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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이 여자라고? '바람의 화원'에 이어 또 다시 신윤복을 여성이라는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이 있었다. '미인도', 원래는 영화로 꽤 화제가 된 작품 시나리오를 같은 작가가 소설로 각색한 작품이다. 김규리(김민선), 김남일, 김영호, 추자현이 출연한 작품으로 베드신이 꽤 화제가 된 영화인데, 신윤복이 여자라는 설정을 보는 순간 바로 ' 바람의 화원'이 오버랩 될 수 밖에 없었다.
윤정은 오빠 윤복이 자살하자, 오빠를 대신해 최고 화원이 돠리는 아버지의 엄명으로 남장을 하고 윤복의 삶을 대신하게 된다. 그리고 김홍도 문하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작품의 기본 기둥은 조선 화단의 그림으로서는 상당히 파격적로 과감한 성적 묘사를 한 그림을 그리게 되는 화가 신윤복의 그림관의 변화인데 거기에 신윤복-강무-김홍도-설화 로 이어지는 사각관계가 얽혀있는 양상이다. 김홍도는 윤정을 애써 제자라고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려 하지만 결국 강무와 사랑에 빠진 윤정에 대한 애욕을 이겨내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김홍동의 사랑을 돌리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애쓰는 최고의 기생 설화.
나는 이런 어정쩡한 작품이 질색이다, 예술관의 변화와 사랑을 엮어서 고상하게 그리지만 그 예술혼을 제대로 그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제대로 탐닉적이지도 못하고. 본능은 본능으로 인정하면 될텐데, 거기에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는 양 포장하니 성적인 탐닉에도 솔직하지 못하다. 성적인 묘사가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예인으로서의 작품에 대한 치열한 고뇌를 담은 것도 아니고, 어느 한쪽으로도 제대로 파고들지 못한 작품, 죽도 밥도 아니고 꿩도 매도 다 놓친 어정쩡한 작품.
마침 오늘이 크리스마스라, 아기예수가 탄생하셨다는 성(聖)스러운 날에 성(性)스러운 작품이나 읽으면서 보냈구나 하면서 웃고 말았다. '바람의 화원'을 읽고 나서 그런지 그 상상력의 차이만 실감했다. 영화는 보지 않아서 할 말이 없지만 소설로는 그닥 인상깊은 작품이 아니었다.
'대장금'처럼 방송된 대본을 엮어서 방송 대본 형식 그대로 책으로 내는 경우가 있다. 아니면 드라마 원작을 갖고 싶은 작가로서의 욕심에 소설을 먼저 탈고하고 드라마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원 소스 멀티 유스 시대를 맞아 대중 문화의 콘텐츠 활용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다. 그렇지만 어느 경우든 독자를 만족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작가나 출판사 같은 콘텐츠 생산자로서의 자세가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미인도'는 영상적 표현을 위해 만들어진 시나리오를 문자 언어인 소설의 매력으로 살리는 것에서나 주제의식을 부각시키는 면에서 둘다 미지근하니, 어정쩡했다. 굳이 소설로 각색할 필요가 있었을까? 물음표가 붙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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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것이 부끄러운 졸작.책표지나 중간중간 삽입된 그림들은 좋지만 정작 내용이 엉망진창이다. 도무지 내용에 개연성도 없고 읽으면서도 이해 안 가는 점투성이었다. 게다가 오타는 왜 그리 많은 것이며 어울리지 않은 어휘 사용은 또 왜그리 많은 것인지. 신윤복이 여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력 하나는 정말 기발했다.하지만 과연 그게 꼭 신윤복일 필요가 있었을까싶을 정도로 작품과 사실의 개연성이 없었다. 작중 인물들의 심리도 전혀 납득되지 않았고. 거기다가 군데군데 나타나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들. 글을 쓴다고 아무나 작가라고 부를수는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영화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이유도 이해가지 않는다. 영화와 소설을 전부 접한 나로서는 정말 알바라도 풀었나 싶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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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너무 아름답고 가슴이 아파 그 여운을 책으로 다시한번 느끼기고 싶어 구입했다. 책의 곳곳에는 영화에는 없는 얘기들이 펼쳐저 내용이 더욱 풍성해서 흥미로웠고 보는 내내 눈길을 뗄수 없었던 영화만큼이나 소설역시 흡입도가 강했으며 등장인물의 감정은 영화에서 보다 훨씬 섬세하며 신중해서 그때 미처 느끼지 못했던것을 새로이 느끼며 읽을수 있었다. 신윤복의 그림을 볼수록 남자가 아닌 여자가 그린그림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던 작가는 팩션이라는 허구를 끌어들여 아름다운 그림뒤에 숨어있는 아름답고도 가슴저린 사랑을 절실히 잘 풀어놓았다. 어떤 그림을 보고 그 그림뒤에 숨어있을것 같은 얘기를 이렇게 절절히 풀어놓을 수 있는 작가의 상상력이 놀라웠고 그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에 대한 고찰과 여러종류의 사랑에 대한 생각에서도 끝끝내 인간을 사랑하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에 마음이 머물렀다. 이 책을 두고 역사적 진실을 운운하는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된다. 작가가 진실만 생각하고 책을 써야 한다면 창작은 죽은거나 마찬가지다. 영화도 그랬지만 꼭 한번은 볼만한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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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영화를 위한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소설화한 것이다 영화 미인도를 보고 참 충격젹이었는데 소설로 나와 있어 예전에 영화보던 기억에 집어 들었다 영화로 볼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영화를 위한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소설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윤복의 그림과 단원 김홍도의 그림이 같이 중간중간 있어서 그런지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윤정은 오빠 윤복을 대신해 남장을 하고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다 오빠 신윤복이 자결을 하는 바람에 그리 된 것이다 여인이 아닌 남자로 그리고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고 무엇보다 단원 김홍도의 제자로 들어간다 아버지 신한평은 윤복에게 모든 스승은 결국 제자에게 죽게 되는 법이라며 자신의 말을 명심하라 한다 그리고 윤복은 김홍도의 제자로 들어가 같이 살게 된다
도화서의 화원으로 뛰어난 그림 솜씨 즉 모사하는 솜씨가 뛰어난 윤복은 임금의 눈에도 띄어 촉망을 받으나 그만큼 시기와 질투도 받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저자거리에서 거울 깨게 되며 강무를 만나게 된다 강무를 구하기 위해 홍도 대신 만냥짜리 그림을 그린 윤복 그리하여 강무는 윤복의 그림으로 살아남게 되고 둘은 인연은 시작되었다 한편 홍도는 윤복의 그림솜씨에 감탄하면서도 윤복이 강무를 보는 눈빛에 질투를 느끼게 되고 윤복과 강무는 점점 가까워진다 그림을 그리러 가던 날 윤복은 물에 빠지고 그만 강무에게 옷이 젖게 되자 자신이 여자임을 들키게 된다 그런 강무는 윤복을 가엾게 여기게 되며 그녀를 지켜주고 싶어한다
한편 홍도는 윤복이 여자임을 알고 있었다 또 한사람 기생 설화도 마찬가지였다 윤복은 도화서에서 늘 그녀를 시기 질투화던 최화원에 의해 그만 화첩을 모두에게 들키고 만다 그림들은 모두 지금에서야 각광을 받는 소중한 그림들이지만 그당시에는 춘화다 저급하다 평가받은 그림들이었다 그 그림들은 들킨 윤복은 스승 김홍도 덕분에 큰 벌은 면하였으나 자숙하는 시간을 갖게 되고 그 와중에 강무와 만나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스승 김홍도 그는 그런 윤복을 지켜보며 휩싸이는 질투심을 주체할 수 없게 되고 김홍도를 사모하는 기생 설화또한 마찬가지였다
절에 물건을 팔러 가다 그만 강무와 윤복은 풍기단속반에 걸리게 되고 그림까지 빼앗기게 된다 강무의 도움으로 간신히 빠져나온 윤복 하지만 강무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스승에게 빌어서 겨우 강무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 그러나 설화의 계략으로 강무와 윤복은 다시 만나 도망칠 계획을 세우지만 설화가 최화원과 짜고 윤복의 비밀을 알려준다 게다가 윤복과 강무가 둘이 떠날것임을 김홍도에게 알려주며 김홍도에게 복수를 하지만 설화는 자신이 승리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강무에게 독화살을 날려 어떻게든 윤복을 막아보려하지만 홍도는 그만 강무를 죽이는 꼴이 되고 만다 윤복의 정체가 탄로나 그만 정조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자 모든 대신들은 둘을 죽이라 청하나 김홍도의 그림 실력에 목숨은 살려주고 당분간 자숙하라 이른다 윤복또한 도성밖으로 쫓아내고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한다 그 이후 신윤복은 어찌 되었을까? 과연 강무를 그리 보내고 어떻게 살아을까? 정말 자결을 한 것인지 속 시원히 가르쳐 주지 않는다 신윤복에 대한 남아있는 기록도 그리 많지 않다 그저 그림만이 있을 뿐 다시 읽으니 예전에 영화보던 생각도 나고 다시금 추억에 젖어들어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