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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재활용코너에 갔다 우와! 책이 한줄 쌓여있다.
왠 떡이냐하고 갔는데 어떤 아저씨가 이사간다며 이거 다 가져가 하신다.
혹시 기인이 아닌가하고 따라가봤더니 이사간다며 책을 한뭉치 더주신다.
요즘 책살돈이 없어 잘되었다하여 고르다 21권을 골랐다.
이 책이 제일 눈에 띄여 먼저 집어든다.
박영선의 인터뷰 정말 좋은 책이다.
처음엔 겉핥기식 같아 보였지만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사람향기나는 인터뷰 5,5
보수가 되었건 진보가 되었건 자신의 목소리를 어느시대에나 당당하게 낼 수 있는 우리시대의 원로들이
많지않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박영선씨가 어느 순간 그런 위치에 서지 않을까 책을
다 읽고난 뒤에 느껴본다.
내가 몰랐던 방송의 이모저모와 자화자찬으로 가득했던 사람들의 뒷이야기 좀다르게 말하면 인간적인 모
습들 잘 들린다.
어떻게 린다김 같은 여자와 인터뷰를 할 생각을 다 했을까해도 패자에게도 들어보자는 김우중의 책리뷰
가 겹친다.
소외계층에서 우리시대의 목소리 평양까지의 이야기들 잘보았고 잘느꼈다.
좋은 정치활동 잘하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리는 바이다.
제목: 조선시대 세운 최초의 현대식극장 종로3가 단성사
용산국립중앙박물관 100주년 기념강연회에 갔었다.
'주류성'이란 책을 쓰신 동국대 사학과 이기동교수님이 나오셨다.
강의도중 무령왕릉발굴시 이틀만에 졸속으로 끝냈다고 한국사학계는 두고두고 애통해합니다.
도굴수준의 발굴이었다 하신다.
이때가 노무현대통령시기다. 그 바로 전 중앙청 철거할때를 보자 무령왕릉 발굴시보다 한 술 더 뜬다. 사
학계가 들고일어난다 '해체하라'고 후손들은 무얼보고 그 시대를 느끼며 배울 수 있을까.
미움보다 더한 건 무관심이라고 했던가
조선의 대표적건축물이 경복궁이고 조선양반계층의 대표적거리가 지금 광화문앞 육조거리라면 서민들의
대표적거리는 종로1가부터 종로4가까지 있는 600년 된 피맛골인데 이골목 때려부수는데도 한국사학계는 조용하다.
이걸 부수는 시장님의 출신학교박물관에'미즈노교수와 종로피맛골이야기'글을 올렸더니 바로 지워버린다.
시네마천국이란 명화가 있다. 맨마지막장면에서 마을어른들의 오랜추억이 담긴 극장이 철거된다. 자신들
의 추억이 철거되는 모습을 보며 마을어르신들은 애석해하고 동네아이들은 철거되거나말거나 뛰어다니
며 놀기바쁘다.
보자! 이걸 문화재나 사적으로 지정할 수 있을까 그럼 그 뛰놀던 아이들의 추억이 담긴 대표적인 무엇 또
그 다음세대의 추억이 담긴 대표적인 무엇 하다보면 끝이 없다.
3.1운동때 민족대표 33인은 일경이 무서워 단성사 건너편 명월관이란 술집에서 독립선언서를 휴지에 써서 낭독한다.
교과서에서 배운다 우리민족이 하나되어... 웃기는 소리 그때 왕조를 다시 세우자는 '복벽운동'이 빠져있
어 가장 큰 세력이었던 유림이 참여를 거부했는데도 하나 되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정권찬탈을 당할까봐 이승만대통령은 영친왕의 귀국을 거부했겠는가 그곳엔 피카디리극장이
들어섰고 길 건너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조선시대 대중문화인들이 우리힘으로 세운 최초의 극장인 단성사가 있다.
피카디리극장 서울극장 동암극장 미아극장 육림극장 동네마다 극장있다. 이걸 다 시네마천국처럼 보
존하자면 어불성설이지만 그래도 나라를 대표하는 대중문화의 산증거인 단성사를 부수는건 백제문화의
상징인 금동용봉향로나 고려문화의 상징인 금속활자를 부수는거와 다를바 없다. 유럽인들이 새것을 몰라서 옛것을 보존하고 사랑하는가 아무리 역사와 전통이 있어도 이를 자각하고 계승하려는 의식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조선을 상징하는 건축물은 경복궁이다 만약 어떤 지도자가 이곳을 헌다고 했을때 국민들은 들고 일어날 것이고 가장 앞에 선 사람들은 유림들일 것이다. 신라를 상징하는 건축물은 불국사일 것이다. 만일 어떤 지도자가 불국사를 헌다는 발표를 한다면 국민들은 들고 일어날 것이며 가장 앞에 선 사람들은 스님들일 것이다. 한국 현대대중문화를 상징하는 건축물은 덕수궁 석조전과 비슷한 시대에 만든 단성사일 것이다. 전직 서울시장이 이것을 헐었다. 단성사가 헐릴때 국민들은 이불 차고 일어나 일터로 갔고 가장 앞에 서야할 연예인들은 TV에 나와 수다만 떤다. 딴따라라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려는 바탕위에 돈이라는 문양을 넣은 장막이 단성사와 연예계 사이를 장막으로 가로막고 있었기에 단성사가 헐릴때 연예계에 종사하는 그 어떤 사람도 관심을 안가졌던 것이다.
단성사를 부술때 가수는 더 노래 잘 부르려고 노력했고 평론가는 글 더 잘 쓰려고 노력했고 영화인은 영
화 더 잘 만들려고 개그맨은 더 잘 웃기려고 연기자는 연기 더 잘하려고 스탭은 드라마나 영화작가는 연
극인은 사회부 문화부,연예부기자는 아무도 관심없다. 자기마을의 당산나무격인 단성사를 부수는데도...
한국시골마을엔 마을을 상징하는 수령500~700년된 당산나무가 있다. 어느 벌목업자가 마을사람들이 지
켜보는 앞에서 백주대낮에 거기 과수원을 만든다고 나무를 자르고 있는데 마을사람들이 아무 감정없이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다면 골이 비었다고 해야할까 착하다고 해야할까.
중앙청이 헐리기1년전 한국사강의시간에 강사님께서 중앙청 견학하고 입장권 붙여서 리포트써 내라고해 등떠밀려 보고왔다. 인천에는 개항기때 건물들이 즐비하다고한다. 이걸 박물관처럼 꾸며서 한사람당 500원정도만 받고 견학코스로 개방한다면 유럽에선 앵겔스생가에서 결혼식도 한다는데 조촐하게 결혼하는 장소나 연예인들회의장소 연극인들 모임 초중고학생들 무료영화관람장소등 다체로운 행사를 갖는다면 자연스럽게 유지도되고 조상의 정신을 계승할 수도 있을텐데 찾아보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이야기다 무조건 부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않을까.
70년대 '워터게이트사건'이 있었고 청문회때 범인이 증인석에 나와 한마디한다. "여기 도청되지 않죠?"
온 좌중에 폭소가 터져나온다. 이걸보고 동양의 한 학자는 문화적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유머를 중시한 로마문화가 그 뿌리다.
왕조문화가 발달한 동양을 보자 엄숙하다. 정권의 마음에 안들면 가수나 연기자 활동할 수가 없다.
그곳이 그들의 밥줄인데 또 하나는 '잘 살아보세' 너무 가난하게 살다 겨우겨우 살만하니 그 맛에 취해 모
든 사람들이 좋은 차 좋은 집에만 관심 있지 문화재는 관광지 정도만 잘 보존하면 그뿐이라 생각한다.
노태우대통령시절 전교조가 이슈가 되었고 난리가 났었다. 외국어대에 강연을 간 정원식총리가 봉변을
당하고 어떤 이는 차 위로 뛰어올라 격분한다. 이러면 안된다.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고를 떠나 격분한 그 모습. 왜 문화재파괴될 때 어느 누구도 격분한 그 모습을 하
지 않는걸까?
제목 : 미즈노교수와 종로 피맛골이야기
지금은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생글생글 잘 웃던 미즈노교수가 방송에 잘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이 스튜디오에 모여서 토론하던 곳에서 미즈노교수는 "저희 일본에서는 자식이 사업자금이 부족해
시골 부모님에게 가 가만히 있으면 말을 안해도 부모님이 알아서 주십니다. 또 연인들끼리도 사랑한다는
말을 안해도 다 압니다."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말에 주변사람들은 "에! 그게 뭐야 말을 해야지" 하며
어이없어 했다.
이야기가 좀 다를진 몰라도 18세기 프랑스에선 자신의 문화의 우수성을 차등화하기 위해 `야만'이라는 말
을 만들어냈다.
타문화를 자신의 문화적 시각으로만 해석하려는 극단적인 예가 '야만'이라는 단어다.
12세기 한국과 일본에는 모두 무신정권이 같은 시기에 등장한다.
청기백기게임의 원형도 알고보면 운동회때의 청백전이 아니라
백강전투후 400년동안 일본에 존재했던 시대가 헤이안시대다
수도를 두 번씩이나 옮긴 간무천황이 794년에 헤이안쿄(교토)를 도읍으로 정착시킨후 1185년에 이르러서
야 미나모토가문이 다카모리왕의 손자 다이라씨와 전장에서 맞붙었을때 서로를 구별하기 위해 한쪽은 등
에 홍기를 꼽고 한쪽은 등에 백기를 꽂은데서 청백전이 유래한다.
이로인해 다이라씨가 궤멸하고 군사,경찰,행정권이 미야모토노 요리토모에게 넘어간다.
이 때 시작된 또 하나의 풍습이 무신정권의 호화로운 요리인 가이셰키요리와 승려들의 공양음식인 쇼진
요리가 합해져서 현재의 일식요리의 원형이 탄생되기도 한다.
이런 전통이 1868년 메이지천황의 시대가 도래할 때까지 700년 동안 무신들이 전국에서 할거하는 전국시
대가 계속된다.
우리나라에 군단위가 있다면 일본에서 군단위의 영주가 있어 그곳의 무사집단과 농민집단이 하나가 되어
서로 경쟁하는 시대를 그들은 700년이나 지속한다.
만일 거기속한 사람이 자신의 불만이나 억압에 대한 표출을 하게되면 그곳 집단에 해를 끼쳐 단결에 해가
된다하여 자신의 욕구불만을 자신의 내부로 내면화하는 뿌리를 내려 지금도 일본에선 제일 심한 욕이 우
리가 잘아는 '빠가야로'라는 바보란 말이 제일 심한 욕이다.
어느 기자가 그런다 한국과 일본의 고소고발 사건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이건 단순비교
가 아니라 원인을 역사적 유래를 놓고 비교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라마다의 문화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건 무리가 따를 때도 있다.
그럼 한국욕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바보'는 욕도 아니다 그냥 애칭 정도일까
조선은 500년동안 양반중심의 중앙집권제가 뿌리를 내린다.
서민들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멸시와 천대를 뒤에서 욕으로 푸는걸로 해결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외부의 억압으로 인해 생기는 불만을 욕으로 푸는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고 일본은 외
부의 억압으로 인해 생기는 불만을 내면화하는 문화가 발달하게 된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다 사대부의 발원지를 보자.
진,송시대이후 사대부라는 명칭의 직업은 비록 달랐지만 농,공,상이 같이 섞여 살았다가 후대에와서 사대
부들이 곧 문벌이 높은 집안을 가리키게 되었다. 그들이 사는 곳은 농,공,상과 완전히 구별되도록 서로 섞
여 거주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압구정도 중국 송나라의 정승 '한충헌'이 황제를 새로 세운 공을 세운뒤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지은후 벼
슬을 버리고 갈매기와 함꼐 논다는 겸손의 뜻이다.
그 압구정이 조선으로 넘어와 '계유정난'을 기획한 한명회가 갈매기압로 불리던 강남의 땅에 정자를 지은
후 그곳의 뜻은 서민들에 의해 누를압으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다.
발원지를 알면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한강의 발원지도 오대산 '우통수'와 태백 황지의 창죽동의 검룡소를 발원지로 보기도한다.
여기는 귀한 곳이기에 잘 보존되고 있다.
그럼 지금 한국은 발원지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문화유산은 또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을까
안압지,불국사,석굴암,첨성대,무령왕릉,고인돌,장군총등 거의 다인 문화유산은 모두 귀족이나 왕족들을
위한 유산이다.
그럼 우린 이런 문화유산을 정말 잘 지키고 있을까
우리는 약간이라도 불편하거나 보기 싫으면 싹쓸어버리고 다시 짓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종로의 피맛골,중앙청,명성황후생가담,창덕궁산책로,천재시인 백석과 길상사 자야여사가 사랑을 나누던
집, 올림픽 메인스타디움과 국회의사당을 지은 건축가 김수근씨의 집도 싹 밀거나 밀려고했다.
이제껏 나온 문화유산중 95%인 서민들의 유일한 유산 한국에 욕이 왜 많은지를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가
종로의 '피맛골'이다.
우리는 지금 전통과 낙후를 구분못하는 혼돈에 빠져 있지않은지...
가난의 잔재를 지워버리고 싶었던 구시대적 발상이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고 있는 것일까
1392년 조선은 개국했고 그 시절 숭례문을 만들게된다.
숭례문은 한명회의 계유정난때도 있었고 임진왜란떄도 있었고 흥선대원군시절에도 있었고 김영삼대통령
이 치적이라고 내세우는 우를 범하며 중앙청을 부술때도 있었지만 69세 노인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고 그
노인은 국민들의 비난을 받으며 감옥으로 향했다.
종로의 피맛골은 1392년 조선의 개국시절 서민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기게된다.
피맛골은 한명회의 계유정난때도 있었고 임진왜란 때도 있었고 흥선대원군시절에도 존재했고 김영삼대
통령이 치적이라고 자랑하며 중앙청을 부술떄도 있었지만 한 정치인의 야망에 의해 원형이 크게 훼손되
었고 그 정치인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청와대를 바라보고 있다.
몇몇 정치인의 생각만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를 통째로 바꾸려는 발상 이제는 좀 바꿀때도 되지 않았
을까
외국에서는 모짜르트생가 베토벤 생가에서 외국정상들과 칵테일 파티를 한다는데 왜 한국은 야만의 수준
을 벗어나지 못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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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을 지키며 기다리면 행운은 찾아왔고 그 행운은 언제나 인연을 만들었다" 텔레비전에서 뉴스 진행을 하는 박영선을 보기 시작한 지도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반짝하고 사라지는 여자 앵커들이 한둘이 아니었음을 떠올린다면, 아직도 현장에서 생생한 뉴스를 전해주는 그녀는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든다. 그녀를 방송국의 간판프로그램인 메인뉴스의 앵커가 되게 하고 오늘날까지도 현장을 누비는 기자로서 살게 하는 힘, <사람향기>는 그것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골목을 지키고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며 날카롭다는 말보다는 따뜻하다는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는 그녀의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를 여성앵커가 아닌 앵커로, 여성기자가 아닌 당당한 기자로 서게한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피천득, 백남준, 윤복희, 김지하 등 오랫동안 소식이 궁금했던 인물들을 마치 내가 직접 곁에 마주앉아 얘기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차분하고 또렷하게 묘사를 해놓아서 더욱 반가웠다. 역시 노련한 기자의 독특한 인터뷰 노하우 때문일 것이다. 곳곳에 숨겨진 그녀만의 인터뷰 노하우를 찾아 읽는 것도 이 책의 또다른 재미다. |
| 그의 책 사람의 향기를 읽었다. 그의 책 구성은 5단계의 기본적 뼈대를 이룬다. 우선은 인터뷰를 가지기전의 상대방에 대한 따스한(?)배려와 첫만남의 인상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내기 전의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함인진 상대방을 띄우기 위한 전략인지에 의한 잡다한 일상사, 그리고 기다리던 인터뷰는 2~3개, 종결이다. 개인적으로 어떤 곳에서 일(밀양 컴퓨터 나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의 사장님은 처음에 내가 심심할 할까봐, 생각할 시간을 안주다시피하며 말을 시키고 하였다. 물론 일방적인 질문이 아닌 서로간의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다. 사람은 말을 하지 않으며 서로를 알 수 없다는 것이 그 분의 지론이였고, 난 항상 2%로 부족한 것을 느꼈고, 세삼 그 분의 깊이에 감탄해 마지 않았다. 만약에 내가 시키는 일만 하였다면 그 분의 깊이를 몰랐을 것이다. 또한 그 분은 일상의 편안함보다 불편함을 찾을려고 하였다. 그 불편함은 나의 무식이 발바닥을 자각하는 것이였다. 그래서인지, 사람과의 이야기를 좋아하며, 귀를 기울인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에 나름대로 초점을 잡아보기도 한다. 내가 죽기 전에 존경할만한 사람을 만나 인터뷰 하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책은 나에게 긴장감을 조성하였고, 난 주저없이 책을 잡았다. 앞서서 나는 그의 글쓰기가 5단계라고 했다. 피천득을 인터뷰하는 장면은 이렇다. 그의 삶을 개관하고, 두번째는 단아한 모습(첫만남의 인상), 여성편력과 서영애 대한 그리움(일상사), 그리고 인터뷰(난 무엇을 물었는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리고 왜 기억에 남는지에 대한 의문은 아직까지이다.(종결) 몇가지 더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러 가서 받은 인상은 집무실의 검소함, 가족상와 추기경이 된 이유, 몇가지 인터뷰(3김 청산, 햇볕정책, 80년 5월의 침묵) 그리고 마지막 이미지는 겸손함으로 마무리 한다. 백남준의 첫 만남은 얼굴이 푸석(58)하다는 느낌(뇌졸증을 쓰러졌기 때문), 전시회 준비하는 일상, 2~3개 인터뷰(예술이란, 보수와 진보의 갈등), 장 조카 캔에 대한 아쉬움으로 마무리 짓는다. 김지하를 만나도 별반 다름이 없다. 소박함-수감생활-난, 현실권력의 피상적 생각-난과 시인은 닮은 꼴이다(종결) -여기까지 읽고 답답함에 펜을 들었습니다. 난 여기에 그들과 한국의 현대사에 대한 처절한 투쟁이나 끊임없는 성찰을 묻는 것이 부질없음을 안다. 사람에게 어떤 향기가 나는가는 나에겐 큰 의문이다. 간혹 난 어떠한 향기르 내뿜는가 뒤돌아보는 계기를 주기 때문이다. 와인을 맡아 보지 못한 사람은 농후한 와인을 모른다. 무더운 여름날 부식되어 가는 거름을 짊어지지 않은 사람은 거름의 냄새를 모른다. 난, 그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우려햇던 부분이 현실화 되는 것에, 기우이길 바라던 내 마음이 기우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편안함, 즉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들에게서 기자라서 날카롭다라는 말보다는 따뜻하다는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물으려 하기보다는 들으려고 애썼다(8)." 그는 미처 알지 못한 듯 하다. 그는 미처 알지 못한 듯하다. 인터뷰가 새로운 울림이라든가 삶을 성찰하는 지극히 소박한 도구라는 것을... 난 인터뷰가 울림이라 생각한다. 넓은 바다는 넓은 하늘을 담을 수 있다. 하지만 작은 우물은 하늘의 일부분만 담을 뿐이다. 그의 시야는 우물에 불과할 뿐이다. 애써 불편함을 벗어 버리고 편안함에 안주했기어 더 바란다는 것은 나의 욕심일 뿐이다. 그는 "따뜻하다는 인상"을 받고 싶은 나약한 사람에 불과하다. 이 책을 고르기 전에 서점에 들러서 5분만 투자하라. 편집이 좋아서인지(?) 책 한쪽의 불량은 600여자, 한사람의 인터뷰는 원고지 30장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15명의 인터뷰, 두사람을 읽고 비교하다면 그의 흐름을 짚을 수 있을 것이며, 그때 선택하여도 늦지 않다. 그의 인터뷰에 대한 깊이는 재고할 것이 없어서 덧붙이지는 않는다. 궁금한 사람은 개인적으로 물어보시거나 책을 읽어 보세요. 추신; 몇 년 전에 읽은 리영희 교수의 [새들은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책이 떠오른다. 한사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엿볼 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