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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 원문 : http://blog.naver.com/my_third/50044872587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 /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8.10. ∝26,11월 끝에서 12월 시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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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은 벌써 거의 어두워진 골목길을 올라갔다. 그는 외로웠고, 어른들의 삶을 이루는, 피와 벌거벗은 몸뚱이로 된 이야기들 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았다. 22쪽
음습하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소리는 들리지 않고 시선이 이어지는 곳마다 어른들의 못난 모습이 있다. 그 하나의 결정체인 전쟁도 있다. 어렵게 읽힐 거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 않다. 다른 매체로 보았던 장면들, 느꼈던 감정들이 이곳에서 함께 일어난다. 어두운 이야기, 내겐 별로이지만 밝은 무언가를 지켜내고 싶다면 오히려 어두운 것에서 빛을 키워내야 하기에.
인간은 어린 시절에 경험한 두려움을 일생 동안 간직하며 살아간다. 159쪽 우린 모두 비밀스러운 상처를 하나씩 가지고 있고 그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운다. 161쪽 책 속, 이야기 속의 글.「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은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방식이 내가 읽어 온 여느 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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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과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내게 특별히 담겼다. 이야기가 끝나고 이어진 '작가의 말'. 작가는 그 곳에서 자신의 글을, 하고 싶은 말을, 누구에게 비추어서가 아닌 자신 스스로 나에게 들려주었다.
이는,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뒤에 이런 문학이 있다. 그러나 젊은 시절 처음 읽는 책들은 모두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고 다른 시각에 대한, 혹은 이전에 가지고 있던 책(시각)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킨다. 내가 꼭 실천하고 싶었던 새로운 문학은 어린 시절 이후로 나를 매료했던 모든 문학적 우주를 되살려 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같은 무엇인가를 쓰는 동시에 스티븐슨의 「보물섬」같은 무엇인가도 쓰고 싶었다. 235쪽(작가의 말 중) 내가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나는 소설이 객관적이고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 않을 수록 더욱 더 내 소설이 되어 간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239쪽 삶의 어느 순간에 나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건 어떨까,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내게 소중한 도움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작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그것이 내게 좋은 양식이 되어서, 난 이탈로 칼비노의「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을 특별히 기억한다. 역시나, 소중하게 남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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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핀의 눈으로 보는 세상, 핀의 삐뚤어진 모습을 보며 핀이 현재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먼저 느끼게 되었다.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갖고 있는 아이가 아닌 추악한 어른들 사이에서 그들의 언어로 얘기 하고 표현하면서 성장하는 핀.. 핀은 누나와 빈민가에서 자라면서 누나의 나쁜 생활 및 주변 생활들과 함께 성장하게 된다. 그가 배우는 것은 매춘과 욕설 그리고 술 담배 등 나쁜 환경 속에서 자라게 된다. 또한 그는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어른인척 하며 그들의 언어로 함께 어울리길 원한다. 핀은 어른들과 어울리기 위해 어른들이 원하는 것을 하려고 하고 총 이야기를 하다가 누나를 찾아온 남자의 권총을 훔치게 되고 감방에 들어가게 된다. 감옥에서는 빨간늑대를 만나게 되어 우연한 기회에 감옥 탈출을 하게 되고 빨간늑대와 헤어지게 된 핀은 다른곳에 들어가서 생활하게 되는데, 외톨이 같은 핀의 모습을 보며, 핀이 그토록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억지스러운 핀의 모습이 안타깝게 보여졌다. 우울하게 보여지는 소설속 배경속에서 어린 핀이 살아남으려는 의지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 싶다. 핀은 거미집이 있는 그 장소를 희망 이라고 생각하고, 결국은 그곳에 간 핀의 모습이 외톨이를 벗어난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는 부분이었다. 성장소설이지만 약간은 어두우면서 모험적인 책인 것 같다. 고독한 핀이 성숙해 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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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다 읽은 후 그 뒤에 있는 작가의 서문을 보자 책 읽을 때 간직하고 있었던 이미지가 모두 작가의 말로 빛 바래졌다. 서문을 보기 전 몇 가지 노트 하려고 했던 사항만 이야기해보자면, 첫 째는 이탈로 칼비노의 책에는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많이 등장한다는 것. 이 책에서는 이 책의 분위기를 압축해주는 문장 하나가 유독 인상적이었다. 어른들도 어린아이들처럼 장난을 치지만 조금 더 심각하게 치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 두번 째는 중간에 등장한 킴의 생각이다. 킴은 누구를 대변한 걸까 궁금해 했는데 작가와 함께 유격대 생활을 하던 작가의 친구라고 한다. 난 완전히 속았다. 분명히 작가 자신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 소설이 자전적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 서문에서 말했듯이 성공적으로 자신을 속이는데 성공한 셈인가? 킴의 생각 중 흥미로웠던 부분은 어째서 오른팔 네 유격대원들이 투쟁을 하느냐 였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 재밌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다음 날이면 냉정하게 생각할 자신을 아는 킴이 있는 부분이 난 참 좋았다. 당시에 칼비노의 지인들은 이 부분을 삭제하라고 권고하였다고 하나 나는 이 부분이 있어서 좋다. 이 부분이 있기에 잠시동안 핀의 세계 속에서 나와 또 다른 현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작가의 목소리라 생각했는데 작가가 핀이었다니, 그 고백에 칼비노가 점점 더 좋아진다. 세 번째, 핀의 노래가 점점 커지면서 결국 불이 붙어버리는 오두막 장면. 그리고 가끔 일반적이지 않게 묘사를 하기 때문에 다시 읽어봐야 그 의미를 명확하게 캐치할 수 있는 장면들. 이런 장면들이 나올 때 마다 어쩔 수 없이 이 소설에 계속 빠지게 되는 것 같다. 마르케스의 세계와 비교하자면 칼비노는 사람을 웃음 짓게 만들고 따뜻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스캐일적으로는 좀 더 아담하지만 아기자기하고 영악하기까지 하며 그 안에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솔바람처럼 귓가로 들어오는 그런 분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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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환상문학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이탈로 칼비노의 작품을 처음만나는 나로서는 무척 기대되는 소설이었다. 환상문학이라기 보다는 환상적, 아니 정확히 말해 꿈같은 느낌을 주는 문체와 몽환적인 분위기가 염세적인 세계관과 어울려져 있는 작품이었다.
핀, 그는 엄마를 잃고, 배를 타는 아버지와는 엄마의 죽음이후 연락이 끊기면서, 누나와 단둘이 함께 살아간다. 누나는 매춘을 통해 핀을 돌보고 있으나, 핀은 이런 누나에게 맘을 붙이지 못한다. 시간은 2차 세계대전시기로, 독일군 점령하에 있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어린 핀은 자신의 아지트인 거미들이 집을 짓는 곳을 알려주거나, 도랑에서 막대기를 가지고 전쟁놀이를 할수 있는 친구를 찾고 있지만, 아이들은 핀을 좋아하지 않았다. 핀은 어른들이 친구였으나, 어른들 세계속으로 몸을 숨기는 것일뿐, 어른들과도 친구가 되지는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자주 가던 선술집에서 가프 단원들에게 총을 훔쳐오라는 협박을 받고, 누나를 자주 찾아오는 독일병사의 권총을 훔쳐나오지만, 어른들의 변덕스러움과, 이해할수 없는 태도에 권총을 거미들이 집을 짓는 굴속에 감추게 된다. 이 사건은 핀을 결국 감옥에 가게 하게 되고, 그곳에서 빨간늑대라는 소년을 만나 탈옥을 한다. 그렇게 빨간늑대를 따라 오른팔 부대 공산혁명당원이 되지만, 역시 이 세계도, 그가 살던 선술집의 세계와는 다르지 않았다. 그는 다시 어른들의 이해할수 없는 배신과 변덕에 좌절감을 맛보게 되고, 실망하게 된다. 결국에는 다시 처음 권총을 통해 누나곁을 떠났듯이, 다시 권총을 찾아 누나에게 돌아온다. 그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촌과의 재회를 통해 핀은 진정한 친구를 찾게 되면서 이 소설은 끝난다.
핀을 통해 본 인간들의 세상, 즉 어른들의 세상은 이해할수 없는 것 투성이며, 변덕스럽고, 끔찍하다 못해 우스꽝스럽다. 이 소설에서는 핀의 눈을 통해 전쟁속 지리멸멸한 모습들이 마치 그다지 고통스럽지도, 그다지 감정적이지도 않게 그려져 있어, 마치 그림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풍긴다. 핀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빈자리를 찾고 있었고, 그와 함께 해주고, 이해해줄 진정한 친구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눈을 통해 본 세상에는 진정한 친구는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진정한 친구는 매우 드물었다. 그저, 상황에 맞춰 스스로를 숨기고 살아가는 어른들만이 있었다.
나도 이제 핀의 눈에서는 어른이다. 나 역시 스스로 상황에 맞춰 숨어살고 있지나 않을까? 이 핀의 성장과 친구찾기를 통해 오래전 나의 고민들이 다시 꿈틀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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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 현대 문학의 거장 이탈로 칼비노의 성장소설, 신 사실주의의 대표작 등 책 표지에 적혀진 거창한 수식어에 끌렸다. 그러나 읽어내려가면서 '전쟁 소설이군.'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피비린내나야 마땅할 파시스트와 유격대 간의 긴장 상황은 주인공 핀의 시점으로 상당히 환상적으로 전개된다. '햇살이 골목 밑바닥까지 닿으려면, 새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는 아치 덕에 서로 떨어져 있는 차가운 벽들에 바짝 붙어서 똑바로 내려오지 않으면 안 된다'로시작하는 소설의 첫 대목은 시적이기조차 하다. 무심한 햇살이 비추고 있는 소설의 첫 무대는 핀과 그의 창녀 누나가 사는 빈민가이다. 핀은 아이들과 어른의 세계 어느 곳에도 편입되지 못하고 주변을 겉도는 아웃사이더이다. 그의 존재감을 인정받을 곳은 어디에도 없고, 거미집이 있는 오솔길로 표현되는 비밀세계 만이 그의 정신세계의 보루 역할을 한다. 또한 거미집은 핀과 단절된 세상과의 소통의 실마리라는 복선을 의미한다.
핀은 어른들의 장난으로 시작된 부추김으로 독일군의 권총을 훔친 후, 거미집 오솔길- 감옥 - 탈출 - 유격대로 들어가면서 소설은 전개되어간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본질은 드러나지 않은 채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행동으로 묘사되는 세계일 뿐이다. 소설 속 사건들은 뒷골목 아이들의 전쟁놀이처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의 약력을 보면, 2차 대전 시기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적이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은 핀의 시선을 빌린 작가의 경험이 분명히 녹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파베세의 평가처럼 이 소설의 동화적인 분위기는 전쟁의 경험을 객관적이면서 가볍게 다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가의 말에서 나타나듯이 칼비노는 영웅도, 계급의식도 전혀 없는 유격대원의 이야기를 쓰고자 했고, 그의 바람은 성공한 듯이 보여진다. 나는 직접적인 전쟁이나,대립된 이념을 겪지 못한 세대이지만, 전쟁이야기라면 신물나게 들어왔다. 그리고 사람의 세계를 갈라놓는 이념이란 것이 얼마나 엄숙한 것인지 경험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칼비노의 소설은 그런 면에서 참 독특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사촌, 빨간늑대, 오른팔, 왼손잡이 등...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등장 인물들은 이념보다 삶이라는 그들의 기본적인 본능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핀은 어른들의 세계를 부유하다가 어디에서도 정착하지 못한 채, 자신만의 성인 거미집 오솔길로 돌아온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 무대에 등장하는 사촌과의 만남에서 어떤 가능성을 암시한 채 이야기는 끝난다. 이 소설이 지닌 문학사적인 의미나, 비중을 내가 제대로 파악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작가는 시대적인 경험을 그 만의 언어로 대중들에게 전달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칼비노는 그러한 점에서 대단한 역량을 발휘했다고 여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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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모두 비밀스러운 상처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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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책 표지를 보았을때의 느낌은 불만이 가득한 남자아이가 삐딱하게 상대방을 째리고 있었다. 이 책속의 주인공인 핀이란 아이였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는것, 자신의 현재의 상황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 우리는 그렇게 무방비하게 세상과 첫 대면하게 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선장이였던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고 핀과 누나는 세상에 버려졌다. 2차 세계대전 독일 점령하의 이탈리아의 암울한 느낌을 표지에서 잘 표현하였다.
핀은 외톨이였다. 아이였지만, 그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으며, 선술집을 드나들며 어른행세를 해보지만 어른도 될 수 없었다. 자신을 무시하는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실컷 욕을 하고 으르렁 거리며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고 있었다. 누나는 매춘을 하고 자신은 세상을 향해 바락을 해보지만, 아무의미 없는 존재였다. 핀은 독일인의 권총을 훔치게 되면 자신의 모든것이 크게 달라질꺼라 생각한다. 이제 자신도 그들만의 무리에 들어갈 수 있다 생각한다. 핀이 독일인의 권총을 훔치고 그일로 인하여 독일인들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한다. 검은 여단이라는 단어가 만화속의 조직을 떠올리게 했다. 검은 여단의 실상은 사람을 색출하고 고문하고 죽이고 만화속의 조직처럼 서로의 의미는 달랐지만, 사람을 색출해서 죽이는것은 같다.
빨간 늑대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하고 핀은 길을 헤매다 덩치큰 남자를 만나고 그들의 무리인 오른팔네로 가게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가 평소에 불리는 이름이나, 집단명을 가지고 있지 않다. 동화속의 인물들처럼 가상인물같기도 하고 그들의 애칭이 존재의 무거움을 가볍게 만드는 그런 느낌이다. 무거운 소재속에서 어쩌면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핀이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빨리 읽어버린 책이였다. 마지막에 딱히 결말은 없었다.
총소리가 생각보다 무섭거나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핀이 표현하고 있는 상황은 흡사 전쟁놀이를 하고 있는것 같다. 그들의 생활은 힘들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비참한 상황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생활속에서 희망의 빛이 보였다. 핀은 사촌을 통해서 그토록 바랬던 친구를 갖게 되지 않았나 싶다.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주고, 귀 기울여 주며, 마음을 나눌수 있는 사람말이다. 투쟁을 통해서 우리가 얻고자 했던 자유는 많은 피를 뿌리고 얻을 수 있었다.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은 지루할 것 같았는데 의외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책이였다. 암울한 시대적 상황과 주인공의 암울함을 아이의 입장에서 우화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칫 심각한 상황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냈다.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 이게 바로 인간이 도달해야 할 궁극적 목표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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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모든 것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만들어 버린다. 지배자들에게 전쟁은 자신의 개인적인 야욕을 실현시켜 주는 도구임과 동시에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에 애국심과 투쟁심을 고취하기 위한 온갖 번지르르한 말들을 쏟아낸다. 그리고 전쟁을 이용하여 자신들에게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세력을 ‘악한 것’으로 규정하여 배제시키는 방법을 즐겨 사용한다. 그렇다면 일반 민중들에게 전쟁은 무엇일까? 이들에게 전쟁은 합목적적이지도 않으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어쩌면 그저 자기 나라에서 전쟁이 벌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총칼을 들고 직접, 또는 후방에서 지원하며 간접적으로 나서야 하며, 그 과정에서 재산과 삶의 터전은 물론이고 생명을 잃을 위험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사건이 건강이다. 따라서 오래전부터 지배자들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면’ 민중들은 자신의 최소한의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전쟁에 ‘끌려들어간다’ 이탈로 칼비노는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에서 이처럼 전쟁에 ‘끌려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으며, 전쟁은 이들이 지키고자 한 것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매춘부인 누나와 함께 살고 있던 주인공 ‘핀’은 누나를 찾아오는 독일군에게서 권총을 훔친다. 권총을 자신만의 장소인 ‘거미집’에 감춘 핀은 감옥에서 탈출하여 독일군에 저항하던 레지스탕스들의 유격대에 속하게 된다. 어린아이라는 이유로 독일군과의 격렬한 전투에서 한 발 물러서 있던 어느 날 핀은 유격대를 떠나 권총을 숨겨두었던 거미집으로 향한 오솔길로 돌아온다. 핀이 속했던 레지스탕스 유격대의 사람들은 ‘이름’으로 불리워지지 않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나오듯이 한 인물이 가지는 이름은 고유명사로서 그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사촌, 오른팔, 왼손잡이, 헌병, 공작, 후작, 남작, 펠레 등등 비아냥의 뉘앙스가 담긴 그들만의 불리워진다. 그들에게는 레지스탕스라는 정체성도 부족하고, 공산주의든 파시즘이든 사상적 기반도 없었다. 그들은 어중이떠중이들이었고, 오히려 전쟁에 방해만 되는 쓸모가 없는 낙오자들이다. 이들이 전쟁에 참여한 이유는 간단했다. 자기가 가진 최소한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 아이는 왜 싸우는 것일까? 자신이 더 이상 창녀의 동생이 되지 않기 위해 싸운다는 것을 모르고 있겠지. 그리고 ‘남부 출신’의 네 동서들은 가난한 이주자이며 이방인으로 비치는 ‘남부 출신’이 되지 않기 위해 싸운다. 그리고 저 헌병은 자기 동료들과 붙어 다니는 똘마니, 헌병이라는 것을 느끼지 않기 위해 싸운다. 그리고 사촌은, 사람들은 그가 자신을 배반한 여인에게 복수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우린 모두 비밀스러운 상처를 하나씩 가지고 있고 그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운다. (page 161) 나는 개인적으로 칼비노가 말한 ‘상처’는 ‘희망’과 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벗어나고자 하는 상처란 것은 곧 새로운 자신의 희망이 되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핀이 숨겨놓은 권총은 상처의 의미 뿐만 아니라 자신이 최소한으로 수호하고자 하는 마지막 희망의 근거를 의미하는 것이며, 허구일지도 모르게 환상적으로 그려진 ‘거미집’은 전쟁이란 피폐상황 속에서 자신의 마지막 가치를 간직하고 있는 마음의 한 구석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자기가 숨긴 권총을 생각하여 힘을 얻고, 자신만이 알고 있는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에서 자기 정당성을 찾는 핀의 모습에서 총칼을 들지 않았다 뿐이지 ‘생존전쟁’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현재의 전쟁에 끌려나온 우리의 모습도 투영되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 핀이 마음을 연 진실된 친구 사촌을 얻어서 그 마음의 마지막 부분을 함께 공유하며 캄캄한 밤을 밝히는 반딧불 속으로 걸어 들어갔듯이 지켜야 할 희망의 근거를 공유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전쟁’ 속에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