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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폐망기(廢亡期)이자 일제의 대한제국 침탈이 본격화되는 시기인 1863년에서 1910년까지, 48년간의 오늘의 청와대 비서실차장 격인 고종황제의 시종원 부경, 정환덕(鄭煥悳;1857~1944)이 쓴 일종의 궁중비사(秘史)라 하겠다.
끊임없는 혼돈의 시대, 나라는 열강들의 이권을 위한 각축장이 되어버리고, 무능과 탐욕에 찬 대신과 관료만이 득시글거리는 무용(無用)의 정부, 임금과 대신들 누구도 이 무너져 내리는 나라가 안고 있는 “위기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비루함으로 가득찬 시대의 최고 통치자를 중심으로 한 그 내밀한 사정역시 초라하기 짝이 없음을 확인케 된다. 구식군대의 해체와 그 반발로 야기된 임오군란으로 그들 분노의 목표물이 된 민비(閔妃)의 도피행락과 이에 얽힌 치졸하기만 한 관료의 발탁행위나, 멀쩡히 살아있는 며느리를 사망으로 간주하고 부리나케 장례를 준비하는 대원군의 모습은 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이미 국가라고 하기에는 썩을 대로 썩어빠진, 안동김씨의 4대에 걸친 세도정치가 만들어낸 극도의 부패와 해이된 기강, 분열된 민심, 그리고 되먹지도 않은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권력싸움에만 분탕질 하는 사회가 그대로 존속되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기대였는지도 모르겠다. 두국병민(蠹國病民)이라 했던가? 이미 나라가 좀 먹히고 국민들이 병들어 어떠한 결단과 용인(用人)도 소용없는, 그야말로 수치스럽고 처참한 19세기의 우리였음을, 여기서 바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우연일까? 21세기 지금에도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똑같아 보이기만 하는지, 역사의 반복이란 속설이 씁쓸하기만 한 그 무엇이 되어 목을 치민다. 거듭되는 민란과 역모, 외세의 지속되는 강압에 생명의 위험이 그대로 노출된 무력한 임금이 밤잠을 설치는 것은 그야말로 당연한 것이었고, 잠 못 이루는 왕은 낮12시가 되어서야 기침하는, 낮과 밤을 거꾸로 삼아야 했던, 그래서 관료들의 업무개시 시간이 정오가 되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본업이 시작될 정도의 피폐해져 있었던 당시 고종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읽을 수 있다. 또한, “아관박대(莪冠博帶; 갓 쓰고 띠 두른) 차림을 한 선비들은 적막공산에 썩어버리고 대신 높은 모자에 단장 짚고 뽐내는 놈들(浮華之輩)이 이 세상에 가득 찼다.”고 개화의 물결을 타고 겉모습에만 개화를 담은 무지렁이 세력가들과 사대부의 못난 패션을 비평하는 글에서 민중을 외면한 기득권세력의 방자함을 읽는다. 엄상궁(영친왕의 어머니), 명성왕후가 시해된 을미왜변이후 비(妃)로 승격한 이를 비롯한 궁중 내명부들의 외모에서부터 태도, 왕과 그녀들의 관계, 왕의 은밀한 침실구조, 고종과 엄비의 부부싸움까지 일화들에서 내밀한 궁중의 일상이 소개되기도 한다. 한편, 1894년, 인재발굴의 어떠한 후속조처도 없이 강행된 갑오개혁의 과거제폐지로 인한 관리 자리의 공석과 바닥난 왕실의 재정을 메우기 위한 이해의 일치는 매관매작(賣官賣爵)을 공공연한 부정으로 진행되었음을 보게 된다. 결국 전국 수령의 2/3가 돈으로 벼슬을 산 것이라 하니, 나라의 모습이 제대로 형성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이미 불가능함이었던 듯하다. 갑신정변의 주도세력중 하나로 실패하자 일본으로 달아나있던 박영효를 고종이 다시 끌어들여야 했을 정도로 충신과 인재가 바닥이 난 나라의 사연이나, 일제의 눈치만 보다 일주일 만에 조각(組閣)도 하지 않고, 다시 일본으로 내뺀 파렴치한 인물의 실상에서 한숨만 불거져 나옴을 느낀다. 급기야 이완용등 일제 앞잡이들의 집요하고 악착스런 겁박에 굴복하여 1907년 7월 19일 오전3시라고 밝혀져 있는 고종황제의 양위(실제는 攝政 조칙)조칙이 내려지는 사정과 배경을 비롯해, 일제에 의해 외부와 차단되고 고립되어버린 고종과 정환덕의 궁안의 대소사에 대한 논의가 진솔하게 소개되어있어, 무기력해진 왕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본래 우리의 땅이었던 간도(墾島)가 1909년 청일전쟁 후, 간도(間島)로 바뀌어 일제에 의해 청으로 귀속되어버린 억울한 사연,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하고 일제에 보낸 탁견, 1910년 나라를 팔아먹고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72인의 매국노에 이르는 통한(痛恨)의 사연들이 새롭게 마음을 쓰라리게 한다. 오늘의 우리 역시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등 강국에 싸여있고, 그나마 반쪽으로 분리된 채 보수냐, 진보냐, 좌냐, 우냐하는 케케묵은 실익도 없는 이념과 정쟁에 묻혀, 점점 세계의 경쟁에서 소외되는 한심한 꼴로 치닫고 있다. 국가수반의 리더십과 그 각료들의 불일치한 목소리로 연일 시끄럽고 정책수립에 이견으로 삐그덕거리고 휘청대기만 한다. 서민들의 생활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살을 에는 찬바람만이 몰아쳐댈 조짐이다. 100년 전의 치욕을 더는 반복하지 말아야 할 텐데, 안타깝다... 제발 인생사는 남가일몽(南柯一夢 ; 꿈과 같이 헛된 한때의 부귀영화)에 불과함을 저들이 알아야 할 터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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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로부터 시작해서 순종으로 이어져, 결국은 속국의 왕으로 추락하는 조선시대 마지막 시간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기록으로 남긴 남가몽에 대한 내용입니다.
역학을 공부하면 미래를 점칠 수 있다죠. 남가몽의 저자, 시종원 부경(現 대통령 비서실 차장) 정환덕은 역학을 공부하고서 고종의 수행비서격으로 지척에서 보좌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몇몇 사건을 예측하고 이를 맞춤으로써 고종의 신임을 얻은 경우도 나옵니다. 물론 나중에 기록했던 것임을 감안하면 맞는 것도 있었고 안맞는 것도 있었겠지만 기록주체가 예측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예측이 맞았던 일만 기록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흥미로운 얘기입니다.
혹자는 조선왕조가 임진왜란때 무너지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졌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금 상상하는 가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공부하고 알아가는 목적은 지난 시간을 지금 현재에 투영시켜 교훈을 얻는 것이지 상상의 나래를 펴고 후회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남가몽의 저자가 실제로 조선왕조가 무너지는 역사의 순간에 함께 했다는 사실이겠죠. 왕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왕이 느끼는 안타까움도 묻어 있고, 국왕부부의 부부싸움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줄타기 얘기도 있고, 고종이 헤이그에 파견했던 이준열사의 얘기도 있습니다. 지금와서 보면 역사적인 얘기지만, 그 당시 그 상황을 맞이하는 고종의 입장에서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좋은 경험입니다. 결과론적으로 조선왕조가 끝났기 때문에 고종과 명성황후, 그리고 대원군의 모든 일들이 폄하되기도 하지만, 과연 그 상황에서 자신이 처했다고 생각하면 어느 누구도 위 세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다보니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꾼 연도가 1897년도더군요. 한참을 1897년이라는 연도에 눈이 멈췄습니다. 100년 후 1997년도에 IMF 사태가 터졌음이 생각난거죠. 나라를 제국으로 바꾸고 왕을 황제로 칭했지만 실제로는 무너져가는 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왕손이 끊긴것이 개인적으로 좀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선이라는 나라가 500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내부의 힘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봐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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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로 넘어오기 전의 조선역사는 그저그렇게 짤막하게 소개하고 지나치기 일수였는데, 근자에 나와있는 기록중에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새로운 깨달음을 일깨워가는 책이었다. 읽을 수록 다음장이 궁금해진 면도 있었고, 고루한 역사기록물을 보는 느낌을 잘 제거한 채, 야사위주로 기록된 다큐멘터리 한편을 보고 있는듯하여 단숨에 다 읽어버린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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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들은 언제 어디서 읽어도 재미있다. 그중에서도 야사들은 더 재미있음을 다른사람들도 알것이다. 남가몽도 그러한 야사들 중 하나로 숨은 역사인데 구한말 3대 비사 중 하나다.-나머지 두 비사는 황현의 매천야록, 송상도의 기려수필- 고종과 순종을 최측근에서 모셨던 시종원 부경 정환덕이 궁중에서 직접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기록한 남가몽은 고종과 명성황후, 흥선대원군, 순종에 이르는 숨겨진 이야기와 생생한 기록들이 가득하다.
고교때 배웠던 역사를 회상하면서 읽으니 더욱 감칠맛이 있고 착착감기는게 읽음에 기쁨이 있었다. 시종이지만 아첨하는 그런 시정잡배같은 느낌이 아닌 수를 읽는 역술가이면서도 권력에 소탈한 그러한 심성과 행동은 신선함과 함께 안도감을 주었다. 일제와 서강 그리고 간신들에 의해 이리저리 꼭두각시 마냥 휘둘러지기만 했다고 생각했던 고종의 이미지를 완전히 탈바꿈하게 되어 이 책이 고마우면서 한편으론 놀라웠다. 또한 편협적인 생각을 바꾸었는데 독립협회가 착한편?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정정해 그 속의 진실을 꺼내어 읽게 만들어 주어 고마웠다.
지금 같으면 삼척동자라도 거짓말인 것을 알았을터인데 이 말을 믿었으니 과연 한국 사람에게는 남의 말을 너무 잘 믿는 약점이 있는 것 같다. (p.110)
우리나라가 괜히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린 것이 아님을 알수있었다. 한 두번 속임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속는 고종이나 신하들이나 순진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약삭빠른 일제에게 당한것도 있을것이다.
구한말의 역사는 대체로 어려워 가볍게 읽고 넘어가거나 넘겨짚기 일쑤였는데 그러한 실책을 붙잡아주어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책 구성적인 면에서도 깔끔하고 옛 책을 읽는 듯한 느낌도 받아 읽음에 불편한 점은 전혀 없었다. 다른 야사들에 비해서 야사 속의 내용을 고스란히 옮겨 적은 부분이 탁월함이 돋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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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덕혜옹주를 다룬 프로그램을 시청한 적이 있다. 고종이 아끼던 막내딸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으나 일본에서 외로이 힘든 날을 보내다 어렵게 한국으로 돌아와 생을 마감한 이야기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생을 살다간 그녀로 인해 한동안 멍해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다시금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게 한 이 책은 다시 한번 가슴 아픈 조선 왕조의 마지막 서글픔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그로 인해 갖게 된 역사에 대한 관심은 이 책으로 인해 더욱 커지게만 한다. 특히나 조선 왕조의 최후는 더욱 그렇다. 또한 세도정치로 유명한 순조, 헌종, 철종을 거쳐 고종이 통치한 시대를 비롯해 순종까지의 많은 사건이 가슴에 와 닿는 건 조선왕조 오백년을 마감하는 그리고 지금의 시대와 근접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1902년 시종원 시종으로 임명을 받은 정환덕(1857~1944) 이라는 역학을 전공한 사람이 궁궐에 재직해 궁 안에서 듣고 본 온갖 일들을 남가몽에다 비밀히 기록한 것이다. 고종과 명성황후, 흥선대원군, 순종에 관한 기록들로 조선의 멸망 과정을 이야기 하고 있다. 책 속의 소제목으로도 있지만 고종의 재위 43년 동안 한 번도 편할 날이 없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임오군란이 구식군대의 차별대우로 인한 것으로만 알고 있던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 외에 새로운 사실을 말하고 있다. 국고가 바닥이 나 군인들이 들고 일어난 사건으로 조선 왕조의 멸망을 재촉한 것인데 이는 명성황후가 음악을 지나치게 좋아해 배우들과 기생들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즐겨 백성들은 곤궁해지고 국고는 탕진되어 병사들이 일으킨 것이라고 나온다. 이로 인해 명성황후는 실각하고 대원군이 다시 집권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여러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 중 월미도 매각 사건을 읽으며 뇌물을 먹고 나라를 팔아먹는 기가 막힌 점도 놀랐지만 너무 예쁜 섬이라 영국인이 처음 보고 장미섬 이라 이름 붙였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하지만 열강들이 이 섬에 거점을 만들고자 했으며 월미도를 차지하는 나라가 곧 조선을 차지하는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안중근의 이야기를 비롯해 나라를 위해 자결하는 충신들도 많았지만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가 판을 치는 시대상을 보며 책을 읽으면서도 가슴이 답답하고 울컥해지기도 했지만 조선왕조의 최후를 읽으면서는 더욱 기가 막힘을 느낀다. 고려가 망할 때 새 왕조에 봉사할 수 없다해 지조를 지킨 충신이 72명이었고 조선 왕조가 망할 때 총신 대신 매국노가 72명이라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또한 정도전이 종묘의 칸수를 28칸 반으로 정하고 창엽문(蒼葉門)으로 현판을 써서 걸었는데 글자를 풀어보면 임금이 28대라는 뜻으로 그가 미리 5백년 후의 조선 왕조의 멸망을 예측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신기하기만 하다. 나는 이 책을 덮으며 고종의 심정을 헤아려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임오군란 이후 심한 불면증에 시달려 고통 받았을 당시의 괴로움과, 두 눈 뜨고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그의 한 맺힌 가슴을 생각하니 그가 느꼈을 고뇌와 외로움에 인간적인 연민이 느껴져 한동안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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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몽은 조선 최후 48년간의 기록을 담은 서책의 이름이다. 기록한 자는 정환덕이라는 사람이다. 이 책을 읽기전 인터넷을 통하여 알아본 바로는 이 사람은 무당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흔이 되던 해에 한양으로 상경하여 1902년 11월 시종원 시종으로 임명받아 고종황제가 주무실때까지 하루 12시간 이상을 옆에서 시종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보고 듣지 않았을까 그런 정환덕이 후세를 위하여 남긴 책이 남가몽이다.
우리에게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없고 각각의 시기를 우리는 중고시절에 국사책을 통하여 꾸준히 배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근세의 역사가 아닐까 그래서 기록도 잘 남아있지 않는 조선 최후 48년의 이 기록들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한다.
양반과 상민이라는 신분제도 파기된 시점에서 궁궐에서도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났을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제일 흥미로웠던 것은 명성왕후께 뱃사공에게 금반지를 빼어주시면서까지 피난을 가셔야 했다는 것과 심한 불면증을 앓으면서도 부국강병한 나라를 만들고자 하였던 고종황제의 고충은 절절히 느껴졌다. 물론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군함제조의 사기극에 휘말려 국고만 축내고 결국 1905년 11월에 을사조약의 국치를 겪게 되고,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강제퇴위해야만 했지만. 또한가지 조선왕조실록같은 곳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고종황제의 가정생활도 엿볼 수 있었다. 중전인 명성왕후가 잠든 사이 지밀상궁과 밀애를 나누거나 엄비와 부부싸움을 하여 엄비가 졸도한 사건 등은 고종황제도 한 나라의 군주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가장이며 남자였음을 알게 해주어 새로웠다.
그러나 고종황제가 강제퇴위하고, 순종에게 황위를 물려주었고, 결국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사라지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야만 했던 조선의 종말을 함께 했던 불행한 황제였다는 점에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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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안다는 뜻으로, <논어>의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듯이, 지나간 역사를 돌아보면 앞으로 우리가 나아야 할 방향을 찾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되어준다. 경제도 어렵고, 사회적으로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는 요즘 같은 때에, 격동과 혼란의 시기였던 고종, 순종 대 조선사회의 모습을 돌아본다면 무언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남가몽, 조선 최후의 48년>은 고종과 순종은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던 시종원 부경 정환덕이 쓴 일기 <남가몽>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시종원 부경은 오늘날로 따지자면 대통령 비서실 차장 쯤 되는 자리이니 얼마나 가까이서 보고 들었을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정환덕은 고향에서 나이 40이 될 때까지 역학(주역)을 공부하던 중 꿈에 나타난 산신령의 계시를 받고 서울로 올라간다. 개화의 물결이 들이닥쳐 혼란스럽던 서울에서 정환덕은 고종황제의 측근인 전화과장 이재찬을 만나 황제를 가장 가까이서 모시게 된다. 역학을 공부한 사람인만큼 고종의 재위 연수나 함녕전 화재사건, 김상궁의 죽음 등을 예견하며, 고종과 순종의 총애를 받으며 의지가 되어준다. 앞일은 예견할 수 있는 사람이 고종황제에게 추천한 사람들은 대부분 사기꾼들이었으니, 사람을 보는 눈은 없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과거에 있었던 일은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확인해보지 않는 이상, 어느 것이 사실인지 알기 어렵다. 역사는 대부분 승자에 의해 기록되니 왜곡된 것이 많고, 새로운 관점들이 많이 제시되고 있긴 하지만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사실만을 알기 어려운 바에야 되도록이면 다양한 관점을 접해보는 게 역사를 바르게 보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한 가지 새로운 관점으로써 크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남가몽의 저자인 정환덕은 비교적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일기를 쓰고 있다. 책 중에 보면 ‘고종을 어질고 착한 인품을 가진 인물’로 이야기하면서 ‘난세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며, 사실상 훌륭한 재상과 장군과 같은 신하들이 보필해도 나라를 구제하기는 힘들 것이다’라는 황제의 신하로서는 비교적 불충한 말을 일기에 적어놓았다. 일기라는 장르의 특성상 주관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정사보다 객관적으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된다. 백성과 군인들은 굶어 죽을 지경인데 배우와 기생을 불러 음악을 즐겼던 명성황후, 임오군란 이후 마음의 불안과 두려움으로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며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해야 했던 고종과 운이 좋아 영친왕 이은을 낳고 가정불화로 졸도까지 했던 엄비와 같은 궁중의 큰 인물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에, 정사에서는 볼 수 없는 여걸 고부댁 이야기나, 충신들의 죽음이야기가 어우러져 바로 옆에서 지켜본 듯 조선최후의 48년을 숨가쁘게 달려볼 수 있었다. 다시 읽어도 답답하고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시기의 우리 역사이지만, 앞서도 이야기했듯 곱씹어보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책 내용 중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종묘에 창엽문이 있었고 그 글자는 정도전이 쓴 것이라 전한다. 창(蒼)자의 초두는 쌍십자로 20이란 뜻이요, 그밑에 여덟 팔(八)자와 임금 군(君)자가 붙어있으니 28대라는 뜻이고 자 또한 초두 쌍십자에 인간 세(世) 그리고 나무 목(木)자에 여덟 팔(八)자가 들어이썽 28세로 읽을 수 있다. 정도전이 어쩌면 그렇게도 조선왕조의 운명을 알아맞혔는지 모두 탄복하고 있다. 고종은 26대, 순종은 27대, 그리고 영친왕이 28대인 셈이다.’ 조선은 결국 정도전과 사람들의 예상대로 28대에 끝나고 말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현재의 우리는 과거를 거울삼아 반성하고 살아간다면 어려움을 이기고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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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의 뒤안길을 걸어오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있다. 친일파 후손들의 끊임없는 소송과 아직도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위안부 할머니들의 눈물 어린 울부짖음, 백두대간 곳곳을 찌르고있는 쇠말뚝.... 이런 일제시대 과거청산과 관련한 여러 문제점들이 산재한 우리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끊어오르 는 분노가 자리한다. 왜 우리는 아직까지 이런 삶을 선택하고 있고, 왜 어두운 그림자를 쉽게 걷어내지 못할까? 그 원인이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500년 이라는 역사를 가진 조선왕조. 이씨 조선이란 비아냥속에 치욕적 종말을 맞이한 조선의 마지막 모습을 만난다. 뿌리깊은 패배 의식과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는 가슴아픈 상처를 갖게 만들었던 조선의 마지막 48년, 생생한 기록이 새롭게 태어난다.
<남가몽 조선최후의 48년>은 조선의 마직막 왕들을 측근에서 모시고 있던 지금으로 말하자면 대통령 비서실 차장 정도의 직급이라 말할 수 있는 시종원 부경 정환덕이 직접 쓴 [남가몽]에 바탕을 둔 조선왕조 마지막 파란만장했던 시간을 기록한 책이다. 12살에 왕이 된 고종, 광인 처럼 지내며 집권을 꿈꿨던 대원군, 여인천하 명성황후와 관련된 마지막 조선의 모습을 생생 하게 담아내고 있다. 순조, 헌종, 철종 3대 60여년에 걸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로 이미 조선 은 몰락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고종의 즉위에 따라 흥선대원군은 집권의 꿈을 이루게 되지만 명성황후의 등장으로 그들의 피말리는 전쟁?은 시작된다. 쫓겨난 시아버지 대원군은 임오군란 으로 재집권하고 도망친 명성황후는 얼마후 다시 궁으로 돌아오고, 그들의 권력다툼속에 고종 은 허수아비에 불과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개화파의 구테타 갑신정변, 동학, 갑오개혁, 을미 사변.... 조선은 대변혁의 시기를 맞게된다. 고종, 대원군, 명성황후... 그들의 선택 하나하나가 마지막 조선의 목을 옳아매고 있었던 것이다. 백성들의 신음은 듣지 못하고, 대신들은 자신 들의 주머니 채우기에만 급급하고, 권력 쟁탈에만 혈안이 되었던 대원군과 명성황후.... 그런 와중에 일본을 비롯한 열강들에게 짖밟히는 조선. 이렇듯 조선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나 초라 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
1910년 8월 22일. 경술국치일이다. 대한제국이 망한뒤 작위를 받은 사람이 72명이고 작위를 받지 않은 사람은 단 한명이었다고 한다. 풍전등화의 어두운 터널을 걷고 있는 조선과 왕은, 믿고 의지할 그 누구도 곁에 없었던 것이다. 지방수령들도 부정부패가 팽배했고, 조정에는 간신들이 득실대고, 월미도 매각사건과 같은 매국행위가 비일비재하고 군함제조 사기와 같이 나라를 상대 로 하는 사기극이 버젓이 일어나기도 했다. 나라를 좀먹는 권력층들, 백성들의 피를 빨아대는 지방수령, 피를 부르는 권력쟁탈전속에서 일제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도발한다. 지금의 38선 또한 그 당시 일제가 제안한 39도와 러시아가 제안한 38도선의 한반도 분단안이 시발이 된 것이라는데 또 한번 분노하게 된다. 하나둘씩 각종 이권을 차지하게된 일제는 결국 고종을 폐위 시키고 조선이라는 이름을 역사속에서 사라지게 만들고만다. 유구한 500년 역사를 가진 조선의 쓸쓸한 퇴장. <남가몽...>은 이런 역사적 사실과 그 속에 숨겨진 비밀을 담아낸다.
역사적 변화를 읽지 못한 주인과 주인을 더이상 따르지 않고 자신의 배만 불릴 수 있다면 무엇 이든 내어주겠다는 개들로 가득했던 조선. <남가몽...>이 그려내는 마지막 조선의 모습은 안타 까움 그 자체이다. 숨겨진 궁중의 비화들과 우리에게 잊혀진 땅 간도를 잊지 않게 해주기도 하고 나라를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바친 영웅 안중근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초반의 대원군 과 명성황후 사이의 비화는 오히려 재미있었고, 망국으로 치닫는 중간부분의 여러 사건들을 만날 때는 너무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되고, 악랄한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마지막부분에서 피가 거꾸로 솟는것처럼 울분이 터져나왔다. 보다 가까이서 보다 섬세하게 조선의 멸망과 왕과 신하 등 궁중내 다양한 표정과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가끔 영화나 소설속에서 '이러했다면' 하는 가정을 통해 지금의 변화된 모습이나 미래의 모습을 꿈꾸기도 한다. 조선의 마지막 48년, 그때 그들에게 변화를 감지할 눈과 나라와 백성을 위한 마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만약 그랬었다면....지금 이렇게 철조망으로 갈라진 조국도 없을 것이고, 근래 새롭게 등장하는 신이데올로기의 허상뿐인 그늘도 없을 것이고, 뿌리깊은 지역감정과 친일, 친미에 대한 반감도 없지 않을까? 독도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도 없고 간도를 비롯한 잃어버린 우리의 땅은 우리에게 더 커다란 기회를 주었을 것이다. 하나된 한반도 속에서, 쓸데없이 낭비되고 소비되던 에너지는 우리를 더 발전하고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을 갖게한다. 무릇 역사는 순환한다. 이 책속에서 보이는 조선의 마지막 모습이 가끔은 현실속에서 보이지 않은가? 혹시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정해진 듯 하다. 역사는 순환하지만 미래는 만들어가는 것이다. <남가몽....>이 써내려간 그 시대의 진솔한 고민 을 잊지않는다면 순환의 역사가 아닌 창조의 미래와 역사를 만들기에 충분한 눈과 의식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마지막 조선의 숨겨진 비밀과 진실을 책속에서 찾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