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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제목과 표지에서 뿜어져나오는 강렬한만큼, 내용 역시 강한 메세지를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을 한줄로 요약한다면 백인을 사랑했던 남동생이 살해당하자, 리 앤더슨은 백인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면서 백인여성을 죽이게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고 할 수 있겠다. 세부적인 내용으로 더 들어가면 이것은 꽤나 복잡해지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의 줄거리에 대해서 말한다면 흑인이지만 혼혈 계통으로 인해 금발에 하얀 피부를 갖고 태어나 백인처럼 보이는 리 앤더슨이 동생의 복수를 위해 백인들을 희롱하기로 마음먹는다는데서 출발한다.
그는 형 친구의 소개로 작은서점을 관리하는 일을 맡게되고, 지역 토박이 십대 여자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방탕한 생활을 시작한다. 서슴없이 여자아이들과 관계를 갖는다거나, 담배나 술을 제공하면서 삶을 즐기던 그는 눈에 띄는 부유한 가문의 애스퀴스 자매(진,루)들을 만나면서부터 계획했던 일들을 처리해나가기 시작한다.
중반부까지 읽는동안 이 책의 핵심내용에 대해서 뭐라 탁 찝어 말할 수가 없었다. 리 앤더슨의 문란한 성생활들, 방탕함 등을 보면서 이 소설의 주제를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물론 끝을 다 읽고서도 이 점은 조금 남아있긴하다. 내용의 절반이상이 성적인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자칫 잘못 해석할 우려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통해 이 책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거 같다.
책을 다 읽고나서 인종차별에 대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흑인인 동생이 사랑했던 백인여자의 부모에게 살해당했던것에 대해 앙심을 품었고, 리 앤더슨은 백인을 상대로 복수를 결심했기 때문에 내용은 얕잡아봤던 모양이다. 하지만 책의 중간부분을 통해서 알게되는것은 그가 무조건적으로 백인을 싫어한다고 할수는 없다는 것이다. 애스퀴스 자매를 향한 그의 복수를 통해 알 수 있는것은 부유한 백인에 대한 그의 증오심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하나의 주제로 정하기에는 조금 벅찬감이 든다. 인종차별을 넘어선 그의 심리상태 등을 나는 참 깊게 생각해보려 노력한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라는 직설적, 독설적인 표현아래 담긴 의미심장한 내용을 아직 다 이해하기란 힘들다. 하나하나 생각해보면 연결고리가 너무 많고,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읽은 후 쉽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사회적 편견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곰곰히 생각을 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남일 같지 않은 문제 인종차별, 흑백갈등, 편견에 대해서 다룬 책은 시중에 수없이도 많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먼저 읽었기에 가장 기억에 남을듯하다. 삐뚤어질수밖에 없었던 그를 이해할 수 없다가도,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또 이해못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 가족중 누군가 그런 상황에 놓여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무시하고 경멸하는것 그 이상 도가 지나쳤을까? 잘 모르겠다.
인종차별문제에 대해서 어쩌면 나는 무관심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나서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누군가에게 차별적인 발언이나 대우를 하지는 않았는가?' 나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고있지만 어쩌면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차별을 했던 적은 없었을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스쳐지나가는 말들중에 무의식속에 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월등하다, 우월하다, 보잘것없다. 식의 발언이 누군가에게 비수가 되거나 상처가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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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표지에는 붉은 머리의 백인 여성이 도발적인 눈빛으로 독자를 노려보고 있다. 커다란 눈동자와 섹시한 입술로 짓고 있는 묘한 미소는 이 책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이 소설의 부제는 "20세기 누아르 소설의 고전"이다. 프랑스어로 '검다'라는 뜻인 누아르는 영화와 소설의 장르에서 곧잘 사용되는 용어로 누아르 소설이란 "음침하고 무언가 악의 그림자 같은 것이 느껴지는 복잡한 플롯의 탐정소설 "을 가리킨다고 한다. 흔히들 '홍콩 누아르'라고 하는 영화들이 대부분 조직 폭력배의 알력과 다툼을 그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누아르란 어떤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누아르 소설의 초기작이어서인지 탐정 소설의 분위기와 복잡한 플롯은 느끼기 어려웠고, 오히려 줄거리는 아주 간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처음 소설을 읽기 전에는 광고와 표지의 그림만 보고 주인공이 여자인 줄 알았다.
주인공 리 앤더슨은 어느날 가상 도시인 벅튼에 나타난다. 그는 클렘이라는 형의 친구에게 이 일자리를 얻었다. 리는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사연이 있다. 그 사연은 소설의 전편에서 서서히 밝혀지는데, 리의 모든 행동의 원인이 되고 이 소설의 큰 줄기가 된다. 리는 백인들에게 증오심을 갖고 있다. 리는 백인들에게 복수를 하고자 백인 여자들을 농락하기로 한다. 사실은 흑인의 피가 1/8이나 흐르지만 완벽한 백인의 외모를 갖춘데다가 아름다운 몸매와 약간의 경제적 여유, 뛰어난 기타실력으로 벅튼의 망나니 여자들을 정복해 가는 그에게 새로운 도전과제가 나타난다. 아름답고 도도한 부잣집의 두 딸들인 애스퀴스 자매들이었다. 애스퀴스 자매들은 그가 같이 놀다가 버린 주디나 지키와는 달랐다. 리는 이 둘을 농락한 뒤에 죽여서 동생의 원수를 갚을 결심을 한다. 그리하여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 둘에게 접근을 하지만, 그것이 그의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한 동안은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리의 행동을 이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작품 안에서 리가 보여주는 생각과 행동은 정상이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면서 그가 이루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백인들을 이 땅에서 없애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한 두명의 백인을 죽인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리도 알 것이다. 짧지는 않은 경험의 길이를 갖고 있는 나로서도 리의 행동은 스스로를 버리는 자학적인 행동으로 밖에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결국엔 가장 상처받은 이는 복수를 계획하고 실천에 옮긴 리였던 것이다. 누구든 미운 사람이 생기면 가장 힘든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 마음이 뿜는 독 때문에 스스로가 위험에 빠진다고 한다. 리는 스스로가 만든 구렁텅이에 빠져서 죽어간 셈이다.
가끔 작가의 의도나 글의 목적을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을 만나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는 나의 배움이 부족해서 그 내용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좀 더 자라서는 글의 내용이 너무 수준이 높아서 내가 잘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는 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얼마나 우스운 일들인지 모른다. 글이라는 것은 결국 읽는 사람이 이해한만큼 그 사람의 것이 되는 것이다. 한 가지 더 바란다면 누구나 이해하는 말로 쉽게 쓴 글이 가장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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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도저히 용서할수 없는 상대를 향한 증오심, 당장이라도 폭발한것 같은 분노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망자의 무덤에까지 욕을 보이고 싶을 정도의 사무친 원한이라면 그 골이 얼마나 깊을것인지 능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지나쳤던 제목이었지만, 이 소설을 끝까지 모두 읽고 나니 그제서야 제목이 품고 있는 그 뉘앙스가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시종일관, 오직 복수의 일념으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한 젊은이의 처절한 복수극이 펼쳐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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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에게 선물받아 읽을수 있게된 보리스 비앙의 책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입니다.
정말 도대체 누아르 소설이란 무엇인걸까요? 사실 고전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저인지라 보리스 비앙이란 작가에 대해선 처음 만나본 책입니다. 1900년대초 미국의 모습을 참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정말 이 시대에 미국은 이렇게 아주 심하게 많이 자유분방했던 것일까요?완벽하게 19금 딱지를 달고 출판되었어야할법한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의 미국도 그렇긴 하지만 이 시대의 미국은 제 상상의 범주를 벗어나는 아주 프리한 세상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주인공들만 그런걸까요?)
그리고 일단 굉장히 강렬한 작품입니다. 책의 스토리를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겉모습은 백인에 가깝지만 그 속은 흑인과 백인의 혼혈로써 자신 스스로 완벽한 백인이 되지 못한 주인공이 인종차별적인 백인들에 의해 사랑하는 동생을 잃음으로써 백인들에게 복수하고자 계획을 세우며 부유한 가문의 두 딸에게 접근해 그녀들을 살해할 계획을 세우는 이야기입니다.
사건의 본질은 복수라는 점인듯하나,(정말 복수인걸까요?) 책은 복수와는 별개로 주인공의 자유분방한 모습들을 많이 표현하고있습니다. 주인공의 섬세한 심리묘사나 주변인물들의 내면의 모습등은 어째서인지 찾아보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건 뭐 주인공 리 앤더슨이 카사노바도 아니고 눈만 맞으면 모든 여자들 눈에 하트 뿅뿅이니 어쩐지 영 대책없어보이기도 하고 영 주제를 벗어난 듯한 스토리 진행방식인것도 같지만, 이렇게 내면의 심리상태나 표현등을 배재한체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그려내는게 프랑스 누아르 소설이라고 하니..그저 무지한 저로써는 아..그러려는가보다. 해야지요.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사실..리 앤더슨은 왜 굳이 자신의 인생과는 전혀 상관도 없어보이는 부유한 백인 자매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일까.? 흑인인 동생이 백인소녀와 사귀다 그 부모에게 죽임을 당해서? 혹은 백인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싫어서? 그것도 아니면 흑인을 인간취급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싫어서? 어떤 이유에서든 리 앤더슨은 백인 사회에 대해서 복수를 다짐하고 그 첫번째 행동으로 그들이 혐오해 마지 않는 자신의 몸속에 흐르는 흑인의 피를 감춘채 그녀들과 성관계를 맺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새각하죠. 너와 같이 잔 인간은 흑인이다. 기분이 어떠냐. 이런 심리로..
분명 그 시대 미국사회가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리가 왜이렇게 까지 망가져야했는지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냥 백인같은 겉 모습으로 편하게 살아도 되지 않았을까요?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목숨을 걸고 어찌보면 어이없어 보이기까지한 복수를 다짐하는 모습조차도 저로써는 정말 이해가 안되더군요. 그에겐 그렇게라도 해서 백인사회에 대해서 복수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지금이야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그 시대 흑인들의 삶이 어떠했을지 대략이나마 상상할수 있었던 책인것같습니다. 백인들과의 삶에서 결코 자유로울수 없었던 흑인들의 모습을 얼핏 살펴본듯한 찜찜한 기분이 듭니다. 물론 아직도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인종차별주의적인 사상들과 행동들이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에게 막대한 해를 끼치고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 시대에 살면서 용감하게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이야기를 펼쳐낸 작가의 용기에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쩐지 마무리가 안되는군요. 강렬했어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복수에 대해서 자신의 목숨을 다 받쳐 악에 받쳐 일어나는 리 앤더슨의 모습도 강렬했고, 프랑스 고전 누아르 소설은 이런 분위기인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19금 딱지의 사실적인 묘사들도 마찬가지구요. 아무튼 뜬금없는 결론을 지어 보자면 지구상에선 인종차별이 없어져야해요..위아더월드 를 외치면서 제발 다들 잘 먹고 잘 살았으면..(급허접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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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rai cracher sur vos tombes :: Boris Vian 최근 들어 다문화 가정의 혼혈아들을 한국인으로 받아 들이자는 캠페인을 TV나 신문 등의 매체를 통해 곧잘 접하게 된다. 소수자를 조명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과연 그런 캠페인 만으로 사회 통념이 쉽게 바뀔 수 있을까. 오히려 그런 캠페인을 부러 기획한다는 것이야말로 차디찬 차별이 횡행하고 있다는 반증 아닐까? 그 아이들 중 대다수는 경제적으로나 교육 환경면으로나 그리 넉넉한 형편이 못된다. 혼혈아가 아니더라도 사회의 이류나 삼류로 전락하게 될 위기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그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가지지 못하고 성취하지 못하는 꿈에 좌절하는 것도 모자라 냉랭한 편견과 차별에 지치고 다쳐 어긋난 마음을 품고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면, 우리는 모든 죄를 그 아이의 탓으로만 돌리려고 할까? 아무리 다문화 가정을 받아들이자는 캠페인을 벌인다 해도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근본적인 병폐를 바로 보고 고치려는 의지가 있는지가 의문이다. 피부색도 같은데 성적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멸시하여 자살로 몰고 가는 사회가 아닌가. 다문화 가정이든 성적 소수자든 비주류를 옹호하고 두둔하는 이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건전한 사고 방식을 품고 있다고만도 할 수 없다. 일례로 게이 친구를 두고 싶어하는 젊은 여성들은 뜻밖에 많다. 그러나 그들이 이후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을 때 자식의 커밍아웃에 관해 관대할 것인가의 문제에 봉착하면 그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든다. 소수자나 비주류를 옹호하는 마음은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의 열패감에서 비롯된다. 일류가 되기 위해 경쟁을 촉구하는 사회에선 상위 1%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스스로가 열외, 비주류가 되었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심리적으로 관대함을 바라는 욕구는 자기보다 열악한 처지의 이들에게 관대함을 베풀고 다소의 우월감을 느끼는 것으로 해소가 된다. 또는, 소속감을 갖지 못하는 불안정한 마음이 비주류라는 나름의 견고한 소속을 보고 부러움을 느껴 그들을 옹호하는 것으로 동료가 되고자 하는 행동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물론, 순수하게 인권주의자여서 인간적 가치를 우선하는 마음만으로 비주류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이들도 있지만, 스스로가 비주류의 처지에 놓이지 않는 이상 섣부른 공감은 우선 스스로의 동기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때문에 보리스 비앙의 이 소설도 우선 작가의 의도를 의심하며 읽지 않을 수 없었다. 흑인의 피가 8분의 1밖에 섞이지 않아 외면상으로는 금발에 하얀 피부를 가진 채 태어났지만, 자신과는 달리 흑인의 외양이 더 강했던 형과 여동생이 백인에 의해 비인간적 대우를 받거나 살해 당하자 복수심에 불타 부유층 백인 여성들을 노려 잔인하게 살해 하려는 리 앤더슨이라는 남성의 이야기는 얼핏 인종차별의 경종을 울리는 소설로 보이지만, 그 전에 왜 백인인 작가가 이런 소재를 채택하여, 그것도 프랑스인이 미국인인 척 가장하여 글을 썼는지 그 동기부터가 궁금해진다. 1946년에 발표 된 이 소설은 작가의 나이를 계산하면 26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쓰여졌다. 역자의 해설에 따르면 혈기와 의욕에 넘쳤던 비앙은 괜찮은 미국 스릴러를 번역해달라는 출판사의 제의에 자신이라고 못쓸 것 없다는 패기로 미국인의 가명을 빌려 이 소설을 쓰게 된다. 그러나 파격적인 소재임에도 초반 판매가 부진하자 전전긍긍하게 되고, 그러다가 실제로 벌어진 살인 사건의 범인이 이 책의 구절을 탐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엄청난 흥행몰이를 하게 된 것이다. 덕택에 작금에 와선 '20세기 누아르 소설의 고전' 이라는 명예스런 이름도 얻게 되었지만, 내용을 보았을 때 비앙이 과연 차별받는 흑인의 입장을 공감하고 대리 분노하여 진심된 마음으로 썼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리 앤더슨의 백인에 대한 분노는 과연 차별 받는 흑인의 그것이라 해도 좋을만큼 강렬하고 절절하지만, 사건이 치달을수록 앤더슨의 행동 패턴은 비루하기 짝이 없어진다. 치밀한 살인 계획을 짰다는 그가 왜 이렇게 헛점 많은 어리석은 짓을 할까? 계획과 현실을 틀리다는 것을 비앙은 말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칫 그 역시도 흑인을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일면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했다. 미국 땅을 가본 적도 없고 미국의 흑인이 어떤 차별을 받는지 막연히만 알고 있었던 그가 왜 이런 소설을 쓰게 되었을까. 그는 그저 젊은 시절 누구나가 겪는 부당함을 자아과잉적으로 해석하여 인종차별에 대입하고 사회적 이슈를 환기시킨다는 정의감과 그것으로 주목받고자 하는 야심을 품었던 게 아니었을까. 분명 당시 백인들이 저지르는 오만함과 무지함에 대해서는 핵심을 잘 찔렀지만 그렇다고 흑인의 심정도 있는 그대로 잘 대변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흑인이 부당함을 받기 때문에 이런 범죄자가 될 수도 있는 것, 이라는 주제를 잡았다면 리 앤더슨의 최후를 그렇게 씁쓸하게 그릴 것이 아니라 좀더 그에게 뚜렷한 자아와 타당성을 부여해야 되지 않았을까. 그나마 긍정적인 측면이라면, 백인 작가라도 이런 소재를 써냈다는 점이다. 당시 사회상으론 흑인 작가는 아무리 마음이 굴뚝이어도 감히 써낼 수는 없었을테니까. 디딤돌을 마련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보리스 비앙이 얼마나 뛰어난 작가인지에 대해서는 다음 작품을 읽을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련다. 때문에 문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소설보다 다음에 소개 될 작품에 더 기대가 크다. 소수자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고 그들을 보듬자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런 정의로운 발언으로 자기 가치를 높이는 데에만 그친다면 그것은 참된 공감이 아니라 그저 이용에 불과하지 않을까. 얼굴색이 바뀌고 성적 취향이 바뀌지 않는 이상, 또는 후천적 사고로 장애를 입지 않는 이상 소수자들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미 그들과 다른 상황에서는 '다르다' 는 것을 인지하고 그저 나와 똑같은 대우를 받고 싶어하는, 내가 사회에서 받고 싶은 관대함을 마찬가지로 받고 싶어하는 '같은' 사람인 것을 존중하고자 늘 의식하고 행동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어쩌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혼혈인이나 장애인을 만났을 때 울컥 솟아오르는 마음이 아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은 도처에 널려있다. 자신과 다른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고, 혹은 자신이 소속한 집단에서 혼자서만 유별나게 튄다고 거부하거나 차별하는 이가 소수자를 이해하고 옹호한다하면 그야말로 모순이지 않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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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책 표지의 사진과 제목만큼 강렬하고 충격적인 소설이었다. 처음에 붙였던 제목보다 그의 아내가 조언했다는 이 제목이 더 낫다. 작가의 이력과 이 책의 내용이 영화화 되어 갔던 시사회장에서의 그의 죽음도 묘한 연결고리처럼 느껴진다. 그가 필명으로 내세운 설리반과 출간되지 않은 미국 출간 건에 대한 이야기도 독특하고. 범죄와 폭력, 섹스에 대하여 비정하고 냉혹한 태도로 더덕적 판단을 배제한 채, 사건의 해결보다는 행동에 중점을 두며, 불필요한 수식이 없는 간결한 문체로 거친 분위기를 묘사하는 특징을 지닌 느와르 소설. -책 표지의 양 날개에 실린 글이다- 나는 보리스 비앙의 책을 통해 느와르 소설을 처음 접했다. 굉장히 충격적인 소설이었다. 19금이라는 것과 느와르 소설에 대해 미리 읽어보고 마음의 준비를 해두기는 했으나 충격이 쉽게 가시지는 않았다. 독특하면서도 충격적인 이 소설은 상당히 관능적이고 폭력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점에만 주목해서는 안된다. 그가 어째서 이런 방법으로 이 소설을 썼으며 이 이야기를 통해 읽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지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흑인이지만 혼혈 혈통으로 금발에 하얀 피부를 갖고 태어나 백인처럼 보이는 리 앤더슨이 백인 여자아이와 데이트를 한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동생의 복수를 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실행한 이야기이다. 그의 의도대로 잘 되어가는 중간 덱스터의 예리한 눈길은 리가 흑인처럼 처진 어깨를 지니고 흑인 브루스 가수와 같은 독특한 목소리를 지닌 점을 지적하며 그의 실체가 드러날 듯 아슬아슬한 위기감을 조장한다. 작품 속 내내 펼쳐지는 긴장감과 당혹감이 은 그와 그의 가족이 겪은 일에 대한 안타까움과 뒤섞이고 그의 비극적 결말을 예상하며 슬프게 했다. 그리고 희생된 루와 진. 선택되어진 그녀들이 상징하는 것을 생각해보았다. 흑인에 대한 반감과 모멸, 미국의 백인을 대표하는 하얀 피부와 금발, 흑인을 착취해 부를 늘여가는 그들의 부모. 작가의 신랄한 공격이 그의 펜끝에서 휘날린다. 미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백인 프랑스인의 이 놀라운 소설은 19금, 범죄, 폭력, 섹스를 넘어서 읽는 이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남겨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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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19금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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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대로 19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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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비앙 너희들의 무덤에 침을 뱉으마 사진의 매혹적인 모습에 반하고 적의 가득한 눈망울이 떠나질 않아서 어렵게 선택한 책입니다. 왜 이책이 19금 이 되어야 했는지 읽으면서 공감이 가더군요. 저는 책을 읽고 책을 동네에있는 사설어린이 도서관에 기증을 합니다. 어머니들이 힘으로 이끌어 가는 아이들이 마음것 놀고 책을 읽을수 있는 공간이지요!! 저도 한아이의 엄마로서 많은 책을 아이에게 접해 주고 싶다는 생각에 회원이 되어 봉사를 하고 있지요..다른 책들은 편하게 가져다 놓을수 있는데 이책은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안되겠기에 집에서 보관을 하렵니다.보리스비앙-저서로는 [물거품의 나날(1946)] [북경에서의 가을(1947)] [붉은 풀(1950)]등이 있다. [너희들의 무덤에 침을 뱉으마]가 처음부터 인기를 끓은것은 아니고 1947년 2월 "사회, 도덕 행동연합"이라는 이름을 가진우익단체가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의 작가를 고소한것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시작되고 한남자가 호텡에서 자신의 애인을 목졸라 죽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현장에 보리스 비앙의 스릴러 소설이 발견되어 심문에 일면을 대문짝만하게장식하며 본의 아닌 선전을 하게되며 엄청난 인기를 끌어 50만권이상의 책이 팔리는 베스트 셀러가 된것이다.
리 앤더슨 아프리카계 미국인 -그는 금발머리에 피부는 백인해도 믿을 정도로 하얗다. 그의 동생이 백인 여자를 사랑한죄로 백인들에게 살해를 당하자 복수하고자 결심한 리는 남부지역 도시 벅튼으로 떠난다. 리는 그곳에서 형 친구의 도움으로 서점에서 일을 하며 젊은 여성들과 은밀한 관계를 맺으며 복수를 계획한다. 대상을 찾아 헤메는 중 발견한 대상 부유한 가문 출신의 자매 루 애스퀴스와 진 애스퀴스 가 그들이다.자신의 동생이 죽은 것처럼 백인 여성을 농락하고 처절하게 죽이는 것이 리 앤더슨의 복수의 목적이라 할수있다. 그이 행동을 지켜보면서 흥분도 하고 분개도 하며 그 시대가 성에 개방이 자유롭다는것을 느껴보기도~~잔인함을 느끼면서 복수를 할려면 조금 더 계획을 세워 자신의 안전을 확보한 후에 하는것이를 차분함이 부족한 리 앤더슨을 보며 어떤 결말이 나올것인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 나로선 이해가 쉽지 않은면도 있다. 동생의 복수라지만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여인을 죽여야만 하는것인지 인종 차별이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 참으로 신랄하고 참혹하다 할수있다. 앞을 내다볼수없는 전개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책이 손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하여 밥을 굶어가며 끝까지 읽고서야 아! 내가 밥을 않먹었네 를 배고파를 외치게 하는 이쁜 놈이다. 프랑스 소설은 처음 대하지만 이여파로 다른 소설을 더 봐야겠다고 아이 손에 닿지 않게 책장 맨 위칸에 올려 놓고 다시 들여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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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솔직히 이 책이 19금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까지 19금 책을 한번도 읽어 본적이 없었기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마침내 비닐로 쌓여진 이 책을 받을 수가 있었고 책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기 시작했다.
20세기 누아르 소설의 고전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가장 큰 줄기는 인종 차별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인종 차별로 인해 사랑하는 동생을 잃게 되고 복수를 하게 된다 . 이 책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미국은 인종 차별이 가장 큰 사회 문제인 나라이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할때부터 해서 백인과 흑인의 갈등을 아주 심했었다. 영국에서 신대륙 즉 미국으로 건너온 백인들은 신대륙의 그 넓은 땅을 경작해야했는데 그러기 위해 값싼 흑인들의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그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이것을 계기로 미국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남북전쟁까지 치르게 된다. 그 후 노예제는 폐지되지만 여전히 인종 차별은 남아있었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선출된 지금도 완전히 인종 차별이 없어졌다고 할 수 없다. 이 책의 작가 보리스 비앙은 인종 차별에 대해 강하게 어필하고 있는 듯 하다. 책속에서 주인공은 자기 동생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죽었고 그래서 강한 복수심을 가지게 되고 백인 여성들을 증오하게 되며 자신의 장점을 이용하여 백인 여성들에게 접근한 다음 그들을 죽이려 하고 있다. 물론 자기 동생이 인종 차별로 인해서 죽음을 당했다면 나역시 가만히 있지 못했겠지만 과연 이 책의 주인공처럼 했어야했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작가는 인종 차별에 대해 강하게 문제의식을 가졌던거 같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의 프랑스에도 인종 차별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국에 단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는 작가는 미국의 인종 차별에 대해 알고 있고 이를 비판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생각을 작가는 가지고 있었기에 주인공에게 백인에 대한 무분별한 복수심을 가지게 한거 같다. 주인공의 그런 모습은 왠지 좀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나는 얼마전에도 흑인 노예, 인종 차별과 관련된 내용의 책을 읽었었다. 그 책 역시 이러한 점을 비판했었는데 인종 차별 문제는 쉽게 해결되는 것이 아닌거 같다. 백인들의 우월주의는 꼭 흑인에게만 적용되는건 아니다. 아시아계에 대해서도 그러한 모습을 보이니 말이다. 요즘 같은 사회에 피부색이 다르다고 차별한다는게 내가 생각하기엔 좀 그렇다. 백인들의 생각을 바꾸는게 어렵겠지만 그런 생각을 바꿀수 있도록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적이 없었다고 했는데 아직도 출간이 안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우월주의를 가진 백인들이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할지도 궁금해진다. 이 책을 읽고 다시 한번 인종 차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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