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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말들을 갈무리하며 - [뜻으로 읽는 한국어 사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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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말들을 갈무리하며<뜻으로 읽는 한국어 사전>을 읽고누구는 말을 '생각의 집'이라고 했지만 이런 경우 말은 사회와 문명의 저울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지나온 역사의 지층을 보여주는 슬픈 화석일 수도 있고 미래의 새 길을 알려주는 화살표일 수도 있다.(12쪽)  마구간에 갇히거나 줄에 묶인 말(馬)이 힘차게 내달리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자기중심의 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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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말들을 갈무리하며
<뜻으로 읽는 한국어 사전>을 읽고



누구는 말을 '생각의 집'이라고 했지만 이런 경우 말은 사회와 문명의 저울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지나온 역사의 지층을 보여주는 슬픈 화석일 수도 있고 미래의 새 길을 알려주는 화살표일 수도 있다.(12쪽)


  마구간에 갇히거나 줄에 묶인 말(馬)이 힘차게 내달리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으로 쌓아올린 내 집과 같은 아집(我執)에서 벗어난, 혹은 아득히 오랜 시간 속에서 깨어난 '말(言語)'이 말처럼 독자를 향해 달려온다. "'말'에게 '말'을 걸면 세상에 없던 '새 말'이 나온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기꺼운 마음으로 그(의) 말들을 마중한다. 말에서 내린 이는 바로 2022년에 이 세상과 작별한 이어령 선생이다. 한평생 각별한 애정과 예리한 감각으로 우리말에 천착함으로써 한국어뿐 아니라 한국 문화로까지 독특한 견해와 깊은 통찰을 보여준 그가 아니던가.
  이번에 만나본 <뜻으로 읽는 한국어 사전>은, 저자가 저잣거리를 비롯한 다양한 거리(街)에서 집어든 '거리의 말들'을 (재)해석하여 독자(讀者)이면서 독자(獨自)로 이뤄진 공동체의 삶과 역사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쓴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말 속의 토박이말, 한자어, 외래어 등 크게 세 마당에 들어앉아 말의 껍질을 벗기고 그 속뜻을 들여다보며 음미하는 시간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이를테면 '되다', '괜찮다'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더부살이'와 '살림살이'에서 삶의 방식을 다시금 생각해보고, '개혁(改革)'에서 가죽을 다듬는 철학과 '정치(政治)'에서 말이 물을 마시게 하는 힘이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으며, '지퍼(zipper)'와 '비즈니스(business)'는 각각 단추, 기업인(企業人)과 견주어 아래에서 위로의 민주주의와 멈춰 서서 생각하기의 가치를 새로이 알려준다.
  여러 말들 가운데 현재도 여전히 유효한 의미로 작용할 수 있는 세 가지 말을 골라서 말을 걸어본다. 먼저 '철'이다. 저자는 『모모(미카엘 엔데 지음)』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빛을 보고 소리를 들으려면 눈과 귀가 있어야 하듯 시간을 느끼려면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시간을 느끼는 마음’을 가졌다는 건 ‘철이 들었다’는 뜻으로, ‘철’은 꽃피는 동산이나 눈 내린 골짜기에만 있지 않고 사람의 생각과 마음속에도 존재한다. 제때 시간을 받아들여 철이 드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나이를 (헛)먹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시선을 개인에서 한 사회로 돌린 그는 미국을 이렇게 비평한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평등을 추구하고 또 이뤄낸 것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환경적 (민주주의) 면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냉장고에서 '철이 안 든 과실'을 꺼내는 '철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철 없는 문명국’이라고. 개인이든 사회든 시간을 보고 느끼는 마음을 되찾는 게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다음은 '좌우지간(左右之間)'으로 좌와 우의 사이를 가리킨다. 양극단에는 극좌와 극우가 있어서 그들에게 어중간한 곳에 자리한 회색분자 또는 기회주의자로 오인될 때도 있으나, 유교에서 강조하는 중용이라는 덕목에 가깝기도 하다. 저자는 '한국인과 호랑이와의 관계'만큼 이 말을 잘 설명해주는 게 없다고 말한다. 옛날 한 고을의 원님이 호랑이를 죽인 포수를 죄인과 영웅으로 대했던 경우를 보면, 예로부터 신성한 존재로 여겨온 호랑이를 죽인 죄는 처벌 받아 마땅하여 "좌우지간 저놈의 곤장을 치렸다"라고 말해놓고, 곧이어 죄 없는 사람들을 해친 호랑이를 잡은 공로를 인정하여 "좌우지간 저놈에게 상금을 내리렸다."라고 명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양자택일이나 흑백처럼 대립하는 상황을 마주할 때 둘 다 포용하거나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21세기가 될 것이라 그는 전망한다.
  마지막으로 '라이벌(rival)'은, 특히 예술계와 스포츠계에서 대중의 관심과 흥미를 이끄는 역할로서 '같은 냇물'을 뜻하는 라틴어 '리발(rival)'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같은 어원을 가진 영어 '리버(river)'와 연관지어 보자면, 물고기와 플랑크톤이 함께 사는 강물이 마르거나 오염되면 결국 모두가 죽게 되기 때문에 라이벌이 오로지 제거하는 데 목적이 있는 적(enemy)과 달리 공존공영의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다양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기반으로 서로 다른 의견과 관점을 주장하던 붕당정치 또한 의견의 차이나 당파가 아니라, 상대를 '맞수(라이벌)'가 아닌 정적(政敵)이나 논적(論敵), 즉 '원수'로 여겼던 게 문제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한 발 나아가 남북한의 위기 역시 서로를 원수가 아닌 맞수로 여기는 사고의 전환으로 다시 접근한다면 전화위복의 기회를 맞을 수도 있으리라 덧붙인다.
  이어령 선생이 주운 거리의 말들을 본 서평에 갈무리하다 문득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하나는, 앞서 살펴본 세 가지 말 모두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정치 행태를 진단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면, 좌우지간 여야가 서로를 적이 아닌 맞수로 대하고, 더 이상의 퇴행을 막고 다 같이 행진할 수 있는 시간을 절박한 마음으로 느끼고 깨달아 제대로 철이 든 정치인으로 거듭나길 바라본다. 다른 하나는 '거리의 말들'을 사용하는 사람들 간의 '거리'에 대해서도 짚어봐야 할 듯하다. 말(의 겉과 속에 담긴 뜻)을 주고받는 이들 사이는 언제든 멀고도 가까울 수 있기에 자신과 다른 거리감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헤아리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뜻으로 읽는 한국어 사전>을 드나들며 이 사람과 저 사람의 간격을 좁히고 우리 문화와 다른 문화를 이어주는 통로를 계속 찾아보는 시도가 그 가운데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달의 사락 k*****o 2025.02.26. 신고 공감 7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