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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의지의 승리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38914543 참고 - 권위에 대한 복종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68104225 참고 - 나치 시대의 일상사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36347634
아돌프 히틀러.
어떤 의미에서든 히틀러를 언급하는 것은 여전히 그리고 무척 조심스럽게 다뤄지는 것 같고, 아마도 앞으로도 이런 머뭇거림과 조심스러움은 여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처럼 히틀러라는 인물을 통해서 알게 된 여러 참혹함과 경악은 쉽게 말하기 어려운 내용들이고, 어떤 방식으로 생각해야 하고 이해를 해야 하는지를 수없이 고민하도록 만든다.
어쨌든 히틀러에 대해서 그리고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독일(국민들)에 대해서 우리는 대부분 많이 알고 있는 듯이 생각하고 있고, 말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많은 것들을 알고 있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는데, 그저 2차 세계 대전에 관해 알고 있는 약간의 지식들(그것도 영화를 통해서 얻게 된)과 유대인과 대학살과 관련된 단편적이거나 부분적이기만 한 지식이 대부분일 것이고,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 적인 방식으로서의 이해와 앎이 (아마도) 전부일 것이기 때문에 히틀러에 대해서 그리고 나치와 2차 세계 대전 전후의 독일에 관해서는 (실제로는) 크게-많이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항상 그렇듯... 그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아는 것이 없는 무지함으로 인해서 점점 더 오해만을 갖고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에 히틀러에 관해서 그리고 그 당시의 독일(국민들)에 관해서 조금은 알고자 책 한권 주워들어 읽게 되었는데, 많은 궁금증을 해소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충분한 도움 또한 받기는 한 것 같다.
책의 부제에 ‘르포르타주’라는 단어가 있어서 꽤 심층적으로 자료를 검토하고 분석한 내용이라고 생각되었지만, 르포르타주라는 말을 붙일 정도로 상세하게 분석했다고는 생각되진 않는, 하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내용들 또한 담고는 있는 그런 저작이라는 생각인데, 그렇기 때문에 약간은 허세를 담고 있는 제목도 조금은 용서를 해주게 된다.
저자는 히틀러에 대해서 단순히 미치광이나 광기에 빠진 인물이라는 방식으로 이해를 하려는 평면적인 시각(일종의 그저 또라이라는 생각)과 그런 히틀러에 열광하고 도취되었던 독일 국민들에 대해서도 단지 일시적으로 집단적인 최면에 빠져있었다는 방식으로 (일종의 면죄부를 주려고 하는 방식의) 해석하는 논의들에 대해서 반대하면서 히틀러와 독일 국민들이 어떻게 그들만의 논리와 합리화 속에서 그런 ‘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행동들을 쉽사리 행동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결국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집요하게 파고들려고 하고 있다.
그런 목표 속에서 저자는 독일 국민들이(히틀러 또한 마찬가지로) 허약한 민주주의-근대성에 대한 이해와 인식으로 인해서 그런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판단하는 것 같고, 어떻게 그들이 그런 식으로 되어버리게 되었는지를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서 논의하고 있다.
저자는 히틀러가 어떻게 권력을 거머쥐게 되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고 있고, 또한 그 당시의 독일의 그리고 유럽의 정치 및 사회적인 분위기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언급하면서 어떻게 그런 상황들이 연이어 발생되어가고, 그 상황과 조건들 속에서 히틀러와 독일 국민들이 어떤 선택과 행동들을 하게 되었는지를 다루며 그들이(히틀러와 그의 참모들 그리고 독일 국민들) 어떤 심리상태와 정신구조와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는지(그리고 갖고 있었는지)를 논의하고 있다.
저자가 히틀러라는 존재가 무척 독특하고 특이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를 무척 해괴한 인간으로서만 다루는 것은 올바른 이해가 아니며 그의 사고구조 / 정신구조가 어쩌면 그 당시의 독일인들의 생각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을지도 모르고 억압되고 있던 생각들을 노골적으로 내뱉는 일종의 확성기처럼 이해하고 있기도 한 것 같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연관성을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고 있진 않는 것 같고, 어느 정도의 차이에 대해서도(각각의 개별성에 대해서) 그리고 각각의 특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논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히틀러에 대해서도 좀 더 상세한 이해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으며, 그 당시의 독일 국민들의 모습 및 생각(들)에 대해서도 대략적인 이해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히틀러의 광기와 독일 국민들이 갖고 있던 정신적 허약함이 서로간의 기묘한 작용을 일으키는 과정(역사적이고 개인적인 그리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을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1차 세계 대전의 패전과 함께 독일에서 그리고 히틀러에게서 무슨 일들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자세하게 알 수 있었으며, 어떻게-어째서 그들이 영광과 비극으로 향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쉽고 그리고 상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아쉽게도 저자의 분석들은 특별히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고, 숨겨졌거나 새롭게 찾아낸 자료들을 통한 검토나 폭로도 없기 때문에 아쉽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동안의 히틀러와 독일 국민들에 대한 비난으로만 가득한 평가나 선과 악의 세계관으로 바라보는 방식에서 벗어난 좀 더 분석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들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있고, 평가를 하고 있다.
저자의 논의들이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언급되고 다뤄졌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겠지만, 일반적인 인문학 서적들에서는 지나치게 학문적인 분석들이 많았었고, 그렇기 때문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기 때문에, 히틀러라는 인간이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았고, 그 당시를 살아간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도 알고 있지 못했었는데, ‘집단애국의 탄생 히틀러’를 통해서 아돌프 히틀러라는 한 개인이 어떤 삶의 궤적을 보였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그가 어떤 시대를 살아갔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 시대를 함께 살아간 많은 사람들이 어떤 삶(들)을 살았었고 어떤 사고방식 속에서 살아갔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이 어떻게 함께하게 되었고 그 함께함이 어떤 비극과 경악 그리고 충격을 만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많이 알 수 있게 되었다.
저자의 논의가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기까지의 과정에 좀 더 집중을 하고 있고, 전쟁(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고 그 이후에 점차 파멸하게 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논의를 하기 보다는 간략하게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아마도 저자는 히틀러와 독일 국민들이 어떻게 서로가 긴밀하게 결합이 되는지에 대해서 보다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고 그 긴밀한 유대가 결국 파멸로 향하게 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파멸로 향하게 되어가면서도 그들이 여전히 긴밀함을 잃지 않고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다루고 있었고, 그런 긴밀함에 대한 내부적인 / 개별적인 저항들과 어쩔 수 없이 혹은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얘기를 꺼내게 되어버리는 유대인과 집시(항상 집단 학살에서 집시들에 대한 학살 문제는 쉽게 덮어지는 것 같다) 및 기타 대량 학살들에 대해서도 결론 부분에서 충분히 언급하고 있고, 부각시키고 있다.
좀 더 폭넓고 상세한 분석과 논의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가장 최근에 히틀러와 독일 국민들에 대해서 다뤄진 저작인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인지 그동안의 논의들을 잘 정리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게 되고 흥미로운 내용들도 꽤 많았던 것 같다.
아쉬움과 만족감이 번갈아가며 느껴지는 내용이었고, 그 아쉬움을 조금은 해소시키기 위해서 앞으로도 조금씩 다른 책들이 찾아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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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는 국민들을 실업과 절망감, 민주주의적 혼란과 국가적 몰락에서 해방시켜 승리의 최정상에 올려놓았다. 독일은 그가 이끄는 가운데 세계의 강대국으로 우뚝 솟았다. 히틀러는 신뢰를 넘어서 국민에게 밝은 미래에 대한 전망을 열어주었다. 독일국민은 그들의 놀랍도록 훌륭한 지도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살면서 독일인을 만나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독일 문학에 정통하지도, 독일의 문화·예술을 깊이 알고 있지도 못합니다. 기껏해야 독일 철학자·사상가들에 대해 아주 조금 주워듣고, 어설프게 공부했던 기억만 납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 유년 시절, 독일이라는 국가는 이미 하나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왔던 것 같습니다. 나름 아닌 ‘악마’의 이미지입니다. 할리우드 영화의 세례를 받으며 자라난 제 기억 속에, 거의 대부분의 역사물, 전쟁 영화에서 독일은 ‘나쁜 국가’‘죄악을 저지른 악마의 국가’등으로 남습니다. 이제 그러한 미국의 ‘악마 만들기’가 냉전 시절 소련 등을 거쳐 현재 이라크, 북한, 시리아 등으로 바뀌었지만 말이죠. 독일군이 쓰고 있는 철모는 M35, M42 등으로 불리는데, 어린 제겐 그것이 마치 악의 상징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영화에서 당연히 죽어야 하는 나쁜 대상으로 각인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조금씩 먹으며 무언가 석연치 않은 감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무지하고 무지한 제가 보아도 지금 세계를 어지럽히고, 자기 맘대로 군림하며, 약소국들을 마치 식민지처럼 통제하려는 국가는 독일이 아닌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이 진정한 악의 축으로 비쳐졌습니다. 물론 6·25전쟁을 겪으며, 민족의 분단이라는 비극을 경험한 우리에게, 그런 우리를 구원해 준 미국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비난하고, 적대시할 수 없는 신성한 그 무엇이었습니다. 때문에 적잖은 혼란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은 결국,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고, 히틀러는 지하벙커에서 자살이라는 선택으로 삶을 종결지었습니다. 전쟁 기간 중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죽어갔고, 그 수의 몇 배에 달하는 이들이 지옥 같은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대부분 각 나라의 평범한 국민들이었습니다. 유태인에 대한 잔혹한 학살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집시에 대해서도요. 히틀러가 얼마나 잔악한 사람이었는지, 집요한 사람이었는지, 그것 역시 기억해야 겠지요. 그래서 다시는 그러한 독재자, 학살자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유태인 학살을 비롯한 히틀러와 나치정권의 만행은 결코 그들만의 힘으로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히틀러라는 인물은 결코 혼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당시 궁핍하고 고통스러웠던 독일 국민들 스스로 만들어낸 악마가 히틀러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히틀러를 추종하고 신뢰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이웃이었던 선량한 유태인들의 고통과 죽음을 외면해 버렸습니다. 물론 적지 않은 독일인들이 유태인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소수였습니다. 대다수의 독일국민들은 애국, 국가의 번영이라는 이름으로 유태인 학살을 동조, 묵인, 방조했습니다. 당시 독일의 종교계 역시 대부분 입을 닫았습니다. 아울러 미국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스위스 등 이른 바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국가들 역시 유태인 학살의 일정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태인들을 도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국익 앞에 인권이나 생명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세계 제2차대전의 비극이 비단 독일만의, 히틀러만의 ‘단독 범죄’가 아님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식민지 쟁탈전 등이 섞인 추잡한 전쟁이었을 뿐입니다. 할리우드 영화가, 수많은 책과 이야기들이 전쟁을 아무리 미화하려 해도, 그 전쟁은 더러운 식민지 쟁탈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패권 다툼이었죠. 그리고 책은 히틀러라는 인물, 나치라는 집단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과 독일국민들의 집단적 애국, 마치 최면과도 같았던 그들의 복종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집단적 최면에 빠진 민족이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책은 조심스레 말하고 있습니다. 최근 탈북자와 관련해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마치 자신들이 탈북자들의 수호신인양 떠들어 대고, 감히 인권과 생명을 주절거립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미국과 한국이 탈북자들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지금과 같은 호들갑이 도움이 될까요? 오히려 중국에서 북으로 돌려보내진 탈북자들이 더 힘든 상황을 겪게 만들진 않을까요? 미국은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이 인권 국가인양 ‘북한인권법’을 만들어, 탈북자들을 자국민으로 받겠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부시 정권 8년 간 고작 80여 명의 탈북자들만을 받아들였습니다. 미국의 호언장담을 믿고 생명을 건 탈북을 감행한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미국은 정치적 이익이 될 만한, 자국에 도움이 될 만한 이들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왜 탈북자들이 미국 의회에 가서 온갖 과장을 섞어가며, 증언을 해야만 하는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MB정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참여 정부는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빚지 않고도 적지 않은 수의 탈북자들을 매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러던 탈북자들의 남한행이 현 정부 들어 뚝 끊겼습니다. 탈북자 정책에 관한 한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 게 바로 현 정부입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탈북자 이야기를 꺼내듭니다. 왜 그럴까요? 4월 11일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탈북자 이야기에 묻혀 자신들의 온갖 비리와 더러운 진실이 묻혀지길 바라는 것입니다. 인권을 외치고, 생명을 외치는 이들은 위선적이어선 안 됩니다. 히틀러는 분명 인류 역사상 잊어선 안 될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현 북한 정권 역시 인민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핑계로 소중한 생명을 정치 도구로 이용하는 집단들 역시 경계하고 비난해야 마땅합니다. 악마는 홀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악마를 돕는 이들이 존재해야 합니다. 바로 이 시간, 우리는 악마를 돕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물론 순수한 동포애로,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탈북자 문제를 이야기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까지 싸잡아 비난할 순 없습니다. 다만 그들의 순수함이 더러운 목적으로 악용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독일의 사례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기억해야 합니다. 집단 애국의 잔악성, 그리고 무관심의 죄악. 무관심은 곧 방조입니다. 그리고 범죄를 묵인하는 행위입니다. 부디 탈북자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어 더 이상 고통을 겪는 이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하다못해 사람의 생명까지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함부로 이용하는 집단.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혐오스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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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악당은 누굴까.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영화, 미디어를 통해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잘 안다고 생각되는 대표적 악인은 히틀러가 아닐까? 총통 히틀러가 그 많은 유태인들을 학살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왜 독일 국민들은 그런 히틀러의 가치에 동의하고 전쟁수행에 이바지 했던 것일까.
현대사에 두드러진 인물들 스탈린, 프랑코, 마오쩌둥, 사담후세인등의 카리스마를 훨씬 뛰어넘는 인물. 온갖 연구팀들의 조사대상이었지만 지금까지도 후세들이 쉽게 이해할만한 그에 대한,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한 명료한 분석은 없었던 것 같다. 요즘 논란이 되는 친일인명사전의 박정희 등재여부 논란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받아들여 다시는 그런 과오를 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학자의 소명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히틀러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은 내안에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의 욕망을 건드리는 것과 같다. 체험하지 못했던 광기와 분노를 발산하는 역할을 자처했던 히틀러는 당시의 독일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고 전쟁과 학살의 실행에 있어서도 전혀 주저함이 없을 수 있었다.
그가 나서 자라고 정계에 진출하고, 연설로서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권위로 총통에 오르고,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역할을 확대하는 일련의 과정은 드라마를 넘어 신화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나의투쟁>을 중심으로 분석한 그의 심리와 믿음, 정서등을 당시의 상황과 인물, 관계등을 분석한 저자의 노력이 한층더 히틀러라는 인물에 가까이 다가선 느낌을 가지게 한다(물론 그의 사상을 동경한다거나 동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지금과 다른 당시의 정세가 그런 인물의 ‘출세’와 맞닿아서 작용해 이루어낸 일들이 무척 안타깝게 느껴질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