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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펜은 때로 칼보다 강하다.그리고 단서조항을 하나 덧붙여야 한다.긴 역사를 염두에 두고 생각할 때!
때론 백마디의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모든걸 말해주기도 한다.이 책의 표지 사진이 너무 끌렸다.누구나 알만한 쿠바혁명의 신화가 된 체 게바라다.앞 표지 뿐만아니라 뒷표지에도 사진이 있다.눈에 눈물이 고인채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들고 있는 그녀는 누구일까?무척 궁금해진다. 이 책에 실린 31장의 사진은 매그넘(Magnum Photos)에이전시가 제공한 것이다.여러명의 사진작가들의 작품에 조병준님의 글이 사진을 보충설명해 준다.
참을 인이 세개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다.하지만 참는게 능사가 아닐 때가 있다.어떨때에 우리는 분노해야 할까? P13 불의와 부패와 부도덕이 인내의 한계를 넘었다고 머리가 아니라 몸이 비명을 지를 때,우리는 분노해야 한다.나는 외친다.고로 나는 존재한다.
첫장의 탱크 앞에 서 있는 청년의 모습에 머리가 띵~! 하고 마비된다.1989년 천안문 사태(중국 학생 운동)를 담은 사진이다.1980년 내가 초등학교 4학년때쯤 수근수근 광주사태(5.18 광주 민주화 항쟁)가 터졌다는 소식을 들었다.이 사진은 군부독재정권에 반대했던 그때의 광주 사진들을 떠오르게 한다.
첫눈에 봐도 베를린 장벽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사진. 그 벽에 앉아서 청년은 무엇을 외치고 있을까? 베를린 장벽은 허물어졌지만,우리에겐 아직 38선이라는 군사분계선이 남아 있다.신형원의<유리벽>처럼 우리에겐 너무 많은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베트남전 출정에 반대하여 대검을 든 군인들 앞에 한 송이 꽃을 들고 있는 여학생의 모습이 너무 아슬아슬하다.부르카로 얼굴을 가린여인과 얼굴을 감싸고 울고 있는 아이.이들은 전쟁에 의한 고통으로 울부짓고 있다.
산살바도르의 총을 들고 감시하는 소년과 감시당하는 소년! 한참 뛰어 놀아야할 어린나이에 장난감 총이 아닌 실탄을 장전한 총을 들고 있는 소년의 눈빛이 증오가 가득해 보인다.감시당하는 소년의 슬픈,체념하는듯 서글픈 내리깐 눈이 너무 비교가 되는 사진이다.
전쟁은 인간을 '광기'로 내몬다.20년전 남편의 즉결처형 장면이 찍힌 신문을 펼쳐보이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할머니의 모습.전쟁은 20년전에 끝났지만 그녀의 가슴에는 아직도 살아있는 한 맺힌 고통이다.
러시아의 연방자치국 다게스탄 공화국,고차틀이라는 마을에서 찍은 사진은 저자의 설명이 없다면 완벽한 오해를 불러올만한 사진이다.지역경찰이 마을에서 재배한 마리화나를 몰수하고 있다.마리화나가 이들에겐 생계수단이지만 범죄 조직과의 연결망이 될 수밖에 없는 연결고리이니 어쩌랴!
1975년 마지막 천연두환자인 아기와 엄마의 사진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다.그런데도 인류는 전쟁을 위해 생화학무기를 만들고 있다!체르노빌의 원전사고는 13년이 지난 후에도 피해자가 태어나고 있다.
몸이 떨려서 쳐다보기도 힘든 사진들을 저자는 두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라고 한다! 그리고 중간 중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웃을 만한 사진이 제공된다.삶의 고단함이 묻어난 사진,군중속에서도 고독해 보이는 현대인의 모습.수많은 고통들을 표현한 사진들..
사진들과 글을 접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은 것이 인간이라면 또 다른 측면에서 가장 잔인한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사진과 글을 접하면서 슬프고 가슴이 먹먹해짐을 어쩔수 없다.과거는 지났지만 과거는 사진으로 남아서 후손들에게 보여준다.
모순이라는 말은 원래 나쁜뜻으로 쓰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의 느낌은 사진과 글의 관계를 모순의 개념을 적용해본다."이 창으로 말씀드리자면 어떤 방패도 이 창을 막아내지 못합니다.이 방패로 말씀드리자면 어떤 창도 이 방패를 뚫지 못합니다"누구나 아는 고사처럼 사진의 느낌도 감동스럽지만,그것을 설명하는 글도 감동적이다.하지만 몇 장의 사진은 설명이 조금 더 필요해 보인다.
때로는 분노가 우리의 도덕률이 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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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블로그에서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 그리고 얼마 후 방문했던 이음책방에서 이 책을 보고서는 바로 반갑게 책장에 구비해 두었던 책이다. 다만, 책장에서 꺼내어 읽는 데에는 시간이 꽤 지나서야 가능했던 책이기도 하다.
제목만 보아도, 그리고 표지의 게바라 사진만 보아도, 그간 다른 책들을 통하여 알고 있던 저자 조병준의 성향을 보면, 이 책의 내용이 대충 파악이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올 때 즈음에는 내가 너무도 지쳐 있었기 때문에,, 감히 (정당하다 하더라도) 어디 분노를 끌어낼 만한, 내 속에 원래 가지고 있었던 그 분노를 상기할 만한 기운이 없었기에 이 책을 읽으면 더욱 지칠까봐 오랫동안 책장에 그냥 꽂아 두었다.
그리고 이 책이 책장에 꽂혀 있는 동안에도 많은 분노할 만한 일들이 일어났다. 한 사람의 자살과 그를 둘러싼 수구 꼴통과 얼치기 좌파들의 정쟁이 있었고, 서울시 한복판에서는 갈곳 없어 싸우던 사람들이 불에 타 죽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 사건을 진두 지휘하던 사람이 석연치 않은 의문점을 가지고 검찰총장에 내정되었다가 조금전 뉴스 보니 자진 사퇴했다 한다. 그 밖에도 이 땅과 바다 건너 이웃 나라들에는 분노를 일으킬 만한,, 사실 인간답게만 살면 아무 분노할 만한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을 터임에도 불구하고 60억이 사는 이 별에서 조금씩만 서로 같이 살아가자 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 터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분노를 야기할 만한 일들이 자꾸만 일어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런 일들을 보면서도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오히려 분노하는 사람들을 손가락질 하고 바보라고, 싸움꾼이라고 매도한다는 사실이.. 또 한번 분노를 야기한다.
정녕, 사람답게 같이 사는 세상을 꿈꾸는 자들은 죽을 때까지 분노만 하고 살아야 하는가. 그 분노가 정당함을 외치기만 해야 하는가.. 이 세상은 바뀔 것인가..
정당한 분노의 게이지 수치로 본다면 우리 나라는 정말 후진국에 속할 것인가. 자신과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고 끊임없는 가르기와 편견에 찬 차별로 의식이 똘똘 뭉쳐져 '정당한' 분노를 바보짓으로 치부하거나 무관심으로 덮어버리는 사람들이 가득찬 나라...
이 책을 읽는 이. 그리고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이.. (어쩌면 영원히 안 읽을 가능성이 높을 지도 모른다. 조병준의 권당 판매고를 본다면..) 매그넘의 사진을 보는 이.. 조병준의 글을 읽는이.. 아주 우연하게라도 이 조야한 서평을 읽는 이여..
정당하게 분노하라. 부탁이니 우리 같이 분노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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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여름. 촛불을 들고 시청 앞에 모이는 사람들 틈으로 발걸음을 옮긴 건, 머리의 지시를 받아서가 아니었다. 광우병 소고기 수입, 대운하, 의료 민영화 등, 생각해보면 MB정부가 벌이는 일 모두 찬성할 수 없는 것들이고 어떻게든 반대하는 목소리를 드높여야 하는 사인들이 숱했지만, 그래도 어지간하면 반 발짝 정도 물러서 사태의 추이를 바라보는 구경꾼 틈에 끼고 싶었던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난 집이 경복궁 역 바로 옆이다. 걸어서도 나갈 수 있는 데가 시청이다. 그런데도 2002년 월드컵,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등 한국 내 역사적 사건이 될 만한 그 모임의 현장에 난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 사람 많은 장소에서 극도의 패닉을 느끼기 때문이다. 특히 불특정 다수가 와글와글 모인 장소에서는 말못할 공포심을 느낀다. 그래서 머리로는 참여해야된다고 생각하는 운동에 섣불리 발걸음을 합하지 못하기 일쑤다. 게다가 한편으로는, 농민대회나 비정규직 모임에는 관심조차 없던 사람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 살림, 아니 자기 집 재정이 더 윤택해지리라 여겨 뽑아줬던 사람들, 아니 다른 건 몰라도, 소고기 한 근에서 소의 원래 주인이 받게 되는 돈이 1000원 2000원밖에 안되는, 말도 안되는 유통 구조에 대해선 침묵하던 사람들이, 이제야 제 밥상 위에 불량 소고기 올라온다니까 떼지어 몰려 거기 섞여 있을 걸 생각하면 거부감마저 들었다. 어린 소녀, 소년들이 부대끼다 못해 시작한 일에 뒤늦게 합류해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주인 행세하는 꼴도 사실 보기 싫었다. 그럴 줄 모르고 뽑았어? 대개는 이명박 공약에 씌어 있던 일들이 그대로 벌어지는 것뿐이잖아. 하며 냉소했었다. 머리로 생각해서는 결코 내가 합류할 자리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나처럼 몸 사리는 사람, 이래저래 생각 복잡해서 섣불리 행동 취하지 않는 사람까지 거리로 나가게 했다는 건, 이 정부가 정말 갈 데까지 간 거고, 제대로 된 꼴통이라는 걸 반증하는 일이다. 내가 처음 촛불을 들고 나선 건, 어느 영상을 보고 나서다. 청와대 앞에서 물대포 발사하는 장면. 사실 물대포는 어제오늘 사용된 진압 도구는 아니다. 그런데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현대사에서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과정이 어땠는지에 대해 1그램만큼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그 과정에서 자행된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자리잡고 있으리라 본다. 내가 들었던 촛불은 그 물대포를 향한 것이었다. 그건 분노였다. 아마 대개 비슷했으리라 생각된다.
분노도 정당할 수 있을까. 내 분노는 정당했던 걸까.에 대해서 쉽게 말할 순 없다. 그러나 부당한 장면을 보고 상황을 맞닥뜨리며 느끼는 울분, 그리고 그 울분을 못이겨 취하는 행동은 적어도 부당함의 반대에 서 있는 거긴 할 거다.
<정당한 분노>에 실린 매그넘 사진과 조병준 작가 글을 읽으면서, 무엇이 인간의 참된 본성인가를 생각해본다. 자기가 이미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고자 앙다문 손아귀에 더 힘을 주고, 배고파 우는 아이를 외면하는 것도 사람이고, 또 그런 자들의 잘못을 개탄하며 분노에 가슴을 텅텅 두드리는 것도 사람이다. 물대포를 쏘라고 명령한 것도 사람이고 그 물대포를 맞고도 꿋꿋이 잘못된 건 잘못된 거라고 외치는 것도 사람이다. 불평등과 악행이 만연한 건 한국뿐만이 아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 찐빵 속 팥고물처럼, 늘상 이렇게 몸서리쳐지는 부조리가 존재한다. 여기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냐'보다는 '내가 어떤 인간이 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단순한 진리가 마음을 파고든다. 탐욕은 위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피어오른다. 손에 잡히지도 보이지도 않는 구름 너머, 존재할지 안 할지 모를 환락을 꿈꾸기보다는 바로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안타깝고 아픈 광경에 시선을 두어야만, 세상을 바로 보고 바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집을 잃어 얼굴을 가리고 우는 사람, 총을 들고 이웃집 소년을 감시하는 소년병의 눈망울, 탱크를 여윈 몸 하나로 가로막고 서 있는 남자의 모습, 앙상하게 뼈만 남은 기아, 드러누워 구걸하는 걸인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말고, 그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껴아 한다. 그러면서 힘 있고 가진 것 많은 자들이 제시하는 휘황찬란한 청사진에 침을 뱉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희망이 있을까. 단지 그것만으로 희망은 있는 걸까. 그에 대해 쉽게 답할 순 없지만, 적어도 그로부터 희망을 찾지 않는다면 절망이 금세 찾아오리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한 장의 사진이 역사를 바꾸지는 않는다. 그런 순진무구함은 역사에서 통하지 않는다. 한 송이의 꽃이 전쟁을 단번에 멈추지는 못한다. 하지만 수천 장의 사진이 쌓인다면, 수천 송이의 꽃이 바쳐진다면, 역사의 바퀴가 굴러가는 궤도를 바꿀 수도 있다. __본문 '당신에게 이 꽃을 바칩니다' 중에서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과오 없는 인생이 어디 있는가. 나 자신을 향한 분노는 우리의 숙명이다. 인간은 얼마나 약하면서도 오만한 존재이던가. 그렇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때로 나 자신을 향한 '정당한 분노'는 우리의 의무가 될 때도 있다. __본문 '오, 형제여, 먼 길 함께 걸어온 형제여' 중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괴물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잘 사는 나라의 집 없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자유? 무슨 자유? 몸뚱이 하나 뉠 자리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게 자유라고? 이미 가질 만큼 가지고도 넘치는 자들의 터질 듯한 배를 더 살찌우는 것이 '새로운' 자유란 말인가? 때로 인간의 언어는 얼마나 사악한가. __본문 '새로운 시대의 어린 여행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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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청수 경찰청장이 한국일보와 한국전문기자클럽이 주최한 ‘존경받는 대한민국 CEO 대상’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참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그가 누구인가? 평화적인 ‘촛불집회’를 불법, 폭력집회로 규정하여 평화시위 현장에 물대포를 쏘아대고, 아이들과 함께 집회에 나온 엄마들을 잡아 조사하던 그 사람 아니던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미국산 소고기의 수입을 막아달라던 국민들의 정당한 촛불의 물결을 폭력으로 막았던 사람이 존경받는 CEO로 선정이 되다니. 이것이 바로 2008년 11월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매그넘 작가들의 사진을 조병준 작가의 섬세한 글로 소개한 <정당한 분노>(가야북스, 2008년)를 보며 최근 국내에 이슈가 되었던 촛불의 물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당한 분노’라는 주제로 소개하는 한 컷 한 컷의 사진들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역사이며 다큐멘터리이다.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베를린 장벽의 붕괴현장에서, 팔레스타인, 이라크, 베트남, 다케스탄, 엘살바르도, 체르노빌 등지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전쟁과 분쟁, 참사의 현장은 그 자리에 ‘인간’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인간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분노의 순간을 포착한다. 왜 그이들은 그 자리에서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탱크를 막아서고, 눈물을 흘리며 아픔과 고통을 내비쳐야 했는가. 그런데 그 사진들을 가벼이 넘길 수 없는 것은 그 기록들이 흘러간 옛일이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지적대로 우리에겐 너무나 많은 벽들이 남아 있다. 여전한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에겐 이미 아주 많은 기록들이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함성들이 모여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벽을 무너뜨린 역사의 기록들이. 그리고 우리에겐 무너뜨려야 할 벽들이 아직 너무나 많이 남아 있다. 그 벽들의 이름을 일일이 다 열거해야 할까? … 그 함성 속에서 그때 우리는 살아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외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19쪽)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작가들이기에 그들의 사진은 항상 현장감이 넘친다. 그 속에 담긴 풍경은 때론 거리가 되기도 하고, 바쁜 일터일 수도 있으며, 편안한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 분쟁과 재난의 현장이 비치기도 한다. 이전에도 매그넘 작가들의 사진을 종종 봐왔기 때문에 책에 수록된 사진들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 이전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굳이 ‘분노’라는 단어 앞에 ‘정당한’이란 수식어를 붙이고자 했던 저자의 의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왜 우리는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이렇게 반목해야만 하는가? 사진 속의 아이들은 왜 그 자리에서 총을 겨누고, 눈물을 흘리고, 온 몸에 부상을 입고 있어야만 하는가? 인간의 욕심이 인간을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는 국민들의 정당한 목소리는 폭력과 탄압과 무시 속에 짓눌리게 된다. 사진을 보며 많은 시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눈물을 흘리는 소녀의 얼굴을, 남편을 찾아달라고 소리없이 눈물을 삼키는 노부인의 시선이 여전히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백 마디 말보다 더 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그넘의 사진들을 조병준 작가의 글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by 꽃다지, 2008년 11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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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분노가 우리의 도덕률이 될 때가 있다'는 부제를 단 <정당한 분노 Anger with Good Reason> (2008, 조병준 지음, 가야북스 펴냄)는 위대한 사진작가들의 모임인 매그넘의 사진에 조병준 님의 글을 더한 책이다. 매그넘이라는 세계적인 보도사진 에이전시에 대해서는 종군기자였던 로버트 카파의 책,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에서 처음 들었다. 책 뒤에 실린 한국매그넘에이전트 대표인 이기명 님의 글에서 매그넘에 대한 설명을 읽을 수 있다. 이 설명에서 보면 매그넘의 정체성은 '리포터와 예술가의 융합'이며, 이들 사진의 특징은 '특정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의 성격을 띠고 있으면서도 사진작가의 시각이 강하게 들어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상황(situation)과 진실(truth)을 환기'시킬 수 있기를 원한 창립자들의 의지는 이 책에 실린 사진들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31장의 사진들과 그 사진들을 보며 정당한 분노를 느끼라고 이야기하는 조병준 님의 글에서 '안전지대와 위험지대의 윤리적 거리가 시각적으로 증언'되고 있다.
분노는 파괴적인 감정이라고 배웠다. 상대의 권위를 무시하고 공공연하게 반대하는 것이라서, 분노는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렇게 오랫동안 배우다 보니 나는 분노해야 마땅한 곳에서도 분노하지 못하게 되었다. 보기 불편한 것은 못 본 척 슬그머니 피했고 다른 사람들의 뒤에 숨었다. 그렇게 우민愚民이자 파편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천안문 광장을 행진하는 탱크를 맨몸으로 가로막은 남자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면서, 그 사진에 더해진 조병준 님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의 도덕률이 되는 분노에 대해 그 필요성을 실감했다.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착취와 차별과 억압과 부패와 부당함과 부자유와 비인간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분노해야 함을 알았다. 하나하나의 분노는 미약하겠지만 그 분노들이 쌓이면 세상을 바로잡을 거대한 파도가 됨을 알았다. 눈물, 절망, 장례식, 총과 칼, 상처와 고통을 담은 많은 사진들 안에는 내가 지금껏 알면서도 피하고 숨었던 진실들 뿐만 아니라 언론 조작과 잘못된 편견 때문에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도 많았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과 전혀 모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좀더 밝은 눈과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르게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탄압하는 이스라엘을 제지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지켜보고 있음은 알게 해야 한다는 바람의 딸 한비야 선생님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이처럼 선한 목적을 위한 정당한 분노를 통해 세상은 조금이나마 달라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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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사진들이 있다. 반전주의자들에게 총칼을 겨누는 미국 군인들 앞에 꽃을 들고 다가가는 사진, 1968년 베트남의 즉결처형의 ‘피’뉴스 사진을 들고 있는 1988년 미망인의‘눈물’, 1986년 체르노빌 방사선 유출로 인해 13년후 뇌수종에 걸린 아기의 사진, 사진은 말한다. 그 역사적 순간을 기억하라고, 사건의 진실을 보라고 말한다. 총 50여 명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고의 자유 보도사진 작가 그룹인 매그넘 회원들의 사진을 통해, 알지 못했던 사실에, 시인이자, 문화평론가인 조병준의 글을 통해 분노한다. 아니 분노해야 한다. 세상에 여전하게 남아있는 비인간적 행위, 다를 뿐인데 틀린 것으로 인식하게 하는 매체들을 고발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일들, 상대적인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거는 일들,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면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들,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람들. 분노는 힘인 것을 알면서도 주저하고 만다. 어찌 31장의 사진뿐이겠는가. 그러나 때로 보여지는 것을 그대로 믿지 말아야 한다. 의도된 사진이라는 것, 연출된 장면이라는 것, 그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하니, 셔터를 누르는 이는 때로 조심해야 한다. 조병준도 경고한다.
사각 프레임 안에 무엇을 담을지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찍는 자의 선택이다. 그리고 사진가는 언제나 ‘진실’을 프레임 아웃시켜 버릴 수 있다. 삶을 구성하는 절반인 그림자를 지우는 것은 아주 쉽다. 다른 절반인 빛으로 렌즈를 향하면 된다. 그리하여 세상이 온통 빛의 사진만으로 채워진다면? 그건 거짓말이 된다. 본문92쪽 이 말은 비단 사진기를 든 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펜보다 강한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향하는 말이다.
10여일 후면 태안 기름 유출 사고 1년이 돌아온다. 아직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맨손 어업자들 중 다수는 평생을 의지하며 살아온 바다를 떠나기도 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바다는 제법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하지만, 생계수단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쌓여가는 고지서, 한 숨, 이자가 늘어가는 빚뿐이다. 지방 자치단체, 정부, 대기업을 향한 이곳 주민들의 소리없는 분노는 커져간다. 농업과 어업을 함께 하고 있는 이곳 사람들은 또 한 번 분노한다. 쌀소득보전을 위한 쌀직불금으로 농심은 화가 난다. 정당한 분노라는 책을 접하지 않았더라면, 그저 사건 발생 1주년이라는 것 정도만 기억할 것이다. 분노해야 할 때, 우리는 분노하는가. 소심한 나는 소심한 분노뿐이다. 촛불 시위의 응원 덧글, 블로그에 촛불 켜기, 그게 전부이다.
우리는 현재 1인 미디어 시대에 살고 있다. 개인적인 일상을 기록하고,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다. 한 줄의 글이, 한 장의 사진은 커다란 파장을 불러오기도 한다. 개인의 공간일지라도 우리는 제대로 말하고, 제대로 담아야 한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과오 없는 인생이 어디 있는가. 나 자신을 향한 분노는 우리의 숙명이다. 인간은 얼마나 약하면서도 오만한 존재이던가. 그렇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때로 나 자신을 향한 ‘정당한 분노’는 우리의 의무가 될 때도 있다. 때로는 내 스스로에 대해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 죄는 내게 있음을, 따라서 벌로 내가 받아야 함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분노의 부정적 에너지가 내 인생을 끝없이 갉아먹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 104쪽 내 스스로에 대해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강렬한 이미지는 머리에서 쉽게 떠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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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분노, 제목을 보자 마자 드는 생각은 뭔가 반사회적인(?)그런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사회와 반사회, 이 이분법적 사고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미성숙한 인간인지 또 한번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조병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사랑을 만나러 길을 나서다>라는 여행책을 통해서 였다. 그래서 일까, 여행책과는 사뭇다른 정당한 분노는 나의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책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체게바라는 한때 내게 우상이기도 했다. 고교시절 나의 좌우명이기도 했던 체게바라의 명언 "우리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는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오늘 그의 영향을 받은 또 다른 한 사람 조병준을 이책을 통해 만나 볼수 있었다.
매그넘의 서른한장의 사진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밝히고 있는 그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소시민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생각을 했다. 매그넘,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사진을 찍는 단체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직도 의문이 들긴 한다. 하지만 매그넘의 사진이야 말로 우리의 세계사를 대변하고 있다고, 우리의 정당한 분노를 들끓게 한다고 말할 수는 있다. 조병준의 해설이 붙어있기는 하나 한 장, 한 장의 사진이 전하는 말은 실례로 백마디의 말보다 더 값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사진작가 자신만의 생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또 다른 세상, 그 세상이 진정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매그넘의 사진은 지난 날 혹은 지금의 세계인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싶어하는 추악한 면들을 들춰내고 있고, 그것들이 잘못되었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조병준은 그 사진을 찍은 작가들의 생각은 물론이거니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의 광주민주화운동이나, 촛불시위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겪었던 자신과 그의 친구의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풀어 놓는다. 물론, 그는 우리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그는 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아니,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던 어느 날,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던 퓰리쳐상 100주년 기념 사진 전시회가 불현듯 이책과 함께 떠올랐다. 사막 한 가운데서 죽어가는 어린 소녀와 그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는 독수리, 그리고 지금 이 책에서도 볼 수 있었던 베트남에서의 한 사내의 즉결처형. 이 두 장의 사진은 어린 시절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사진이 었다. 그런데 그 즉결처형을 당한 사내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그 기사가 난 신문을 들고 있는 사진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었다. 즉결처형을 당한 사내,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내가 알지 못했던 또다른 이야기였다.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차별적인 폭행과 정당화되는 수많은 무법들이 우리의 피와 눈물을 들끓게 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이슬람인이라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혹은 성적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도 차별받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우리들이 당연시 생각했던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서른 한장의 사진들, 정말 어떻게 보면 많지 않은 사진들이지만 그 사진이 전하는 이야기는 우리들이 한참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정정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드는 책이었다. 사회 전반적인 문제는 물론이거와 나 자신의 도덕성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책, 조병준의 잔잔하면서도 강렬한 어체로 한번 만나보는 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