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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현인들의 관독일기인 줄 알았더니 '이지누'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작가(여러 잡지나 신문의 사진편집위원, 편집인, 논설위원 등)의 관독일기이다. 하지만 그 역시 현인들의 '잠箴'과 '명銘'에서 깨달은 바 혹은 깨닫고자 하는 바가 커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시작하여 90일동안 이 관독일기를 써내려갔다. 내가 이 관독일기에 요샛말로 feel이 팍 꽂힌 이유는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때문이다. 내 짧은 지식에도 이덕무는 깊이 자리잡고 있었던 터, 그의 '잠'이 궁금하고, 깨닮음을 얻고 싶었다. 작가는 불교와 유교에 지식이 깊으며, 때문에 그가 접하는 잠명편은 우리나라 현인 뿐 아니라 중국의 현인들의 잠명편도 두루 실었다. 얼핏보면 참 딱딱한 것이다 생각 들 수도 있지만 내 흥미인지, 현대 작가의 음주이야기가 곳곳에 튀어나와 공감 또는 웃음짓게 하여서인지 배우며, 생각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내가 꼭 관독일기를 쓰지 않아도 90일동안 천천히 남의 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자아성찰이 될 것 같은 기분. 물론 내용은 어려운 편이 아니여서 (풀이가 되어 있어) 며칠에 완독할 수 있지만 나는 10일치씩 꼭 9일을 시간 맞춰 곱씹어 읽었다. 과거 수 십년 동안 흥분하고 생각하며 깨달은 현인들의 글귀가 하나하나씩 모두 가슴에 와닿았다. 하지만 작가도 언급했듯이 깨달은 후 그것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법. 정말 백번 되뇌여도 힘들 것 같다.
몇 번이고 생각, 생각하고 싶은 글귀들이다.
* 산사의 중이 맑은 달빛 탐내어 물과 함께 달까지 길었네 절에 다다르면 응당 알게 될 테지 항아리 비우면 달 또한 없어지는 것을 ----- 92page
* 시퍼렇게 날을 세운 칼날 위를 홀로 걷는 고독을 내 안에 지니지 않은 채 도대체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 107page
* 학문에 있어 가장 귀중한 것은 언행이 서로 맞고 유현이 일치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좀도둑이요, 말 잘하는 앵무새에 불과한 것이다. ----- 109page (학문보다는 '종교'로 바꾸고 싶은 문장이다.)
* 게으른 행동이 곧 스스로 목숨을 읽는 것 ----- 159page
* ..... 무엇이나 내가 동작하는 것 그는 하나하나 흉내를 낸다 다만 나는 말이 많은데 그림자는 이것만은 취하지 않는다 그림자는 이렇게 생각함이 아닐까 말은 몸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그림자가 나를 본받는 게 아니라 내가 그림자를 스승으로 삼는다 ... ----- 186page
* 나의 혼과 온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무엇, 그것을 마련해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닐까 싶어 잠을 쉬이 이루지 못했다. ----- 197p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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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누란 저자의 성함을 처음 접한 것은 장석주씨가《만보객 책을 거닐다》에서 호평한 한 권의 책에서였다.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 허물어져 사라진 절터를 뜻하는 한자어 〈폐사지〉를 키워드로,「비어있음의 충만을 누리다」를 부제로 이 책은 논의되어졌다. 당시 저자가 말한 「홀로 길에 나서면 누구나 스스로 자기를 질타하고 스스로 다독거릴 수 밖에 없다」는 말이 나에게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25곳의 사찰을 돌아보며 적멸의 미학을 논한 저자를 《관독일기觀讀日記》를 통해서야 비로소 만나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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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누를 표현하는 문구는 참 다양하다. 우리 문화를 섬세하게 톺아보는 관찰자이자 기록자, 지금은 하고 있지 않지만 10여년 동안 진행해 온 '우리땅밟기'는 그의 우리땅과 사람, 문화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대변하며, 프로페셔널 사진가이면서 불교신문 등의 편집자 그리고 다양한 신문과 잡지에 수준높은 우리문화 칼럼을 연재하는 칼럼리스트 등은 그가 그동안 살아온 내력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뭐라, 내한테서 찔레꽃 냄새가 난다꼬』라는 책은 이지누가 이 땅을 골골샅샅 다니면서 만난, 이 땅의 토박이들에 대한 기록인데, 이런 책을 내기 위해서는 관찰자의 입장이 아니라 산골에 사는 사람들과 인간적인 교류가 기반이 되어야 가능한 작업이다. 이지누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시골사람들이 그를 보자마자 담박에 친구가 되고 가끔씩 찾아오는 그를 기다릴만큼 친화력이 있고 그 사람들의 시각에서 얘기하는 인물이다.
또한, 내가 알고 있기로 이지누는 글을 참 잘쓰는 작가이다. 그의 문장력 속에는 방대한 유불선 철학과 자연에 대한 지식이 녹여져 있고 표현력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내가 개인적으로 글을 쓰거나 할때 항상 준거로 생각하고 인간적으로도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형암 이덕무의 ‘관독일기’라는 형식을 빌어 2002년 부터 매년 음력 9월 9일 중양절부터 시작하여 다음해 초까지 90일 동안 고전을 읽고 그 느낌을 매일 써 내려가는 일을 해왔는데, 2007년 주로 조선선비들이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하여 쓴 잠과 명에 관한 글을 읽고 쓴 잠명편을 책으로 엮어냈다.
이 책에 보면, "부박하기만 한 나의 글, 그러나 그것조차도 쉽게 써 내지 못하고 있으니 근본은 물론 재주조차 없는 것은 아닌지, 계곡의 글을 읽으면 읽을 수록 호된 꾸지람을 듣는것 같아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등의 그의 고백이 들어 있는데, 이지누조차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리고, 선인의 책을 읽고 반성하고 스스로 경계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매년 90일 동안이라 하지만 그의 노력에 경하할 일이다.
한동안 그의 책을 못봤는데, 이 책 내용으로 미루어 그가 많아 앓았다 하니, 진정으로 그가 건강하게 일어나서 많은 결과물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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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독일기>란 글자 그대로 독서일기이다. 저자가 2002년부터 해마다 음력 9월9일 중양절부터 시작하여 90일 동안 글이나 책을 읽고 쓴 일기이며, 이 책은 2007년 중양절부터 2008년 초까지의 일기로 옛 선조들이 스스로를 경계하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잠과 명에 관한 글을 읽고 쓴 일기이다. 하여 관독일기란 제목 밑에 잠명편이란 부제가 붙어있다.
<관독일기>를 읽으면서 내 마음 속에는 저자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이토록 자기 자신에게 냉정하고 혹독하게 채찍질을 가하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물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하여 검색을 하여 보니 과연 범상치 않은 분이였다. 한국의 고유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랄까? 우리의 국토, 우리의 철학 및 삶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 <이지누의 집 이야기> <잃어버린 풍경> 등의 많은 책을 썼으며, '우리땅 밟기'라는 문화답사 단체도 이끌고 계시고 여러 신문사에 논설이나 사설을 연재 하시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시란다.
<관독일기>를 슬 당시도 아마 불교신문에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불상에 대한 글을 쓰시던 때 같다. 일기에 나타난 일상은 새벽이나 아침 일찍 지방에 흩어져 있는 불상을 발품을 팔아 답사하고, 오후에 공부방으로 돌아와 자료를 정리하고 늦도록 책상에 앉아 옛 선비들의 '잠'과 '명'을 읽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나태함과 허물을 경계하며, 마음을 다잡고 항상 깨어 있으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90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바쁜 일과 중에도 하르의 마침은 장유, 김집, 김시습, 신흠, 이규보, 안정복, 정약용 등의 옛 선조들의 '잠'과 '명'을 읽고 되새기며 자신의 마음을 닦는 것이다. 이토록 고집스럽고 고독한 그의 수행은 그의 말처럼 불가의 안거와 같은 것인지 모른다.
껌냥이 되지 않는 실력으로 글을 읽느라 버둥거린 흔적이 난무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을 다시 대하는 것은 고문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 모습이 바로 나의 현재이니 어쩔 것인가. 뻔뻔스러움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내 본연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부처를 만날 때는 부처와 싸우고 글과 만나면 글과 싸우며 엄벙덤벙 헤쳐 나오는 투불동행鬪佛同行이며 鬪文同行의 서투른 몸짓이지만 나에게 '관독일기'란 스스로를 다잡고 내 본래의 면목을 낱낱이 보려고 애를 쓰는 불가佛家의 안거安居와도 같은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문득 내 나이를 헤아려 봤다. 이제 인생을 반을 넘게 살았지만 저자처럼 뒤돌아보거나 멈추는 법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온 삶이었다. 이제 나도 지금 이 자리에 멈추어 서서 스스로를 돌와봐야 할 시간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계기는 바로 이 책 <관독일기>이며 앞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항상 내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리라. 수시로 책을 펼치고 펼쳐진 페이지의 '잠'이나 '명'을 읽고 나를 돌아본다면 분명 나의 모습도 달라지리라. 정녕 아름다운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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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1일 일요일 어제 비로 추위가 심해지려나 했더니 예상한 것보다는 춥지 않다. 조금 쌀쌀할 뿐이다.
나도 따라 해 볼까?
잠[箴]이란 '훈계하는 뜻을 적은 글의 형식'이며, 명[銘]이란 '마음에 새기어 교훈으로 삼고자 하는 어구'를 뜻한다.
사진과 글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필자 이지누의 [관독일기]는 ‘마음을 다스리는 독서일기’다. '관독일기'라는 책 제목이나 글의 형식은 이지누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관독일기 觀讀日]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李德懋:1741~93)가 1763년 [중용]을 중심으로 자(子)·집(集)·시문(詩文) 등을 읽으면서 자신의 느낌을 기록한 일기체 형식의 글이다. 필자 이지누는 이덕무의 '관독일기를 읽으며 느낀 감흥과 부끄러움을 떨치지 못해 제목과 방식을 그대로 본떠' 이덕무가 그랬던 것처럼 '해마다 음력 9월 9일 중양절을 시작으로 90일 동안 날마다 읽고 쓰는 것으로 정하여 관독일기를 썼다.'고 한다.
이덕무의 관독일기는 [중용]을 읽으면서 자신의 느낌을 기록한 것인데 비해 이지누의 관독일기는 조선 선비들의 글을 읽고 그에 대해 쓴 글이다. 이지누의 관독일기에는 제 허물을 반성하고 결점을 보완하려 짓는 글인 ‘잠’과, 스스로를 반추하며 새기는 글인 ‘명’에 관한 90편의 글이 실려 있다.
'어찌 고독을 두려워하랴'라는 소제목으로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작가 윤대녕은 필자의 관독일기를 ‘마음을 차갑게 꿰뚫는 문장’이라고 평하고 있다. 필자 자신은 '나는 여전히 싸움꾼이다', '눈은 자도 마음은 자지마라'라는 문구를 들어 이 책이 자신을 담금질하는 깨지지 않는 거울임을 고백하고 있다.
일기[日記]란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이다. 이 책을 읽어보니 나 역시 [관독일기]를 흉내 내어 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이덕무처럼 [중용]을 읽거나, 또는 필자 이지누처럼 조선 선비의 글을 읽을 엄두는 못 내고 다만 그 형식만이라도 빌어보고자 한다. 해서 이 서평의 형식을 빌려보았다.
이지누의 관독일기는 - 일정 : 년, 월, 일, 요일 - 날씨 : 설명적 형식으로 풀어 씀. - 소제목 : 그날 그날 주제어를 제시. - 일기 : 그날그날 읽은 글에 대한 감흥과 평, 인용문 번역과 원문 수록 의 형식으로 씌어져 있다. 글에서 드러나는 필자의 한문투와 표현은 한문학에 문외한인 내게는 가늠키 어려운 질과 양이다. 하여 내게는 어려운 한문 명사와 표현들이 독서를 방해하기 일쑤였다. 다시말하자면 한문학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책의 표현법이 주는 감칠 맛을 충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나와 같이 한문학에 문외한인 어설픈 독자에게도 형식에 불과하더라도 이 책 따라하기 일기를 써보고자 하는 욕심을 내게하는 매력적인 책이다. 한문학에 익숙한 독자라면 누구라도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의 깊이가지도 따라하기에 독창성을 더하여 제2의, 제3의 관독일기가 씌여지리라.
이 책을 통해 나는 물론 내 아이들에게도 의미 있는 일기를 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독서일기, 인물기행일기, 사찰기행일기 등으로 주제일기를 계획하게 된 것이다. 일기를 쓰고 있는 독자에게 이 책은 좀더 성숙하고 만족스러운 일기 형식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며, 일기를 쓰고 있지 않은 독자에게는 일기를 써보아야겠다는 동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덧붙여 표지 장정의 오렌지 빛이 쌀쌀한 날씨에 포근함을 준다. 표지 글씨와 북디자인도 아름답고, 본문 글씨는 가독성이 좋다.
관독일기(잠명편) 호미 펴냄 이지누 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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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명(箴銘)이라 함은 삶의 처신과 지침이 되는 글]을 일컫는 말이다. 최근 '뭐라, 내한테서 찔레꽃 냄새가 난다꼬'의 저자 이지누가 관독일기-잠명편을 내놓았다. 관독일기란 글을 읽고 쓴 일기를 말한다. 저자 이지누는 옛 선비들의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글을 읽고 그에 대해 느낀 점을 고스란히 일기형식으로 남겨두었다. 저자는 2002년부터 매년 음력 9월 9일(제비가 강남간다는날)인 중양절부터 약 90여일 동안 책을 써 왔다고 한다.
이 책은 옛 선비들의 자신을 경계하는 처신에 대한 글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형식의 일기이다. 어찌보면 요즘이 이 책을 읽기에 딱 좋은 계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책을 읽다보면 옛 선비들의 성품이나 일거수 일투족이 손에 잡히는 듯도 하고 그들의 혼적을 통해 마음을 다시 추스리게 만들기도 한다. 게다가 이지누라는 걸죽한 입답의 저자를 통해 재조명되어 그 느낌이 사뭇 다르게 와 닿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이런류의 책을 좋아했었지만 그다지 많이 책을 접하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지나온 길을 되집어 볼 수 있는 관독일기를 읽고나니 왠지 나도 한번 일기를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봐야 작심삼일이 될 것이 뻔한 노릇이지만..
이지누의 관독일기를 읽다보면 마치 고금(古今)의 글을 통해 지금 내자신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지금 나의 삶이 올은 것인지 그 삶에 대해 생활에 대해 제대로 처신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이제 2008년도 40여일도 채 못남았다. 이쯤에서 지나온 날들과 앞으로의 날들을 되집어 보고 갈피를 잡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듯하여 머뭇거리면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게으르지 않으려면 부지런해라 中 (p.103)
학문을 하는 데는 모름지기 부지런해야 하고, 또 반드시 외어야 하며, 슬쩍 지나쳐 버려서는 안 된다. 읽으며 생각하고 생각하며 짓곤 하뇌 모두 부지런히 해야 하며 또 그 중에 한 가지도 폐해서는 안 된다. (고봉(高峯) 기대승(1527-1572)의 아버지가 고봉에게 남긴말)
부지런하고 읽은 글은 반드시 외어야 하며 사물이나 글을 깊이 들여다보며, 읽으며 생각하고 생각하며 글을 쓰고 이 모두 부지런해 해아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일까. 그것은 게으름에 대한 경계이다. 기진이 말한 것을 모두 제대로 잘하려면 부지런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위의 짧은 글에서 부지런할 근(勤)을 두 번이나 반복한것이다. 게으름이라는 것으 ㄴ공부뿐 아니라 삶에서 만병의 근원이다.(이지누의 고봉의 글을 보고 쓴 관독일기中(p. 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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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는 목적을 굳이 꼽으라면, 자신의 허물을 수습하고 걷어 내려는 애씀이 그 방편으로 쓰이는 것처럼, 자신의 허물을 깊이 들여다보는 성찰이야 말로 일기를 공들여 쓰는 목적의 지향점이다. 또한, 홀로 서기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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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장에서 읽었던 책이다. 하루종일 내렸던 눈은 저녁무렵 그치고, 그 날 산의 밤하늘에는 은하수가 흘렀다.
... ... ... ... ... ...
이 책을 읽는 동안, 가끔 밖에 나와 은하수에 눈도 담가보고 지나가는 바람에 손도 뻗어보며 이 책속에 흘러가는 작가의 마음을 훔쳐보려했다. 타인의 일기를 두근거리는 맘으로 훔쳐보다 알게되었다.
이 산에 난 왜 왔던 것인지, 산에게 무엇을 묻고 싶어었던 것인지.... 이 책을 통해서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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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창시절 책을 읽고 독후감상문을 쓴 기억이 있을 것이다. 방학때만 되면 책을 몇 권 읽고 그 책에 대한 감상문을 작성해서 제출하라는 과제물을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그때는 숙제로 나온 것이어서 기계적으로 했다면, 지금은 내가 읽은 책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고 싶은 생각에서 감상문을 쓰고 있으니 조금은 아이러니하다. 이 책도 지은이가 책을 읽고 그에 대해 쓴 일기다. 지은이는 관독일기라는 형식은 조선 후기의 뛰어난 문장가인 ‘이덕무’로부터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이덕무가 스물네 살 되던 해인 1764년 섣달 그믐날에 쓴 ‘갑신 제석기’에서 그 해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에 시작하여 11월 30일까지 날마다 보고 읽은 것을 쓴 것에 반하여(이덕무가 쓴 글에는 책을 읽고 난 느낌뿐만 아니라, 그 날의 날씨와 사소한 일상까지도 기록해 놓고 있었다고 한다), 지은이도 같은 형식으로 2002년부터 해마다 음력 9월 9일 중양절부터 시작하여 다음해 초까지 90일 동안 독서일기를 썼다고 하는데, 이 책에 실린 글은 2007년 중양절부터 쓴 일기라고 한다. 주로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쓴 잠(箴)과 명(銘)에 관한 글을 읽고 쓴 글이다. 이규보, 안정복, 장유, 신흠, 허균 등 당대 최고의 선비들이 쓴 글이 소개되어 있다. 잠(箴)은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예방하고 반성하며 결점을 보완하려고 짓는 글이고, 명(銘)은 자신의 곁에 두고 있는 물건들을 면밀히 살펴 그 이름과 용처를 정확히 이해한 뒤에 그 기물에 스스로를 반추하여 새기는 글이라고 하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지은이의 생활을 반성하고 새로운 마음을 다지는 글로 채워져 있다. 날씨부터 시작해서 그 날 있었던 일을 언급하면서 그와 관련된 옛 선인들의 글을 읽으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일기는 끝을 맺고 있다. 일기라는 차원을 넘어서 좀처럼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옛 사상가와 선비들의 높은 생각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글이다. 지은이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음며 자신의 생활을 돌이켜 보고 있다. 특히, 건강과 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지은이는 건강을 크게 한 번 해치고 나서 자신을 새롭게 되돌아보게 된 것 같다. 앞만 바라보고 사는 생활에서 조금 떨어져나와 자신을 돌아보게 된 것 같다. 관독일기에 나오는 책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아니어서 지은이처럼 할 수는 없을 것같다. 하지만 어릴 때 어쩔 수 없이 하던 독서감상문을 이제는 내가 필요로해서 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만큼 나도 책을 통해 뭔가를 얻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는 충동을 느끼는 것 같다. 이 생각을 끝까지 가지고 갈 수 있었으면 한다.
“눈은 자도 마음은 자지 마라 宜睡眼勿睡心(허균의 睡箴)(본서 제100쪽 참조)” 라는 이 책의 부제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아무 생각없이 흘려보내는 하루하루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사회생활이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정작 나 자신의 모습은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뒤늦게 깨달은 것은 인생이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야 하는 것보다 나 스스로 이루어야 하는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냉철한 눈으로 바라보면 인생이란 어차피 홀로 가는 길이다. 그 지독한 외로움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뒤죽박죽으로 뒤엉켜 버리고 말지 싶다. 비록 고독할지라도 홀로 이루어야 할 것들을 참구하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은 절로 진정한 벗이 될 것이다(본서 제107쪽 참조).”라고 한 지은이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며 나만의 관독일기를 써내려가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