거라는 생각으로 평생 마음이 편치 못했다. 다윈은 1882년 4월에 심장마비로 죽었고,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묻혔다. 진화론이 다윈의 손을 빌려 세상에 나온 지 150년 이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신에 의한 인간의 창조를 믿고 진화론이 틀렸다고 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불가사의하게 정교한 생명체를 보면 단순히 적자생존과 자연선택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분명히 지적 존재, 즉 신만이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저자의 주장을 들으면서 서평을 마친다. “진화가 현실이고 놀라우며, 과학 이론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듯이 자연선택 개념이 대안 개념들보다 관찰 가능한 사실들에 더 잘 들어맞기 때문에 살아남고 성공을 거두어 왔다는 것이다.”(p.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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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종의 개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태어나기 때문에ㅏ 그럼으로써 생존경쟁이 빈번하게 되풀이되기 때문에, 복잡하고 때로 다양한 생존조건하에서 어떤 식으로든 아무리 사소하게라도 유리하다면, 그 존재는 더 나은 생존기회를 지님으로써 자연적으로 선택할 것이다.
페이지218 사람의 손 (쥐기에 알맞은 모양),두더지의 앞발(파는데 알맞은 모양) 말의 다리(달리는데 알맞은 모양),돌고래의 지느러미(헤엄치는 용도), 박쥐의 날개(나는 용도)가 모두 상대적으로 똑같은 배열을 한 똑같은 뼈들이 변형된 기본적인 5가지 패턴을 반영한다.
대학자 공자, 맹자를 비롯해 종의 기원, 슘페터등 장서 약50권 정도를 떠안듯이 산 적이 대학때 있었다. 그 땐 학교공부도 놀이도 책도 안 읽고 내 방에 누워서 천정을 바라보는 것으로 학창시절을 보낸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다른건 다 안 했어도 장서만은 그 중에서도 슘페터와 종의 기원만은 읽을걸하고 간절하게 후회한다. 이 책을 최재천교수님의 추천으로 사게되었 다. 잘 샀다.
페이지50 멜서스는 별 생각없이 하는 자선행위는 나쁟가 7줄~14줄 페이지212 인간의 번식속도 코끼리의 번식속도 이런 내용이 있는 책을 읽으셨다는 최재천교수님이 아직도 인구증가 찬양가라는게 납득이 안간다.
페이지 144,153,173,167 영리목적의 채집가 '살아 있는 지구의 역사' 란 책에서 로스차일드가는 취미로 하와이에 있는 새 8종을 채집하기 위해 멸종시켰다. 미국의 속살을 이야기하는 '미국민중사'에서 선량한 탐험가 두 명이 로키산맥의 어느 인디언부족에게서 환대를 받고 돌아가 이를 이야기하고 다닌다 그들은 의도안했겠지만 기업가들이나 밀렵꾼 등 악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겐 그 탐험가들의 이야기가 척후병들의 보고로 들렸을 것이다. 페이지167 보이는 족족 잡은 많은 유황앵무표본을 비롯하여 대부분 팔기 위한 것이었다. -영리 목적의 채집가- ' 물의 자연사' 꼭 읽어보시길 간절히 권유해드린다.
결론 사용하라 그렇지 않으면 잃으리라
일은 찰스 다윈의 아편이었고 과학은 그의 종교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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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에 대한 이해력을 조금 더 기르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종의 기원에 저술된 많은 내용들을 간단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고 특히, 내용 중에 9장에 나와 있던 잡종의 개념이 만족스러울 만큼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은 클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에서 내가 알고자했던 잡종에 관련된 보충설명을 찾는 데는 실패했지만, 저자가 요약한 종의 기원의 내용을 접함으로써 내가 생각하던 내용들과 비교해볼 수 있었고 그 외에 이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이 나에게 즐거움을 제공했다. 이 책은 다윈의 일대기와 그의 사소한 생활들이 나와 있어서 그의 성격을 추론해볼 수 있었으며, 다윈이 언제 ‘자연신학’에 반기를 들고 종이 변이된다는 개념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며, 왜 그가 알게 된 사실을 바로 발표하지 않았는지? 그 사실을 얼마나 오랫동안 남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준비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다윈 이외에도 다윈과 같은 의문을 제기했었던 윌리스라는 인물이 존재했었다는 사실. 공동의 명의로 학설을 발표하게 되었다는 사실. 그 이후 다윈이 종의 기원을 펴낸 이유가 ‘종이 변이한다.' 라는 개념에 대한 다윈의 우선권을 주장하기 위했다는 사실. 종의 기원은 등장하자마자 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 다윈 이후의 학문의 발달과정들. 오늘날에 들어와서 어떻게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많은 과학자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다윈이 존경받는지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저자는 종의 기원의 책에 대해 여러 가지 비판적인 견해를 제기했는데, 책에 담겨진 불확실한 어투들과 다윈이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에 비해서 과도하게 많이 첨부되어 있었던 예시들에 나 또한 조금은 불편함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윈이 살던 시대상황을 알게되면서 왜 다윈의 그와 같은 방식으로 글을 전개해야 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다윈은 또한 자신의 학설을 많은 연구를 통한 증거들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더 확실한 상태에서 이론을 제기하고자 자신의 일생을 투자했는데, 이러한 시간적 소요로 인해서 윌리스에게 추월당할 위기를 겪게 되었고, 부랴부랴 종의기원을 발표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다윈의 신중한 성격으로 인하여 연구된 많은 자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윈의 이론이 공격을 받고 사라지지 않았고 오늘날에 이르러서 주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보았다. 이 책은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주요한 학설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많은 사실을 밝혀낸 다윈 이후의 많은 과학자들을 소개시켜주고 있는데, 저자는 그 사람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지면상 할 수 없었다고 양해를 구하고 그래도 독자들을 위해 나중에라도 공부할 수 있도록 친절히 그들의 대표작들을 소개해주고 있다. 나중에라도 저자가 소개해준 책들을 읽으면서 진화론에 관련된 많은 학설들을 체계적으로 섭렵하고 싶다.
인상깊은 구절다윈의 이론은 수많은 학자들로부터 비판과 주석, 해석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 이론은 엄청난 매력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윈 자신이 인정했듯이 수많은 생물학자들이 그 뒤에 확인했듯이 자연선택이 진화적 변화의 유일한 매커니즘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주된 매커니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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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의 관련책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물론 주로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 만나보았지만 여기 이책 <신중한 다윈씨>는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나 이지만 너무 어려워하지 않고 즐거이 읽을수 있었던 책이었다. 아무래도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세계를 돌며 관찰, 연구했다는것은 유명한 일이기도 하고 특히 갈라파고스 제도의 독특한 환경과 동물에 관한 연구는 진화론이니 하여 그 업적적 측면에서 많이 강조되면서 아이들 서적에서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었기에 그의 인간적 면모를 강조한 이책은 새로운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지금까지는 학창시절 아무 생각없이 배우고 익혔던 진화론에 대해 그것이 이론으로 발표되었을 그 시대적 상황에 대해 한번 생각을 해보았다. 기독교중심의 과학관이 지배적인 시대에 종의 기원이 신이 아니라는 생각.. 진화론... 학문적 연구의 결과라지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윈이 비록 혁명적이라 할수 있을 정도의 학문적 깨달음을 21년이나 걸려서야 발표하지만 그의 소극적이고 소심한 혹은 보다 신중한 태도에 대해선 솔직히 이해할수 있는 심정이 들었다. 다른 과학적 생물학적 이론(여전히 전문적인 내용은 잘모르긴 하지만)과 많은 학자들의 이야기들을 재미있고도 맛갈나게 버무려놓아 다 읽을때까지 흥미로웠고, 특히나 다윈의 사생활이 많이 언급되어 더 재미있었다. 결혼을 하는 과정도 유머러스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찰스 다윈이 따개비 연구에 매진하고 있을때 자식들에게 어떤 인상을 심어주었는지 말해주는 일화였다. 둘째 아들 조지가 어느날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이상하다는듯 물었단다. "너희 아버지 따개비는 어디 있니?" 라고.. 미소 짓지 않을수 없다. 또 다윈이 얼마나 성실하고 열심히 연구하였는지 깨달음을 준다. 다윈은 우리 인류의 과학사에 한획을 그은 인물임엔 틀림없다. 과학책에서 만나던 딱딱한 이론과 암기해야할 중요한 지식들로 이해되던 그가 종교를 경멸하던 태도, 유물론적 세계관, 소심한 태도, 질투, 학문적 열정등의 세속적인 욕망과 인간적인 모습에 멀게만 느껴지던 거리감이 한단계 좁혀진 느낌이다. 조금은 폐쇄적이고 조금은 깐깐해보이는 표지속은 노인은 천재의 화려한 외투가 아니라 그의 위대한 업적아래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윈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제법 재미있게 이해할수 있어서 상당히 만족스러웠던 책으로 기억될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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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대영 박물관의 직원들을 구슬려서 따개비의 표본들을 장기 대여받았고, 상상할 수 없는 온갖 경로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표본을 요청했다. 심지어 후커의 남극 탐사 때 선장이었고 당시 배피니 섬 서쪽의 얼어붙은 해협 어딘가에 갖혀 있을 동료 탐험가 존 프랭클린 경을 찾기 위해 북극 탐사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던 제임스 클라크 로스 경에게도 편지를 썼다. 빙산을 피하면서 프랭클린을 찾으러 다니는 동안 북쪽의 따개비를 좀 따다 주시지 않겠습니까? 물론 바쁘시겠지만 바위를 몇 번 긁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것들을 알코올에 담가 보존하고 기부가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윈은 싹싹하게 요청했다. 하지만 로스는 그의 요청을 명백하게 무시했다." --112
하긴 나라도 무시했을 것 같다. 영국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촌구석 다운(Downe)에 사는, 과학에 미친게 분명한 신사 양반이 따개비를 따달라니, 더군다나 동료를 구하러 가는 이 절체절명의 급박한 상황에 말이다. 뭐, 빙산을 피하면서 북쪽의 따개비를 따줘? 기부가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고? 죽을래? 그 다음 그 편지가 어디로 사라졌을지를 안봐도 뻔하겠다. 음, 옛날엔 이런 방식으로 연구를 했었구나, 정중하게 구걸하는 식으로 말이지... 흥미로운데? 책 속에 소개된 일화를 읽으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가 존경해 마지 않는 그 위대한 다윈이 한낱 따개비를 얻기 위해 이처럼 수고를 했다니... 컴퓨터도 없고, 전화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브리태니커 백과 사전마저 없던 시절, 한마디로 과학의 구석기 시절에의 낭만을 보는 것 같아 신선했다. 그리고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고 다 적응하기 마련이란 생각이 들었다. 보라, 열정과 직감과 끈기과 상상력만 있다면 인간이 못해낼게 뭐가 있단 말인가? 집안에 틀어박혀서도 얼마든지 탁월한 학설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까. 안 믿어 지신다고? 다윈이 바로 그런 경운데? 그렇다면 한때 비글호를 타고 짤짤거리고 돌아다녔던 다윈이 시골 촌에 틀어박혀 진화론을 설파하는 종의 기원을 써내게 된 과정을 한번 들여다 볼까나?
사람들은 다윈이 비글호에서 내린 것과 ( 1836년) " 종의 기원" 이란 책을 (1859년) 낸 것은 잘 알지만, 그 사이 2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은 잘 모르지 않을까 싶다. 그는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건 그가 신중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변론을 위해 모든 증거를 샅샅히 파헤치는 유능한 변호사처럼 그는 자신의 학설을 뒷받침해줄 증거를 모으고 있었다. 물론 아프기도 하고, 결혼도 했으며 , 아이들이 하나둘씩 태어나는 것도 지켜 보고, 잡다한 격무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기본적으로 그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진화론이라는 당시로는 파격적인 학설을 주창하려니 일단 다른 학자들로부터의 반론에 어느 정도는 대비하려 했던 것이다. 아이디어의 참신함이나 개연성만 가지고는 학자들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갈라파고스의 섬마다 다른 종이 존재하던 흉내지빠귀들과 이구아나들, 그리고 등딱지에서 차이가 나는 거북이, 먹이에 따라 다른 부리를 가진 핀치새와 섬마다 색다른 종이 존재하는 딱정벌레들.... 서로 닮은 변종들이 나란히 발견되는 것에 흥미를 느낀 다윈은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같은 종에서 변종이 생겨난다는 것과 그것이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자연선택에 따라 진화된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모두는--식물이건 동물이건 척추 동물이건 곤충이건 간에--- 한 근원적인 줄기에서 나온 가지에 불과하다는 아이디어는 그를 전율하게 한다. 만물을 설명하는 이 딱딱 떨어지는 완벽한 추리에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찰스여,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마라. 신중하기를..."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따개비 연구에 8년을 보내게 된 것도 바로 그런 그의 신중함 때문이었다.
물론 그의 신중함에도 단점은 있었다. 윌리스라는 청년이 다윈에게 보낸 편지 한장으로 진화론에 대한 우선권을 빼앗길수도 있는 사태를 맞았으니 말이다. 그 사건에 대해 이 책의 저자 쾀멘은 다윈의 이름을 먹칠하게 하는 위중한 순간이었다고 떠들던데, 내가 보기엔 저자의 호들갑이지 않는가 싶었다. 당시 윌리스와 공동으로 발표된 진화론이 왜 지금은 다윈의 이름만 기억되고 있겠는가? 그건 다윈의 연구가 그만큼 완벽했기 때문이다. 윌리스의 경우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동물을 수집하다 우연히 갖게 된 생각을 적은 팜플렛에 불과했지만, 다윈은 <종의 기원>이라고 하는 탁월한 저서를 남겼으니 말이다. <종의 기원> 이야말로 사건의 핵심이였다. 시대의 근간을 뒤흔들고 인간의 사고를 재정립하게 만든 역사상 흔지 않는 위치를 점하고 있는 책이 <종의 기원>이니까. 생물학적인 가치만으로 <종의 기원>을 판단해선 안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인간이 보다 겸손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환상없이 세상을 바라보도록 만든 인물이 다윈이었다면 그 사상을 전파할 수 있도록 한 건 < 종의 기원>이니 말이다.
놀라운 것은 그런 개혁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치고 그가 너무도 겸허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아내를 사랑하고 아이들을 끔찍하게 아꼈던 남자, 정직하 , 성실하며, 거들먹거릴줄도 허세도 모르던 사내, 장례식을 싫어하고 ,은둔을 좋아하던 한마디로 지극히 자신을 드러나지 않던 사람이었던 그가 이런 사상을 완성시켰다는 것 당최 믿겨지지 않았다. 어쩜 그것이야말로 미스테리중의 미스테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페이지가 훌렁훌렁 넘어간다는 점이나 현재 다윈니즘이 어디로 흘러가는가에 대한 브리핑이 되어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단점이라면 저자의 다른 작품인 <도도의 노래>와 중복되는 면이 있어 보인다는 것과 결론이 싱겁다는 것? 그래도 이렇게 쉽게 쓰인 다윈서는 흔치 않으니 다윈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감지덕지하시길...^^
자연의 정해진 법칙들을 오랜 세월 연구하다보니 기적을 점점 믿지 않게 되었고, '신의 계시로서의 기독교를 서서히 불신하게 되었다.' 신앙을 잃는 과정에서 잘난 척하거나 조급해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 일은 그의 의지에 반해 일어났다. "불신이 나를 잠식한 속도는 아주 느렸지만, 마침내 완결되었다." 사실 변화가 너무 느리게 일어났기에 그는 전혀 불안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변화가 끝난 지금 그는 전혀 회의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엄정하게 덧붙였다.---2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