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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춤이나 춥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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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던 중에 저자 정용주 시인의 전화를 받다   치악산 금대계곡에서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정용주 시인의 산문집인 <고고춤이나 춥시다>를 읽었다. 본시 그의 직업이 시인이니 시집을 먼저 사서 읽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나의 허를 찌른 <나는 꼭 행복해야 하는가>라는 글을 읽고나서 그의 다른 산문집 두 권을 샀다. 이 책은 정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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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던 중에 저자 정용주 시인의 전화를 받다

 

치악산 금대계곡에서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정용주 시인의 산문집인 <고고춤이나 춥시다>를 읽었다. 본시 그의 직업이 시인이니 시집을 먼저 사서 읽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나의 허를 찌른 <나는 꼭 행복해야 하는가>라는 글을 읽고나서 그의 다른 산문집 두 권을 샀다. 이 책은 정용주 시인이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의 이야기를 쓴 글이다. 이 책의 프로필에 " '고고춤을 춥시다'에서는 제법 긴 시간의 간극을 건너 한 소년이 흔들리며 커가는 날들을 되돌아보았다. 이 산문집을 통해 동시대의 독자들도 아련한 기억의 징검다리를 따라 건너면서, 어느 날 문득 아프게 그리운 그 시간을 추억해보기를 소망한다."라고 씌어있다.

 

나는 이번에 구입한 두 권의 책 가운데 <고고춤이나 춥시다>보다는 <나는 숲속의 게으름뱅이>를 먼저 읽고 싶었다. <고고춤이나 춥시다>라는 표제가 내게는 별로 흥미롭지도 않았고, 실제로 그 꼭지의 내용도 싱겁기만 했다. 동네에 결혼잔치가 있던 날 당시 중학생이던 저자가 친구들과 함께 어른들의 눈을 피해 과수원에 딸린 빈 흙집에서 여자친구들까지 불러 전축을 틀어놓고 같이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다. 이 책 속엔 그 보다도 표제로 나올만한 근사한 제목과 재미있고 감동적인 내용을 가진 글이 많다. 그런데 고고춤이 유행했던 시절이 청소년이었던 사람들에겐 이 단어가 커다란 그리움을 불러오는것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다보면 웃음이 터져 나오는 장면이 많다. 정용주 시인은 공부보다는 노는 것과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고 참 엉뚱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참 이야기가 절정을 이루는 장면에서 꼭 끝을 맺었다. 마치 드라마처럼 말이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한 것이 대부분어서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일부러 상상하도록 유도하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나는 숲속의 게으름뱅이>보다 이 책을 먼저 읽은 이유는 그의 청소년기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그의 청소년기가 왜 궁금했느냐하면 둘째 딸이 현재 열 일곱 살인데, 큰 아이와는 많이 다른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내 경험을 미루어 볼 때 사회에서는 성적보다는 사회성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별로 시키지 않았다. 그 흔한 학습지도 시키지도 않았고 학원도 원하는 경우에만 보냈으며 종이접기나 피아노, 태권도, 검도 등 예능학원에만 보냈다. 대신 전시회장이나 공연장 등에 다니면서 문화체험을 함께 하고 책을 보도록 했다. 그런데도 큰 아이는 제법 공부도 하고 친구들도 믿음직한 아이들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제가 할 일을 잘 해나갔다. 하지만 작은 아이는 좀 별스러웠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나를 찾았던 작은 아이는 내가 모임이 있어 나가 있기라도 하면 수시로 전화를 해대서 힘들게 하였다. 그러나 작은 딸은 초등학교 때 까지만 하더라도 준비물도 스스로 다 챙길만큼 독립적이었다. 엄마를 많이 생각해서 설겆이도 도와주고 안마도 잘 해주는 살가운 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것들이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싶다는 체스처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유치원 때부터 존댓말을 쓰며 예의가 발랐다. 내 표정만 보아도 벌써 어떤 상태인지 알아차릴 정도로 섬세한 성격을 가져서 내가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안 좋은 것 같기라도 하면 옆에 와서 신경을 많이 써 주고 위로도 해 주었다. 늘 내 주위를 맴돌기는 했지만 친절하고 상냥했다. 초등학교 까지는 마치 친구처럼 지내서 내 의논상대로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더운 여름 날도 인사동에 가서 생활한복을 고를 때도 짜증 한 번부리지 않고 잘 기다려주고 옷도 봐 주었다.

 

그러던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존댓말은 쓰지만 퉁명스럽게 말을 하고, 친구들과 노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생이면 이제 자신의 앞날에 대해 계획도 세워보고 공부에도 신경을 써야 할테지만 마치 유치원 아이같다. 가방만 메고 몸만 학교에 왔다갔다하지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늘상 나갔다 들어온다. 학교에서 끝나고 연락도 없이 놀다가 들어오는 날도 많다. 딸은 내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얼마 전에 남자친구까지 생겼다. 그래서 밖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는 것이다.

 

작은 딸의 이런 불안정한 일상을 보자니 정용주 시인의 청소년기는 어땠을까 궁금해서 먼저 읽게 된 것이다. 프로필에서 '흔들리며 커가는 날'이라 표현했듯이 그의 청소년기를 보니 저으기 안심이 되기도 했다.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과 또 다를 수도 있겠지만 호기심에 금기시하는 일들을 많이 해 보았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세월이 변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으나 70년 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으로서 그 때도 그렇게 보냈는데 지금 잘 살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들 말이다. 내가 워낙 모범생같은 학창시절을 보내서 그런지도 모른다. 담배도 피워보고, 소주도 여러 번 마시고, 본드도 해 보고, 물건도 훔쳐보고, 나이트장에도 가 보는 등 청소년기의 호기심을 맘껏 충족시켜 본 정용주 시인은 고등학교 시절 편지 한 장 달랑 써 놓고 집을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검정고시를 쳐서 대학에 들어갔다.

 

(291면)

집을 떠나온 17세 소년에게 세상은 어떤 것일까. 우울한 일상과 학업에 대한 중압감, 그리고 어느 덧 자라버린 육체의 성숙과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어린 내면의 혼돈 속에서 감행한 가출, 어쩌면 치기일지도 모르지만 당시 나에게는 진지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내가 맞닥뜨려야 할 세계는 높은 벽이며 깊은 외로움이었다.

 

(292면)

한때 도시의 일상에서 일천한 재주를 가지고 야망을 꿈꾸며 사업자 등록을 하기도 했고, 집을 팔아 빚을 갚는 비애도 맛보았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적은 것을 비축하기도 했고 많은 것을 탕진하기도 했다. 가랑비에 젖은 벚꽃잎이 가로등 불빛 아래 흩날리는 일본 우에노 공원 벤치에서 불법체류자의 밤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한 날들과 함께 나도 이 세계를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가끔 작은 아이를 보면 '저 아이가 내 딸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어렸을 때와는 너무도 다르게 변했고, 대범한 행동들을 할 때마다 낯설다. 딸아이가 중학생일 때는 갑자기 선생님 호출을 받고 학교에 갔더니, 마지막 시간인 자습시간을 말도 없이 빼 먹고 간다는 것이다. 그것이 몇 차례 계속되자 나를 부른 것이다. 딸은 그렇게 선생님께 말도 없이 빠져 나와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는 끝나는 시간에 맞춰 집에 왔기 때문에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숙제나 시간에 철저했던 아이가 지각도  여러차례 했다. 나는 선생님께 어차피 그런 아이라면 학교에 있어도 공부할 생각이 없으므로 무의미하니 빼 줄 것을 부탁했다. 대신 딸아이에게는 그 시간에 집에 와서 무엇을 할 것이지 스스로 계획을 짜라고 했지만 약속이 지켜지지는 않았다.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초등학교 시절 때처럼 상냥한 아이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많지만 여전히 불안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남편과 나는 모범적이고 별 탈없이 잘 커가고 있는 큰 아이보다는, 오히려 작은 아이가 사회에 나가서는 더 성공할 것이라는 말을 종종 나누었다. 불안해야 할 시기에는 충분히 불안해하고 많은 것을 경험해 보는 것이 재산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이 어설프고 생각없이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녀에게도 그 안에 어떤 씨앗이 움트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다. 넘어지고 깨어지다보면 스스로 길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자신의 삶은 스스로 끌고 가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엄마는 너를 사랑하고 있으며 너를 믿고 있다'는 메시지가 전달되는 표정을 짓고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가 불안해하는 만큼 불안할지라도 아이를 사랑하고 마음 깊숙이 믿음을 갖는 것이다. 믿는만큼 아이를 성장시키고 신뢰감을 주는 것은 없을 것기 때문이다.

 

(내가 이 리뷰를 쓰고 다듬고 있는 있는데 정용주 시인한테 전화가 걸려와서 깜짝 놀랐다. <나는 꼭 행복해야 하는가>라는 책을 읽고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달해 드리고 싶어서, 몇 가지 식품(커피, 우리밀가루, 우리밀 국수, 김, 우리밀 건빵, 오곡과자, 누룽지)을 소포로 보내드렸는데 감사하다고 전화를 주셨다. 별 것 아닌 것 보내드리고 부담드리는 것 같아 죄송했다. 책에 대해 잠깐 이야기 나누고 우리 딸에 대해서도 좀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나니 마음이 더 편안해졌다. 한 번 놀러 오라고까지 하셨다. 정말 감사드린다. 오늘은 축복받은 날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i****l 2012.04.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