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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국 교회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MBC<뉴스후>에서 일부 대형 교회 목사님들의 ‘상식’을 벗어난 다채로운(?) 모습들이 보도되면서, 기독교를 향한 강렬한 비판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호화생활과 비리 등을 고발하며 “대형 교회 목사들이 재벌 회장과 다를 바 없다”며 비판했습니다.
거부는 타락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데 이에 대한 한국 교회의 반응이 흥미롭습니다. 조용기 목사는 보도 다음 날 설교에서 거부(巨富)는 타락한 것이 아니라며 하나님을 모시고 부자가 된 것은 크나큰 축복이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맞습니다. 부자는 타락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크나큰 축복의 척도가 될지는 의문입니다. 그 돈이 누구로부터 모여 축적된 돈인지에 대한 자기성찰이 전혀 없었다고 봅니다. 어린아이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친 꼬깃꼬깃한 천원자리들과, 거동조차 불편한 어르신들이 일주일 내내 종이를 모아 낸 헌금으로 부자가 된 것은 결코 하나님의 축복이 아닌 ‘착취’에 가깝습니다. 세상적 관점보다 못한 기독교적 관점?
한 술 더 떠서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고 있는 사랑실천당과 청교도영성훈련원은 “원로목사님들에 대한 교회의 대접은 세상적 가치의 기준으로 볼 수 없다”며 세상적 관점에서 기독교를 비판하지 말라고 경고(?) 했습니다. 그럼 세상적 관점으로 보지 않고, 기독교적 가치의 기준으로 뒤집어서 생각해봅시다. 간이 골프연습실이 딸린 호화주택에서 사는 목사님이 기독교적입니까? 아들에게 교회를 지어주고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는 목사님이 기독교적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시름시름 아파하던 IMF시절 매달 3천만원씩 받는 목사님이 기독교적입니까? ‘기독교적’인 것이 무엇인 저는 잘 모르겠지만, 위와 같은 모습은 적어도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적인 가치의 기준은커녕, 세상적 가치의 기준으로도 미달되기 때문에 뉴스거리, 조롱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일부의 문제 아닌, 전체 개개인의 문제
이에 대해 사람들은 ‘일부’의 문제를 전체 한국 교회의 문제인 것처럼 보도한 행태를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5%도 안 되는 문제를 왜 전체인 것처럼 인식되게 하느냐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지적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나머지 95%의 정상적인 교회가 5%에 대해 아무런 바른 소리, 쓴 소리를 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심하면 그 5% 교회의 모습을 목적으로 삼기까지 합니다.
토론에서 항상 이기기로 유명한 진중권 교수는 언제인가 자신이 논쟁에서 항상 이기는 방법에 대해 “상식의 자리에 서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가진 돈을 다 내어놓고, 생명을 다해 성도들을 섬기는, 상식 초월의 교회가 되어야할 기독교가 ‘상식’의 잣대를 들이대는 언론에게 항상 만신창이가 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이 꼭 5%의 잘못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95%의 개인 개인은 얼마나 자신의 삶 속에서 ‘상식’의 선을 초월하려 노력합니까. 우리 모두의 반성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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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협회, 토론공화국을 꿈꾸다(이황직 지음, 프로네시스)> © 이범진 | |
자정능력 회복을 위해서는 100% 모두의 소통
기득권이 응집된 5% 한국 교회이든,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 95% 한국 교회이든, 다시 참 교회다움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토론’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함께 말하고 소통하는 ‘장’을 통해서여야만 한국 교회는 자정능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립협회, 토론 공화국을 꿈꾸다>는 우리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줍니다. 이 책은 비록 좌절된 시도이긴 했으나, 기득권에서 밀려나 있던 민중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나아가 근대적 정치 원리의 실험장 역할을 했던 독립협회의 토론회 활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 내 '시끄러운 논쟁'이 필요할 때
서재필은 가장 먼저 민중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순 우리말 신문인 「독립신문」을 간행합니다. 어지러운 나라 현실에 ‘시끄러운 논쟁’이 나라를 분열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서재필은 그러한 ‘시끄러운 논쟁’이 나라의 근본을 튼튼히 해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독립신문이 가져온 변화는 매우 컸습니다. 한 장의 신문을 펼치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신문을 돌려 보며, 수동적이었던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논쟁을 통해서 펼치는 능동적인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이러한 모습이 점점 발전하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만민공동회’로 집니다. 이 생생한 현장을 전하는 <독립협회, 토론 공화국을 꿈꾸다>는 한국 교회 95%를 향해 ‘시끄러운 논쟁’의 장을 마련하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그때 조금 더 귀담아 들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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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이우근 외, 샘터)> © 이범진 | |
95%로에게 권하는 책이 위에서 설명한 <독립협회 토론 공화국을 꿈꾸다>였다면, <뉴스후>에서 담론화 된 5%에게 권하는 책은 특별히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라는 책입니다.
교계의 원로 중진 목사님들(오늘날 뉴스후 등에서 거론되는)이, 나름대로 한국 교회에서 이름을 높인 목사님들이 한경직 목사님의 병문안을 방문했을 때의 일화는 오늘날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 것 같습니다.
“한 목사님, 모처럼 이렇게 교계 중진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좋은 말씀 한마디 해주세요”
잠시 후 한참 골똘히 생각하던 목사님은 간곡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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