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복식사든 단 한권으로 수천년에 걸치는 패션의 흐름을 담아내기는 한계가 있다. 세계패션사의 공동필자인 매쥐 가랜드와 앤더슨 블랙은 모두 옷의 실증적인 조사연구로 신뢰할 만한 경력을 쌓은 이들로서 장기를 보이고 있다. 1권, 2권을 통해 다뤄지는 옷의 역사는 4천년전 메소포타미아에서 천을 어떻게 맵시있게 둘러입는가가 패션의 골자였음을 말하는 데서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미술사적 유물을 언급하고 중세 이후로는 프랑스와 영국의 패션이 거의 다라고 할 만큼 비중을 두고 있다. 막강하던 시절 스페인 왕족들의 옷, 중세 플랑드르의 모직물산업, 디자이너들이 만들어내는 옷, 그리고 현대의 미국과 대중패션이 맨 뒤에 등장하는 것이 이 책이 취하고 있는 서양패션의 역사적 줄기이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치적 상황이나 산업혁명, 부의 이동, 전쟁과 여성해방 등에 관한 정치 사회적 사건을 배경으로 이끌어 낸다. 두 사람의 연구방법의 특징은 그림 등의 소개와 함께 옷의 세부구조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이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그림이나 사진들은 근세에 이르기까지는 그러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국한된 것이다. 실물옷에 대한 자료보다는 패션적 요소가 강한 그림이나 사진만으로 책을 가득채운 것은 패션의 시각적인 효과를 가능한 한 높여보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면서 자세하게 관찰된 수천벌 옷에 나타난 세부구조, 광기에 가까울 만큼 극단적이던 멋부리기에 대한 설명이 본문에 나타나 있다. 아마도 오늘에 와서 새로운 옷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 막상 필요한 지식은 과거의 옷들이 어떻게 구체적인 재봉과 장식 및 그에 부수되는 액세서리들을 갖추었는가하는 정보일 것이다. 그냥 읽어내려가기에는 너무나도 잡다한 복식, 4천년간 역사의 전면에 나섰던 사람들이 남긴 수천벌의 옷이야기와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장식 이야기들은 그 피상적 묘사만으론 지리해지기 십상인 것을 호화로운 그림과 정교한 사진을 제시함으로써 정돈되었다. 오늘날 한 사람이 입어내는 옷 이면에 끌려오는 역사의 무게는 그만큼 복잡하다. 이들 두 저자가 서술하는 패션이야기는 시대별로 양상이 달라진다. 메소포타미아부터 이집트, 그리스, 로마까지는 그림과 조각으로 남아있는 유물을 통해 서술하는데 여기서부터 옷을 어떻게 맵시나게 입었는가에 대한 관찰이 자세하다. 이때에도 남녀 모두 가는 허리를 아름다운 육체의 핵심으로 삼았던 사실이 제시되고 고전이 완성되는 시기로서 로마인들이 신분에 따라 엄청난 옷감으로 몸을 감싸는 방법까지 자세하다.(한국에서도 이런 의복은 승려들의 가사입는 방법에서 관찰된다). 수염과 머리모양, 장신구, 샌들, 색깔에 이르기까지 할 수 있는 묘사는 다 한 것 같다. 한 시대 의생활에서 나타나는 모든 것에 대한 수많은 단편적 묘사는 그 시대를 통채로 보여주려는 의도이겠지만 자칫 산만해져서 아주 집중해 읽어야만 이들의 모습이 어렴풋하게나마 떠오른다. 그림이 곁들이지 않았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여기서는 시저와 같은 역사적 인물들의 옷에 얽힌 짤막한 일화가 옷에 생명력을 준다. 언제 어디서 그 옷을 입고 무엇을 했다는 기록은 바로 생활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비잔틴 시대로 들어가면 동양의 영향이 증대했다는 짤막한 논평이 나오고 곧이어 9세기부터는 프랑스와 영국이 무대가 된다. 이 시대부터는 거의 전적으로 그림과 유물을 남긴 왕과 왕비, 그림으로 모습을 남긴 사람들이 관찰대상인데 그 종류가 광범위해지면서 서술 또한 세분화되는 동시 길어진다. 1권을 꽉 채운 중세의 이같은 겉모양의 모든 것에 대한 묘사 나열에서 독자가 예를 들어 남자바지의 변천 같은 것을 알려면 광맥을 찾듯 여기저기의 단편적 묘사들을 추려내 따로 체계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극단으로 간 패션의 묘사-머리 빗는 것이라든가 모자 장식, 치마의 모양을 좋게하기 위한 괴상한 속옷과 화려한 옷감이야기 등은 상정을 벗어나 끝까지 가보는 일종의 광기 같은 것이 느껴지면서 이상하게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도 준다. 모든 옷에서 품위와 절도만을 찾는다면 숨이 막혀버릴 것 같은 느낌이 비록 왕이나 왕비 같은 특수한 사람들을 통해서라도 화려함의 구현을 보는 동시 권위를 유지하려는 뒷면의 우스꽝스런 구조 같은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목둘레를 둥그렇게 받친 러플(엘리자베스1세 여왕의 초상으로 대표되는)을 잘 건사하느라고 음식을 흘리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고안되었다거나 하는 등. 여자들만의 폐해인 양 알려진 사치가 어는 시대에는 공작새처럼 꾸민 남자들을 통해 대표되는 삶의 유형도 구경한다. 사치금지령이나 과장된 옷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멋부리기위해 인간 육체에 경주하는 필사의 노력, 건달 같은 차림새에 감정이 해방되는 느낌 등이 교차하면서 페이지를 쫓아가게 된다. 이 책의 특징은 바로 이런 패션의 용의주도한 묘사를 통해 삶의 진행방식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데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한 시대를 뽐내면서 살다간 인물들의 패션을 구경하는 재미를 건져올릴 수가 있는 것이다. |