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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강정
나는 우연히 모든 것이 완벽해지기를 꿈꾼다
- 장뤼크 고다르
모든 시인이, 모든 사람이 꿈꾸는 우연 아닐까. 나 역시 간절히 바란다. 우연히 모든 것이 완벽해지는 순간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너를 그릴 수 있겠다고 썻던 스무 살의 내가 여른여섯 살의 나보다 더 또렷하다
- 24p <안녕> 본문 중에서
사랑하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함부로 할 수 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너를 그릴 수 있겠다'라는 부분에 공감이 갔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더 또렷해지지 않는가. 사랑하고 있는 모든 대상은 늘 몽롱한 상태, 꿈꾸는 이미지로 나풀거리곤 하니까.
무언가가 떠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다는 것 사라진 새의 가슴에서 투하된 당신의 꿈이 세상에 못 미쳐 자멸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세상이 전쟁으로 충만한 이유이다
- 54p <日沒> 본문 중에서
일몰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에 세상은 전쟁으로 충만해보이는 구나. 무언가가 떠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다는 것, 얼마나 외롭고 고단한 일인가.
이별은 그러니까 내가 고기를 먹는 날이다 (중략) 고기를 먹고 나서 거울을 보고 거울에 담긴 서글픈 육식동물의 눈알을 탐하며 지구 멸망의 마지막 스위치를 내리듯 수음에 몰두 한다
- 56p <낯선 짐승의 시간> 본문 중에서
요즘 육식에 대한 생각을 자주한다. 채식과 육식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고, 자연과 환경을 생각 하게 되었는데 정작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던 중 '이별은 고기를 먹는 날'이라고 정의한 이 본문에 오래도록 마음이 머물렀다.
아침의 시작
어젯밤엔 집으로 돌아가던 나의 그림자가 죽었다 문지방 앞에서 흘러내린 어둠엔 꽃 냄새가 가득했다 달의 뒤편으로 추락하던 지구가 새로운 별을 임신했다 창가에 남아 있던 냉기가 시간의 한 틈을 쪼개엇다 문득 볕이 터지니 죽은 내 얼굴이 해바라기처럼 웃었다 십 년 전의 벚꽃들이 폭약처럼 터졌다 이제 나는 슬프지 않을 거야, 라고 노래 부르며 한 아이가 문밖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낡고 메마른 굴렁쇠가 수평선 바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 84~85p <아침의 시작> 본문 중에서
강정의 시는 그림을 보는 듯 또렷하고 색감 있는 언어로 가득하다. 그의 시집 제목이 '키스'라는 것도 이미지를 구체화 시키기에 더 없이 좋은 소스였다.
죽은 얼굴이 해바라기 처럼 웃고, 벚꽃이 폭약처럼 터지는 이미지의 연쇄 작용은 시 도입부에 삽입 된 '어둠엔 꽃 냄새가 가득했다'를 계속 상기시켰다.
먼 곳의 사연들로 가득한 이 몸은 곧 폭발할 것이다 (중략) 눈을 감으니 결코 가닿지 못했던 저 세상의 기별들이 항문을 뚫고 들어 온다
- 99p <텔레비전> 본문 중에서
늘 감동 받는다.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텔레비전도 아름다워지고, 죽음도 아름다워지고, 화장실에서 똥을 누는 것 조차 아름다워 진다. 시시한 이야기들이 시시해지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시의 힘이고 시인의 필력 아닐까.
시집 중간 중간에 삽입 된 다양한 이미지들은 시를 구체화하기에 더 없이 좋은 소스였다. 이런 생각을 하며, 머릿속에 이런 그림을 띄워 놓고 시를 썼구나 조금이나마 시인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강정이 미술을 전공한 줄 알았는데, 평범하게 문예창작을 전공한 사람이더라. 밴드 활동도 한다니 기회가 된다면 꼭 그의 공연을 직접 보고 싶다 ^ㅡ^
가끔 표현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촉촉한 문장에 대한 갈증이 느껴질 땐 어김없이 이 책을 펼친다. 다양한 이미지를 뿜어내기 때문에 마른 밤에 읽기 좋다.
2012년 11월 2일 금요일 다 읽음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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