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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B의 예술감독이었던 누레예프 버전의 신데렐라를 보면서 이 발레단에 참 안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흔히들 클래식발레라고 말하는 지젤이나 백조 기타 등등 무수한 작품들을 보면서 그야말로 걸출한 실력에다 깔끔한 라인에 아름다운 무대와 의상까지 역시 파리오페라발레단은 세계최고의 발레단답다라고 생각해왔었다. 이 생각은 롤랑쁘디나 프렐조카쥬 등등 모던발레 작품들을 섭렵하면서도 변함이 없었는데 이 작품 신데렐라는 적어도 안무 자체에서는 내가 가졌던 파리오페라 발레단의 이미지를 확 깨버렸다.
누레예프가 말년에 영화에 심취해 그 때 머리 속에 들어 있었던 이 생각 저 생각을 다 섞어 고전을 탈피해 창의적으로 그 당시 가장 사랑했던 뮤즈인 실비기옘이 돋보인도록 안무했고 나름 애쉬톤경이나 자카로프 버전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려는 것은 좋았으나 '과유불급' 딱 이 말이 생각난다. 헐리우드 버전으로 가려고 지나치게 노력한 나머지 킹콩 영화 촬영 장면이라던가 배우 오디션 장면들을 넣으면서도 고전 발레의 형식도 버리지 못해 디베르티스망의 어거지 삽입이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새로운 버전에 너무 집착해 발레 작품의 격이 떨어졌고 산란하고 어울리지 않는 장면과 춤의 삽입으로 작품 전체가 맛없는 중국집 짬뽕같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디비디에 들인 돈이 안까웠던 것은 바로 무용수들때문인데 이 부분에서만큼은 역시 파리오페라 발레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여기 나온 에뚜왈과 프리미어 당쇠르가 몇명인데... 게다가 다들 자신이 맡은 역할들을 너무 잘해내서 아 역시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의붓언니 역의 에뚜왈 레티시아 푸욜의 연기력과 코믹한 춤은 정말 최고 중 최고였다. 사실 그녀의 르팍을 도쿄에서 보고는 모던은 참 잘 어울린다고 여겨 이미지가 좋았는데 한 주전엔 가 본 지젤에선 넘 괴기스러워서 허걱했었었다. 워낙 독특하고 개성이 강한 캐릭터라 그런 지 지젤보다는 이 얌체같은 역에 정말 딱이었고 실력도 출중하여 턴인으로 우스꽝스럽게 추는 동작 하나하나에도 전율이 왔다. 3막에서는 치파오를 입고 중국춤을 추는 오리엔탈 댄스씬에선 체격이 크지 않은 댄서라 그런지 검은 단발머리가 잘 어울렸고 그 불편한 옷을 입었음에도 홍등을 봤을 때의 버거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작품 전체로 볼 때 이 중국 춤이 생뚱 맞지만 않았어도 그녀의 묘한 매력은 더욱 더 빛을 발했을거다.
two mean-sisters, Stephanie Romberg in blue and Leticia Pujol in pink
발레리노가 토슈즈를 신고 발레리나처럼 춤을 추어대긴 참 힘든 일일텐데 의붓어머니 역의 스테판 파보린 내가 본 남자들 중 가장 토슈즈를 잘 신어냈다. 다큐멘터리 필름에서 보니 가늘고 유약한 이미지던데 검정 토를 신고 모피를 두르고 춤을 추는 그녀 아니 그는 독하고 못되기도 못된 풍채 좋은 그러면서도 한편은 색기가 도는 마나님 그 자체였다. 가르니에 극장 리뷰를 보니 호세 마르티네즈가 의붓어머니로 나오는 것이 있던데 이 캐스팅으로도 한 번 보고 싶다. 사진으로는 딱 요부같은 이미지의 마르티네즈 여사고 그의 토슈즈를 신은 모습은 여느 발레리나 못지 않게 아름다운 자태이지 않을까? stepmother, performed by Jose Carlos Martinez
막 에뚜왈이 된 실비 기옘이 이 신데렐라의 타이틀 롤을 맡았을때 뉴욕타임즈에서는 미스캐스팅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기옘이 그녀의 의붓언니들보다 키도 크고 체격도 좋고 실력도 좋아 1막에서 전혀 가련해 보이지 않아서였다고한다. 사실 1막은 신데렐라의 고생씬이니 좀 안되보이기도 하고 좋은 날 오겠지 라는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으니 그럴 수도 있었겠단 생각이 든다. 아녜스 레테스튀도 마찬가지였는데... 워낙 우아하고 라인이 긴 댄서라 재투성이 차림을 해도 빛이 나고 고난을 당해도 의연해 보여서 스스로 선택해서 당하는 느낌이었고 오히려 2막에서 핑크빛 드레스에 깃털 장식을 머리 꽂으니 유치해보였다. 3막에선 머리에 두건이라도 쓰고 나와 그런 현상이 덜 하던데 1막도 그랬으면 좋았으련만... 너무 잘나도 탈인게야. Cinderella, Agnes Letestu
무비스타역으로 분한 호세 마르티네즈는 지그프리드나 제임스 같은 역할에서보다는 전체적으로 더 많이 웃어 줘서 좋았고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라인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프로듀서 역의 윌프레드 로몰리 역시 누레예프와 같이 신데렐라를 공연해 본 경험을 살렸는 지 누레예프 분위기 제대로 나타내줬고 각 계절별 요정들도 에밀리 코제트나 요즘 관심 갖는 에뚜왈 도로시 길버트가 나와 아름다운 자태로 눈을 즐겁게 해줘서 정말 캐스팅 된 댄서들만을 본다면 훌륭하다. 작품이 너저분한게 맘에 걸리지만서도 저 댄서들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두장의 dvd를 앉은 자리에서 다 볼 수 있었으니 역시 파리 오페라 발레단 아티스트들이 대단하긴 대단하다. POB 앞으로도 계속계속 영상물 많이 좀 내다오. 도저히 파리로 자기들을 보러 갈 수는 없을 것 같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