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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이 물고랑을 따라 들의 안쪽으로 실려와 이 들에서 부는 바람 속에는 벼가 익는 냄새에 갯내음이 스며 있다. 늙은 하천은 선연한 감수성으로 아득히 멀어서 보이지 않는 바다와 교접하고 있다. (자전거 여행 2 서문 중에서) 왜 책 제목이 <바다의 기별>일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관찰력과 표현력의 극치를 보여준 <자전거 여행2> 서문에 '바다의 기별'이란 말이 나온 것을 발견했다. 한강 하류인 일산에 살면서 자전거를 타고 서해로 가서 갯벌 이야기를 듣는 작가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비록 서울 토박이로 태어나 도시에서 살아온 작가지만 그의 삶과 생각은 저 멀리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 나아가 인간과 인간의 연결, 그것의 매개가 되는 말과 글을 통한 소통에 대한 고민이 이 책에 많이 들어 있다. <바다의 기별>은 작가의 성장 과정과 글쓰기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자전적 에세이집이다. 김훈은 문장의 조사 하나까지도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글쓰기를 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미사여구 하나 없이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배경과 마음의 흐름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희망이 섞인 내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허용하지 않는다. 사실과 의견을 분명히 구분하자는 것이다. 그의 글은 임진왜란 당시 그날 그날 일어난 일을 객관적으로 적은 이순신의 <난중일기> 스타일이다. 배경 설명 하나에도 사전을 찾고 행정자료를 참조한 후에 정확하다는 확신이 들어야 사용한다. 하지만 사전이 제시하는 의미풀이도 동어반복일 뿐 저자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는 설명을 찾기는 쉽지 않다. 어린시절 성장과정에서 배태되고 기자생활을 거치면서 확립된 직업의식의 반영일지도 모르겠다.
제2부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는 경건한 자세로 참된 삶의 의미를 고찰한다. 기자시절 수많은 화재현장을 함께 다니며 보아왔던 소방관들의 죽음을 통해 인간은 결국 고립된 존재로서는 살아갈 수 없고 다가오는 누군가의 인기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재난의 한복판으로 달리는 소방차의 소리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실천하는 살아있는 목소리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제3부 '말과 사물'은 김훈 작가의 언어선택에 있어서의 고민을 엿보게 해준다. 글이나 말은 소통의 기본인데 정확한 소통을 위해서는 사실과 의견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이런 글쓰기의 정수를 보인 '난중일기'를 접한 저자의 감격 등이 느껴진다. 그의 글쓰기가 왜 그렇게 치열한지를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부록으로 그의 소설과 소설집 서문, 에세이집 서문, 수상소감들이 소개된다. 그의 전 작품세계를 조망할 수 있다. 연필과 지우개를 양손에 들고 한 자 한 자를 써내려가다가 지우고 다시 쓰는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때로는 휘몰이 장단이 되고 때로는 진양조에 빠져 온몸으로 글을 쓴다. 김훈의 여러 책들을 읽다 보니 같은 에세이 글이 여기저기에 같이 보인다. 그래서 이미 읽었던 글을 다시 읽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글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힘있게 다가온다. 전업작가가 아니더라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의 글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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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절판된 초기 수필집을 구하기 위해 3년 전 종로의 중고서적 방을 매일 출근하디시피 했다. 그 덕택으로 구하고자 했던 김훈의 초기 수필집을 거의 구할 수 있었다. 이 책도 그 중의 한권이다, 어린 시절 맛있는 음식을 섣불리 먹지 못하고 아껴먹었던 기억처럼, 어렵게 구한 책이다 보니 쉬 읽지 못하고 아껴두었다. 그저 서고에 꽂힌 책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것으로 대신했다. 아끼고 아끼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을 작정으로 말이다. 헌데 작가가 최근에 새로운 책 《라면을 끓이며》를 출간하면서, 이전에 출간되었지만 절판된 책 중 일부 글을 재인용했다. 그리고 기존의 글들을 버린다는 취지의 머리글을 썼다. 아끼다 똥 된 것이다. 글은 작가의 자식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자식 중 일부만 취하고 나머지는 버리겠다고 하니 나머지 글들은 애비 잃은 자식의 존재나 다름없이 되었다. 하여 그동안 아까워서 읽지 못하던 이 책을 서둘러 꺼내어 고아가 되기 전 글들을 만나봤다. 『바다의 기별』은 2008년도에 출간된 후, 출판사의 문제로 인해 바로 절판되었다. 그런 이유로 이 책에 실린 글은 독자들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김훈을 이해하기에는 최고의 책이 바로 이 『바다의 기별』이다. 평소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작가이지만, 기본적으로 수필은 소설과 달리 작가의 삶의 이야기가 깃들여야 진정한 수필이라는 소신처럼 많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훈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칼의 노래》나 《현의 노래》를 쓰게 된 이유부터 가족에 관계된 이야기까지 말이다. 김훈의 칼의 노래는 작가가 대학시절 본 난중일기에서 받은 감흥을 표현한 것이다. 그가 난중일기를 보고 느꼈던 감흥이 그의 가슴속에서 숙성되어 세상에 나오기까지 37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또한 난중일기의 첫 문장인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에 얽힌 에피소드도 들려준다. 이 외에도 김훈의 다른 작품의 뒷이야기며, 기자시절 잊지 못할 박경리 작가와의 인연, 작가에게는 지울 수 없는 문신 같았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김훈이 가진 문장의 간결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그 문장이 가진 강함의 원천이 어디인지, 그의 작품 속 소재들이 어떻게 발굴되는지,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현실 속에 발을 딛고도 평탄함을 외면한 채 왜 그리도 힘든 길들을 선택하는지에 대한 이유들이 서술되어 있다. 그런 모든 시작은 《난중일기》였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한 줄의 글을 쓰기위해 관련 전공서적을 찾아 공부하고 또 공부하는 그의 노력이 지금의 김훈의 글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시작은 바로 영문과 2학년 때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이다. 일체의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적으로 기록해 간 난중일기야 말로 김훈의 글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사전이다. 난중일기가 가진 일체의 감성을 배재하고 사실성에 입각한 글을 그는 닮고 싶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재가 왜 역사적인 인물들이 주가 되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김훈은 말한다. 바다를 보면서, 썰물과 밀물의 흔들림을 보면서 사랑을 생각하고, 강을 보면서 정맥을 생각한다고. 썰물 후에 남은 뻘밭은 사랑이후의 애달음을 불러오고, 강이 바다에 다다르는 모습을 보며 푸른 정맥이 여인의 겨드랑이 사이로 사라짐을 생각한다. 미지의 세계인 여인의 겨드랑이는 정맥의 종착역이며, 강의 종착역이다. 그 이후의 일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이다. 강물은 바다로 흘러가 모든 것을 끝내고, 바다는 강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강의 소멸은 어쩌면 강의 죽음의 다른 이름이고, 그 죽음은 바다라는 생명의 지속을 보장하는 원동력이다. 즉 소멸은 소멸이 아니다. 그러니 죽음 또한 죽음이 아니다. 그래서 죽음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남은 생명들에게 베푸는 최고의 보시인 것이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의 소멸 또한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정맥같은 강줄기가 사라지는 바다와 정맥이 사라지는 은밀한 겨드랑이 속의 미지의 세계는 소멸의 이면에 곁들인 육신의 농염함을 곁들인다. 김훈의 글 중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 바로 “삶은 풍화이며 견딤이며 또 늙음이다. 살아서 무엇을 이룬다는 일도 그 늙음과 견딤 속에서만 가능하다.”이다. 여기서 풍화는 바로 작가 자신을 말한다. 작가는 글은 몸으로 쓴다고 했다.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글은 몸을 갈아서 만든 먹으로 쓴다. 그러니 글을 쓰는 이의 삶이야말로 풍화이다. 또한 견딤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이지만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살았던 작가의 아버지, 그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삶은 시대의 아픔을 그저 온몸으로 견디는 것이었다. 어찌 할 수 없는 역사의 도도한 물결에 그저 견디며 버티는 것이었다. 하지만 삶이란 이런 견딤과 늙음이 주는 축복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이 작가의 문장이 주는 깨달음이다. 그러니 삶이 힘들다고 고달프다고 애닳아 할 것이 아니다. 삶은 그런 과정을 통해 궁극의 목적을 향하니 말이다. 이렇듯 이 책은 김훈이 그동안 썼던 작품과 문장, 그리고 그가 관심을 두는 분야가 어디인지 가장 진솔하게 표현한 책이다. 마치 김훈의 자술서 같은 책이다. 그래서 김훈을 이해하기에는 최고의 책이기도 하다. 그러니 작가는 버리겠다고 한 이 책속의 글을 나는 버리지 못하겠다. 이 책을 만난 이후의 김훈과 이전의 김훈이 내게는 같은 사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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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무도하를 통해 그의 흔적을 되짚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던적스러운 삶에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줄 거란 기대가 무참히 깨지긴 했지만, 왜 우리 시대에 김훈의 자리가 높아보이는지, 그 치열한 글쓰기에 고개 숙이게 되는지 잘 알게 했던 소설. 이후 김훈을 좋아하는 직장 선배에게 책 선물을 받았다. 이별 선물치고는, 그 이별을 회상하며 이 책을 읽기에는 너무 마음이 아프다.
김훈의 에세이집 '바다의 기별'. 김훈. 김훈식 글쓰기. 김훈식 책읽기. 왜 김훈일까? 이 책을 통해 난 내내 마음 한켠이 불편해지고, 아파오고, 급기야 책 속에 길이 있다란 작은 믿음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무엇이 이토록 그를 치열한 글쓰기의 세계로 인도했을까? 이 책을 통해 약간이나마 그 궁금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바다의 기별'에서는 김훈의 삶, 세상을 향한 시선을 담은 글들로 채워진다. 아버지에 대한 회상, 딸에 대한 안도, 글과 몸과 해금, 시간의 무늬 등의 소설쓰기의 단초를 제공한 오브제 등. 아버지에 대한 얘기가 담긴 '광야를 달리는 말' 부분은 가부장인 자신의 원형을 아버지에게서 찾는다. 신문기자이자 소설가였던 김훈의 아버지.
내 아버지는 공회전과 원점회귀를 거듭하는 한국 현대사의 황무지에 맨몸을 갈았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좌충우돌하면서 그 황무지를 건너갔다. 건저가지 못하고, 그 돌밭에 몸을 갈면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꼭 허클베리네 아버지 같아요." "광야를 달리는 말이 마구간을 돌아볼 수 있겠느냐?" 아버지에게 말을 달릴 선구작의 광야가 이미 없다는 것을 나는 좀더 자라서 알았다. 아버지는 광야를 달린 것이 아니고, 달릴 곳 없는 시대의 황무지에서 좌충우돌하면서 몸을 갈고 있었던 것이었다. - P28
딸 아이를 바라보며 행복을 정의했던 '무사한 나날들'은 그의 생에 대한 태도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 아이는 아마 월급쟁이로 평생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진부하게, 꾸역꾸역 이어지는 이 삶의 일상성은 얼마나 경건한 것인가. 그 진부한 일상성 속에 자지러지는 행복이나 기쁨이 없다 하더라도, 이 거듭되는 순환과 반복은 얼마나 진지한 것인가. 나는 이 무사한 하루하루의 순환이 죽는 날까지 계속되기를 바랐고, 그것을 내 모든 행복으로 삼기로 했다. -P33
2부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에서는 인간의 삶에 대한 경건함과 살아볼만함을 단상한다. 기자시절 119 구조대원들과 동행했던 기억을 삼키며, 수많은 대원들의 죽음을 목도하며 써내려간 줄글.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내달리는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에 인간의 삶, 그 아름다운 심성과 가슴 아픈 내지름을 읊조린다.
3부 말과 사물 부분에선 김훈이 강연했던 내용을 본인이 직접 재구성하여 정리한 것이다. '난중일기'를 접한 대학시절, 칼의 노래가 완성되기까지 자신 인생의 이 한권이라 말한다. 미사여구가 없는,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글쓰기. 단순히 기자출신의 작가라 폄하했던 내 자신의 안목없음을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했다. 또 하나 '말과 사물' 부분은 특히 뼈아프다. 법전의 예를 들며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적인 원리를 인정하지 않는 그의 모습. 조사 하나에도 치를 떨며 밤을 지새워야 하는 고단한 언어. 한글. 그에게 한글은 여전히 발전해야 할 학문의 하나로 다가온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의 압권은 권말부록에 실린 그의 책 서문과 수상소감 엮음이다. 그중 '문학기행' 부분은 너무나 가슴 아프게 다가와 한동안 책을 내려놓아야 했다. 신문사 시절 문학과 현장, 문학과 국토의 전체가 연결되는 대형 칼럼 프로젝트를 이야기하고 있다. 대하소설 '토지'와 경남 하동 지방의 고색 창연한 옛집을 마주하며 느꼈던 편집장의 기획으로 시작된 프로젝트. 그의 후배인 박래부 기자와 그가 써내려간 문학기행은 김훈 자신의 턱없이 부족한 독서량, 기사와 문학의 간극에서 오는 다름, 세상에 대한 그만의 시선을 온몸으로 밀어올려 진행한 프로젝트다.
내 살피건데, 무릇 필생의 업을 받아 태어난 자의 운명에 네 가지 크나큰 고통이 있으니, 그것은 책읽기와 글쓰기와 말하기와 말 듣기이다. 내 천박한 독서량 전체를 걸고 말하거니와, 책 속에는 길이 없다. 글 속에는 길이 없다. 글 속에는 길이 없고, 글이 있을 뿐이다. 말 속에는 길이 없다. 길은 세상에 있다. <문학기행>은 책 속의 길과 세상의 길을 연결시키려는, 우리들의 가엾고 가망 없는 꿈일 뿐이다. 나는 나의 비틀거림을 응시하고 있다. 단지 헤맬 뿐이다. P197
김훈만큼 혼을 담아, 몸으로 글을 쓰는 작가가 있을까? 영혼의 울림처럼 글의 공명을 누구보다 갈구하는 작가가 또 있을까? 그래서 글과 몸과 해금은 김훈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글을 쓸 때 휘몰이 장단으로, 또한 진양조로, 몸으로 쓴다.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없다면 단 한줄도 쓰지 못한다는 김훈. 작가 김훈을 알아가며, 참 많은 부분을 느끼게 된다. 그의 그러한 가열찬 글쓰기가, 환갑을 지나 죽기 전에 2~3편 겸손하게 쓰겠다던 그의 수상소감이 늦은 새벽 해금의 공명처럼 내 마음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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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문학작품을 읽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단순하게 시간 달래기 개념인 흥미위주로 책을 손에 드는 경우도 있을것이고 그 문학작품속에 자기 자신을 오버랩하여 대리만족이나 가슴속의 울분을 토로하는 장으로 활용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약간 더 고상한 방면으로 몰고가면 필자의 사유를 나의 사고야 비교해 보는 재미를 느끼는 이들도 있다. 이유야 어떠하던 간에 문학작품이 주는 즐거움은 이루 말할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에세이를 접하게되면 여타의 문학작품보다 아주 적나라하게 필자의 사유를 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어떤 작가는 에세이를 쓰는것이 가장 힘이 든다고 하기도 한다. 그 만큼 필자의 사유가 전라의 모습으로 대중들의 눈앞에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으로 잘 알려져 있는 김훈은 속칭말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언론인의 길을 걷다가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문단에 등장하여 많은 화재거리를 남긴 인물이다. 대한민국 문학관련 상을 휩쓸다시피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신간이 나올때 마다 각종 언론이나 출판계가 술렁일정도로 우리 문학계에서 그의 입지는 이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김훈은 필력이 그다지 긴 작가가 아니다. 또한 그의 작품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느낄 수 있듯이 그의 문체는 정말 사실적이다. 그래서 그의 글은 짧막하다. 여타의 미사여구나 다소 이해심을 갖고 읽어야 그 뜻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어려운 단어를 선택하지도 않는다. 특히 아름답고 꿈결같은 형용사적 묘사기법은 찾아보기도 힘들다. 그러다보니 너무 딱딱하고 남성적이다는 뉘양스도 풍기곤 한다. 한마디로 우리가 알고 있었던 문학적인 멋이 없는 작가이다.
그런데 왜 지금의 우리는 김훈의 작품에 대해 열광하고 있는가? 아마도 그 간결함속에 필자가 말하고 싶은 생각이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에세이를 통해서 다시금 필자의 사유 특히 글쓰기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13편의 짧막한 글을 통해 본 필자의 생각은 글을 통한 대중과의 소통을 말해 주고 있다. 필자가 강조한 의견과 사실의 경계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의견과 사실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과연 무엇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소통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있는가? 말하기만 하고 듣기를 못하는 세상속에서 의견은 무엇이며 사실은 무엇인가에 대한 상념들을 이번 에세이를 통해서 필자가 그동안 피력해왔던 일관된 소통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것 같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 한국전쟁의 기억, 신문사 초년병시 김지하와 박경리에 대한 추억등 다른 작가가 이런 기억을 글로 표현했다면 왠만한 이들 눈물 한바가지는 뽑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서술을 읽다 보면 아주 단순하게 마치 사진속의 한 컷을 보듯이 다가온다. 그냥 내 앞에 있는 사실을 필자는 기록이라는 형태로 묘사한다. 다른 군더더기 없이 필자 자신의 느낌을 그대로 전할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그 당시 그 현장에서 나의 눈으로 직접 그 현실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해서 더 눈에서 눈물은 흐르지 않지만 가슴속에서 한 없이 울게 하는 것 같다. 아마 필자 자신도 그랬을 것이다. 이게 필자가 그동안 그의 작품에서 말하고자 했던 소통인 것이다. 문학작품을 통해 독자들과의 소통에는 그 어떠한 장애물이 없어야 하는다 생각 그리고 소통을 방해하는 다른 여타의 언어는 필요없다는 것.
이번 에세이를 접하면서 필자의 사유를 다 알수는 없지만 적어도 필자가 문학작품을 쓰는 이유는 알게 된 것 같다. 한쪽이 막힌 벽면에 대고 메아리없는 말만 하는 시대에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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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화두로 책은 시작된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결국 '사랑' 이라고 적어 놓은 그의 노트에는 하다 만 단어 몇 글자만 굴러다닐 뿐이다...그는 빈약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사랑에 대한 자신의 감성이?
책을 펼치는 순간, 책이 갖고 싶었다. 책을 빌려왔기 때문에, 책을 갖다 줘야 해서 가질 수 없었다. 이 책은 절판이다. 알라딘 본점에 중고로 잠깐 떴는데, 다른 책이랑 같이 담는 도중 팔렸다. 알라딘 광주점에 중고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가보려 했더니 또 팔렸다. 김훈의 책을 출판하던 출판사는 몇년 전 도산했고, 김훈의 소설들은 문예출판사인지 어딘지에서 다시 출판해서 팔고 있는데, 이 책은 그러지 않기로 한 모양이다.
딸 아이는 아마 월급장이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진부하게 꾸역꾸역 이어지는 이 삶의 일상성은 얼마나 경건한 것인가. 그 진부한 일상성 속에 자지러지는 행복이나 기쁨이 없다 하더라도, 이 거듭되는 순환과 반복은 얼마나 진지한 것인가. 나는 이 무사한 하루하루의 순환이 죽는 날까지 계속되기를 바랐고, 그것을 내 행복으로 삼기로 했다. -무사한 나날들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는 술 출판사가 토지를 완간하고 나서 박경리 선생님 울 추억하는 여러 문인들 글을 모아 간행한 [수정의 메아리] 수록되어 떠는 글이다. 그 겨울 밤 그는 기자로서, 김지하의 출감을 취재하기 위해 영등포교도소 앞을 서슬 퍼런 맹추위속에서 찬 짬뽕국물로 허기를 때우며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 때 김지하의 장모였던 박경리가 10개월된 아기를 들쳐업고 언덕을 서성되는 것을 목격하였다. 시대적 아픔을 회고하는 글자 하나 하나가 까닭모를 설움 같은 것들로 밀려 와서, 울음을 삼킨다.
그것은 나에게 감염되는 그 여인들의 모성이었으며 허름하고 남루한 그 풀포기와도 같은 무력과 무명의 모습이야 말로 그 여인네의 힘의 모든 원천이었음을, 가로등 하나 없는 형무소 앞 광장은 캄캄하게 어두웠고 기온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눈물이 왈칵 나와버린 건 그 춥고 긴 하루의 전투를 마친 김 훈이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그 사실을 전하던 장면에서였다.
잠자다 일어난 아내에게 그날의 박경리에 관해서 말해주었다. 아내는 울었다. "아기가 추었겠네요"라고 말했다. 춥고 또 추운 겨울이었다.
김훈의 고향은 서울이다. 서울 사대문 안에서 자라고, 조금씩 조금씩 밀려 나가 지금은 일산에 터를 잡고 있지만, 그의 고향은 여전히 남대문이 있었던, 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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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한 고민은 지칠줄 모른다. 111
그는 조국에 대해, 아버지를 통해 들은 , 피난 열차 지붕에 매달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던 3세 때의 경험을 적었다. 졸다가 떨어져 죽고 바람에 날라가서 죽고 터널 천정에 부닥쳐 죽고, 그렇게 무수히 많은 아이들이 피난 열차의 지붕에서 죽어갈때 객실 안에는 나라의 고관대작들이 셔퍼드와 피아노, 식모와 요강까지 싣고 가던 나라, 그가 세살때 그의 조국은 그런 나라였다고, 그런 조국을 증오하며 살았다고, 용서할 수 없는 조국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신념에 가득 찬 자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는 오히려 의심에 가득찬 자들을 신뢰한다. 언어가 완강한 돌덩이처럼 굳어져 다른 언어에 의해서 절대로 부서질 수 없다면 그것은 언어가 아니고 무기다라고 말한다. 끝까지 파고 들어가는 그의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덧 희미한 진리의 그루터기에 그리움처럼 닿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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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언제나 같은 패턴이다. 바짝 마른 입술에서 나오는 갈라진 목소리처럼 그의 글은 딱딱하게 한이 서려있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날카로운 수사도 그 흔한 인용조차도 없이 그저 시간의 흐름만을 쫓는듯 무미건조한 진행은 언제나 그랬듯 우리를 그저 차가운 절망의 나락으로 인도할 뿐이었다. 희망도 없이 내일에 대한 그 어떤 기약도 없이 보이는 그대로 그는 표현하길 좋아한다. 그 자신 조차도 겨우겨우 적막이 지나간 세월의 흔적아래에서 조금은 담담히 현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자전거를 탈때나 겨우 즐거움을 표현하는 작가 김훈이 오랫만에 에세이집을 펴냈다. 지금껏 작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으려 하던 그가 이 책 <바다의 기별>을 통해 자신의 삶과 가족 그리고 언제나 힘들기만한 치열한 글쓰기의 일상과 일평생 그의 밥벌이였던 기자시절에 대한 기억 등을 조용히 들려주려 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작품을 통해서 작가와 만난다. 작가의 글은 그의 사상이며 또한 영혼이기에 그가 써낸 작품은 독자와 작가가 소통하는 공간이며 독자는 작품을 통해 작가의 세계를 탐구해 나간다. 그런면에서 보면 작가 김훈은 누구보다도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절망과 고통만을 보여주는 말라버린 그의 글에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어쩌면 그가 우리가 기억하고 싶지않은 우리의 치부를 들춰내는 남다른 능력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닐까. 아버지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전하면서 그는 조용히 아버지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문학기행>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어쩌면 그가 보여주는 가장 완곡한 아버지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만든다. 딸의 성장을 바라보며 느끼는 경이 그리고 장모의 죽음을 통해 그는 생명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각자가 지닌 생명은 당연히 개별적이겠지만 누구나가 맞이하는 죽음은 보편적이다. 하지만 결코 분리되지 않는 생로병사를 통해 결국은 죽음 역시도 개별적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그는 절망하기도 한다.
'고향과 타향'을 통해 그가 일산에 산다는 것을 기억해 낸다. 원래 베스트셀러를 즐겨 읽는 편이 아니었는데 몇 년전 어느 날 서점에서 <남한산성>이 손에 들렸고 단 하루만에 다 읽어 버렸다. 그리고 한동안 소설이 주는 그 절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적이 있다. 누구나 다 아는 그 처절한 이야기를 그렇게까지 살아 숨쉬는 글귀로 표현한 그가 무서웠다. 무엇보다 무서운 글귀는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였다. 그래서 책을 던져 버렸다. 그 기억이 조금 사라질 무렵 후배가 사는 일산의 어느 주점에 갔다가 자리 앞에 놓여 있는 작은 깃발을 하나 보았다. '김훈 선생님이 좋아라 하는 자리예요.'라는 글귀가 자그맣게 적혀 있었다. 순간 떠오른 것은 작가 김훈이 아니라 우습게도 태권 V의 김훈이었다. 김훈도 모르냐는 주점 종업원의 경멸하는듯한 시선 때문에 때아닌 김훈 매니아 행세를 했던 생각이 갑자기 나기도 한다.
가끔 그의 글 서문에 나타나는 만경강이 늘 궁금했다. <칼의 노래>와 <밥벌이의 지겨움>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에서 그는 그의 글을 만경강에 바친다는 표현을 썼다. 마침 책 속에 수록된 '시간의 무늬'라는 글을 통해 조금은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힌트를 주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어렵고 난해한 글 속에서 그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일 뿐이다. 짧고 간결한 소설 작품을 통해 보이는 것만이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것임을 그가 알려주었기에 어쩌면 생명과 시간이 맞닿아있는 그 공간이 어쩌면 그에겐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게 하는 곳이 아니었을까라고 그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도심을 뒤흔드는 소방차의 행렬을 보며 그것이 인간이 인간에게 베푸는 절박한 신뢰이며 사랑이다라고 표현한 것은 어찌보면 대단히 감성적인 작가적 표현으로 들렸다. 하지만 그것이 그저 막연한 환상이나 기대가 아닌 유년시절의 기억에서 부터 기자시절 그들과 함께 겪은 체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는 그가 가진 인간에 대한 기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듯 했다. 오치균과의 대담은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작업인가에 대해 이야기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는 '회상'과 '말과 사물'이다. 그가 살아왔던 힘든 나날들을 그는 되내이며 그는 절망의 기억들이 그리 오래전 이야기가 아님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똑같은 절망속의 한 인간 이순신을 만난다. <난중일기>는 그의 영혼을 흔들었다고 표현할 만큼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술회한다. 그는 그제서야 소통과 단절에 대해 이야기 한다. 언어는 인간을 소통하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기도 하지만 우리시대의 언어는 이미 정의라는 이름으로 무기화되어 오히려 소통을 단념한 단절이 되어가고 있다고 그는 아쉬워 한다. 하지만 언어가 가진 허약한 소통력만이 우리를 좀 더 나은 세계로 인도해줄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말자고 그는 강조한다.
"만약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나에게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고귀함을 언어로써 증명하는 것이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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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에세이 <바다의 기별>을 읽고 연민을 느꼈다. 작가 인생의 황혼을 애써 맞으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훈이 누구인가.
기자와 작가에게 공통점이 있다.
저자의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회상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런데 환갑을 맞아서인가.
"저는 오십이 넘은 나이에 겨우 글쓰기를 시작한 신인입니다.
이번 에세이는 한 십 년 후쯤 나왔으면 옳았겠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장을 넘겼다.
책꽂이에 이 책을 꽂으면서 옆 칸을 비워두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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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글을 읽게 된 특별한 계기.
작가의 작품은 초창기부터 알고 있었지만, 책을 읽는 일은 썩 내키지 않았다. 그의 책을 지인에게 선물하고, 적지 않은 책을 읽기도 했지만, 그의 책을 읽고 난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무언가 사람들의 유명세에 끌려서 책을 읽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좀처럼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의 글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그의 강연을 듣고 난 뒤였다. 대학에 다니던 때 글쓰기 과목의 강좌가 있었고, 학기말에 시상식을 하는데 김훈 작가가 강연자로 초대되었다.
순박한 소처럼 큰 눈을 가진, 느릿느릿 어눌한 말씨를 가지고 있는 작가는, 글에서 보이는 단정적이고, 차가운 분위기와는 다른, 순박하고 유머넘치는 강연을 하였다. 보고서를 쓸 때,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을 말하는 것과 의견을 말하는 것을 구분해서 말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비결과 칼의 노래의 첫 문장에서 조사를 고쳐가면서, 한국어로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조사를 잘 공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대학에서 보낸 시절보다 거리에서, 시장에서 공부를 했다며, 글에 재능을 보이는 아들이 자퇴하려고 하는데, 하는게 좋을지 말아야 할지 묻는 부모의 질문에, 자신은 50이 넘어서 따로 공부하지 않고도 책을 냈다며, 그때 책을 내어도 늦지 않다고 이야기하였던 말도 떠오른다. 형용사와 부사, 수사를 쓰지않고, 주어와 동사, 목적어로 더 많은 감정의 표현을 전달해내는 작가의 글에 자기만의 깊은 철학이 담겨있음을 알게 된 후 그의 글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한 번 마음이 바뀌면 모든 것이 달라 보이게 마련이다. 자전거 여행에 소개된 곳을 따라 여행을 하며, 내 나름의 감회를 적어볼까 하던 차에, 그의 새로운 에세이가 출간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고흐 그림가 본문과 표지에 실려있고, 작가에 대한 이미지가 변했던 강연이 글로 적어져 채워져 있었다. 이번에 글을 남기면, 다음 작품도 읽고 글을 남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완전한 언어로 불안전한 세계에 사는 불안전한 인간에 대해 쓰는 작가의 글에, 서툰 감상으로 글을 채워본다.
# 수식어 없는 글들을 읽으며, 마음에 슬픔이 전해져 온다.
수식어 없는 글들은 딱딱하다. 마음에 와 닿기 보다, 머리가 먼저 반응해서, 옳고 그름에 먼저 반응한다고 생각했다. 수식어 하나 없는 그의 글을 읽는 동안, 해지고 어둠이 온 세상을 덮은 강 하구에 앉아 닿을 수 없는 사랑을 생각하는 한 사내가 마음의 스케치북에 그려졌다. 손목에 보이는 푸른 정맥, 동물원의 동물들의 이름, 시선 등의 소소한 소재들이 적힌 메모장을 뒤적이며, 사랑에 관한 슬픈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의 글에는 수식어가 하나도 없지만, 아련하고 애석한 마음이 흐르는 강물처럼 마음으로 전해져온다. 아름다운 불꽃과 총천연색의 화려한 빛깔로 눈을 현혹하지 않더라도, 단색으로 그린 투박한 그림 하나에, 몸과 마음이 반응한다고 할까. 그림으로 따지면, 수채화보다 수묵화에 닿아있는 느낌이다.
아버지와의 추억, 어머니와의 추억, 소방관 이야기, 칠장사, 시집과 화가에 대한 평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에세이집의 틀 안에 담겨있다. 작가의 다양한 호기심과 그 호기심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마음속의 의문들을 풀어낼 수 있다고 할까. 시집을 보면 좋다 나쁘다의 틀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생생한 체험들과 꼼꼼한 조사가 잘 조합되어 편안하게 읽기는 어렵지만, 깊이있는 글의 맛을 느끼게 한다. 나이 많이 먹은 장인의 꼬장꼬장한 성품이 담긴 물건을 사서 사용하는 느낌이다.
그와 동시대의 삶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그의 고충과 고난을 알기 힘들다. 슬픔과 고난과 괴로움의 늪 속에서 작은 희망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임꺽정과 산적들이 의형제를 맺었던 칠장사를 다녀와 남긴, <칠장사 기행>을 보면 이념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던 이가 아닌, 거부로서 삶을 살았던 임꺽정과 그의 삶에 대해 호의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완성되지 못한 민중들이 빚어내는 이야기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보인다고 할까. '정의' 에 뜻을 두기 보다는, 한평생 일상의 영원성을 지켜가고 싶었던 그의 로망이 있었기에, 그들에 대한 시선이 차갑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이념, 보이지 않는 이상에 대한 환멸이 강한 사내가 작품속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는 모습일거라 생각했다.
말과 사물이란 이름이 붙은 3장은 <회상>과 <말과 사물>은 저자의 강연을 기초로 저자가 다시 글로 적은 에세이이다. 저자의 삶에 대한 생각과, 조국을 바라보는 모습, 인생관 등을 잘 느낄 수 있다. 옹기장이 노인이 어떻게 옹기장이가 되었는지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라고 할까, 하나의 옹기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자기만의 철학과 고행등을 전해 듣는 것처럼, 그의 눌변의 이야기가 냉철하고 수식없는 글로 정돈되어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3장부터 부록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강연을 듣는 일은 쉬운 기회가 아니다. 내가 들었던 강연의 내용은 둘로 나뉘어 회상과 말과 사물에 나누어 소개되어 있었지만, 저자가 말했던 조사의 사용과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서 말하는 일만 잘해도 글쓰기의 절반은 잘 하는것이라 생각한다. 그 다음은 호기심을 키우고, 호기심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쉼 없이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동어반복을 피하려는 저자의 노력은 삶의 현물성이 것들에 대한 묘사와 표현으로 다음 작품에 소개될 것 같다. 이제까지 저자가 바라봤던 삶의 현상들과 이제 바뀌어 표현하려는 그의 의지를 볼 수 있었기에,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설레임을 안겨준 책과의 만남이었다.
책을 고를 때 사람들은 여러가지 기준으로 책을 결정한다. 30페이지를 읽어 볼 시간이 없을 때, 목차와 저자의 말을 보고 그 책을 읽을 것인지를 결정한다. 내가 읽었던 책 중 가장 저자의 말이 인상깊었던 저자 중의 한 명이었기에, 그의 저자의 글만 모아서 정리하고 싶었는데, <바다의 기별>에서 그런 수고를 덜어주었다. 오치균의 그림이 부록으로 소개되어 있는 것 또한, 그에 대한 에세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다. 독특한 부록이 마음의 기쁨을 더해주었던 책이다.
좋은 글은 누가 읽어도 마음의 울림을 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자신이 책을 읽을 연이 되었을 때, 읽는다면 책값과 시간이 아깝지 않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그의 글을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소리내어 읽으니 그의 말의 울림이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수상소감 앞까지 소리내어 읽고나니 하루 해가 저물어 버렸다. 하루를 이 책으로 보냈다. 나의 인생의 정해진 시간 중 하루의 시간이 그의 책과 함께 시간의 강물에 흘러갔다. 함께 하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책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