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もしも, これまで見てこなかった人間を見つめ,これまで見えなかった人間が見えるということになれば, それだけでも生きて生きてきた甲斐があるというものだろう。そして, 壯者を凌ぐ老人となり, 肺に吸いこんだ最後の空氣を吐き出す瞬間まで, 人間としての何よりの證であるく<言葉>を狂氣と理性の編み棒を驅使して,熱く,冷たく,編みつづけるであろう。 <生者へ 中>
만약 지금껏 보지 못했던 인간을 발견하고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인간이 보인다고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살아온 보람이 있는 셈이리라. 그리고 장년을 능가하는 노인이 되어, 폐로 빨아들인 최후의 공기를 토해내는 순간까지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증거인 언어를 광기와 이성의 뜨개 바늘을 구사하여 뜨겁게, 차게, 짜나갈 것이리라. <산자의 길 中>
두권의 책을 나흘만에 다 읽자, 이 작품에서의 '도망친다.'라는 의미가 뚜렷해 졌다. 그것은, 현실에서 도피한다는 의미에서의 '도망'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도주한다고 할때의 '도주'가 아니라, 안락과 안위의 나날들에서 끊임없이 벗어나고자 한다는 바로 그 의미에서의 도망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도망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도전인 셈이다. 편안함과 안락함으로 발을 묶는 모든 것을 떨쳐내고 뿌리친다는 것은 곧 현실에 대한 도전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듯 이 작품은 현실에 대한 도전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한 부단한 도전과 투쟁으로서의 예술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을 관류하는 커다란 두 물줄기는,『아나티즘은 사상이기 이전에 예술가의 체질 이다.』『삶은 불합리한 힘을 상대로 끊임없이 싸웠느냐로 결정된다.』 라는 말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은 과연 어떤 것일까, 예술과 테러는 도대체 서로 마주칠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이러한 물음들은, 주인공의 입을 통해서 이렇게 풀린다.예술이란 그 어떤 것에도 귀속되지 않으며, 진정한 자유와 그 자유를 잃지 않으려는 부단한 노력과 투쟁이 그것의 핵심을 이룬다. 예술은 오히려 테러와 가장 닮아 있다. 일체의 권위와 압제를 떨치고 부수뜨리고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는 개인의 소중한 자유를 침해하는 자들의 심장에 폭탄을 던지는 행위의 숭고함은 예술의 본질과 가장 닮아 있다. 참된 자유를 위해, 찌그러진 인습과 안락에 묻힌 고향을 등진 주인공은 우연히 만난 네코라는 여자와 함께 밑바닥 까지 내려간 생활을 견뎌 나간다. 암담한 생활속에서도 세상을 뒤엎는 시를 쓰겠다는 결심을 잃지 않는 주인공은, 누나의 간곡한 부탁으로 다시 고향으로 향하게 된다. 빈사상태에 빠진 고향에서 번쩍이는 삶의 진상을 언어로 포착하고자 하는 이 시인 지망생의 혼은 '번쩍이는 언어'에서 이내 번쩍 터지고 마는 테러리스트 폭탄으로 쏠린다. 그의 관심을 촉발한 테러리스트란, 지긋지긋한 압제와 국가주의로 치닫는 일본의 중심부에 폭탄을 던진 사나이 였다. 그 테러리스트의 모습과, 주인공의 누이인 자기 아내를 떠나 보행선인가 뭔가하는 수행법에 열중하며, 씩잖은 개인적 해탈을 위해 사는 듯 했던 주인공의 자형(姉兄)의 모습이 겹치며,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는다. 수행의 높은 경지에 오른 중(僧)이 국가에 반역하는 테러리스트였다니........ 인간을 비웃는 웅대한 자연속에서 펼쳐지는 이 드라마는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고, 주인공은 또다시 모든 것을 버리고 끊임없이 도망치는 삶의 길을 걷는다. 그는 종내 완성되지 못한, 도망치는 노래라는 시(詩)가 적힌 원고를 버렸지만, 그의 삶 자체는 여전히 도망치는 노래라는 시를 향해 갈 것이다. 책을 덮고도 한참 동안, 현실의 심장을 향해 나는 얼마만큼 돌팔매질을 할 수 있을까, 내 삶도 과연 도망치는 노래를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을 해 본다. 마루야마 겐지 특유의 삶과 예술에 대한 철학과 이 작가만이 할 수있는 살아있는 자연 묘사가 녹아있는 이 작품은 아직도 내 가슴을 뛰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