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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이구아나를 찾습니다』는 제목만 봐서는 절대 내용을 예측할 수 없다. 이구아나에 관한 이야기인가 했는데 읽다 보니 아버지를 파는 내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를 팔려고 작정한게 아니라 우연히 아버지를 팔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주인공은 말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치과에서 치료를 받던 주인공은 우연이 자살하는 인부를 보고 아버지를 팔겠다는 결심을 한다. 팔려고 하는 아버지는 주인공을 낳아 준 아버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마침 40대 중반인 주인공은 전형적인 아버지의 조건을 두루 갖춘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흔히 사람들은 그와 같은 아버지를 기러기 아빠라고 부른다. 기러기 아빠는 돈이 많이 필요한데 안타깝게도 주인공은 얼마 전 직장에서 명예롭게 퇴직했다. 자살한 인부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언가 돈이 되는 일을 해야 하는데 딱히 이유는 없지만 주인공은 아버지를 팔기로 한다. 어쩌면 장사 밑천이 제일 안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팔면 된다고 쉽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운이 좋았는지 세상에는 꽤 아버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선생님의 호출에 대신 나가줄 아버지가 필요한 학생의 아버지, 아빠가 전세계를 돌아 다니며 놀이 기구를 만드는 기술자인 줄 아는 아빠 없는 아이의 아버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따뜻한 밥 한끼 대접하고 싶은 어느 여자의 아버지, 아버지의 부재를 셔츠에서 떨어진 단추 정도로 생각했던 청년의 아버지. 여기까지는 그래도 평범한 아버지다. (주인공도 이 정도 수준에서 장사를 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좀 더 다양한 모습의 아버지를 필요로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죽이고 싶었던 남자의 아버지를 대신 해서 고통을 받아 줄 아버지, 아버지 같은 애인을 갖고 싶은 여자의 애인 같은 아버지, 섹스에 자신 없는 남자의 아내를 대신 만족시켜야 하는 남편이자 아버지.
상도덕, 윤리 아니 자신의 양심만은 지키면서 장사를 하고 싶었던 주인공은 다양한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면서 서서히 정작 자기 자신을 잃어 간다. 밑천이 안드는 장사인 것 같았는데 남의 부족한 무언가를 채워준다는 건 자신의 희생이 없이는 안되는 일이었다. 세상에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로 정신과 의사, 전문 카운셀러, 무당 등이 있는데 그들과 달리 아버지라는 신분 말고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주인공으로서는 금방 밑천이 동나는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작 본인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남의 상처를 치료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아내는 비싼 국제 전화를 걸어 자기의 끼니 보다는 이구아나를 걱정하고, 본인은 남의 아버지가 되어 주면서 돈을 벌지만 자기 자식들에게는 그냥 돈이나 벌어 오는 남자에 불과한데 이 장사가 오래 갈 수는 없었다.
결국 집을 나간 (혹은 잃어 버린) 푸른 이구아나 처럼 만인의 아버지고자 했던 주인공은 미친 사람처럼 (혹은 미쳐서) 집을 나선다. 푸른 이구아나를 찾으려고, 그래야 아내에게 존재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끝까지 이 남자는 자기 자신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이미 다 팔아 버려서 남은 게 없었을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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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새책들이 빼곡하게 들어와있는 날이면 공연히 횡재한것 같은 기분을 만끽할수있어서 새책이 들어온날은 일부러라도 걸음을 하는편이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책을 험하게 보는 분들도 상당수 존재하는지라 시간이 지나면 군데군데 얼룩도 지고 담배냄새도 배는 바람에 보고싶은 책들도 손이 안가는 경우가 있다. 새책은 그런저런 상황에서 자유로울수 있어 더 좋기만하다. 조영아의 장편소설 [푸른이구아나를 찾습니다]는 읽다보니 예전에 읽었던 책인데 이전에 읽었을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중년남자의 외로움이 고스란히 손에 전해지는것처럼 여겨지는것이 이제는 정말 중년이라는 나이가 낯설지않게 되어버렸다.
새로 일을 시작한 관계로 며칠전에는 십몇년만에 서울이란곳에 발도장을 다 찍고 왔다. 머문것은 잠깐이었는데도 그 잠깐의 머무는 시간이 고역일만큼 바쁘고 정신없는 곳이 바로 서울이었다. 가는데 두시간 오는데 두시간 그곳에서 일을 보는데 여섯시간, 모두 합쳐 열시간을 꼬박 날려버리고 집으로 와서 컴퓨터앞에 앉아 잠깐 그날의 일을 체크하다가 나갔는데 이제 오십이 코앞인 우리집 남자 얼굴이 심상치않더니 입을 꾹다물고 그냥 들어가 자 버린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닫힌 방문을 바라보며 혼자서 구시렁대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나도 그날은 그냥 자고말았는데.. 다음날 이남자가 하는말이 참 에효...모두 다 제방으로 들어가서 자기일을 하고 있는데 혼자서 거실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있는 자기자신이 외롭고 슬펐다나... 나이가 드니 노여움도 많아지고 외로움도 많아지고 나이가 든다는게 참 서러운 일이다.
그런 나이의 남편인 주인공을 혼자 두고 승주의 아내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과감하게 한국이란 나라를 벗어난다. 승주의 곁에는 이구아나 한마리를 남겨두고... 컴퓨터만 열면 무엇이든 다 해결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것처럼 여겨진다. 램프의 요정인 지니를 움직이는것이 램프였다면 컴퓨터라는 도깨비방망이를 움직이는 것이 돈이라는것이 다를까..한달이고 두달이고 돈만 충분하다면 집밖으로 한걸음을 내딛지않고서도 생계를 해결할수있는 세상에서 김승주의 선택은 똑똑해보인다. 따로 자본을 들일것도 없이 사이트만 하나 개설해서 승주의 몸 혹은 시간을 팔면되는 일이었으니까...[아버지를 팝니다]라는...승주의 사이트를 보고 호기심에 들락거리며 세상이 말세라는등 이러고 저러고 악플을 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 아버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아버지가 없는 아이를 위해 아버지의 역할을 부탁한다거나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살리기위해 그 자리를 채워달라는 부탁에서 결혼식날 신부아버지의 대행, 그리고 좀 더 은밀한 요구까지 , 그렇게 승주는 아버지라는 자신을 팔아가며 아이들의 교육비용을 마련한다. 그러나 어쩌다 전화를 걸어오는 아내에게 우선순위는 승주가 아닌 이구아나인 라몬같다. 승주를 위해 라몬이 존재하는지 아니면 라몬을 위해 승주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회의까지 이는 승주지만 어느새 라몬을 상대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승주도 말이 고팠던 모양이다.
텅빈 집이 자라고 있는것처럼 느껴질만큼 승주의 외로움은 점점 더 커져만간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돌아와달라고 말을 할수도 없고 퇴직후에 자기를 팔면서 살고 있다고 말을 하지도 못하면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을뿐인 승주.. 정과장에게 연락이 오고 호기롭게 시작했던 치킨집은 어느새 이자를 잡아먹는 괴물로 변해버린 상황을 견디지못한 정과장은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리게된다. 그리고 라몬이 탈출을 했다. 아내에게 혹시나 라몬을 찾는 연락이 올까 걱정하는 마음이 드는 한편에 될대로되라하는 심정으로 있던 승주가 라몬을 찾아나선것은 무슨 의미였던걸까..새로운 자아를 찾기위한 첫걸음이었던걸까..
예전에는 아버지가 주인공인 글을 읽을때면 아버지가 생각나더니 요즘에는 아버지를 주제로 한 글을 읽을때면 남편의 상황과 대입해가며 읽게된다. 중년의 나이 오라는곳도 갈곳도 마땅치않은채 부담은 늘어만가고 가장이라는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지는 남편에게 집이란 공간은 가장 편한공간이어야 할텐데... 거실에서 오늘도 혼자 텔레비전을 지키는 남편에게 매실차라도 한잔 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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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이구아나를 찾습니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일까? 그렇다면, 이 소설이 '아버지'를 타겟으로 한 순간. 그래서, 난, 이 소설을 읽으며, 가끔 낄낄 거리긴 했지만, 아팠다.
주인공은 아직도 자아찾기를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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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한 뒤 멋있게 포장해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건내주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의 다양한 모습과 그들의 심층을 알게 해준 책. 아내와 자식을 해외로 보내고 기러기처럼 살아가는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투신자살하는 또 다른 누군가의 아버지를 우연히 보게 된 후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존재하고 있지 않은 아버지를 팔아서 장사를 해보기로 한다.
무수한 공급이 있지만 부족한, 많은 수요가 있지만 진정한 공급은 없는 상품. 아버지.
그 이름 석자에는 삶의 무게와 고통이 그대로 실려있다. 늦은 밤까지 TV축구중계를 보고, 하릴없이 신문을 들여다보는 이시대의 아버지들, 또 우리가 언젠가 되어야 할 아버지.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함께 감싸안으며 살아가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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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때에는 아버지에 대한 어떤 의미를 부여해보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정작 아버지의 직업이 어떤 것이냐에 하는 것은 학기초에 호구조사정도일뿐 내세울 것없는 그저 그런 평범한 직업이 아니었던 아버지의 직업은 그냥 회사원이었다. 주로 야간 업무를 하셨던 아버지. 지금은 은퇴하셨는데도 쉬면 안된다고 부지런히 일을 찾아서 하시느라 바쁘시다. 그런 아버지를 나는 입학을 앞둔 어느 겨울에 아르바이트로 야간공장에서 잠시 일했을때야 비로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푸른 이구아나를 찾습니다.(2008.10 한겨레)에서 나오는 아버지들은 하나같이 슬프다. 어느날 실직을 하고 치과에 갔다가 우연히 아버지를 팔아야겠다고 생각한 주인공, 인터넷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자 누리꾼들의 댓글이 올라 온다. 한편으로는 비웃음에 놀리는 이가 있는가하면 정말 아버지를 원하는 이들의 문의가 들어온다. 기러기 아빠, 외로움은 어느새 우리 사회의 대표가 되버린 문구다. 아버지도 덧붙이니 더없이 어울리는 쓸쓸한 정취가 되버린다. 처음 의뢰부터 심상치 않았다. 이상한 초대, 아버지의 학대를 겪은 어떤 예비 엄마의 의뢰는 왠지 소름이 돋게 한다. 맛있는 음식들이 결국 제사상이라니.. 또 한 의뢰인은 짬뽕을 권하는 사회에서는 어려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늘 짬뽕을 시켜주었던 아버지에 대한 복수 아닌 복수로 독방에 가둬두고 짬뽕을 먹어 달라고 강요하는 의뢰인은 영화 올드보이가 생각나게 했다. 아무도 관심가져 주지 않는 편의점을 선호하고 별난 의뢰인들을 만나 아버지를 빌려주고 정작 자신이 아버지라는 사실은 어느새 집을 나간 이구아나를 마주하고서야 생각이 난다. 진지한 모습의 아버지부터 단한번 필요한 아버지까지 정말 다양한 모습의 아버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아버지에게 문자를 넣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아버지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