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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도서관 책장에 꽂혀진 책을 무슨 내용인지도 전혀 모르고 읽게 되었다. 포르투갈에 있는 파티마라는 마을에서 1917년 3명의 양을 치는 어린아이들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셨고 그 당시 아이들에게 성모님과 천사가 나타나 하셨던 말씀의 내용을 루치아 수녀님께서 편지 형태로 쓰신 내용이다. 어쩌면 나는 종교가 있는것도 그렇다고 없는것도 아닌 이상한 상황이다. 2000년대 열심히 교회를 다닌적이 있으며 하느님은 늘 존재하시며 늘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고 기도를 통해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 있는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2007~2008년도 사이 우연한 기회에 수녀님을 알게 되어 새벽기도하러 성당을 몇번 가본적이 있으며 그 이후로도 우연히 성당앞을 지나면 늘 성모님 앞에 서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가끔 꿈에서라도 하느님을 뵐 수 있을까 상상 해본적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나의 유불리에 의한 선택적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는건 아닌지 반문하기도 한다. 언젠가는 나도 나의 진실한 믿음앞에 모든것을 내려놓는 날이 올 것을 믿고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러시아가 회개하고 평화가 올 것이라고 되어있는데 아직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여전히 러시아는 전쟁을 일으키며 독재국가로 건재하고 있지만 하느님께서 말씀 하셨던 러시아의 회개를 통해 전세계의 평화가 올 것을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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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봤던 <파티마의 기적> 영화가 떠올라 선택하게 된 파티마의 성모님 발현 주인공 3명중 한 분이신 루치아 수녀님의 회고록이다. 태양의 기적과 함께 3명의 아이들에게 주어진 함구령의 내용이 궁금도하지만 3명의 주인공들의 삶도 엿볼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의 궁금증은 잊혀지고 예수님과 성모님을 향한 그들의 순수하고 전심인 모습에 오늘의 신앙생활의 모습을 대조하게 한다. 환영과 인정이 대두되는 상황과 환경들 그리고 각자가 스스로 매순간 불쑥 대두시키는 욕망과 쉬운 표현들이 주인공들이 어린이들이였기에 대단하다기보다 힘겨운 시련속에서 굳건하고 순수한 믿음이 부각되어 다가온다. 지식과 개념으로서 알겠으나 때때로 모호하거나 애매했던 희생과 선행의 교리적 가르침을 받은것 같다. 외딴곳에서 그들이 늘 함께 했던 기도들을 나즈막히 따라하게 하는 용기를 이 시대에 살고 있는 나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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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 수녀님의 성모님 발현에 대한 회고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희생'과 '봉헌'에 대한 의미와 '기도'에 대해 묵상하도록 이끌어 주었던 것 같다. 한창 배고플 조그만 아이들이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본인들이 먹을 음식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는 장면과 어른들의 협박과 위협에도 두려움과 희생을 봉헌하는 모습들이 기억에 남는다. 이러한 장면들이 기억속에 남아 일할 때 겪는 갈등이나 스트레스, 성당에서 단체 활동안에서 드는 힘듬과 분심을 아이들이 보여준 모범을 실천하도록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때론 세상이 원망스럽고 지옥같이 느껴질 때가 있겠지만, 늘 함께하시는 주님과 성모님의 성심을 믿고 이 책속의 세 명의 아이들과 같은 티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살고자 노력한다면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의 빛 속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삶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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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
파티마
캐스리더스 4월의 책 중에 선택한 <파티마>.
루치아 수녀의 회고록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부분은 고통을 대하는 히야친타의 자세였다.
우물 가까이에는 히야친타의 어머니 소유의 포도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고모는 포도를 몇 송이 따서 우리에게 먹으라고 가져다주셨습니다. 그러나 히야친타는 죄인들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가슴에는 매일 치료를 해야만 하는 커다랗게 열린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것을 한마디의 불평이나 짜증 내는 기색도 없이 견뎌냈습니다. 그녀를 가장 괴롭힌 것은 그녀를 보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의 잦은 방문과 질문이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달아나고 숨는 방법으로 그들을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했다는 게 이 세 목동들에게는 시련의 시작이었다. 발현을 목격한 후에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다른 이들에게 발현이 거짓이라고 말할 것을 강요받기도 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는 병으로 앓다가 차례차례 세상을 떠났지만 그럼에도 이 모든 것들을 기쁘게, 희생으로 바쳤다는 점에서 숙연해졌다.
너희는 불쌍한 죄인들의 영혼이 가는 지옥을 보았다.(중략) 그러나 만약 사람들이 하느님께 죄를 범하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비오 11세 교황 때에 더욱 참혹한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밤이 원인 모를 빛으로 밝아지는 것을 보거든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세상의 죄에 대해 전쟁과 기근, 그리고 교회와 교황에 대한 박해로써 세상을 벌하시려는 큰 표지로 알아라.
파티마의 성모 발현 시기는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였다. 이 부분을 읽는데, 러시아는 그때도 지금도 전쟁중이구나 싶었다. 이 세 목동들이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서 기쁘게 희생과 기도를 바쳤듯이, 나도 기도와 희생을 바쳐야겠다고 다짐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위해서, 그리고 아직도 전쟁중인 우리나라를 위해서 말이다.
"기도해라. 많이 기도해라. 예수님과 성모님의 성심께서는 너희에게 자비를 베풀 계획을 갖고 계신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 끊임없이 기도와 희생을 바쳐라."
이 세 목동들이 바친 희생은 일상 속에서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내가 불편하고 힘든 것들을 참는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보내고자 하시는 모든 고통을 하느님을 거스른 죄에 대한 보상 행위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간청으로서 기꺼이 참아 받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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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여름 파주 파티마 평화의 성당에 다녀왔다 시골길을 들어가 만난 신비한 성당에서 세 목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기도했던 성당. 잊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목동들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내 기억으로는 수녀님이 된 루치아 성녀와 철부지같던 동생들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 이야기로 성모님이 아이들에게 나타나신것을 비밀로 해야했었다고 했는데 그게 왜일까 궁금했다. 가장 순수하고 낮은 곳에 있는 어린 목동들에게 나타나신 성모님은 "너희는 많은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이 너희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라고 하셨다. 실로 아이들은 어른들의 의심과 관심을 받아야했고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주님 곁으로 가고말았다. 아이들이 성모님을 만나고나서 그 말씀을 새기며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기도와 희생을 바치며 보냈을 하루하루가 너무 가슴아픈 은총이라 생각이 든다. 여섯 살에 첫영성체를 한 루치아 성녀 언니를 따라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느끼는 히야친타의 대화를 보며 먼서 첫영성체를 한 글라라 나와 비슷한 시기에 첫영성체 교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궁금한 것도 많았지만 하느님의 사랑을 믿어의심치않았던 그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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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니 수녀님께서 '어떤 생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저 큰 일을 하셨을까.' 라는 물음이 생겼다. 성모님을 만난다는 것은 그냥 큰 일이 아니다. 엄청 큰 일도 아니다. 정말, 비신자들이 봐도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로 인해 받게되는 세간의 관심, 또 당시 3명의 아이들은 보호감호 조치까지 받았다고 했으니. 내가 볼때는 고통의 시간이었을 텐데, 루치아 수녀님과 프란치스고, 히야친타는 어떻게 버텨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성모님을 뵙고 말씀을 들으면 나같아도 다 치유가 될 것 같지만. 사순을 이 책과 함께해서 다시 내 몸과 마음을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