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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삐딱하게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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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된 언어>에 이어 고종석의 또다른 저서 <서얼단상>을 읽었다. 부제로 '한 전라도 사람의 세상 읽기'라고 달았듯 그는 이 땅에서 전라도인으로 살아간다는 의미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이땅에서 전라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서얼'과 같은 삶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같으나 어머니가 다른, 즉 배다른 어머니를 둔 서자는 적자와는 달리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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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된 언어>에 이어 고종석의 또다른 저서 <서얼단상>을 읽었다. 부제로 '한 전라도 사람의 세상 읽기'라고 달았듯 그는 이 땅에서 전라도인으로 살아간다는 의미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이땅에서 전라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서얼'과 같은 삶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같으나 어머니가 다른, 즉 배다른 어머니를 둔 서자는 적자와는 달리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다. 태생이 천한지라 그는 비록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기는 했지만, 이미 태어남과 동시에 사회적 불평등을 안고 있다. 이 땅에서 '전라도'가 그렇다. 반면 경상도는 그렇지 않다. 경상도는 이 땅에서 오랜 세월동안 주류였고 앞으로도 주류다. 경상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적어도 보통이상의 삶을 의미한다. 이 땅에서 개인의 삶에 학벌만큼이나 사회적으로 크게 작용하는 것이 지역주의다. 천박한 전라도인과는 달리 경상도인은 이미 태생과 함께 우월함을 지닌다.

고종석은 이 땅에서 전라도인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기본적으로 고찰한 후 이와 함께 자신의 삶과, 다른 전라도인의 삶의 경험에서 그 흔적들을 하나하나 찾아낸다.

선거 때면 이 나라에서는 평소에는 그나마 잠잠하던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전라도와 경상도로 구분된 지역주의는 그들 각자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몰표를 행사함으로써 막을 내린다. 해가 갈수록 조금씩 나아지는 양상을 보이고는 있으나 아직 멀었다. 고종석은 '신분제로서의 지역주의'라는 첫 글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한국의 지역주의는 영남과 호남의 '대립'을 큰 틀로 삼는다. 여타 지역의 지역주의는 이 큰 틀에서 파생된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또는 맥락에 따라 영남은 '비호남'으로 확장될 수도 있고, 드물기는 하지만 호남이 '비영남'으로 확장될 수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종주의가 그렇듯, 영남 대 호남의 '대립'도 대칭적인 것은 아니다. 다시말해 두 지역 주민집단이 지닌 지역주의가 동일한 질의 것은 아니다.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여남의 지역주의는 패권적이고 적극적이고 공격적인데 비해 호남의 지역주의는 반작용적이고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다."

이어 그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그런데 인종주의라는 것이 우월하다고 인정되는 인종이 열등하다고 인정되는 인종에게 갖는 태도와 감정을 주로 가리킨다면, 지역주의도 우월하다고 인정되는 지역 주민집단이 열등하다고 인정되는 지역 주민집단에게 갖고 있는 태도와 감정을 주로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남에 대한 호남의 지역주의보다도 호남에 대한 영남의 지역주의가 더 전형적인 지역주의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국 사회의 지역주의에 대해 이보다 심정적으로 정확히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논리적인 명쾌함이 흐릿하기는 하지만 모든 것이 논리적 근거를 뒷받침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그의 해석은 저널리스트로써, 또 이 땅의 지식인으로써 오랜 세월 관찰해왔던 그의 시각을 통해 축적된 내공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 글에서 뿐만 아니라 나는 고종석의 글을 보면서 새롭게 깨닫는 바가 너무나도-'정말로'로 표현되기에는 '너무나'많기에 '너무나'로 표현했다- 많다. 그는 새로운 지식을 내게 전달해주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보다는 내가 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전달해준다. 그것은 아직 내공이 약해 볼 수 없는 무대 뒷면의 것들이다.

그는 스스로 '희미한 우파'라고 하고, '자유주의자'라고 하지만, 우파가 되기에는 그는 이미 태생적으로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미 서얼이기 때문이다. 자칭 우파라 하지만 사실상 그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로 분류되는 진중권이나 강준만과 오히려 닮은 꼴이다. 나는 스스로 '좌파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생각이나 행동은 오히려 우파라 자칭하는 그에게 손톱만큼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자신을 우파라 칭한다면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는 우파이기에는 너무나 왼쪽으로 걸어왔다.

고종석의 글은 물 흐르는 듯한 자유연상적 글쓰기의 형태를 지니고 있고, 문장과 단어가 깔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조심스럽고 약간은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김병익보다는 덜 방어적이지만, 거침없는 '전투적 글쓰기'-고종석은 이 단어가 껄끄럽다고 한다-를 하고 있는 진중권이나 강준만보다는 확실히 방어적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 그의 글은 김규항의 글에서 느껴지는 비장미는 아니지만 김규항만큼이나 현실에 천착되어있다. 경험적인 내용들을 바탕으로 두고 있다는 말이다. 나는 그의 글쓰기가 좋다. 김규항, 진중권, 강준만, 고종석 네 사람은 나를 항상 질책한다. 너는 왜 그것밖에 안되느냐고. 군 입대전까지 하던 글쟁이 짓을 지금은 안하고 있다. 삶이 너무 힘겹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런 핑계를 들어 나는 당분간 글쟁이 짓을 미루려고 한다. 기껏해야 읽은 책에 관해 끄적이는 정도가 다 일 터다. 하지만 내가 글쟁이를 그만둔 것은 아니다. 비록 못쓰는 글이지만 나는 적어도 잘쓰려고 노력은 하고 있기 때문이고, 나이 먹은 뒤에는 나만의 문체가 드러났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d*****t 2006.02.0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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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얼단상 - 한 전라도 사람의 세상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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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글에 관심이 많아 구해지면 곧장 읽었지만 이건 조금은 고민하게 됐다. 2002년에 출판됐고 그 당시에 관한 내용들이 대부분이라 읽을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도 읽을 만한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에 읽어봤고 지금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구석도 있었지만 아주 실망스럽진 않았다. 만약 그 시절에 읽었다면 좀 더 흥미로웠을 것 같다. 긴장감도 느껴졌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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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글에 관심이 많아 구해지면 곧장 읽었지만 이건 조금은 고민하게 됐다. 2002년에 출판됐고 그 당시에 관한 내용들이 대부분이라 읽을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도 읽을 만한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에 읽어봤고 지금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구석도 있었지만 아주 실망스럽진 않았다. 만약 그 시절에 읽었다면 좀 더 흥미로웠을 것 같다. 긴장감도 느껴졌을 것 같고. 이제야 읽게 되니 그때의 치열함이 지금은 얼마나 나아졌나? 라는 물음도 생기고.

 

시기적으로는 근 20년 전의 글이라 느슨한 기분으로 읽게 된다. 마치 과거를 회고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게다가 그때는 저자가 거론하는 문제의식에 대해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생소하게 느껴지게 된다. 시대에 대한 단상도 그렇지만 서평에 관해서도 다루고 있는 책 중 읽은 게 거의 없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게 될 때도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저자의 글쓰기에 관심이 커서인지 그럼에도 읽어 볼만 했다.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 읽어도 때늦었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은 적었다. 전라도에 대한 복잡한 심정-자의식을 다루는 1부는 여전히 쉽게 말할 수 없는 부분을 무척 자세히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때때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경우만 있을 뿐 언제라도 떠오를 수 있는 문제라 본다. 잊을만하면 꺼내지는 문제기도 하고. 그런 점에서 개인적인 경험과 입장 그리고 사회적인 문제점을 잘 포개고 있다. 불만스럽게 읽는다면 너무 예민하다고 말하거나 피해의식으로 가득하다는 말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진 않지만.

 

서얼단상에는 조선일보에 관한 비판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여러 방식으로 비판하고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지금도 나아진 점 없이 종합편성채널까지 만들어 좀 더 영역을 넓힌 상황이라 그때의 답답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어디서부터 바꿔나갈 수 있을까? 좋아진 부분은 생각나지 않고 나빠진 점만 떠올려진다. 아직 끝나지 않은 문제를 그때는 좀 더 치열하게 다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다른 질문을 해보게 된다. 그 치열함이 어떻게 식은 것일까? 그게 아니면 패배한 것일까 

 

그 외의 논의들은 앞서 말한 전라도, 조선일보와 함께 엮어서 다룰 때도 있지만 저자의 예민한 감각 속에서 들여다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생각해보면 2002년은 뭐든 시끄러웠고 이런 식의 글에 괜한 열중을 하던 시대라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가며 읽게 된다.

 

항상 비슷한 감수성과 감각을 보여준 저자의 글이지만 다른 저서들과 조금은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이번만큼 전라도라는 태생과 한계를 직접적으로 다룬 글을 모아둔 적도 없었던 것 같고 조선일보를 집중적으로 논한 적도 없었던 것 같아 꽤 중요한 책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y*******o 2020.04.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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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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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은 부드럽다. 그는 어떤 대상을 공격하는 글을 쓸 때에도 전혀 공격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그의 글은 날카롭지 않다. 한 마디 공격을 하고나면 다시 물러서고, 그것을 반복한다. 그만큼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공격 대상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가 이 책에서 김우창에 대해서 느끼는 것을 어쩌면 나는 고종석에게서 느끼는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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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은 부드럽다. 그는 어떤 대상을 공격하는 글을 쓸 때에도 전혀 공격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그의 글은 날카롭지 않다. 한 마디 공격을 하고나면 다시 물러서고, 그것을 반복한다. 그만큼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공격 대상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가 이 책에서 김우창에 대해서 느끼는 것을 어쩌면 나는 고종석에게서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옳은 것이냐 그른 것이냐 하는 문제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 그의 스타일이고 그의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그의 글이 다른 사람과 비슷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그의 글을 읽는 매력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글에서 서얼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의 소수들에 대한 관심과 함께 그 밖에 그가 하고 싶었던 다양한 얘기들을 함께 풀어놓고 있다. 이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나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좋은 책읽기였다.
s****w 2003.08.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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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에 꼭 맞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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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은 진중권의 글과 강준만의 글과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똑같다. 진중권의 예리하고 날카로운 공격적인 글쓰기도 아니고, 강준만의 논리적이고 독선적인 글쓰기도 아니다. 그는 서문에서 자신은 우파라고 밝힌다. 그리고 전라도 출신이라고 밝힌다. 주류와 다수에서 떨어져 나와 소수의 입장에서 비주류의 눈에서 보는 세상살이를 책 전체에 걸쳐 소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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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은 진중권의 글과 강준만의 글과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똑같다. 진중권의 예리하고 날카로운 공격적인 글쓰기도 아니고, 강준만의 논리적이고 독선적인 글쓰기도 아니다. 그는 서문에서 자신은 우파라고 밝힌다. 그리고 전라도 출신이라고 밝힌다. 주류와 다수에서 떨어져 나와 소수의 입장에서 비주류의 눈에서 보는 세상살이를 책 전체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 전라도에서 출생하기는 했지만 다른 지역에서 살았던 기간이 더 길었기 때문에 전라도 사투리가 더 어색한 저자이지만 전라도 출신이라는 피해의식, 자의식은 그의 글 곳곳에 베어있다. 이것이 서얼단상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의도된 것인지, 자연스러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러한 저자의 글이 내게 더욱 친근하고 살갑게 느껴졌다. 대부분의 좌파 지식인 저자들처럼 과격하고 논리적이고 급진적인 문장은 아니자만, 그가 하고 있는 말은 재미있고 다정하게 단어돠 문장에 실어내고 있다. 문장 곳곳에 괄호( )를 넣어 자신의 속생각을 드러낸 것은 참 유쾌하기까지 하다. 이것은 자신의 글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라는 것이 아님은 상식적인 일이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생각과 소신, 글에 대한 고민과 자기 성찰이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되리라! 전라도 출신이라서...우파의 입장이라서...글 품을 팔고 사는 글쟁이라서... 라고 이야기하는 저자가 살갑기만 하다.

l****h 2002.12.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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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사람의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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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라도 사람의 세상 읽기'라는 부제에 걸맞게 전라도사람이라는 자의식을 여과없이 방출한다. 내가 말한 '여과'의 대상은 서술내용의 분량이다. 400페이지가 넘는 비교적 두꺼운 책의 거의 3분의 1을 전라도에 대한 타지방인들의 의식, 전라도 사람으로서의 자기의식, 그리고 인종주의 등 여러 이념과 전라도에 대한 지역주의의 비교에 대한 서술로 채운다. 우~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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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라도 사람의 세상 읽기'라는 부제에 걸맞게 전라도사람이라는 자의식을 여과없이 방출한다.

내가 말한 '여과'의 대상은 서술내용의 분량이다.

400페이지가 넘는 비교적 두꺼운 책의 거의 3분의 1을 전라도에 대한 타지방인들의 의식, 전라도 사람으로서의 자기의식, 그리고 인종주의 등 여러 이념과 전라도에 대한 지역주의의 비교에 대한 서술로 채운다.

우~ 만만치 않다. 첨 50페이지 정도야 열심히 읽다가 나중에는 'ㅈ'자만 나와도 넘겨버렸다.

 

그러면 나머지 3분의 2은 어떠했느냐?

'한국어를 가장 잘 구사한다'라는 세간의 평가에 맞게 잘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죽죽 잘 읽혔다. 그가 잘 쓰기도 했고, 몇개의 서평을 빼놓고는 평이한 내용들이기도 했다.

 

스스로 '자유주의자'이자, '우파'라고 칭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념의 지향을 어디에다 두어야 되는지 살피고 또 살피는 듯하다.

스스로 '좌파'라고 얘기하는 이들의 글들을 열심히 찾아읽는 모습에서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혼란스러운 머리 속의 생각들이 글로 옮길 때서야 비로소 체계를 잡는다는 저자의 말이

책을 읽은 후 리뷰쓰는 동안 잠시 고민하는 나에게도 적용되는 듯 하다.

k*****k 2008.12.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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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의 주류는 수많은 비주류의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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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의 주류라고 하면 경상도에서 일류대를 나오고 고급 공무원이나 대기업의 주요한 자리를 거친 사람이라는 것이 정설아닌 정설이 되고 있다. 이는 인맥과 학맥, 그리고 지역주의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은 이 세가지 조건을 충족하고 있지 못함을 토로하고 있다.물론 저자는 남못지않게 공부도 많이 했지만 소위 서울대
"한 사회의 주류는 수많은 비주류의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내용보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의 주류라고 하면 경상도에서 일류대를 나오고 고급 공무원이나 대기업의 주요한 자리를 거친 사람이라는 것이 정설아닌 정설이 되고 있다. 이는 인맥과 학맥, 그리고 지역주의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은 이 세가지 조건을 충족하고 있지 못함을 토로하고 있다.물론 저자는 남못지않게 공부도 많이 했지만 소위 서울대라도 하는 초일류대를 나오지 못했고, 직장 또한 남들이 보면 부러워할만 하지만 스스로는 별볼일없다고 생각하는 글을 써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두가지 조건은 그것이 후천적이고 상대적이라는 점에서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선천적인 것이다. 자신이 태어난 곳이 경상도가 아닌 다른 지역, 특히 전라도라는 것은 저자에게는 일종의 숙명인 셈이다. 그 고향이라는 것 또한 단지 자신이 태어난 곳일뿐 대부분의 생할은 서울에서 했음에도 말이다. 저자는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조선시대의 서얼에 비유하고 있다. 물론 이런 비유는 조금은 과장된 점이 있지만, 저자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시키고 있다. 어찌보면 한 사회의 주류는 수많은 비주류의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주류가 비주류를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서얼단상]은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c*****0 2003.02.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