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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 자신의 삶을 투영한 자전적 소설 【벨자 The bell j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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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극적인 삶이 있을까. 실비아 플라스 하면 퍼뜩 이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살아서보다 사후 60년대 페미니즘열풍에 힘입어 더 큰 주목을 받았던 여류시인. 대학생때까지 무려 400여편의 시를 썼던 천재적인 글쟁이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소설은 『The bell jar』 이 단 한편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한편으로 충분히 그녀의 정신적 고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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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극적인 삶이 있을까. 실비아 플라스 하면 퍼뜩 이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살아서보다 사후 60년대 페미니즘열풍에 힘입어 더 큰 주목을 받았던 여류시인. 대학생때까지 무려 400여편의 시를 썼던 천재적인 글쟁이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소설은 『The bell jar』 이 단 한편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한편으로 충분히 그녀의 정신적 고뇌와 삶에 대한 목마름과 글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그녀의 삶이 극적이라고 표현한 데는 살아생전 뿐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된 방법도 톡톡히 한몫하고 있다. 사실 죽음에 이르게 된 방법을 왈가왈부 하는건 탐탁치 않지만 유명인이기에 피해 갈 수 없는 듯하다. 실비아 플라스의  전 남편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영국의 계관시인 테드 휴즈다. 첫만남에서 불같은 사랑에 빠져서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지만 8년이라는 결혼생활은 결국 테드 휴즈의 외도로 인해 파경을 맞게 된다. 이혼한지 1년 후 가스오븐 속에 머리를 넣고 자살한 그녀의 삶은 그래서 비극적이고 아프고 또 아프다. 테드와의 사이에 낳은 두 남매의 빵과 우유를 챙겨놓고 가스가 새나가지 않게 문틀 꼼꼼히 테이프를 발라놓고 생을 마감했다는 그녀, 그 애정으로 살아갈 순 없었을까...어떤 의미로든 자살은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아까운 인재, 젊은 여인이 그리 허망하게 간데에 대해 안타까움만 그득하다.

 

실비아는 유독 자전적인 이야기를 작품에 많이 담은 것으로 유명하다. 소설 『벨자』 역시 그녀의 경험을 토대로 쓰여진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불과 자살 한달전에 출간된 이 소설은 그래서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심각한 우울증으로 인해 50~60년대에 성황이었던 전기충격요법을 받기도 했던 그녀는 소설속에서 그 치료에 대한 거부감을 강하게 드러낸다. 지금도 여전히 전기충법요법은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에 좋은 치료방법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우울증 환자 같은 경우 자살율의 증가와 기억상실과 같은 부작용도 있기에 금지하는 나라도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심리적으로는 환자의  고통과 두려움을 더욱 배가시키는 비인간적인 치료방법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말년에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ECT(전기충격요법)를 12번이나 시행한 며칠후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벨자는 종모양의 유리그릇이라는 뜻한다. 소설속의 주인공 에스더 그린우드는 자신의 머리 위에 이 벨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생각한다. 벨자 속에 갖혀서 제대로 된 자신의 삶과 소통하고 있지 못하는 답답한 상태를 나타낸 것으로 생각 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빗겨갈 수 없고 한번쯤 생각 해 보지 않은 문제일 수 없다. 다만 실비아 혹은 에스더에게는 그 기간이 오래(어쩌면 죽는 그날까지)였고 이에 대해 영원한 물음을 추구했다는게 다르다면 다를까. 전도유망한 여대생으로, 소설가가 되고싶었던 에스더는 잡지사 공모전에 입상해 뉴욕으로 입성入城한다. 평온하기만 했던 시골의 공부만 잘하던 촌스런 여대생의 삶과는 달리 마천루가 한없이 뻗어있고 바쁘게 돌아가는 뉴욕의 삶과 뉴욕사람들의 모습은 그녀를 점점 혼란스러운 경지로 몰아넣는다. 자유롭고 참다운 삶을 살 수 있을거라는 희망과는 달리 폐허가 되버린 내면을 갖고있는 사람들의 가식과 가면이 덧씌워져 있는듯한  삶의 모습은 급기야 그녀를 정신분열증이라는 덫 속으로 가둬버리게 된다. 여인의 처녀성과 순결을 중시하는 그녀였지만 이곳에서의 문란한 성생활을 목도함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심지어 여성협오증 남성에게 강간을 당할뻔한 위기에 처하고 결혼할 상대로 생각했던 남학생의 동정은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부터는 자신의 순결을 바칠 남성을 시시각각 찾아다닌다. 다시 만날 필요도 없고 자신의 삶에 하등 연관이 없을 사람으로. 급기야 이것은 피임시술로까지 이어지는데, 에스더의 모친이 바라는 딸의 삶(속기와 타자를 배워서 삶을 영위하길 바라는) 과 자식으로써의 자신의 꿈을 향한 소신이 스스로의 생식의 기회를 박탈하고자 하는 행위로 표출 된 듯 하다. 겉잡을 수 없는 그녀의 정신분열 상태는 자살이라는 최후 수단에까지 이르게 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기까지 이르른다. 갇혀있는 그 곳에서의 시간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내면의 혼란스러움은 점점 거세지기만 하고, 증상의 심한 정도에 따라 단계별로 나뉘어지는 입원생활 속에서,  더 나은 곳을 향한 기대와(자신의 정신상태가 멀쩡하다는), 자신의 정신은 피폐해질데로 피폐해져 정신병자라고 생각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은  글로써 충분히 잘 전달되고 있다. 

 

읽는 내내 혼란스러운 소설이었다. 실비아 플라스 자신의 복잡한 정신상태가 그대로 투영된 듯 시시각각 빠르게 변화해가는 에스더의 심리상태로 인해 읽고 이해해나가는데는 좀 더디긴 했지만 실비아의 삶을 알고나서 읽다보면 왜 에스더가 이렇게 다층적인 인물인지는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 실비아 그녀의 글은 적나라하고 솔직하고 대범하다. 자신의 소리를 가감없이 글로써 자유롭게 표현해냈다. 글을 쓰는 것만이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에 자살 직전의 혼란스러운 정신의 마지막까지도 한달에 30편이라는 시를 써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외로움을 알아달라는 부르짖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나......끝으로 사랑과 인생과 자신에 대한 사상이 잘 녹아있는 그녀의 시 몇편과 함께 리뷰를 마칠까 한다.

 

 

 

*느릅나무

 

당신이 내 안에서 듣는 것은 바다입니까?
아니면 당신의 광기였던 무無의 목소리인가요?
사랑은 그림자랍니다.
사랑이 끝난 후 당신은 얼마나 거짓말을 하고 우는가요,
들어보세요.
이런 것들은 사랑의 발굽이랍니다.
사랑은 말처럼 멀리 가버렸어요
온 밤을 나는 이렇게 맹렬히
당신 머리가 돌이 되고 당신 베개가 잔디가 될 때까지,
메아리를 울리며, 울리며
내 속엔 언제나 비명이 살고 있어요. 밤마다 비명은 울부짖으며
내 속에서 잠자고 있는 이 어두운 것이
구름이 지나가고 흩어집니다.
저런 것들이 사랑의 얼굴인가요.
저렇게 창백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나는 나무를 꿈꾼다

 

가끔씩 나는 나무를 꿈꾼다
내 인생의 나뭇가지 하나는 결혼할 남자
거기 딸린 잎들은 아이들이다
다른 가지는 작가로서의 나의 미래
거기 딸린 잎은 나의 시다
또 다른 가지는 화려한 학문 경력
그러나 어느새 잎은 갈색이 되어 바람에 날려가고
나무는 모든것을 잃고
헐벗고야 만다.

 

*거울

 

나는 은빛이며 정확하다. 나는 선입견을 갖고 있지 않다.
무엇을 보든지 나는 즉시 받아들인다.
있는 그대로, 사랑이나 증오로, 흐려지지 않는다.
나는 잔인하지 않다, 단지 솔직할 뿐이다.
네 귀퉁이를 갖고 있는 작은 신의 눈이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반대쪽에 있는 벽을 보고 명상에 잠긴다.
그건 분홍색이며, 얼룩이 있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보아 왔기 때문에
내 심장의 일부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것은 깜박인다.
얼굴과 어둠이 우리를 자꾸 자꾸 분리시킨다.

이제 나는 호수다. 한 여인이 내 위로 몸을 구부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인지 내 한계까지 찾아보고 있다.
그런 다음 그녀는 저 거짓말쟁이들, 촛불이나 달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나는 그녀의 등을 본다, 그리고 그것을 충실하게 반영한다.
그녀는 눈물과 안절부절 못하는 손짓으로 나에게 보상해준다.
나는 그녀에게 중요하다. 그녀는 왔다가 간다.
매일 아침 어둠을 대치하는 것은 그녀의 얼굴이다.
내 속에서 젊은 소녀를 익사시키고, 그리고 내 속에서 늙은 여인이
매일 아침 그녀를 향해 솟아오른다. 끔찍한 물고기 같아.

 

["나는 리뷰어다" 이벤트 참여 리뷰입니다]



w*****8 2011.11.22. 신고 공감 18 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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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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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자(Bell Jar)는 31살의 나이로 자살한 천재 실비아 플라스의 단 한편뿐인 자전소설이다. 이 소설과 작가에 대해 잠깐 소개를 하겠다. 벨자는 호밀밭의 파수꾼과 더불어 미국에서 꼭 읽어봐야 할 성장소설로 알려져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이 콜필드로, 감수성 예민한 소년이 현실을 받아들이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정신의 분열을 일으킨다면, 벨자에서는 주인공이 에스더 그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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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자(Bell Jar)는 31살의 나이로 자살한 천재 실비아 플라스의 단 한편뿐인 자전소설이다. 이 소설과 작가에 대해 잠깐 소개를 하겠다. 벨자는 호밀밭의 파수꾼과 더불어 미국에서 꼭 읽어봐야 할 성장소설로 알려져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이 콜필드로, 감수성 예민한 소년이 현실을 받아들이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정신의 분열을 일으킨다면, 벨자에서는 주인공이 에스더 그린우드라는 이름의 여대생이며 역시 현실과 자신과의 괴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기도와 정신병원을 오가는 이야기다. 실제로 이 소설은 실비아 플라스가 여러번 시도했던 자살기도와 정신병원에서의 치료 경험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단어 뜻 그대로 벨자는 종 모양의 유리 그릇을 말한다. 이 벨자에는 의미가 있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실비아 플라스 자신인 에스더 그린우드가 벨자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는것처럼 삶을 답답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녀의 삶은 갑갑하고 죽을것만 같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알수 없으나 굳이 말하자면 전부가 되고 싶은 천재 소녀 에스더는 전부가 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서서히 붕괴되어 간다.

 

십오 년 동안 모든 과목에서 A를 받고 장학금을 따내며 대학에 입학한 최고급 엘리트 에스더는 남들 보기에 매우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19년 동안 촌구석에 살면서 잡지 한 권 사 볼 형편이 못되던 여자애가,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가더니 이런저런 상을 받고 결국 뉴욕을 휩쓸고 다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뉴욕을 휩쓸고 다니지 못하며 여기저기 휩쓸려 다니는 처지이다. 그리고 그녀가 뉴욕에 있는 이유는 패션 잡지 콘테스트에서 문학 부문에 입상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달간 뉴욕에서 일자리를 제공받고 체제 경비까지 지원 받은 것이다.

 

뉴욕에서의 삶은 그녀에게 허망하다. 그녀는 집에 돌아가서 수강하기로 한 글짓기 강좌에 희망을 가지며 겨우 하루 하루를 버텨나간다. 그리하여 한 달 간의 체제가 끝나고 집에 돌아갔을 때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있다. 하지만 승용차를 가지고 역까지 마중나온 에스더의 어머니는 딸에게 글짓기 수강의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소식을 알려준다. 에스더는 좌절하고,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는 상태로 여름 방학을 겨우 보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소설을 쓰기로 한다. 하지만 쓰다가 이내 자신의 경험이 소설을 쓰기엔 절대적으로 부족함을 알고 포기한다. 다음엔 논문을 쓰기로 한다. 그러다 또 이내 포기한다. 1년간 독일에 가서 독일어를 배우는 셈치고 웨이트리스나 해볼까 생각한다. 그러나 웨이트리스 같은 것이 된다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자살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집 지하실에 있는 구멍으로 들어가 훔쳐온 엄마의 수면제를 오십알 먹고 정신을 놓는다. 그 다음 그녀가 깨어난 곳은 자기 집 지하실도 아니고 자기 방도 아니고 일반 병동도 아닌 정신 병원이다.

 

그 다음에는 정신병원에서 실비아 플라스 자신이 겪었던 여러가지 일들이 소설의 허구적 상황에 결합하여 잘 묘사되어 있다. 거기서 그녀는 수많은 정신병자들을 만나고 또 친구를 만난다. 친구 조앤 역시 에스더처럼 자살미수로 병원에 들어왔지만 에스더에 비해 비교적 멀쩡하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매우 멀쩡하여 외출과 쇼핑 특권까지 얻은 조앤은 어느날 갑자기 얼음연못 근처에서 발견된다. 목을 메어 자살한 것이다.

 

자살한 천재 시인 실비아 플라스(1932-1963)

 

소설에서 에스더 그린우드는 정신병원에서 정상판정을 받고 퇴원한다. 퇴원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하지만 저자 실비아 플라스의 삶에서 그 뒷 이야기를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녀는 벨자를 출판 한 지 한 달만에 두 아이들을 옆방 침대에 재우고 오븐에 머리를 처박은 채 가스중독으로 자살한다. 18세가 되기 전에 이미 400여편의 시를 쓰고 모든 과목에서 탁월한 성적을 자랑하던 완벽한 천재소녀 실비아 플라스는 결국 자기 머리 위에 놓였던 벨자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현실과 메울 수 없는 거리감에 좌절한 채 죽어갔다.

h******0 2009.09.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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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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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LL JAR ; 종모양의 그릇   [영화 “실비아”에서 실비아플라스 역을 맡은 귀네스펠트로우]   주인공 에스더 그린우드는 여대에 다니다 잡지사 공모에 입상하여 뉴욕에서 여름을 보내게 된다. 시골에서 모범생인 그녀가 뉴욕에서 겪은 일들은 그녀의 일상을 180도 바꿔버렸다. 인간의 추악한 면모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문학의 길을 걸으려고 하는 그녀에게 엄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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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LL JAR

; 종모양의 그릇

 

[영화 “실비아”에서 실비아플라스 역을 맡은 귀네스펠트로우]

 

주인공 에스더 그린우드는 여대에 다니다 잡지사 공모에 입상하여 뉴욕에서 여름을 보내게 된다. 시골에서 모범생인 그녀가 뉴욕에서 겪은 일들은 그녀의 일상을 180도 바꿔버렸다. 인간의 추악한 면모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문학의 길을 걸으려고 하는 그녀에게 엄마는 타자와 속기를 배우라고 하고, 남자친구의 위선을 느껴 그와의 관계도 가꿔가지 못하는 사이에 그녀는 종모양의 그릇에 덮힌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뉴욕을 다녀온 이후 그녀의 우울증의 깊이는 더해져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전기충격이라는 그 시대의 효과적인 치료법을 견뎌내고 퇴원을 하게 되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가야할 방향을 찾지 못하는 암흑의 괴로움을 맞이하게 된다.

실비아 플라스의 자전적 소설 벨자는 한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운 세상과 그 속의 참된 관계를 원하는 젊은이의 격정과 방황이 담겨있다. 젊은날의 방황이라는 때 늦은 성장소설로 보기에는 그녀의 삶과 너무나 닮아 있다.

아름다운 세상과 순수한 관계를 우리는 꿈꾼다. 그리고 그 꿈을 추구하기 위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 노력은 곧 물든(?) 세상과의 타협에 익숙해진다.

한 방향으로만의 삶을 강요받고 종모양의 그릇을 뒤집어 쓴 것 처럼 칠흑의 어둠이 계속될 때 우리의 꿈은 타협하게 된다. 타협한 꿈은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여기게 만든다. 하지만 그 답답함이 어쩌면 죽음보다 더 한 ‘어둠’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실비아플라스는 그렇게 꿈을 이루기 위한 절대적인 욕망사이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갔다. 읽고 나니 자신의 자아를 찾고자 하는 격정적인 욕망과 그 욕망의 좌절 속에서 오는 허무를 동시에 느끼며 한참동안 요절한 그녀의 삶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의 남편이 버린 휴즈의 일기가 살아돌아온다면 그녀의 고통과 방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만 버리고 남겨진 그녀의 일기와 시집 <거상><에어리얼>으로 갈증을 해결할 수 밖에...

영화 [실비아]의 마지막 자막

1963년 2월11일 실비아 플라스는 자신의 부엌에서 가스를 마시고 자살하였다. 1년후 남편 테드휴즈는 그녀의 유고를 정리하여 시집 [에어리얼]을 출간하였다 에어리얼은 20세기 가장 많이 읽힌 시집이 되었으며 실비아플라스는 수세기에 걸친 독자들에게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 결혼하고 싶지 않은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무한한 안정감을 갖추고 화살을 튕겨내는 시위 따뉘는 결코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변화와 짜릿함을 원했고, 나 자신이 사방으로 튕겨나가고 싶었다” p101

h****8 2009.08.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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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자] 종모양의 유리 그릇, 입속의 검은 잎
"[벨자] 종모양의 유리 그릇, 입속의 검은 잎" 내용보기
1989년 3월 7일 종로3가, 동시상영을 하는 허름한 심야극장에서 기형도 시인이 마지막으로 본 건 무엇일까. 아무려나 나는 영화처럼 살다간 서른의 기형도를 다시 영사기에 걸어서 스크린에 비추듯 떠올린다. 시를 좀 못쓰더라도, 그저 오래 살아서 그 예민한 그물채로 시 대신 동네 약수터에서 배드민턴공이나 톡톡 주고받으며 연하게 살아도 좋았을 것을. 시 때문에 그리 된 게
"[벨자] 종모양의 유리 그릇, 입속의 검은 잎" 내용보기

1989년 3월 7일 종로3가, 동시상영을 하는 허름한 심야극장에서 기형도 시인이 마지막으로 본 건 무엇일까. 아무려나 나는 영화처럼 살다간 서른의 기형도를 다시 영사기에 걸어서 스크린에 비추듯 떠올린다.


시를 좀 못쓰더라도, 그저 오래 살아서 그 예민한 그물채로 시 대신 동네 약수터에서 배드민턴공이나 톡톡 주고받으며 연하게 살아도 좋았을 것을. 시 때문에 그리 된 게 아닐 텐데도 시에 기력을 죄 풀어놓은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가 살아온 눅진눅진한 세계가 시 속에 고스란히 포집되어 있으니.


영화 속 배우들처럼 촌스런 웃음을 짓는 기형도는 영원히 수줍은 청년으로 남았다. 실비아 플라스의 자전 소설 <벨자(The Bell Jar)>의 날개에 실린 사진을 봤다. 흑백사진 속 웃는 얼굴은 해맑기만 하다. 시인인 그녀도 기형도와 비슷한 연배 즈음인 서른의 길지 않은 삶을 마감했다. ‘요절한 천재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그녀의 이름 앞에도 만장처럼 붙었다.


시인인 그녀는 자살하기 한 달 전인 1963년 1월에 소설 <벨자>를 내놨다. 그녀의 고백시처럼 소설은 그녀의 삶과 허구 사이의 경계가 없었다. 이후 하루에 한 편씩 시를 써낸 셈인 서른 편의 시를 쓰고는 가스오븐에 자신의 머리를 집어넣었다. 속에서 끓이고 끓여 한 방울의 진액이 된 좌절이 뾰족한 펜촉을 타고 모조리 다 빠져나왔다면 좋왔으련만.


<벨자>는 실비아 플라스의 처녀작이며 유일한 소설이자, 어찌 보면 자서전이고, 세상에 대한 항변이자 유서이다. 벨자(종 모양의 유리그릇)에 갇힌 상황이나 다름없다는 좌절에 빠져 자살을 기도했다가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작가의 응어리진 삶이 그대로 담겼다. 소설은 주인공 에스더가 정신병원 퇴원 면접을 보기 직전의 장면에서 끝난다. 아슬아슬하게나마 죽음을 비켜가려는 의지라고 읽힐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고문이나 다름없는 전기 자극 치료가 치료법으로 성행하는 정신과 병동은 ‘다름’에 대한 용인이 허용되지 않는 50년대 미국 냉전시대의 냉혹한 사회 분위기를 상징한다. 특히 여성에게 순결과 조신한 가정주부 역할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는 딱 벨자였다.


다만 소설을 보면 당시 여성들은 지배 이데올로기에 젖어서 벨자를 감옥이 아닌 피신처로 여긴 듯하다. 작가의 실제 삶도 그랬지만 주인공 에스더는 처음부터 사회반항적이지는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전형적인 모범생으로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가더니 이런저런 상을 받고 결국 뉴욕을 휩쓸고’ 다녔다.


그러나 밖으로 드러난 모습이 화려할수록 에스더가 정말로 원하는 삶과 자신이 꾸미는 삶 사이의 괴리는 점점 더 벌어진다. 속을 터놓을 데 없는-사회순응적인 엄마나 남자를 통해 계급 상승을 꿈꾸는 친구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외로운 존재의 자살 시도는 소설에서 특별한 계기가 없이도 납득이 갔다. 엘리트에서 정신병자로의 끝 간 데 없는 추락은 신문에 오르내리는 가십거리가 되고, 에스더는 구경거리, 조롱거리가 된다. 이제 세상은 완벽한 지옥이 되었다.


나 같은 사람들은 죽기 전에 지옥에 살아야 한다고 말했으니 그럴 수밖에. 나는 그런 사람들은 사후 세계를 믿지 않으니 그런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죽으면 각자 믿었던 대로 당하게 된다고 말했다. (245쪽)


지옥에서 견디는 방법은 있을까. 에스더는 의사위원회로부터 퇴원을 허락받으면 ‘6개월 전 몹시도 빠져나오고 싶어했던’ 대학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자살 시도로부터의 완치 여부를 판단하는 의사위원회는 동일한 잣대를 요구하는 사회의 억압 체계의 단면이다.


같은 병동에서 만난 친구 조앤은 퇴원이나 다름없는 자유를 누렸지만 결국 자살했다. 면접을 통과하려면 조앤처럼 겉으로 가식적인 태도를 취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대학으로 돌아가면 역시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자살을 시도하기 전과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는 세상으로의 편입. 그래서일까, 소설 출간 이후 곧 바로 이어진 작가의 자살은 소설에서는 보여주지 않은 퇴원 이후의 마지막 한 페이지를 직접 보여준 셈이 되어버렸다.


냉정 시대는 60년에 들어서면서 월남전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미국에서는 젊은이의 반체제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남성우월주의에 대항하는 여성해방운동과 함께, 흑인, 인디언, 히스패닉 등 소외된 소수의 권익을 회복하려는 운동도 나타났다. 시대의 요구와 내면의 자유 사이에서 극한 갈등이 빚어낸 실비아 플라스의 짧은 삶은 이들에게 교훈을 주었을 것이다. 그녀가 살았다면 그 시대를 누구보다 반겨 맞았을 거라 생각하니, 못내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어디 있든-배의 갑판이든 파리나 방콕의 거리 카페든-나 자신의 시큼한 공기 속에서 속을 태우며 벨자 밑에 앉아 있을 테니까 (224쪽)

 

버디 월라드가 동정이 아님을 안 후로, 내 처녀성이 목에 단 맷돌처럼 무거웠다. 아주 오랫동안 순결을 중요시하다 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5년 동안 그렇게 살다보니 이제 지긋지긋했다. (278쪽)



b******n 2009.08.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