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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석유위기에 대한 책이 세 권이 출판되었다. 이것은 석유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질 뿐만 아니라, 그 주장이 실제 현재로 다가오고 있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 책을 펴낸 녹색평론사란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이 책은 석유위기와 그 대처방안을 생태주의적인 관점에서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석유위기에 대한 주장뿐만 아니라, 지금 주목받고 있는 대안들(천연가스, 원자력)의 한계를 생태적인 관점, 절차상의 비민주적인 요소들을 들어 비판하고 있다. 또한, 현재의 에너지수요증가추세로는 어떤 에너지도 대안이 될수 없다며, 개개인의 에너지 절제를 주장한다. 따라서, 가장 재생가능하며 현실적인 방법으로 현재 전력생산에서 재생가능에너지(주로 태양열, 풍력)의 비율을 높이고 전선망에 대한 지자체중심의 관리를 통해 에너지 위기를 해결하자고 주장한다.
그 밖에, 발전소민영화사태, 핵발전소관련 지역주민의 운동에 대한 문제점 및 센세이션을 일으킨 비욘 롬보그의 '회의적 환경주의자'에 대한 지적도 인상깊었다. 추가로, 녹색평론사에서 나오는 300쪽 가까이 되는 책들은 종이덕에 매우 가벼워서, 들고 읽기에 편했다. [인상깊은구절] 핵발전 반대운동, 에너지 대안운동, 생태주의적인 접근은 모두 반생명적인 핵발전을 반대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지만, 행동의 양태에서는 커다란 차이를 나타낸다. 이들의 행동 특색은 각각 격렬한 투쟁, 대안을 위한 선전과 실천, 생활방식의 조용한 변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격렬성으로부터 나오는 에너지는 금방 소진될 수 있고, 대안의 모색은 기술주의와 사업위주로 나아갈수 있고, 생태주의는 현안에 대한 분명한 관심과 입장표명없이 침묵만 할 때 퇴행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핵발전의 반생명성을 극복하는 데는 이 세가지 행동 양태의 협력과 긴장의 관계가 필수적일 것이다. 사소한 일들에서는 희박한 성공의 기회를 얻기 위해 그 많은 실수가 용납될 수 있지만, 인간의 사업 전체의 뿌리에 연관된 돌이킬 수 없는 대규모의 중요한 일들에서는 본래 어떤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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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100분토론에 이필렬 교수가 나와서 말하는 것을 본 것이 생각난다. 다른 토론자들이 흥분해서 횡설수설할 때, 이필렬 교수 혼자 침착하고 정확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을 보고 정말 멋진 분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도 현재의 에너지 위기에 대해서 군더더기 없이 명쾌하게 진단하고 있다. 녹색평론사에서 만든 만큼 책도 재생지로 예쁘게 만들었다.
작년에 나온 책인데도 불구하고 현재 석유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부시와 그의 부하들의 음모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전쟁이나, 부안의 핵처리 시설, 북한 핵문제 등, 사실 현재 일어나는 큰 문제들은 모두 환경의 문제이다. 현재와 같은 에너지 낭비로는 지구는 감당하지 못 할 것이다. 저자는 화석연료와 핵발전에 기반한 에너지 시스템을 재생가능 에너지에 바탕을 둔 시스템으로 바꾸자고 말하고 있다.
얼마전에 읽은 제레미 리프킨의 수소혁명와도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 있어서 상당히 흥미로운데, <수소혁명>에서 리프킨의 주장은 이렇다.
[수소는 우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원소 가운데 가장 흔하기 때문에 ‘영구 연료’가 될 수 있다. 또한 수소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공해 물질도 배출하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 및 일본의 유수 자동차업체들은 수소 에너지 차량의 상용화를 확신하고 있고, 각국의 정부들도 수소 에너지 개발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2002.10.16)는 EU의 에너지 프로젝트와 석유 에너지의 대안이 수소밖에 없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
그러나 이 책에서 이필렬교수는 수소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수소는 온실효과를 유발하기 때문에 기후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태양에너지나 풍력에너지의 대규모 이용또한 대량생산과 소비를 존속시키는 것으로써 애초의 의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인간 생활양식의 변화와 산업체제의 변화로 절대적인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는데, 이상적인 해결책으로 실현가능성이 있을까하는 의문도 들지만,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인상깊은구절] 당면한 에너지 위기의 해결은 재생가능 에너지를 크게 확대해 나가면서, 한편으로는 그것이 분산적, 민주적인 형태의 시스템 속에서 기능할 수 있도록 우리의 생활양식을 변화시키는 이중의 방향에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수소혁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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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여신 아테나의 이륜차의 불을 자기 횃대에 옮겨 붙여 가지고 내려와 이를 인간에게 주었다. 이에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코커셔스 산중의 암록에 결박하여 낮이면 독수리에게 그의 내장을 파먹힘 당하고 밤이면 또 아무는 영겁의 형벌을 주었다.
우리는 여기서 제우스신의 프로메테우스에게 가한 형벌에서, 불이 의미하는 에너지의 양면성을 신화적인 알레고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인간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에너지의 사용이 어찌하여 신의 노여움을 샀을까? 그것은 에너지에 대한 인간 종속을 의미한다고 파악할 수는 없는 것일까?
흔히 간과되고 있지만, 인류역사는 에너지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형태에 따라 사회의 구조는 규정지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용 에너지 패러다임이 사회의 구조를 결정짓는다. 불의 사용으로 인간은 처음으로 인간 생활에 에너지 자원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 사용할 수 있었다.
유사 이래로 18세기 까지 이러한 에너지원의 대부분을 매우 단순한 구조의 탄소화합물인 나무에서 얻었다. 또한 이와 동시에 인류는 농경, 관개, 탈곡, 제분, 물자의 운반 등을 위하여 인력 외에 소나 말 등의 축력을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풍력, 수력 등 자연 에너지도 이용하였다. 이러한 낮은 준위의 에너지를 중심으로 구축된 사회는 “호이징가”가 [중세의 가을]에서 이야기하듯이 변화가 없는 정적의 사회였고 진화론적 개념을 빌려서 이야기한다면 “진보”가 더딘 사회였다.
그러나 나무를 기본 자원으로 이용함에 따라 이미 17세기부터 인구밀집 지역인 유럽의 남부에서는 원시림 자체가 사라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유럽사회는 새로운 에너지원인 석탄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나무나 미생물과 같은, 한때는 생물체였던 유기물이 농축된 탄소화합물로 정의 되는 화석에너지가 에너지원으로 본격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18세기 후반 증기기관의 발명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것은 1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대량의 석탄을 생산. 소비하게 되었다. 석탄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자 가격 인하로 신탄 등이 석탄으로 대체되어 당시 에너지원의 주역을 맡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지역에서 대규모 유정이 속속 발견되었다. 지상의 파이프라인이나 해상의 대형 탱커에 통한 수송비 절감과 에너지의 형태가 액상이기 때문에 편리성이 추가되어 점차 석탄에서 석유로 에너지원이 대체되었다. 사용하기 쉽고 저렴한 가격의 석유가 대량 공급됨으로써 사업 구조와 큰 변화를 가져왔다.
문제는 이러한 석유에너지는 무한하지 않다는 것이다. 1956년 미국의 쉘 연구소에서 일하던 지질학자 허버트는 다년간 미국 내 여러 유전의 산유 량의 변화 과정을 추적하고 추정 매장량을 분석한 이후에, 미국 산유 량이 1970년 초에 최대 값에 도달 한 후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시 말해 산유량이 종모양 곡선으로 증가하다가 정점에 도달한 후 줄어든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실제 1970년 최대값에 도달했던 미국의 산유량은 1971년부터 지금 계속 줄어들고 있다.
허버트의 연구 결과에 영향을 받은 콜린 캠벨에 따르면 새로운 석유의 발견양은 이미 1960년대에 최대치에 도달했고, 이때 해마다 발견되는 석유의 양은 연간 40억 기가 베럴이었지만, 현재는 연간 6억 기가 배럴에 지나지 않는다. 해가 갈수록 발견되는 석유의 양은 줄지만, 소비되는 석유의 양은 늘어왔다. 이미 지난 1980년대부터 석유의 발견량은 소비량보다 적은 석유 적자 시대를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금 새로운 수입원이 없는 채로 과거에 벌어놓을 것을 열심히 까먹고 있는 중이다.
캠벨에 의하면 이미 2001년에 누적 석유 생산량은 873억 기가 베럴이 되어 이미 총매장량의 절반 이상이 사라졌고, 최대값인 2100억을 가정한다고 해도 2008년 이후에는 석유 생산량이 감소하는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현재 하루 석유 소비량은 하루 7500만 베럴이고, 연간 27억 기가 베럴에 달한다. 석유 소비량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할 경우에 남아있는 석유는 앞으로 40-50년간 사용할 수 있는 산술적 결론이 이른다. 석유 생산의 현실적 모습을 보건데 앞으로 40-50년간 석유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은 크게 잘 못된 것이다.
하나의 유정에서 석유 생산을 처음 시작할 때는 땅 속의 압력이 크기 때문에 저절로 석유가 솟구쳐 오르지만, 어느 한계를 지나면 압력이 줄어들고 석유의 점성도 높아져 석유가 올라오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해 유정에서 석유를 채굴함은 쌀독에서 쌀을 끄집어낸다는 것과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것이며, 필연적으로 석유 생산의 총량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석유자원의 한계성이 의미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1973년과 1979년의 제 1, 2차 요일 쇼크는 인류문명이 석유라는 에너지 자원에 얼마나 크게 종속되어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 이전의 20 세기에 일어난 1,2차 세계 대전도 석유는 사실상 전쟁의 향방을 결정 짓고 말았다.
미국의 아프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침공 역시, 세계의 오일 탱크인 중동지역에 대한 미국 패권의 확립에 의도를 두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에너지 환경과 전혀 무관하게 보이는 국제 정세도 에너지 자원에 대한 헤게모니 경쟁의 형태로 해석가능하며, 궁극적으로 화석 에너지의 불균일한 지역적 분포 때문에, 세계평화는 화석에너지에 대한 종속을 벗어나지 않는 한 해결이 요원하다는 것이다.
에너지의 형태가 그 사회구조를 결정짓는다는 명제를 참으로 인정한다면, 석유 에너지의 고갈은 현대 문명의 위기를 뜻한다. 화석에너지의 고갈에 따른 현대 사회에 대한 경고의 본바탕은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이용할 수 있는 자연 자원, 그러니까 에너지원이 무한정하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통계적 수치로 증명하였듯이 우리가 갖고 있는 화석 에너지와 자연 자원은 언젠가는 고갈된다. [인상깊은구절] 석유시대는 필연적으로 종말을 맞게 되어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으려 한다. 석유 자동차를 타고, 석유 난방을 하고, 석유 전기를 쓰는 이 생활을 포기하고 싶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생활이 앞으로 10년이나 20년간은 그럭저럭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를 염려하지 않는다면 이 기간 동안은 지금까지와 같이 편안히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석유와 밀착된 현재의 생활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금까지도 잘 되어왔는데 그때 가서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석유 부족으로 혼란이 몰아닥치는 바로 그 시점에 어떻게든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게 되리라는 생각은 되는 대로 삶을 꾸려가겠다는 허무주의적인 태도와 다를 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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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회 교수의 버금가는 훈남인 이필렬 교수의 책. 읽은지 하도 오래되어서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일본 원전이 붕괴되는 걸 보니, 석유 자원 고갈의 대안으로 원자력 에너지에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증명되고 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석유 에너지에 과도하게 기대고 있는 현 인류에 대한 비판과 태양력, 풍력, 수력 등과 같은 대체 에너지 육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체 에너지 기술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완성되어 있다고 들었다. 문제는 석유와 원자력 에너지 개발 투자가 아닌, 대체 에너지 육성에 정부의 정책과 사회적 자본이 투여되어야 함. 제4부, 원자력 에너지의 폐해를 다룬 목록을 덧붙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