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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 프랑스, [펭귄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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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 프랑스의 [펭귄의 섬]은 금방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책이지만, 그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이만저만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그냥 단순히 말해도 한 국가의 역사를 담고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보통 무게가 아닌데, 인류가 처한 디스토피아와 그 속에서 지식인의 역할 등을 담은 주제의 무게가 더해져 있다. 경건한 마엘 신부는 어느 날 떠내려온 여물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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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 프랑스의 [펭귄의 섬]은 금방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책이지만,

그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이만저만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그냥 단순히 말해도 한 국가의 역사를 담고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보통 무게가 아닌데,

인류가 처한 디스토피아와 그 속에서 지식인의 역할 등을 담은 주제의 무게가 더해져 있다.


경건한 마엘 신부는 어느 날 떠내려온 여물통을 타고 전도를 하던 중

북극까지 떠내려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펭귄들을 만난 마엘 신부는 이들을 원주민으로 착각하고 세례를 준다.

동물이 세례를 받게 된 전대미문의 사건.

하느님은 결국 펭귄들에게 인간의 형상으로의 변화를 결정한다.

이제 펭귄의 역사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전쟁과 다툼이 난무하고, 권력관계가 성립하며, 신을 믿기도 하고 신을 이용하기도 하는 것으로 흘러간다.


디스토피아(Dystopia).

이 말은 ‘가상사회’라는 점에서 유토피아와 같지만, 그 성격은 전체주의적인 감시사회, big brother에 의한 통제사회 또는 인류의 멸망 이후 사회 등 매우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아나톨 프랑스의 [펭귄의 섬]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1921년은 매우 어수선한 시기였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무한한 진보에의 믿음은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산산조각났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여 찬란했던 유럽의 문명사회를 초토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대량학살하는 모습은 ‘동물보다 못한’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었고,

인간 문명의 총아였던 과학은 거꾸로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아 가는 일에 복무하게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커져갔으며, 계급투쟁은 전쟁을 거치면서 더욱 격렬해졌다.

1920년대는 유럽의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던 유토피아적 환상 속에 디스토피아적 염세론이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하던 시기이다.


왜 이런 디스토피아적 상황이 도래할 때까지 오게 되었는가?

아나톨 프랑스는 펭귄의 역사로 치환시켜 놓은 자기 조국 프랑스의 역사 속에서

디스토피아의 뿌리를 허황된 기존 질서에 대한 집착에서 찾고 있다.


프랑스혁명이 발생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구체제가 가지고 있던 모순, 즉, 앙시앵 레짐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구체제의 모순이 프랑스혁명 이후에도 반복되었다는 데에 있다.

기존의 질서가 극복된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치장된 채로 다시 확대재생산되는 것이다.

혁명 이전에는 귀족들에게 사회적 특권과 경제적 부가 집중되었다.

이 모순은 혁명 이후에도 ‘부르조아’라는 주체만 바뀌었을 뿐 다시 반복되었다.

혁명 이전에는 귀족과 성직자들이 결탁하여 모순된 사회체제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이 모순 역시 혁명 이후에도 지배층을 위한 종교, 옛 체제를 찬미하는 종교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러한 모순의 반복은 현대까지도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펭귄의 섬]을 보는 독자들은 1921년에 아나톨 프랑스가 보여준 혜안에 크게 탄복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뒤집어 말하자면, 당시의 문제점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힘의 논리는 여전히 세계를 지배한다.

특권층으로의 사회적 권한과 부의 집중은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

변화를 이야기하는 움직임, 작은 저항은 권력관계의 유지를 위하여 간단히 무시된다.

사회의 유지와 통합을 위하여 다른 목소리, 소수자의 목소리는 인정받지 못한다.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인종청소가 일어나고,

산업화와 농업혁명으로 생산성은 갖추었지만 전세계의 절반은 굶주린다.

어쩌면 이제 인류는 멸망할지도 모른다.

마르크스가 말한 계급투쟁과 지배체제의 붕괴는 이제 한 계급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향한 예언이 되어 새롭게 탄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이런 상황은 어떻게 타개해야 할 것인가.

그냥 이렇게저렇게 흘러가는대로 적당히 살아가는 모습이어야 하는가.

아나톨 프랑스는 [펭귄의 섬]에서 <건초 8만단 사건>이란 사건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 사건은 1894년에 실제로 일어난 드레퓌스 사건를 모델로 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사건 전개도 그렇고, 등장하는 인물들도 드레퓌스 사건의 실제 인물들을 모델로 하고 있다.

드레퓌스 사건의 구체적인 전개과정이나 의의에 대해서는

아르망 이스라엘의 [다시 읽는 드레퓌스 사건]이라는 별도의 책도 있고,

또 유명한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첫 번째 장에도 잘 요약되어 설명되어 있으니 더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나톨 프랑스는 드레퓌스 사건을 직접 경험한 지식인이었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해서 모순된 사회를 향해 냈던 용기있는 저항의 목소리를 암울한 현재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로 보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사건을 [펭귄의 섬] 속에 많은 분량으로 삽입하였다.


드레퓌스 사건은 유대인 희생양을 통해 국가 권력을 강화하고, 대중의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권력에 의하여 조작된 사건이었다.

전체 프랑스 사회가 미치고 유대인들에 대한 근거없는 공격이 횡행할 때,

이 사건 뒤에 숨은 모순을 폭로하여 저항한 지식인들과 언론이 있었다.

그 유명한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라는 문장(지금 읽어봐도 대단한 문장이다!!!)

그리고 사회정의를 위해 함께 싸운 지식인들.


인류가 멸망한다면, 그것은 인류의 오만함에서 기인하는 것이리라.

나를 남보다 우월하게 여기고, 나보다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아부하면서 약한 자들 위에는 군림하고자 하는 오만함,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들을 경시하고, 그들에 대한 차별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오만함.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하면서도 자신의 이익만을 유지하면 된다는 오만함 말이다.


이 오만함을 막기 위하여, 사회정의와 인간으로서의 겸손함을 실천하기 위하여 지식인들이나 언론은 용기있게 저항의 목소리를 내어야 하지 않을까?

점차 ‘정의’가 낯선 단어가 되어 가는 세상.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애써 외면하고만 있는 세상.

그 세상을 향하여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고민을 던져주는 책이다.

s******e 2008.12.0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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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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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란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인가? 요즘 출판되는 책들과는 다르게 너무나 수수한 표지를 보며 꽤나 오래전에 발간된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어려운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었지만 오히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상을 받은 작품답게 의미하는 바는 상당히 무게감이 있게 다가왔다.    얼핏보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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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란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인가? 요즘 출판되는 책들과는 다르게 너무나 수수한 표지를 보며 꽤나 오래전에 발간된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어려운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었지만 오히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상을 받은 작품답게 의미하는 바는 상당히 무게감이 있게 다가왔다. 

 

얼핏보면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펭귄. 책은 펭귄이 사람이 된다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처음 설정부터가 참 재미있다. 마엘이란 신부는 여물통을 타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름 모를 섬에 도착, 펭귄을 사람으로 착각하여 그들에게 세례를 주게 된다. 천국에서는 회의가 열리고 여러 의견이 오고가지만 결국 하나님은 세례받은 펭귄들을 사람으로 변모시키기로 결정하면서 펭귄족의 역사가 시작된다. 고대시대의 펭귄족은 부끄러움을 느껴 처음 옷을 입고 사유재산에 대한 개념이 생기고 국가회의를 통해 의사를 결정하고 자신들만의 신화를 만들어낸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현대시대에 이르러서는 건초 8만단 사건과 같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마녀사냥이나 마리 앙투와네트가 생각나게 하는 세레스 부인에 관련된 사건들이 마치 과거 인간의 모습을 펭귄을 통해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는 것 같아 읽으면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 허탈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왠지 책속에 등장하는 사건들이 프랑스의 역사와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지식이 부족하여 어떤 내용인지는 짚어내지를 못하겠다. 1920년대에 씌여졌다는 이 소설이 묘사하고 있는 미래의 모습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모습과 꽤나 흡사한데 100년전에 이러한 책을 쓸 수 있었다니 작가가 예지력이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인간의 역사는 끝없이 되풀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과거의 잘못을 더이상 되풀이 말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늦게나마 좋은 작품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k******8 2008.12.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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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펭귄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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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섬] 뒤뚱거리며 걷는 펭귄의 짧은 다리보다도, 얕은 진실을 가진 인간의 역사. 과연 우리가 알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진실일까? 나는 진실을 믿지 않는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뮈세는 ‘이 세상에서 나에게 남은 유일한 진실은, 내가 가끔 울었다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나의 삶에서 진실은 무엇일까? 개인의 역사에도 진실은 그 희소성의 유별(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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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섬]


뒤뚱거리며 걷는 펭귄의 짧은 다리보다도, 얕은 진실을 가진 인간의 역사.

과연 우리가 알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진실일까?

나는 진실을 믿지 않는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뮈세는 ‘이 세상에서 나에게 남은 유일한 진실은, 내가 가끔 울었다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나의 삶에서 진실은 무엇일까? 개인의 역사에도 진실은 그 희소성의 유별(有別)을 따로 말할 것이 없다.


요즘 뉴스를 보면 근, 현대사 교과서 문제로 떠들썩하다. 어느 것이 진실한 역사인지, 갑론을박, 아니, 그 이전에 정권에 따라 문제시 되는 역사의 가변성.


역사는 후대 사람들의 의해 평가받지만, 현시점의 승리자에 의해 기록된다.


모든 민족의 역사는 범죄와 가난 그리고 광기의 연속이다. (p13)


얼마 전부터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조금씩 다시 읽고 있다. 대충 읽는 것이 아니라, 꼼꼼하게 살펴가며 읽고 있는 중이다. ‘광기의 역사’를 보며 느꼈던 것은, 사람들은 진실을 감추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진실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한 사람들에 의해, 전쟁이 벌어지고, 피와 뼈의 살육이 가행되며, 그 모든 것을 광기 속에 몰아넣고, 마녀재판을 통해, 승리자의 거짓을 유지시켜 나간다.


당신은 역사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믿는다고도, 믿지 않는다고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역사는 그런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탄생에 대해, 그 누구도 증명할 수 없는, 창조설과 진화설이 대립 속에 균형을 이뤄 가는 것과 같이.


대립, 그렇다, 진실과 거짓, 승리자와 패배자, 대립 속에 역사는 피와 뼈의 산을 쌓았고, 그 위에 문명이란 화려한 포장지를 씌워놓은 것.


<펭귄의 섬>을 읽으며, ‘와! 이 작가는 정말 인간에 대해 부정적이구나.’라고 중얼거렸다.  진실을 볼 수 없는 신의 대행자, 그의 실수로 인해 생겨난 펭귀니. 그들은 처음부터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다.

신의 지팡이는 탁상공론에 불과했고, 악마의 숨결은 날숨보다 빠르게 흡수되었다.


일단 옷을 걸치면 도덕에 얽매이게 되고, 결국 거만하고 위선적이며 잔인한 습성을 키우게 될 텐데요. (p71)


도덕은 더 이상 진실을 유지시켜 주지 못한다. 아니, 그것은 오히려 악덕을 감싸주는 질 좋은 의복이 된다. 책에서 말한 ‘옷’은 마치 ‘선악과’와 같았다. 선악과를 입에 문 펭귀니는 원죄의 피도 없이 빠르게 타락할 뿐이다.


책은, 그리고, 그저 타락과 자연에서 멀어지는 펭귀니를 관조할 뿐이었다. 자연 속에서 평화롭고 욕심 없이 살던 펭귄의 모습은 더 이상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욕망과 욕심과 이윤, 권력, 실리주의에 편승한 펭귀니 역사의 돛은 거센 북풍을 타고 북극의 얼음 깊은 곳에 진실을 묻어 버린다.


그가 범인이기 때문에 유죄 판결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해도 유죄 판결을 받았으니 범인인 것이지요. (p274)


펭귀니는 악마의 숨결 없이도, 거침없이 흘러간다. 더 이상 구원의 희망이 잔존하지 않은, 폭파된 도시 속으로.


19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펭귄의 섬’. ‘낙원’이란 의미로 더 많이 쓰여 지는 ‘섬’. 하지만 ‘펭귄의 섬’에서 우리는 이미 끝을 그어놓고 달려갈 뿐이었다. ‘거짓의 낙원’


1921년이면 중국과 소련이 공산화되고, 사회주의가 그 위력을 펼치며, 한창 ‘유토피아’를 외치던 시절. 모두가 ‘유토피아’를 찾고 있을 때, 작가는 ‘반유토피아’를 통해, ‘인간의 섬’에 갇힌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려함이 아니었을까? 폭력으로 세워진 ‘섬’은 다시 그 폭력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온 세계가 전쟁의 화마 속에 시달리고, 끝날 것 같지 않던 시간 속에서, 작가는 인간의 본성을 부정하고 만다. 작가의 눈에 인간이란 (인간의 눈에) 뒤뚱거리며 우스꽝스럽게 걷고 있는 펭귄보다 아둔하고 미개한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때문에 잘 살고 있는 펭귄의 평화를 눈먼 진실로 파괴하고 마는.


그렇다면 ‘전쟁’의 불꽃을 더 이상 정의의 수단으로 인정하지 않는, 현대에는 어떨까? 화포의 위력보다 몇 배는 더 큰, Money의 역사함 앞에, 저항도 없이 스러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끝도 없이 이어지는 대립, 그 끝은, 책에서처럼 자멸뿐일지도 모른다. ‘펭귄의 섬’은 침몰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섬’에 남은 진실은 무엇인가? 그저 가끔 눈물 흘리며 관망할 뿐?


‘펭귄의 섬’을 손에 들고 단숨에 읽어 버렸다. 머리 속에 떠도는 많은 말들, 많은 생각들. 그리고 마지막 물음. 결국 인간은 자멸하고 말 것인가.

YES마니아 : 플래티넘 m*****0 2008.11.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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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랄한 풍자 속에서 되풀이되는 인간 역사를 돌아본다.
"신랄한 풍자 속에서 되풀이되는 인간 역사를 돌아본다." 내용보기
* 신랄한 풍자 속에서 되풀이되는 인간 역사를 돌아본다.   개인적으로 펭귄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역사서라는 점과 제목이 펭귄의 섬이라는 점에서 과연 무엇에 대한 내용일지 매우 궁금했다. 펭귄의 역사인가? 그럼 역사서라기보다는 자연 과학서일텐데, 어쨌든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라니까 뭔가 훌륭한 책 일거야 라는 기대감과 함께, 100년 전에 작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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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랄한 풍자 속에서 되풀이되는 인간 역사를 돌아본다.

 

개인적으로 펭귄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역사서라는 점과 제목이 펭귄의 섬이라는 점에서 과연 무엇에 대한 내용일지 매우 궁금했다. 펭귄의 역사인가? 그럼 역사서라기보다는 자연 과학서일텐데, 어쨌든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라니까 뭔가 훌륭한 책 일거야 라는 기대감과 함께, 100년 전에 작가가 바라본 역사적인 시각은 어땠을까 라는 호기심을 품고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 나갔다. 하지만 이 책은 사실 인간을 펭귄에 빗대어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었으며, 때문에 읽는 내내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그 웃음에는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우리의 역사와 가려지고 쉬쉬해온 인간의 추악한 면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처음 이 책을 펼쳐서 다시 책을 덮기까지 느꼈던 가장 큰 부분은 풍자에 대한 것이다.

본문 내용을 인용하자면 이러하다.

- 트랭코가 했다는 위대한 일이 무엇인가요? (181p)

- 전쟁이지요 (182p)

- 문명화된 국가에서 부는 신성한 것이다. 특히 민주국가에서 부는 유일하게 신성하다. 펭귄들의 국가는 민주국가였고, 서너 개 금융회사가 권력을 행사했다. (중략) 그럼에도 돈에 대한 존경심 속에서 잉태하고 탄생한 부르주아 펭귄들은 부자든 아니든, 재산이 많든 적든, 자본가들끼리의 연대감을 느꼈고, 작은 부는 큰 부를 통해 보장된다고 확신했다. (256p)

- 그가 범인이기 때문에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해도 유죄 판결을 받았으니 범인인 것이지요. (274p)

- 유죄 판결을 내릴 당시 우리에게는 증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 증거를 확보해왔습니다. (278p)

- 대개 증거로서는 진실보다도 만들어진 자료가 훨씬 낫네. 우선 맞춤 주문한 것이라 기소 내용에 잘 맞고, 정확하고, 적당하거든. 게다가 더 좋은 것은 사람들의 정신을 현실에서 벗어나 이상적인 세계로 안내한다는 점이지. 이 세상에서 현실이란, 아아! 불순물이 섞일 수밖에 없으니...... (280p)

 

이 책은 역사책 이지만, 단순히 사건을 시대별로 나열해 놓은 역사책은 아니다. 분명 프랑스 역사를 중심으로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으나 시대적인 사건을 순차적으로 나열하여 구성된 역사책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중․고등학교때 배웠던 국사 교과서를 떠올려 보았다. 아마 제일 먼저 서문에 나오는 것이 역사의 두 가지 의미에 대한 부분이었던 것 같다. 하나는 역사적 사실로서의 역사와 다른 하나는 재구성된 역사로써의 역사로 기억한다. 개인적으로 예전에는 역사란 사실로서의 가치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었고, 때문에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시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역사공부라고 해서 그 사건과 순서에 중심을 두고 역사적인 사건을 년도까지 꼼꼼하게 외웠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역사적인 사실을 정확히 알고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역사도 결국은 사람이 기록한 이상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에 대해서 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펭귄의 섬을 읽고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m********9 2008.12.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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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이어져 오는 펭귄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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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논평과 감명을 투고 하기에 앞서 내가 겪은 한가지 사연을 들어 보고자 한다. 올 3월 쯤 이성과 명상 만큼이나 육체적 건강도 중요하다는 신조를 뇌에 되새기고 있던 내가 인근 해안도로 야산 봉우리를 정복하고 공원으로 걸어가고 있었던때이다 그때 화장실이 너무 급한 나머지 야외 화장실에 대한 비관적이고 회피적이던 사고를 무릅쓰고 화장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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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논평과 감명을 투고 하기에 앞서 내가 겪은 한가지 사연을 들어 보고자 한다.

올 3월 쯤 이성과 명상 만큼이나 육체적 건강도 중요하다는 신조를 뇌에 되새기고 있던 내가 인근 해안도로 야산 봉우리를 정복하고 공원으로 걸어가고 있었던때이다

그때 화장실이 너무 급한 나머지 야외 화장실에 대한 비관적이고 회피적이던 사고를 무릅쓰고 화장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근데 누군가 써놓은 문구를 보게 되었다.

문구의 내용인즉 "화장실 더럽게 쓰는 사람은 야만인"

그 문구를 본후 마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제가 더럽게 사용했다는 말이 아님) 그 글의 본질은 더럽고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이며 무지한 사람을 일컫는 말임을 직감하게 되었다.

그와 비례하여 좀더 깊게 나는 현대의 인류 역사에서 제일 문명화되었다고 자부하고 그렇게 느끼고 있는 현대인이 과연 원시형태 시대의 조상들보다 과연 무지하고 무능력하고 무기력하지 않다고 말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현대인의 행복의 척도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러한 고민과 사색을 시로도 달래보고 거기서 합리점과 해답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인류 문명사회에 대해 신랄한 풍자와 회의적인 사고를 엿볼수 있는 아나톨 프랑스라는 저자의 펭귄의 섬을 알게 되었다.

마엘이라는 고귀한 신부가 사탄의 노림수에 빠져 펭귄을 사람으로 본 신부가 펭귄들에게 사흘 밤낮으로 세례를 내린 사건이 발생한다.

하느님은 그들을 만물의 연장인 사람으로 변신시킨다. 펭귄족은 의복과 사유재산 그리고 권력을 알아가며 점점 문명인으로 거듭난다. 거기서 펭귄족들은 점점 지능화되고 지혜를 알아가며 살인 음탐 교만 질투 탐욕 게으름 분노로 점점 악해진다.

처음에는 사탄의 아주 사소한 간괴의 시작이 문명 국가로서 발전을 거듭해오는 역사에서 더욱 간악하고 잔인하며 서로를 죽이는 사태까지 번지게 된다.

줄거리를 읽으면서 인류역사를 풍자했다는뒷 표지의 내용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책 전체적 내용이 그렇지만 펭귄족의 창세기와 고대시대 중세시대에서 종교적 색체가 강한 것을 보아 역사 해석적 관념에서 종교계에 쓴소리를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으로 변모하기전 그들은 인간과 같이 유능하지도 발달되지도 못했으나 그들은 짝짓기 계절을 제외 갈등과 싸움 살인이 없는 말 그대로 자유와 평화가 넘치는 평온한 나라였다.

저서 전반 남짓을 현대시대에 집중하고 있는 저자는 흐르는 물 같이 붙잡을수 없는 현 시대의 역사를 쓰고 있는 인류에게 구름사이로 비치는 눈비신 햇빛을 부와 끝없는 욕심을 채우는데 황급한 나머지 보지 못하고 자국의 경제적 풍요와 보호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지구 그리고 너무 발달된 나머지 순수한 심성을 잃어 가는 현대 인류에게 좀더 나은 인류를 위해 미망해서 벗어날것을 충고한다.

100년 전후로 쓰여진 이 책은 100년전 유럽사회도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놀라운 점은 현대 21세기 사회를 너무 흡사하게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퓅귄이라는 제 3자를 인용해서 권위적이고 대중적인 역사이야기를 벗어나 독창적이고 이색적인 글을 쓴 저자의 용기와 지식에 감화를 받았다.

끝으로 깜찍한 캐릭터인 펭귄을 다룬 재미난 소설이라는 기대로 이책을 주목한 사람에게는 권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가 않는다.

 

 

 

YES마니아 : 로얄 y********n 2009.04.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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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를 통해 되풀이 되는 인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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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나톨 프랑스의 작품이다. 문학에 그다지 조예가 깊지 않기 때문인런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처음부터 책을 놓는 순간까지 어렵다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막상 정리를 하려는 지금도 그다지 내용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를 했다고 여겨지지는 않는것이 사실이다. 단,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프랑스 역사를 토대로 공산주의가 탄생하게된 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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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나톨 프랑스의 작품이다. 문학에 그다지 조예가 깊지 않기 때문인런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처음부터 책을 놓는 순간까지 어렵다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막상 정리를 하려는 지금도 그다지 내용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를 했다고 여겨지지는 않는것이 사실이다. 단,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프랑스 역사를 토대로 공산주의가 탄생하게된 시기에 권력 및 권한 빈부격차와 아울러 이념의 대립등을 우화 형식의 풍자를 통하여 전달하려 하지 않았나 생각되어진다.

 

 처음의 시작은 흡사 성서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듯 느껴졌다. 가톨릭 신자이었기에 천만 다행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장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들을 통하여 전개되고 혼란하리만큼 정신없이 발발하고 해결되고 하는 과정을 통하여 혼란한 시대상을 풍자하였던것 같다.

 

 구약성서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에집트의 종살이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광야를 헤메이다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젖과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가는 성서의 과정들, 에집트의 종살이에서 구원해주신 하느님께로 향하는 감사의 마음이 세월이 흐르면서 불평불만으로 변질되는 과정, 하느님 이외의 신을 섬김으로서 노여움을 받고 젖과꿀이 흐르는 약속의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했던 과정들이 흡사 펭귄들의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되기도 하였다.

 

 '펭귄의 섬'의 저자인 아나톨 프랑스는 정치,경제는 물론 다방면의 지식을 두루 갖추었던 시대의 지식인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 정도로 다방면에서의 박식함을 엿볼 수 있었다. 풍자를 통하여 되풀이 되는 인간의 역사를 통하여 현재 사회에서도 발생되고 있는 권력,권한,빈부격차,부의집중등을 예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본인이 문학이나 역사에 그다지 지식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의 언어유희를 통하여 본질에 어긋나게 해석하며 포장하면 저자와 노벨상을 추천하신 분들께 누가 되지 않을 까 생각하여 더이상 왈가왈부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한가지 느낀점 이라면 "무모한 열정은 꿈을 이루는 디딤돌이 아닌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라는 것이다. 열정이 없는것 보다는 무모한 열정이라도 있는게 어디냐고 반문하실 분들도 물론 계실것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무모한 열정 보다는 꿈을 이루기 위한 약간은 뜨뜨미지근 할지언정 뚜렷한 목표에 대한 열정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 까?...

 

 

 

 

 

2***5 2008.12.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흥미롭지만 재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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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섬을 서점에서 처음 접했을 때 그 조용한 느낌이 좋았다. 옆에 놓여 있던 <세계창조>와 비슷한 느낌이라 고민했는데 결국 이 책을 고른 것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생각나서다.사실 주제를 놓고 보면 둘은 매우 비슷하다. 인간사 내면에 숨겨진 흉한 일면을 '동물'에 비유하여 이야기했다는 점에서.그렇지만 <펭귄의 섬>은 펭귄이 '인간'이 됨으로써 문명이란 미명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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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섬을 서점에서 처음 접했을 때 그 조용한 느낌이 좋았다. 옆에 놓여 있던 <세계창조>와 비슷한 느낌이라 고민했는데 결국 이 책을 고른 것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생각나서다.

사실 주제를 놓고 보면 둘은 매우 비슷하다. 인간사 내면에 숨겨진 흉한 일면을 '동물'에 비유하여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그렇지만 <펭귄의 섬>은 펭귄이 '인간'이 됨으로써 문명이란 미명하에 벌이는 갖가지 작태들을 말하고 있으니 엄밀히 얘기하자면 '동물에 비유'한 것은 아니다.
작 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인간' 그 자체의 흉함이 아니라 '문명'에서 얻어지는 흉함이다. 이성과 영혼이 없던 펭귄이었을 때 그들은 순박하고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일단 인간이 되자 생각이 발전하고 문명을 이루면서 차차 이기적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신부 마엘이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북극으로 떠내려가다 만난 펭귄들을 사람으로 착각하고 세례를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이다. 펭귄이 세례를 받자 하늘에서는 격한 토론끝에 펭귄에게 영혼을 주고 인간으로 만들기로 결정한다.
펭귄들을 사람으로 만든 마엘 신부는 그들을 보호하고자 북극의 섬을 끌고 자신의 나라로 되돌아온다. 시작부터 사탄의 등장이니 하느님이니 하는 것으로 보아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오히려 종교, 말하자면 기독신앙에 너무도 심하게 물든 유럽사를 비판하고자 함이다.

펭귄의 역사라고 하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대부분은 간략한 서술로 이루어져 있고 주요 부분만 집중 조명하는 면에서 소설이라기보다는 이야기식 역사서라고 해도 좋겠다. 더욱이 내 입장에서는 별로 친숙하지 않은 유럽사이다 보니 너무 자세한 이야기를 '비유'로 나타낼 경우 무슨 소린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펭귄족 최초의 왕이요 용을 물리친 영웅 크라켄이 사실 용의 탈을 뒤집어쓰고 주민들을 괴롭혔던 악인이었다는 것은 고귀한 왕족이 결국은 한낱 사기꾼에 불과했다는 의미다. 대대로 성녀로 추앙받았던 크라켄의 왕비 오르브로즈 역시 남성편력을 자랑하는, 기독교식 입장에서 보면 타락한 마녀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역사적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인간의 역사와 1:1로 매칭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면에서 나는 이 <펭귄의 섬>을 완벽히 이해했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동물 농장>식 해학적이면서도 이해가 쉽고 재미있는 소설을 기대했다면, <펭귄의 섬>은 약간 실망스러웠다. 오래전의 작품이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아무래도 기독교의 성자들이나 옛 프랑스의 인물들이 계속 나오는 것이 내겐 맞지 않았던 것일까.
따라서 괜찮은 시대 풍자적 '소설'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l*******n 2009.02.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