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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대 대선이 끝난 지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큰 일을 치렀다고 쉬고 있을 수 만은 없는 것이 현 국내외 정세다. 여중생 미군 장갑차 압살사건을 기폭제로 한 불평등한 SOFA개정을 위한 촛불 시위에 관련하여 범대위와 대통령 당선자 사이의 서로 다른 입장과 방향 모색.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 국민의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을 기반으로 화해와 타협을 통해 북한문제를 풀겠다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암중모색까지 현재 우리나라 정치 상황은 봇물이 터진 듯 질펀하다. 사실 투표권에 의한 참여민주주의가 정착된 지 반세기를 넘어 가지만, 일반 대중에게 정치란 직업 정치인들이 정당 만들고, 국회의원으로 입법활동하고, 자기들끼리 치고 박다가 때되면 국민,대중을 팔아먹으며 한 표 얻으려 기쓰는 어떤 ''판(field)''의 행위정도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역설하듯이 정치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면서 서로 다른 개성을 드러내는 가운데 공동의 생활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는"(칸트정치철학강의-이하 칸정, p. 11)것이다.
즉 당신과 나처럼 서로 다른 인격체들이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면서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해 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정치를 나와 거리가 먼 직업인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어떤 것으로, 선험적(a priori)으로 전제된 진리가 있어 그것을 소수가 다수에게 강요해야 할 억압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미뤄둘 수는 없다. 현실 삶에는 하나의 현상에 대하여 행위자가 있고, 그것을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관찰자가 있으며, 그 각자의 판단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역사적, 사회적 조건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그렇게 내려진 판단은 인간을 다시 "세계 안에 정착시키는 기능을 한다"(칸정, p. 259). 왜냐하면 판단되지 않은 세계는 "우리에게 어떠한 인간적 의미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칸정, 같은곳). 우리는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 안에서, 그 안에서 이루어진 공통감에 이끌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판단을 내린다. 이것을 세계로 확대해 보면 칸트가 말한 "세계시민적 실존(cosmopolitan existence)"(칸정, p. 145)으로서의 공동체의 일원, 즉 인간이다.
한나 아렌트의 『칸트 정치철학 강의』는 그녀가 독일 나치의 유대인 정책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뒤 1970년 가을학기에 뉴스쿨에서 강연한 것을 유고로 묶은 것이다. 그녀의 제자였던 로널드 베이너에 의해 묶인 이 강의텍스트는 생전에 아렌트가 학문의 방향타로 삼았던 칸트의 사유와 그의 대표적 3대 비판서(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를 그녀가 속한 시대에서 재해석하려는 시도로 이해된다. 그러니까 아렌트가 첫 번째 강의에서 자신이 "칸트의 정치철학에 대해 논구하는 데 있어 난점"이라 밝히고 있듯이 "칸트는 정치철학에 대해 쓰지 않았"(칸정, p. 34)으며, 그런 한에서 아렌트가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토대로 현실 사회의 정치적 문제들-예컨대 전체주의자들에 의한 정치 부재의 상황, 유대인 학살의 전범 아이히만(Eichmann)에게서 보여지는 "평범한 악, 즉 무사유(thoughtlessness)"-을 소명하려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칸트의 3 비판서 중 『판단력 비판』은 『순수이성 비판』과 『실천이성 비판』의 일종의 가교로서, 이성이나 오성에 의해 이해될 수 없는 것에 대한 것이다.
칸트에게 이론과 실천을 연결시키고 그 이행을 제공하는 "중간항"이 판단력인 것이다. 실천이성이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추론을 통한 것이라면, 판단력은 "단순한 관조적 쾌락 또는 비활동적인 즐거움"에서 발생하며, 판단의 대상은 미 자체로서 일반적인 범주가 아니라 특수자가 그 대상이다. 아렌트가 칸트의 "판단"을 정치철학으로 읽을 가능성을 발견한 곳이 바로 이 "보편자에 견주어 볼 때 우연적인 것을 내포한"(판단력 비판, 67) 특수자의 판단력 개념이다. 또 하나의 단서는 그가 『판단력비판』 어디에서도 "진리"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다는 점이다. 앞서 인용했듯이 정치는 서로 다른 ''특수자''들이 공동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지 ''진리''를 주장하는 곳은 아니라는 것이 아렌트의 주장이고 보면 선험적 진리를 상정하지 않는, 특수자를 담당하는 칸트의 판단력 개념에서 정치철학을 정초 해내는 것은 아렌트의 탁월한 면이라 생각된다.
뉴스쿨에서 행한 아렌트의 칸트 정치철학 강의는 모두 열세번이다. 그녀는 첫 강의에서 명백하게 자신의 정치적 관점이나 정치철학론을 쓰지 않은 칸트로부터 정치철학을 사유하려는 아렌트 자신의 논의의 정당성 및 한계를 논한 이후 각 강의마다 칸트로부터 도출해 낼 수 있는 철학적, 정치적, 정치철학적 개념에 대해 해설한다. 그리고 "사교성(sociability)", "계몽된 자기 이해(enlightened self-interest)", "전체와 세계 내 거주자로서의 복수의 인간", "계몽의 시대와 비판적 사유", "불편부당성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상상력", "세계관찰자(Weltbetrachter)", "활동적(정치적)삶vita activa/관조적(철학적)삶vita contemplativa", "상상력과 재현"등으로 키워드화할 수 있는 주요한 논쟁의 문제들을 역사, 진보, 형이상학, 미적 쾌락, 세계사와 조밀하게 연결시킨다.
따라서 이 책은 철학, 인문학의 전문 연구자가 아니라면, 아렌트의 논의를 따라가기에 조금 힘겨울 수도 있다. 쉴새 없이 참조되는 칸트의 철학과 서양 지성사를 꿰고 있지 않으면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힘든 논의의 비상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이 텍스트가 강의와 세미나를 위해 준비된 것이고, 실제 강의를 통해 전달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책의 독자는 다소 선별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을 편집하고, 「한나아렌트의 판단이론」이라는 논문을 덧붙인 로널드 베이너 또한 이 강의의 수강생이었으며, 아렌트의 제자였다. 하지만 강의는 끝났고, 그녀가 준비하고 있던 《정신의 삶》의 세 번째 책이 됐어야 했을 《판단》(칸트의 정치철학 강의를 기초로 한)은 돌연한 그녀의 죽음으로 결코 완결되지 못한 채 우리 앞에 열려 있다. [인상깊은구절] 해서 "사람이 판단을 내리고 또 정치적 문제 가운데 행위할 때, 자신이 세계시민이라는 따라서 자신이 세계관찰자라는 이념을 염두에 둘 것이 요구된다"(칸정, p. 145)고 주장하는 아렌트의 정치철학은 서구에서 변방인 동북아시아 소시민인 우리에게도 세계에 대해 세계관찰자로서 행위와 관찰을 통해 판단하는 능력을 요구하고, 그녀의 강의를 통해 지평을 넓히도록 유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