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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델의 집 사람들' 이 책은 대학 때 후배 놈이 사회복지학과를 다시 가고 싶다고 해서 편입을 해서 지금 4학년이 되었는데 담당교수님께서 선물로 이 책을 주셨다고 해서 어떤 책일까? 궁금했다가 감사하게 도서관에 있어서 읽어 보았다. 이 책은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일상 생활을 즐기는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줄거리나 내용 적으로느 예상을 어디정도 했었다. 이유는 물론 장애정도나 장애의 유형은 비록 다르지만, 같은 장애인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항상 공통적으로 소개가 되는 것이 바로 감동적이고, 안됐다는 동정의 눈길, 차별, 편견은 기본이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이 책도 공통점에서 거의 비슷한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 책에서 준 교훈은 다른 책과 비교해서 다른점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장애인이라는 것이 콤플렉스나 벽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개성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베델의 집에 사는 사람들의 행동은 차별이나 편견도 자유이고, 내가 어떤 장애인이다 라는 것에 얘기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불평 불만없이 행동을 생활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생각을 하면 그게 바로 스트레스가 되고, 부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변하여 본인만 손해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고, 장애인이라는 것을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로 인정하기 때문에 더 편한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이라는 것 지금은 너무 감사하다. 어디 갈때마다 물론 버스를 타면 돈을 똑같이 지불하지만, 지하철은 어디서나 무료이다. 이것 한 가지만 생각해도 그냥 편안하게 아무때나 지하철이 굴러가는 곳이면 돈이 없어도 갈 수 있고, 볼 수 있다는 것 단, 지켜야 될 것은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 나는 지금 이렇게 설명하고 싶다. 나는 장애인이다. 솔직히 말을 한다. 하지만, 장애가 있다는 것 다른 사람들이 얼굴이 어떻게 생고, 키가 어떠하고 하듯이 그냥 개성에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 장애때문에 사회에 진출하는데 어려운 것 자기의 노력에 대한 인정을 받게 되면 어느 누구도 함부로 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무쪼록 참 고마운 책을 읽었고, 이 사람들 앞에 서면 나 역시도 부끄러워 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앞으로는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도록 더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기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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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의 원인이 무엇이다 단정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인구의 10%는 장애인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을 정도로 장애는 드문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서 장애를 가진 이를 만나기란 쉽지가 않다. 대다수의 장애인들이 집 혹은 시설 등지에 생활의 반경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많은 이들이 장애를 극복해야 될 것마냥 인식한다. 특히 정신장애의 경우 혹독한(?) 약물 치료 과정을 통하여 치유될 수 있는 그리고 치유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그렇지만 고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애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워진 사람은 극히 드물다. 어쩌면 장애는 삶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베델의 집을 바라보며 나는 장애보다도 먼저 사람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간단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장애가 있건 없건 우리 모두는 소중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 사실을 망각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장애’가 들어간 부분에 다른 단어를 대입해 보아도 이는 마찬가지다. 돈이 있건 없건 우리 모두는 소중하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돈이 많은 사람들만이 대접 받는다. 혹은, 교육을 받았건 못 받았건 우리 모두는 소중하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만이 대접 받는다 등. 경쟁에서 승리를 거머쥔 소수의 사람들만이 인정받는 것은 세상의 법칙이다. 영어 몰입 교육, 과도한 입시 경쟁 등이 당연시 되는 사회에서 제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는 이는 드물다. 그렇기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베델의 집 사람들을 나는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곳이 처음부터 천국과도 같았던 것은 아니다. 장애 여부를 떠나서 사람이 여럿 모여 함께 생활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잡음을 감수해야만 한다. 게다가 베델의 집 사람들은 외부의 차가운 편견과도 싸워야 했다. 우리와 유사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일본 역시 장애에 대한 이해가 미약하긴 마찬가지였기에... 하지만 그들은 너무나도 편해 보였다. 차별하지 말라 구호를 외치기보단 오히려 그와 같은 차별을 전적으로 환영했다. 오해와 편견은 당연한 것, 그럴 수도 있는 것!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도 버거운 이들에게 사회라는 큰 틀은 다투어야 할 대상이 아닌 함께해야 할 존재였던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지역사회(우라카와)를 무대 삼아 살고 있었다. 충분한 수익이 보장되지 않기에 더 이상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영역을 그들은 파고 들었다. 책 배달 서비스, 여행 티켓 서비스 등 그들이 시작한 서비스는 인터넷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허나 모두가 기기에 몰두할 때 사람을 중심에 세운 그들의 시도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여기까지 말했으면 아마도 많은 이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다. 베델의 집에서는 전혀 다른(?) 질서가 통용되고 있었다. 모두가 서로를 경쟁상대로 여길 때 베델의 집 사람들은 서로의 일을 거들 ‘동지’로서 서로를 받아들였다. 단 한 푼의 수익이라도 더하려 드는 세상과 달리 이 곳에서는 이익이 나지 않는 것도 소중히 여겨졌다. 약함이 존중 받는 사회, 자신에게 허락된 만큼만 일하고, 그것이 당연시 되는 세상. 완벽 하려 드는 사람들이 나날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때 베델의 집 사람들은 장애를 벗삼아 살아가는 태도에 눈을 뜨고 있었다. 자신의 장애를 설명함으로써 스스로를 장애라는 굴레 안에 가두지 아니하는 사람들. 화내는 방식이 좋다는 칭찬도 통용되는 그와 같은 곳이 과연 우리나라에도 존재할 수 있을까 과거와 같이 시설에 장애인을 가두는 정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많은 전문가들은 장애인들을 지역사회에 통합(사회에 복귀)시키고자 분주히 노력 중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장애를 끌어안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장치 않았다. 어떠한 사회적 인프라도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의 시설들을 폐지하는 것은 장애인들을 방치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정책이 실질적인 효과로 이어지지 않고 뜬 구름 잡기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이 땅에도 베델의 집과 같은 공간이 존재할 수 있을지를 누가 묻는다면 난 쉬이 대답하지 못할 듯 싶다. 모르겠다. 저자가 너무도 가벼이 정신 장애를 기술했기에 이와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일지도… 하지만 이 책이 ‘정신 장애’라는 말에서 느껴지던 거리감, 단절을 극복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사회복귀, 통합 등이 구호로만 존재치 않는 사회가 되기 위해선 더딘 걸음일지라도 우리나라에도 베델의 집과 같은 시도가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 장애를 너무 크게 보아 그들이 가진 가능성마저도 잘라내어 버리는 지금의 세상이 변화하려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