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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불교에 관한 서적을 많이 읽는다.
이 책은 이미 구입하고 읽은 책이지만 경허스님에 대한 기록을 소설형식으로 나와서 그나마 가장 쉬운 입문서이다.(간혹 일화가 다르게 표현됐지만 큰 줄거리는 비슷하다.)
경허스님에 관해서 보면 볼수록 많은 것을 얻는다.그리고 많을 것을 잃는다.
특히 분별심을 얻게되는데 하나만 예를 든다면 깨달음과는 당연히 거리가 먼 명안종사에 대한 기준이다.
이야기해봤자 또 변질되기 쉬워서 한두가지만 말한다면
이 분은 공중부양을 한다.
그리고 자신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까지도 공중부양을 해준다.
대단한 분이다.
그 분의 정체는?
비행기...
아무도 존경을 안하는 그냥 물건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것이 사람에게 일어난다면 대단한 것일까?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의 일화에 보듯이
대단한 초능력은 오히려 궁극의 깨달음과는 거리가 멀다.
세상의 기준으로 본다면 법문을 잘하고 어려운 3천배를 잘하는 스님이 있다.
깨달은 사람일까? 그것을 기준으로 삼고 말하는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틀리다.
이능력조차도 깨달음이 아닌데 습관에 가까운 고행은
절만 하는 기계도 할 수가 있다.
기계를 종사로 나무토막을 부처로 만드는 행위다.
그 기계가 구원을 해줄까?
마치 법문을 말하는 녹음기처럼 앵무새를 명안종사로 삼는 것이다.
명안종사의 특징중 하나는 대중들이 판별하기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이다.
분별심이 없는 사람이 깨달은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당연히 시비심 명예심 여러가지 욕심이 없는
하나인 것처럼 보이지만 전부인 그리고 분명히 뚜렷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2+3=5인 사람이다. (물론 나는 깨달은 사람이 아니다.다만 대중일뿐이다.그것도 불교도가 아닌 대중이다.이 책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도 벅차서 화두를 놓친다. 불교서적을 읽으면 마치 깨달음을 얻는 것처럼 착각하는 희열을 느끼니 교만해져서 줄여야겠다.착각도인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참 재미가 있다.
행동이나 사고관이 명안종사는 두려워서 찾지않고 그 겉가지만 찾는다.
물론 나도 똑같다.
그러니 웃기고 재미가 있는 것이다.
나의 허물도 보이고 사람들 허물도 보이고
이래서 불교가 재미가 있는 종교다.
불교는 사람냄새가 난다.
사족으로 한마디 한다면
사부대중들이나 지식인들은 경허스님 같은 대각자를 왜 제대로 찾지를 않을까?
깨달음과는 거리가 먼 엉뚱한 스님들을 대각자로 착각하고 호도하지를 않나.
반대로 경허스님이 살아생전에 한때지만 그 행위로 땡중으로 오해를 하지않나.
공부를 조금만 한 불교도가 아닌 나조차도 보면 아는데 모르는 이유는 뭘까?
부처보다 착해야 깨달음을 얻는다는데
부처보다 착한 사람을 두고 하수의 중들을 찾는 이유는 뭘까?
곁에 없어서인가? 말은 살아있는데 왜 안쫓을까?
살아있는 사람의 죽은 말을 쫓아간다.
그게 이해가 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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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버린 고목나무와 같았던 한국의 선불교를 중흥시킨 자] 경허스님의 인생은 극적인 요소가 너무 많고, 승려로서 파계에 가까운 기행과 막행막식, 그리고 깨달음을 위해 소를 찾아 나서는 치열한 과정을 책 한권으로 표현하기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습니다. 경허스님의 전체적인 삶을 개괄하는 내용으로는 부족하지 않습니다. 스님의 기행을 통한 무애의 삶이 무엇을 표현하는 지 작가의 적절한 픽션이 가미되어 경허스님을 알 수 있는 본래의 목적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흥미의 요소가 조화를 잘 이루었습니다.
경허스님의 이야기를 쓴 최인호님의 '길 없는 길 (전4권)'은 소설적 요소와 선문답적 내용이 많아 경허스님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 책은 경허스님이 중심이 되었기에 집중력의 측면에서는 추천합니다.
책을 읽고 경허스님에 대하여 좀 더 알고 싶은 분들에게는 최인호님의 '길 없는 길'을 추천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