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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무지하고 오만한 인간들이 삶을 슬프게 한다. 절체절명의 치유법을 찾는 환자를 고작 자신들의 가설을 입증하는 도구나 사례로서만 접근하는 탐욕스런 과학자들로 낙담하는 지은이의 실망한 표정이 선하다. 중증 자폐증의 소통가능성, 지능의 확인, 닫힌 그들을 세상과 연결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 세상의 외면과 가족의 고통, 실망, 좌절 그리고 다시 희망과 힘겨운 노력의 과정이 소박한 사실적 이야기로 그려지고 있다.
시각에 의해서만 대상을 인식하고 구체화한다는 철칙으로 굳어진 자폐증에 대한 정설은 청각에 의한 표상의 인식을 하는 자폐아의 진단과 치료를 아예 차단하고, 인정치 않으려는 과학자들의 자기 방어적이고, 보수적인 이기적 오만의 태도에 직면한다. 이러한 상황들은 우리가 항상 마주하여야 하는 왜곡된 실상이어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사람들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곤 한다.
자신의 아이가 자폐아로 진단되었을 때, 차마 인정치 못하고 안타까움과 혼란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엄마의 참혹한 심정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대면한 자폐증에 대한 의학적 연구와 치료의 세계는 한없이 일천하고 열악하기만 하다. 정신의학, 신경심리학, 분자생물학의 세계적 명성을 지닌 학자들은 저마다 단편적인 자신들의 이론을 수호하고, 명예를 유지하는데 있을 뿐, 자폐증의 심층적 연구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현실만을 접하게 된다. 자폐아인 아들 ‘도브’의 닫혀버린 세상을 열어주기 위한 엄마로서, 지은이 ‘포셔’의 이 굳게 쌓인 벽으로 둘러쳐진 사회를 향한 도전기이자, 자폐증에 대한 두터운 무지를 한 겹씩 벗겨나가는 실천적 성과물인 이 저작물은 그래서 온통 사랑이고 연민이며, 삶에 대한 아름다운 수상록이 된다. 세상이 무심하면, 내가 알아야 하며, 내가 해결을 위해 먼저 나서야 한다. 포셔와 남편 존의 자폐증에 대한 세상에의 호소는 ‘CAN(Cure Autism Now ; 이제 자폐증을 치료하자)’이라는 세계최대의 자폐증연구재단을 설립하기에 이르고, 중증 자폐아인 인도의 소년 티토와 그의 엄마 소마를 알게 된다. 미술 전공의 방송작가인 지은이가 신경학, 분자생물학, 정신의학, 심리학의 그 고상한 이론들을 섭렵하기위해 내 딛는 분투는 현대의학의 무기력하고 무심한 현실에 대한 도전이다. 그리고, 수많은 자폐아들, 세상과 단절된 이 아이들에게 소통이란 열린 세계를 보여주기 위한 인간애이며, 바로 내 아이를 그 어두운 터널에서 태양이 비추는 밝은 세상으로 데려오기 위함이다. 이 저작물은 이렇듯 한 자폐아의 엄마이자 자폐증 연구재단의 설립자로서의 관점은 물론, 자폐증의 숨겨진 모습에서 희망을 함께 찾아가는 ‘소마와 티토’와의 진단테스트 과정과 결과, 질문과 대답 등 수많은 대화를 통해 인식에 이르는 세세한 절차와 과정의 추적 등 자폐증의 다양한 현상들을 보여주어 기초연구자료로서의 생생한 가치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 일종의 자폐증 연구 성과물로서의 의의를 지닌다고 까지 하겠다. 특히, 청각과 시각적 자폐증이란 자폐증의 새로운 분류에 대한 연구관점이나, 소통의 길을 안내하는 학습프로그램의 제안 등은 여느 정신과학 성과물 못지않은 저술이라 할 수 있다. 이 저술은 세상의 모든 이들(의학은 물론 가족까지)이 외면한 중증자폐아 ‘티토’를 세상과 연결시켜주고 나아가 그 아이의 꿈을 실현시켜주고자 하는 엄마 ‘소마’의 이야기를 중심소재로 하고 있다. 엄격하면서도 진정한 사랑이 내재되어있는 소마의 독특한 학습방법이 자신(티토)의 의사를 문자판에 지시하여 표현하며, 급기야는 직접 펜을 들고 글을 써나가는 아이, 시(詩)를 쓰는 아이, 세상과 대화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시키고, 이들 모자(母子)를 통한 자폐증의 본질 - 자폐아의 내면, 사물에 대한 인식과정, 기억과 사유의 절차 등 - 을 하나하나 발견해 나아가는 과정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소마의 따뜻한 정성에 맡겨진 도브가 어느날 문득 글자판에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기 시작하였을 때, 엄마 포셔의 감격의 눈물에서 ‘ 아이가 그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해 얼마나 힘겹고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인간으로서의 깊은 연민에 가슴 뭉클한 공감으로 눈시울이 적셔지기도 한다. 쉼 없이 자신의 팔과 몸을 떨어서야 자신의 실체를 느낄 수 있는 아이들, 괴성을 지르거나, 초점 없는 시선으로 무언가에 고정된 채 앉아있는 아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 줄도 모르고, 타인의 존재에 무심한 아이, 그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차 있는 표정, 그 표정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난 정신없이 마구 뛰어다니고 뒤집어 없고 소리 지르는 나를 멈출 수가 없어요.” 몸과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 자폐아의 모습을 보면서 새삼 이들에 대한 이해는커녕 시선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았던 나와 우리의 냉담함이 한 없이 부끄러워진다. 여전히 우리 뇌의 비밀은 정복되지 않고 있다. 설사 뇌의 모든 이해를 가질 수 없더라도, 포셔, 소마와 같은 엄마들이 그들의 아이들과 그리고 그 아이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보다 많은 치유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관련 학자들의 보다 많은 관심과 연구, 이들을 지원하고 수행 할 수 있는 기금의 모집 등 우리도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행동과 참여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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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지켜줄게
포셔와 존은 결혼후 행복한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도브가 태어나고 얼마후 또래의 아이들이 말을 하고 귀여운 행동을 할때 아이가 이상한 행동을 하고 말을 못하고 또한 알아듣지도 못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과연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어떨까~ 물론 난 즉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갈 것이다. 그리고 포셔와 존처럼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치료를 해볼 수 있도록 노력 할 것이다. 하지만 도브가 어릴적에는 자폐라는 것에 대한 연구도 별로 없었을 뿐더러 치료라고 해봐야 고작 자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과 달리 포셔와 존은 아이의 병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병이 있다면 당연히 치료법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예 재단을 설립한다. CAN(자폐아를 치료하자)라는 재단을 설립하고 존은 의원들을 찾아다니면서 치료비와 연구비 지원을 받으려고 노력하고 포셔는 박사들을 찾아다니면서 아이를 치료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다 우연히 인도에서 간단한 대화도 가능하고 또한 시도 쓸수 있는 자폐아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결국 수소문끝에 소마와 티토를 미국으로 데려온다. 티토 역시 심각한 자폐아 였지만 대화도 통하고 시까지 짓는등 일반적이지 않은 특별한 자폐아였다. 그것을 해낸 사람은 다름아닌 어머니 소마였다. 그녀는 특별한 교육을 받은 사람도 아니였고, 그렇다고 그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였다. 다만 아이가 대화할 수 있다고 믿었고 자폐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계속 아이를 교육한 결과가 좋게 나왔다고 말할 뿐이었다. 출구를 찾은 포셔는 도브를 소마에게 맡기고 아이가 대화를 할 수 있도록 가르쳐달라고 하였고 오랜 시간이 지난 끝에 도브는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 감동적인 장면처럼 존과 도브는 글판으로 대화를 하게 되고 아이의 기억력이 놀라울 정도로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책은 정말 어떻게 아이에게 신경을 쓰면서도 이렇게까지 세밀하게 아이와 상황을 생생히 기록했는지 놀라울 정도로 생생했다. 그래서인지 포셔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현재는 자폐아들에 대한 치료법도 많아졌고 전문 치료기관도 많이 늘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아에 대한 편견도 많고 치료를 해주는 전문기관도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많지 않은 편이다. 결국 부모의 역할이 크다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제 2의 포셔와 존이 나타나서 이러한 소외된 아이들의 행복을 좀더 보장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서 장애아를 위한 좋은 환경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포셔와 소마 두 부모에게 대단하다는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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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눈을 지그지 감고 아빠의 손에 감싸여진 아이의 모습이 눈에 띄어 구입하게 된 책이다. 예전에 주제를 직접 선택해서 과제를 하던 중, 자폐아를 대상으로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자폐아에 대한 자료를 찾아다니면서 자폐아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다. 자폐아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서 도통 나오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데, 나 역시 한동안 그렇게 아무와도 소통을 안 해봤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이 책에는 자폐아를 둔 부모가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쏟은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책의 저자이자 자폐아의 엄마 포셔 아이버슨은 여러 치료법을 시도했는데 아무 효과도 나타나지 않자, 그 과정에서 자폐아에 대한 정보와 인식이 매우 희박하다는 걸 깨닫고 보통 사람이라면 거기서 포기할 수도 있었을 일을, 그녀는 직접 생물학이며 뇌에 대한 공부를 하고, 세계적으로 뛰어난 석학들을 찾아가 연구를 부탁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민간기관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연구재단인 CAN(Cure Autism Now)을 설립하기에까지 이른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런 저자의 추진력과 집념이 부러웠다. 나로서는 저자가 어떻게 아무 희망도 없을 것 같은 자폐아를 고칠 생각을 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저자가 성과를 거뒀던 것은 아니다. 수많은 좌절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기적을 만나고 나서야 큰 진전을 맞게 되는데, 그것은 자폐아임에도 불구하고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인도에 사는 티토라는 자폐아의 시 덕분이었다. 저자는 티토와 그의 엄마인 소마를 미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한다. 티토의 등장으로 인해 나는 '이제 자폐아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겠구나!' 하며 흥분했다. 티토가 처음부터 쉽게 소통할 수 있게 된 건 아니다. 티토가 자판을 두드려 표현할 수 있게 되고 (비록 서툰 문장이지만) 더 나아가 글로도 쓸 수 있게 된 것은 엄마의 노력이 없었다면 틀림없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티토의 행동은 손발을 떨고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난폭하게 행동하는 자폐아의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글에서 나타나는 티토의 마음은 어쩌면 나와 이리도 같은지, 읽는 내내 그의 시에 짙은 공감을 느꼈다. ‘사과 생각하고 바나나하기’는 티토의 시 제목 중 하나로 생각과 달리 뜻하지 않게 멋대로 나가는 행동을 표현한 것인데 여기서 동질감을 느꼈고 그런 티토가 안쓰러웠다. 자폐아를 규정짓는 요인은 매우 많지만 그중에서도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를 통해 자폐아도 생각을 하며 배려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슷한 예로 마음나무라는 시가 있었는데 “난 기다릴 줄 밖에 몰라”라고 말하는 마음나무, 그러면서 남의 도움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집시나무를 티토는 동경한다. 과연 티토와 나의 다른 점은 뭘까? 나는 티토와 완전 다른 인간일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와 나의 다른 점은 단지 외형상의 모습일 뿐일지도 모른다. 난 평범하지만 티토는 다른 이가 봤을 때 불안해 보인다는 것뿐..하지만 그 내면의 불안감은 같지 않을까? 타국에 와서도 언제나 씩씩한 티토의 엄마 소마는 저자의 아이 도브까지 자판을 두드려 소통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허공만 쳐다보며 아무 생각도 없을 거 같던 도브가 자판을 두드려 생각을 표현하는데 그동안 아무 소리 없이 그 모든 것을 보고 느꼈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찡했다. 비밀을 발견하는 과정은 매우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다양한 방법의 연구를 통해 증상의 원인을 찾고 갇혀있는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 연구하는 이들의 열정은 얼마나 부럽던지! 무엇보다 자폐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긴 계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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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는 아주 잘 생긴 아이었다. 이따금 괴성을 내지른다거나 사람을 물어 뜯지만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어디에 내놓아도 두드러져 보이는 그의 모습을 부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J의 어머니는 그 잘생긴 얼굴마저도 스트레스의 요인이라고 말했다. 6살 J는 자기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버리는 무시무시한 병에 걸려 있어 어느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어느 하나에 시선이 꽂히면 어떠한 자극으로도 우린 J를 되돌릴 수 없었다. 차츰 우리는 J를 J 아닌 ‘자폐증 환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대학시절 내가 만난 J는 첫 번째 자폐아였다. 거진 1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장애와 관련된 나의 경험은 늘어나지 않았고, 선천적인 장애를 치유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 발견되었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다. 태어나는 그 순간 우리 모두에겐 정해진 운명이 있어 이를 거스를 수 없는 건 아닐까, 장애로 인해 아파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난 그 슬픈 운명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스스로를 끌어안는 게 언제나 현명한 선택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문제는 장애를 가진 이들에겐 그 미래가 오늘에서 획기적으로 나아진 무언가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제 삶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건 가혹한 처사다. 그들은 비록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하여도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런 그들을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보듬는 이들이 있다. 그 위대한 자의 이름은 바로 ‘엄마’다. 신이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어서 보냈다는 존재. 이 책은 그런 엄마의 끈질긴 집념이 낳은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발달이 조금 느린 것이라 믿었고, 그리 믿고팠을 것이다. 하지만 도브는 정상이라 세상이 여기는 범주로부터 현저히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런 도브를 바라보는 포셔와 존의 마음은 하루하루 타들어갔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엔 더더욱, 자폐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기 때문이었다. 아이와 대화할 수 없다는 것은 정말이지 끔찍했을 것이다. 무얼 원하는지 알 수가 없었던 부모와 그런 부모를 갑갑해하며 우는 아이. 둘의 관계는 마치 끊어진 다리와도 같아 보였다. 만일 그들의 인생에 소마와 티토가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가운데 부분이 댕강 끊어진 이 다리는 어디서부터 재건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티토는 특별한 아이었다. 자폐 판정을 받은 이 아이가 써 내려간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슬프게 다가왔다. 자기 안에 갇혀 소통할 수 없는 아픔이 얼마나 큰지 그는 자판을 두드려가며 표현했다. 아이를 그저 연구의 대상으로만 삼던 당시 학계의 풍토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었던 포셔는 티토를 통해 희망을 배웠다. 사람들은 이를 ‘헛되다’고 표현했지만, 마치 작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 그녀는 서서히 아들의 마음을 열었다. 모든 것을 너무도 뚜렷이 기억한 나머지 하나로 통합하지 못하는 아이는 그렇게 세상의 일원이 되었다. 참으로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자폐를 알기 위해, 아들을 위해 비영리재단을, 학교를 세운 포셔의 모습으로부터 나는 참된 부모의 사랑을 느꼈다. 다소 감성적으로 흐를 수도 있는 이 이야기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자폐와 관련된 내용들이었다. 티토의 진술은 이제껏 철저히 타자의 입장에서 정의되어 오던 자폐의 재정의를 가능케 해 주었다. 정녕 무엇이 우리 같은 비장애인과 다른 것인지, 만일 티토가 아니었더라면 우린 아마도 계속 헛다리를 짚지 않았을까 싶다. 그저 남의 이야기라 치부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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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중..
<아홉달 동안 너를 품고, 몸속에서 키웠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아. 수많은 밤을 네 곁에 앉아 지새우면서 간호하고 기도했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아. 그때 흘린 눈물과 그 세월의 고통도 대가를 바라지않아, 그걸 다 합친다 해도 참된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아 . . ^ㅡ^ 이건 티토의 친구이자 엄마인 소마가 포셔에게 불러준 멜바 몽고메리의 <대가를 바라지 않아>라는 노래다.
티토는 자폐라는 장애를 가졌지만 소마의 교육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익히게 된다. 그리도 도브도..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자폐라는 장애를 이책을 통해서 알게되었고 또한 다르게 세상과 소통하고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포셔, 존, 소마 그리고 CAN 모두들 * 존경하고 사랑하고 싶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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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증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비합니다. 왜냐하면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기에 치료법이 없는 영구불변한 정신지체 장애로 낙인이 찍혔다고나 할까요? 그렇기에 수족이 없는 장애자는 수족을 대신하는 인공수족을 통해 제 2의 삶을 기대할 수 있지만 (물론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연구로 인해 나날이 발전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언어장애를 동반하는 자폐증은 답이 없는 문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림카드를 이용해 몇 년을 가르쳐도 아이들은 그것을 인지하는 속도가 너무도 느리고 그렇기에 현실적인 경제부담이나 성과의 미비로 많은 부모들이 교육을 포기하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저는 많은 선입관들이 오히려 그들의 미래를 빼앗은 건 아니었는지 자문해 봅니다. 극중 자폐아 소년인 티토와 도브, 그리고 많은 자폐아들이 티토의 엄마 소마와 함께 글자판을 이용해 대화를 하고자 먼저 다가가는 모습은 충격이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사회복지사로 제가 시설에서 보았던 많은 정신지체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거라고 느낀 자폐증이 단순히 감각적 수용의 다른 차원으로 인하여 자폐아들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형식으로 세상을 보기에 그것에 알맞는 자극이 있고, 자기자극을 앞선 방식으로 그들과 글자판을 통해 대화가 가능하다니,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또한 책 곳곳에 자폐아 티토의 시와 저자에게 보낸 이메일은 제 2의 놀라움이었습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질문에 응답하는 그의 말...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았던 심하게 말한다면 아무 생각없이 멍한 표정으로 마구 손을 떨고, 심한 발작을 하는 행동이 자신 역시 고통스럽고, 수치심과 창피함을 느낀다는 말!
자폐증을 앓고 있는 본인의 현실을 그 누구보다 가장 처절하게 느끼고 있음에 목이 메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자폐아들을 위해 티토를 통해 많은 언어적 자폐아들을 위한 교육을 체계화하려는 포셔 아이버슨의 노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끝없이 앞으로 달려가는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는 그녀는 한국의 엄마를 닮은 듯 했습니다. 말아톤의 실존인물 배형진군의 엄마 박미경씨처럼!
인도 자폐아 티토에게는 글자판을 건네준 엄마 소마가 있었고 미국 자폐아 도브에게는 많은 연구를 위해 재단까지 설립하는 엄마 포셔 아이버슨이 있었습니다. 그런 엄마들이 있었기에 티토는 글자판을 이용해 사회로 통하는 작은 문을 열고 나왔고 도브는 소마를 만나 글자판을 이용하여 그들의 부모에게 멋진 선물(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녀들의 열정이 하나씩 열매를 맺고 그리고 많은 자폐아들이 사회와 연결고리를 이어 그들의 마음을 표현하고 사회의 떳떳한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날이 멀지 않았기를 기도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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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키우는 아이 엄마로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가슴이 아팠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한 채 눈도 마추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갖혀있는 아이를 온갖 병원을 찾아다니고 여러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해결책을 강구하고 "자페증"이란 진단만이 유일한 대답이고 방법이 없었던 부모들 자폐증을 치료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들은 효과도 보지 못했을 때의 그 좌절감은 어떠할까.. 무엇보다 내 아이가 자폐증이라는 의하적용어에 속한다는 것부터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일 일것이다.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나로서는 학교 다닐때 자폐아에 대한 책을 읽고 그런 아이를 접해본 나로서는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였지만 의학적으로 발달되었있는 미국에서조차 자폐에 대한 검증된 치료가 없다는 것이 절망감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에서 조차 매스컴을 통해 또는 영화를 통해 자폐에 대해 다루었기 때문에 비장애인들과 어울려 살아가는것 자체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의 상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가족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가 없으면 불가능할 것이라는 거다. 아무것도 할 수없었던 티토가 글을 익히고 글씨를 쓰고 시를 쓸 수있기까지 엄마 소마의 노력이 얼마나 컸을가 생각해본다. 티토의 시는 정말 마음이 아프고 슬프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온갖 의학용어로 자기를 판단하려 했다는 그말. 정말 우리는 여러가지 의학용어로 그 아이를 설명하려 하는건 아닌지. 그 아이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저 애는 애 저럴까...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본다. 내 목숨보다 소중한 내 아이를 위해 엄마는 동분서주하며 조금이라도 발전될 모습을 위해 애를 쓴다. 엄마이기에... 세상에서 가장 위해한 사람은 정말 엄마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계기로 자폐에 대해 사람들이 좀더 많이 알고 많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앞으로 의학적, 아동심리학적 이런 분야에서 좀더 발전되어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치료법이 나왔음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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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을 잃은 사람이 어떻게 꿈을 꾸나 궁금한 적이 있나요? 또는 청각을 잃은 사람이 침묵 속에서 어떻게 꿈꾸는지? 자폐아는 세상을 인식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꿈꾼답니다. (300p) 이 책을 쓴 포셔 아이버슨은 위대한 엄마다. 그녀가 에이미상을 받은 미술감독이자 방송작가였다는 화려한 경력조차 ‘위대한 엄마’라는 수식어에 밀릴 것 같다. 아들 도브가 자폐증 진단을 받은 후 그녀의 인생은 오로지 자폐증 치료가 목표가 된다. 그러나 자폐증에 대한 의학적 지식이나 연구가 많지 않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스스로 길을 찾고자 한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민간기관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큰 자폐증 연구재단인 ‘이제 자폐증을 치료하자 (CAN: Cure Autism Now)’를 설립한다. 그리고 운명적으로 인도 여성 소마 무코파드야이를 만난다. 그녀는 혼자만의 힘으로 자폐증인 아들 티토를 교육하여 천재적인 작가성을 발견해낸다. 자폐증의 가장 심각한 장애로 여겨지는 사회적 행동과 언어를 치료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현실을 가능으로 바꾼 것이다. 티토는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글자판을 이용하거나 직접 글씨를 써서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전할 수 있다. 또한 아름다운 시를 쓰는 시인이기도 하다. 포셔는 소마와 티토를 미국으로 초대하여 자폐증이라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끌어 올린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 도브뿐 아니라 수많은 자폐아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자폐증에 갇힌 아이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다. 정말 눈물겹고 놀라운 발견이다. 일반 의사나 전문가들조차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이다. 아니, 그들은 믿지 않았다. 솔직히 포셔와 소마처럼 자폐아를 키우는 엄마의 지극한 정성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자폐증에 대해 잘못된 의학적 지식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자폐아들과 그의 가족들이 고통을 받았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사실 우리나라는 자폐증에 대한 연구나 치료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모르겠다. 어찌됐건 이 책이 자폐증의 실체를 알리고 적극적인 관심을 모으는 데 큰 몫을 해줄 거라 믿는다. 자폐증이 증세가 덜한 시각적 자폐증과 증세가 심한 청각적 자폐증(언어장애, 극단적 행동, 운동장애 등)으로 분류된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또한 자폐아도 정상적인 지능을 지녔고 다양한 지식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단지 세상을 인식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아예 할 수 없는 무능력자 취급을 당한 것이다. 왜 세상에 자폐증과 같은 병이 있는 건지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이 겪는 모든 질병이 존재하는 이유와 같다. 질병이 인간에게 주는 고통은 한 순간에 희망을 앗아가지만 포셔와 소마와 같은 ‘위대한 엄마’는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자식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희망을 현실로 바꾼다. 기적과 같은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 티토의 책 <침묵 저편에>에 실린 <마음나무>라는 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진실이 담겨 있다. 마음나무 어쩌면 밤일지도 몰라 어쩌면 낮일지도 몰라 확실히는 알 수 없어 아직 따스한 햇살이 느껴지지 않으니까. 나는 마음나무야 그 마음을 내게 선사하던 그의 목소리가 또렷이 떠올라. 너에게 이 마음을 주노니 오직 너만이 그럴 테고 아무도 너와 같지 않을 테니 나는 너를 마음나무라고 부르리라. 나는 보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해 하지만 상상할 수는 있어 바라고 기대할 수도 있어 고통은 느낄 수 있지만 울지는 못해 그래서 고통이 가라앉기만 기다려. 나는 기다릴 줄밖에 몰라 내 근심과 걱정은 어딘가 깊숙이 내 안에 갇혀 있어 어쩌면 뿌리 속에 어쩌면 줄기 속에 나한테 마음을 준 그가 다시 오면 이번에는 눈을 달라고 부탁해야지 정말로 돌아올지는 모르지만 그러길 바라고 있어. 어쩌면 올지도 어쩌면 안 올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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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먹먹해진다. 한편의 휴먼다큐를 보는 감동의 물결이 밀려온다. 내 아이가 나와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눌줄 모르고 자기자극으로 이상행동과 돌발행동을 하고 대화도 되지 않고 정신은 어디 먼 나라에 가 있고 몸만 나와 있는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까.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통제불능의 행동을 하는 자녀를 두고 눈물을 흘리는 부모를 본 기억이 난다. 주변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 혀를 차는 소리가 귓전을 두드리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 그러나 그들은 엄마가 지켜줄게라는 책의 내용처럼 이해받기를 원한다.
자폐증. 발병 기록은 조선시대를 훌쩍 넘을 정도로 아주 오련 역사를 기록하고 있지만 발병의 원인도, 치료법도 명쾌하게 밝혀진 것 하나 없는 상태로 자폐아를 자녀로 둔 부모의 인생은 아이와 함께 고난의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주변의 냉대와 몰이해만 없어도 한결 그 짐이 가벼워지련만 우리는 아직도 우리와 조금만 달라도 금긋기를 하고 담쌓기를 하고 있어 그들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책을 보면 자폐아들이 소통경로 시각적인 자극을 이용하거나 청각에 의존하거나 둘중의 하나이며 시각과 청각을 골고루 활용하는 공감각적인 지각능력이 전무하기 때문에 기존의 치료법은 경증인 경우엔 효과를 볼 수 있으나 이책의 주인공인 티토나 도브와 같이 중증인 경우엔 거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영화계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포셔와 존 부부, 금지옥엽의 둘째 도브가 청천벽력과도 같은 자폐아란 진단을 받았을때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이제 자폐아를 치료하자라는 재단 CAN(Cure Autism Now)를 설립하고 자폐아 DNA 관리기구를 만드는 등의 자폐아 치료를 위해 그들의 모든 것을 바쳤다. 도브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자폐아들을 위해~
먼 인도 땅에 희망의 서광이 비친다. 소마라는 가녀린 여인이 중증 자폐아인 티토를 자신만의 교육법으로 단어와 셈을 익히고 문장을 익혀 시를 지어 시집을 출간한 부녀를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미국으로 초빙하여 소마와 티토를 성공하게 만든 비밀을 캐내려고 다양한 과학자들이 실험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한다. 소마가 도브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나 도브도 티토와 마찬가지로 글자와 숫자를 익히고 대화를 할 줄 알게 되었을 때의 기쁨. 지능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그들이 자기자극으로 이상행동을 하는 순간에 접한 소리를 통해 받아들인 정보가 차곡차곡 쌓여 있음에도 그들은 그것을 표현할 방법을 몰랐을 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티토의 시를 보면 성한 우리들보다 더 뛰어난 감수성과 예리한 언어구사력의 소유자임에 분명하다.
좀 더 많은 아이들을 가르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즘 아쉽게도 소마는 포셔의 곁을 떠나 텍사스로 이주하고 포셔는 더 많은 아이들을 치료하기 위한 학교를 설립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우주가 감응한다는 시크릿류의 표셔와 소마의 공통점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것이 해결책이 아니라 소마의 티토에 대한, 포셔와 존부부의 도브에 대한 무한한 사랑의 힘이 얻어낸 소중한 결실이라 믿고 싶다.
티토와 도브로부터 시작된 희망적인 메아리가 온 누리에 펴져 자폐아로 고생하는 모든 이들에게 골고루 그 치료효과가 전해졌으면 좋겠다. 아울러 자폐아를 이해하고 우리의 동반자로 그들을 우리 사회, 우리가 받아들일때 그들이 더 빨리 다른 세상에서 우리 곁으로 돌아와 말과 글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사지육신 멀쩡한 육신을 갖고 태어난 아이를 둔 지금의 행복에 겨워 아이를 비교하여 주눅이 들게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자각하게 만들고 자폐아를 둔 부모들의 심정, 자폐아들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나의 아픔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다행이다. 그들에게 소마, 포셔와 존, 티토와 도브에게서 희망을 발견하고 희망을 전파할 수 있다는 것이~
책에서 밑줄 긋기
대가를 바라지 않아 - 멜바 몽고메리의 노래
아홉 달 동안 너를 품고, 수많은 밤을 네 곁에 앉아 지새우면서, 그때 흘린 눈물과 그걸 다 합친다 해도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것은 보거나 만질 수 없다.
시 8 - 티토의 책 마음나무(The Mind Tree) 수록작품)
'어디엔가 있는 곳'에 행복이 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