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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야망을 위한 명분에 죽어가는 젊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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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프랑스의 전운이 감돌던 1790년대 상선,[인간의 승리]의 한 선원이 징집되어 영국의 74포 전함 [벨리포텐트]를 탄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선원이지만, 이를 참지 못하는 하사관의 모함으로 반역죄에 몰린다. 엉겁결에 내지른 주먹은 하사관을 죽게 만들고, 함장은 [배의 안전과 영국의 안녕]을 위해 그를 교수형한다. 한 시대에는 그 사람이 감당해야 할 숙제가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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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프랑스의 전운이 감돌던 1790년대 상선,[인간의 승리]의 한 선원이 징집되어 영국의 74포 전함 [벨리포텐트]를 탄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선원이지만, 이를 참지 못하는 하사관의 모함으로 반역죄에 몰린다. 엉겁결에 내지른 주먹은 하사관을 죽게 만들고, 함장은 [배의 안전과 영국의 안녕]을 위해 그를 교수형한다. 한 시대에는 그 사람이 감당해야 할 숙제가 있게 마련이다. <백경>을 쓴 허먼 멜빌은 1819년부터 91년까지의 미국역사를 산 선원이고 작가이면서 룸펜이었다.그 동안 미국은 영토확장, 골드러시를 거쳐 연이은 패권의 확대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가장 큰 사건은 1861년부터 65년까지의 동족상잔의 남북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명분을 내건 실리의 전쟁이었고, 수많은 유나이티드 스테이츠(그가 탔던 배) 국민의 목숨을 앗아간 피의 잔혹극이었다. 그의 시대 역시 몇사람의 야망을 위한 명분 때문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시대였다. 그런 일을 수행한 함장 링컨도 빌리버드의 축복에도 불구하고 머스킷 총탄에 숨을 거둔다. 허먼 멜빌은 분명 비딱한 사람이다. 어떤 명분도 그를 설득치 못했고 그런 속보이는 명분에 놀아나는 종교도 불만스러웠다. 그 자신이 한번도 평생 갈망하던 권력의 중심부로 들어가지 못하고 명예도 얻지 못한, 주변의 인물로 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선원의 순진한 눈으로 본 음흉하고 꼼수 많은 뭍은 여전히 그에게 낯설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그에게 마지막 유작인 이 작품은 그래서 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에이합선장의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s***y 2004.02.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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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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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쓴 허먼 멜빌은 모비딕을 쓴 작가이다. 그는 아주 고집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쌓아온 증오심을 작품에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소설은 철학적이고 비극적이며 오만하지만 실제적인 소설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의 소설이 미국 상징주의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표현되는 것 아닌가 싶다. 이 빌리 버드라는 소설도 그러한 면을 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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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쓴 허먼 멜빌은 모비딕을 쓴 작가이다. 그는 아주 고집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쌓아온 증오심을 작품에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소설은 철학적이고 비극적이며 오만하지만 실제적인 소설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의 소설이 미국 상징주의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표현되는 것 아닌가 싶다. 이 빌리 버드라는 소설도 그러한 면을 담고 있다. 영국 해군의 군함에 의해서 강제 징집을 당하게 된 빌리 버드는 군함 벨리포텐트에 합류하게 된다. 빌리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성실하게 일하는 자세로 다른 선원들의 신뢰를 얻어낸다. 그러나 그의 선임 위병 하사관인 클래 가트만은 내심 그를 못마땅해한다. 클래 가트는 보통의 수병들과 달리 병사들을 실내에서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자로, 돌출된 턱만 제외하면 그런대로 말끔하다. 빌리에게는 왠지 모를 증오심을 느끼며 언젠가는 제거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클래 가트는 빌리를 선상반란에 엮인 것처럼 꾸며내어 함장에게 보고한다. 함장은 빌리를 좋게 보고 있었으나 선상반란이라는 중대한 일을 없었던 것처럼 할 수는 없으므로 삼자대면을 하기로 한다. 그 자리에서 클래가트가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것을 알게 된 빌리는 분노한 나머지 클래가트를 때리고 클래가트는 죽어버린다 함장은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어쩔 수 없이 빌리에게 교수형을 내린다. 이 소설은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은 것 같다. 주요 주인공들에게 대입하자면 여러 상황들을 대입할 수 있어 보인다. 종교적으로 대입해서 볼수도 있고 순수와 타락의 관점에서도 볼 수 있고 성애적 관점에서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여러가지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작가의 역량이 아닌가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비어선장의 판단과 행동이라고 생각하는데 다양하게 보일 수 있는 여러가지 해석에서 함장의 행동은 공통적으로 비겁함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언뜻 공정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로지 결과 만을 보고 그 과정이나 본질에 대해서는 회피하는 것과 같다. 그로 인해서 사건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에 도달하지 못하고 그저 나열에 불과하게 되어버렸다. 그것을 귀찮아서 라고 봐야 하는지 은폐를 위한 공작이라고 봐야 하는지는 아님 둘 다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것은 비겁함이다. 그러나 결국 진실은 사라지지 않고 언젠 가는 돌아와서 다시 판단을 기다리게 될 것 이다. 그 때는 더 큰 부담이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반란 법에 의거하여 재판을 하고 있소. 자식이 아비를 빼닮을 수밖에 없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반란 법은 그 정신적 모체인 전쟁을 빼닮았소.... 전쟁은 정면만을, 다시 말하자면 외형만을 주목한다네. 그리고 반란 법도 전쟁의 자식으로서 아비를 본받아 외형만 바라본다네. 버드에게 범죄 의사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네

-갑판장의 두 부하가 죄수의 몸뚱어리에 대한 마지막 준비를 재빨리 끝마치자, 예수처럼 다 이룰 순간이 눈앞에 다가왔다. 빌리는 고물 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죽음을 한 발 남겨두고서 그의 입에서 나온 유일한, 조금도 더듬지 않고 나온 말은 다음과 같았다. “비어 함장께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

d********r 2022.08.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