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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뉴질랜드를 여행하면서 호수에서 노닐고 있는 흑고니들을 만났습니다. 지금까지 만나보았던 고니는 하얀색 깃털을 가지고 있어서 백조(白鳥)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깃털이 하얀 새가 백조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 고니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고니가 유럽, 아시아, 미주대륙, 그리고 대양주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다만 깃털이 검은 고니는 대양주에서만 살고 있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대양주에 도착했을 때, 검은 깃털의 고니를 만나고서는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하얀 깃털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던 고니가 검은 깃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월가의 현자’라고 하는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블랙 스완>의 프롤로그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서구인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발견하기 전까지 구세계 사람들은 모든 백조는 흰 새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것은 경험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 난공불락의 신념이었다. 그런데 검은 백조 한 마리가 두어 명의 조류학자 앞에 홀연히 나타났으니 얼마나 흥미롭고 놀라웠을까. 이 사건에는 조류학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것은 관찰과 경험에 근거한 학습이 얼마나 제한적인 것인지, 우리의 지식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21쪽)”
옮긴이는 원제목의 <블랙 스완>을 ‘검은 백조’로 옮겼지만 이는 정확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스완을 일반 명사인 백조로 특정하는 오류에서 시작된 노릇이란 생각입니다. 따라서 스완은 고니로 블랙스완은 흑고니로 표현하는 정도가 무난하지 싶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흰색으로만 알아왔던 고니의 세계에 검은 깃털을 가진 흑고니가 등장한 것을 두고 다음과 같은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첫째, 검은 백조는 ‘극단값’이다. 둘째, 검은 백조는 극심한 충격을 안겨준다. 셋째, 검은 백조가 극단값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그 존재가 사실로 드러나면, 인간은 적절한 설명을 시도하여 이 검은 백조를 설명과 예견이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22쪽)” 즉 희귀성, 극도의 충격, 예견의 소급적용, 등 세 가지를 흑고니의 특성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블랙 스완>에서 검은 고니의 존재에서 찾아낸 세 가지 속성으로 세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특정 사상과 종교가 발흥하는 이유, 역사적 사건들 사이의 역동적 관계,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원리 등등. 특히 2007년 <블랙 스완>을 발간하고 가진 한 강연에서 “앞으로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파국이 월가를 덮칠 것”이라고 경고하여 학계와 금융계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경고가 현실로 드러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2007년부터 기미를 보였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2008년 9.11 사건의 충격으로 상황이 악화되면서 대형 대부업체의 파산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월가의 현자’라는 별명을 얻게 된 동기입니다. 그리고 블랙 스완은 롱 테일, 티핑 포인트 등과 함께 경제, 경영 분야에서 중요한 신개념의 하나로 꼽히게 되었습니다.
블랙 스완이 부정적인 의미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블랙 스완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정규분포의 극단값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정규분포의 극단값은 양과 음의 양 끝에서 나타나는 것이므로 부정적 효과를 나타내는 경우도 있고, 긍정적 효과를 나타내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반적으로 극단값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외면하려 합니다.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있어 평균값을 흔다는 극단값을 제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극단값의 등장에 따른 실패를 방지하기 위하여 저자는 ‘배우는 법을 배우라’라고 합니다. 또한 긍정의 효과를 나타내는 극단값이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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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서구인들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진출하면서 검은색 고니를 발견한다. 그것은 당시 서구인들에게 충격이었다. 의례 백조라고 하면 흰색이라고 생각해 온 그들에게, 검은색 백조 단 한 마리의 출현은 그들이 수백 년간 당연하다고 생각해 온 사실을 송두리째 뒤엎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후 검은백조(black swan)라는 말은 과거의 경험에 의존한 판단이 행동의 준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 그 의미가 바뀌었다. 우리는 매년 초가 되면 수많은 예측서들을 접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미래를 예측하기에 정신이 없다. 그렇지만 그들이 행한 예견이 맞았는지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전문가들 역시 자신들이 예측한 미래에 대한 피드백은 전혀 하지 않는다. 혹시 하나라도 자신들의 예측이 옳게 나타나면, 그것이 자신들의 식견과 전문적 능력이라고 자부하지만, 예측이 틀렸을 때에는 그것은 특이한 경우가 되고 자신들이 틀렸다는 사실 자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윌가의 이단아로 불리는 니콜라스 탈레브는 이런 현상을 두고, 우리들 인간은 예측능력이 없는데다, 예측능력이 없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문가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지만, 단지 그들에게는 그럴싸한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이 있을 뿐이라고 꼬집는다. 그는 세계를 평범의 왕국과 극단의 왕국으로 나눈다. 평범의 왕국이란 일상적이고 작은 사건만 일어날 뿐, 충격적인 대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과거의 경험에 의존한 판단이 법칙을 구성하고, 세계는 그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반면에 극단의 왕국은 희귀하고 비일상적인 사건이 느닷없이 발생하여 전체를 바꿔버린다. 그렇기에 극단의 왕국에서는 미지의 지식, 반(反)지식의 중요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극단의 왕국에서는 검은백조가 출현할 수 있으며, 실제로 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검은백조는 세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예견 불가능성으로 과거의 경험으로는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천년 동안, 수백만 마리가 넘는 흰 백조를 보고, 또 보면서 견고히 다져진 정설이, 서구인들 앞에 홀연히 나타난 단 한 마리의 검은백조로 무너져 내렸다. 딱 한 마리로 충분했다. 두 번째는 극도의 충격을 동반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아니 예상 밖의 일이기 때문에 효과는 증폭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검은백조 현상은 예견을 소급적용 시킨다. 사람들은 그런 현상이 나타나면 적절한 설명을 시도하며, 마치 설명과 예견이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것은 사람들은 지난 일을 이야기로 꾸미는데 능숙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검은백조는 우리들의 삶 속에 항상 잠복해 있다. 그 원리를 가지고 사상과 종교는 물론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원리까지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고대시대부터 검은백조는 위력을 발휘했지만, 산업혁명 후 세계가 복잡해지면서 그 효과에 가속도가 붙어, 더 큰 충격을 몰고 오고, 또한 더 빈번히 출현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검은백조가 출현하기 전까지 이를 감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식론적 오만 때문이라고 말한다. 검은백조 앞에서 눈을 멀게 하는 인간 내부의 두가지 기제로 그는 확인편향의 오류와 이야기 짓기의 오류를 들고 있다. 확인편향의 오류란, 우리 인간들은 보이는 것 중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집중하며, 그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도 일반화 시키는 것이다. 또 이야기 짓기의 오류란, 우리 인간들은 추상적인 개념보다는 명쾌한 패턴을 갖는 이야기로 스스로를 속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류들은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을 과대평가하게 만들고, 불확실성을 과소평가하게 만들어 검은백조가 출현하는 바로 직전까지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만든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와 같이 검은백조가 시도 때도 없이 출현하는 극단의 왕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회의적 경험주의자가 되라고 한다. 움베르트 에코의 반(反)서재는 그래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나이를 먹으면 지식이 쌓이고, 읽은 책도 높이 쌓이지만, 우리들의 서가에는, 움베르트 에코의 서가마냥, 아직 읽지 않은 책도 줄줄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반(反)서재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아직 읽지 않은 책에 주목하고, 자신의 지식을 대단한 자산이나 소유물 혹은 자존심 향상의 도구로 여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반(反)학자라고 하듯, 우리도 반(反)지식, 즉 우리가 모르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배우는 법을 배우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검은백조란 없다고 가정하는 것이며, 예측에 오류가 크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예측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하면 같은 방식으로 다른 돌발사건을 예견하려고 한다. 저자는 가우스의 정규분포곡선을 예로 들면서 과학적이라 불리는 분석방법이 얼마나 허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법칙에 숨어있는 수많은 가정을 무시한 채, 그 결과만을 얼마나 쉽게 믿는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저자는 검은백조 현상을 파헤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검은백조와 공존하면서 이익을 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한다. 그는 자신이 설계한 게임에서는 쉽게 패배자가 되지 않는 법이라며, 개연성 없는 일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을 방치할 때, 우리는 지극히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항상 자신이 하는 일을 장악하라고 말한다. 놓친 기차가 아쉬운 것은 애써 좇아가려 했기 때문이다. 남들이 생각하는 방식의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고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바로 남들의 생각을 추종했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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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인스턴스 식품 만들듯이 찍어낼 물건은 아닐 듯 한데요.
죄송하지만 초반부 역자 서문 부터 오자가 발생합니다.
책 중반이나 종반부에 이런 실수가 나온다면 대략 눈감고 넘어 가려 했으나, 제가 어쩔 수 없이 글을 올리게 되네요.
물론, 책에 있는 메일 주소로 이미 공유 드렸고요.
스샷과 함께 올려 드렸습니다.
편견은 나쁘지만, 오자가 드러난 이상!(그것도 초반부터 걸리고! -_-;)
조금만 더 신경 써 주셨더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책 내용은 아직 다 파악하지 못했구요.
내용에 대해선 차차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path라고 생각하는데, 책은 paht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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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야기하는 블랙 스완.. 검은 백조는 전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백조는 흰색 새이다 그런데 18세기 어느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검은 백조 한 마리가 나타났다 어느 날 갑자기 발견된 검은 백조 한 마리 때문에 난공불락의 믿음은 깨지고 말았다 백조는 더 이상 흰색새가 아닌 것이다
검은 백조는 극단값이다.. 다시 말해 평균을 한 참 벗어난 값인 것이다 과거의 경험만으로는 알 수 없고 극심한 충격을 동반한다
그런 의미에서 검은 백조 = 불확실성 = 돌발 위기.. 이라고 할 수 있다
정규분포의 중앙값에서 멀어질수록 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제로에 가까워진다 그런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은 무시할 만하다..라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세상의 일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제로에 가까운 확률이라고 해서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911테러 블랙먼데이 서브프라임 사태 폴포츠의 데뷔...... 등 세상에는 예측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정규분포가 통하는 세상은 평범의 왕국이고 모든 것이 확률적으로 예측가능하다
극단의 왕국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세상은 점점 더 극단적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순간의 돌발사건으로 모든 것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극단의 왕국에서 살아남으려면 회의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방심은 금물이다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
저자는 앞으로 검은 백조가 더욱 자주 출몰할 것이라고 말한다
톰 피터스는 이 책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 "열 개의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이 책에 들어 있다"
재미있는 부분에 대해 소개하면... 천 하루째 날에 살아있기..장에 나오는 칠면조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다
칠면조에게 먹이를 지속적으로 주는데, 먹이를 지속적으로 주면 줄수록 칠면조의 믿음을 굳건해지고, 더 안심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칠면조는 도살될 날이 가까와 옴을 깨닫지 못한다 결국 천일이 지나고 천 하루째,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이 때, 칠면조는 도살되고 추수감사절에 사람들의 입에 들어가게 된다
우리 인간사에서도 이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안정적인 현실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런 현실들이 지속되는 것은 어쩌면 칠면조 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천 하루째의 날이 다가옴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사례는 먼 과거로 돌아갈 필요없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브랙스완은 불확실성이고 돌발 위기라고 했다 불확실성을 흡수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Redundancy[가외성의 장치]..가 주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항상 경계하고 대비하면서, 의심해보는 것 못지않게.. 미래를 위해 뭔가를 하나 더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경영하라]의 저자 톰 피터스의 말대로 열 개의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보다 현실세계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뭏든 흥미롭게.. 생각을 많이 해가면서 읽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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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지구상에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대부분은 일상적인 작은 사건들이 반복되어 발생하는 '평범의 왕국'의 일들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2001년 9.11테러사건,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 2011년 일본 대지진에 이은 원전사고, 한국의 9.15 대규모 순환정전 사건에 이르기까지 '극단의 왕국'에서나 일어날 듯한 대규모 사건들을 종종 접하게 된다.
저자가 '검은 백조'로 명명한 '극단의 왕국'에서는 희귀하고 비일상적인 사건이 느닷없이 발생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리기도 한다. 원래 '검은 백조'란 서구인들이 18세기에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진출했을 때 '검은색 고니'를 처음 발견한 사건에서 가져온 은유적 표현이다. 과거의 경험으로 흰 백조밖에 보지 못했던 서구인들에게 검은 백조의 존재는 상상할 수 없었던 존재이다. 하지만 검은 백조는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과거의 익숙한 경험과 판단기준으로는 그 존재를 예측하고 대응책을 미리 준비할 수 없을 뿐이다.
저자는 검은 백조(black swan)는 다음 3가지 속성을 지니는 사건이라고 설명한다. 첫째로 검은 백조는 극단값(outlier)이다. 과거의 경험으로는 그 존재 가능성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 기대영역 밖에 존재하는 것이다. 둘째로 검은 백조는 극심한 충격을 가져다 준다. 앞에서 예를 들어 설명한 '극단의 왕국'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아직도 우리의 삶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봐도 알수 있다. 셋째는 검은 백조가 극단값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그 존재가 사실로 드러나면, 인간은 적절한 설명을 시도하여 이 검은 백조를 설명과 예견이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전적으로 인지할 수는 없지만 사후적으로는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대에 접어들면서 검은 백조의 출몰이 더 잦아지고 있다. 그만큼 예상하지 못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의 발생빈도가 잦아지고, 세계적 금융위기와 같은 사회적 불안이 전 세계인들에게 극도의 충격을 주는 현상이 종종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미리 예측하고 처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큰 문제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가 지적한 '블랙 스완(black swan)' 현상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까? 첫째는 역발상의 지혜라고 생각된다. 일상적 관측의 빈도가 낮다고 우리가 무시해 버리는 불확실성의 세계와 극단적 관측치가 정말 우리가 관심을 쏟아야 할 분야라는 점이다. 사실 우리의 인생도 예측하지 못했던 매우 이례적인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극단치를 예측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그리고 역사의 진행방향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둘째는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과학적 분석방법이 가지는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다. 우린 정규분포 가설과 같은 수많은 가정하에서 현실을 분석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너무나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세계금융위기를 초래한 금융공학도 수많은 가정과 전제하에서 작동할 수 있는 것이지만 우린 그것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으로 믿고 살아왔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일상생활에 있어서 평균과 일상외에도 극단과 미지의 것을 함께 고려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금융투자를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린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기보다는 분산투자하라고 배워 왔다 . 이제 생각을 바꾸어 보자. 다수의 안전자산에도 투자하지만 약간은 고도의 위험자산에 투자한다면 블랙스완이 출현했을 때에도 어느 정도 적응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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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가 몰락하고 있다. 모두들 예상 밖의 결과에 충격에 휩싸여 있다. 세상에 블랙 스완(Black Swan)이라니! 블랙 스완은 검은 백조를 말한다. 백조는 말 그대도 하얀색인데 블랙 스완은 우리의 통설을 깨트린다. 지난 날 나비 한 마리의 날개짓(나비효과)으로 미래를 예측했다면 오늘날은 검은 백조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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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언제부터인가 내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시인할 수 있는 것도 진정한 용기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과학적이고 합리적 의사결정을 교육 받아온 나는 불확실성, 비이성, 직관, 감각 등이 주목 받는 시대의 수 많은 출판물에 당황하기도 하지만 적잖이 매료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 블랙 스완은 여러 면에서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엄청난 독서량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는 저자의 해박함에 경탄하고, 학자이기전에 현업 금융인이라는 사실에 놀랐으며 과연 저자가 철학, 통계학, 수학, 역사학, 경제학, 심리학 등의 분야을 넘나들며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바가 무엇일까하는 호기심이 나를 설레이게 했다. 깊지 않은 나의 생각으로 이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인간 이성의 불완전함과 인간 지식의 오만함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저자의 경험론적 회의주의, 회의주의적 경험론이 블랙 스완의 왕국에 살고 있는 나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인가는 좀 더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희미해져 가는 통계학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려고 '천재들의 주사위'를 함께 읽기 시작했는데, 내가 배우고 읽어 온 것이 큰 것은 아니지만, 블랙 스완의 출현 때문에 이를 모두 기억 저편에 던져버리고 포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책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생각있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지적이고 진지한 자극이 되리라는 것이다. 저자는 간결한 결론으로 책을 마무리 하는데, '검은 백조식으로 말하면, 개연성 없는 일이 당신을 지배하는 것을 방치할 때, 당신은 그 극히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에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항상 당신이 하는 일을 장악하라'라는 주장은 저자가 생각하는 '중용'과 함께 가슴에 담아야 하는 것 아닐까....
옮긴이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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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백조란 예쁜 거위이고, 거위란 커다란 오리에 지나지 않는다. "Anser"란 단어는 라틴어로 '거위'이고 "asas"는 역시 라틴어로 '오리'란 말로 "Anatinus"는 '오리의' 혹은 '오리와 관련된' , "Cygnus"는 'kyknos'에서 온 단어로 그리스어로 '백조'를 뜻한다. 그리고 "cygnet"은 '아기 백조'란 뜻이다. "Atratus"는 '흑빛으로 차려입은'이란 뜻으로 대략 이 아름다운 흑조(블랙스완)을 그대로 묘사한 말이다.
이 매혹적인 블랙스완은 오스트레일리아 서부의 공식 새로써 태즈매니아지역을 포함하여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의 습지대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에뮤와 함께 이새는 오스트레일리아 서부를 대표한다. 백조가 유럽계 오스트레일리아 선조들의 상징이라면 블랙스완은 캔버라의 상징이자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새는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의 한때 블랙스완이었다가 사람이 되었다는 토속신앙 속에 생생히 살아있다. 1967년 1월 네덜란드 여행가 윌리엄(Willem de Vlamingh)이 서부지역에서 가장 깜짝 놀랬던 부분으로 블랙스완을 뽑으며 처음으로 언급하였다. 백조에만 익숙해져 있던 유럽사람들은 곧 이 새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어 조사에 착수, 세계를 통틀어 약 7종의 백조가 있으며 그 중에 2개의 종인 남미흑목백조와 오스트레일리아흑조(블랙스완)만이 순수한 백색 빛이 아닌 백조로 판명되었다. 이 두 종 모두 남반구에 그 서식지를 두고 있었다.
약 142cm에 달하는 거대 몸집을 가지고 있는 이 새는 하얀 날개끝을 제외하고는 온통 새까만 색을 띠어 블랙스완이라 불리우게 되었으며 짙은 붉은 오렌지색인 독특한 부리를 지니고 있다.
책 제목의 '블랙 스완'(Black Swan), 즉 '검은 백조'의 유래는 17세기 호주로 거슬러 올러간다.
영국 사람들에게 모든 백조는 흰색이었다. 적어도 호주에서 검은 백조를 발견하기 전까지 '백조=흰 새'라는 공식은 '참의 명제'였다. 하지만 검은 백조가 눈앞에 나타나자 모든 백조는 흰색이라는 오랜 경험적 통념은 한순간에 무너졌고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검은 백조는 일어날 개연성이 매우 희박한 사건을 의미하는 용어가 됐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블랙스완(검은백조)'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지는 매우 개연성이 희박한 사건을 가리킨다. 예측이 불가능하고, 엄청난 충격을 동반하며, 일단 현실로 나타나면 사람들은 뒤늦게 설명을 시도하여 마치 '검은백조'가 설명 가능하고 예견 가능했던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구글의 성공, 9.11 테러 등이 대표적이다. 현직 투자전문가이면서 '능력과 운의 절묘한 조화'라는 전작으로 '월가의 컬트북 작가'라는 별명을 얻은 저자는 종교의 발생부터 개인의 삶까지 우리 세계의 모든 영역에 검은백조가 잠복해 있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희귀성, 극도의 충격, 예견의 소급 적용, 이 세 가지가 검은백조의 속성이다. 우리는 몇 마리 되지 않는 검은백조의 존재에서 찾아낸 원리로 세계의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특정 사상과 종교가 발흥하는 이유, 역사적 사건들 사이의 역동적 관계,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원리 등등. 1만 년 전 우리가 홍적세를 벗어나던 때부터 이러한 검은백조 효과는 위력을 발휘해 왔다. 산업혁명으로 세계의 복잡성이 증대하기 시작하면서 이 효과에는 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반대로 일상의 사건들, 즉 우리가 신문 따위를 통해 배우고 토론하고 예상하려 드는 사건들은 점점 아귀가 맞지 않는 결과를 드러내기 시작했다.”(22-23쪽) 블랙 스완’의 주장은 일견 간단하다. 레바논 출신 미국 월스트리트 투자전문가인 저자는 세상은 ‘검은 백조’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검은 백조는 통계학 용어인 ‘극단값’이다. 극단값은 과거의 경험으로는 존재 가능성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기대 영역 바깥에 있는 관측값이다.
저자는 ‘검은 백조’를 극단값으로 치환한 뒤 현재까지 알고 있는 지식으로 미래를 예측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투자전문가 등은 검은 백조라는 ‘극단값’의 존재도 모른 채 사단이 일어난 뒤에야 소급 적용해 아는 척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에는 두 세계가 존재한다. 먼저 일상적이고 작은 사건이 지배하는 ‘평범의 왕국.’ 하나의 케이스가 전체에 영향을 미치진 못하는 곳이다. 예를 들면 인간의 몸무게. 무작위로 1만 명을 뽑았을 때 세계 최고로 뚱뚱한 이가 포함됐다 해도 그 하나는 전체 평균에 상관이 없다. 또 다른 세계는 ‘극단의 왕국’이다. 이례적인 하나가 전체를 뒤바꾼다. 예를 들면 똑같이 무작위 1만 명을 뽑되 이번엔 부(富)의 평균을 내보자. 그런데 여기 빌 게이츠가 섞였다면? 웬만한 9999명의 합보다 그의 재산이 많을 것이다. 저자는 현대세계를 이런 극단의 왕국으로 파악한다. 제1, 2차 세계대전이나 9·11테러, 인터넷 등이 블랙 스완에 해당한다. 저자의 검은 백조론은 처음 나왔을 당시 홀대받았다. 지난해 “조만간 상상을 넘어선 최악의 파국이 월스트리트를 덮칠 것”이라고 주장하며 월가에 독설을 퍼부은 이 책을 뉴욕타임스는 조목조목 비판했다. 미국통계학회는 저자의 기고문 한 편에 반박 논문 3편을 함께 실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 증시 폭락, 글로벌 경제위기 등 저자의 독설이 현실이 됐다. 세계는 이제 저자를 “세상에서 가장 강렬하고 뜨거운 사상가”(더 타임스)라고 부른다. 저자가 검은 백조였던 셈이다. 저자에 따르면 끊이지 않는 사고는 ‘과거의 관찰로 미래를 결정짓는 오해’ 탓이다. 전례만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검은 백조에 대한 방비가 없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아쉬움. 검은 백조론은 설득력에도 불구하고 해법은 ‘심심하다.’ 저자는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배우는 법을 배우라”고 조언한다. 예외의 경우를 감안해 위험에 대비하고 기회로 삼으라고 말한다. “최대한 집적거려라. (역으로 생각하고) 검은 백조가 출몰할 기회를 최대한 늘려라.” '검은 백조 문제 (Black Swan Problem)'는 18세기 스코틀랜드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처음 사용한 말로서, 관찰한 사실로부터 일반적인 규칙을 이끌어낼 때 발생하는 곤란한 문제를 나타내는데 쓰이는 용어입니다. 즉, 모든 백조가 하얗고 검은 백조는 전혀 없다고 결론을 내리려면 얼마나 많은 흰 백조를 보아야 하는지 묻는 것입니다. 수백 마리? 수천마리? 알 수가 없습니다.
검은 백조는 단지 가설적 은유가 아닙니다. 검은 백조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견되기 전까지 세상에는 흰백조밖에 없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사람들의 그런 믿음은 검은 백조를 처음 보는 순간 산산히 깨졌습니다.
특정한 인구 범위 내에서 엄청난 부자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 가운데 일부는 머리가 좋아서 부자가 되었을 것이고 일부는 운이 좋아서 부자가 되었을 테지만 우리는 그들이 어떤 식으로 부자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백만장자의 투자전략과 일하는 습관을 따라 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구요? 나심 탈렙의 '능력과 운의 절묘한 조화'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그는 투자전략 못지않게 운의 요소가 부자가 되는데 중요하다면서 검은 백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운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대박. 운은 한 번 작용하면 상상할 수 없이 거대한 효과를 가져온다.
둘째, 거의 0에 가까운 확율. 운은 기존의 정보를 바탕으로는 절대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확율적 의미를 갖는다.
마지막으로 의외성. 검은 백조의 가장 못된 특징은 그것이 항상 기습적으로 의외의 순간에 벌어진다는 점이다. 이처럼 운은 항상 그 운이 따라줄 것으로 예상되는 요소가 하나도 없는 엉뚱한 순간에 일어난다는 특징이 있다.
('롱테일 경제학'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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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좋은 것 같은데요...
번역하신 분이 내용을 이해하고, 번역을 하셨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책의 곳곳에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벌써 일주일째 책을 들고 있는데, 읽기가 너무 어렵군요.
이글은 보시고 번역자나 출판사에서 답변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혹시 책값 환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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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아는 자는 무너지는 담장에 기대지 않는다’. 예전에 출간되었던 역사 소설 ‘정관 정요’의 표지에 써있었던 글귀이다. 역사에서 배우는 현상적인 이야기들은 그 때 그때 달라진다. 하지만 그 현상의 이면에 숨어있는 본질적인 흐름은 반복된다. 역사를 에피소드의 나열로만 생각하면 그 본질의 흐름을 놓친다. 역사적 본질은 어찌 보면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적 성향에서 유래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랙스완>은 과거와 현실에서 되풀이되는 반복되는 개인과 사회가 저지르는 어리석음의 원인을 흥미롭게 분석한다. 저자의 전작 <행운에 속지마라>에서 금융인의 시각에서 무작위성의 놀음 속에 나타나는 운과 성공을 혼동하는 어리석음을 소재로 삼았다면, <블랙 스완>은 철학자적 관점으로써 금융분야를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의 인간 본능적 오류를 꼬집고 있다. 서양 철학의 역사는 ‘플라톤의 주석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있다. 현 세상을 지배하는 사상은 서구의 사상이고, 그 사상의 핵심에 플라톤의 사상이 있다. 따라서, 플라톤적 사고 방식은 지금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실은 이데아의 모방이라는 플라톤의 사상은 보편적인 법칙을 중심에 두고, 현상적인 것을 설명하라는 기본적 태도를 견지한다. 비트켄슈타인의 말 처럼 “설명할 수 없는 일에는 입을 다물고 있어야”하지만, 플라톤은 설명할 수 없는 일에도 여러가지 인과적 법칙을 이용하여 입을 열어 친절히 설명할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태도는 인간의 본능인 ‘이야기 짓기’와 ‘패턴 찾기’와 결합되어 인간의 인식 피안에 있는 것 조차도, 인식과 설명의 영역으로 끄집어 낸다. 이러한, 인간의 노력은 일상적 해프닝이 지배하는 ‘평범의 왕국’에서는 유효하다. 하지만, 그러한 유효성에 대한 자만은 일시적으로, 또는 어쩌다 한번씩 일어나는 ‘극단의 왕국’에서도 위와 같은 방법을 이용하여 인과성의 잣대를 들이대는데 기여한다. 거대한 쓰나미나, 무자비한 금융위기는 '합리'라는 이름의 폭력과, 어설픈 '인과법칙'과, 정규분포의 도표 안에서, 100년에 한번 올까말까한 것으로 과소평가된다. ‘언젠가는 올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니야’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잠재된 거대한 위험 앞의 사람은 마치 ‘달려오는 폭주 기관차 앞에서 공기놀이하는 어린이’와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매스 미디어의 발달로 인하여, 위험은 확대 재생산되고, 폭주 기관차 앞에서 신나게 공기놀이하는 아이들은 점점 늘어간다. 어떻게든 현상을 원인과 결과로 나누어 설명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자들과, 그렇게 설명된 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지식은 있되 지혜와 소양없는 전문가’와, 그 내용에 대해서 무장해제된 상태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수용자의 삼위 일체 속에서 파국은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파국의 중심에는 ‘부재의 증거’와 ‘증거의 부재’ 사이의 혼동이 있다. ‘검은 백조가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검은 백조가 없다’라는 결론을 쉽사리 이끌어 낸다. 하지만, 뒤 결론은 한 마리의 검은 백조의 발견만으로 허무하게 무너진다. 이 검은 백조는 검은 쓰나미가 될 수도, 검은 금융 위기가 될 수도, 검은 폭주 기관차가 될 수 도 있다. 다만, 우리는 그 검은 쓰나미, 검은 금융 위기, 검은 폭주 기관차를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을 뿐이다. 매사를 확정적으로 예측하려는 태도와, 정규 분포와 선형성에 입각한 관점은 예측하지 못한 것과, 정규분포를 벗어난 것과, 비선형적인 것에, 무력할 따름이다. 저자는 예측과, 해석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중요한 태도는 매사에 회의주의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라고 반복하면서 주장한다. 1000일동안 먹이를 꾸준히 받아 먹다가 1001일째 먹이를 주는 주인의 손을 믿고, 추수감사절 음식으로 목이 잘리는 칠면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가 처한 상황에 대한 회의주의적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인간은 보고 싶은 현실만 본다’는 카이사르의 주장은 20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유효하다. 보기 싫어도 봐야 하는 현실을 깨닫는 것. 그것이야말로, 쟁반위의 죽은 칠면조가 풀밭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는 살아있는 칠면조가 되게하는 자유의 제1의 전제조건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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