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5)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0%
  • 리뷰 총점8 4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9.0
  • 40대 8.0
  • 50대 10.0
리뷰 총점 종이책
회심에 대한 지평의 확장
"회심에 대한 지평의 확장" 내용보기
*글 중간 중간에 나오는 괄호 안의 숫자는 내용과 관련된 이 책의 페이지 숫자입니다^^   1. 회심은 어디를 향한 돌아섬인가?   이 책은 회심에 대한 신학서적이 아니다(28).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신학이 없는 책이라는 말은 아니다. 신학과 무관한 신앙, 신앙과 무관한 삶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회심에 대해 신구약 성경을 통해 의미를 도출한다. 그리고 회심은 회개로부
"회심에 대한 지평의 확장" 내용보기

*글 중간 중간에 나오는 괄호 안의 숫자는 내용과 관련된 이 책의 페이지 숫자입니다^^

 

1. 회심은 어디를 향한 돌아섬인가?

  이 책은 회심에 대한 신학서적이 아니다(28).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신학이 없는 책이라는 말은 아니다. 신학과 무관한 신앙, 신앙과 무관한 삶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회심에 대해 신구약 성경을 통해 의미를 도출한다. 그리고 회심은 회개로부터 시작해서 신앙으로 나아간다는 점을 바르게 지적하고 있다(35-36). 회심의 구성 요소인 회개와 믿음은 구분은 가능하지만 분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책에서는 그 둘을 각각 다루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서 이 둘을 구분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선 회심은 어디를 향한 돌아섬인지 살펴보자. 회심은 예수를 보고 그분을 향해 돌아서는 것이다(36). 이 말은 아주 당연하고 쉬운 말처럼 들리지만, 번영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여기는 시대에서는(22) 번영을 추구하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향하여 회심했다고 속기 쉽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바로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향하여 회심했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서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과의 일대일 관계에서의 변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회심은 하나님 나라에 충성할 것을 요구하며 주인을 바꾸길 요구하기 때문이다(32, 38). 예수님을 향해 돌아선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긴다는 뜻이다. 그래서 저자는 회심은 어떤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174). 물론 뒤에 살펴보겠지만 이 공동체는 교회이다. 소속이 바뀌었으니 새 질서를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43). 그러므로 회심은 반드시 삶의 변화를 동반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무리 속에 소속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심은 사적인 영역에만 머물 수 없다.

 

2. 회심은 어디로부터 돌아섬인가?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회심은 “이미 걷는 동일한 길에서 더 전진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자기 개발 코스”가 아니다(39). 걷고 있던 길에서 돌이켜야 한다. 그런데 어떤 측면에서 ‘어디를 향하여 돌아섬’보다 ‘어디로부터 돌아섬’이라는 측면이 더 쉽지 않다(183). 돌아서기 위해서는 무엇이 죄인지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죄 중에서도 저자는 개인적인 죄보다 체제 내에 뿌리 내린 죄에 대해서 간과하기 쉽다는 점을 지적한다(68-69). 개인적으로는 개인적 죄든 체제 내의 죄든 자신을 광명한 천사로 포장한다는 점에서 모든 죄는 파악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 있어서 나는 개인적 죄가 좀 더 인식하기 쉽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 교만, 시기, 음란, 탐욕 등 개인적 죄 역시도 그 실체를 간파하고 회개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교회 내에서 사회 체제에 내재되 죄의 문제에 대해 소홀하게 다루었다는 점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 책에서 우선적으로 지적하는 우리가 돌아서야할 죄의 실체는 빈곤의 문제이다. 좀 더 가진 사람이 부족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만으로는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관점의 변화가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번영이 다른 사람의 가난에 기초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83). 나도 부유해지고 다른 사람도 부유해지면 좋겠지만, 한정된 재화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물질이라는 우상 숭배를 멈추어야 하며 부요해지고자 하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 저자의 지적처럼 인간의 가치와 정체성이 소유에 의존하며, 경제적 이익이 행복의 열쇠라는 거짓된 신화로부터 우리는 돌아서야 한다(196-197). 그래서 저자는 “돈과 소유의 관계에서 급진적 변화가 우리의 회심을 가늠해 보는 시금석”이라고 말한다(124). 회심은 했지만 여전히 탐욕적이라면 자신의 회심에 대해 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고 나 자신을 알아 갈수록 이 세상에 탐욕 문제에 있어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이 문제에 대해 겸허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돌이킬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다루고 있는 문제는 폭력과 전쟁의 문제다. 우리는 더 많은 무기가 안보를 가져다준다는 세상 가치관으로부터 우리는 돌아서야 한다(197). 사실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다. 전쟁을 하는 사람들도 평화 유지를 위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결국 문제는 더 큰 힘을 가지는 것이 평화를 가져온다는 거짓된 가치관이다. 그러한 인식으로부터 돌이키지 않는 한 평화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평화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서 ‘평화를 만드는 자’가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동안 적극적으로 폭력을 행하지는 않는 것만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했던 내 모습을 반성할 수 있었다. “대화와 소통이 비폭력의 동의어임을 기억”하고(162), 다른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 운동은 전장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이처럼 ‘회심’이란 세상의 주류적 가치관으로부터의 돌아섬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전제들과 구조들과의 불화라는 결과를 가져오며 교회가 세상에서 소수파의 지위에 서게 한다(195). 저자가 말하는 회심은 결코 세상의 인정을 받는 사람, 좀 더 근사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상적 의미에서 볼 때 어쩌면 회심이란 ‘진보’가 아니라 ‘퇴보’로 보일 수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한 때 교회가 문화적으로 가장 앞선 집단으로 세상에 영향력을 가졌던 적이 있다. 복음과 함께 서양의 앞선 문화들이 교회에 유입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문화적 우위를 통한 영향력은 ‘회심’에 의한 결과와는 무관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과거처럼 문화적으로 우위에 서서 세상보다 더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무장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세상으로부터 돌아섬’이라는 회심의 성격과는 맞지 않다. 세상의 주된 흐름으로서의 주류(主流)가 아니라 세상을 새하늘과 새땅으로 재창조하실 주님의 물줄기로서의 주류(主流)가 되어야 할 것이다.

 

 

3. 회심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가?

  진정한 회심은 어디에서 가능한가? 바로 신앙 공동체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신앙 공동체는 “우리를 회심시키기 위한 도가니”이다(194).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실체, 가장 의존해야 하는 모임은 바로 지역 교회, 즉 신앙 공동체여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한다(176).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앙 공동체란 지역 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즉 진정한 회심은 지역 교회를 떠나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저자 역시도 한 때는 대안적 공동체를 ‘참된 교회’로 여기고 제도권 교회를 ‘배교한 교회’로 여겼다고 한다(180). 그러나 이제는 지역 교회가 참다운 신앙 공동체로 기능하는 것에 비전을 두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은 우리가 헌신해야 할 이슈들 중 하나가 아니라, 모든 일의 기초이기 때문이다(192). 그러므로 세상을 향해 그들의 악에서 돌이키라고 외치기 전에 교회 안에서 먼저 그 외침을 실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세상 사람들에게 반전과 평화를 강조하기 전에, 지역 교회 안에 있는 폭력에 대해 반성하고 갱신해 나가야 한다(192).

  나 역시도 저자처럼 기존의 지역 교회에는 도저히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다. 그래서 내가 활동했던 SFC와 같은 선교단체들에 희망이 있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역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도구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역 교회 외의 신앙적인 모임들이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SFC를 비롯한 모든 신앙적인 모임들은 지역 교회가 미처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일들을 돕고 자극하는 역할을 감당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들어 저자는 교회의 갱신은 성경 공부의 참신한 강조에서 일어난다고 지적하는데(181), SFC와 같은 단체들이 삶의 현장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적용하는 일을 도움으로서 지역 교회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계속해서 지역 교회가 복음을 충만하게 전하며 살기 위해서는 목회자의 책임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182). 교회 구성원들의 필요에 의해 복음을 축소해서는 안되며, 거만하고 절망하는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사랑에 근거한 소망을 가지고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사후보생으로서 어떻게 하면 복음을 축소시키지 않으면서도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품고 말씀을 전할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4. 회심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저자가 말하는 회심된 삶은 어떤 제도적 시스템이나, 동기 부여를 통한 의지 강화, 지적 교육을 통한 인식 변화 같은 것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것들은 하나의 보조적 수단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영적 생활에서의 성숙함이다(193). 저자의 지적처럼 주요한 사회적 개혁은 종교적 부흥과 영적 각성에서 자랐다는 것을 통해서도 우리는 영적 생활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199). 영적 성숙에 있어 예배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저자는 예배에 주목한다(205). 하나님을 예배할 때 모든 우상이 패퇴되기 때문이다(207). 세상을 향하여 싸우는 동안 신앙 공동체에 우상들이 슬그머니 들어올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은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212).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라는 영화에 "우리는 적이 누군지 알고 싸우지만, 왜 싸우는지는 모를 때가 있다"는 대사가 나온다. 싸움의 대상을 아는 것만큼이나, 싸움의 목적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가치관에 대항해 싸우면서 정작 이 싸움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내 열심과 혈기로 싸울 때가 많다. 싸움이 길어지면 싸움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우상이 된다. 우리의 싸움의 목표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임을 잊을 때 우리는 저자의 지적처럼 공적 저항 활동 속에서 우상 숭배의 유혹을 받게 되는 것이다(212). 소위 말하는 “급진적 그리스도인”으로 불리는 저자가 예배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의외였다. 그런데 나는 삶의 방식에 있어서는 그다지 급진적이지도 않으면서, 예배조차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특히 교회 사역을 시작하면서 부터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에 일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예배로부터 사역의 힘을 얻고 사역의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예배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도인이 회심된 삶을 살 수 있는 힘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모든 정사와 권세와 통치를 이기셨다는 사실에서 온다(240). 우리가 대결하고 있는 그 어떤 권세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하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과 대결할 수 있는 것이다(242). 예수님은 승리하셨고 또한 승리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세상과의 싸움에서 평안을 누린다(245). 세상 가치관으로부터 돌아서는 이 싸움은 절대로 쉽지 않다. 이 싸움은 예수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계속해야 할 싸움이다. 그래서 쉬이 지칠 수 있다.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확실한 소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박노해 시인은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노래했지만, 우리는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희망이라고 노래해야할 것이다.



q******n 2010.05.14.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누구를 따라갈 것인지 지금 결정해야 한다.
"누구를 따라갈 것인지 지금 결정해야 한다." 내용보기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한복음 15장19절에 있는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시는 긴 가르침 가운데 있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읽어본 교인들은 이 말씀을 읽을 때 마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한
"누구를 따라갈 것인지 지금 결정해야 한다." 내용보기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한복음 15장19절에 있는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시는 긴 가르침 가운데 있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읽어본 교인들은 이 말씀을 읽을 때 마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세상이 예수를 믿는 자신들을 미워한다는 말씀 때문이다. 그 심정은 나에도 동일한 것이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불편함이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는 내가 세상으로부터 단지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미움당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예수의 말씀이 믿을 만 하다면 이유는 분명하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세상이 나를 볼 때 자기편으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는 믿지 않는 세계로부터 꽤나 미움을 받고 있다. 이것은 한국에서만의 현상이 아니고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이 워낙 폭넓게 나타나기 때문에 예수의 말씀이 실현된 것 아닌가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늘의 교회가 받는 비난과 미움은 베드로가 염려했던 형식의 미움에 더 가깝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겠느냐?”고 물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벧전2:20)

이런 일들이 왜 생길까? 짐 월리스(Jim Wallis)는 이것이 회심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회심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다. 신약에서든지 구약에서든지 성경에서 회심이 갖는 본래적인 뜻은 “돌아섬”이다. 그것은 죄에서 구원으로의 돌아섬이며, 우상에서 하나님에게로의 돌아섬이다. 그러다 보니까 회심은 언제나 “주인을 바꾸는 것”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짐(Jim)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새 질서에 속한 시민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전인격과 삶에서 드러나야 하는 전혀 새로운 태도라고 말한다. 교회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말할 때, 그렇게 새로워진 태도가 그 사람을 부르신 하나님의 기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교회는 하나님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 오늘날 교회가 욕을 먹고, 교회가 전하는 복음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전부 삶의 차별성을 잃어버린 결과물이다. 이런 현상은 하나님의 백성이 스스로 자신의 신분과 정체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생긴 것인데 정확하게는 회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 형편에서 교회가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것은 삶과 인격으로 예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마치 상인들이 쓰는 판매방식과 흥행기술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았다. 당연히 전해지는 복음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도 없고, 그리스도인을 향해서 왜 그렇게 특별하게 사느냐고 묻는 사람도 없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를 뒤쫓아 그가 살았던 방식으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라도 회심하지 않으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문제는 예수를 뒤쫓고자 할 때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부조리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 부분에 대해서 대표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것은 언제나 빈곤과 폭력 문제다. 대다수의 교회가 이런 문제보다는 영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이지만 저자는 빈곤과 전쟁이 일상화되는 사회가 유지되는 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예배는 항상 방해받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을 지적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돈이 가장 중요한 체제유지를 위한 요인으로 인정되고 결국 예배는 맘몬을 위한 예배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모든 것이 돈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저자의 지적이 얼마나 바른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특별히 현재 알려진 교회들의 문제가 돈과 관련된 것임을 염두에 둘 때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말하는 회심은 현재의 체제를 돌아보게 하고 저자는 또 그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애써 강조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들 대부분이 현재 유지 되는 체제에 순응하고 이 체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식으로 지금까지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습관을 벗으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두려움일 것이다. 이 문제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저자는 공동체를 제시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공동체를 통해서 자기가 어디에 속해있는지를 확인한다. 물론 그 공동체는 예수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그 안에서 자신의 뿌리(근원)를 찾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 세상사는 방식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깥으로부터 오는 도전은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을 기억하기를 바라셨다. 우리에게 성만찬이 중요한 이유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런 연결 고리가 회심한 자로 하여금 계속해서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예배의 소중함으로 이끈다.

놀랍게도 우리는 교회의 크기를 자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것이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교회가 시대정신에 포로가 되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더 유감스러운 것은 그 크기와 권력을 자랑할 만큼 교회의 덩치가 커졌음에도 사회에서는 거의 교회의 좋은 영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오히려 들려오는 소리는 교회와 지도자들의 비리들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무너뜨리지는 못한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께서 교회의 진정한 승리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16:18) 예수님의 제자들은 패배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어떻게 승리가 형성되는지를 부활을 통해서 경험했다. 그리고 초대교회 내내 그 사건이 사도들에게서 그 다음 세대로 전파되는 복음의 메시지가 되었다. 저자가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승리를 경축하고 세상 속에서 자신이 믿는 믿음이 참된 것임을 보여주며 살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회심은 이 모든 것의 출발이며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YES마니아 : 로얄 k*****h 2010.01.19. 신고 공감 0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회심] - 짐 윌리스-
"[회심] - 짐 윌리스-" 내용보기
IVP 모던 클래식 중 하나로서 일단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고전' 중 하나라는 기본 Advantage 를 얻고 들어가는 책이다.   그는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섬세한 줄타기를 하는데 치밀한 균형감이 돋보이는 책이다.   또한 이론과 실재, 신학과 실천의 균형도 같이 잡으려는 그의 시도는 자칫 잘못하면 이도 저도 아닌 결과를 낼 수 있을 것만 같지만 사실 이 책은 양측에 대한 만족감
"[회심] - 짐 윌리스-" 내용보기

IVP 모던 클래식 중 하나로서 일단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고전' 중 하나라는 기본 Advantage 를 얻고 들어가는 책이다.

 

그는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섬세한 줄타기를 하는데 치밀한 균형감이 돋보이는 책이다.

 

또한 이론과 실재, 신학과 실천의 균형도 같이 잡으려는 그의 시도는 자칫 잘못하면 이도 저도 아닌 결과를 낼 수 있을 것만 같지만 사실 이 책은 양측에 대한 만족감이 상당한 책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영성에만 국한되어 버린 우리들의 '신앙 생활', 그리고 우리들의 '회심'을 좀 더 전체적이고 총체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주는 도발적인 책.

 

지극히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던 그가 사회의 첨예한 문제에 직면하고 나서 철저히 급진적인 진영으로 관점을 바꾼 history 가 있다 보니 그는 양측의 관점을 잘 볼 수 있는 눈이 있다.

 

실천적인 그리스도인에 대한 강조가 적절히 가미되어 있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과의 내밀한 만남과 경건 생활의 중요성이 명확히 강조되어 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자 한다. 그러나, 책이 상당히 좋다.

 

기독교를 특정 이데올로기로 이용하기에 급급한 특정 진영의 주장에 지쳐버린 당신에게 실천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철저한 기독교적 영성을 가미시켜 줄 보기 드문 책이 나왔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균형' 잡힌 '회심'을 경험해 보자

YES마니아 : 로얄 p*****5 2021.07.3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회심
"회심" 내용보기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최우선적인 반응이 회개 회심이다 문제는 그 회개와 그에 따른 회심의 수준이 신앙 생활의 기간에 상관없이 너무나 어린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게 미국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듯 하다저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회개와 회심의 성경에서 요구하는 바를 고찰해봄과 동시에 현재 그리스도인들이 그에 합당한가를 개략적으로 말하고 있다내적 회개와 회심은 있지만 그에
"회심" 내용보기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최우선적인 반응이 회개 회심이다 문제는 그 회개와 그에 따른 회심의 수준이 신앙 생활의 기간에 상관없이 너무나 어린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게 미국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듯 하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회개와 회심의 성경에서 요구하는 바를 고찰해봄과 동시에 현재 그리스도인들이 그에 합당한가를 개략적으로 말하고 있다

내적 회개와 회심은 있지만 그에 수반하는 외적인 행함과 행동은 없는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죽은 믿음을 지닌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고 살아 역사하는 행동하는 믿음을 말하고 있다

불의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에 침묵하고 시대의 대세를 따르며 복종적인 태도로 생을 살아가는 모습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가 아니다 불의에 분연히 맞서 외치며 행해야 하며 대세를 따르는 바가 아니라 복음의 대의 곧 성경의 가치로 움직일 것을 촉구하고 있다
YES마니아 : 골드 l******g 2017.02.0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라는 덫에서 벗어나야 하는 교회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라는 덫에서 벗어나야 하는 교회" 내용보기
짐 월리스의 책을 세 권 째 읽는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정치』였고, 두 번째는 『부러진 십자가』, 그리고 세 번째가 이 책인 『회심』이다. 시간적으로는 이 책이 1981년에 출판되었다는 이 책이 훨씬 더 먼저지만(2005년판 새로 쓴 서문에 『하나님의 정치』 출판 홍보에 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순서가 썩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하나님의 정치』는 매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라는 덫에서 벗어나야 하는 교회" 내용보기

     짐 월리스의 책을 세 권 째 읽는다첫 번째는 하나님의 정치였고두 번째는 부러진 십자가그리고 세 번째가 이 책인 회심이다시간적으로는 이 책이 1981년에 출판되었다는 이 책이 훨씬 더 먼저지만(2005년판 새로 쓴 서문에 하나님의 정치』 출판 홍보에 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순서가 썩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하나님의 정치는 매우 인상적인 책이어서 더불어 작가에 대한 관심을 더 불러일으켰고그 덕분에 비슷한 주제를 담고 있는 나머지 두 권의 책도 읽게 되었으니까.

 

     잘 알다시피 짐 월리스는 믿음의 고백을 중요하게 여기는 보수적 기독교인들과 사회적 참여와 행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진보적 기독교인들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호불호가 갈리는 인물이다한쪽에서는 이 양편을 적절하게 통합해냈다는 호평을 받는가 하면(나도 이쪽에 속한다), 다른 편에서는 월리스가 어쭙잖게 자신들의 믿음을 깎아내린다는 불평을 사기도 한다하지만 그가 실제 삶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적어도 책으로만 보면 제대로 균형을 잡고 있는 것 같다이 책도 마찬가지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건 회심이다그리고 이 회심은 죄로부터의 돌이킴(회개)으로 시작해서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정의된다저자는 반복해서 믿음의 역사성을 강조하는데이는 믿음이 추상화형해화 되어버린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반박이다저자에 따르면 믿음이란 단지 개인의 신념이 바뀌는 것에만 머물 수 없다그것은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책은 오늘날 세계에 만연한 불의그 중에서도 빈부격차의 문제를 지적하면서그리스도인들이 이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신학적으로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를 차근차근 지적한다교회는 이 문제에 관한 제대로 된 비전을 세워야 하는데이 비전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교회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그러나 잊혔던것이다.

 

     책 말미에서 저자는이 모든 현실적인 관심과 도전과 함께 전통적인 예배와 기도찬양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이건 기독교의 근원에 해당하는 것으로이런 의식들을 통해 기독교인들은 새로운 힘을 얻고앞서 언급한 하나님 나라 비전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는 것.

 

 

     오늘날 교회는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라는 덫에 깊이 걸려있다교회가 듣고 있는 많은 비난들은 대개 이 두 문제와 얽혀 있다아마도 가장 큰 문제는교회가 이런 문제들과 너무 달라붙어서 이것이 문제라는 의식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경우일 것이다월리스가 깊이 느끼고 있던 미국식 복음주의의 문제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그래도 오늘날에는 이 문제와 관련해 좀 더 나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물론 이건 확증편향일 수도 있다계속해서 그 쪽에 관련된 사람들의 생각과 글들을 읽다보면 생길 수 있는). 다만 코로나19 같은 위기 상황에서 교회가 가지고 있는 공동체와 나눔이라는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을 텐데아쉽게도 이 부분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좀 더 젊은 세대가 주류가 되면 상황이 달라질까 싶지만의외로 젊은이들도 완고한 개인주의자인 경우가 많으니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교회가 세상에 어떤 질문도 던지지 못할 때복음전도 역시 쇠퇴한다는 문장이 인상적이다세상을 너무나 닮아버린 교회는 더 이상 아무런 질문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다그렇다고 의식적으로 무조건 세상과 반대로만 행하는 청개구리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우리의 몸이 딛고 있는 땅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다만 그 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은 세상에서 배울 것이 아니라는 건 기억해야 한다.

 

 

     기독교의 총체적 복음을 담은 고전읽어볼 만하다.

 

 

이달의 사락 p*********n 2021.05.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