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가장 먼저 읽기 시작한 계간지는 <창작과 비평>이었다. 이후 <실천문학>과 <노동해방문학>을 거쳐 <문학과 사회>와 <문예중앙> 등등의 계간지들을 두루 읽게 되었다. 나와 같은 시기 대학 문학회를 다닌 사람이라면 아마도 창비 영인본 한 질 쯤은 으레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에 이 창비를 통해 등단한다는 것은 비슷한 역사의식을 갖는 문청들 대부분의 꿈이었다. 김윤영은 창비신인소설상을 통해 등단한 작가이다. 「루이뷔똥」. 홍콩의 돈. 조선족 중개상. 한국인 여행객. 일본의 소비자. 간혹 프랑스의 유명 상표 제품들을 사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국인 배낭 여행객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위의 네 부분이 치밀하게 얽혀져 있다. 세미, 판수, 영변댁이라는 세 인물의 시점을 번갈아 채용하며, 우리 민족이기는 하되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버린 그들이 우리 민족의 외곽이자 세상의 중심인 파리땅에서 겪는 이야기를 단편 영화처럼 잘 그리고 있다. 「유리동물원」. 마술사가 꿈이었던, 여행사 직원이었던 남석희라는 여자의 실종. 그 여자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소설은 그녀를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시종일관 그녀의 주변인물을 인터뷰한다. 소설은 곧 인터뷰를 당하는 이들의 생생한 육성 녹음 같다. 하지만 건성건성 이루어지지 않았다. 각각의 인물들과 사라진 주인공 사이의 관계가 꽤 정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를 위해 작가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세심하게 눈 반짝이며 장치해 놓았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궁금증과 그 해소는 이 단편 소설의 백미다. 「그때 그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나」. 똥독이라 불리우던 황복팔 선생의 죽음. 한 불량 선생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 파헤치기. 교육계의 고질적인 병폐와 인간의 나약한 욕망과 그 좌절. 하지만 어딘지 가벼운데, 그것이 흠이 되고 있는지 흥이 되고 있는지 조금 헷갈린다. 「철가방 추적작전」. 중학교 선생 30년차인 봉순자 선생. 적지 않은 나이의 이 아줌마 선생님에 대한 표현이 무척이나 귀엽다. 어느 토요일, 시간대별로 면밀하게 나누어진 봉순자 선생의 가출학생 탐문기가 정겹다. 불우한 환경의 학생과 그런 학생을 다잡아보겠다는 선생간의 실강이가 싫지 않은 의뭉스러움들 속에서 재밌게 표현되어 있다. 「거머리」. “...그렇게 맨날 갖다 놓는데 자기는 촌년이라 그런지 통 좋은 걸 모르겠다고. 그네 집에서 제일 싸구려는 아마 자기일 거라고 그러더라구요...” 결혼, 삶, 그리고 계급적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는 남녀. 야학에서 학습을 받고, 이를 통해 대학에 입학하고, 다시 그 야학에서 선생님을 하고, 그곳에서 의대생을 만나고, 의대생 집안의 반대를 무릅쓴 채 결혼을 하고... 의사들이 어떤 식으로 다단계 판매책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욕망을 향해 치달리는 부르조아 계급의 본성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 신자, 그리고 죽은 신자를 이야기하는 남은 자들의 계급적 시선들... 「음치클리닉에 가다」. 음치클리닉을 찾아온 진선생이라는 손님. 그가 토로하는 그의 문제라는 것이 재밌다. 그는 트로트를 정말 좋아하는데, 막상 노래를 부르려고만 하면, 비슷한 제목이거나 유사한 노랫말을 가진 운동가요가 튀어나오고 만다. 게다가 그는 전직 안기부 요원으로 운동권 학생을 족치는 기술자였다고 하지 않는가. 과연 그의 정체는? 「비밀의 화원」. 초등학교 3학년생인 나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가족들. 물론 그저 바라보는 것은 아니고, 이 사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출마하고 당선되었던 당시의 정국이 배경으로 깔린다. 할머니, 엄마, 아빠, 고모, 삼촌이라는 가족들이 제각각의 이유로(또는 별다른 이유없이) 제각각인 후보를 지원하는 와중, 감옥에 갔다온 이후 요주의 인물로 취급받던 고모가 한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김대중이 당선된 이후 그 남자와 연을 맺은 고모는 파리로 떠나려 한다. 아직 젊은 나이인 나의 고모, 그녀를 그렇게 힘겹게 한 것들의 정체는 무엇인지... 「풍납토성의 고무인간」. 운동권. 형사에게 잡혀 이송되던 도중 도주하여 화학 약품을 뒤집어써서 자해를 하고 몸의 절반 가량이 완전히 타버린 오빠. 마스크와 모자와 사파리 점퍼로 온 몸을 가린 채 그는 풍납토성의 어딘가에 있다는 1500년전의 책자를 찾아 다닌다. 하지만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애쓰던 그의 수중에 들어왔다는 책자는 정교하게 조작된 가짜임이 밝혀진다. 하지만 오빠는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나는 오빠가 어디서 사기를 당하거나 속은 게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오빠는 역사를 새로 만들어보겠다는 거창한 꿈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안되면 자기 스스로 역사 자체가 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오빠를 이해하려면 아직도 멀었다.” 2003년이 된 지금 어찌 생각한다면, 80년대의 사회의식은 용도 폐기된 과거의 유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설령 그것이 우리들의 잠재된 선한 철학의 역할을 할 수는 있을 지언정 지금의 사회를 이해하고 개선하는 데에 유효한 바로미터로 작용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니 그때의 심정을 가지고 소설을 쓰는 일은 너무나 힘겹고 때때로 불가능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 불가능 같은 일을 아직도 뚝심있게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 책의 작가인 김윤영도 그 중의 하나이다. |
| 피상적인 관찰일는지 모르겠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자기가 살아온 세월에 대해 특별한 의미부여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전환기 콤플렉스> 혹은 <과도기 콤플렉스>라 이름 붙여도 될까. 역사적인 격동기, 사회적 급변기의 정점에 자신이 위치해 있었으며 그 시절의 고통과 모순을 몽땅 체험한 듯이 여기는 사고방식 말이다. 그런 종류의 생각 바탕에는 후배세대들의 고통은 별것 아니며, 자기세대의 희생을 밑거름 삼아 단군이래 최고의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다는 일종의 상실감과 더불어 용케 그 험한 세월을 견디어 왔구나하는 뿌듯함이 섞여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비슷한 코드가 형성된 연배끼리 구획을 짓고 꼬리표를 달아 놓았다. 6.25세대, 4.19세대, 유신(혹은 긴급조치)세대, 386세대, X세대, N세대...... 나름대로의 지분(持分)을 다 인정해 주려다 보니 구획의 간격은 갈수록 좁혀들고, 과연 나는 어디의 성향에 근접할까 따져보는 일도 이젠 수월치 않아졌다. 그런데, 386세대(개인적으로 나는 이 별칭을 상당히 좋아하지 않는다)와 X세대 틈바구니에서 제대로 이름을 얻지 못하고 스러져 가는 세대가 존재한다. 그들은 베이비 붐(baby-boom)의 끝 무렵에 태어난 죄로 최고의 입시 경쟁률 ·최고의 취업 경쟁률을 연이어 겪어야했을 만큼 양적으로는 분명히 다수파를 형성한다. 그러나 마지막 주판 세대인 동시에 첫 컴퓨터 세대이고, 흑백교복과 컬러교복시대 사이에 끼여 유일하게 '사복등교'를 경험했던 문화적 아노미(anomie) 세대이다. 민감한 청소년기에 87년 6월 항쟁과 89년 전교조 사건을 겪어 어느 정도 정치적 각성은 되어 있지만, 선배인 386이 보기에는 '덜 떨어졌'고 후배인 X세대가 보기에는 상당히 과격한(?) 정치적 아노미 세대이기도 하다.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 무렵엔 뜻하지도 않은 외환위기로 애써 얻은 직장에서 떨려나거나, 벤처기업이란 이름으로 풋내 나는 사장노릇도 해본 세대다. 김윤영의 첫 소설집 『루이뷔똥』은 그렇게 어중간한 위치를 차지해버린 세대의 품새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굳건한 이념을 가지고 거리에 뛰쳐나갔던 선배들의 엄숙함과 그럴 필요가 없었던 후배들의 경쾌함, '나'보다는 '우리'가 소중했던 선배들과 천상천하 유아독존 격인 후배들...... 김윤영은 그 사이에 낀 세대의 어정쩡함과 겉돎을 부정하려 들지 않는다. 외려 선·후배 세대를 양 겨드랑이에 껴안아 보듬고 싶어하는 넓은 품을 보여준다. 《정치적 전선이 소멸되자마자 창조적 에너지들을 잃고 씨스템에 흡수되어버린 나의 윗세대를 위무하고 싶었다. 순정은 가졌지만 역사와 단절된 듯한 후배세대와도 대화를 시도하고 싶었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살아가는 나의 선량한 벗들과 이웃들, 그리고 나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서도 나는 글을 쓰고 있었다. 내 소설로 해서 숨통이 트이고 약간이라도 해방의 환각을 맛볼 수 있길 빌었다.》 ( 6쪽, 「작가의 말」) 윗세대가 겪어야 했던 극심한 고통을 후배세대의 가벼운 문장으로 받아 안은 「거머리」,「비밀의 화원」,「풍납토성의 고무인간」, 「음치클리닉에 가다」는 후일담 영역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얼핏 80년대식 치열함 또는 진지함에 대한 냉소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실은 그것들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된 것임은 「루이뷔똥」, 「유리동물원」등 자본주의의 천민성을 드러낸 작품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또한 당대의 모순을 응시하는 것도 김윤영은 잊지 않는다. 「그때 그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나」,「철가방 추적 작전」은 각각 살인사건과 가출사건 추적기록의 형식을 띠고는 있지만, 기실 교육현장의 위기를 살뜰하게 담아내고 있는 작품들이다. 특기할 만한 일은, 이 창작집 전반에 걸쳐 주인공은 아예 부재하거나, 있더라도 극히 미미한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가 모든 이야기의 중심축이고 그 이외의 인물은 조연에 가까운 근래 우리 소설의 주류와는 다른, 그래서 도드라져 보이는 특징이다. 「루이뷔똥」, 「유리동물원」,「거머리」는 한 인물, 혹은 한 사건을 여러 인물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주인공 없는 소설' 이다. 그리고 「그때 그곳에선......」,「음치 클리닉에 가다」는 형식적인 주인공이 설정되어 있으나, 그의 역할은 작중 인물들을 맺어주는 기능만 하고 있을 뿐이다. 마치 벽돌과 벽돌을 접합하는 모르타르 같다고나 할까. 주인공의 미분화 현상. 이러한 것이 '어정쩡함'과 '겉돎'을 특징으로 하는 낀세대의 입장에서 기인한다고 표현하면 과장스러워 보이려나 모르겠다. 굳이 김윤영을 변호하자면, 옳고 그름/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몽롱한 상태에서, 단정적인 입장은 보류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날 것 그대로의 '다양한 주관'을 펼쳐 보이는 방법이 차선의 선택일 수도 있다고. 원래 나는 가급적 책이 서점의 신간서적 진열대에서 벗어나지 않는 동안에 읽으려는 습성이 있다. 어떤 제품이 출시되면 가장 먼저 써보려는 얼리어답터(Early-adopter)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던데, 그렇다면 나는 얼리리더(Early-reader)의 부류에 집어넣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루이뷔똥』은 초판 1쇄 발행일로부터 9개월이나 지나서 읽게 된 셈이니, 평소에 신간을 읽으면서 느꼈던 묘한 설레임 같은 건 없었다. 그 대신, 지금 보니 늦게 읽는 것도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 읽고 나서 몇몇 사이트의 독자서평을 볼 기회가 생겼는데, 이 책을 평가한 그것들에게서 묘한 특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대체로 작가와 비슷한 또래의 세대는 점수가 후하지만, 선·후배 세대는 박한 점수를 매겼다는 것...... 윗세대를 위무하고, 후배세대와 대화를 시도하고 싶었다던 김윤영의 의도와 어긋나는 결과다. 무엇 때문일까. '나는 단지 역사와 문학의 갈림길에서 그 둘의 행복한 조우를 꿈꾸는 몽상가에 지나지 않는다'고 김윤영은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겸양을 받아주기가 어렵다. 이 작품집에 후한 점수를 주었던 '낀세대'의 한 사람인 만큼 '위무와 대화' 모두에 목말라 있기 때문이다. 그의 후속작이 기다려진다. |
|
2년전쯤 우연히 며칠 파리에 여행한적이 있었다. 첫날, 개선문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할때, 누군가 한국인이냐고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다가왔다. 그리고는 아르바이트 할생각이 없냐고,꽤 많은 일당을 제시하며 나온 이야기가 소위말하는 명품 사주기 아르바이트였다.제시한 금액에 홀깃했지만 그때는 여권을 소지 하지 않은상태였기 때문에 숙소에 돌아와 그곳에 살고 있는 후배에게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는 그것이 어떤 일인지 알고 참으로 기가막히고, 거기서도 역시? 하는 약간은 낯선 어색함때문에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책에서 잊혀졌던 그 기억을 돌아보게 된다.
소설은 소설일뿐일지라도, 이 소설, 루이뷔똥은 조금 다르다. 일단 내가 직접적으로 겪은 이야기일뿐만 아니라, 이 소설집속의 다른 이야기들도 우리 주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아주 솔직한 터치로 마치 갈증이 심할 때의 청량음료처럼 톡톡튀는 매력으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게 느껴지느것은 우리나라의 감추어져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일 것이다. 잊혀질래야 잊혀질수 없는 멀지 않았던 과거의 참담했던 역사와 그 속에서 버텨냈던, 혹은 그 역사를 이용했던, 그리고 그 역사를 아직까지도 온몸으로 껴안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나의 현실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인 문제임이 틀림없슴에도 애써 무시하고 있는 , 학교라는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이야기들 그리고 다단계 판매상술에 대한 문제점까지,, 이 전혀 연관되어져 있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 참으로 적절하게 그리고 재미있게까지 소설화 되어있다.
무거운 소재를 무겁게, 가벼운 소재를 가볍게 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수도 있겠다. 그러나 무거운 소재들을 가볍게 써내려갈수 있는 것, 그리고 그 가벼움속에서도 언뜻 과거의 잊혀졌던 사실을, 지금의 내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다시한번 생각해볼수 있게 한다면 그것은 작가의 재주가 아닐수 없다. 김윤영, 이작가는 분명 이런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만 같다. [인상깊은구절] .....사소한 순간들이 지나고 나면 오래 기억에 남을때가 있다........ |
| 나에게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한 마디 했다가, 졸지에 '너 요즘 통 서점에 가지 않는구나?'하는, 자존심 상하고 억울하기까지 한 오해를 뒤집어쓴 기억이 있다. 이미 이 책이 제1회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한 작가의 첫 소설집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짜증스럽게 입을 꾹 닫아버리고 말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악의없이 오고가다가 사그라들게 마련인 일상적인 말들이었는데 괜히 소심하게 담아두었구나 싶다. 어쨌든 민감한 오기가 발동해 이 책을 사게 됐다. 한 권의 책이 내 손을 거쳐 책꽂이에 꽂히기까지 그 사연과 과정 또한 독서의 일부가 될 때도 있다. 더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비로소 여러 달 전에 은근히 상처 받고 꿍하게 토라졌던 상태에서 벗어났다. 이 책은 우선 재미있고 쉽고 잘 읽힌다. 소설적 문장으로 애써 꾸미려 하지 않았지만 깔끔하고 가볍고 유머러스한 매력이 있다. 그리고 90년대 초반에 직접 학생운동에 몸과 마음을 던졌던 인물들이 등장해서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중첩하여 보여준다. 그들은 그 시대를, 또한 스스로를 비웃기도 하고 칩거를 택하기도 하고, 숨 넘어가게 웃기지만 결국 씁쓸하게 입을 다물어야하는 유머를 구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일상을 거울처럼 비춰준다. 신인다운 패기와 신선함, 덜 정돈된 산만함을 두루 볼 수 있지만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이 작가의 소설에 더 큰 기대를 걸 수 있다. 특히 중년의 여선생이 기술적으로 심어놓은 정보통들을 이용하여 가출 학생들을 추적하는 <철가방추적작전>, 칙칙하게 흘러가게 마련인 스토리를 똑똑하고 조숙한 여자애의 시선으로 발랄하게 그려낸 <비밀의 화원>, 학생운동을 하다가 도피 도중 화학약품을 뒤집어쓰고 고무인간으로 살아가는 오빠를 바라보는 여동생의, 굳이 우울하지도 않고 무게 잡지 않는 목소리가 돋보이는(그래서 더 슬프다) <풍납토성의 고무인간> 등이 좋았는데, 추리소설 풍의 긴장감 넘치는 진행 방식도 소설 읽는 재미를 더하지만, 뒤의 두 작품에서는 재미에 잔잔한 감동까지 더불어 느낄 수 있다. 7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인물들을 내세운 류소영의 <피스타치오를 먹는 여자>와 김종광의 <71년생 다인이>, 그리고 이 책 <루이뷔똥>을 읽고나니 함께 70년대에 태어났고, 90년대에 대학에 다녔으면서도 알지 못했던, 또는 알려고 들지 않았던 바로 윗세대(선배)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만나보며 값진 경험을 한 듯 하다. |
|
‘ 내 집 마련의 여왕’을 재밌게 읽었다. 그래서 그녀의 전작은 과연 어떤게 있을까 찾아보다가 이 책 <루이뷔똥>과 또 다른 책 <그린핑거>를 찾아내었다. 두 책 모두 단편 모음집이다. 원래 나는 단편을 읽는걸 조금 두려워 하는 사람인데, 의외로 <루이뷔똥>은 읽기 쉬웠다. 보통 단편들이 가질 수 있는 모호함이나 불분명한 끝마무리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짧지만 기승전결이 딱 있어서, 그러니까 배운대로 ⌒ 이런 모양의 흐름이 있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보통 소설가들이 자신의 삶이나 생각 뭐 이런 것을 자신의 소설에 반영한다고 하던데, 이 책을 보면 그 이야기가 딱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생 운동에 매진했던 대학생 시절, 하지만 사회에 나와서는 조금 다른 삶을 살게 되는 인물이 의외로, 많이 책에 많이 나온다. 책을 읽다보면 인물에 대한 묘사가 참 세밀하게 되어 있어, < 내 집 마련의 여왕>에서 본 허투루지 않던 그 인물 묘사는 이런 연습을 통해 나오지 않았나 싶어진다. <내 집 마련의 여왕>에서도 주인공이 세상의 이런 저런 일들을 모두 겪어본 듯한, 다채로운 삶의 이력을 가진 사람이던데, 이 단편 소설 속의 인물들도 그러했다. 파리에서 행해졌다던 루이뷔똥 대리 구매 아르바이트, 코엑스를 전전하는 노숙자와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 이야기, 음치 클리닉에 온 특이한 사람, 중학교 선생의 죽음을 통해서 시대상, 다단계 판매에 관한 이야기...... 그녀가 살아낸 시대에 있었던 이런 일들을 모두 소설로 옮겨낸 것을 보면, 사람에 대한, 시대에 대한 관심이 상당하다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소재든, 그녀라면 표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질 정도다. 이제, <그린 핑거>를 읽으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어떤 소재를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된다. |
| 제1회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가의 작품답게 이 책은 내게 실망을 안겨주지 않았다. 잘 읽히면서도 정말 우리 시대(여기서 말하는 우리 세대란 70년대에 태어나 90년도에 대학을 다닌 세대를 말한다. 71년생인 작가의 나이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많은 공감 사항을 발견할 수 있다)의 감성과 밀접하게 닿아있다. 80년대를 부러워하면서도 정치적 무뇌아를 고수했던 x세대, 90년대들에게도 순수함으로 무장했던 청춘이 있었고, 세월의 흐름과 함께 반역의 길을 걷고 있는 386세대처럼 적당히 세태와 손은 잡은 통속적인 현재가 있다. 경제적 풍요로움과 베이비붐 세대가 맞물려 커버린 육체와 어울리지 않는 빈약과 정신 세계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90년대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작가의 길을 걸어나가기를 바라고 싶다. 끝으로 맛있는 꿀단지에서 조금씩 몰래 퍼먹었던 꿀맛처럼 소설을 읽는 내내 즐거웠었고 특히 철가방 추적작전은 읽는 내내 배꼽을 쥐기도 하고 쓸쓸해 하면서도 가장 재미있게 읽히는 추리소설(?)이었다. |
| 소설은 잘 읽지 않는 편이지만 단편들의 제목이 흥미를 끌었고 작가가 나와는 비슷한 연배라 편안한 마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처음 몇 작품들은 재밌기도 하고 약간은 씁쓸하기도 한 그런 느낌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특히 '비밀의 화원'이나 '풍납토성의 고무인간'을 읽은 느낌은 내가 정말로 작가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가 하는 것이었다. 구십년대 대학생활을 한 나는 데모는 커녕 그 흔한 사회과학 서적 한 권도 읽지 않은 날라리였던 것이다. 물론 모든 대학생들이 학생운동을 하고 사회참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젊은 날을 너무 이기적으로 살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회한이 내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결론은 이렇다. 쉽게 읽고 쉽게 잊혀질 책은 아니다. 시대를 공감하던 그렇지 않던 스스로에게 지난 시대를 반추하게 하는 그런 책이다. |
|
'그린핑거'와 '내집마련의 여왕'의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최근의 두책다 접해보지 못했지만 - 그린핑거의 경우한편의 소설을 읽고 참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다. 김윤영이란 작가는 마음속에 두고 있었던 차에 헌책방에서이 책을 만났다. 이곳에 담긴 소설은 거의 10년전이라 지금의 김윤영 소설과 조금 다를수 있다는 생각도 얼핏들었다. 작가의 말에서 나오는 그녀의 분위기는 마치 1960년대 생들이 사회에나가 광주를 겪고 민주화의 투쟁가운데 나오는 고민과 갈등의 연장선과 대학생들의 변화들을 겪는 느낌이다.
그녀의 첫 단편소설이라는 '비밀의 화원'도 어디선가 접한 듯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내용또한 참신하다고 할수 없다. 아이의 시선으로 대통령선거를 가족들간에 이야기를 통해 사회문제와 연결지려는 의도는 다른 소설에서도 볼 수 있었던 이야기이지 않나 싶다. '음치 크리닉을 가다' 역시 한창 노래방이 인기였던 ,그래서 누구나 한곡쯤은 가수 빰치게 노래 할줄 알아야 했던시절에 노래를 배우기 위해 온 정선생의 이야기와 사무를 보던 소정의 이야기와 그녀의 시선이 엇나갔음을 소설 말미에 알게 되었을 때의 반전은 재미있었지만 그 역시 그녀가 가진 고민이 묻어나와 조금은 아쉬었다.
누구나 삶의 한순간 고민했고 그것으로 인해 무엇을 하는 것에 있어서 나의 삶에 또는 다른 이에게 미안한 경우가 있다.아마 그녀의 젊은 날도 다른 선배들이 겪었던 고민과 변화하는 세대가운데 나오는 자본성앞에 고민했던 듯 싶다.
'루이뷔똥'의 경우 상당히 인상적이 었다. 프랑스 루이뷔똥 매장에서 한사람에게 하나만 팔다는 사실과 그 당시 많은배낭여행족들과 얽힌 장사이야기를 배경으로 세미 ,판수, 연변댁이 다른 시선들 내용과 결말은 이 소설집에서 꽤 괜찮은 작품인 듯 하다.
김윤영의 소설은 참 재미가 있다. 이야기의 구조도 잘 풀는 듯 하고 내용또한 복잡하지 않고 인간의 심리묘사도 어렵게쓰지 않아서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작품들도 궁금하다. 10년이 지난 후 그녀의 소설은 어떻게 변했는지.. 특히 '내집 마련의 여왕'같은 제목의 소설을 쓴 작가의 변화가 자못 궁금하다. |
|
이름난 작가의 소설집이 아니면 소설집은 잘 읽지 않는 편이였는데, yes24에서 책을 검색하다 '루이뷔똥' 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책에 이끌리게 되었고 그 이끌림을 이 소설집을 읽게 하게끔 만들었다. 70년생의 작가, 김윤영. 너무나 낯선 작가이고 그리 많은 나이의 작가도 아니지만 이 소설집에 첫 소설이자 책의 제목인 '뤼이뷔똥' 을 읽고 나니 많은 분들의 리뷰에 깊이 동감하게 되었고 새로운 선택에 만족하게 되었다.
몇 년 전 프랑스 빠리에 가본 적이 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명품이니 하는 물건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없었고 동행인들이 명품을 보며 하나라도 더 구입하고저 모습에 있는 자들의 자랑이거니 하며 씁쓸한 마음을 삼키고 왔었다. 소위 있는 사람들은 명품이라 하면 으례 무조건적으로 구입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과연 명품이 무엇이길래? 이 소설에서는 그런 모습들이 나타내어져 있다. 명품족을 비난하는 것이 아닌, 그 속에서 어우러진 사람들의 삶과 흑과 백의 모습이 깔끔하게 그려져 있다. 루이뷔똥 뿐이 아닌 전반적으로 소설집에 수록된 작가 김윤영의 문체에서 느낄수 있는 느낌이다. 여러가지 소재들과 새로운 분야들...에 대한 개척과 한 작품 작품들이 정성이 있기에 읽는 눈이 즐겁게 만드는 소설집이다. [인상깊은구절] 왜 늙은 동양 여자가 길 바닥에 앉아 울기만 하는지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다. 왜 그 여자가 시커매진 가방을 끌어안고 넋나간 얼굴을 하고 있는지, 그 사연 역시 아무도 알지 못했다. 뉴욕 문화 쎈터가 무너진 바로 그날의 일이였다. |
| 창비신인상을 탄 작가의 이력과 출판사를 믿고 책을 골랐다. 역시 믿음을 배반하지 않았다. 아직 책을 다읽지 못했다. 첫편인 루이뷔똥을 이제 막 끝냈다. 세미와 판수와 영변댁, 누구도 미워할 수 없고 그렇다고 동정만 할 수도 없는... 하루하루 목적도 없이 바쁘게 살아갔던 세미, 배경없이 출세할 수 없는 한국사회를 벗어나고자했던 판수 그리고 우리의 새로운 이웃 영변댁... 9.11 테러가 났던 날 이들이 겪은 일에 대해 우리는 누구를 탓할 것인가. 솔직히 내가 보기엔 여기에 나오는 인물 누구도 도덕적으로 선하다고 할 수는 없다. 역시 테러를 가한 사람이나 당한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 책을 끝까지 다 읽은 다음에 다시 생각 해봐야겠다. 등장인물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며 작가의 재기발랄한 글솜씨가 지루한 줄 모르고 책장을 넘기게 된다. 첫작품이 이 정도니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되고, 해가 갈수록 그 깊이를 더해가기 바라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