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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비평가이자 사상가인 가라타니 고진이 쓴 책 <근대문학의 종언>으로 제기되었던 `근대문학의 종언`문제와 관련해 한국 문학과 비평공간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1장 `문학의 종언`과 약간의 망설임 에선 우선 문예창작과가 늘어난 것, 비평이 제도화되어 비평은 국문학 전공자들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사담에 불과하게 된 것에 대해 들면서 이것들을 가라타니 고진이 말한 `근대문학의 종언` 문제와 연결시킨다. `근대문학의 종언` 문제를 둘러싼 시각들을 구분해 보면 근대문학의 종언 자체를 부정하는 쪽이 있고 다음으론 근대문학이 종언한다고 해도 새로운 문학 형식이 나타나므로 문학 자체는 망하지 않을 거라는 쪽-근대문학 이후의 문학-, 마지막으로 문학 자체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보는 쪽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문학 자체가 위기에 빠져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 문단에선 새로운 방식으로 문학을 이어갈 수 있다고 보는데 그 방식이라는 게 실질적으로는 근대문학에서 퇴보한 것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저자는 예로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들면서 이렇게 말한다.
-2장 `문학의 종언`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50~51쪽에서 발췌-
2000년대 초 여러 매체에서 문학의 위기에 대해 대대적으로 말했던 게 떠오르는데 한동안 이쪽 세상을 멀리 하다가 다시 보니 여전히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전히 주례사 비평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고, 비평 공간은 점점 더 폐쇄적으로 되어 제대로 된 문제의식을 느끼고 비평을 하는 사람은 최소한 기존 주류 문학잡지에 글을 올릴 수 없다는 걸까. 순문학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순문학 작품은 거의 읽지 않고 있는데 문학을 멀리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사소설화되고 개인의 내면만 열심히 파고들어서 읽기 지루했기 때문이다. 다른 것에 관심이 쏠려 있기도 했고. 신기하게도 돌고 돌아서 다시 문학 쪽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한국 문학비평집을 읽으니 새롭게 느껴지면서 여전히 변한 건 별로 없구나란 걸 새삼 느꼈다. 달라진 건 장르 소설에 대한 문학판의 태도가 좀 더 부드러워졌다는 것 정도일까. -이건 그냥 이게 팔릴 것 같으니까 좁아진 영역을 넓히기 위해 끌어들인 게 아닐까 싶다.-
5장에선 황석영의 신작 소설인 <바리데기>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작품 외적인 부분에선 문학 시장의 왜곡된 모습, 마구잡이 할인 판매 전략과 줄거리 요약에 불과한 서평을 꼬집는다. 그리고 내적인 부분에선 그의 소설이 근대소설에서 벗어나 로맨스, 즉 근대 이전 서사의 모습을 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전에 읽었던 오츠카 에이지의 <이야기 소멸론 物語消滅論 : キャラクタ-化する「私」, イデオロギ-化する「物語」 >을 떠올렸다. 오츠카 에이지도 소설이 서브컬처화하는 것, 로맨스화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면서 근대적 언설을 옹호한다. 일본 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비판을 받는 이유도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근대문학에서 진전된 모습이라기보다 퇴보한, 로맨스로 봤기 때문이 아닐까. 다른 나라에 번역되고 호평을 받는 일본 작가들 소설에 대해 구조밖에 없다고 말한 게 인상에 남아있었다. 조영일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있는 듯하다. 치유로서의 문학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지만 거기에만 치우쳐져 과거 근대문학이 보여주었던 개인과 사회의 갈등과 대치, 타협하지 않는 모습은 이제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오츠카 에이지가 말한 것처럼 그런 `역할`을 방기한 `문학`은 과거와 같은 독점적인 지위는 더 이상 가질 수 없게 된 게 아닐까.
오랜만에 한국 문학비평집을 읽었는데 꽤 신선하고 생각해 볼 거리들이 많았다. 아직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라서 몇번 더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해봐야겠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