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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라는 대륙의 거대한 나라가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친근하고 편하게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공산정권의 나라, 한국전쟁의 또다른 주적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인데, 나아가 오랜 과거로부터의 역사에서 드러나는 갖은 침략행위를 생각하며 이를 가는 이도 있다. 그러나 지금 세계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변화의 바람을 품고있는 중국이 우리의 이웃에서 기지개를 펴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웃집의 정황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는 없다. 이 책<자금성의 황혼>은 제목그대로 한 국가의 황혼녁 풍경을 보여주는데 바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로 이어지는 근대의 마지막황제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현재 이 시점은 다시 태어난 중국의 약동하는 아침녁이라고 할 수 있을진데 이 날의 일기를 앎에 있어 전날의 끄트머리의 기상을 되집어보는 것 만큼 현명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자금성의 황혼>을 우리가 자세히 들여다 봐야하는 이유는 분명하다고 할 수 있겠다. 중국 마직막 황제의 스승이었던 영국지식인의 손으로 쓰여진 이 책은 무엇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하며 깊은 사유를 담은 시각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근대 중국의 흥미진진했던 역사적 사건들을 긴박하고 생생하게 보여주어 기존의 역사서에서 풍기는 진부함도 확실히 거세해 줬으니 적극 추천할 만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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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는 말이 없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 되어버리는 그 순간에도 아무런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 채 침묵만을 반복하는 것이 패자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수많은 권력이 그렇게 식어버렸다. 그러나 사람은 사라져도 그들이 남긴 것들까지 모조리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유물이 되고 유적이 되어 후대 사람들에게 중히 여김을 받는다. 다만, 그렇게 남은 것들을 향한 해석은 여전히 승자의 탈을 쓴 채 이루어진다. 제 아무리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더라도 최후의 승자가 아니라면 폄하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역사는 묘하다. 누르하치에 의해 건국된 청나라도 과거가 되어버린 하나의 대국이라 할 수 있다. 한 때 우리나라를 짓밟을 정도로 그들의 힘은 거셌다. 비록 한족이 세운 국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인해 때때로 한족들의 무시를 당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엄연히 만주대륙의 패자였다. 이 책이 쓰여진 그리고 이 책에 의해 다루어지고 있는 시점은 그러나, 이 거대한 국가가 풍전등화(風前燈火)마냥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을 때이다. 저자의 이름은 레지널드 존스턴.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서양인이다. 그가 청나라에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까닭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힘이 그곳까지 미쳤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서양인들의 출몰(?)이 잦지 않았을 그 시점이기에, 그의 청나라 방문은 특이한 사안으로 후대의 주목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희귀하기 때문에 이 두꺼운 책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아니었다.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이자 이후 일제가 세운 괴뢰국이라 할 수 있는 만주국의 황제로 등극하는 부의의 스승 역할을 그가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 서양인의 눈에 황제 부의는 어떠한 사람으로 비추어졌을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 어린 황제를 불쌍하게 그리곤 한다. 너무 어린 나이에 왕좌에 올랐고, 이미 뒤틀린 운명의 소용돌이에 빠져버린 국가를 구하기엔 턱없이 힘이 부족했던… 어찌되었건 한 나라를 망국으로 몰고 갔으니 ‘무능력하다’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을 것이다. 한 개인의 글은 언제나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제 아무리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성을 유지하려 든다손 치더라도, 인물이 인물을 바라보는 것에 있어서는 특히 알게 모르게 제 감정이 포함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존스턴에게 있어서 황제 부의는 마냥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황제로서의 덕목을 갖춘, 그에게 부의는 온 마음을 다해 아껴도 부족함이 없는 소중한 제자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부의를 많은 사람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의 소유자로 묘사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혼란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사로운 감정에 근거에 특정인을 내치진 않은 인물. 조상들이 대대로 가꾸어온 만주대륙의 주인, 비록 지금은 한없이 작은 힘을 가졌지만 부패한 내무부가 혁신을 이루고 난무하는 파벌이 어느 정도 정돈이 되면 언제라도 용으로서의 면모를 보일 인물. 그가 그린 부의는 철없는 아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인물에 대한 묘사 못지 않게 이 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물 흐르듯 마지막을 향해 뻗어나가던 청국의 운명을 다룬 부분이었다. 충정어린 신하들도 분명 존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저곳에서 걷잡을 수 없이 행해지던 부정부패. 누가 누구 편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정도롤 비일비재했던 권력다툼 등을 저자는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이었다. 만일 그가 현대를 살아가는 중국인이었더라면 오늘날 중국인이 제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서 다분히 반영된 한족 중심주의적인 시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시대의 중심에 서 있었고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만주족 그리고 청나라의 지배 계급에 편향된 시선을 저자는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는 오늘날로서는 보편적인 시각이 아니기에, 한쪽으로 치우친 역사해석에 균형을 가져다줄 수 있는 신선함으로써 내게 다가왔다. 저자는 1938년 사망했다. 그것도 한 무인도를 사들여 그곳에 은거하다가 죽었단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중국 대륙이 보다 더 큰 혼란에 빠지는 것을 그는 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래서일까? 책의 말미에서는 다소 희망적인 분위기까지 느껴진다. 만일 그가 조금 더 오래 살아 부의가 만주국의 수반이 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까지 지켜보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때도 이 어린 황제를 긍정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을까? 죽은 자에게는 침묵만이 허락된다. 그렇기에 더더욱, 영면에 든 저자에게 묻고파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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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제 부의를 얼마전 다시 보게 되었다. 어린시절 아스라한 기억에 마지막 황제가 마지막으로 자금성의 티켓을 구입해서 방문했던 장면이 남아있었다. 다시금 마지막 황제를 보면서 새로운 문화의 충돌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했음을 알았다. 황제인 그마저도 말이다. 요즘 중국의 광풍이 무섭다. 그래서 더욱 중국이 궁금해 진다. 가깝다면 가까운 과거이고, 멀다면 먼 과거일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시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중국의 근대사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산 황제의 일생을 살펴봄으로서 지나간 광풍이 무엇이었는지, 그 광풍을 어떻게 맞았고, 견디어 내고 이겨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마지막 황제의 교사인 존스턴은 그와 함께 했던 그 소중한 순간을 자금성의 황혼이라는 책으로 모든것을 대변해준다. 마지막 황제 영화에서도 그의 저서는 소중한 자료, 아니 증거로서 채택되기도 했다. 자금성에 갇혀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자신의 지위가 명목상으로 남겨지고 ,그는 자금성안에서의 황제로서 생활을 했다. 조용히 지내는 황제를 주변에서 그냥 두지 않았다. 공화주의를 주장하는 혁명파와, 보황파인 제정주의 자들의 힘겨루기에 부의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폐위가 풍옥상에 의해 강압적으로 일어났을때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던 자유였을까? 하지만 곧 그는 일본 공사관으로 천진으로 만주로 도망쳐다닌다. 자금성의 황혼은 만주사변 즈음에서 이야기가 끝이 난다. 그후 그가 어떤 생활을 하였는지는 마지막 황제 영화를 보고 조금 짐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책을 통해 그 당시 중국에서 새로운 정치 모색을 찾던 변화의 시기였음을 알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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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제 부의의 스승 존스턴이 기록한 제국의 최후" 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한눈에 내 눈길을 끌었다. 꽤 오래전에 방송을 통해 시리즈로 영화를 통해서 스크린에서 만나본 "마지막 황제"는 대단히 아름답고도 멋진 영화였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과연 영화속 등장인물중 실존인물이 쓴 이 책은 어떤 내용일까 많이 궁금했다. 특히 같은 동양인이거나 중국인이 아님 서양인의 시각으로 당시의 상황을 바라본 이 책은 그 의미가 큰 것 같다. 중국 근대사를 새롭게 제조명해보는 의미도 있고 어렸던 마지막 황제를 그는 어떤 모습으로 지켜보았는가는 상당히 흥미로운 요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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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하는 모든 것들은 아름답다.
거대한 제국일수록 그 멸망과정은 흥미롭고 애처롭기 마련이다. 한 세기를 넘어 존재했던 불멸의 제국 로마는 이슬람의 깃발 아래 무너졌다. 더 극적이게도 전설상의 로마를 최초로 건국했던 인물과 같은 이름을 가졌던 황제는 물밀듯이 밀려오는 오스만 투르크군과 싸우다 죽었고, 그의 시신은 끝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비잔틴 제국만큼은 아니지만 중국 최후의 제국 청의 멸망도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를 떠올리지 않는다고 해도 한때 중국대륙은 물론 아시아를 호령했던 제국의 황혼은 흥미롭다가보다는 애잔하다.
서태후의 발길 아래 마지막 부흥의 기회가 짓밟혀버리고 공화주의자들의 폭동을 진압해야 할 원세개가 되려 황제를 압박해 공화국을 선포해버린다. 황제와 그의 일족들은 자금성 안에서 갇혀지내야만 했다. 결국 이런 저런 세력에 떠밀리던 황제는 만주로 도망쳐 일본 제국주의의 앞잡이 노릇을 하게 된다. 전범으로 체포되고 혹독한 수형 생활을 마친 황제는 정원사로 여생을 보낸다. 아주 짧게 함축한 이 삶을 살기 위해 황제는 어떤 고비를 넘기고 어떤 갈등을 겪었을까?
그 모든 과정 - 더 정확하게는 만주국 황제로 가기 직전까지 - 을 옆에서 지켜본 황제의 스승은 특별했다. 영국인 레지널드 존스턴은 본명보다는 장사돈이나 논어에서 따온 지도라는 호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중국인만큼이나 중국어에 능통하고 중국인들보다 더 황제에게 충성했던 이 기묘한 영국인은 충실한 스승이자 신하로서 기록들을 남겨놓는다.
한발짝 떨어져있으면서 사실은 그 한복판에 있었던 그의 증언은 제국의 멸망 - 그는 황혼이라는 말을 더 즐겨썼다 - 을 쓸쓸하게 비춰준다. 조금씩 절벽으로 밀려난다는 느낌이었을까? 움직일 공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생각이 공포였을까? 아니면 절망이었을까?
청의 멸망과정은 단지 한 국가의 몰락이나 소멸이 아니라 서구 제국주의의 발길이 닿은 모든 곳들의 숙명이었다. 청과 비슷하거나 더 끔찍한 몰락을 경험했던 우리로서는 반드시 기억해두어야만 할 일들이다. 과거는 잊어버리는 순간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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