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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위선 겨냥한 강준만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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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위선 겨냥한 강준만의 글쓰기”<인물과 사상 24 -대한민국 우익의 수사학>(강준만, 개마고원, 2002)  우익(右翼)이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을 지칭한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 상황에서는 ‘좌익(左翼)’이라는 용어가 그렇듯이, ‘우익’이라는 단어 역시 뭔가 불온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그간의 역사에서 우리들이 기억하고 있는 우익이란 극우(極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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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위선 겨냥한 강준만의 글쓰기”

<인물과 사상 24 -대한민국 우익의 수사학>(강준만, 개마고원, 2002)

 우익(右翼)이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을 지칭한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 상황에서는 ‘좌익(左翼)’이라는 용어가 그렇듯이, ‘우익’이라는 단어 역시 뭔가 불온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그간의 역사에서 우리들이 기억하고 있는 우익이란 극우(極右)의 또 다른 표현으로, 극단적인 반공의식과 냉전적 사고에 기반한 대중선동(매카시즘) 등이 먼저 떠오른다. 따라서 남북 문제에 있어서는 반북 의식을 강조하고,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친미적인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상황이 이렇기에 언론인인 홍세화는 한국에서 ‘진정한 보수 우익이란 없다’고 단언한다.

   

이들은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서 사회 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보다는, ‘사상검증’이라는 용어가 상징하듯 자신들과 다른 입장을 표명하면 무조건 악(惡)이라는 극단적인 사고를 공공연하게 표명해 왔다. 그래서 이념적으로 가장 오른쪽에 치우쳐 있던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모든 입장들은 좌파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이 일부 족벌언론들이 이에 가세하여 이념논쟁을 확대시켜,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며 자신들의 정치적 의도를 관철시켜 나갈 수 있었다. 때문에 중도(中道) 혹은 중간적(中間的)이라는 수식어는 많은 사람들에게 애호되고, 특히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념적 성향이 중도적이라는 것을 강조하곤 했다. 

   

남과 북이 정치적․이념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이념논쟁은 지극히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 온 것이 현실이다. 일부 족벌언론들이 그 동안 여러 번의 선거를 앞두고 제기해 온 이른바 ‘색깔론’은 그 폐해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정치적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한 일방적인 주장만을 전파하고자 하는 ‘이념논쟁’은 사실상 논쟁이라기보다는, 합리적인 토론이 무시된 서양 중세시대의 ‘마녀사냥’과 같은 양상을 띠기도 했다. 

   

그러나 1997년 이후 두 차례의 대선을 거치면서, 이러한 ‘선동’은 더 이상 유효한 방식이 아니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루어졌다. 일부 정치세력이나 그들과 결탁한 족벌언론들이 독점하고 있던 정보가 이제는 인터넷을 통한 여론의 공유라는 현상으로 대치되면서, 그 영향력이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목할만한 것은 이 과정에서 합리적인 비판과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정보의 일방적인 흐름만이 존재하던 기존의 언론체계가 서서히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바람직한 것은 1990년대 이후 지식인들 일부에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좌파(左派)임을 공공연하게 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학가를 중심으로 마르크시즘(Marxism)이 활발하게 받아들여지면서, 적어도 학계를 중심으로 이념의 문제는 더 이상 금기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았다. 하지만 냉전적 사고에 젖어있는 사람들이 사회의 주류에 넓게 포진하고 있는 한국적 현실에서, 자신이 좌파라는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여전히 상당한 용기를 수반해야 하는 일이다. 물론 한 사람의 이념적 성향은 다양하게 혼재되어 있기 마련이어서, 좌파 혹은 우파라는 어느 한쪽으로 재단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념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 못지 않게, 공론의 장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라는 지향을 내세우고 활동하는 강준만 교수의 ‘인물비평서’이다. 어느덧 24권까지 간행된 <인물과 사상>은 우리 사회에서 엄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실명비평’이라는 강준만의 작업에 대해서 호오(好惡)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가 있기는 하지만, <인물과 사상>이 나오기를 기다려 꼼꼼하게 읽는 나로서는 그의 이러한 작업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홍세화 역시 강준만의 글쓰기를 ‘한국의 지식인과 문인의 상징자본을 곧바로 겨냥’한 것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대한민국 우익의 수사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인물과 사상 24>는 우리 사회에서 우익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활동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확인한 것이지만, 어쩌면 논리보다는 신념에 가까운 그들의 이념적 근거(?)는 그 실상이 대단히 박약하기 그지없다.

   

2002년 대선이 진행되던 와중에 느닷없이 튀어나온 ‘노무현에게 투표하는 자식들에게 등록금을 주지 마라’는 조갑제의 발언은 대한민국 우익이 지니고 있는 논리의 현주소가 아닐까? 아마도 당시의 조갑제에게는 우리 사회가 세대 갈등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 상황에서, 경제적 강자인 부모 세대에게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한 가장 절실한 호소(?)였을 것이다. 조갑제의 말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들의 기대고 있는 것은 합리성이 아닌 ‘힘의 논리’에 다름 아니다. 이 책에서 강준만의 적절한 비판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는 그들의 언급에서 그들의 행위가 ‘논리보다는 신념’에 입각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월간조선>을 통해 우익들의 단합을 촉구하는 조갑제, ‘군사전문가’라는 지만원의 비논리적인 주장들, 그리고 군사독재를 그리워하는 ‘5공투사’ 허화평의 자기 중심적 시각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서는 이들의 비틀린 의식의 일단을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적어도 논객으로 활약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논리적 일관성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강준만이 논파하고 있듯이 대한민국의 ‘우익인사들에겐 일관성이 없다.’ 말하고자 하는 대상에 따라 바뀌는 그들의 언어에는 최소한의 상황논리조차도 찾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때문에 어떤 경우에 동일한 현상에 대한 그들의 언급은 극단을 달리는 경우도 발견된다. 이제는 상대를 폄훼하기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자신과 다른 논리를 지니고 있는 상대와 합리적인 토론을 즐길 줄 아는 ‘합리적 우익 세력’이 보다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언론학자이기에 강준만의 글에는 늘 지식인과 언론의 문제가 빠지지 않는다. ‘조선일보 제몫 찾아주기’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그였기에, 언론을 대하는 지식인의 자세에 대해서 성찰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의 하나인 탓일 것이다. 서강대 손호철 교수와 서울대 안병직 교수에 대한 두 편의 글에서는 지식인의 글과 행위에 대한 진지한 탐색의 과정을 볼 수 있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기에, 글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평가는 일단 유보하고 싶다. 그러나 이 역시 지식인이 지녀야하는 일관성의 문제를 논의의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만은 지적하고 싶다.

   

이밖에 ‘박정희는 지식인을 어떻게 이용했나?’라는 글에서는 권력과 지식인이 어떻게 서로를 이용했는가 하는 점을 잘 밝혀놓고 있으며, 남성중심적인 사회 속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의 처지를 포착한 ‘더러워져야 성공한다’는 글 역시 유익한 시각을 제공해 주고 있다. 자못 도발적인 제목을 달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 더 썩었다’라는 글은 저자가 평소의 지론으로 강조하고 있는 서울과 지방의 균형발전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수록된 홍윤기 교수의 ‘유럽의 빈 집 점거운동과 엠마우스 공동체’라는 글을 통해서,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유럽인들의 높은 정치 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집을 투자와 증식의 재산가치로만 생각하는 우리의 관점에서, ‘빈 집 점거운동’이 내세우는 집은 사람들이 살기 위한 도구라는 생각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강준만의 글을 좋아한다. 물론 어떤 부분에서는 일견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그의 글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은 지식인으로서 지녀야 할 일관성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그리고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학자로서, 늘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려는 진지한 자세는 본받을 만하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항상 토론하는 것을 거절하지 않으며, 자신의 입장이 틀렸다고 판단되면 언제나 인정할 줄 아는 열린 태도는 그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차니)

 

* 이 글은 강준만의 글을 즐겨 읽던 때에 쓰여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그의 글을 더 이상 즐겨 읽진 않고 잇다. 하지만 이 글에 쓰여진 내용은 지금도 여전히 통용될 수 있다고 생각되어, 오래 전 글이지만 여기에 옮긴다. 아울러  오래 전부터 부정기간행물로 나오던 <인물과 사상>도 더 이상 발간되지 않는다.(월간 인물과 사상은 지금도 계속 발간되고 있다.)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i*****n 2018.10.19.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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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충성 강조하는 인간치고 애국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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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정권 시대에 한창 강조되던 가치들이 있다. 국가, 충성, 가족, 아버지 뭐 그런 것들이다. 그런 것들은 논쟁의 주제가 되지 못했다. 그냥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적인 방법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대통령을 두번째로 선출한 지금 그런 것들은 기득권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아직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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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정권 시대에 한창 강조되던 가치들이 있다. 국가, 충성, 가족, 아버지 뭐 그런 것들이다. 그런 것들은 논쟁의 주제가 되지 못했다. 그냥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적인 방법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대통령을 두번째로 선출한 지금 그런 것들은 기득권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아직도 그런 것들로 무지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무리들이 있다. 소위 보수 또는 우익을 자처하는 극우파렴치한 들이다. 여기 이번 호 인물과 사상에서는 이들의 가증스러운 거짓말과 억지 논리를 철저하게 파헤친다. 대표적 인물 몇 명 만을 다뤘지만 이들은 그나마 거칠게 논리를 대변하는 인물 들이다. 교묘하고 양비론으로 무장한 극우주의자 들은 극우언론, 극우 정당들을 비롯해 셀 수 없이 많은 것이 여기 한국이다. 오늘 그 극우정당의 대표가 단식투쟁에 들어갔다는 뉴스를 들었다. 독재자 들에게는 아부하고 복지부동하던 그들이 국민이 투표로 뽑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불법파업'을 하는 극우주의자들. 이 책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그들의 가면이 벗겨지는 날을 기대한다.
r*****6 2003.11.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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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이 중요하다.
"실천이 중요하다." 내용보기
강준만의 비판은 매우 근본적이다. 그는 어떤 문제의 겉부분만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있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비판한다. 우리들은 모두 이 사회 속에 속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상당한 부분에 대해서는 체념하거나 인정하고 살게 된다. 그런 면에서 강준만의 비판은 가치가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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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비판은 매우 근본적이다. 그는 어떤 문제의 겉부분만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있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비판한다. 우리들은 모두 이 사회 속에 속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상당한 부분에 대해서는 체념하거나 인정하고 살게 된다. 그런 면에서 강준만의 비판은 가치가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번 글들에서는 몇명의 우익 인사들에 대한 비판과 함께 좀 더 근본적인 문제인 구조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사실상 우리나라 사람 그 누구도 우리 사회의 구조적 측면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구조와 개인간의 관계에 대한 고찰은 매우 중요하지만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관계에서의 새로운 관점이 없이는 수많은 부조리와 문제들을 극복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강준만의 글들은 바로 나에게 지금 있는 자리에서 새로운 삶을 살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s****w 2003.05.0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학술적 탐구? --- 분노와 사명감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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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교수는 보수언론의(그의 표현을 빌자면) "혹세무민"하는 현 세태에 한 편으로는 분노하고 한 편으로는 치밀한 글읽기·사례연구를 통해 그 논리적 비일관성을 지적하기 위한 역사적 사명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일단 쉽다. 난해한 정치·사회·철학적 이론을 들먹이지 않고 있으며 일정도의 보통교육을 받은 정상적인 사회인이라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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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교수는 보수언론의(그의 표현을 빌자면) "혹세무민"하는 현 세태에 한 편으로는 분노하고 한 편으로는 치밀한 글읽기·사례연구를 통해 그 논리적 비일관성을 지적하기 위한 역사적 사명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일단 쉽다. 난해한 정치·사회·철학적 이론을 들먹이지 않고 있으며 일정도의 보통교육을 받은 정상적인 사회인이라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다. 특히 올해들어 안티조선일보 운동 등 과거에 찾아볼 수 없었던 사회적 현상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 번 읽어볼만 한 것 같다. 특히 자신의 정치적 좌표입장과 관계없이 기존 언론의 일정방향 몰아가기, 선택과 편집의 예술(?)에 자존심을 상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좋겠다. 다만 시간과 능력의 제한으로 정보의 한계가 있는 사람으로서 이 책에 형식과 비슷한 "대한민국 좌익의 수사학"이라고 할 만한 책이 나온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내가 내린 결론은 원칙 및 총론 수준의 '거대담론'을 역설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천 및 각론과 연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여자들도 더러워져야 한다는 대안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 대안을 과도기적 전술로 만들 수 있게끔 '거대담론'과 연계시키려는 고민이 수반되기를 바란다. 궁극적인 탈출구가 없는 '더러워지기' 경쟁에선 개인은 성공할 수 있어도 약자집단 전체가 성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j*****m 2002.12.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