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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전업 작가의 서재로 어두탕 냄새가 들어온다. 전업 작가는 이제 냄새만으로 어느 집에서 요리를 하는지 구별할 수 있다. "생강! 염병할 바보 같으니라고, 어두탕에는 생강을 넣어야 한다는 걸 몰라?" 어두탕 속에 생강을 넣지 않는 이웃집 사람을 탓하고 있는 그에게 친구인 전업 헌혈자가 찾아온다. 전업 작가는 당에서 소재를 정해주는 대로 글을 쓰고 그 대사로 월급을 받는다. 전업 헌혈자는 말 그대로 피를 팔아 돈을 번다. 헌혈자가 피를 팔아 번 돈으로 가끔씩 작가를 찾아와 고기를 차려 준다. 영양 결핍으로 몸뚱아리가 다 망가져 버린 작가와 그에 반해 기름진 얼굴을 한 헌혈자, 둘의 만담 같은 대화가 소설 초반부터 혼을 쏙 빼놓는다. 작가는 당이 지시한 대로 레이펑에 관한 소설을 써서 <중국 작가 대사전>에 이름이 실리고 싶다. 그런데 머릿속에는 엉뚱하게도 화장터를 운영하는 한 젊은 남자의 얼굴만 오락가락한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따라 펼쳐지는 화장터 남자 이야기부터 작가가 구상하는 소설이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낸다. 각 장의 이야기가 마치 단편소설처럼 저마다 완결성을 가지지만 또 어느 대목에서는 한 이야기의 등장인물이 다른 이야기에서 스쳐 나오는 등, 서로 조금씩 이어진다.
'도취되거나 마비되거나'에서는 앞서 언급한 화장터 남자가 주인공이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이 독신남은 말 그대로 화장터 사업을 한다. 전직 전기 기술자였던 그는, 예술 학교 도예과에서 대형 가마를 구입해 거기에 시신을 태우는 사업을 고안해 낸다. 관에서 운영하는 화장터에서는 죽은 사람이 너무 줄지어 있어서 화장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이 남자의 화장터에서는 시신을 맡긴 지 만 하루만에 태워 정리해 주기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 사설 화장터를 이용하길 원한다. 시신을 태우면서 그는 죽은 사람이 좋아했을 법한 음악을 틀어주기도 하고, 늘어선 시신 앞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된 듯한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그의 시선을 통해 보이는 시신은 어떤 의미를 가진 대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물건이고 일감이고 고깃덩어리다. 그런 작업을 하면서 그는 죽음과 소멸시키는 행위에 도취되고 만다. 죽은 사람의 유품을 보관해 두었다가 수선해 되파는 일을 하는 그의 어머니도 살아 있을 때보단 죽었을 때 더욱 아름답고 사랑스러울 것만 같다. 첫 이야기부터, 이 소설은 참 독하다. 독한 이야기인데 웃지 않을 수 없고 웃기긴 한데 고개가 휘휘 저어진다. 줄거리를 쫓아가다 보면 너무나 충격적인 모습을 보게 되는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다음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다음 장은 한 술 더 떠서 '자살하거나 표현하거나'란다. 언젠가 무라카미 류의 에세이 <자살보다 sex>를 읽었는데, 그 책에서 류가 말하는 바는 절망하느니 향락을 즐기라는 논조였는데 결국 죽지 말고 살으란 이야기이기에 오히려 계몽적인 부분이 많았다. '자살하거나 표현하거나'에 나오는 여배우는 차갑고 오만해서 그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남자들을 겪으며 상처를 입었다. 그녀는 극본을 쓰기 시작한다. 극본을 쓰는 동안 그녀는 권력자다. 자기 맘대로 등장인물을 조종하고 그들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기에. 그녀가 쓴 첫 문장은 "질은 지독하게 부패한 댄스 플로어다." 라는 말이다. 숱한 남자들이 자기 안에서 춤을 추곤 떠났다. 그들은 단지 서로 춤사위만 다를 뿐, 그녀를 보듬어 안아주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자기 멋대로 욕구만 해소하고 달아날 뿐이었다. 그녀가 그 남자들, 특히 가장 최근에 사랑을 매몰차게 저버린 화가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은, 자살뿐. 실제와 연극을 혼합한 형태로 그녀는 인생의 막을 내린다. '소유하거나 소유되거나'에는 어느 출판사의 편집장 남자와 그의 소설가 아내 이야기다. 편집장은 아내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 신세다. 그는 아내에게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아내는 쿵푸 동작처럼 절도 있게 남편을 패기도 한다. 편집장은 아내에게 죽어 지내는 대신, 원고를 투고하는 여자들을 하나씩 물색해 자기 애인으로 삼거나 노리갯감으로 삼는 재미로 산다. 아내에게는 약자이지만, 애인들과 관계에서 그는 강자이자 권력자다. 한편 아내는 암호랑이 같은 여자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자신을 조련해줄 강한 남자를 밖에서 찾아 바람을 피운다. 각자 자신을 소유한 사람 앞에선 비굴해지고 자신이 소유한 사람 앞에선 안하무인이 된다. 그러나 결국 물고 물리는 이 역할극에서 가장 큰 힘을 지닌 건 가장 약해 보이는 여자였다.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들도 저마다 개성 뚜렷한 캐릭터가 나오는데,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사람은 '거리의 작가 혹은 허공의 비닐봉지'에 나오는 거리의 작가다. 그는 호적 이전 신청을 하지 않은 채 어느 도시로 옮겨 왔다. 불법체류자 같은 신세다. 이 일 저 일을 전전하다 그는 거리의 작가가 된다. 복잡한 절차를 요하는 서류나 각종 민원, 심지어는 연애편지를 대필해주면서 먹고산다. 특히 연애 편지를 대필해주면서 남녀를 연인 사이로 성사시키기도 하고, 또 자기가 쓴 편지로 한 여자와 사귀게 된 남자가 다시 이별을 통보하는 편지를 부탁해 오기도 한다. '자살하거나 표현하거나'의 여배우의 어머니도 이 거리의 작가에게 대필을 부탁한 적이 있다. 어떤 남자와 결혼을 반대하려는 어머니의 심정을 담은 편지의 한 대목은, 거리의 작가가 사랑과 인생에 관해 얼마나 해박한 통찰력을 가졌는지, 그리고 문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여 준다. 그는 "뼛속까지 시인"이었던 거다. 그렇게 남의 연애 편지를 대신 써주던 그는 정작 자신은 사랑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이제 자기 자신을 위한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제대로 될까. 마젠은 그렇게 너그러운 작가가 아닌 듯하다. '속편한 사냥개 혹은 목격자'는 어느 화가 이야기다. 그 화가는 다리가 셋뿐인 개에게 '생존자'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옥상에서 기른다. 그 개는 사람의 말을 할 줄 알았고, 화가의 유일한 친구였다. 건물 안에서 개를 기르는 게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화가는 외출해서도 늘 좌불안석이다. 그 어떤 사람보다 그 개를 사랑하는 거다. 심지어는 여자친구에게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이 대목에서, 그 화가가 여배우를 자살하게 만든 그 위인이란 게 밝혀지면서, 그렇게 아리따운 여자를 무시하게 된 동기가 고작 집에서 기르는 '개' 때문이라는 데 웃음이 난다. 그러나 그에게 개 '생존자'는 '고작'이 아니었다.) 생존자와 화가 사이에 오고가는 대화가 압권이다. 개가 인간 대신 권력을 쥐게 되면 어떻게 될지에 관해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걸 보노라면, 웃기기도 하고 덜컹, 하고 놀라기도 한다. 솔직히 이렇게 건조하게 줄거리를 늘어놓는 게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는데, 이 소설의 묘미는 한 줄 한 줄 읽으면서 느끼는 순간적인 경악과 통쾌함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성격이 비뚤어져야 이런 글을 쓸까, 또 얼마나 똑똑해야 이런 표현을, 이런 대화를 생각해낼까 싶을 정도로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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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젠은 어렸을 때 문화 대혁명을 겪으면서 친할아버지가 굶어죽는 형벌에 처해지는 걸 곁에서 지켜봤다는 그에게 중국의 현대사는 깊은 트라우마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커서 중국에서 국영 잡지의 보도 사진가로 일하다가 '사상 오염'이라는 이름 아래 잘리고 만다. 그 후 티베트의 실상을 고발한 <개똥을 누어라>를 발표하면서 작가로 데뷔했지만, 중국 당국으로부터 판매 금지 조치를 당하고 만다. 그 후 그는 홍콩으로 망명해 <누들 메이커>를 출간했지만 검열로 인해 내용이 상당 부분 찢어발겨진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독일로 거처를 옮겨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는 중국의 반체제 작가로 자리 매김한다. 우리 나라 현대사도 중국 못지 않은 상흔이 있다. 그리고 여러 작가들이 그 현장을 실감 있게,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그려내기도 했다. 때로는 소설을 읽으면서 한국 현대사를 공부할 수도 있을 만큼 말이다. 그런데 마젠처럼, 역사적 사실과는 동떨어진 듯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현대사의 한 단면을 메타포로 표현해 내는 작가가 우리 나라엔 거의 없는 듯보인다. 이런 소설이야말로 고전이 될 법하고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올 만하다고 여겨진다. 게다가 슬픈 이야기, 비참한 이야기 속에서 웃음을 드러낼 수 있는 건, 그만큼 작가 자신이 어느 정도 비극을 승화할 줄 안다는 증거 아닐까 싶다. 냄새만으로도 어두탕에 생강을 넣었는지 안 넣었는지 구분할 줄 아는 작가가 정작 자신은 그 냄새만으로 만족할 뿐, 실제 어두탕을 먹지 못하는 현실,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우스꽝스러운지. 마젠을 '중국의 밀란 쿤데라'라고 하지만 굳이 밀란 쿤데라의 이름을 빌리지 않아도 그 자체로 대단히 훌륭한 작가이지 싶다. 우리 나라에 출간된 번역본은 이 책 한 권이지만, 이미 난 '마제니즘'에 젖어 버렸다.
"그 어두탕은 맛이 기가 막혔을 거야. 지금까지도 냄새가 나는군......." 헌혈자의 담배에는 아직도 불이 붙어 있다. 그는 이제 전업 작가만큼이나 깊은 생각에 잠긴 것 같다. 어서 빨리 지적인 작업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인다. "이 잔인한 세상과 싸울 만한 기운이 남아 있지 않으면 자해를 하게 되지."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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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삶은 여러갈래의 손에 의해 찢겨져서 수많은 국수갈래처럼 갈라진다. 사람들은 생명의 울음을 울면서 세상에 태어나지만, 그들을 맞이하는 세상은 복잡하기 그지 없다. 수천가지의 국수가락처럼 그들을 둘러싸는 운명도 환경도 억압도 여건도, 또 그런 주변의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대응도 사람들의 운명을 다르게 한다. 그것이 사람의 삶이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들 한다. 이 책은 말한다. 가장 중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인것이라고. 조자인 마첸은 천안문 사태의 아픔을 생생히 기억하는 소위 반체제 작가이다. 이 작품속에서도 그런 주제의식은 다양한 변용을 통해 서로 다른 목소리로 변주된다.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간접적으로.
그러나 이 책은 반체제 이상의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이 반체제를 담고 있다면, 그것은 저자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 그 시대의 그 공간을 통과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서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이 지나온 과정의 수많은 오솔길들을 되돌아보는 자이다. 창백한 얼굴을 하고 밤늦게 불면과 어울리며 인생을 반추하는 사람이다.
세상에 태어나 한 일이라고는 자신의 혈액형의 피를 끊임없이 생산한 것밖에 없는 사람과, 세상에 태어나서 한 일이라고는 사람의 삶에 관한 수많은 공상들 밖에 없는 두 사람이 구성하는 복잡하고 혼잡하고, 그러나 책의 끝에가면 교묘하게 맞추어지는 복잡다단한 퍼즐로 만들어진 것이 이 책이다. 책은 다양한 에피소드로 구성되고, 자칫 뒤죽박죽 희황찬란한 이미지의 향연처럼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서로 분리된 에피소드들이 서로 결합하면서 사람의 삶이란 것에 대한 저자의 시선을 전하는 책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아픔에 대해. 인간으로서 이 세상을 산다는 것에 관해서, 공산주의나 마오이즘, 혹은 문화혁명이라는 것에 관해서, 사람이 사람에게 가하는 잔인함과 폭력에 대해, 그리고 끊임없이 펼쳐지는 생명력에 대한 갈망과 서서히 낡아가는 삶에 관해서.
이 책은 부척 편안한 문체로, 너무 자극적인 단어들이 난무하지 않은 비교적 젊잖은 문체로, 너무 우아하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 문체로, 다양한 상상력과 새로운 창의력으로 무장한 문체로, 그리고 매우 진솔하고 솔직한 글 쓰임으로 우리들을 그의 사고의 세계로 인도하는 책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와 함께 그가 삶에서 관찰한 것에 대해 같이 음미하고 같이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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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시지요? 유랑인입니다. 바람이 점점 차가워져서 볼 살이 이제 제 것이 아닌 시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만 , 연인들은 그 볼을 부비부비하면 해결될 터이고 말입니다. 뭐 연인도 없는 저 같은 사람은 책을 볼에 부벼서라도 언 볼을 녹여야 하지만 말입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또 화사한 꽃잎들이 피어날 시간이 다가오니 말입니다.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시간을 살아내는 겁니다. 여러분
이번에는 중국 작가가 쓴 소설을 한 번 읽어봤습니다. 유랑인을 아시는 분은 아시겠습니다만 어지간하면 외국 소설을 꺼립니다. 한국에서 암약(?)하시는 뛰어난 번역가들이 잘 번역을 해 놓으셨을 겁니다만 원어와 번역어 사이에는 미묘한 간극이 존재한다고 믿어 온 유랑인이니까 말입니다. 안 읽으려고 했습니다만 , 읽게 만들어 버린 것은 한 문장이었습니다. '중국의 밀란 쿤데라'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 저와는 인연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일게 되더란 말입니다. 사실 제가 밀란 쿤데라 아저씨에게 일종의 부채감과 패배의식이 좀 있거든요. - 농담을 읽다가 식겁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 패배의식을 조금이라도 만회해보자라는 심산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좀 후련하네요 역시 사람은 고백하면서 살아야 하는 모양입니다.
제목은 '누들 메이커'인데요 잠에서 덜 깬 눈으로 보면 '누드 메이커'로 보입니다. 표지그림도 누들하고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누드와는 밀접해 보이는 그림이 중앙에 장식되어 있단 말입니다. 누들을 누드로 읽기 딱 적당한 상황 아닙니까? 그런데 아마도 누들 메이커라는 말이 중국과 조금은 연관되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군요 . 마젠 아저씨를 만나면 물어봐야겠지만 멀리 계시니까 물어 볼 수 도 없습니다.
마젠 아저씨는 중국 작가지만 중국에서 작가 활동을 금지당해서 지금은 외국에 계신다고 합니다. 이름하여 망명작가라고 하는데 중국의 밀란쿤데라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홍보 문구니까 확인해보지 않고는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만 , 아유 그냥 내용이 장난이 아닙니다. 웃깁니다.
그로테스크라는 말을 처음 배운 것은 기형도의 시를 평가하는 누군가 - 아마도 김현이었을 겁니다만 - 의 표현 때문이었을 겁니다. 마젠의 누들메이커에도 그로테스크란 수식어를 달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몇 자 더 적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로테스한 웃음 혹은 블랙코메디 정도 일겁니다. 상황은 전체적으로 기괴합니다. 그런데 그 기괴함을 희석시키는 것은 웃음입니다. 굳이 설명해보라고 한다면 상황이 만들어 내는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기억나십니까 류승환 감독의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라는 제명의 영화말입니다. 누들메이커의 소제목 들을 읽을 때마더 저는 영화를 생각했습니다. 둘 중에 하나 혹은 모 아니면 도라는 이야기입니다. 누들메이커의 제목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도취되거나 마비되거나' '자살하거나 표현하거나'
총 9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업작가와 전업 헌열자와의 만남에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말입니다. 중국의 개방개혁 이후의 상황을 잘 나타내주는 듯 합니다. 과도기라는 말이 딱 어울릴 것 같은 상황들이 제시되고 그 상황에 처해진 인간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잘 나타내었습니다. 한참을 웃을 수 있지만 말입니다. 여러분 웃음 중에 가장 기분 나쁜 웃음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데 말입니다. 실컷 같이 웃고 즐겼는데 곰곰히 시간이 지나면서 치명적인 아픔이 되어 돌아오는 것 말입니다. 타국인이 제가 읽어도 아차싶은데 중국 사람들이 읽으면 무릎을 치면서 탄식할겝니다. 그래서 판매금지 되고 삭제되는 운명에 처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만 말입니다.
아 누들메이커를 읽으면서 말입니다. 근대화의 기치 아래서 서양문물을 허벌나게 받아들이던 한국의 어느 한 시기가 생각났습니다. 한구과 중국은 다를 바 없었던 모양입니다. 국가의 통제아래 개인의 삶이란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단 말입니다. 비슷한 상황을 겪은 사람에겐 끄덕이면서 볼 수 있는 글인듯 합니다.
소설을 읽게 되면 말입니다. 저도 모르게 어떤 문장이 눈에 밟히면 포스트 잇을 붙여두는 습관이 있는데 말입니다. 뭐 이런 식입니다.
'모든 고통은 인간이 만든거야 ' 맞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고통의 유발자는 인간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고통을 스스로 감내하기 보다는 타인에게 고통을 부여하면서 반대급부로 안도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도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 우리는 바깥세상과 격리된 채 정신적인 진공 속에서 자랐지. 허무한 세대 이 나라가 개방되었을 때 제일 먼저 쓰러진 세대. 지금은 외국 문물이 유일한 종교인데 , 우리는 그걸 이해하거나 그 가치를 인식할 방법이 없어 반세기가 지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느닷없이 현대라는 숲 속인데 지도도 나침반도 없는 꼴이지 독재 정부 때문에 마비된 사회인데 , 이 현대적인 세상 속에서 무슨 수로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혼자서는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기준점도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곳에서 길을 잃은 심정이지 낮은 자존감을 감추려고 피상적인 오만함의 가면을 쏙 있지'라고 전업 작가가 말하기도 합니다.
'법은 권력층만 보호하게 마련이지. 나머지 사람들은 피해자 역할을 해야 하는 운명'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모든 이야기가 죽음과 연관되어야 한다고 여긴다면 그건 자네가 잘못 생각하는 걸세 요는 죽음이 아니라 삶이고 ,삶은 인내 그 자체 아닌가. 나처럼 이를 악물고 견뎌야 하는 거란 말일세 나는 삶의 모든 것을 감당하고 있다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전업작가든 전업 헌열자는 조재현이 김기덕의 페르소나이고 배종옥이 노희경의 페르소나이듯 마젠의 페르소나 같아 보여요 마젠은 <누들 메이커>를 통해서 이런 말을 하는게 아닐까 합니다만 ....... 인간이 만들어낸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삶이고 인간의 숙명이라면 지금 처해진 중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삶을 이를악물고 견뎌야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실 견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감다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행동을 촉구하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최소한 진실만은 외면하지 않고 현실을 이를 악물고 살아내라고 선동하고 있는게지요 웃음이라는 포장지와 웃음을 유발하는 그로테스크한 현실이라는 내용물을 가지고 말입니다.
아아 발이 시리고 손가락이 굳어갑니다. 너무 오래 쓰거나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이제 저는 다른 책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어요 갑자기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대한 고찰>인가 하는 책을 다 읽지 못했다는 생각이들지만 처음부터 다시 읽을 생각을 하니 다시 도망가야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몸을 보중하고 고뿔 조심하시길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